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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역사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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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역사

성 하 창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시작되는 신정이면 사람들은 국가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설계를 한다. 옛부터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있고 일 년의 계획은 정초에 있다. ’고 하여 정초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신정의 1월 1일은 다른 날과 무엇이 다르며 무엇 특별한가? 강물처럼 쉬지 않고 흐르는 세월을 인간이 년, 월, 일과 같은 임의의 단위로 토막을 치자면 이런 단위들의 시작이 되는 시점을 정해야 할 것이다. 하루 또는 일 년의 시작은 어떻게 정해지는지 살펴보자.

하루와 시간

하루를 이루고 있는 낮과 밤은 자연현상으로서 낮은 해가 뜨면서 시작되고, 밤은 해가 지면서 시작된다. 낮이나 밤의 길이는 일 년 내내 변하지만 이 둘을 합친 하루의 길이는 대체로 일정하다. 그런데 하루의 시작을 해 뜰 때로 정해야 하는가, 해 질 때로 정해야 하는가? 원시 시대부터 해가 뜨면서 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전자를 택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해가 지면 일이 끝나며, 끝이 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므로 후자를 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나 민족에 따라 일출 또는 일몰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아 왔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에서는 해 뜰 때를, 유태인들은 해 질 때를 각각 하루의 시작으로 삼았다. 후자의 경우는 성경의 「창세기」에 잘 나타나 있다. 즉,「창세기」1장 5절을 보면,"‥‥‥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로 되어 저녁을 아침보다 먼저 적고 있는데, 이는 유태인들의 습관상 해 질 때가 하루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유태인들의 이러한 관습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어 그 영향으로 우리는 축제일이나 국경일의 전야제를 다음날 아침에 시작되는 원래의 날보다 더 즐기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또는 신정 이브는 글자 그대로 하자면 12월 25일 저녁 또는 1월1일 저녁이지만 실제로는 잘 아는 바와 같이 12월 24일 저녁 또는 12월 31일 저녁을 의미한다. 이것은 크리스마스나 신정이 유태인들의 관습처럼 '전날 저녁'에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현대에 와서는 하루의 시작이 해 뜰 때나 해 질 때가 아니다. 해 뜰 때부터 다음 해 뜰 때까지의 시간은 낮이 점점 짧아지는 반 년 동안은 24시간보다 조금 더 길고, 낮이 점점 길어지는 다음 반 년간은 24시간보다 조금 짧다.

일출과 일몰은 반대 방향으로 일어난다. 즉, 서로 접근하거나 서로 멀어진다. 따라서 정오나 자정은 일 년 내내 대체로 일정하므로 정오나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으면 좋다. 정오를 하루의 시작으로 정하면 사람들이 한창 활동하고 있는 대낮에 날짜가 바뀌게 되는 단점이 있으나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정하면 이와 같은 불편이 없다. 그러나 밤을 작업 시간으로 삼는 특수 직업인, 예를 들어 천문학자에게는 이것이 오히려 불편하여 이들은 굳이 정오를 하루의 시작으로 고집하여 왔다. 천문학자들이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채택한 것은 겨우 1925년부터이다. 시,분,초,와 같이 일보다 짧은 단위들은 모두 일이라는 단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시 또는 분을 하루의 시작에서부터 세어 나갈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의 시작이 달라지면 시간을 세는 방법도 영향을 받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를 해 뜰 때와 해 질 때부터 시작하여 각각 12시간씩 나누었다. 그 결과 낮이나 밤의 길이가 달라지면 시간의 길이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낮이 긴 6월의 한 시간은 밤의 한 시간보다 매우 길고 12월에는 반대로 된다.

이렇게 시간을 세는 방법의 흔적은 아직도 가톨릭의 '미사기간'에 남아있어서 오전 6시를 '프라임(1시)',오전 9시를 '티에르체(3시)', 오전 12시를 '섹스트(6시)', 오후 3시를 '논(9시)' 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논' 은 하루 중 가장 더운 때임을 주의하여 보자. 이때를 낮의 한가운데라고 볼 수 있는데 뒤에 '논'은 정오를 의미하는 영어의 눈(noon)으로 변하였다. 또 다른 예로는 하루 중 각기 다른때에 일군을 고용하는 포도원 주인을 예로 든 예수의 우화가 있다. 즉, 성경의 「마태복음」 20장 1절∼16절에는 하루의 맨 처음부터 와서 일하는 일군이나 하루의 맨 나중, 즉 11시에 고용된 일군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의 품삯을 받는 내용이 실려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11시는 일이 끝날 무렵, 즉 해 지기 한 시간 전을 의미한다. 이11시를 현대의 오전 11시나 오후 11시로 해석하면 안 되는 것이다.

