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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기출문제 및 모범답안(이화여대)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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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래 된 문제이지만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갖기를


1. <문 제> 다음 제시문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 이 제시문에서 드러나는 <명분>과 <실제> 사이의 모순을 중심으로, 인간 사회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

 

 

() 주정수는 그 여자처럼 가늘고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정력적인 취임 연설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나는 여러분에게 약속하겠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우선 이 섬을 원생들의 낙원으로 꾸며 놓겠다고 약속했다. 시책의 제일 목표를 새로운 병원 시설과 환자촌의 수용 시설 확충 및 요양 환경 개선 사업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이 섬을 동양 제일, 아니 세계 제일의 나환자 요양소로 꾸며서 버림받고 쫓겨온 사람들의 새로운 고향, 자랑스런 낙토로 만들어 놓고 말겠다고 장담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웃으로부터 끝없는 멸시와 박해를 당해 왔습니다. 그 서러운 멸시와 박해의 기억을 안고 여러분은 그 절망적인 유랑의 길을 몇 천리 몇 만리나 걸어 헤매야 했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유랑에 지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은 여기 이렇게 새 이웃으로 모였습니다. 가엾은 이웃들과 함께 이곳에다 여러분의 새 고향을 꾸밉시다. 고향을 꾸며놓고 아직도 이웃과 가족들에게서마저 서러운 박해를 당하고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을 이곳으로 맞아들여 그들과도 정다운 이웃으로 오손도손 보람 있는 삶을 누려봅시다.

 

감동적이기까지 한 주정수의 연설은 이미 그곳에 모여 있던 원생들의 기우를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았다. 그의 연설이 끝났을 때 원생들의 도열 속에서는 여기저기 조용한 흐느낌 소리마저 일고 있었다.

 

() 그는 부임 연설 이후에도 그의 낙토 건설 사업을 위한 몇 가지 사전 작업을 철저히 다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먼저 원생들 가운데서 10명의 대표를 뽑아 '환자 평의회'란 이름의 자문 기구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평의회로 하여금 원장과 원생들을 연결지어 주는 중간 교량역을 담당시켰다. 그러고도 그는 아직 주일마다 토요일만 되면 평의회를 열게 하여 새 낙토를 위한 건설 공사의 필요성을 되풀이 역설했다. 원생들 스스로가 새 낙토의 꿈에 부풀어 몸살이 날 때까지 충분한 설득을 계속했다.

 

마침내는 원생들 스스로가 공사 협력을 다짐하고 나서게끔 되었다. 주정수는 비로소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섬을 새로 꾸미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벽돌이 필요했고, 그 벽돌을 찍어낼 공장부터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평의회 대표 열 사람과 함께 그 벽돌 공장을 세울 부지를 설정하고 곧 이어 기공식을 올렸다. 그가 부임하고 나서 한 달 남짓 시일이 지난 어느 선선한 가을날 아침의 일이었다. 공장을 세우고 처음 얼마 동안은 중국인 벽돌공을 들여다가 벽돌을 굽는 기술부터 익혀냈다. 기술이 숙달되자 원생들은 이제 그 중국인 기술자를 내보내고 자신들이 직접 벽돌을 구워내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구워낸 벽돌들은 오래지 않아 곧 새로운 병사(病舍) 건축의 가장 요긴한 자재로 쓰여지기 시작했다. 원생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열심히들 일을 했다. 병사 지대 3개 부락(당시)에서 작업이 가능한 사람은 매일같이 벽돌 공장으로 혹은 병사 신축장으로 고된 출역을 계속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 피곤해할 줄을 몰랐다. 모처럼 일삯이라는 걸 받아보는 것도 대견스러웠지만, 자기 손으로 벽돌을 구워내고 자기 손으로 자기가 살 집을 지어낸다는 것이 더할 수 없는 위안을 느끼게 했다. 자기의 힘으로 자신의 낙원을 꾸민다는 자부심이 모처럼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했다.

