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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예상문제, 분석, 예시답안5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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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예상문제, 분석, 예시답안5

 

■ 도덕적 문제는 두 가지 유형의 도덕적 논변이 서로 상충하는 결과를 낳을 때 생긴다. 다음에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문제들에 대한 몇 가지 예화를 들어보기로 한다. 이러한 경우에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보다 도덕 규칙을 따르는 것이 우선하는지, 아니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행위가 도덕 규칙에 따르는 일보다 우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예화 1> 어떤 사람이 나에게 사냥용 총을 빌려주고 그가 요구할 경우 그것을 돌려 달라고 해서 그렇게 약속을 했다. 그 후 어느 날 그가 와서 총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의 행동거지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총을 이용해서 누군가 상해하거나 살해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총을 돌려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 당장에 그 총이 없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약속을 어겨야 하는가? 약속을 어기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도덕 규칙은 총을 마땅히 되돌려 주어야 하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한편, 그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총을 돌려준다는 약속을 어길 경우 결과는 더 좋을 것이라 여겨진다.

 

<예화 2> 죽어 가는 오랜 친구가 묻어 둔 돈이 얼마간 있으니 자기가 잘 아는 어떤 고아원에 희사해 달라고 유언을 해서 그러기로 약속하였다. 그가 죽은 후 그 돈을 찾아내었다. 그런데 그가 말한 고아원은 알고 보니 상당히 돈이 많은 재단이 뒷받침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처지의 고아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약속을 지키고 친구에게 진실 하라는 도덕 규칙,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돈으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그 돈을 그가 지정한 고아원에 주는 것이 마땅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러한 규칙들을 어기고 그 돈을 더욱 곤궁한 다른 고아원에 줄 경우 더 좋은 결과가 생겨날 것이다.

 

<예화 3> 끔찍한 살인이 저질러진 어떤 작은 도시의 경찰 서장이라 생각하고 누가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해 보자. 거리의 불량배들이 조만간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살상할 듯하고, 더 이상의 살인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 누명을 씌워 처형하는 일이다. 마침 죽어 가는 늙은 주정뱅이 유랑인을 한 사람 잡아들였다 해 보자. 그에게 누명을 씌워 처형함으로써 다른 많은 생명을 구하는 일이 옳은 것인가? 무고한 자를 상해하지 말고 정의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도덕 규칙은 그에게 누명을 씌우는 일이 그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반면에 그 늙은이를 처형하면 치안이 유지되는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

 

<예화 4> 타고 있는 보트가 가라앉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구명선에 너무 많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몇 사람을 내몰지 않는 한 나도 생명을 잃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 희생자를 선별하는 공정한 방법으로서 추첨을 제안했다. 살인을 금지하는 도덕 규칙은 이런 추첨을 허용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희생자를 가리는 추첨을 할 경우 모든 생명이 희생되는 불행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보다 좋을 결과가 예상된다.

 

<예화 5> 대체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이긴 하나 최근에 소수 집단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는 법률을 제정한 사회의 한 시민이다. 그 법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요구하고 있다. 법에 복종하라는 도덕 규칙은 우리가 그런 행위를 해야 할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법에 불복종하는 것이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견된다. 이는 바로 준법의 의무와 시민 불복종의 갈등이 문제되는 경우로서 소크라테스가 당면했던 경우와도 유사하다.

 

<유의사항>

1. 글의 분량은 1600자 내외로 할 것. (±100)

2. 어느 윤리설을 들든지 그 가치관은 평가하지 않음

 

 

논제 분석

어떤 행위가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견해에 대해 정당한 이유를 물어 올 경우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도덕 규칙에 의거해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 소유의 돈을 갖는 일이 나쁘다는 견해는 그러한 행위는 도둑질이며 도둑질은 나쁘다고 말함으로써 옹호될 수 있다. 여기에 관련된 도덕 규칙은 도둑질을 금지한다는 규칙이다. 하지만 다른 경우 우리는 어떤 행위가 옳거나 그르다는 우리의 견해를, 문제의 행위가 좋거나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옹호하고자 한다. 그래서 궁지에 처한 타인을 쉽게 도울 수 있는 사람이 그에게 도움을 거절하는 것이 그르다는 견해는 그러한 거절이 상당한 고통과 불행을 낳는다는 근거에 의해 옹호될 수 있다.

