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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법칙에 따른 환경 윤리의 변화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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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법칙에 따른 환경 윤리의 변화

 

대부분의 사람들은 끊임없는 지식과 기술의 축적의 결과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가 보다 더 나은 상태로 발전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장미빛 환상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실 현재의 과학 기술의 발전상을 보면, 그러한 믿음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 뒷면에서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던 생태계의 파괴는 실상 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마찬가지로 점점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면서 지구 생태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즉 크게는 오존층의 파괴라든가, 기후의 이상 변동, 작게는 수질 오염이나 대기 오염 등이 그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피부로 느끼기 이전에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세계관이라는 것 또한 잘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들의 세계관은 약 400년 전에 형성되어 끊임없이 수정되고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초기의 개념이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어왔다. 그것은 자연을 하나의 기계로 보면서, 인간에게 유용한 하나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을 그 기본적인 관점으로 한다.

 

이와 같이 기계론적 자연관은 거대한 우주 기계를 완전히 인과적이며 결정적으로 보는 엄격한 결정론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발생하는 모든 것은 원인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일정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서, 그 시스템의 어느 부분의 미래도, 어느 시점에서 상태를 모두 상세히 안다면, 원칙적으로 절대적 확실성을 가지고 예측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무질서하고 혼돈된 상태로부터 질서가 잡히고 완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태로 서서히 진행해 간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러 뉴튼 역학은 자연 현상의 기본적 이론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다. 맥스웰의 전기 역학과 다윈의 진화론은 뉴튼 모델을 훨씬 넘어선 개념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우주는 데카르트와 뉴튼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그와 함께 금세기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을 가져온 물리학의 발전은 데카르트적 세계관과 뉴튼 역학의 모든 기본 개념을 완전히 부수어 버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새로운 세계관의 탄생을 즈음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엔트로피를 살펴 볼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법칙을 광학의 근본 법칙이라 했고, 에딩톤은 전 우주의 형이상학적인 법칙이라고 주장한다.

 

엔트로피 법칙은 열역학 제2법칙이다. 열역학 제1법칙은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기 때문에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고 오직 형태만이 바뀌는 것이라는 법칙이다.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바뀔 수 있다. 즉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얻을 수 있는 것에서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질서가 있는 모임에서 질서가 없는 모임으로 변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근본적으로 모든 것은 질서가 있고, 값어치가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하고 값어치가 없는 상태로의 한 방향으로만 변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얼마나 변했는가에 대한 척도가 바로 엔트로피이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우주의 어느 한 곳에 질서가 더 생기는 것은 다른 곳에서 이보다 더한 무질서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엔트로피 법칙은 역사를 발전으로 보는 개념을 무너뜨릴 것이며, 과학과 기술이 보다 질서 있는 세계가 중세 기독교 세계관을 대치하게 될 때처럼 이런 엔트로피 법칙은 현재의 세계관을 대치하게 될 것이다.

엔트로피 법칙

엔트로피는 더 이상 일로 바꿀 수 없는 에너지 양에 대한 척도이다. 엔트로피라는 용어는 1868년 독일 물리학자 클라우시우스에 의해 처음 창안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근본은 이보다 41년 전 카르노라는 프랑스 장교가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증기 기관이 작동하는 원리를 좀더 잘 알려고 애썼다. 그는 전체 계 시스템의 한 부분이 뜨겁고 또 다른 한 부분은 차갑기 때문에 엔진이 작동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에너지가 일로 변하려면, 반드시 에너지 농도 차이가 있는 부분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높은 농도에서 낮은 농도로 에너지가 옮겨갈 때 일이 발생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에너지가 옮겨갈 때마다 사용가능한 에너지 양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댐 위의 물이 호수로 떨어지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떨어지는 동안에 물은 전기를 일으키거나 바퀴를 돌리거나, 혹은 다른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떨어져 버린 물은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물은 아주 작은 바퀴조차도 돌리지 못한다. 이러한 두 상태를 '사용 가능한 에너지' 즉 '자유 에너지 상태'와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 즉 '구속 에너지'라고 한다.