 

작업 진행이 순조로울 수밖에 없었다. 벽돌이 충분히 확보된 이듬해 봄부터 3년 동안 계속 사업으로 진행된 시설 공사는 그러므로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3년이 지나고 나자 병사 지대는 이제 기왕의 3개 부락 이외에도 동생리중앙리로 명명된 두 개의 새 마을을 더하여 원생 수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방대한 시설로 확장되었다. 그 밖에도 병사 지대에는 불구 환자들을 위한 공동 취사장과 세탁소공회당정미소 따위의 공공 시설들을 새로 마련하여 한껏 요양 생활의 편의가 도모되었다.

 

 

원생들은 모든 것이 만족이었다. 원장을 원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사 기간중에는 배급 물량도 궁핍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작업 때문에 치료를 소홀히 한 일도 없었다. 원생들은 원장의 공덕을 칭송하기 시작했고, 공사가 끝나고 나서는 새로 지은 공회당을 열어 원생들이 꾸민 창극 [장화홍련]으로 자축 행사를 벌이기까지 했다. 주정수도 만족했다. 그는 오직 원생들 때문에 즐거워지고 그들이 만족해하는 것을 보고 그도 함께 즐거워지고 있었다.

 

() 그런데 이런 시설 공사가 하나하나 진행되어나가는 동안 섬 안에선 그 작업의 성격이 서서히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었다. 공사 경비가 원생들의 노력 봉사에 의해 충당되어지는 부분이 차츰 많아져갔다. 이 무렵부터 섬 안에선 병원 시설을 마련해 준 시혜자에 대한 '보은 감사일(報恩感謝日)'이란 날을 정해 놓고 한 달에 한 번씩 감사 묵념회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이날 출역한 원생들의 작업 노임은 전액을 앞서의 시설 건립 기금으로 헌납토록 종용되었다. 원생들은 군말 없이 노임을 거둬 바쳤다. 더러는 당국의 취지를 기꺼이 수긍했고 더러는 그리 달가운 빛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환자들을 대표하고 있는 평의회의 결의라는 형식을 빌어 정해진 일이라 싫거나 좋거나 원생들은 누구나 일을 했고 누구나 노임을 거둬 바쳤다. 작업 진도가 아무래도 시원칠 않았다. 어딘지 열의가 덜한 듯했고 능률도 기대치만큼 오르지 않았다. 원생들에게 작업 노임을 헌납시켜야 할 만큼 여유가 덜한 병원 사정이 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작업 분위기가 1차 때와는 완연히 달랐다. 한데도 주정수의 신념은 변할 수가 없었다. 그의 낙원은 좀더 크고 화려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원장이 되어야 했다.

 

그는 드디어 본격적인 2차 확장 공사를 서둘렀다.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원생들에게선 1차 때와 같은 자발적인 열의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마지못해 일을 했고 기회만 있으면 작업을 회피하려고 했다. 원생들은 원래부터 교육 수준이 낮았고 유랑과 무위도식의 악습에 물들어 있던 무리들이었다. 절망하기 잘하고, 까닭 없이 반항하고, 그리고 원망과 질투가 강한 병적 심리의 소유자들이었다.

 

주정수는 비로소 그 낙토 건설 작업에 동원되고 있는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자기의 기대에 부응해올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작업 능률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처럼 원생들의 자발적인 열의만 기대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좀더 효과적인 통제 방안이 모색되어야 했다. 일이 너무 글러지기 전에 효과적인 조처가 필요했다.

 

그는 곧바로 조처의 구체적인 내용을 만들어냈다. 1차 공사 때부터 많은 공헌을 해온 평의회 위원들의 처우를 파격적으로 개선해 주고, 그와 동시에 그 '평의회'의 기능을 더한층 강화시켰다. 그리고 그 평의회를 통하여 원생들을 회유하고 보다 더 적극적인 협찬을 설득해나갔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효과적인 조처는 이른바 '상관단'의 설치였다. 주정수는 원생들의 치료와 작업 진행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각 마을에다 새로 건강인 직원을 몇 사람씩 배치하여 '상관단'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그 상관단과 원생 대표격인 평의회간의 협의를 거쳐 마을의 모든 일을 운영해 가도록 했다. 상관단은 간호 주임을 책임자로 하여 간호수 1명과 간호부 2, 농사 감독, 비품 감독, 서기, 조수, 각각 1명씩으로 구성하고, 그 밖에 다시 평의회 위원을 겸한 부락 대표 1명과 비품 조수 1, 작업 조수 3, 4, 반장 2명을 두었다. 상관단을 이끌고 각 마을로 배치된 간호 주임은 출신 성분이 대개 전직 형사나 경찰관서 또는 헌병 경력을 가진 일본인들이었다.