주와 달

달의 모양은 1주일을 단위로 하여 그믐달⇒반달(상현)⇒보름달⇒반달(하현)⇒그 믐달로 위상 변화를 한다. 따라서 고대 중국에서는 달의 모양이 대체로 28일 주기로 반복되는 데에 착안하여 음력 1달을 7일씩 4등분하였다. 이 관습은 다시 고대 바빌로니아에 전해져 바빌로니아 인들은 7일마다 하루를 쉬는 제도를 만들었다〔그 이유는 그 날이 흉일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 기원전 6세기경에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붙잡혀 갔던 유태인들은 이 관습을 배워서 이스라엘에 되돌아온 후에도 주 제도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다른 종교적 이유를 붙였다. 즉, 성경의「창세기」2장 2절의,“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또 3절의“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등에 나타난 바와 같다.

여기서 유래하여 성경을 특별히 중요한 책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유태교의 안식일 ('사바스'―헤브라이어로 휴식을 의미한다)을 한 주의 일곱 번째 날, 즉 마지막 날로 정하였다. 이 날은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의 토요일이며, 일요일은 한 주의 첫 날이 된다(유태교의 안식일은 토요일이다.). 유태교와 달리 로마 시대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한 주의 첫 날인 일요일을 '주일' 이라고 부르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는데, 그들의 주장은 죽었던 예수가 되살아 났으며 그 날이 일요일이라는 것이었다.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되는 등 점차 유태교를 누르고 세력을 떨치게 되자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유태교도와 다르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독자적인 의식을 가지려 하였다. 그리하여 기독교 사회에서 는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을 안식일로 택하여 유태교와 구별하였다(바쁜 일상 생활에 쫓기고 있는 현대인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한데 합쳐 '주말'이라고 부르면서 모두 '안식'을 취하려고 한다. 주말의 특징은 교통 사고의 증가이기는 하지만, 이틀을 쉬고 난 현대인들은 월요일을 한 주의 첫 날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시간의 단위인 달은 원래 하늘의 달이 어떤 일정한 형태(위상)를 가질 때 시작하였다. 이론상 달의 어느 위상이든지 한 달의 시작으로 삼을 수 있으나 해가 진 직후 새 달이 가늘게 나타날 때를 월초로 삼는 것이 그럴 듯하다.논리적인 원시인들은 바로 그렇게 하였다. 현대에 와서 달은 하늘의 달과 관계 없이 연을 기초로 하여 정해지고 있는데, 년은 태양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러면 한해의 시작은 어디에 근거를 둘 것인가?

정초

원시 농경 사회에서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 주목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하루의 아침, 낮, 저녁, 밤처럼 반복됨을 깨달았다. 따라서 하루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한 해의 시작을 정하는 데 두 가지 선택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봄은 일년 중 일하는 때의 시작인데, 이것이 일년의 시작이 아닐까? 혹은 가을은 추수를 하고 일손을 놓는, 일하는 때의 끝인데 끝이란 새로운 시작이 아닐까? 천문학의 발전에 따라 봄은 춘분( 3월 20일)에, 가을은 추분( 9월 23일)에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사회에 따라 춘분이나 추분을 정초로 삼게 되었다. 예를 들면, 유태인들은 추분 무렵에 오는 티슈리 월의 첫 이틀을 신정 연휴로 삼았는 데, 이는 오늘날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에서도 추분을 정초로 삼은 예가 있다. 1792년 9월 22일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자 9월 22일을 정초로 삼고, 달의 명칭도 모두 바꾸었다. 그 후 13년간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달력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민간에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므로 결국 1806년 나폴레옹은 이를 폐지하고 말았다.

