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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예상문제 모음 및 모범 답안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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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제시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두 가지 관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현대 사회의 삶과 연관시켜 어느 것이 타당한지를 논술하라.

 

()

임금과 신하는 서로가 입장이 다릅니다. 즉 군주는 나라를 다스려 자기 지위를 보존하기를 원하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일을 계획하므로 군신의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군주는 자신의 이해를 계산하여 신하를 기르고, 신하 역시 자기의 이해를 계산하여 군주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해치면서까지 나라의 이익을 도모하는 신하는 없으며, 나라를 해치면서까지 신하의 이익을 도모하는 군주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하로서는 자기의 몸을 희생하면 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군주로서는 나라를 해치면서 신하만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군신 사이는 계산된 관계인 것입니다. ([한비자](韓非子),<식사>(飾邪)편 중에서)

 

의원이 환자의 상처를 빨아 그 고름을 입에 담는 것은, 환자와의 사이에 부모 형제와 같은 골육의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렇게 하여 병을 고쳐 주면 사례를 받고 많은 사람을 단골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싫지만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수레의 제조자는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장의사는 관을 만들면서 사람들이 많이 죽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수레 제조자가 인자하고 장의사가 잔인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부유하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을 것이고,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팔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의사가 결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죽어야만 그에게 이익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죽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후궁정실태자들이 파당을 만들고 군주의 죽음을 바라는 것은, 군주가 죽지 않으면 그들이 세력을 확장할 수 없기 때문이며, 군주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군주가 죽어야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군주는 평소 자기의 죽음으로 이익을 보는 자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한비자](韓非子),<비내>(備內)편 중에서)

 

()

맹자(孟子)가 양혜왕을 만났는데 왕이"노인께서 천리를 멀게 여기지 않고 오셨는데,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왕께서는 하필 이롭게 한다 이르십니까?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하나 하고 말씀하시면, 대부(大夫)는 어떻게 하면 내 집을 이롭게 하나 하고 말할 것입니다. 사서인(士庶人)은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이롭게 하나 하고 말할 것입니다. 이처럼 상하가 서로 이익을 취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만승(萬乘)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천승(千乘)의 가문이고, 천승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백승(百乘)의 가문입니다. ()에서 천()을 취하고, 천에서 백()을 취함은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진실로 의()를 뒤로 돌리고서 이익을 앞세우는 짓을 하면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질면서도 그의 어버이를 버린 자는 있지 않았으며, 어질면서도 그의 임금을 뒤로 돌린 자는 있지 않았습니다. 왕께서는 오직 인의(仁義)를 말씀함에 그칠 것이지 하필 이익을 말씀하시나요?" ([맹자(孟子)],[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 중에서)

 

맹자가 말하였다."사람마다 모두 차마 남에게 잔학하게 굴지 못해 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 있다. 앞선 왕들은 차마 남에게 잔학하게 굴지 못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차마 남에게 잔학하게 굴지 못해 하는 정치가 생겨났던 것이다. 차마 남에게 잔학하게 굴지 못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차마 남에게 잔학하게 굴지 못해 하는 정치를 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그것을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차마 남에게 잔학하게 굴지 못해 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이러하다. 이제 사람들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갑자기 보면 다들 겁이 나고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그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교를 맺으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과 벗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고, 그 아이가 지르는 소리가 역겨워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부터 살펴본다면 측은해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고,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고, 시비(是非)를 가리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측은해 하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고, 부끄러워 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이다, 사람들이 이 네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사지를 가진 것과도 같다. 이 네 가지 단서를 지니고 있으면서 선한 일을 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사람이고, 자기 임금이 선한 일을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임금을 해치는 사람이다. 자기에게 이 네 가지 단서가 있는 사람이면 모두 그것을 확충시킬 줄 알게 마련이다. 네 가지 단서는 불이 처음 타오르는 샘이 처음 솟아나는 것과 같아서, 진실로 그것을 확충시킬 수 있기만 하면 사해(四海)를 편안하게 하기에도 충분하고, 진실로 그것을 확충시키지 않는다면 부모를 섬기기에도 부족하다."

([맹자(孟子)],[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중에서)

 

 

 

유의사항

 

1.분량은 원고지 1,600자 안팎(띄어쓰기 포함)으로 할 것.

2.원고지 사용법과 어문 규정을 준수할 것.

 

 

모범예문A

 

한비자의 관점 주장

 

중국의 전국 시대 말기에 살았던 순자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인간의 악한 본성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자가 제시한 방법은 ''()와 교육이었다. 교육을 통해 사람의 악한 본성이 선하게 되도록 이끌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되면 예--지금의 법과 유사--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는 어떤가? 주위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는 부()와 권력()에 의해 운영됨을 알 수 있다. 먼저 한 국가 내에서 돈과 힘을 가진 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 돈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을 얻고 다른 사람을 부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친다. 또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으로 돈을 벌고 다른 사람을 부린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발버둥친다.

 

한편 국제 사회에서는 힘의 논리가 더욱 철저하게 지배한다. 20세기 초기에는 군사력으로 대변되는 힘을 가진 경제 대국이 다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은 경제 대국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철저하게 부와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면에서 한비자의 현실 인식은 타당하다. 제시문에 나온 것처럼 그는 일찍이 현실 사회가 권력과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간파했다. 유가에서는 군신 관계를 충성과 신의의 관계로 본 데 비해, 한비자는 철저한 권력 관계로 파악했다. 그리하여 그는 군주에게 신하를 통제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이처럼 한비자(법가)는 현실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보았기 때문에 법가에 근거하여 통치를 했던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현실 사회의 문제를 보아야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 나라에는 정치가와 공직자의 부정 부패 문제가 심각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들의 공복의식, 책임 의식을 다시 믿을 것인가? 아니다. 이 문제의 해결은 법과 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정치가와 공직자도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고, 따라서 그것을 막는 방법은 그들을 다시 믿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위를 강제로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상주의적인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본다. 제시문에 나온 맹자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맹자는 사람들이 인()()가 아닌 이익을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이익을 추구하면 현실 세계는 엉망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사람에게는 윤리적 심성이 있어서 그것을 육성하면 현실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현실''소망','존재''당위'를 혼동하는 잘못된 관점이다. 현실은 돈과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설사 사람들이 윤리적 심성을 갖고 있다 해도.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주장해도,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는 공허할 뿐이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돈벌이를 존중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소망과 당위의 관점은 사회 문제의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치가와공직자의 부정 부패 문제는 이들의 공복 의식, 책임 의식을 함양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원래 윤리적인 심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이와는 정반대다. 이러한 문제가 비교적 적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공직자 부정 부패 방지법을 만들어 철저하게 집행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그들은 결코 정치가와 공직자의 도덕적 심성에 호소하지 않는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한비자의 관점은 우리 사회를 분석하는 데 합당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도 타당하다. 따라서 우리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관점에 입각하여 현실 사회를 보아야 할 것이다.

 

 

모범예문B

 

맹자의 관점 주장

 

한비자는 현실 사회가 이익과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군신 관계는 충성과 신의에 근거한 관계가 아니라 단지 권력에 복종하고 권력을 부리는 관계일 뿐이다. 또 의사와 환자의 관계, 장인과 고객의 관계도 모두 이익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한비자의 관점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에 비추어 보면 타당한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이익과 권력을 중심으로 인간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한비자의 관점에는 문제가 많다.

 

먼저 인간 관계를 이익과 권력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즉 인간 관계는 이익과 권력을 중심으로 맺어지지만 동시에 다른 정신적 가치를 중심으로 맺어지는 관계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헌신적으로 자식을 위해 봉사하며, 어떤 때에는 자식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따라서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를 단순히 이익 관계, 권력 관계로만 볼 수는 없다. 또 조선시대의 사육신은 사회의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쳤다. 이 경우에도 신하와 군주의 관계를 단순히 권력 관계로 볼 수는 없다. 이 같은 예는 이 밖에도 얼마든지 많다. 따라서 사회를 이익과 계산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은 지나치다.