 

주정수는 거기서도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직원 지대와 병사 지대 경계에다 순시소 본부를 설치하고 순시부장 1인과 순시 10여 명을 배치하여 수시로 병사 지대를 순회 감독케 하고 감금실과 면회 업무를 관리케 했다. 가위 강제 노역소를 방불케 하는 엄중한 관리 조직이었다.

 

() 주정수는 그의 낙원이 자랑스러웠다. 자신이 이룩한 섬을 보고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자 그는 다시 한번 벅찬 보람을 느꼈다. 그는 이제 이 낙원 건설 사업에 마지막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원이 있어야 했다. 가엾은 환자들이 남은 여생을 편히 쉬다 갈 공원을 만들어야 했다.

 

그는 곧 계획을 세우고 일을 시작했다. 이젠 설득이고 뭐고 필요가 없었다. 모두가 원생들을 위한 일이었다. 그들을 위한 일에 일일이 구차스런 설득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룩해 놓은 모든 작업 결과가 주정수 자신뿐 아니라 섬을 다녀갔거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을 한결같이 감동시키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옳았다는 생각이었다. 그 칭송에 값하기 위해서도 섬을 좀더 멋있게 꾸며야 했다.

 

이 해에는 예년에 없이 일찍부터 혹한이 밀어닥치고 있었으나 주정수는 일을 미루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일본까지 연락하여 일급 원예사를 초빙하여 공원 건설 공사를 착수했다.

 

그는 우선 중앙리와 동생리 사이에 공원 부지를 정하고 진흙밭 매립 작업을 시작했다. 혹한 속에서도 원생들은 또다시 노역장으로 끌려나가기 시작했다. 그 동안 계속된 노역으로 대부분의 원생들은 병세가 악화되고 상처투성이의 손발들이 궤양으로 패여 들어가고 있는데도 노역을 피할 길이 없었다.

 

원생들은 이제 어김없는 노예였다. 병원 처사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비판이 용납되지 않았다. 항거를 해볼 기력도 없었다. 기계처럼 산을 허물고 진탕을 메우고 산봉우리를 찾아 올라가 공원을 꾸밀 거목 거석들을 떠메어 나르곤 했다. 사또의 채찍 아래 원생들은 짓무른 육신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도 어김없이 짜내야 했다.

 

그 마지막 한 방울의 힘을 소모하고 나면 그들은 매정스런 사또의 채찍 아래 쓰러져 누운 채 조용히 숨길을 거두어가곤 했다.

 

자살 사건과 탈출 사고가 하루가 멀다 하고 꼬리를 물었다. 외곽선 도로의 순찰이 몇 배로 강화돼도 빈약한 나무토막 하나에 의지하여 바다를 건너가다 해협 물살에 휩쓸려가 버린 사람들이 수를 셀 수 없었다.

 

그 숱한 인명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어김없이 진행되었다. 장흥과 완도 등지서 운반되어온 기암 괴석들이 여기저기 배치되고 공원 일대는 남국의 정취를 북돋우기 위하여 멀리 대만에서까지 남국 식물들을 주문해다 심었다. 이듬해 4월에는 어느 도회의 한복판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넓고 호사스런 공원이 그 마지막 작업을 끝내게 되었다. 주정수는 크게 만족했다.

 

하지만 원생들은 물론 만족할 수가 없었다. 주정수의 부임 이후로는 거의 모든 일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원생들은 즐거워할 줄을 몰랐다. 섬 안에 시설이 한 가지씩 늘어갈 때마다 그만큼 섬 전체가 천국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지옥으로만 변해가고 있었듯이, 이번에도 이 섬은 공원이 하나 더 늘고 그곳에 바쳐진 자신들의 노력(勞力)과 희생이 크면 클수록 그 노력이나 희생의 크기만큼 섬은 점점 더 낙원과는 인연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원생들에겐 다만 새로운 원망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는 느낌 외에 보람 같은 건 눈곱만큼도 지녀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도 원생들에겐 공원을 자랑스럽게 관리하기 위하여 보다 많은 주의와 노력 봉사가 명령되었으므로 더 할 말이 없었다.

