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와 첫사랑 - 김상욱
by 처사21유행가와 첫사랑
김상욱
두번 다시 마주하기 힘든
그 어떤 날이 온다 할지라도
내가 흔들리지 않을 때
그대 항상 내 곁에
있을 것임을
(서태석, [연가] (창작과비평) 1989년 여름호)
첫사랑,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 소설의 제목이다. 하지만 굳이 투르게네프가 아니어도 우리는 모두 첫사랑이란 제목 아래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생생하며 풍부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를 묻어두고 있다. 때론 가슴을 저미게 하고 때론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허둥거리게 하던 이야기를, 우리가 겪은 첫사랑의 애틋한 울림에 비하면 투르게네프가 만들어낸 소설은 기껏해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눈부신 예술적 감동은 삶 그 자체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첫사랑만큼은 하느님도 공평하게 집행하신다. 미운놈 고운놈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단 한 번만의 기회를 내리신다. 미덥지 못하고 오종종한 나에게까지 그 은총은 어김없이 싱싱한 햇발처럼 쏟아졌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우리 -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 모두가 아니라 그 여자와 나만을 뜻한다 - 는 농촌활동을 가서 만났다. 어느 날 문득 옷깃을 스쳐가는 한 줄기 바람처럼 마주친 눈빛 하나로 서로가 서로의 나머지 절반임을 깨달았다거나, 알지 못할 운명의 끈이 갑작스럽게 서로를 당기고 있음을 느꼈다는 식의 기억이 안타깝게도 내게는 없다.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다만 많은 후배들 중의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하얀 샌들을 신고 농촌활동을 하러 올 만큼 주먹 하나쯤 모자란 아이
였다.
그 해의 농촌활동은 아주 비정상적이었다. 요즈음은, 졸렬한 탄압은 여전하나,'농활과 함께라면 거머리마저 감미롭다'거나, '뚱뚱해도 손맛이 좋아서 새참을 잘 만드는 여자'가 희망사항이라는 등 장난기가 가능할 만한 상황이 되어 고된 노동의 축제로까지 성장해 있다. 하지만 광주 항쟁 직후의 폭력적인 상황에서 당시의 농촌활동은 밤붓짐을 싸들고 마을을 몰래 빠져나가는 과부처럼 은밀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우리가 간 농촌은 일손이 바쁜 농촌 마을이 아니라 그저 홀어머니가 지키고 있는 선배의 시골집이었다. 일손이 없어 땅은 모두 소작을 주어버려 일이라곤 두세 마리 돼지를 치는 것이 전부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농촌문제에 대한 학습으로 메워나갔다. 저녁엔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로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고, 밤엔 잠자리가 모자라 몇몇은 마을 정자에서 콩깍지로 모기불을 피워두고 잤다.
내가 그를 느낀 것은 그 곳 정자에서였다. 7월의 더위가 한창이었으나 그래도 새벽에는 냉기로 몸을 옹송거릴 정도였는데, 사흘이 지난 다음부터 우리의 서리맞은 몸뚱이 위에 이불이 덮여 있었다. 새벽 고샅길로 마음씨 좋은 천사가 다녀갔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 피곤에 절어 자잘한 일에는 도통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었던 나머지 이불이 밤 사이에 생겼고, 그것을 누가 가져다 두는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천사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오직 그만이 늘 기상시간보다 앞질러 일어나 아침단장을 끝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점차 추측에서 확신으로 바뀌었갔고, 나는 그 일에 대해 깊이 고마움을 느꼈다.