 

다음으로 한비자의 관점은 인간 사회의 목적이나 가치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인간은 단순히 물질적인 욕망이나 권력을 향한 욕망에 이끌리는 존재가 아니다. 만약 인간이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동물의 세계와 하등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동물 세계가 아니다. 인간은 돈과 권력 이외에 다른 소중한 가치를 간직하고 그것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친구를 위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자기 이익보다는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마을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 정신'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중한 가치가 있음으로 해서 인간 사회는 살 만한 세상이 된다.

 

그런데 한비자의 관점은 인간 사회의 이 같은 모습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한비자의 관점은 이러한 가치를 무시하고,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삶을 조장하기까지 한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가 돈과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면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소중한 가치를 무시하는 행동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맹자의 관점은 여러 가지 면에서 타당하다. 먼저 맹자는 인간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맹자는 인간에게는 착한 심성이 있고 이것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에서는 이익과 권력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맹자]에서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한 주장이 이를 증명한다.

 

다음으로 맹자의 관점은 인간 사회에서 소중한 가치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는 면에서도 정당하다. 맹자는 이익과 권력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것만을 추구하는 것에 반대한다. 대신 그는 인과 의를 추구할 것을 주장한다. 인과 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소중한 가치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우리가 맹자의 주장에 입각해서 생활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인간답게 발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실 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맹자의 관점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비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 부패와 범죄 행위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착한 심성을 키움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여려 가지 면에서 맹자의 주장은 올바르다.

 


[문제 해설]

 

이 문제는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을 묻고 있다. 이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제시문에 나와 있는 두 가지 관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두 관점의 차이, 두 관점의 근거, 두 관점이 현실에 적용되었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 등을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분석을 거친 뒤 자신의 입장을 정해야 한다. 입장을 정한 다음에는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다른 입장을 비판해야 한다.

 

유의점1. 제시문의 두 관점을 정확히 파악하자.

 

제시문 ()의 관점은 '현실주의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는 먼저 인간 관계가 돈과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보고 있다. 이 관점의 배경에는 인간이 악한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다음으로 한비자는 이런 세상에서는 '현실적인 대응책'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왕과 신하의 관계는 권력 관계이기 때문에 왕은 늘 자신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신하를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 또 다양한 사회 문제--예를 들면 공직자의 부정 부패 문제 --도 인간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법과 공권력에 의지해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시문 ()의 관점은 '이상주의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는 먼저 인간 관계가 돈과 권력의 관계가 아니라 도덕적 심성과 정의에 입각한 관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인간 내면에는 도덕적인 단초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다음으로 맹자는 이익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도덕적인 심성을 함양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현실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공직자의 부정 부패 문제도 기본적으로 공직자가 인간의 도리를 저버림으로써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해결책은 바로 인간의 도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깨닫게 하는 것이다.

 

유의점2. 자기 입장을 선택하고 그것을 옹호하자.

 

두 견해를 분석한 다응에는 자신의 입장을 결정해야 한다. 두 가지 입장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선택했다면 자신의 입장을 옹호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비자의 관점을 선택했다고 하자. 이 관점은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 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분명 돈과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관점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공직자의 부정 부패 문제는 법의 엄격한 시행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맹자의 관점을 선택했다고 하자. 먼저 맹자는 인간을 다면적으로, 즉 이기적 속성과 도덕적 심성을 모두 갖추었다고 파악한다. 물론 그는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주장했지만,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이기성을 무시하지는 않다. 다음으로 맹자의 관점은 인간 삶의 참된 가치--도덕적인 인간과 사회 건설 --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올바르다.

 

유의점3. 다른 입장을 비판하자.

 

한비자의 관점을 선택하여 맹자의 관점을 비판한다고 하자. 맹자의 관점은 우선 현실의 '실재''당위','소망'을 혼동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인간이 도덕적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또 맹자의 관점으로는 공직자의 부정 부패 문제 같은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반대로 한비자의 관점을 비판한다고 하자. 이 관점은 먼저 인간을 일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인간이 항상 이기적인 존재는 아니며, 따라서 현실 사회에서 인간이 언제나 돈과 권력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이 관점에 따라 현실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때에도 사회 내에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이 계속될 것이라는 문제가 생긴다.


 

제 2 교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거대한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 대부분이 익명의 존재로 방치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위의 글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과 개인 사이의 참다운 정서적 유대 관계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가 어떠한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간략히 밝히고, 둘째, 그러한 사회적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참다운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이 글에서 암시하고 있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어떠한 의의와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 (97학년도 서울대학교 입학 논술고사)

 

<제시문>

 

"안녕." 여우가 말했다.

 

"안녕."어린 왕자가 공손히 대답하고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여기 있어. 사과나무 아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넌 누구니? 참 이쁘구나."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여우야."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쓸쓸하단다."

 

"난 너하구 놀 수가 없어. 길이 안 들었으니까."

 

"그래? 미안해."조금 생각하다가 어린 왕자가 덧붙였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니?"

 

"넌 여기 사는 아이가 아니구나. 무얼 찾고 있니?"

 

"사람들을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니?"

 

"사람들은 총으로 사냥을 해 대단히 귀찮은 노릇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닭을 기르기도 해. 사람이란 그저한 가지밖에 쓸모가 없다니까. 너두 닭이 필요하니?"

 

"아니. 난 친구를 찾고 있어. 도대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냐구."

 

"모두들 잊고 있는 건데,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란다."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맺는다구?"

 

". 지금 너는 다른 애들 수만 명과 조금도 다름없는 사내애에 지나지 않아. 그리구 나는 네가 필요없구, 너도 내가 아쉽지 않은 거야. 네가 보기엔 나도 다른 수만 마리의 여우와 똑같잖아?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아쉬워질 거야. 내게는 네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것이구, 네게도 내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될 거야."

 

"이제 좀 알아 듣겠어. 나에게 꽃이 하나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였나봐."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지구에는 없는 게 없으니까."

 

"아니, 지구에 있는 게 아니야."

 

"그럼, 다른 별에 있어?"

 

"."

 

"그 별에는 사냥꾼이 있니?"

 

"아니."

 

"그 별에는 사냥꾼이 있니?"

 

"아니."

 

", 거 괜찮은데! 그럼, 닭은?"

 

"없어."

 

"그래, 완전한 곳은 절대로 없다니까." 여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여우는 자기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렸다.

 

"내 생활은 늘 똑같애. 나는 닭을 잡구, 사람들은 나를 잡는데, 사실 닭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구, 사람들도 모두 비슷비슷해. 그래서 나는 좀 따분하단 말이야.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달라질 거야. 난 보통 발소리하고 다른 발소리를 알게 될 거야. 보통 발자국 소리가 나면 나는 굴 속으로 숨지만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안 먹으니까 밀은 나한테는 소용이 없구, 밀밭을 보아두 내 머리에는 떠오르는 게 없어. 그게 참 안타깝단 말이야. 그런데 너는 금발이잖니. 그러니까 네가 나를 길들여 놓으면 정말 기막힐 거란 말이야. 금빛깔이 도는 밀밭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리구 나는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도 좋아질 거야."

 

여우는 말을 그치고 어린 왕자를 한참 바라보더니, "제발, 나를 길들여 줘." 라고 말했다.

 

"그래. 그렇지만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친구들을 찾아야 하거든." 어린 왕자는 대답했다. 여우는 힘없이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사람들은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산단 말이야. 그렇지만 친구는 파는 데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게 되었단다. 친구가 필요하거든 나를 길들여."

 

"어떻게 해야 되는데?"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해. 처음에는 내게서 좀 떨어져서 그렇게 풀 위에 앉아 있어. 내가 곁눈으로 너를 볼 테니 너는 아무 말두 하지 마. 말이란 오해의 근원이니까. 그러다가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앉는 거야."