 

주정수는 공원 시설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 하여 원생들 마음대로 공원 지역을 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공원을 언제나 깨끗하게 단장시켜 놓고, 섬을 찾아오는 손님만 있으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 섬에 건설한 그 자랑스런 원생들의 낙원을 증명해 보였다.

 

도대체 모든 것이 배반의 연속이었다. 자신들의 낙원을 꾸미기 싫어 목숨을 내걸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그것으로부터, 원생들의 휴식과 위안을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 오히려 그것을 누릴 사람들에게 모셔지고 있는 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가지도 배반 아닌 일이 없었다.

 

공원은 정말 원생들에게 모셔지고 있었다. 그렇게 모셔지고 있는 공원이 섬을 구경온 사람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고 있었다. 공원은 원생들을 위해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엉뚱한 구경꾼들의 것이었다. 섬에 꾸며졌노라는 낙원 역시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사람들에게만 있었다.

소록도의 환자들에겐 낙원이 없었다.

 

 

 

 

<예시 답안>

 

유사 이래 인간 사회는 개인과 집단 사이의 조화 문제에 골몰해 왔다. 개인의 욕망과

집단의 가치 추구 사이의 괴리는 물론, 집단적 가치 추구 과정에서 드러나는 '명분'과 '실제'

사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려 했던 것이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어떤 일에 대하여 '명분'을 세우고 그것을 명분에 걸맞게 실천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상호 합의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 가려 뽑은 제시문은 이러한 '명분'과 '실제' 사이의 모순

을 기승전결의 형식으로 분명하게 보여준다. 소록도 안에서 주정수와 원생들 사이에 나타나

고 있는 갈등은 '명분' 못지 않게 '실제'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처음에

는 주정수와 원생들의 지향점, 즉 소록도를 자랑스러운 낙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명분'의 일

치를 볼 수 있었다(가). 명분 실현 과정의 정당성도 인정받을 수 있었기에 소록도의 공동

사업은 시작될 수 있었고, 집단 전체가 자율적으로 참여하여 나름의 결실을 얻을 수도 있었

다(나). 이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를 거친 집단적 명분과 그 실현 과정이 행복하게 일치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명분'이 집단 전체의 이익이나 실상에서 차츰 벗어나 주정수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변질되면서, '실제' 과정도 점차로 강제성을 띠게 되고 원생들의 원성을

사게 된다(다). 결국 낙원 건설이라는 '명분'이 사라져 버린 소록도는 더 이상 원생들 모두

의 낙원이 아니라 주정수 개인의 낙원이 되어 버린 아이러니를 보여준다(라). 이는 비단 소

설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사회에서 수없이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명분'과 '실제' 사이에서 이러한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명

분'을 설정하는 집단의 합의 과정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제시문에서 볼 수 있는 '명

분'은 주원장에 의해 위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물론 (가)에서 그것은 집단

의 동의를 얻지만, (다)에서는 집단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 합의 과정도 충분치 못할 뿐 아

니라 집단의 동의를 구할 수 없는 명분은 다수를 배제한 소수의 명분으로 전락하기 쉽다.

특히 제시문 (다)에 나타나듯 특정 개인이나 특정 소수의 입장에 치우치는 명분이라면 문제

는 심각해진다. 그런데 더 큰 모순은 '명분'이 '실제'화되는 과정에서 원래의 합의가 왜곡되

거나 잘못 해석될 때 발생한다.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도 개인이나 소수에 의해 일방적으로

'실제'화되면, 집단 구성원 다수의 합의나 동참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다만 명분을 위한 명

분이 될 뿐이다.

 

'실제'의 결과만 중시하고 '명분'의 부당성을 지적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이러한 문제

는 '실제'가 '명분'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사회 구성원

들의 합의를 배제한 채 개인이나 소수가 진행하는 실제와 그 결과는 오히려 더 깊은 갈등을

잉태할 수 있다.