태양과 관련된 중요한 시점으로는 춘·추분 이외에 하지와 동지가 있다. 춘분이 지나면서부터 해는 점점 고도가 높아져서 하지( 6월 21일)에 가장 높이 뜨고, 낮도 가장 길어진다. 그후 차츰차츰 고도가 낮아져서 동지( 12월 21일)에는 가장 낮게 뜨고, 낮도 가장 짧아진다. 날씨가 무덥고 초목이 무성한 한여름은 걱정 없고 즐겁고 신나는 계절이며, 따라서 하지는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은 하짓날 밤의 부담 없고 즐거운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동지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천체 운행의 규칙성에 자신이 없었던 원시인들에게는 해가 점점 낮아지므로 이번, 즉 올해에는 해가 영원히 떠오르지 않아 봄이 다시 오지 못하고, 모든 생명은 죽게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점점 늦게 뜨고, 매일 매일 낮아지던 해가 멈췄다가 12월 21일부터 다시 솟기 시작할 때 그들의 경탄과 기쁨이 어떠하였겠는가! 그러므로 동지는 예로부터 여러 민족이 중요한 날로 여겼다. 해의 소생에 대한 기쁨은 결국 의식화하여 종교적 축제로 변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옛부터 동짓날 팥죽을 쑤어 문에 뿌리고 찹쌀 가루로 새알 모양의 경단을 만들어 시절 음식으로 썼다 〔그런데 이 풍속은 『동국세시기』 에 보면 역질 귀신을 물리 치기 위한 것으로서 중국의 형·초 지방풍속이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동지 무렵의 여러 날 동안 새턴(농업의 신 또는 토성)을 위한 축제를 벌였다. 이때에는 잔치를 베풀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그 기간만큼은 노예에게 자유를 주고, 주인이 그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새턴 축제 기간에 공연히 즐거워 날뛰고 술 취해 법석을 부리던 소란한 모습은 지금도 영어의 saturnalia 란 단어에서 엿볼 수 있다.

새로운 해가 솟기 시작하는 동지를 정초로 삼으면 어떠한가? 동지를 세수로 삼은 풍속은 여러 민족에서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동지를 아세라고 하여 설날처럼 여겼으며, 조선 시대에는 관상감에서 새 달력을 만들어 바치고, 왕은 이를 대소 관원에게 나누어 주는 풍속〔하선 동력〕이 있었다. 물론 역법에서도 동지를 중요하게 다루어, 백제에서 쓰던 원가력, 신라에서 쓰던 인덕력, 선명력, 고려의 수시력, 이조의 대통력, 시헌력 등을 막론하고 동지 세수라 하여 역의 기점을 동지에 두었다.

예를 들어, 선명력에서는 동짓달 초하루의 일진이 갑자이고, 그오전 0 시가 삭이면서 동시에 동지가 되는 시각, 즉 동지입기시각이 되는 때를 기점으로 택하였는데, 이것을 갑자야반삭단동지라고 하였다. 대체 이렇게 여러 가지 조건을 모두 구비한 날은 언제인가? 이 날을 찾아보면 선명력이 처음 실시된 당나라 장경 2년에서 무려 7,070,138년이 나 거슬러 올라간 해의 11월 초하루가 된다.

 

고대로마에서는 전통적으로 그들의 달력상 3월 15일이 정초였다. 이것은 정초와 춘분을 의도적으로 일치시키기 위한 것이었는데, 역법이 부정확하여 세월이 흐르면서 이 둘은 서로 어긋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줄리어스 시저는 새해의 시작을 1월 1일로 고치고, 이 날을 동지 근처에 두었다. 영국에서는 고대 로마의 풍습이 그대로 남아 1752년까지만 해도 3월 25일이 정초였다.

태양의 새로운 탄생을 기뻐하였던 고대인의 풍습은 어느 의미로 오늘날까지도 존속하고 있다. 로마 제국 시대에 서양 세계에서 세력을 키워 가고 있던 기독교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태양 숭배 신앙인 미스라이즘이었다. 여기서는 태양을 신격화한 미스라를 섬겼다. 미스라 신의 탄생 축제일은 당연히 동지 무렵인 12월 25일이었다. 그러므로 로마인들의 새턴 축제와 일치하는 시기에 있게 되었으며, 축제일로서는 좋은 조건을 갖춘 날이었다.

결국 기독교인들도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이라고 정하며 미스라 신의 탄생일에 대항하였다(성경에는 물론 이 날이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근거가 없다.). 이리하여 동지를 전후하여 농업의 신, 태양의 신, 하느님의 아들 셋이 나란히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연 호

해마다 지나가는 연들은 언제부터 세어야 하는가? 해마다 차례대로 번호를 매긴다면 어느 해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역사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던 고대에는 왕이나 통치자의 즉위 연도부터 시작하는 연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우리 나라나 중국에서 사용해 온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서양의 경우 어느 고대 도시에서 매년 통치자를 뽑는다면 연도에 숫자를 매기지 않아도 괜찮았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는 이렇게 선출되는 집정관의 이름을 연도 대신 사용하였다.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은 예전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의 연도를 기준으로 하여 그 후부터는 해마다 일련 번호를 매겨 나가는 방법이다. 이 경우에는 물론 음수가 생기지 않도록 기준 연도를 아주 멀리 잡아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픽 경기를 이 목적에 사용하였다. 4년을 한 묶음으로 하여 '올림피아드'라고 했는데, 이 올림피아드에 차례로 번호를 붙여 나가는 것이다. 한 올림피아드 속에서는 제1, 제2, 제3, 제4년으로 불렀다.