 

엔트로피 증가는 이러한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감소를 뜻한다.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얼마간의 에너지는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로 된다. 이 에너지가 바로 공해의 주범이다. 고해는 생산물에 대한 부산물이라고 대부분 생각한다. 실제로, 공해라는 것은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 형태로 변한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총량이다. 즉, 쓰레기는 분산된 에너지이다. 제1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창조되거나 소멸될 수 없고, 다만 형태만 바뀔 수 있다. 또 제2법칙에 의하면 에너지 형태만 바뀔 수 있다. 또 제2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즉 분산된 상태로의 변환이 가능하다. 따라서 공해는 엔트로피의 또 다른 이론일 뿐이다. 즉, 이것은 현재의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척도이다.

 

'엔트로피'라는 용어를 생각해 낸 클라우시우스는 닫힌 계에서 에너지 흐름은 그 차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난롯불에서 부젓가락을 꺼내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클라우시우스가 법칙으로 만들었던 사실을 관찰하게 된다. 발갛고 뜨거운 부젓가락을 공기 중에 놓아두면, 주위의 공기는 따뜻해지면서 부젓가락은 식어간다. 이는 열이 뜨거운 곳에서 찬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충분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부젓가락과 주위 공기는 같은 온도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상태를 '평형 상태'라고 한다. 이 상태는 에너지가 차이남이 없는 상태이다. 이런 에너지가 바로 구속 에너지, 즉 사용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렇다고, 물을 다시 댐 위로 퍼 올려서 떨어뜨릴 수 없다거나 부젓가락을 다시 가열할 수 없다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경우에는 새로운 자유 에너지, 즉 사용 가능한 에너지, 즉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사용되어야만 한다.

 

평형 상태는 엔트로피가 최대인 상태로써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에너지가 더 이상 없는 상태이다. 클라우시우스는 "상태에서 엔트로피(사용 불가능한 에너지)는 항상 최대가 되려고 한다."고 결론지음으로써 열역학 제2법칙을 종합하였다. 지구상의 사용 가능한 에너지에는 지하 자원과 태양열의 두 종류가 있다. 경제학자인 데일리는 이 두 종류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하 자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인간의 척도로 보아서 재생 가능한 것과, 지질학적으로 재생가능한 것, 즉 인간으로 보아서는 재생불가능한 것이 있다. 낮은 엔트로피의 지하 자원은 에너지와 물질로 대변할 수 있다. 지하 자원이나 태양열 모두가 한정되어 있다. 재생불가능한 지하 자원은 전체 양이 한정되어 있지만, 재생가능한 자원 또는 사용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고갈될 정도로 사용하게 될 때 이것 또한 재생불가능하게 된다.〔…〕태양열은 실제적으로 무한히 많은 양이지만 지구에 도달하는 속도나 형태에 있어서 제한되어 있다."

태양 에너지도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이것의 엔트로피는 지구의 모든 지하 자원이 완전히 고갈되고도 오랫동안은 최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담배를 한 대 피우면, 그만큼 사용 가능한 에너지는 줄어들게 된다. 이미 지적했듯이, 일정한 시간이나 장소에서 이러한 엔트로피 과정을 거꾸로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분의 에너지가 사용되어야 하고 따라서 주위의 전체적인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된다. 물질의 재순환 문제를 다룰 때, 이와 같은 점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적당한 기술만 개발한다면 우리가 사용한 거의 모든 물질을 재순환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건 틀린 생각이다. 좀더 효율적인 재순환이 미래를 위해 절대로 필요하지만, 100퍼센트에 가까운 재생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오늘날의 재순환 효율은 대부분 금속의 경우 30퍼센트에 불과하다. 재순환을 하는 데는 수집하고 운반하고 공정을 거치는 등등의 가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주위의 전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게 된다. 즉,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주위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킴으로써 재순환이 가능한 것이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지구에서 물질 엔트로피는 끊임없이 증가하며, 끝내는 최대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우주와의 관계에 있어서 지구가 닫힌 계이기 때문이다. 주위와 에너지는 교환하지만 물질을 주위와 교환하지 않는 계를 닫힌 계라고 한다. 가끔 떨어지는 운석이나 우주의 먼지를 제외하면, 지구는 우주에 있어서 닫힌 계이다. 생명체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태양 에너지가 닫힌 계의 물질과 반응해야만 한다. 이런 경우 물질이 생겨나고 또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반응은 지구를 형성하고 있는 고정된 양의 자원 물질의 분산을 촉진시킨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산은 무너지고 표토는 날아가 없어지게 된다. 이것이 재생가능한 자원조차도 결국에는 재생불가능하게 되는 근본 이유이다. 유기 물질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이러한 것들의 생성과 소멸은 결국 지구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게 된다. 장래에 유기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질이 차츰 감소된다는 뜻이다.