 

이튿날 어린 왕자가 다시 찾아오자 여우가 말했다.

 

"시간을 약속하고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네가 오후 네 시에 오기로 했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했을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졌을 거구, 네 시가 되면 안절부절 못하구 걱정했을 거야. 행복이 얼마나 값지다는 것 알게 되었을 거란 말이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나는 언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지 알 수 없잖아? 무언가 정해 놓을 필요가 있어."

 

"무얼 정해 놓는다구?"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것도 요즈음은 잊고 사는 거란다. 어떤 날은 다른 날들과, 어떤 시간은 그 외의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예를 들어 사냥꾼들은 목요일마다 동네 아가씨들 하구 춤을 춘단 말이야. 그래서 내게 목요일은 기막히게 좋은 날이지. 포도밭까지 소풍을 가기도 하구. 그런데 사냥꾼들이 아무 날이나 춤을 춘다고 생각해 봐. 그저 그날이 같을 게고, 나는 휴가라는 게 영 없을 거 아냐?"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어린 왕자가 떠날 시간이 가까워지자 여우가 말했다.

 

"난 아무래도 눈물이 날 것 같애."

 

"그건 너 때문이야. 나는 너를 괴롭힐 생각이 조금도 없었는데, 네가 길들여 달라구 그랬잖아."

 

"그래."

 

"그런데 눈물이 날 것 같다면서?"

 

"그래."

 

"그러면 손해만 본 셈이구나."

 

"아니, 이득이 있어. 저기 밀밭 빛깔 말이야." 여우가 말했다.

 

"장미꽃 밭에 다시 가 봐. 네 장미꽃이 딴 꽃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구 나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오면 선물로 비밀 하나를 가르쳐 줄게."

 

어린 왕자는 장미꽃들을 다시 만나러 갔다.

 

"너희들은 내 장미꽃하구 전혀 달라. 너희들은 아직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잖아. 내 여우도 전에는 너희나 마찬가지였어. 다른 여우들하고 똑같은 여우였어. 그렇지만 그 여우를 내 친구로 삼으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었어."

 

그러니까 장미꽃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어린 왕자는 또 이런 말도 했다.

 

"너희들은 곱긴 하지만 속이 비었어. 누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는 없단 말이야. 물론 보통 사람들은 내 장미도 너희들과 비슷하다구 생각할거야. 그렇지만 그 꽃 하나만 있으면 너희들을 모두 당하구두 남아. 그건 내가 물을 주고 고깔도 씌워 주고 병풍으로 바람도 막아 주었으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것도 그 장미꽃이었어. 나비를 보여 주려구 두세 마리는 남겨 두었지만……. 그리고 원망이나 자랑이나 모두 들어 준 것도 그 꽃이었으니까. 그건 내 장미꽃이니까."

 

어린 왕자는 여우한테 다시 와서 작별 인사를 했다.

 

"잘 있어."

 

"잘 가, 이제 내 비밀을 가르쳐 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세상을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거지. 제일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

 

"제일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그 말을 되뇌었다.

 

"네가 그 장미꽃에 바친 시간 때문에 그 장미꽃이 그렇게 중요하게 된 거야."

 

"내 장미꽃에 바친 시간 때문에……."

 

어린 왕자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어버리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네

 

가 책임을 지게 되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어린 왕자는 머리에 새겨 두기라도 하듯 다시 한번 말했다.

 

 

유의 사항

 

1.제목을 쓰지 말것.

2.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는 표현을 쓰지 말 것.

3.한 편의 완결된 글로 쓸 것.

4.어문 규정과 원고지 작성법에 따를 것.

5.1,600자 안팎(띄어쓰기 포함.±200)으로 쓸것.


 

모범예문, 논점 파악, 관련지식

 

[모범예문]

 

대량 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는 수많은 개인들로 하여금 익명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하였다.'어린 왕자'에서는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를 통하여, 이러한 현대 사회의 역기능적 측면을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상을 초래한 원인과 그것의 치유 방안까지도 나타나 있다. 이제 이 작품에 나타난 이러한 함축적 의미를 살펴보면서, 조직화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노력이 어떤 의의와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현대 대중 사회에서 개인의 익명성을 생겨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은, 여우의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사람들은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산단 말이야. 그렇지만 친구는 파는 데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게 되었단다."라는 말에서 대중 사회의 상품화 현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중 사회는 대량 생산을 특징으로 하는데, 상품을 대량 생산하면 상품은 획일화될 수밖에 없으며, 획일화된 대랴의 상품이 나도는 세상에서는 인간도 획일화되고 만다. 따라서, 개성을 상실한 인간이 익명성을 지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획일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정서적 유대 관계 형성을 위한 노력은 비록 미약하나마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여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설혹 개인 간의 이러한 노력이 현대 사회라는 거대 구조 앞에서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밖에 안된다고 할지라도 현대 사회가 나아가야 할 이념적 지표 역할을 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정서적 유대 관계 형성을 위한 개인의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는 거대한 사회 조직 내에서 표준적으로 획일적인 통제가 이루어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몇몇 개인이 열성적으로 정서적 유대 관계의 형성을 주장하고 또 그것을 실천해 나간다 해도 그것은 소집단 내부의 관계에 국한되기 십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거대 사회의 대중들로부터 오히려 소외당하게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노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우선 개인적 노력을 동아리 활동이나 사회적 캠페인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인간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환경 보전 캠페인이 사회적인 공감대 속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듯이, 인간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적 캠페인도 산업 사회의 인간 소외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정신 문화를 현대 사회에 적합성을 유지하도록 계승, 발전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의 전통 문화는 '()'의 문화라 할 수 있을 만큼 조상들은 인정의 교류를 중시해 왔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의 모래알과 같이 개성을 잃고 기계의 부품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는데 이러한 현상이 사회의 발달 단계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전통적인 정의 문화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지 못한 탓도 있다고 본다. 전통적인 정의 문화를 현대 사회에 적합성을 지닐수 있도록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간다면 개인 간의 인간적 유대 관계의 형성은 사회적 차원의 것으로 승화될 것이다.

 

사회는 개인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비록 그 한계가 있다고는 하나,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인적 자각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러한 개인적 자각, 노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병행, 실시해 나간다면 현대인의 익명성을 극복하는 데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논점 파악]

 

97년도 서울대 논술 문제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을 묻고 있다. 논제는 현대 사회가 "개인이 거대한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 대부분이 익명의 존재로 방치되어 있는 사회"라는 것을 전제로 출발한다. 아울러 이러한 현대 사회의 특징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참다운 정서적 유대 관계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어린 왕자]의 일부 내용을 예시문으로 제시하고 있다.

 

논제는 전제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현대 사회는 "개인이 거대한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 대부분이 익명의 존재로 방치되어 있는 사회"이다. 둘째,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참다운 정서적 유대 관계의 형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논제가 요구하는 있는 논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는 어떠한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인가. 둘째, 그러한 사회적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참다운 인간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예시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갖는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가. 셋째, 그 개인적 노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논점1 :개인을 익명의 존재로 만든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가?

 

논점2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예시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갖 는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가?

 

논점3 :그 같은 개인적 노력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논점에 따른 예시문 분석과 배경 지식 살펴보기.

 

논점을 이렇게 파악했다면 논술의 반 이상은 완성한 셈이다. 이제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논점과 관련된 기본적 내용을 예시문에서 파악하는 일이다. 이에 앞서 논술에서 예시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논제에 예시문에 있다면 출제 위원이 왜 굳이 지문을 제시하였을까?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시문이 제시되었다는 것은 그 예시문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이기 때문에 수험생은 그 의미를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앞서 파악한 논점이 예시문에서는 어떻게 드러나 있는지를 찾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예시문에 드러나 있는 논점을 논의 전개의 중심 축으로 해서 그것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서술한다면 예시문을 제대로 활용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논제가 요구하고 있는 논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예시문의 내용을 활용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예시문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내용을 논의 전개의 중심 축으로 활용한다면, 첫째, 지문에 근거하여 출제 위원들이 요구하는 답안을 작성하려는 충실성을 보여 주게 되고, 둘째, 자신의 말투로 요약함으로써 그 지문을 완전히 파악했음을 보여 줄 수 있으며, 셋째, 지문에 근거를 두고 논의를 이끌어 가고 있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 이것은 답안 평가에 많은 영향을 준다.

