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가꾸기
by 처사21우리말 가꾸기
고영근(高永根)
흔히 한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그 민족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한다. 민족이 생긴 이래 우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의 애환(哀歡)을 표현하거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우리말을 발전시켜 왔다. 우리 선인들은 우리말을 가지고 시조나 가사 같은 노래를 읊조리기도 하였으며 소설이나 판소리 같은 예술 작품을 창작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런 문학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선인들의 생활 감정을 이해할 수도 있고 우리 민족의 사고의 한 단면도 엿볼 수 있다. 한 민족의 언어는 그 민족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는 거울이라는 말도 이런 뜻에서 나오게 된 해석이다.
그런데 지난날 우리말과 글은 반드시 순조롭게 발전해 왔던 것만은 아니다. 그 원인의 하나로 우선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던 중국 문화의 영향을 들 수 있다. 2세기 무렵 우리 나라에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되면서 중국의 한자 문명이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 이래 우리 나라 안에서 한자가 정착되어 광범위하게 통용된 결과, 우리말이 점점 한자어에 밀려났으며 결국 고유한 우리말은 발전보다는 점차 위축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도 예부터 사용되어 오던 정다운 우리말들이 한자어에 밀려 자취를 감춘 것이 한둘이 아니다. ‘뫼, 가람’ 같은 우리말 대신에 한자어 ‘산(山), 강(江)’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을 대표적인 예로 흔히 들거니와, 이밖에도 다음과 같은 예를 더 들 수 있다.
장모(丈母)<가싀엄, 행랑(行廊)<기슭집, 대고모(大姑母)<넛할미, 농사(農事)<녀름지, 광대(廣大)<노바치, 계모(繼母)<다어미, 과부(寡婦)<올겨집, 용변(用便)<보기
또, 일제 침략과 함께 우리말에는 상당수의 일본어가 그대로 들어와 우리말을 오염시켰다. 광복 후 한참 동안 일본말은 일상 언어 생활에서 예사로 우리의 입에 오르내렸다. 일제 35년 동안에 뚫고 들어온 일본어를 한꺼번에 우리말로 바꾸기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이라든가 ‘국어 순화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지금은 특수 전문 분야를 제외하고는 일본어의 찌꺼기가 많이 사라졌다.
원래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면 그것을 나타내는 말까지 따라 들어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 동안은 우리가 때로는 주권을 잃었기 때문에, 때로는 먹고 사는 일에 바빴기 때문에 우리의 가장 소중한 정신적 문화 유산인 말과 글을 가꾸는 데까지 신경을 쓸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일찍이 주시경(周時經)선생은 말과 글을 정리하는 일은 집안을 청소하는 일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집안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정신마저 혼몽(昏夢)해지는 일이 있듯이 우리말을 갈고 닦지 않으면 국민 정신이 해이해지고 나라의 힘이 약해진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일제가 통치하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 선학(先學)들은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혼신의 정열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얼마 전 어느 국어학자가 정년을 맞이하면서 자신과 제자들의 글을 모아서 엮어낸 수상집의 차례를 보고, 우리말을 가꾸는 길이란 결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일이 있다. 차례를 ‘첫째 마당, 둘째 마당’, ‘첫째마디, 둘째 마디’ 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여 꾸몄던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는 ‘평평하게 닦아 놓은 넓은 땅’을 뜻하는 ‘마당’에다 책 차례의 내용을 가름하는 뜻을 준 것이다.