 

에너지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될 때 '열 종말(heat death)'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사용할 물질이 없을 때는 '물질 혼돈(matter chaos)'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두 경우 모두 엔트로피 때문이다. 물질이나 에너지의 분산이 농도를 줄이게 되고 따라서 유용한 일을 할 수 없게 한다.

엔트로피 법칙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느끼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 법칙의 진수는 실체 자체의 진수이다. 따라서 그 뜻을 파악하는 데는 일종의 영감이 필요하다. 따라서, 엔트로피 법칙을 다른 방향에서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에너지 준위나 엔트로피에 대하여 논할 또 다른 방법은 이미 약간 언급되었는데, 그것은 농도에 의한 것이다. 우리가 향수병의 뚜껑을 열면 순식간에 향기는 공기 중에 퍼져, 즉시 온 방안에 가득 차게 된다. 이것은 바로 엔트로피 법칙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데, 즉 에너지는 항상 높은 농도의 상태에서 낮은 농도의 상태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유 에너지, 즉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사용되어 버리거나 분산된다. 향수의 분자 하나 하나를 들여다본다면, 이들이 병 속에 갇혀 있을 때는 서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부딪치고 있을 것이다. 병에서 빠져나가게 되면, 분자들은 넓은 공간에 마름대로 운동하게 되고 따라서 서로 부딪치는 횟수도 줄어들고 방안 전체에 골고루 분포할 때까지 확산해 나갈 것이다.

이제까지 열역학 제2법칙에 관한 이야기는 에너지가 사용 가능한 상태에서 사용 불가능한 상태로 옮겨가거나, 혹은 높은 농도에서 낮은 농도로 옮겨가는 면에서 논하였다. 가장 근본적인 면에서 열역학 제2법칙을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고립된 계에서 질서 있는 상태로부터 무질서한 상태로 에너지가 옮겨간다는 것이다. 에너지 농도가 가장 높고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최대인 상태가 최소의 엔트로피 상태이며, 가장 질서 있는 상태이다. 역으로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완전히 분산되어 있고 흩어져 있는 상태의 엔트로피가 최대이며 아주 무질서한 상태인 것이다.

지금가지 살펴본 엔트로피 법칙이 우리의 생태계의 환경 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뒤늦게나마 우리는 지구가 '개방된 체계'가 아니라 '닫힌 체계'라는 것과 자연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사람들은 자연이 재생할 수 있는 것보다 자원을 더 빨리 소모하고 있기 때문에 자원은 고갈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계론적 세계관을 지탱해 온 에너지 환경이 이제 종말에 접근하면서 새로운 세계관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생물학에서의 진화의 개념은 우주는 간단한 형태에서 복잡한 구조로 발전하여 진화하며, 언제나 변화하는 시스템으로 인정되어야 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사상이 생명 과학 분야에서 정교하게 연구되는 동안 물리학에서도 진화 개념은 발생하였다. 그러나 생물학에서는 진화란 증가하는 질서와 복합성에로의 운동을 뜻했음에 반하여, 물리학에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무질서의 방향으로서 운동임을 뜻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엔트로피의 법칙인 열역학 제2법칙인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을 요약해 보면, 엔트로피의 법칙은 다름과 같다.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즉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혹은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이용할 수 없는 것으로, 또는 질서화된 것으로부터 무질서화된 것으로 변화한다. 요컨대 제2법칙은 우주의 모든 것이 체계와 가치로부터 시작하여 끊임없이 혼돈과 황폐를 향하여 간다고 설명할 수 있다. 엔트로피란 일종의 측정법이며, 그에 의해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이용할 수 없는 형태로 바뀌어 가는 정도를 특정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하면, 지구나 우주의 어느 곳에서 어떤 새로운 질서가 이루어질 경우, 주변 환경에는 더욱 큰 무질서가 생겨난다고 한다. 먹이 연쇄를 보면, 엔트로피가 증대되는 과정을 일목 요연하게 알 수 있다. 하나의 연쇄로서 풀로부터 메뚜기, 개구리, 송어, 인간에 이르는 연쇄 경로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제1법칙에 의하면 에너지는 결코 소멸되는 일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제2법칙에 따르면 각 먹이 연쇄 과정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로 바뀌어감으로, 온 환경에 커다란 무질서가 초래되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위대한 질서를 나타내고 있다. 진화 자체는 무질서로부터 보다 큰 질서를 계속적으로 이룩하여 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생명 역시 엔트로피의 법칙의 엄연한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헤럴드 브룸은 이 점에 대하여 그의 선구적인 <시간의 흐름과 진화> 속에서, 생물의 구성물 속에서 볼 수 있는 부분적이며 작은 엔트로피의 감소는, 우주에 있어서의 훨씬 큰 엔트로피의 증가와 결부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운 에너지를 흡수함으로써, 엔트로피의 과정과 반대 방향으로 일시적으로는 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는 궁극적으로 유지되지 않는 것이다.