 

먼저 예시문의 내용을 철저히 분석하여 논제가 요구하는 논점이 예시문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논점 별로 파악하고 논점을 이해하기 위한 관련 지식을 알아 보자.

 

논점1 :개인의 익명의 존재로 만든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가?

 

예시문 분석

 

 

".지금 너는 다른 애들 수만 명과 조금도 다름없는 사내애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구 나는 네가 필요 없구, 너는 내가 아쉽지도 않은 거야. 네가 보기엔 나도 다른 수만 마리의 여우와 똑같잖아?"

 

 

현대 사회는 개인을 익명의 존재로 만든다. '관계를 맺지 않은'여우와 어린 왕자의 사이에서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수만 명과 조금도 다름없는 사내애에 지나지 않고', 여우 또 한 어린 왕자에게는 '수만 마리의 여우와 똑같다.' 그렇기 때문에 여우에게는 어린 왕자가 필요 없고, 어린 왕자에게는 여우가 필요 없는 것이다. 왜 이런 일(사회적 문제)이 생겼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친구가 필요하다는 어린 왕자의 말에 대한 다음과 같은 여우의 대답에서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사람들은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산단 말이

 

. 그렇지만 친구는 파는 데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게 되었단다. 친구가 필요하거든 나를

 

길들여."

 

 

모든 것을 다 가게에서 사는 사회,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렇게 모든 것이 다 상품화되어 있는 사회다. 모든 것이 상품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 해도 상품이 아니면 구할 수 없다. 따라서 친구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구할 수 없는 존재다. 결국 예시문은 개인을 익명의 존재로 만든 사회적 조건으로, 모든 것이 상품화된 상황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익명의 존재로 전락한 개인은 왜 나쁜 것일까? 왜 우리는 익명의 존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일까? 익명의 존재로 전락한 개인의 삶은 똑같다. 똑같은 삶은 권태롭기까지 하다. 여우는 이 같은 권태로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길들임'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길들인 결과가 어떤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내 생활은 늘 똑같애. 나는 닭을 잡구, 사람들은 나를 잡는데, 사실 닭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구, 사람들도

 

모두 비슷비슷해 그래서 나는 좀 따분하단 말이야.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달라질 거야.

 

난 보통 발소리하고 다른 발소리를 알게 될 거야. 보통 발자국 소리가 나면 나는 굴 속으로 숨지만, 네 발

 

자국 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구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안 먹으니

 

까 밀은 나한테는 소용이 없구, 밀밭을 보아두 내 머리에는 떠오르는 게 없어. 그게 참 안타깝단 말이야.

 

그런데 너는 금발이잖니. 그러니까 네가 나를 길들여 놓으면 정말 기막힐 거란 말이야. 금빛깔이 도는 밀

 

밭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리구 나는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도 좋아질 거야."

 

반복적인 일상에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황, 이것은 익명의 존재가 겪은 고통이다. 그리고 익명의 존재에서 벗어난 삶은, 과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던 것조차 새로운 의미로 다가와 삶에 기쁨을 얻게 되는 삶이다. 결국 익명의 존재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아쉬워질 거야. 내게는 네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것이

 

, 네게도 내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될 거야."

 

 

이제 수만 명의 사내 가운데 한 명에 불과했던 어린 왕자는, 또 수만 마리의 여우 가운데 한 마리에 불과했던 여우 한 마리는, 서로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이렇듯 '길들임'이라는 '관계를 맺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의의를 잃고 있는 현대인을 익명의 존재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안이다.

 

 

[관련지식]

 

현대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국민 윤리 교과서 '현대 사회의 윤리적 상황'(99~110)은 이번 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이다.

 

 

"대중화는 인간을 개인의 창의성이나 개성을 살려서 살게 만들기보다는 의존적이고 무비판적으로 살게 만

 

든다. 대중화 현상 속의 인간은 유행에 민감하고, 될 수 있는 한 남들처럼 살려고 한다. 그 결과, 인간은

 

타인 지향형이 되고, 익명성(匿名性) 속에 자기를 숨긴 채 무책임하게 행동하기 쉽다."(국민 윤리 108)

 

 

이 내용만 보더라도 이번 논제의 기본적인 방향을 생각해 낼 수 있다. , 윤리 교과서 내용을 근거로 논술한다면, 익명성에 자기를 숨기게 되면서 친구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한 사회적 조건을 '대중화'라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국민 윤리 교과서에서는 대중화 사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대중화된 사회이다. 현대 사회의 대중은 과거의 일방적인 지위에서 벗어나, 생산의 주체로서, 또 소비의 주인공으로서 등장하였다. 그리고 경제적 지위의 향상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보통 선거의 실시와 같은 정치 제도의 개혁을 통해서 주권자로서 국가 사회의 중심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 근로, 교육, 후생 등 생활권을 보장받음으로써 사회적 지위도 크게 향상되었다. 동시에, 생산과 소비를 연결해 주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함에 따라 대중의 문화적 생활이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량 생산, 도시화, 획일화, 규격화 등으로 말미암아 지역의 특수성이 사라져 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개성을 잃고 획일적인 것에 익숙해지는 경향이 생겼다. 그래서 의식주가 평준화되고 사람들은 비슷한 사고 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을 대중화 현상이라 부른다.([국민 윤리],102~103)

 

그 결과 "그들은 대체로 풍요한 물질 생활에 젖어 있으며, 유행에 민감하고 무절제한 소비 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다.(국민윤리, 104)

 

 

이제 현대 사회의 특징에서 논제가 제시하고 있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논점2.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예시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개인적 차원 의 노력의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가?

 

예시문 분석

 

 

모든 것이 상품화된 사회에서, 그렇지만 친구를 파는 데가 없는 사회에서 익명의 존재로 전락하여 똑같은 생활에 권태를 느끼는 개인은 '길들여지기'를 바라고 있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두들 잊고 있는 건데,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가? 우선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 정해 놓을 필요가 있어."

 

"어떤 날을 다른 날들과, 어떤 시간을 그 외의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그렇다. 무언가 정해 놓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해 놓는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두 당사자에게 어떤 '약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냥꾼들이 아무 날이나 춤을 추는 것'과 같고, 또 그렇게 되면 '휴가라는 게 영 없어진다.' 그런데 정해 놓은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린 왕자에게 장미꽃이 중요한 것은 그 장미꽃에 바친 시간 때문이다.

 

 

"네가 그 장미꽃에 바친 시간 때문에 그 장미꽃이 그렇게 중요하게 된 거야."

 

"내가 장미꽃에 바친 시간 때문에……."

 

 

이렇게 정해 무언가를 지키는 시간이 흐른 뒤 맺어진 관계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어버리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네가 책임을 지게 되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어린 왕자는 머리에 새겨 두기라도 하듯이 다시 한 번 말했다.

 

 

개인은 익명의 존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떤 정해 놓은 것을 지킬 수 있는 참을성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며, 또 그렇게 맺은 관계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의 노력이 한계는 무엇인가? 그 한계를 예시문에서 찾을 수 있을까?

 

 

"너희들은 내 장미꽃하구 전혀 달라.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잖아.

 

내 여우도 전에는 너희들과 마찬가지였어. 다른 여우들하고 똑같은 여우였어. 그렇지만 그 여우를 내 친구로 삼으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었어."