일정을 끝내고 돌아오던 날이었다. 자정 넘어 도착하는 기차시간에 맞추기 위해 우리 일행은 저녁을 먹고 길을 나섰다. 달이 없이 어두운 길이었으나 빛나는 은하수가 온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의 행로는 아름답지 못하였다. 좁고 어두운 길에다 더러는 논두렁으로 미끄러져 빠지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엉망이었다. 모자라는 샌들의 그는 더욱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앞서 걸으며 돌부리를 툭툭 걷어차 길을 비껴주는 일 뿐이었다. 이윽고 역에 도착해 자동판매기의 커피를 마시며 그는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내가 그의 보이지 않는 마음 씀씀이를 알고 고마움을 느꼈듯, 그 역시 내 작은 몸짓을 알아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급속하게 가까워졌다. 쥐 풀방구리 드나들듯 나는 그의 주변을 서성거렸고, 우리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만났다. 때론 기차를 타고 교외로 나갔고, 때론 저무는 한강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알지 못할 애수에 젖기도 했으며, 때론 황량한 바닷기슭에서 서해와 지는 노을을 보기도 했다. 그 여자는 내 삶을 조금씩 허물고 들어와 자신의 성을 튼튼히 쌓아가기 시작하였고, 그 침입은 내 옹색한 자취방부터 눈에 띄게 바꾸어 나갔다. 그가 건네준 자잘한 물건들이 벗어둔 빨래감처럼 그의 부피와 무게를 알리며 나날이 켜켜로 쌓여갔고, 나 역시 그를 통해 세상을 보는 법에 익숙해져 갔다.
그때부터 나는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 되었다. '시도 쓰지 않는 제까짓게 시인은 무슨 시인'하고 빈정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 시인이었다. 나는 그의 사랑에 늘 감사했고, 나도 남들처럼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 했다. 그리고 그 신기함과 고마움을 ,덧붙여 눈부신 내 사랑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언어를 찾아내려고 노력해 마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절실한 감정의 폭과 깊이에도 불구하고 한 줄의 시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 올지도 모를 정류장에서 한없이 버스를 세며 그를 기다릴 때, 늦은 밤 그가 등을 돌리고 들어간 뒤 삐걱거리며 대문이 닫힐 때, 그가 없는 사이 첫눈이 내릴 때, 전봇대에 머리를 들어밀고 아까운 안주를 게워올린 뒤 감청색 밤하늘을 올려볼 때 나는 시인일 수밖에 없었다. 무릇 시인이란 용암이 천 길 땅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마침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위산을 꿰뚫고 터져나오듯, 억누를 수 없을 만큼 뜨겁고 절실한 그 무엇을 지닌 사람이 아닌가. 그리고 나 역시 이만큼이나 큰 그리움과 사랑을 묻어두고 있는데, 어찌 시인이 아니란 말인가. 더욱이 나는 비록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나의 목소리와 빛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시들을 열심히 찾아 읽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예컨대 이가림의 시가 그것이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모래알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기어이 끊어낼 수 없는 죄의 탯줄을
깊은 땅에 묻고 돌아선 날의
막막한 벌판 끝에 열리는 밤
내가 일천 번도 더 입맞춘 별이 있음을
이 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
날마다 잃었다가 되찾는 눈동자
먼 부재의 저편에서 오는 빛이기에
끝내 아무도 볼 수 없으리라
어디서 이 투명한 이슬은 오는가
얼굴을 가리우는 차가운 입김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물방울 같은 이름 하나 불러본다
(이가림,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창작과 비평사)
나는 이 시를 읽은 다음부터 유리창만 나타나면 이마를 대고 모래알 같고 물방울 같은 그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곤 했다. 버스의 차창, 강의실의 유리창, 심지어는 푸석한 머리를 빗어올리는 거울에까지 어김없이 이마를 갖다 댔다. 그러면 선뜩한 차가움이 날카롭게 파고들어 내 의식은 일제히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곤 했다.
그러나 으레 첫사랑이 그렇듯이 눈부시게 열려가던 새로운 세계는 동화처럼 아름답게 끝나지 않았다. 3학년이 끝나갈 즈음 아주 엉뚱한 일로 나는 연행되어 수감되었고, 풀려나오자 그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살아야 할 세월의 고통을 앞질러 예감하였을 게다. 그 후부터 그는 늘 '부재중’이었다. 전화도, 편지도 요괴가 산다는 깊은 수렁에 잠긴 듯 도무지 되돌아올 줄을 몰랐다.
