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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지향적 환경론과 생태지향적 환경론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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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지향적 환경론과 생태지향적 환경론

 

"물질 만능, 소비 위주, 과학 지상주의"라는 현대 사회의 가치관은 확실히 인류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하지만 자연을 지배함으로써 가능했던 물질적 풍요로움이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연 생태계의 파괴와 기술의 발전에 따른 비인간적 차원의 무기의 개발, 인구 증가에 따른 자원 고갈 등 인간 자체의 생존 문제와 함께 전지구적 생태계의 생존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러한 지구 생태계의 생존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이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다차원적인 노력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사회-경제 구조적 방안으로서의 기술 지향적 환경론과, 관념적 방안으로서의 생태 지향적 환경론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 둘의 관점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기술 지향적 환경론

1)기술 지향적 환경론의 정의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된 사회-경제 구조적 방안은 과학 기술에 의하여 발생한 환경 문제는 역시 과학 기술과 적절한 제도적 통제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서, 과학 기술을 토대로 하여, 경성 에너지 개발, 기술과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과 재순환 및 환경 기술 개발을 통해 생태계의 악영향을 최소화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기술은 자연을 이용하는 인간의 가능성으로서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고대와 중세에는 특정한 방법적인 의식 없이 자연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용해온 반면에, 근세의 기술은 특정한 수학적, 분석적, 기계적 방식에 따라 획득된 자연 법칙을 인간의 노동을 덜어주고 생존을 용이하게 해주는 목적으로 응용하는 행위로 발전했다. 근세의 기술보다 더욱 발전된 현대 기술은 고도의 정밀하고 복잡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거시적, 미시적 차원에서 자연을 인간의 구체적인 요구에 따라 의도적으로 통제하고 조작하는 적극적인 변형 행위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서 환경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각을 바탕으로 하는 환경론적 사고를 기술 지향적 환경론(technological invirontalism)이라고 한다.

2) 기술 지향적 환경론의 철학적 배경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중요한 철학적인 논의들 중의 하나는, 관념적 관점과 생태 지향적 환경론에서 예시된 것처럼, 현대 기술 과학 문명에 대한 비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학은 현대 문명의 중요한 토대가 되며, 현대 과학은 역사적으로 17세기 이래로 발전되어온 근대 과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패러다임론에 의하면, 모든 과학과 문화 체계는 그것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일정한 패러다임, 즉 특정한 철학 위에 성립한다. 따라서 현대 과학 기술 문명은 근대 과학적 패러다임의 토대 위에 성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현대 문명이 지니고 있는 환경 문제는 근대 과학적 패러다임을 검토함에 의해서 진단될 수 있을 것이다.

서구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왔던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자연 파괴적이며, 인간 우월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세의 기독교적 전통으로 좀더 강화된 인간 중심적 사고관은 근대를 거치면서 좀더 공격적인 측면의 자연관을 띄게 된 것이다. 중세의 견해는 16세기 및 17세기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유기적이고 생명체적이며 정신적인 우주의 기본 개념은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대치되었으며, 이 기계론적 세계관이 현대의 지배적 사상이 된 것이다. 이 발전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및 뉴튼의 업적으로 결실된 물리학과 천문학의 혁명적 변화로 이룩되었다. 17세기의 과학은 프란시스 베이컨이 강력히 주장한 새로운 탐구 방법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 새로운 방법에는 자연의 수학적 기술과 데카르트에 의해 발상된 추리 방법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광범위한 변화를 초래한 과학의 결정적인 역할을 감안하여 역사학자들은 16, 17세기를 과학 혁명의 시대라고 불렀다.

 

양육하는 모성으로서의 고대의 대지관(大地觀)은 베이컨의 저서에서 근본적으로 변형되었으며, 과학 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유기체적 자연관이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대치되어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서구 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압도적인 중요성을 띠게 된 이 대치는 17세기의 두 거물인 뉴튼과 데카르트에 의해서 시작되고 완성되게 된 것이다.

 

데카르트는 코기토의 명제를 통해서 자아의 확실성을 바탕으로 이성의 무한한 합리성을 보증하면서 인간과 자연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었고, 인간은 인간의 진보와 발전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었다. 데카르트에게 물질 세계는 하나의 기계였으며, 자연은 기계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물질 세계의 모든 것은 각 부분의 배열과 운동으로 설명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자연을 하나의 기계로 바라보았으며, 이러한 자연에는 목적, 생명, 또는 정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자연의 기계론적 영상이 데카르트 이후의 지배적 과학 모형이 되어 버렸다. 뉴튼의 거대한 종합을 포함하는 17, 18, 19세기의 기계론적 과학의 정교한 노력은 이 데카르트적 사상의 발전이었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과학 사상에 일반 구조, 즉 완전한 기계로서 정확히 수학적 법칙에 지배를 받고 있는 자연관을 부여하였다.