 

그러니까 장미꽃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미꽃들은 여전히 익며의 존재로 남아 있다.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장미꽃들은 어린 왕자가 길들인 한 송이의 장미를 보면서, 즉 어린 왕자와 관계를 맺은 장미꽃을 보면서 오히려 존재 의미를 상실한 자기 자신을 더욱 느끼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 왕자가 모든 장미꽃을 '길들일 수 없고' 모든 꽃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개인적인 노력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을 익명의 존재로 만든, 상품화된 현대 사회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구조적 조건에서 형성된 문제는 개인적 노력이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관련 지식

 

익명의 존재를 극복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이 갖는 의의와 한계는 무엇인가?

 

"현대 사회의 고도 성장은 고도 공업화를 통한 대량 생산 체제에 힘입은 바 크다. 고도 공업화는 신속화, 기계화, 자동화, 물량화, 규격화, 대중화 등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공업화 과정의 부작용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중략)규격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원료를 어떤 특정한 모형에 집어 넣고 찍어 내거나 만들어 내듯이, 인간도 필요에 따라 어떤 틀 속에 집어 넣거나 주조(鑄造)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국민 윤리, 106~108)

 

이러한 사회적 조건에서 발생한 익명성의 사회에도 불구하구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거나, 또는 이 사회 현실로부터 단순히 도피하려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기존 사회 체제에 대하여 반항할 뿐이다."(국민 윤리,108)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할 때, 사람들을 익명의 존재로 만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이 상황을 초래한 원인은 무엇이며, 그리고 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등이 대중화 사회에서 개인이 가져야 할 자세이다. 여기에다 개인간의 정서적 유대를 강조하고 있는 논제의 내용을 연결시키면 개인적 노력이 갖는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동시에 개인적 노력이 갖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왜냐하면 익명의 존재로 만든 원인은 사회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갖는 한계만을 지적하다가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갖는 의의까지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논점3:그 같은 개인적 노력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예시문 분석

 

이것과 관련된 내용은 예시문에 나와 있지 않다. 학생 스스로 이에 맞는 자신의 견해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개인적 노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과 같은 논점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내용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모두들 열심히 노력하자'는 따위의 '공자님 말씀'같은 주장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방향으로 하자는 막연하고 빈약한 내용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주장의 구체성과 함께 내용의 풍부함은 논술 시험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그렇다고 주장의 구체성이나 내용의 풍부함을 요구한다는 것이 어떤 심오한 정책이나 근거 없는 기발한 착상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주장의 구체성이나 내용의 풍부함은 이미 우리 수험생들이 충분히 알고 있는 내용에서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논제가 제시하고 있는, 개인의 익명의 존재로 전락한 상황은 '시대적 상황'이다. , 특정 시기에 발생한 문제이지, 시대를 초월하여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방안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찾는다면 더욱 풍부한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이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앞에서 보았듯이 개인이 익명의 존재로 된 것은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산업 사회의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산업 사회를 벗어나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다. 정보화 사회는 산업 사회와 다른 사회다. 산업 사회에서 나타난 문제를 극복할 수도 있지만, 산업 사회의 문제점을 더욱 확대시킬 수도 있다. 익명의 존재와 관련하여 미래 학자들은 정보화 시대가 '여럿이 함께 있는 것 같으나 외로운 존재의 시대(alone together)'가 될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 또는 '개인이 혼자 있어도 함께 있는 것 같은 시대(together alone)'가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사회적 조건을 묻는 논점을 생각할 때, 개인적 차원을 넘는 방안 역시 사회적 상황에서 찾는 것이 무난하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 노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정보화 시대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내용에서 찾아 결론으로 삼는다면, 주장의 구체성과 내용의 풍부함을 갖춘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관련 지식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현대 사회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으로 전통과의 단절 현상을 빼놓을 수 없다. 현대 사회는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인구의 이동도 매우 활발하다. 이러한 사회의 유동화(流動化)현상은 한편으로 사회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성 사회에서 존중되어 온 전통과의 단절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까지 사회 공동 생활의 근간이었던 전통은 무너지게 되고, 삶의 방식은 안정을 잃기 쉽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과의 단절은 사회 생활의 지침이 되는 윤리 의식에 큰 혼란을 가져온다."(국민 윤리,104)

 

"우리는, 인간과 환경과의 균형을 유지하고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인류가 살아 남고 번영하기 위해서 는, ()산업 사회의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함과 아울러 과학 기술을 어떻게 이용하는냐 하는 새로운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국민 윤리 109)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관 확립을 위해 전통 교육이나 새로운 가치관 교육의 강조, 개별화되는 사회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문화 공간 확대 등을 제시할 수 있다. 아울러 윤리 교과서에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논술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현대 사회의 윤리성 회복을 염원하는 이들에게 예술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하겠다. 현대 사회의 복잡한 삶 속에 매몰된 우리의 경직된 마음은 일종의 도덕적 마비 상태와 같아서,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 속에 갇혀 정서적으로 고립되고 무감각해지기 쉽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기쁨이나 고통에 직접 동참하기 어렵다.(중략)예술은 무디어진 우리의 감수성을 예민하게 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다른 사람의 삶에 참여하는 공감적 일치를 가능하게 하여 준다. 예술적 체험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연과 이웃을 만나게 되고, 생명 없는 추상(抽象)보다는 살아 있는 존재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상상과 감정의 도움 없이는 차가운 이성이 우리의 양심을 자극하기에 무력하다. "(국민 윤리 132)


제 3 교시

 

아래의 제시문을 읽고 지시 사항에 따라 논술하라.

 

<제시문>

 

'코리안 특급 박찬호!' '나고야의 태양 선동렬!'

 

'우리 나라에는 지금 두 명의 애국자가 있는데, 한 명은 박찬호고 다른 한 명은 선동렬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박찬호 선수와 선동렬 선수의 열풍이 불고 있다. 그들에 관련된 기사가 매일 언론에 보도되고, 많은 국민이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단순히 국민뿐만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도 그들의 활약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박찬호 선수가 10승을 올렸을 때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박 선수에게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박찬호 선수가 선발 등판하는 대부분의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하면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박찬호 선수를 모델로 한 상품이나 기념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또 그가 선발 등판하는 경기를 미국에서 보기 위해 한국에서는 관광단이 구성될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이들의 열풍이 부는 것은 우리 나라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매우 어수선하다. 정치적으로는 금년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고 이 때문에 중요한 정치가들은 대권을 향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국민은 이런 대선 경쟁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국민은 기성 정치판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 경제적으로도 우리는 지금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대기업의 부도가 잇따르고, 무역 수지의 적자는 계속 쌓여 가고 있다. 또 사회에는 '명태'( 명예 퇴직자를 일컫는 말)들이 많다. 이에 대하여 안전 시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극에 이르고 있다. 연이은 가스 사고, 지하철 사고, 고가도로 균열, 비행기 사고 등은 국민의 불안 심리를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찬호 선수와 선동렬 선수의 활약은 무더운 여름날의 시원한 소나기처럼, 일종의 청량제 구실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멋진 모습을 보면 답답한 속이 다 풀린다고 말한다. 또 이들의 경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이들은 우리 국민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문제>

 

제시문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박찬호․선동렬 열풍'에 대한 하나의 견해를 보여 준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현상을 대중 문화와 관련시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 문화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하여 첫째,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분석하고 둘째, 이런 현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

 

 

유의 사항

 

1.분량은 원고지 1,600자 안팎(띄어쓰기 포함)으로 할 것.

2.원고지 사용법과 어문 규정을 준수할 것.


문제해설 및 모범예문

 

[문제 해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박찬호선동렬 열풍' 이 불고 있다. 이 논술 문제는 이에 대한 학생들의 견해를 묻는 것이다. 박찬호선동렬 열풍은 어떻게 보면 한국의 두 젊은이의 활약에 대한 국민들의 성원으로 단순하게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선수에 대한 성원도 현대의 대중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문제는 바로 이런 측면에서 논술할 것을 요구한다.