그를 향한 부질없는 서성거림이 계속되었고, 못내 다시 우리가 만난 것을 크리스마스를 이틀 남짓 앞둔 날이었다. 거리마다 징그럽게도 '징글벨'은 울리고 있었고, 그 아버지가 내린 은총을 아들 예수가 서서히 거두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차를 마시고, 그 서먹한 껄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약간의 술을 먹었으며, 짧고 서툰 악수로 헤어졌다. 그는 손을 놓으며 말했다.
"잘 지내고, 형은 참 좋은 사람이야,"
"그래? 넌 괜찮은 여잔 걸."
돌아서니 찬바람이 휑하니 몰아쳤고, 겨울은 더욱 깊어져 있었다. 후줄근한 걸음, 시린 뒷모습이 행여 그 여자를 심란스럽게 만들까 보아 나는 애써 당당하게 걸었다. 하지만 시시덕거리며 밀려오는 사람들을 헤치고 골목길을 꺾어 들면서 발과 몸뚱이는 따로따로 비척거리기 시작하였다. 바닥 모를 아득함으로 가슴이 아려왔고, 맑은 정신이 더없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진탕 퍼마시지 않고는 버텨낼 수가 없었다. 그날 어떻게 집으로 들어왔는지 당연히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침엔 쓰린 속 탓에 잠이 깼다. 겨우 몸을 일으켜 자리끼를 마신 후 다시 널브러졌다. 몇 시나 됐을까? 바깥은 여전히 희끄무레한 기색이었다.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 웬 방정맞은 여자가 펑펑 눈이 온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눈! 눈이 온다는 것이었다. 뒤이어 노래가 나왔다. 흐느끼듯 쥐어짜는 목소리로.
"눈이 내리네/ 그대가 가버린 지금/ 눈이 내리네/ 외로워지는 내마음......."
아, 우리는 얼마나 애타게 눈을 기다려 왔던가. 생전 눈 내리는 걸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남도 촌뜨기인 나는 눈 쌓인 고궁의 뒷담길을 또 얼마나 걷고 싶어했던가. 그런데 지금 그는 내 곁을 떠나버린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감정의 파도를 예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이 노래는 진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얼마나 감동적이며 얼마나 진실한가. 이것이 바로 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왜 나는 이제서야 이 노래에서 감동을 받는 것일까.
애당초 시란 누군가가 더 이상 억누르고 묻어둘 수 없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고, 그 감정이 시를 읽는 사람의 정서를 흠뻑 적실 때 비로소 한 편의 살아 있는 시가 된다. 비록 잘 짜여져 있지는 않을지라도 이 노래 역시 누군가의 어찌할 수 없는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아픔이 우리를 강하게 뒤흔들고 있는 이상 시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의 마주침 - 시인과 독자의 - 은 유행가에서는 흔치 않다. 오직 동일한 체험을 함께 나눈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상실한 사랑의 아픔이 나로 하여금 이 노래에 감동을 받게 한 것이다. 내가 그와 함께 있었더라면 이 노래는 그저 고운 멜로디로 남았을 것이다. 유행가의 대부분이 사랑을 노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만이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설레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행가는 우리가 격렬한 영혼의 울림으로 느꼈던 것만을 함께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시는 그렇지 않다. 설혹 첫사랑의 기쁨이나 고통처럼 격렬한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잠시 머물다 지나버린 일조차 시인의 절실하고 고통에 찬 노력을 통해 풍부하고 깊이 있는 감동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다음 김광규의 시 같은 경우이다. 비록 사랑에 버금가는 관심을 끌 수 있는 제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치열한 노력으로 짙은 감동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시에서 어린 게의 죽음이 생생히 부활하고 있음을 본다.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 한 마리
큰 게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뿜으며 헛발질 할 때
게장수의 구럭을 빠져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박꼭질하는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달려오는 군용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김광규, [어린 게의 죽음]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문학과 지성사)
유행가와 시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가 담아내고 있는 세계가 유행가보다 훨씬 넓고 깊은 세계인 것이다.