 

이러한 기계론적 원리를 바탕으로, 뉴튼은 기계적 운동을 설명하기 위한 수학적 방법을 발견한다. 뉴튼의 역학에서는 모든 물리적 현상은 상호 인력, 즉 중력에 의해 야기되는 물질 입자의 운동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입자 또는 다른 물체에 대한 이 힘의 영향은 뉴튼의 운동 방정식에 의하여 수학적으로 기술되는데, 그 방정식은 고전 역학의 기초를 형성한 것이다. 이들은 그것에 따라 물체가 움직이는 고정 법칙으로 간주되었으며, 물리적 세계에서 관찰되는 모든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뉴튼의 견해란 태초에 신이 물질 입자와 그들 간의 힘 및 운동의 근본 법칙을 창조했다고 보았다. 이렇게 해서 전 우주는 운동을 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불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기계처럼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계론적 자연관은 거대한 우주 기계가 완전히 인과적이며 결정적인 엄격한 결정론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발생하는 모든 것은 원인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일정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서, 그 시스템의 어느 부분의 미래도, 어느 시점에서 상태를 모두 상세히 안다면, 원칙적으로 절대적 확실성을 가지고 예측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무질서하고 혼돈된 상태로부터 질서가 잡히고 완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태로 서서히 진행해 간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약해보면, 근대 과학의 패러다임은 기계적 결정론, 탈목적론, 실증주의, 서술적 방법, 실용주의, 가치중립주의, 과학주의 등으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즉 자연을 수학적 형식을 가지고 움직이는 기계이며, 자연이란 것에는 인간의 주관으로 관찰되어 경험적으로 확인된 법칙이 존재하며, 자연이란 궁극적으로 인간의 물질적 복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또한 과학적 연구란 것은 '객관적'인 것이지 '윤리적'인 것이 아닌 것이며, 인간의 모든 문제는 과학적 지식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들을 토대로 하여 성립한 근대 과학은 인간 중심적, 기술 지향적 과학으로 규정될 수 있으며, 자연에 대한 지배적 태도와 그에 근거한 실증 및 실용주의적, 과학 제일주의적 사상들로 특징지워진다. 이 관념들이 바로 현대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 지향적 환경론은 이러한 관념들을 여전히 고수하면서, 지금까지 인간이 발전해온 것처럼, 더욱 고도로 발달된 기술을 통해서 인간이 자연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보는 낙관적인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생태 지향적 환경론

1) 생태 지향적 환경론의 정의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된 관념적 방안은 근본적으로 오늘날 제기된 환경 문제는 현대 문명을 이끌어온 현대 과학 기술과 그의 토대가 되는 철학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과학 기술과 철학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자연과 세계에 대한 통찰과 그에 근거한 새로운 문화적 작업을 통해서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깔고 있다. 이러한 관념적 맥락을 같이 하는 환경론이 생태 지향적 환경론(echocentrical invironmentalism)이다.

 

생태 지향적 환경론은 인간의 생태학적 연관성과 자연 의존성 및 생물 윤리적 사상에 바탕을 두는 생태학적 사상에 근거하여 환경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을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현대의 환경 문제는 바로 현대 과학 기술, 즉 현대 과학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기술 만능적 사상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그 때문에 문제를 발생시킨 과학 기술로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염을 제거하기 위해 오염을 야기시키는 기술을 계속 사용한다는 것을 어리석은 짓이다. 현대 과학은 자연에 대한 너무나 단편적인 기계론적 사고의 토대 위에 성립하였으며, 물질적 효용성을 과학의 목표로 하여 기술 지향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런 가운데 자연 및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더 심오한 진리인 생태학적 진리는 간과되어 왔으며, 자연의 근본 법칙인 생태학적 진리를 무시한 현대 문명은 환경 파괴라는 파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환경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생태학적인 진리를 인식하고, 그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삶의 방식을 개선하고, 사회의 구조를 조정하고, 환경 친화적인 새로운 문명을 이루어내는 작업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다.