 

먼저 이 문제에서 요구하는 사항에 부응하기 위해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된 사회적 배경을 검토해야 한다. 이 내용은 제시문에 나와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 처리하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것을 대중 문화 차원에서 분석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스타 열풍' 을 생각하면 이것도 비교적 쉽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에게 긍정적인 역할--활력과 자신감 부여--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세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유의점 1.

 

'박찬호선동렬 열풍' 의 사회적 배경을 검토하자.

 

대중 스포츠 스타가 우리 국민에게 자신감과 활력을 부여한 경우는 많다. 일제 식민지 시기의 손기정 선수와 1970년대 홍수환 선수가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이들이 국민의 성원을 받은 데에는 특수한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예를 들어 손기정 선수가 성원을 받았던 데에는 일제 식민지 지배라는 상황이 있었다. 즉 그 때 우리 민족은 식민지 지배로 인해 민족적 굴욕감과 패배 의식에 싸여 있었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은 우리 민족에게 활력과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홍수환 선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박찬호선동렬 열풍'도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제시문에 나와 있는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으로 인해 이들에 대한 성원이 커졌다는 것이다.

 

유의점 2.

 

'박찬호선동렬 열풍'을 대중 문화론의 관점에서 분석하자.

 

현대는 대중 문화의 시대다. 또 현대 스포츠는 관람 스포츠, 텔레비전, 스포츠다. 이 때문에 현대 스포츠에서는 '스타 만들기'에 열중한다. 스포츠 스타가 있어야 텔레비전에서 경기를 중계할 때 시청률이 높아지고, 이로써 방송국은 돈을 벌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구단 쪽에서 볼 때도 스타가 있어야 관중의 수가 증가하고 수입을 더 많이 올릴 수 있다. 또 스포츠 스타를 이용하여 자사의 상품을 많이 팔려는 광고주도 역시 스타를 원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박찬호선동렬 열풍도 이처럼 여러 집단의 스타 만들기에 따라 이루어진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유의점 3.

 

박찬호선동렬 열풍은 분명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국민, 특히 청소년들에게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대중 문화 현상이 그렇듯이, 이같은 열풍에도 문제는 있다. 예를 들면 우리 국민이 현실을 외면하도록 부추길 수도 있다. 미국 경기장에 가끔 등장하는 '박찬호를 대통령으로!'라는 푯말은 이런 가능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또 다른 '예외주의' ,'특권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어 있는 박찬호 선수의 군 입대 면제 주장은 이러한 측면을 잘 드러낸다.

 

[모범예문]

 

일제시기에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손기정 선수는 우리 민족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 70년대에 '칠전팔기'(칠전팔기)의 신화를 창조한 홍수환 선수 또한 우리 국민에게 불굴의 의지와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비록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손기정 선수나 홍수환 선수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선수들이 국민에게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었던 데에는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예를 들어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할 때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고 있었고, 이 때문에 우리 민족은 민족적 굴욕감과 패배 의식에 젖어 있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손기정 선수의 쾌거는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홍수환 선수의 경우도 비슷하다. 1970년대 군사 독재 정권의 통치와 산업 발전 과정에서 우리 국민은 매우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홍수환 선수의 세계챔피언 획득은 우리 국민에게 활력과 의지를 불러넣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박찬호선동렬 열풍'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즉 박찬호선동렬 열풍이 불게 된 데에는 대중 매체의 스타 만들기와 관련 집단의 상업적 이해 관계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현대 스포츠는 관람 스포츠인 동시에 텔레비전 스포츠다. 관람 스포츠가 성공하려면 반드시 스타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구단이나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타가 있어야 시청률이 높아지고, 또 스타가 있어야만 그 구단의 경기를 관전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래서 구단과 텔레비전은 스타 만들기에 열심이다. 박찬호 열풍도 어떻게 보면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상품'이다. 시청률 경쟁에 나선 어느 방송국의 생중계와 다저스 구단의 노력, 그리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광고주들의 합작품이 바로 현재의 박찬호 열풍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현상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이것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중 문화의 시대에 스타는 늘 있게 마련이고, 이제 우리도 세계적인 '우리의' 스타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의 활약이 우리 국민에게 활력과 자신감을 준다는 점에서 그들은 격려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모든 대중 문화가 그렇듯이, 이러한 현상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부작용을 조심해야 한다. 먼저, 이것이 국민들의 현실 도피를 부추기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박찬호 선수가 선발 등판하는 경기장에서는 가끔 '박찬호를 대통령으로!'라는 푯말이 눈에 뛴다. 아마 한국에서 간 관광객들이 만든 것일 게다. 그런데 아무리 우리 나라의 정치 상황이 엉망이라도, 또 장난 삼아 했다. 해도 어떻게 이런 구호가 등장할 수 있는가? 우리의 현실을 조롱하거나 외면하게 만드는 작용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것이 또 다른 '특권주의' , '예외주의'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박찬호 선수의 군 입대 면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은 모두 소중한 존재이고, 병역의 의무에서 예외는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박찬호 열풍에 편승해 예외를 인정하고자 하는 것은 또 다른 '예외주의'를 조장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제 4 교시

 

아래의 제시문을 읽고 지시 사항에 따라 논술하라.

 

<제시문>

 

우리 사회가 만성적인 부패와 불신의 구조를 껴안고 신음하는 사회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누구도 자기 자신이 그 부패와 불신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카톨릭 교회에서 '내 탓이오' 운동을 전개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병리 구조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제는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라는 식의 도덕적 자포자기의 상황에까지 다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도덕적으로나 개인 윤리적으로 아직 덜 성숙해서 그렇다고 볼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는 그나마 개인적공동체적 도덕과 윤리에 의해 이 정도라도 지탱되는 사회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는 개인적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로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집단적사회적 도덕과 윤리의 파괴에서 기인한다. 일찍이 라인홀트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역리를 지적한 바 있지만, 이 역리를 교정하는 데에 별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철저하게 '불신에 기초한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최고 권력자의 선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통제할 여러 장치를 제도화하는 것, 정치인들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단 한푼의 검은 돈으로도 감옥에 갈 수 있음을 경고하는 정치 자금 규제법을 만드는 것, 정부와 공직자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위임된 권한에 상응하는 감독과 책임 규명, 처벌의 장치를 만들어 나가는 것, 기업의 도덕성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거두어 가는 이윤에 상응하는 규제와 감시의 틀을 강화하는 것, 군대와 경찰, 정보 기구의 공복 의식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장악하는 '폭력'의 행사 범위와 한계를 철저하게 규율하는 것, 학교와 교사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스승의 권위'의 이면에서 벌일 수 있는 비리를 봉쇄할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 이런 것들이 곧 불신의 제도화의 내용이 될 것이다.

 

<문제>

 

이 글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 부패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불신에 기초한 제도'를 만들 것을 주장하고 있다.

 

첫째, 이 글에 나타난 주장이 기초하고 있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둘째, 이 주장의 타당성과 문제점을 논술하라.

 

 

<유의 사항 >

 

1. 분량은 원고지 1,600자 안팎(띄어쓰기 포함)으로 할 것.

2. 원고지 사용법과 어문 규정을 준수할 것.

3. 한 편의 자기 완결적인 글이 되게 할 것.


문제 해설 및 모범예문

 

문제 해설

 

이 문제에 알맞은 논술문을 쓰려면 제시문의 내용을 분석하여 논제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추론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먼저 제시문의 주장을 정리해야 한다. 다음으로 이 주장이 기초하고 있는 논리적 근거를 분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주장의 현실적 타당성을 평가해야 한다.