새로운 낱말을 만들 때에는 몇몇 선학들이 시도했던 것처럼 ‘매, 가름, 목’이나 ‘엮, 묶’과 같이 일상어와 인연을 맺기가 어렵거나 낱말의 한 부분을 따오는 방식보다는 역시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 새로운 개념을 불어넣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언어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된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고장에서는 시멘트를 ‘돌가루’라고 불렀다. 이런 말들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훌륭한 우리 고유어인 데도 불구하고 사전에도 실리지 않고 그냥 폐어(廢語)가 되어 버렸다. 지금은 고향에 가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얼마 전 고속도로의 옆길을 가리키는 말을 종전에 써 오던 일본식 용어인 ‘노견(路肩)’에서 ‘갓길’로 바꾸었다는 보도를 듣고 우리의 언어 생활도 이제 바른 방향을 잡아 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우리말을 사랑하고 발전시키는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는 우리말을 살려 쓰는 문제를 주로 이야기했지만 한자어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자어를 무조건 외래어로 보아 이를 배척하는 것이 국어를 갈고 다듬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그런 일은 우선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하다. 한자어 가운데는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되어 오면서 우리말의 어휘 체계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미 외래어라고 보기가 어렵게 된 말들이 많다. 이를 하루아침에 사용하지 말자고 한다면 우리가 가진 어휘의 양은 갑자기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말에서 고유어와 한자어는 각각 독특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상황에 따라 한자어보다 고유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이해가 쉬운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 흔히 보는 ‘차례차례 승차합시다.’는 ‘차례차레 탑시다’로 바꾸어 적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르고 음절이 하나 줄어드니 그만큼 경제적이다. 이처럼 같은 개념을 나타내는 말로서 한자어와 고유어가 공존할 때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유어를 선택하여 쓰는 것이 좋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감한다. 이를테면 ‘조류(鳥類)’와‘날짐승’의 경우 그 뜻이 같다고 한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류(鳥類)’를 완전히 버릴 수 있느냐 하면 반드시 그럴 수만은 없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는 ‘나이-연세(年歲), 이-치아(齒牙)’의 경우처럼 한자어가 존대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는 관습이 있다. 현재로서는 이같은 한자어들을 무조건 사용하지 말자고 할 수는 없다. 만약, 나이 드신 분께 “선생님 나이가 얼마나 되십니까?” 라든가 “어르신, 이는 아직 튼튼하시지요?”처럼 말을 한다면 교양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고유어가 일상 용어로 사용될 때에는 큰 불편이 없지만 전문 영역에서 사용될 때에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데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에 한자어들을 무조건 버리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다음은 고유어 하나에 그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여러 개의 한자어들이 대응(對應)하는 예들이다.
값 : 가치(價値) - 금액(金額) - 가격(價格) - 대가(代價)
글 : 문자(文字) - 문장(文章) - 문서(文書)
옷 : 의류(衣類) - 의상(衣裳) - 의복(衣服) - 피복(被服)
생각 : 소감(所感) - 상념(想念) - 사상(思想) - 이념(理念) - 의식(意識) - 견해(見解) - 의견(意見) - 의중(意中) - 의사(意思) - 의향(意向) - 의도(意圖) - 심중(心中)
생각하다 : 사고(思考)하다 - 사색(思索)하다 - 사유(思惟)하다 - 고려(考慮)하다 - 고찰(考察)하다 - 궁리(窮理)하다 - 구상(構想)하다.
일상 생활에서는 순 우리말인 ‘값, 글, 옷, 생각, 생각하다’만을 사용하더라도 별다른 지장없이 생활을 할 수가 있겠지만, 여기에 대응하고 있는 한자어들은 저마다 독특한 용법들을 지니고 있다. 이 경우 한자어들은 고유어보다 의미가 더 구체적이면서 분화된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러한 한자어들을 단지 한자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배척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어떤 사람이 읽을 글인가에 따라 어휘 선택의 폭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일반 대중들이 모두 보아야 하는 글에서는 쉬운 우리말을 써도 가능할 것이고, 더 섬세하고 정확한 표현이 필요한 글에서는 한자어라고 하더라도 정확히 구사할 줄 아는 것이 우리말을 풍부하게 가꾸는 길일 것이다.
신경을 써서 가꾸고 다음어야 할 우리말의 문제들은 여러 가지고 더 있지만 반드시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은 규범과 문법을 지키는 언어 생활에 관한 문제이다.