2) 생태 지향적 환경론의 철학적 배경

현대는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던 근대와 현대의 과학 및 자연 사상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이제 인간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과학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연을 단순히 물질의 기계적인 합성체로, 비주관적인 객체로만 규정하는 것은 정당한가? 자연은 단순한 이용의 대상으로서만의 의미를 가지는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 이외의 생명체도 유사한 생명권을 가질 수 없는가? 인간은 생명체를 조작할 권리를 가지는가? 근대와 현대 과학과는 다른, 환경 친화적인 과학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이 심도 있게 논의될 수 있다.

생태 지향적 자연 사상은 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낭만주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기계론적 및 수학적 자연 사상에 대비되는 사상으로서의 전통을 형성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 사상은 고대와 중세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유기체적 자연관과 다양한 범신론적, 물활론적 자연사상, 특히 중세에는 기독교의 신중심적=목적론적 우주론에 의해 그리고 근대에는 낭만주의 관념적 자연관과 존재의 사슬론,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 19세기 독일관념론(라이프니츠, 괴테, 쉘링) 등에 의해서 시대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주장, 발전되었다. 역사적으로 전개되어 온 이 사상들은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내용들을 가지나, 목적론적, 관념적 자연관과 생물 윤리적 사상 및 생태적 총체론적 사고를 공통적인 특징으로 하고 있다. 관념적 및 범신론적 자연관은 자연물에도 인간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영성(정신)과 생명을 인정하며, 특히 목적론적 자연관을 자연을 일정한 합리적인 목적하에 만들어졌으며, 선한 목적을 지향하여 변화, 발전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념에 근거하여 자연물들에도 인간에게와 마찬가지로 생존권이 인정되었으며, 자연물들을 인간의 효용적, 쾌락적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마찬가지로 윤리적 또는 인간이 정신을 수양시키고, 고양하는 경외적 대상으로 보는 생명 윤리적 사상이 주장되었다.

나아가 자연을 인간의 삶의 환경으로서 파악하고, 인간과 자연을 주체와 객체로 분리된, 지배자와 피지배자와 관계가 아니라, 조화와 협동관계 안에서 파악한다. 자연은 인간이 그 안에서 생존을 영위하는 인간의 삶의 환경이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그 안에 거주하는 생태적 전체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은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인간은 자신의 일부를 이루는 전체 생태계의 법칙에 순응하는 한 생존할 수 있다.

 

이러한 생태 지향적 환경론에 대한 논의들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근대 사회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그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18, 19세기의 낭만주의적 자연 사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낭만주의적 자연 사상은 바로 근대의 기계론적 자연 사상과 그에 근거한 철학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성립한 사상으로, 역사적으로는 고대와 중세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온 목적론적, 유기체적 자연 사상에서 유래했으며, 오늘날 논의되고 있는 생태 지향적 환경론에 정신적인 뒷받침을 제공하고 있는 사상이다. 근대 사회에는 인간의 물질적 조건이 향상되고, 모든 삶의 구조가 과학적 합리성에 따라 조직되는 가운데 사회가 비인간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근대적 패러다임의 특징은 과학적 합리성으로서 기계적 결정론, 탈목적론, 실증주의, 서술적 방법, 실용주의, 가치 중립주의, 과학주의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낭만주의는 이것을 근대의 비인간적 현상과 문제들의 근거로 바라본다. 따라서 과학적 합리성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전적으로 그에 반대되는 관념들을 문제 해결을 위한 가치로 제시하였다. 기계적, 수학적 자연관 대신에 유기체적, 관념적, 목적론적 자연관을 대변하고, 실용성이 아니라 자연물 그 자체에 존재 가치를 인정하였으며, 과학의 실증성이 제시하는 객관성, 보편성을 거부하고, 개별적, 감성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미적인 것을 진리와 진리 인식의 참된 방법으로 제시하였다.

 

낭만주의자들에 의하면, 과학적, 즉 수학적, 실증적 분석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감성적, 직관적 통찰에 의해 자연과 인간이 합일함에 의해서 자연은 본질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뉴튼의 과학에서 사용되는 수학적 실증적 방법은 살아 있는 자연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연을 죽여서 보여주는 잘못된 인식방법이라는 것이다.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사고를 중요시하는 경향과 더불어 예술적 행위가 진리로 본질적인 방법으로 부각되었다.