 

이 때 우리의 입장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즉 제시문의 견해에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입장을 선택하든 논술문 평가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한편 이 같은 유형의 문제로 논술문을 쓸 때에는 찬성이든 반대든 시종일관 같은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중간에 자신의 입장을 바꾼다든지 논리적 일관성을 잃어버리게 되면, 주장도 없고 논리적 전개도 엉망인 논술문이 나오게 된다.

 

 

유의점 1.

 

제시문의 주장과 논리적 근거를 분석하자.

 

제시문의 주장은 '우리 사회의 불신과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 불신에 기초한 제도를 만들자'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의 논리적 근거는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이 주장은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인간 본성론에 근거하고 있다. 제시문에서는 이것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불신에 기초한 제도'라는 주장에는 이미 이같은 전제가 깔려 있음을 우리는 논리적으로 유추해 낼 수 있다.

 

둘째, 이 주장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이는 첫째 근거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과이다. 인간이 이기적이라면 우리는 그런 인간을 믿을 수 없고, 따라서 사회적 차원의 조치--불신에 기초한 제도--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유의점 2.

 

이 주장의 현실적 타당성을 평가하자.

 

우리는 이것을 두 가지 면에서 검토할 수 있다. 먼저 이 주장의 논리적 근거를 검토함으로써 이 주자의 현실적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다. 잘못된 논리적 근거에서는 잘못된 주장이 나올 수 있고, 잘못된 주장이 현실에 적용될 때에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주장이 현실화할 때 기대되는 결과를 검토함으로써 이 주장의 현실적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다.

 

먼저 이 주장의 논리적 근거를 검토해 보자.

 

첫째,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다'라는 근거는 타당한가? 여기에는 타당하다고 보는 견해와 그렇지 않다는 견해가 있을 것이다. 홉스나 순자 같은 사람은 타당하다고 볼 것이고, 맹자는 아니라고 볼 것이다. 또 학생들이 어떤 입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최종 평가가 달라진다. 즉 전자는 입장을 취하면 이 주장이 현실적 타당성을 갖는다고 볼 것이고, 후자의 입장을 취하면 반대로 평가할 것이다. 어떤 입장을 선택해도 좋다.

 

둘째, '사회적 차원의 접근'은 타당한가? 이에 대해서도 역시 견해가 달라질 것이다. 타당하다고 보는 견해와 아니라는 견해가 가능하다. 아니라고 하는 견해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첫째 근거와 논리적으로 연결된다.

 

다음으로 기대되는 결과를 검토해 보자. 이것은 장점과 문제점으로 나눌 수 있다. '불신에 기초한 제도'는 불신과 부정 부패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분명히 효과가 있다. 예를 들면 싱가포르의 경우 공직자의 부정 부패 문제를 이같은 방식으로 해결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법치(法治)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즉 인간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법에 근거한 통치를 주장하게 되었고,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그것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 권력을 분산시키려고 했다. 삼권 분립론과 지방 자치론이 바로 이런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또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부정 부패 문제가 우리보다 심하지 않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주장은 현실적인 타당성을 갖는다.

 

문제점은 무엇일까? 가장 큰 문제점은 사회에 긴장과 불신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불신에 기초한 제도'에 기초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사회는 늘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게다가 이 방법으로는 사회에 신뢰와 협동정신을 함양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불신을 구조화할 수 있다.

 

 

[모범예문A]

 

제시문의 견해에 찬성하는 입장

 

우리 사회 곳곳에 부정 부패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 전직 대통령의 뇌물 수수와 구속, 국회의원 및 공직자의 뇌물 수수와 구속('한보 사건'),대통령 아들의 이권 개입 등 최근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굵직굵직한 사건만 해도 서너 가지가 넘는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부정 부패를 없애기 위해 '불신에 기초한 제도'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논리적 근거는 간단하다.

 

첫째, 이 주장은 인간은 믿을 수 없다는 전제에 입각하고 있다. 물론 이 주장을 보여 주는 제시문에서는 개인적공동체적 도덕에 대한 믿음이 엿보인다. 그러나 '불신에 기초한 제도'를 주장하는 제시문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한다. 이 전제의 근원을 파고들면 이 주장에는 인간을 기본적으로 '이기적 존재'로 보는 관점이 깔려 있다. 즉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이익을 위해 사회적 이익을 희생시키며, 그 결과 사회적 불신과 부정 부패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적 근거에 입각하여 이 주장은 인간이 아닌 다른 것, '''제도'에 입각하여 부정 부패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한다.

 

둘째, 이 주장은 우리 사회의 부정 부패 문제를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런 관점은 첫째의 논리적 전체와 연결된다. 즉 인간은 궁극적으로 개인적 존재이고 또 그런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면 개인적 차원에서는 부정 부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주장에 근거하여 부정 부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다'이다. 왜 그런가? 홉스나 순자의 논리를 빌릴 것도 없이,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자기 그리고 자기 가족의 이익을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우리 사회의 부정 부패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부정 부패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이익적 본성이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제도'를 통해 막는 것이다. 또 이 때문에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방법의 정당성은 다른 나라의 사례가 입증한다. 서구 민주주의는 일찍부터 홉스의 이론에 입각하여 법과 제도를 통한 해결, 즉 법치(法治)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면 입헌주의, 권력 분립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서구 사회에서는 부정 부패 문제가 우리보다 심각하지 않게 되었다. 또 우리보다 부정 부패 문제가 훨씬 심각했던 싱가포르도 강력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여 집행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했다. 이에 반해 법치 대신 인치(人治)의 전통이 강했던 한국중국일본 등의 아시아 국가는 공통적으로 부정 부패 문제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의 부정 부패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불신에 기초한 제도'를 만드는 것뿐이다.

 

물론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이 주장의 최대 한계는, 이 주장을 따랐을 때 우리 사회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개인주의,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부정 부패 해결에 법과 제도가 효과적이어도 그것이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킬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공권력을 통해 계속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해야 하며, 따라서 사회적 긴장은 해소될 수 없다. 또 이 결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한 '공동체 정신'은 사라지고 대신 개인주의만이 더욱 심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 사회에서 부정 부패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법과 제도를 통해 해결하는 것, '불신에 기초한 제도'밖에는 없다.

 

 

[모범예문B]

 

제시문의 견해에 반대하는 입장

 

우리 사회의 부정 부패와 불신 문제는 이제 도를 넘어섰다고 생각된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의 구속과 현직 대통령 아들의 구속부터 일선 학교 교사의 촌지 수수 행위까지,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부정 부패가 만연해 있고, 이 때문에 국민 사이에서는 불신의 벽이 높아 가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이 문제의 해결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일부 사람들은 제시문의 견해처럼 '불신에 기초한 제도'를 만들어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불신하는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제시문에서는 최고 권력자도, 정치인도, 경찰과 군인도, 사장도, 교사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의 근저에는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또는 최소한 인간은 '이타적인 존재는 아니다'라는 논리적 근거가 깔려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이타적이고, 그래서 인간이 사익보다는 공익을 더 추구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인간을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은 이런 관점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준다. 또 이 주장은 이런 관점에 입각하여 사회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한다. '불신에 기초한 제도'를 만들어 인간의 이기성과 그에 따르는 부정 부패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먼저 이 주장은 인간을 일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간은 분명 이기적인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인 것만은 아니다. 즉 사람들은 때때로 자기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사회와 국가, 민족의 이익을 도모한다. 우리는 이런 예를 역사를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기적인 인간을 불신하는 동시에 이타적인 인간을 신임할 수 있다. 이 관점에 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인간의 이기적 측면에 근거하여 '불신에 기초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인간의 이타심을 함양시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육과 선도, 계몽 등의 다른 방법을 써서 인간의 이타심을 함양시켜야 한다. '불신에 기초한 제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 주장은 설사 실현된다 하더라도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철저하게 인간에 대한 불신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제도가 집행되면 사람들 사이에 더욱 커다란 불신, 인간을 정말로 믿을 수 없다는 확신을 조장할 수 있다. 또 이런 제도를 실행하다 보면 사회적 긴장감--이기적 행위의 단속을 위한 감시와 처벌 등--은 증폭된다. 결국 우리가 실현해야 할 공동체 정신과 공익 정신은 함양할 수 없고,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또 다른 불신만을 '제도화'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불신에 기초한 제도'가 전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이 방법은 우리 사회처럼 총체적인 불신과 부정 부패가 만연하여 인간의 이타심과 공익 정신이 사라진 곳에서는 단기적인 처방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인간의 이타심이라는 것이 일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것만으로써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면에서 불신에 기초한 제도는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는다.