이상의 경우들 중 어떤 경우는 도덕 규칙에 따르는 것이 옳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경우는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행위가 요구되는 듯이 생각된다. , 어떤 경우에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분명해 보이지 않기도 한다.

 

이 문제들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위의 각 경우들에서 도덕 규칙을 어겨도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덕 규칙을 어기는 것이 결국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들어 도덕 규칙에 예외를 두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셈이며, 도덕 규칙을 어기는 일을 용납하지 않는 자들은 이러한 예외를 부인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상의 여러 경우를 깊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도덕 철학에서 또 다른 기본 문제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조건 아래에서 도덕 규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할 것인가 이다.

 

전통적인 도덕 철학 혹은 윤리학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두 가지 견해를 보여 준다. 의무론자 혹은 법칙론자로 불리는 자들은 도덕 규칙에 일치하는 행위는 옳으며 그러한 규칙에 어긋나는 행위는 그르다고 한다. 이들의 입장에 따르면 우리는 언제나 도덕 규칙을 따라야 하며 그에 따르는 행위가 다소 나쁜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이를 무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입장은 도덕 규칙에 예외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쪽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서 목적론자 혹은 결과론자로 불리는 자들의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는 옳고 그렇지 못한 행위는 그르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우리는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해야 한다. 도덕 규칙을 지키고 어기는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 되는데, 이는 행위 결과에 비추어 언제라도 도덕 규칙에 예외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 두 윤리설의 차이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목적론적 윤리설은 만일 한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또는 만일 모든 사람이 그 행동을 할 경우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그 행동은 도덕적으로 옳다고 주장한다. 어느 경우에나 그 행동을 옳거나 그르게 만드는 것은 그 행동이 가져올 결과의 좋음과 나쁨이며 그런 의미에서 목적론은 결과론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의무론적 윤리설은 한 행동이 어떤 도덕 규칙에 따르는 것이면 옳고, 위반하는 것이면 그르다고 주장하며 행위의 시비를 결과의 좋고 나쁨에 의해서만 판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비결과론적 이라고 할 수 있다.

 

목적론적 윤리 체계에서는 옳고 그른 행동을 구분하는 척도는 가치의 기준을 행동의 결과에 적용하는 데에 있다. 만일 한 사람이 어떤 유형의 행동을 한 결과가 그러한 가치의 기준을 만족시킨다면 그 결과는 좋으며, 따라서 그러한 행동은 옳은 것이 된다. 그러나 만일 그 행동, 또는 그러한 행동의 결과가 나쁘면 그 행동 자체는 그른 것이 된다. 이러한 종류의 윤리 체계에서 행동의 결과란 그 행동이 미래에 가져오게 될 모든 영향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모든 영향이란 그 행동이 수행됨으로써 생기게 될 모든 것, 즉 그 행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미래에 달라지게 될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무론적 윤리설은 입장을 달리한다. 의무론자들은 해동을 옳거나 그른 것으로 만드는 요인은 결과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의 성질이나 종류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어떤 행동이 모든 도덕 행위지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라는 성질을 갖거나 그러한 종류에 속한다면 그 행동은 옳고, 행해서는 안 될 금지의 의무를 위반하는 성질을 갖거나 그런 종류에 속하는 행동은 그르다. 모든 도덕 행위자가 어떤 종류의 행위를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를 진술하는 것은 행위에 대한 도덕 원칙 내지는 법칙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의무론은 또한 법칙론이라 불리기도 한다.

 

<읽기자료>

지난 두 세기 동안 서구를 지배해 온 칸트의 의무주의와 벤담의 공리주의는 서로 입장을 달리하지만 보편적 윤리 규범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며, 모두 윤리적 갈등이 제기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제된 메타 규범이다. 이 두 윤리학은 언제 어디서나 적용할 수 있는, 행위의 옳고 그름과 선악을 결정하는 보편적 메타 규범에 대한 서로 상반된 제안이다. 그리고 칸트의 윤리학은 보편적 법으로 될 수 있는 나의 준칙에 따라 행동하라.”는 의무주의적 정언 명법으로, 벤담의 윤리학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낳도록 행동하라.”는 공리주의적 일반 명법으로 극히 간략하게 요약된다. 이 두 윤리학이 서로 주장하는 대로 윤리 규범이 정말 보편적이고 그런 점에서 합리적일 수 있다면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한 규범이 정말로 보편적이라면, 그것은 누구나 어디서고 부딪치는 윤리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본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위와 같은 두 윤리학이 위대한 근대적 이론으로서 2세기 이상 윤리학을 지배해 왔던 이유는 그것들이 제시한 윤리적 규범이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칸트와 벤담은 각기 다르지만 만일 그들의 주장대로 보편적 규범이 있다면 그러한 규범은 지구촌 시대에 살게 되면서 더욱 혼탁해진 윤리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풀 수 있으리라.