 

객관성, 보편성, 실증성은 근대 과학의 개척자들이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면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던 것들인데, 객관성, 보편성, 실증성은 수학화할 수 있고 경험적으로 증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갈릴레이, 데카르트는 사물의 형태, 크기, 운동과 같은 수학화할 수 있고, 경험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물들의 성질들을 1차 성질이라고 칭하고, 이러한 성질에 기초한 이론만을 과학적 진리로 인정하였으며, 반면에 색채, 기호, 감정 등 수학화할 수 없는 사물의 미적, 감성적 성질들을 인간의 주관에 의해서 임의적으로 만들어진 비실체적인 성질, 즉 2차 성질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은 이에 반하여 2차 성질들에도 1차 성질과 동등한 또는 더 높은 의미를 부여하고, 과학적 합리성에서 배제된 주관적 특성들, 개인의 영혼, 감정, 열정, 자유, 독창성을 참된 인간적인 진리의 기초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낭만주의적 태도는 정신문화적으로 아폴론적 이상에 대항하는 디오니소스, 또는 바카스적 이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낭만주의적 경향에 따라 무질서와 불확실성에의 도취와 모험과 새것에 대한 열망이 유행하였다.

 

또한 낭만주의는 노동의 상품화를 거부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갖는다. 대량 생산 체제와 시장 경제 체제에 의해서 야기된 노동의 상품화에 대항하여,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수단으로서의 노동을 거부하고, 노동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였다. 노동은 그것을 통하여 인간이 자연과 만나는 사건이며, 그러한 만남을 통하여 인간이 자연과 교통하고, 자신을 확인하게 되는 존재론적 사건이다. 노동을 통하여 인간은 정신의 계획을 자연물에 실현하며, 그것을 통하여 자신을 주체적, 능동적 존재로서 확인하는 자아의 실현 장소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낭만주의는 근대적 패러다임에서 발생한 폐해들을 비판한다. 즉 자연을 생명이 없는 물질의 기계적인 집합으로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는 기계론적 자연관을 거부하였으며, 유물론적 사고에 준하여 존재를 주관과 객관, 물질과 사유, 객체와 주체로 구분한 데카르트적 이분법적 사상을 거부한다. 반면에 낭만주의는 관념적이고 유기체적인 자연관, 즉 중세의 물활론이나 범신론, 플로티노스의 사상 등을 계승하여 자연을 정신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자연과 인간을 유기적인 통일체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결과적으로 생태 지향적 자연관을 지향하게 된다. 즉 자연에 영성과 생명을 인정함으로써 인간은 자연 내에서만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서 생존해 나아갈 수 있는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낭만주의적 관점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문명권의 현실을 은폐한 현실 도피적 이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기술 지향적 환경론과 생태 지향적 환경론의 차이점

 

기술 지향적 환경론과 생태 지향적 환경론의 대비는 생태 지향적 환경론이 바로 관념론적 관점을 토대로 하고 있다든지, 기술 지향적 환경론에 직접 반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대비는 단지 문제에 접근하는 관점들의 특징적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관념적 관점은 사회-경제적 관점에 비해 문제의 원인과 처방을 좀더 철학적, 문명 비판적 관점으로부터 조망해낸다는 데에 후자와의 차이점이 있다. 생태 지향적 환경론은 기존의 기계론적 자연 사상과 기술 지향적 과학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혁신적인 점에서는 관념적 관점과 맥락을 같이 하고, 기술 지향적 환경론에 대립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철학적, 생태 지향적 접근을 더 근본적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상은 언제나 구체적인 기술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생태 지향적 환경론은 새로운 학문이기는 하지만, 역시 현대 생물학의 한 분야인 생태학을 과학적 토대로 하고 있으며, 생태학 역시 현대의 다른 여러 과학적 지식의 도움으로 성립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기술 지향적 차원에서의 환경공학적 연구라든지 사회 구조조정은 문제 해결을 위한 참신한 의식과 생태학적인 지식을 토대로 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관점과 관념적 관점, 기술 지향적 환경론과 생태 지향적 환경론은 각각 문제 해결을 위해 항상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상호보완적 사상들이라 할 수 있다.

 

기술 지향적 환경론의 바탕이 되는 근대적인 사상과 과학 기술은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던 긍정적인 측면을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태계에 끼쳤던 영향은 간과할 될 수 없으며, 그것이 인간의 존립 자체에도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면에서 분명히 비판받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이 근대 과학의 철학을 오류로만 귀결시키고 생태 지향적 환경론만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분법적인 행동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젖어있었던 근대적인 패러다임으로의 편향을 극복하고, 이제는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를 포괄할 수 있는 생태 지향적 사고 방식과 생활 양식을 고려함으로써, 양자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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