환경 윤리의 재확립

이러한 엔트로피의 법칙은 역사는 진보한다는 지금까지의 개념을 밑바닥부터 뒤흔드는 것이고, 또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의해 더욱 질서가 잡힌 세계가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는 현대의 신화도 깨뜨려 버릴 힘을 갖고 있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하면 지구상의 생명에게 있어 진화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모두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와 정반대인 것이 우리의 진화 개념이다. 진화에 의해 이 지구상에 보다 큰 가치와 질서가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엔트로피의 법칙은 우리에게 왜 현대의 규범이 와해되었는지를 서서히 그리고 정확히 알려줄 것이다. 우리 현대인은 오랜 동안 토대로 삼아온 낡은 규범과 이제 새로이 생겨나고 있는 새 규범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프레드릭 소디의 말에 따르면, 열역학의 법칙은 최종적으로 정치 시스템의 성쇠나 국가의 자유 내지는 속박, 상업과 산업의 움직임, 부와 빈곤의 발생, 그리고 인류에의 물리적 공헌 등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한다. 즉, 엔트로피의 법칙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수평적인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현대 문명의 위기가 도래함과 동시에 전지구적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는 지금, 우리가 종으로서 존속해 가려면 이 지구라 불리는 닫혀진 계의 물리적인 경계를 의식적으로 조종해 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른 모든 종들과 함께 생존을 유지해 갈 수가 있느냐의 여부는 자연과의 조화를 도모하여 다른 생태계와 협조해 가려는 의지의 유무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러한 의지를 갖게 되어, 인류가 지금까지 지구에 입혀 온 상처를 치유하는 데 필요한 여유를 자연의 순환 프로세스에 부여한다면, 인간이나 다른 생물들도 이 지구상에서 오랜 동안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결국에 미래 사회의 윤리는 되도록 에너지의 소비를 적게 하는 것이 최종적인 도덕 규범이 된다. 인간 사회에서는 자연계에 가까울 정도로 엔트로피의 증대를 보다 지연시킬 필요가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흐름을 되도록 최초로 하는 동시에 적은 에너지를 사회의 모든 사람에게 재분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새로운 에너지 기반으로 이해하는 대전환기에 있어서도 사회 질서를 해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라는 유기체적인 사고를 통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유기체적인 사고는 근본적으로 전체의 필요가 부분의 기능을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기계는 직선적 인과율에 의해 작용하지만, 유기체는 순환적이며, 동시적인 작용으로 그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기체적 사고로 전환하는 것은 인간의 지식이 그 기술적 응용을 거친 산업화, 기계화를 통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끔 된 상황을 감안했을 때, 종래의 존재론적인 윤리적 측면보다는 생태계의 생존을 책임지는 보다 거시적인 차원의 윤리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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