 

구성원들간의 합리적인 합의를 거친 '명분'을 정립하기 어렵다거나, '실제' 결과만 좋으

면 '명분'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견해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회의적인

견해는 특정 개인이나 소수가 이익을 얻고 다수가 희생되는 상황을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집단의 원만한 합의로 공동선에 입각한 '명분'을 수립하고,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동참하는 '실제'화 과정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 인간은 더 나은 사회를 지향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화여자대학교 2000학년도 논술 모의시험 문제 및 우수답안

 

◀ 문제 ▶

 

문제현대의학의 놀라운 기술 발전은 그 도덕적인 함의와 인간의 정체성 문제에 많은 논란을 제공하고 있다. 다음 두 글에서 제기된 문제점을 토대로 현대의학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 기술과 연구의 지속적 발전을 통한 지식의 확대에 따라 새롭게 성장한 분야들에서 우리는 이에 맞는 행동 규칙과 척도들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고 당신은 방금 말했습니다. 수술에 대하여 생각해 볼까요. 이런 물음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언제 시신으로부터 장기를 떼어 낼 수 있는가?" 우리 독일에서는 오늘날 이렇게 말합니다. "우선 사람이 죽었을 때만 그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떼어 낼 수 있다." 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을 정확히 어느 순간으로 잡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다음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경우에 장기를 떼어낼 수 있는가?" 두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본인이 동의했을 때만 장기를 떼어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중요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장기 적출과 관련하여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택시에 치어 죽은 사람의 건강한 장기를 다 죽어가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떼어낸다면, 그것 역시 동포애나 사회 연대성에 비추어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올리히 비케르트와 오트프리트 회페의 대담' 중에서

 

() 허약한 육체는 허약한 정신을 만든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와는 달리 의술은 질병을 치료한다고 하나 질병보다 오히려 약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 의사들이 어떤 병을 치유하여 준다고 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반면에 그들이 보다 더 치명적인 병을 우리에게 준다는 사실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소심증이니, 맹신이니, 죽음에 대한 공포니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육체를 치료하는 대신에 우리의 용기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걷게 한들 그것이 우리들에게 무슨 소용이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인간이다.

 

나는 여기서 의학의 허점을 늘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나의 목적은 의학을 정신적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것 뿐이다. 진리 탐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의학의 효용에 대하여 사람들이 궤변을 늘어놓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언제나 병자는 치료하면 낫고 진리는 탐구하면 발견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의사가 시술해서 한 사람을 치료하는 이면에는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있을 수 있음을, 또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는 데서 얻는 유익함의 이면에는 이로 말미암아 초래되는 오류들 때문에 야기되는 해독이 있을 수 있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가르쳐 주는 학문과 치료를 해주는 의학은 양쪽 모두 매우 훌륭하지만, 반대로 사람을 그르치는 학문과 사람을 죽이는 의학은 나쁘다. 그렇지만 이들을 구별하는 방법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진리를 모르는 채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가 거짓말의 피해자가 되는 일이란 없을 것이고, 자연을 거역하면서 병이 낫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의사의 손에 죽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의학이 일부의 사람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인류 전체에 대해서는 유해하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루소의 에밀중에서

 

 

 

 

◀ 우수답안1 ▶

 

