여성의 종속은 필연적인가?
by 처사21여성의 종속은 필연적인가?
김 형 준
남성지배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모든 사회에 성역할분화가 존재한다는 사실, 즉 인류사회에는 예외없이 남성과 여성을 서로 다른 것으로 규정하고, 상호 배타적인 영역으로 분리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양성간의 신체적, 심리적 차이를 심화시켜 남성과 여성을 상호 의존적 존재로 만들어 나가는 여러 문화적 기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나 한편 성별분업의 구체적 내용이 사회에 따라 엄청나고 다양한 차이를 나타낸다는 사실, 즉 같은 일이라도 어떤 사회에서는 그것이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반면 다른 사회에서는 동일한 일이 남성에게 보다 적합한 일로 간주되며, 어느 성이 그 일을 담당하는가에 따라 동일한 종류의 일이라도 그에 대한 가치평가가 매우 달라진다는 사실에 익숙해 있는 인류학자들은 그러한 역할의 분화가 남녀의 선천적, 유전적 차이에 의해 결정된 다는 견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로잘도와 콜리어(Rosaldo and Collier)는 성역할의 분화와 각 역할에 대한 사회적 가치평가에 차이가 나타나게 되는 원인을 상징체계와 연관시켜 설명해 보고자 시도하였다. 앞서 언급되었던 바와 같이 현존하는 많은 수립채집사회들의 경우 여성들이 담당하는 채집부분이나 덫을 사용하는 작은 짐승의 사냥 등이 경제적으로 또는 전체집단의 생존에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에 의해 얻 어지는 큰 짐승의 고기가 상징적으로 보다 많은 가치를 부여 받고 있다. 로잘도에 의하면 그것은 아마도 채집되는 식물에 비해 사냥 노획물이 훨씬 더 희귀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또한 수렵행위에는 인간능력을 뛰어넘는 많은 용기와 생명을 무릅쓰는 모험이 요구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그러한 희귀성으로 해서 타집단들과 관계를 맺는 수단으로 또는 혼인을 성립시키기 위한 매개물로는 사냥 노획품들이 주로 사용된다. 따라서 수렵행위를 담당하는 남성들은 그러한 활동을 통하여 교환의 영역, 공적인 영역에 보다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반면 출산과 오랜 기간을 요하는 수유 및 육아의 기능 때문에 여성들은 자연적으로 집안을 중심으로 한 가내영역에 그 활동범위가 제한되며, 수렵 행위에 남성과 동등하게 참여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여성이 공적 영역에 관련된 활동으로부터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물론 상징체계와 연관시키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남녀의 활동영역분리가 나타나는 원인을 생물학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남녀의 신체적, 생물학적 차이로 인하여 여성이 수렵활동으로부터 제외될 수 밖에 없에 없었다는 사실로부터 남녀불평등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종래의 인류학적 저서들에도 많이 발견된다. 특히 타이거와 폭스는 수렵활동이 치밀한 계획, 상호 협동 및 조직능력, 도구사용을 위한 지혜 등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들어 여성이 수렵활동으로부터 제외된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조직능력, 협동능력, 상징체계의 형성의 면에서도 여성이 남성에게 뒤떨어지는 결과를 가져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이 수렵활동에 종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직능력과 도구사용의 능력 등에서 남성보다 뒤 떨어진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실제 수렵채집사회에서 채집을 담당하는 여성도 남성에 못지 않은 협동능력과 기술사용 능력을 보여주고 있음이 지적되고 있으며 또한 마가렛 미드는 뉴기니 부족들에 대한 연구에서 식량생산이 여성의 역할로 간주되는 참불리(Tchambuli)족과 같은 경우에서는 여성이 오히려 남성에 비해 월등한 조직능력, 협동능력, 동료의식 등을 지닌다는 예를 제시하고 있다.
