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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말과 글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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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말과 글

남성우(南星祐)

 

1

우리 나라는 단일한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나라이다. 불행한 역사로 말미암아 지금은 비록 양쪽으로 갈라져 있기는 하지만 남과 북에서는 갈라지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글 맞춤법과 같은 언어 규범도 그 뿌리가 동일하며, 고유어를 중심으로 한국어를 가꾸어야 한다는 생각에도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언어적 기반에 공통되는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언어 생활의 현실은 점점 더 이질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이질화는 주로 체제와 이념에 따른 언어관과 언어 정책 등의 차이로 인하여 발생하게 된 것인데, 이는 같은 언어 유산을 물려받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언어는 바로 문화와 민족 문제의 알맹이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부터 지금까지 북한에서는 네 번에 걸친 철자법의 개혁과 문맹 퇴치 사업, 그리고 이에 따른 한자 폐지, 말다듬기 운동, 문화어 운동 등을 펼침으로써 언어의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남쪽에서도 언어의 변화가 독자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남북한의 말에는 커다란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북한은 언어를 혁명과 건설의 힘있는 무기라고 생각하는 유물론적(唯物論的) 언어관에 근거하여 언어 정책을 수립하였으며, 이렇게 수립된 정책을 당의 통제하에 획일적으로 강력하게 시행하여 왔다. 이에 따라, 북한의 언어는 특히 1966년에 시작된 이른바 문화어 운동 이후부터, 일반적인 언어 변화의 속도를 훨씬 앞질러 빠르게 변하게 되었다. 같은 기간 동안에 남한에서도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언어도 상당히 변화하였기 때문에, 결국 남북한의 언어는 이질화의 길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의 통일이라는 과제를 앞둔 상황에서, 그리고 통일된 뒤에 등장할 문제들을 조망해 보기 위해서도 우선 북한말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북한말의 모습을 분야별로 살펴 보기로 한다.

 

 

2

남과 북의 언어 생활의 이질화는, 분야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발음, 어휘, 철자법, 띄어쓰기, 문체 등 모든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는 북한에서 오늘날 규범으로 삼고 있는 이른바 문화어를 중심으로 발음, 형태, 문법, 어휘 그리고 문체상의 특징 중에서 남한의 말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한다.

 

발 음

문화어는 평양의 말을 중심으로 하고, 지역 방언에서도 많은 말을 살려서 사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오늘날의 남한의 표준어와는 발음면에서부터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 모음 , 의 원순화

모음 , 소리는 ɔ에 가깝게 발음된다. 따라서 입술을 평평히 하여 발음하는 남한의 ,ʌ/ə소리와는 다르다. ‘걱정없다가 북한에서는 [곡종옵다]에 가깝게 발음된다. 이 밖에 소리도u에 가깝게 발음된다. 이러한 특징들은 평안도 방언의 음성적 특징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모음의 발음

남한의 표준어에서는 를 일반적으로 이중 모음we로 발음하는 일이 많으나 북한에서는 단모음[]로 발음한다. 1988년에 개정된 조선말 규범집에서는 어떤 자리에서나 단모음으로 발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모음 역행 동화, 전설 모음화

모음 역행 동화, 전설 모음화한 말을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건더기-건데기, 구덩이-구뎅이, 지팡이-지팽이

수줍다-수집다, 부수다-부시다, 기주떡-기지떡, 마무르다-마무리다

 

󰊴 두음법칙

남한의 표준어에서는 과 구개음화된 을 단어의 첫소리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으나, 북한에서는 이 소리들을 첫소리로 사용한다.

로동 신문(노동 신문), 로인(노인), 녀자(여자), 념원(염원)

 

󰊵 된소리가 많이 사용된다.