고대 서양세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연호는 '로마 연호(A.U.C.)'였는데, 이것은 로마시의 건립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즉 1A.U.C.(A.U.C.는 '그 도시 건립 연도'라는 뜻임.)는 제 6올림피아드 제 4년이 된다. 예를 들어, 한니발 장군이 패전한 자마 전투는 553A.U.C., 줄리우스 시저의 암살은 710A.U.C. 등이 된다. 로마 연호는 로마의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고대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서양의 중세까지도 쓰였다.

초기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기록이 올림픽 경기의 시작이나 로마 시의 건립보다 앞섰음을 보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가, 1050A.U.C.경에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카에자레아가 드디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이 로마 건립보다 1263년이나 앞서서 태어났음을 계산해 내었다. 따라서, 그는 이 해를 원년으로 삼는 아브라함 연호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1050A.U.C.는 아브라함 2313년이 된다.

중세 유태인들은 천지 창조가 로마 건립보다 3007년 앞선 해였음을 계산( ? )하였으며, 기독교의 다른 교회사가들도 천지 창조가 로마 건립 3251∼4755년 전이라고 계산하였다. 현재 유태인들은 그들의 달력을 현세력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천지 창조이후 지상의 일을 기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서기 1993년을 현세력으로 5754년이다. 즉, 올해는 천지 창조 후 5754년이 된다는 주장이다.

서력 연호

1288A.U.C.경 러시아의 한 승려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는 성경과 속세의 기록을 써서 예수의 탄생 연도가 754A.U.C.라고 계산하였다. 이것은 연호로 쓰면 좋으므로 기독교로 개종한 중세 프랑크 왕국의 샤레르망 대제 때에 와서 이 연호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디오니시우스 후 250년이 지난 때였다. 그러므로 754A.U.C.는 A.D.1년이 되고, 로마 시의 건립은 B.C.753년, 제 1차 올림피아드 제 1년 B.C.776년이 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서력 연호인데 문제는 디오니시우스의 계산이 틀렸다는 것이다. 「마태 복음」2장 1절에는 분명히,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로 되어 있다. 이 헤롯왕은 약 681.A.U.C.에 태어나 로마의 마크 안토니우스에 의해 714A.U.C.에 유대왕으로 임명되었다. 헤롯왕은 750A.U.C.에 죽었으므로(이 연도는 중동 고대사에서 알려져 있는 다른 연도만큼 정확하다.) 예수는 750A.U.C. 이후에 태어났을 리가 없다. 그런데 750A.U.C.는 디오니시우스의 계산 방식에 따르면 B.C.4년이 되므로 대개의 책에는 예수가 B.C.4년, 즉 예수 탄생 4년 전에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사실인즉 예수가 꼭 헤롯왕이 죽던 해에 탄생했으리란 법은 없으며,「마태 복음」 2장 16절에 따르면 헤롯왕은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2세 이하의 남아를 모두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이 말을 헤롯왕 생존시 예수가 2세였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예수의 탄생은 B.C.17년까지 추정하기도 한다.

그레고리력

우리가 쓰고 있는 서기 연호의 시점이 이처럼 불확실한 반면 일 년의 길이는 어떠한가?

4계절의 변화를 일으키는 자연적인 일 년의 길이(약 365.2422일)와 인위적으로 만든 달력상의 일 년의 길이가 같다면 계절의 변화와 달력상의 날짜가 어느 해에서든지 같아져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앞에서 예로 든 우리나라에서 쓰이던 각종 역법은 중국에서 들어온 것인데, 원가력에서는 1년이 365.24671일, 인덕력에서는 365.24478일, 선명력에서는 365.24479일 등으로 실제의 계절변화상의 1년의 길이인 365.2442일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은 달력을 오랫동안 사용하면 계절과 날짜 사이의 간격이 점차 벌어지게 마련이다. 이를 막기 위하여 역에 따라 독특한 방법으로 윤달을 두고 있다.

고대 로마에서 쓰던 태음 태양력의 사정도 동양의 역법과 마찬가지여서 가끔씩 윤달을 두어 계절과 달력상의 날짜를 맞추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해에 윤달을 두느냐를 정하는 사람들이 공화정 시절에는 정치적으로 선출되는 성직자들이었다는 데에서 문제가 생겼다.