 

우리 사회의 불신과 부정 부패는 하루 아침에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일면만을 강조하여 불신에 기초한 제도를 만드는 것으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불신에 기초한 제도와 함께 인간의 이타심을 함양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동체 정신과 공익 정신을 전 사회에 가득 차게 할 수 있다.


제 5 교시

 

아래의 제시문을 참고로 하여 지시 사항에 따라 논술하라.

 

<제시문>

 

뉴턴은 고전 물리학을 확립시킨 과학자로서, 그리하여 서양 근대 지성사의 대전환을 이루어 낸 과학자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시하여, 물질의 모든 입자는 다른 입자를 끌어당긴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그는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그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에 반비례함을 수학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는 지구 물체의 운동에서 연역한 운동과 중력의 원리를 전 우주에 확대 적용하여 모든 물체의 운동은 이 법칙에서 한치도 어긋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런 뉴턴의 견해는 흔들릴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18세기 수학의 선구자인 라플라스는 뉴턴의 업적에 근거하여, "어떤 시점에서 온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알 수 있다면 우주의 장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양자 역학을 완성시킨 독일의 학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뉴턴의 기계론적 자연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이젠베르크는 1927년 전자와 같은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위치를 알면 속도를 알 수 없고, 속도를 알면 위치가 불분명해지는 불확정성이 원리적으로 존재한다는 획기적인 이론을 발표했다. 위치를 재는 관찰자의 영향이 소립자의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속도를 재는 관찰자의 영향은 소립자의 위치를 변화시킨다. 이런 변화의 결과로 그 소립자가 어디로 갈지 아무리 정교한 계기를 쓰더라도 원리적으로 확정지을 수 없다. 이것이 불확정성의 원리다.

 

이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그릇에 담긴 물의 온도를 재는 예를 들어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리 정밀한 온도계를 가져도 물의 정확한 온도를 잴 수 없다. 온도계를 담그는 그 순간, 온도계 자체의 영향을 받아 아주 작지만 물의 온도가 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온도계의 영향을 없애려면, 온도계를 물의 온도와 같게 만들면 되지만, 물의 온도를 처음부터 알고 있다면 굳이 온도를 잴 필요도 없어진다. 이렇게 관찰자의 온도계로 인해 물의 온도가 변하기 때문에 물의 온도를 확정지을 수 없다. 우리 몸이나 종이와 같은 물체도 결국은 이런 소립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소립자가 '불확정' 이라면 그것들로 구성되는 모든 물질도 밑바탕에 불확정의 요소가 깔려 있게 된다.

 

위의 제시문은 자연 현상--물체의 운동--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논술하라.

 

1.두 가지 관점의 차이

2.두 가지 관점의 차이를 초래하는 원인이나 조건

 

유의 사항

 

1.분량은 원고지1,600자 안팎(띄어쓰기 포함)으로 할 것.

2.원고지 사용법과 어문 규정을 준수할 것.

3.한 편의 자기 완결적인 글이 되게 할 것.


문제해설 및 모범예문

 

[문제해설]

 

이 논제로 논술문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이 무엇을 물어 보는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인식론'에 대한 것이다. 즉 같은 사물-문제에서는 물체의 운동-을 놓고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는 것에 대한 문제다. 따라서 이 문제를 과학 이론에 대한 지식을 묻는 문제로 착각하여 그에 대해 논술한다든지 하면 논제를 벗어나게 된다. 동시에 이 문제에서는 제시문의 두 관점을 정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관점의 차이를 초래하는 조건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다.

 

유의점 1.

 

두 관점의 차이를 정리하자.

 

두 관점의 차이는 그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 또 이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뉴턴의 관점은 '기계론적 연관성에 근거한 자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제시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뉴턴은 물체 사이에 고정된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보았고, 우리가 그것을 파악하면 물체의 운동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는 우리의 이론(법칙)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하이베르크의 관점은 '상대적이고 확률적인 연관성에 근거한 자연관'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물체의 운동은 불확정적이라 우리가 그것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 이 때문에 우리의 물체의 운동에 대한 이론(법칙)도 절대적 진리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유의점 2.

 

두 관점의 차이를 초래한 조건을 분석하자.

 

두 관점의 차이를 초래한 첫 번째 조건은, 이들 자연관이 기초하고 있는 인식론상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들의 이론(법칙)에 대한 태도는 달랐다. 이 때문에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두 번째 조건은 연구 방법상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뉴턴 시대의 연구 방법이나 기술은 현재에 비해 현격하게 뒤떨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양자 역학에 대해서는 연구할 수 없었다.

 

 

[모범예문]

 

 

물체의 운동은 포함한 자연 현상 전체를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는 과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단적으로 지난 과학의 역사를 뒤돌아볼 때, 우리는 이와 관련된 중대한 변화가 있었고, 그것은 단순한 자연관의 변화가 아니라 과학 이론 자체의 변화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먼저 뉴턴의 관점은 한 마디로 기계론적인 연관성에 근거한 자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어떤 자연 현상에는 고정된 연관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뉴턴의 중력 법칙을 보자. 이에 따르면 모든 물체 사이에는 힘이 작용하고, 그 힘은 그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에 반비례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물체의 질량과 거리를 알면 그 물체의 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물체의 힘, 질량, 거리 사이에는 고정된 연관성이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뉴턴은 자연 현상에는 어떤 고정된 연관성(법칙)이 있다고 보았고, 만약 이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우리는 자연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이런 관점을 비판한다. 대신 이들 이론은 상대적이고 확률적인 연관성에 근거한 자연관을 제시한다. 먼저 상대성 이론에서는 어떤 물체의 질량거리속도 등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의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지면, 그 물체의 질량은 거의 무한대로 증가하고 거리는 단축된다. 이처럼 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고정된 연관성을 거부한다. 또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제시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미립자 세계에서는 뉴턴의 기계론적 연관성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자연 현상에는 엄밀하게 말해서 뉴턴의 중력 법칙이 적용될 수 없다.(그러나 일상의 세계에서는 뉴턴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두 가지 관점의 차이는 왜 발생하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인식론의 문제다. 뉴턴의 관점에는 자연 현상 안에 어떤 법칙이 존재하고, 우리는 경험적 방법을 통해 이런 법칙을 알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뉴턴의 이론을 이런 법칙을 설명하는 절대적인 진리로 간주했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이나 불확정성의 원리는 이 관점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대신 그들은 우리의 이론이 한계를 갖는 상대적인 진리임을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 이론으로 자연현상을 완벽하게 설며,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진실에 근접하게 설명, 예측할 수 있을 따름이다.

 

둘째, 연구 방법상의 문제다. 뉴턴의 시대에는 과학 연구 기술이 뛰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양자 역학처럼 미시적인 차원의 자연 현상을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동시에 행성의 운동 등 거시적인 차원의 자연 현상 연구도 단지 지구 위에서의 불완전한 관찰과 시험에만 의존했다. 이 때문에 상대성 이론에서 증명했던 우주 공간의 굴절 현상 등은 연구할 수가 없었다. 이 같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여 뉴턴의 관점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 현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환경 문제에도 우리가 어떤 자연관을 갖느냐에 따라 다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뉴턴식의 믿음 - 과학과 이성에 대한 믿음 - 과 자연관이 아니라 상대성 이론 및 불확정성 원리의 자연관과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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