원쑤(원수), ()

 

󰊶 억양과 리듬

북한의 발음은 억양 부분에서 남한의 그것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북한 말에서는 리듬의 단위가 짧다. 따라서, 하나의 발화 또는 문장이 여러 개의 토막으로 나뉘어진다. 남한에서는 이어서 발음할 문장을 북한에서는 여러 부분으로 짧게 나누어 분명하게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 그렇게 짧게 나타나는 리듬 단위는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떨어지는 높내림조의 억양을 수반하기 때문에 특이한 효과를 나타낸다. 원래 억양이란 목소리의 높낮이가 엮어내는 말의 가락을 뜻하는데 언어마다 또는 언어 집단마다 제각기 특이한 억양 형태로서 감정이나 태도 등의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문화어에서는 높내림조의 억양을 사용하여 전투적이고 선동적인 효과를 내려고 한다. 북한에서는 문화어의 억양이 씩씩하고 기백이 있는 약동적 발음이라고 주장하지만 남한 사람들이 듣기에서 생소하고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문 법

북한의 문화어는 남한의 표준어와 비교적 사소한 문제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치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가장 많은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은 조어법이다. 조어법의 경우 북한에서는 이미 있던 접사들의 기능을 확대하여 사용하거나, 특히 보조용언으로 사용되던 것들을 용언 파생을 위한 새로운 접사처럼 사용하여 새로운 낱말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다. 다음과 같은 예가 그것이다.

 

-- : 깊히다, 생각히다

-- : 바래우다, 자래우다, 찔리우다(찔리게 하다)

-지다 : 차례지다, 주렁지다

-나다 : 부러워나다, 좋아나다, 더워나다

-나서다 : 떨쳐나서다, 도와나서다

-맞다 : 급해맞다, 바빠맞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가령 애로되다, 차례지다, 아름차다, 악착하다, 녹아대다, 급해맞다, 끓어번지다등과 같은, 남한말에서는 찾기 어려운 말들이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다.

 

또다른 점의 하나는 복수 개념을 나타내는 을 남한보다 훨씬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다음 예에서 보듯이 남한에서는 을 붙이지 않는 경우에도 북한말에서는 흔히 을 붙인다.

 

거대한 성과들을 이룩했고

교과서들에 한자를 넣으면 안 됩니다.”

이 밖에도 남한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특수한 구문들이 있다. 예를 들면,

조선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나갈 데 대하여

수업이 끝난 다음 집에 돌아갈 대신에 학교에 남아서 동무들의 학습을 도와 주었다.”

 

등과 같이 ‘-()데 대하여, -()대신에등의 구문이 많이 사용되는가 하면, 남한에서라면 도착하자마자라고 하는 말을 도착하자바람으로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어 휘

북한에서는 어휘 정리 문제를 민족 발전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른바 말다듬기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이 결과, 남한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는 어휘 분야에서 이질적인 면이 가장 많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는 목적성이 강한 북한의 언어 정책으로 말미암아 생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휘 면에서 보이는 북한말의 특징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남한에서 사용하는 말과 형태는 같은데 의미가 다르게 사용되는 단어가 많다. ‘동무, 인민등의 단어가 남한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일이거니와, 가령 아가씨같은 말도 좋은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고 봉건 사상이 담긴 부정정인 의미가 첨가되어 사용된다. ‘빨치산은 원래 게릴라를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혁명적 영웅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된다. ‘어버이란 말도 친부모 대신 김일성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낱말이 되었다. ‘궁전어린이들이나 근로자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교양 수단들과 체육, 문화 시설 등을 갖추고 정치문화교양 사업을 하는 크고 훌륭한 건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천리마인민들의 혁명적 기상이라는 새로운 정치 사상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예술이라는 말도 본래의 의미 외에 기술과 수련이라는 뜻으로 확대 사용된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제도의 차이에 따른 언어관 및 언어 정책의 차이로 말미암아 나타난 현상으로서 문화어 정책이 생겨난 이후 더욱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반대로 같은 의미를 다른 형태의 단어로 나타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주로 어휘 정리 사업을 펼친 결과로 나타난 언어의 이질화 현상이다. 가령, 북한에서 로터리도는네거리’, ‘샤워실물맞이칸’, ‘커튼주름막으로 바꾼 것은 외래어를 고유어로 다듬은 경우이다. ‘삐삐주머니종이라고 한다. 그러나 산책길유보도(遊步道)’, ‘대중 가요군중 가요(群衆歌謠)’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말다듬기와는 관련이 없으며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북한에서 많이 사용되는 어휘 중에는 공산주의 체제가 등장하면서 만들어진 정치, 경제, 사회 사회 분야의 어휘가 많은데, 이 또한 남쪽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단어들이다. ‘군중 로선, 로동 교양소, 농촌 테제, 동의학, 만가동, 밥공장, 속도전, 인민배우, 집체 담화, 후비대등과 같은 예가 그것인데 이 말들은 특별한 설명이 없을경우 남쪽 사람들은 그 정확한 뜻을 전혀 이해할수 없다.