한편, 거프(K.Gough)는 남성지배의 기원을 남성들이 수렵과 방어의 기능으로부터 보다 우월한 무기를 독점하게 되고 여성들이 생존을 위하여 그에 의존하게 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남성들이 그들과 동일한 집단의 구성원인 여성들에 대해 그러한 무기를 사용하는 예는 극히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이 그러한 무기를 소유한다는 사실 자체가 남성들이 전반적으로 여성에 비해 체력면에서 우월하다는 사실과 함께 여성이 남성에게 예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처에서 발견되는 남녀불평등 구조의 복합적인 제 측면을 단순한 물리적인 힘의 우연만으로 설명한다는 데는 무리가 있다. 또한 우리는 과연 서구 문명이 침투하기 이전의 수렵사회, 원시사회들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큼 그토록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였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인류학자들은 그러한 사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평화스러우며 양성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문명사회에 비해 오히려 더 상호 존중하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이상에서 논의된 성차별의 기원에 관한 몇가지 가설들이 주로 수렵채집사회에서 그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오트너(S.Ortner)는 보다 일반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에서 남녀불평등의 근본원인을 설명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녀에 따르면 인간은 보편적으로 자연적인 상태보다는 인간의 통제하에 있는 문화적 현상들에 보다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고 한다. 그런데 상징적 차원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항상 자연에 보다 가까운 존재, 또는 자연과 문화의 한계선상에 위치하는 존재로 여겨지며 모든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이로부터 연유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물론 여성차별이 모든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전제하는 입장이다. 그러면 어떠한 점에서 여성과 남성은 '자연'과 '문화'라는 관념적 범주에 대비될 수 있다는 것인가. 오트너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선 첫째로 여성의 신체적 구조나 기능의 대부분은 본인의 안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종(종)의 번식이라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란 자연적으로 주어진 기능이며 반복적인 것인 까닭에 생명을 창조하고 종을 번식시킨다는 중요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가치를 부여받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 오트너는 시몬느 드 보봐르의 문구를 인용하여 이러한 여성의 생명 창조행위에 비해 오히려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인 사냥이나 전쟁 등이 보다 많은 가치를 부여 받는 이유는 자연적인 상태를 초월하고 그것을 통제하는 '문화적'행위이기 때문이라 한다(여기서 '문화적'이란 막연히 자연의 상태를 변형시킨다는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남성은 종의 번식이라는 자연적 기능으로부터 자유로운 까닭에 인간의 문화적 수단(상징이나 기술 등)을 이용하여 보다 많은 창조적 업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더욱 높은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오트너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성의 활동영역이 주로 가정내에 제한된다는 사실도 여성이 가정 밖의 영역, 즉 공적 영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남성에 비해 자연에 보다 가까운 존재로 간주되는 이유중의 하나가 된다고 한다. 이는 레비 스트로스(C.Levi -Strauss)로부터 유래된 발상으로 레비 스트로스에 의하면 생물학적인 단위인 가족은 근침금기와 족외혼의 법칙이라는 인간에 의해 발명된 규칙들에 의해 서로 결합됨으로써 비로소 '사회'를 형성하게되는 까닭에 이런 의미에서 '가족'과 '사회'란 상징적으로 각각 '자연'과 '문화'의 범주와 대비될 수 있으며 또한 여기서 사회란 생물학적 단위인 가족을 통제하고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구성단위인 가족에 비하여 우월한 영역이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트너에 의하면 가내영역에서 여성이 실제로 담당하는 일 자체도 자연에 보다 가까운 존재로 보이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고 한다. 가정 내에 여성들의 활동은 어린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어린이는 어른에 비해 동물적인 상태, 즉 자연과 보다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며, 여성들이 주로 담당하는 자녀와 사회화라는 역활도, 바꾸어 말하면 자연의 상태에 있는 어린이를 문화적인 존재, 즉 사회적 의무, 책임, 도덕 등을 이해하는 성인으로 변형시키는 행위에 해당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트너는 또한 여성의 활동영역이 주로 가정 내에 제한되며 여아의 사회화도 주로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여성이 남성에 비해 보다 자연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는 심리구조 내지 인성적 특질을 발달시키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가족 구조와 여성적 인성발달에 관한 초도로우(N.Chodorow)의 논의에 기반한 것으로 초기 유아기부터 성장기에 이르기까지 주로 가정 내에서 사회화되는 여자아이들은 사람들과 긴밀히 접촉할 기회가 많고 또 어머니로서의 자신의 미래역할상을 구체적 인격체로 체험하며 자라나는 까닭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을 발달시키게 되며, 인간관계의 유형에 있어서도 보다 직접적이고 개인을 단위로 맺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남자아이의 경우는 자신이 동일시해야 하는 아버지가 항상 가정 밖에 존재하며 가까이 접촉하는 기회가 드문 까닭에 아버지에 대한 역할상을 보다 추상적인 지위로서, 즉 일련의 권리 및 의무의 추상체로 체험하게 되며 이것은 후기의 인간관계 유형에도 영향을 미쳐 남성들의 경우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인, 인간적인 차원에서보다는 집단을 중심으로 지위, 권리, 의무 등 추상적 측면과 결합한 인간관계의 유형을 보인다고 한다. 또한 여자아이의 경우와 달리 남자아이는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사회화가 가정 밖의 영역, 즉 동료집단 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영역에서 행해지게 되므로 보다 일찍 독립적이고 경쟁적인 성격을 발달시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트너에 의하면 이처럼 인간주의(Personalism)및 개별성(Particularism)으로 특징지워지는 여성의 인성은 보다 추상화된 범주 및 가치들에 관련되는 남성에 비해 '덜 문화적인'것으로서 자연에 보다 가까운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트너는 여성이 남성에 비하여 신체적 구조나 기능면에서뿐 아니라, 사회적 역할이나 심리구조, 인성적 특질 등의 면에서도 모두 문화보다는 자연이라는 상징적 범주에 근접해 있어서 문화적 영역을 통제하는 남성에 비해 열등하게 간주되며 또한 그들에 의하여 통제, 지배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는 물론 몇가지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우선 스트라던(M.Strathern)등은 이와 같은 '자연'과 '문화'의 양극적 대비는 모든 문화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적 범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또한 남성과 여성을 각각 '문화'와 '자연'의 범주에 대비시켜는 경우라도 남성과 여성의 모든 특징들이 항상 그러한 두 범주에 일관성있게 연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로잘도, 오트너등의 논의는 우리가 앞서 제기해 보았던 두 가지의 문제, 즉 공적 영역과 가내영역의 성별분업의 기본구조로 등장하게 되는 배경과 그 중에서도 특히 남성들의 영역인 공적, 사회적 영역이 보다 많은 가치를 부여받게되는 원인을 설명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이러한 논의들은 상징체계와 연관시킴으로서 양성관계에 있어 매우 보편적으로 나타나지만 생물학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없는 제 측면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각을 제공해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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