동양에서처럼 엄격한 규정에 따라 윤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가 임의대로 일년의 길이를 길게 만들거나(자기편이 집권하였을 때), 짧게 만들었다(반대편이 집권하였을 때). 그 결과 B.C. 46년경에는 계절보다 달력상의 날짜가 80일이나 늦게 되었다. 줄리우스 시저가 집권하자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이집트의 우수한 태양력을 도입하여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였다. 우선 B.C. 46년의 길이를 445일로 정하였다(이 해를 로마사에서는 '대혼란의 해'라고 한다.). 다음해인B.C.45년부터는 1년 365일로 하고 4년마다는 366일로 하는 줄리우스력을 채택하였다. 즉 1년의 길이를 평균 365.2500일로 한 것이다. 또, 365일을 12달로 공평하게 분배한다면 7개월은 30일, 5개월은 31일이 되어야 하는데, 당시 로마에서는 2월을 불길한 달로 여겼기 때문에 특히 이 달을 짧게 정하였다.

이러한 줄리우스력은 니케아 종교 화의를 통해 기독교에서도 인정하게 되었고 크리스마스도 정식 축제일로 채택되었다.

줄리우스력에서는 1년의 길이가 365.2500일이므로, 1년의 길이가 0.0078일, 즉 11분 14초쯤 더 길다. 이 수치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128년이 지나면 완전히 하루가 빠르게 되는 것이다. 즉, A.D.325년의 니케아 종교 화의 시절에는 춘분이 3월 21일이었는데 A.D.1263 년경에는 3월 13일이 되었다. 이 해에 영국의 로저 베이컨은 사태가 심각함을 깨닫고 교황 우르반 4세에게 어떤 조치를 내려 주도록 청원하였다. 그대로 두면 부활절이 한여름에, 크리스마스가 봄에 닥치게 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300년간 이 문제를 검토한 끝에 교황 그레고리 8세가 단안을 내렸다. 즉, 1582년 10월 5일을 10월 15일로 바꾸어 10일을 건너 뛰었다. 이렇게 하면 춘분이 니케아 종교 화의 시절처럼 3월 21일에 오게 된다. 또, 400년에 한 번씩은 윤년을 없애기로 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인데, 400년 동안에 0.12일이 실제의 계절보다 빨라진다. 즉, 3400년에 하루가 빠르다. 가톨릭 국가에서는 그레고리력이 쉽게 채택되었으나 신교 국가들은 예전부터 써오던 줄리우스력을 고집하였다. 우선 개력 이후 첫 번째인 서기 1600년은 두 역법에서 모두 평년이므로 별탈이 없었으나 서기 년이 되자, 1일의 차이가 나게 되었고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이 굴복하여 그레고리력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영연방이나 그 식민지였던 미국에서는 1752년까지는 줄리우스력을 써오다가 이 해에 바꾸었다. 즉, 1752년 9월 2일을 9월 13일로 바꾸고 그 이후로는 그레고리력을 채택한 것이다. 아울러 정초를 종래의 3월 25일에서 1월 1일로 옮겼다. 이 무렵 영국에서는 신정 연휴가 1주일 동안이었는데 연휴의 마지막 날인 4월 1일 현대에 와서 '만우절'로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이와 같은 사정과 전혀 관계가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우절을 염두에 두는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날짜가 별안간 11일이나 건너뛰자 이 때문에 이득을 본 사람들은 이자나 집세를 받는 측들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만큼 자기 수명이 짧아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빼앗긴 11일'을 되찾으려고 각처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희랍 정교회에서는 아직도 줄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 달력으로 1월 6일이다(물론 그들의 달력으로는 12월 25일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가 쓰고 있는 1년의 길이도, 1년의 시점도, 연호의 시점도 모두 인위적인 것으로서 실제 자연 현상과 비교하면 부정확할 따름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생년월일과 같은 날짜에 중대한(?)의미를 부여해 가지고 길흉화복을 점치려는 태도는 정말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현대의 우리가 어째서 이런 사정을 잘 모르고 있는가? 우리 나라에서는 예부터 민간인이 천문 역법을 배우거나, 천문관측 기구를 소지하거나, 사사로이 역법을 만드는 일을 금해 왔다. 이 태조 때 지은 대명률직해, 예율, 의제편, 수장금서급사습천문조에 보면 이와 같은 짓을 한 자에게는 장일백의 벌을 내리고, 이를 고발한 자에게는 은 10냥의 상금을 내린다고 하였다. 원래 역일이 역서에 따라 달라지고 역가들이 자기 주장만 고집하면 국가적으로 혼란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역법과 천문에 관한 지식이 민간에 널리 퍼지지 못하였다. 이에 관한 연구도 부진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성하창/ 상계고등학교 교사이며, 저술로는 과학관련 서적 다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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