 

과연 그런가? 사실 칸트와 벤담이 제시한 보편적 규범은 극히 간단하면서도 냉수를 마시듯 아주 시원하리만큼 직관적으로 선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들이 과연 우리의 직관대로 정말 보편적 척도로서 구체적 상황에서 윤리적 갈등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는가이다. 벤담의 공리주의적 규범과 칸트의 의무론적 규범이 동일한 규범이 아니라 서로 갈등하는 두 가지 규범이라는 사실은, 적어도 그 중 하나는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없음을 뜻한다. 어쩌면 그 중 하나만이 아니라, 칸트와 벤담이 확신했던 바와는 달리, 그 어느 것도 보편적인 규범으로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실은 그러한 규범들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는데도 아직까지 우리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윤리적 갈등 때문에 헤매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칸트의 의무주의적 윤리 규범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그의 신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존엄성은 현상 세계를 초월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인간만이 갖고 있는 이성이라는 속성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성에 봉사할 의무가 있으며, 이러한 의무는 곧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갖고 있는 자연적 충동에 따른 행동의 통제를 뜻한다. 윤리적인 행동이란 바로 이러한 의무 수행의 의지에 불과하다. 이런 테두리에서 칸트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 또는 모든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 같은 윤리적 율법을 제시한다.

 

언뜻 보기에는 아름다운 이 율법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데서 칸트의 규범은 벽에 부딪치고 한계를 드러낸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무고한 한 사람이 죽게 되거나 조국에 큰 피해를 입히는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말인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제가 죽어야 하는 전쟁터의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규범에 따라 나는 총을 쏘지 말고 죽임을 당하라는 말인가?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해 칸트의 윤리적 규범은 그 무게를 잃는다. 그의 규범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윤리적인 것이란 반드시 어떤 규범을 그 형식에 따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데 있지 않다.

 

벤담의 공리주의적 윤리 규범은 어떤가? 우리는 직관적으로 윤리적 가치가 형식에 있지 않고 내용에 있음을 안다. 공리주의적 윤리의 특징은 행위의 형식보다 그 형식이 가져올 내용에 윤리적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윤리적 내용의 근본은 인간의 행복이다. 따라서 한 행위의 윤리적 가치는 그것이 얼마나 많은 행복을 동반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행복이란 개념의 문제다. 행복은 욕망 충족과 상대적인 관련이 있고, 욕망이 다양해 두 가지 이상이 갈등할 때 어떤 욕망을 택하는가가 문제다. 욕망 자체가 이미 천하거나 귀할 수 있다면 천한 욕망의 충족이 어떤 의미에서 행복이라 할 수 있어도 그러한 행복이 윤리적일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둘째는 행복을 배분하는 문제다. 설사 행복의 개념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같은 양의 행복이 한 사람 혹은 극소수에게 분배될 수도 있고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 분배될 수도 있다.

 

벤담의 공리주의 윤리학을 보완하면서 밀은 인간 행위의 목적인 행복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분배할 것을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들의 이해 관계에 부합되게 소수 민족인 흑인들에게 평등권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적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우리의 윤리적 직관에 배치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공리주의적 윤리 규범이 의무주의적 규범의 지나친 형식성을 보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지만, 모든 경우의 윤리적 결정에 도움이 될 수는 없으며, 공리주의적 윤리도 의무주의적 윤리와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규범이 될 수 없다.

가장 합리적인 윤리적 규범으로 여겨졌던 칸트와 벤담의 윤리가 다 같이 만족할 만큼 합리적이지 않다면, 결국 많은 이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고 실제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윤리적 가치, 즉 선악이나 옳고 그름은 각 사회마다, 시대마다, 아니 각 개인마다 상대적이라고 결론지어야 하는가? 어떤 행위를 나 자신이 혹은 내가 속한 사회에서 선하다고 하면 선하고, 악하다고 하면 악하다고 판단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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