몰론 유행가와 시의 차이는 이것만이 아니다. 유행가가 감정을 실제보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과장되게 드러내고 있는 데 비해, 시는 감정을 차곡차곡 일정한 질서 아래 표현한다. 잃어버린 사랑을 그저 목놓아 울어버림으로써 드러내는 것이 유행가라면, 시는 그 울음을 오히려 안으로 삼킨다. 치마 속이 보일 정도로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엉엉 우는 것이 생활에 가까운 일이라면, 어깨를 조금씩 들썩이며 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도 새어나오는 흐느낌은 예술에 가깝다.
더욱이 시는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뿐 아니라, 그 이후의 모습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행가가 슬픔을 드러내는 것에 만족하는 반면, 시는 그 상처를 새로운 불씨로 여긴다. 나아갈 곳을 찾는 것이다. 김용택의 연시(戀詩 )는 이 모든 것을 잘 증명해 보이고 있다.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건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 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 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이
사람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김용택, [사랑],<맑은 날>창작과 비평사)
더 이상 군말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이 시는 자상하게 우리를 그의 지순한 사랑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가 사랑의 아픔을 어떻게 안으로 삼키고 키워나가는가를 찬찬히 보여준다. ‘마음 둘 데 없이’ 허망한 아픔에서 시작하여, ‘당신’ 역시 ‘하고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음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성찰로 이어지며, 다시 그 아픔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트여가고 있음을 맑게 그려 보이고 있다.
이처럼 시는 유행가와 달리 상처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큰 세계를 열어둠으로써 상처를 아물게도 하는 것이다. 홍역처럼 심하게 앓았던 나의 첫사랑의 상처 또한 이 시로 말미암아 흉터없이 예쁘게 치료되었음은 물론이다. 나는 거듭 그의 시에 머리를 조아린다. 그리고 첫사랑의 그에게 참으로 행복하기를 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 또한 시인임을 일깨우고 싶다.
연애를 할 때, 그대들은 모두 시인이어라. 외로움으로 내 영혼이 황량한 들녘을 서성일 때, 슬픔으로 네 목울대가 잠기어들 때, 분노로 네 살이 치떨릴 때, 투쟁으로 싱싱한 불기둥이 되어 치솟을 때, 그때 그대들은 모두 시인이어라.
김상욱. 대방여중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저서로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
와 편역서로 『코페르니, 작은 철학자』등이 있다.
♣개인별 탐구 과제
1. “그때부터 나는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 되었다. '시도 쓰지 않는 제까짓게 시 인은 무슨 시인'하고 빈정거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 시인이었다.” 고 말한 의도는 무엇이며 이 때 ‘시인’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2. 왜 유행가에는 사랑이나 이별을 노래한 것들이 많은가?
3. ‘눈이 내리네---’로 시작하는 유행가가 글쓴이의 가슴에 감동을 준 이유는 무 엇인가?
4. 또 이 노래를 들을 때의 감동과 시를 읽을 때의 감동은 어떻게 다르다고 했 는가?
5. 유행가와 시의 차이를 본문 속에서 찾아 모두 정리해 보자.
6. 김용택의 시 ‘사랑’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을 글로 적어 보자.
♠모둠별 토의 과제
1. 모둠원이 알고 있는 유행가 중에서 사랑이나 이별을 노래한 것이 있으면 그 가사를 적어 보자. 그리고 그 노래 가사를 윗글에 나오는 서태석의 ‘연가’나 이가림의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김용택의 ‘사랑’ 중 하나와 비교해 보고 차 이점을 밝혀 보자. 또 이를 통해 유행가와 시가 어떻게 다른지도 정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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