먼저 규범을 지키는 언어 생활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는 우리말 사용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표준어 규정, 맞춤법 규정, 표준 발음 규정, 외래어 표기법 같은 국가적 차원의 규범을 만들어 놓고 말글 생활에서 이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나는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 몇 번 머무를 기회가 있었는데 철자를 잘못 적는 일은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다. 이에 반해 우리의 실정은 어떠한가? 잠깐만 거리에 나가 거닐면서 각종 상점의 간판, 광고, 표지 등을 유심히 살펴 보더라도 규범을 지키지 않은 사례를 한두 건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정도이다. 또 공식적인 자리에서조차 표준어 규정이나 표준 발음에 어긋나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거나, 심지어 영어 철자법에는 자신이 있는데 한글 맞춤법은 어려워서 영 자신이 없다고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이 이야기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사실 영어의 철자는 너무나도 불규칙해서 송두리째 암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비하면 우리말의 맞춤법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쉽다. 그런데도 우리말의 맞춤법이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말을 소홀하게 생각해 온 데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겠는가?
우리말 사랑은 구호만을 앞세운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각종 규범을 지키는 문제들이 비록 사소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작고 섬세한 부분에서부터 우리말 사랑을 실천해 나아가야 한다. 맞춤법이나 표준어를 규범에 맞게 쓰기 위한 과정에서 무심코 저지르는 작은 실수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몇 번이나 되풀이된다면 그 때는 실수가 아니라 우리말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우리 자신은 그 동안 우리말의 규범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또 어떤 자세로 실천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문법에 맞는 언어 생활을 실천하는 일도 중요한 우리말 가꾸기이다. 우리 주변에서는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이 흔히 발견된다. 그 실제 사례들을 먼저 살펴보자.
․ 하지만 어린 나이에 할머니의 생활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보건대 나의 지금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항을 미쳤다.
․ 하나의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현상을 포함한 그 언어의 전 체계 속에서 파악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름이 아니라, 아직 늦지 않았으니 새로 시작하기를 바란다.
․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기도 하고 복종하기도 한다.
․ 이 배는 사람이나 짐을 싣고 하루에 다섯 번씩 운행한다.
? 그 거만한 시장의 외삼촌은 그 동안 쌓아 놓은 공덕을 죄다 깍아 내리고 있었다.
? 이것은 우리 아버지의 그림이다.
이 문장들이 왜 문제가 있는 문장인지, 어떻게 고쳐야 바른 문장이 되는지는 각자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처럼 문장의 정확성에 신경을 쓰지 않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마저 나온다.
? 인간들은 어줍잖은 지식 따위를 자랑하며 자연을 정복한다는 만용을 피운다. 하긴 이러한 만용 가운데에서 인류 역사가 발전해 오는지도 재고의 문제다.
이러한 부정확한 문장은 읽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인상을 주게 된다. 이런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은 그 내용이 아무리 그럴듯하다고 하더라도 모범적인 글로 평가되기가 어렵다. 글쓴이가 평소에 국어 문제에 과연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지 의심을 받을 수 있으며, 한 편의 글에서 이런 일이 자주 되풀이되면 글의 내용 자체에 대해 신뢰감을 떨어뜨릴수도 있고, 심지어는 글쓴이가 과연 그런 글을 쓸만한 소양을 갖추고 있는, 필자인지마저 의심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쓰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런 뒤에는 어느 정도의 훈련만 거치면 바르지 못한 곳을 찾아 어렵지 않게 고쳐낼 수 있다.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 자주 나타난다는 것은 무엇보다 국어 문제에 대한 성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말을 가꾸고 발전시키는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았다. 우리말을 가꾸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어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의식이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외국어를 함부로 사용하는 모습, 외국어 투성이인 상품 이름이나 거리의 간판, 문법과 규범을 지키지 않은 문장 등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우리의 언어 현실은, 모두 우리말을 사랑하는 정신이 아직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 언어 생활에서 가령, 상품 이름이나 상호를 결정할 일이 있을 때 우리말을 가꾸는 문제를 먼저 생각하고 부끄럽지 않은 표현을 찾기 위해 지혜를 짜낸다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전문가에게라도 물어 본 뒤에 결정하도록 하는 등, 우리말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고 성의있게 접근하는 정신 자세부터 기르도록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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