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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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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종종 삶의 교훈을 주는 경구(警句)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때론 뜨겁고 때론 차가운 외침으로 우리의 안일한 가슴에 불을 지핀다.

모두들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스스로를 바꾸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이 짧은 한 마디를 통해 자아성찰 없는 사회개혁의 허구를 갈파한다. 의식과 제도는 늘 함께 개혁되어야 하는 것이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가 노래한 송시(訟詩)의 한 구절 중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도 있다. ‘지금을 잡아라(seize the day)’라는 뜻의 이 라틴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 부추기는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쓰인다. 고등학교를 단지 대학교에 가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여기는 작금의 사회 분위기에 경종이 될 만한 말이다. 대학은 취직을 위해서 취직은 결혼을 위해서 결혼은 자식을 위해서...우리의 현재가 늘 미래의 도구일 필요는 없다. 오늘은, 오늘을 즐겨라.

헨리 밀러는 삶에는 의미가 없다는 명백한 사실 때문에라도 삶에는 의미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시절 나를 괴롭혔던 것은 삶의 공허감이었다. 그만큼 나는 삶의 의미에 목말랐고, 그 의미를 추구하다보니 인생을 조금은 진지하게 살 수 있었다. 여전히 삶이 공허하다면 거짓 의미라도 찾아야 할 것이다. 삶을 위하여.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고통은 결국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고통은 결국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는 니체의 말은 정말 강렬했다. ‘신은 죽어 있다(신은 죽었다는 말은 사실 신은 죽어 있다의 오역이라고 한다)‘는 한마디로 온 세상의 미움을 받았던 니체. 하지만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신을 모독하며 사는 신자들의 위선을 니체는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강해져야 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저런 명구를 생각했을 것인가.

사랑은 신이기를 그칠 때 비로소 악마이기를 그친다는 철학자 루즈몽의 말도 있다. C. S. 루이스는 고귀하고 순수한 가치일수록 신성(神性)을 내세워 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모든 게 마찬가지지만 사랑도 절대화하면 그것은 우상이 된다. 신실하고 진정한 자기희생적 사랑이 악마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랑은 모든 생각과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우리는 더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을 자행하는가.

 

 

 

능력 있는 자는 삶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

더러 삶이 지루하고 재미없을 때가 있었다. 그 지루함의 크기만큼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나는 내 삶의 누추함에 불안했다. 이런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능력 있는 자는 삶이 지루할 수밖에 없다'는 알버트 슈바이처의 말이 많이 위로가 되었다. 물론 내가 능력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슈바이처같이 열렬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도 지루함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계속해야 한다. 계속할 수 없지만, 계속할 것이다.’는 베케트의 언어유희는 얼마나 멋진가. 어떠한 장애물이 있더라도 어떠한 의심이 있더라도 삶의 열정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연함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도 종종 위안을 주는 말이다. 솔로몬의 말로 전해지는 이 구절은 현재의 고통을 견디는데 꽤나 유용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이 현재의 고통뿐 아니라 기쁨과 행복에도 해당된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 현재의 고통도 언젠가는 지나가겠지만 현재의 기쁨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만사기유정 부생공자망(萬事旣有定 浮生空自忙)이란 말도 있다. 만사는 이미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데, 들뜬 인생들만 부질없이 바쁘다는 뜻이다. 다소 운명론적 발언이긴 하지만 가끔 너무 바쁘게 산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추스르는 말이다.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야만적이다. 다른 모든 것을 향한 사랑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이 가장 멀다는 니체의 명언도 기억난다. ‘네 적을 사랑하라. 그것이 네 적의 신경을 거스르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역설도 기발하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파우스트의 명대사는 차라리 황홀하다. ‘방황이란 단어가 긍정적으로 사용된 이 구절에 나는 매혹되었다. 방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수많은 경구 중에서 평생을 살면서 잊지 않고 싶은 경구는 메멘토 모리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이 말을 외치게 했다고 한다. 정말 드라마틱한 배경설화다. 죽음이 없는 삶은 없다. 그러므로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삶을 제대로 설계할 수 없다. 내가 메멘토 모리를 잊지 않으려는 이유다. 이 말을 잊을 때 우리의 오만은 우리를 그르칠 것이다.

그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이 켜놓은 깨달음의 불빛에 기대어 살았다. 그 불빛은 내 삶의 동지이자 연인이었다. 상처를 무늬로 바꾸어주었고 검은 흉터를 무지개색깔로 채색해 주었다. 인간은 인간에게서 상처를 받지만 인간에게서 치유를 받기도 한다. 이제 나도 나의 깨달음을 나누며 살고 싶다. 깨달음은 삶과 현실 사이의 마찰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내 삶도 좀 더 고민하며 매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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