 

이와 함께 북한말 어휘의 특징으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말다듬기 사업의 결과 고유어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단어들이 남한에 비해 비교적 많다는 점이다. 가령, ‘마사버리다, 우등불 , 불무지, 토스레, 흔들레판과 같은 단어들은 남한 사람에게는 모두 낯선 말들이다.

 

한편, 문화어라는 것이 평양말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평안도, 함경도의 방언 어휘가 많이 수용되어 망돌(맷돌), 부루(부추), 아츠럽다(애처롭다), 게사니(거위), 인차()’ 등과 같은 말들이 사용되고 있다. 외래어의 경우는 남쪽이 영어의 영향을 받은 것과는 달리 북쪽에서는 러시아 말의 영향을 받아서 꼼무나(공동 집단), 그루빠(그룹), 뜨락또르(트랙터)’ 등과 같은 모습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의성어·의태어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말들도 남북한이 다른 경우가 있다. 가령, ‘왈랑절랑 방울소리, 씨엉씨엉 배를 몰았습니다, 아글타글 애를 쓰면서, 속이 바질바질 탄다, 우줄우줄 춤을 춥니다등과 같은 의성어·의태어 표현들은 남한 사람들에서는 생소한 것이다.

 

이같은 어휘의 차이는 현재 남북 대화를 할 경우에는 물론장차 통일이 되었을 때에도 상호간의 의사 소통에 지장을 주는 가장 커다란 장애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같은 단어인데 의미가 다른 경우,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이 대화를 나누더라도 각각 다른 뜻으로 이해하거나 심지어는 오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이는 원만한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커다란 문제가 아닐수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하고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 체

북한에서는 문체를 혁명과 건설의 힘있는 무기로서 언어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본다. 언어의 표현 면에 관련된 모든 문제들이 문체를 통해서 반영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 문화어의 문체는 간결성, 정확성, 명료성을 보장하고, 말과 글을 통한 전투성과 호소성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문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권장하고 있을 정도인데, 이러한 문체관은 물론 이 글의 문체 자체가 남한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다.

 

계급적 민족적 원쑤들을 폭로하며 원쑤들에 대한 인민들의 증오의 적개심에 대하여 쓸 때에는 놈들의 가슴팍을 면바로 찌르는 서리발같이 날카롭고 예리한 문체로 써야 한다.”

 

이 같은 기본 방침에 따라, 북한에서는 주로 짧은 문장과 명령형, 선동형, 감탄형 등의 문체를 사용하여 전투적 성격을 뚜렷이 한다든가, 직설적인 욕설과 격렬한 표현을 서슴지않고 사용한다. 반면에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서 말을 할 때에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과장된 극존대 표현을 사용한다.

 

3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지난 50여 년간에 걸친 남북 분단의 결과 남북한의 말은 현격하게 달라져서, 잠깐만 들어봐도 , 이것은 북한말이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는 민족의 재통합이라는 대명제를 놓고 볼 때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통일을 위해서는 다른 문제들도 많겠지만, 언어의 차이 자체가 원만한 의사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통일이 된 뒤라 하더라도 의사 소통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통일을 이루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말의 실상을 파악하는 일은 진정한 통일을 위해 한발짝 다가가는 일이 된다. 진정한 통일은 우선 현실을 직시하는데서부터 출발하여 문제점과 해결책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말을 다듬는다고 하여 한자어를 몰아내고 눈에 선 고유어를 많이 만들어 오히려 언어 생활에 혼란을 일으켰다는 평가도 없지 않으나 그 정신만은 존중할 필요가 있다. 정도의 차이는 없지 않으나 남쪽에서도 비슷한 아픔을 겪어 가며 우리 말과 글을 가꾸어 왔다. , 남북의 언어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이질적인 면보다는 공통적인 면이 더 많다. 특히, 글말의 경우 약간의 차이점을 제외한다면 거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남북한 맞춤법이 모두 1933년에 제정된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은 장차 남북한의 언어 통일을 위해서 매우 긍정적인 면이기도 하다. 이제 남북한의 언어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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