과학 혁명 이후 전 세계는 급속한 과학 기술의 발달과 문명의 진보를 경험했다. 이에 따라 의학 기술 역시 눈부시게 발전했으며, 인류의 수명은 수십 년 연장될 수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에 불치병이라 여겼던 질병들로 고통받지 않아도 되며, 쉽게 접할 수 있는 현대 의학의 영향으로 한층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현대 의학의 급속한 발전이 오히려 인류에게 많은 문제점을 안겨 주고 있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제시문 (가)에서는 갑작스런 의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행동 규칙의 불명확성을 문제로 삼고 있다. 요즘 흔히 논란이 되고 있는 '사망의 기준'이 그 예이다. 호흡이 정지되어야만 사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반면, 뇌사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효용성이다.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들에게 시간과 의료자원을 투자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또 하나의 예는 장기 이식의 허용 기준이 본인의 동의라는 점이다. 이는 한 개인의 생명권을 보호하려는 점에서는 도덕적이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는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비도덕적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인간 그 자체에 의미를 둔 목적론적 관점과 다수의 이익을 추구하는 결과론적 관점의 대립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렇듯 도덕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의학의 가치 기준 확립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시문 (나)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인간의 주체성 상실이다. 과거 의학이 생활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순응했지만, 현재의 우리는 생명 연장의 가능성을 경험했기 때문에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 또한 쉽게 접할 수 있는 의료 시설로 인해 사람들은 의학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시작했다. 이는 의학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금만 아파도 약을 찾고, 약을 먹어야만 안심을 하면서, 우리는 점차 정신적 면역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제시문에서의 주장처럼 우리는 육체의 병을 고쳐가며 살고 있는 동시에, 의학에 스스로를 맡기는 비주체적인 인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문제점 때문에 인류의 발전에 필수 요소인 의학이 퇴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의학을 단순한 과학으로 취급하기보다는 인간이나 도덕과 연결된 분야로 파악하기 위해서 철학과의 접목을 시도해야 한다. 이는 이미 시도되고 있는 '생명 윤리학'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인류는 보다 심오한 탐구 자세로 현대 의학에 있어서의 행동 규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주체성 상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올바른 가치관 확립이 필요하다. 의학은 인간의 건강한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결코 현대 의학이 우리를 지배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의학에 의존하기보다는 의학을 적절히 이용하여 인류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이끌어 가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현대 의학이 지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의 삶에 커다란 공헌을 할 수 있고, 충분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현대의학이 앞으로 인류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은 무한대이다. 그러나 그런 혜택은 우리가 현재의 부작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병행할 때만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춘천여고 전수란>

 

 

◀ 우수답안2 ▶

 

21C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인간의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해주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과학기술은 우리의 생명과도 또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복제 양 돌리의 탄생만을 보아도 그렇다. 복제기술의 성공은 유전공학이나 생명공학과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대의학의 발달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 예라고 하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현대의학의 발달이 인간에게 무조건 이롭기만 한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대의학은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 확립의 차원에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먼저 도덕적 측면에서는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장기적출 문제를 들 수 있다. 물론 장기이식은 죽은 사람의 장기로 새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을 지는 모르나 공급자의 생사의 기준이 불명확한 경우 즉, 식물인간 상태이거나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장기이식을 행하는 경우에는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 할 수 있다. 인간의 정체성 확립의 측면에서는 인간의 약에 대한 맹신으로 일어나는 의존성과 정신 허약이 문제가 된다. 또한 의학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치전도 현상, 즉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보는 현상은 인간의 정체성을 해칠 우려를 안고 있다.

 

현대의학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학자나 의학자들이 윤리성을 갖추어야 한다.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에서 해방시켜 준다는 미명아래 자행한 케보키언 박사의 안락사 사건은 다시는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한 생명의 목숨을 같은 인간이 결정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복제기술은 인간의 존재를 중시한다는 차원에서 의학자들의 윤리성에 의해 저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대의학은 인간을 기계의 부품으로 보는 서구식의 기계론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옛날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사람의 몸이 아프면 그 신체적 부분의 일부만을 치료하려 하지 않았다. 인간을 유기체로 보고 그 병의 근본원인을 찾아 정신적인 측면과 더불어 병을 고치려 함으로써 오늘날 현대의학의 약에 대한 의존성의 심화나 정신 허약과 같은 문제점은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대의학은 기계론적 사고의 인식 전환과 더불어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을 조화롭게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가치관을 정립해야 한다. 경제가 발달하면서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물질만능주의로 흘러가게 되자 언제부터인가 생명경시풍조가 일어나게 되었고, 오늘날 현대의학의 문제점도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존중하는 자세의 결여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의학은 오늘날 의학이 지니고 있는 윤리 도덕적 문제와 인간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문제점을 의학자의 윤리성과 기계론적 사고의 전환을 통해 극복함으로써 다가오는 21C를 생명존중이 구현되는 사회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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