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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쓰고 돈 모으는 길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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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쓰고 돈 모으는 길

전 철 환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살려고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정신 세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옛 성현도 '먹고 입기 넉넉해야 예의를 안다'고 했다시피 경제적인 욕구가 채워져야 정신적이고 정치 사회적인 다른 욕구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영원한 진리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람의 기본 욕구는 아무래도 넉넉하게 먹고 사는 따위의 물질적인 부를 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밤낮없이 일하면서 돈을 벌려고 발버둥이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의 최고 가치는 아니지만 돈을 많이 벌어야 갖고 싶은 것도 많이 벌어야 갖고 싶은 것도 많이 가질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이 할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좋은 대우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를 빼면 일해서 버는 돈만으로는 이른바 부자가 되고, 하고 싶은 일이나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재산을 모으기가 매우 어렵다. 본디 일해서 버는 돈의 크기는 일하는 시간에다 임금과 급료율을 눈에 띌 만큼 높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부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대개 사업을 해서 이윤을 얻으려 하거나, 가진 돈을 남에게 빌려 주어 이자를 받거나, 토지나 건물을 사서 임대료를 받는 따위의 비노동(재산) 소득을 얻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윤과 배당, 이자, 임대료 들은 자산의 크기에다 수익률(이윤율, 이자율 및 임대료율 들을 두루 포함하는 종합표현이 수익률임)을 곱한 것이고, 이것은 적어도 자연적인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

 

이처럼 잘살고 싶어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재산 소득을 많이 얻고자 하지만,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거나 복권이 당첨되어 횡재를 하지 않는 다음에야 재산 밑천을 만드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일해서 임금과 급료를 받아 생활하는 웬만한 사람에게는 더 힘드는 일이다. 하지만 일해서 임금과 급료만을 받고 사는 사람이 재산 밑천을 만들기가 힘들다고 미리부터 좌절해서야 그나마 어느 세월에 조그마한 재산이라도 이룰 수 있을까? 그렇기에 밑천 없는 월급쟁이는 월급쟁이 나름대로 자기 처지에서 경제 법칙을 이해하고 생활의 슬기를 발휘해서, 조금씩이나마 재산을 모아 가고 경제적인 욕구를 채워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기야 어떤 사람이거나 그런 이치를 몰라서 재산을 모이지 못하거나 그럴 의욕이 꺾이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워낙 벌이는 워낙 적은데 쓸데는 많으니 저축이 어렵고 저축이 어려우니 재산을 모이지 못하는 처지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건 나라 살림이나 한 집 살림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1970년을 기준으로 해서 볼 때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집집이 100원을 벌면 2원 50전을 저축했으나 일본 가정의 돈벌이보다 훨씬 적기 때문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좀 높아졌다고 하는 1983년에도 우리 나라 가정에서는 100원을 벌면 7원 10전밖에 저축하지 못했다. 그것과 1970년의 일본 가정이 저축한 수준에는 도달해야 할 텐데 거기에 크게 미치지 못하니 우리의 생활 태도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소득이 우리 나라와 비슷한 성장 수준에 있는 대만 가정의 저축률과 견주면 더욱더 그렇다. 대만의 가정에서는 1970년에도 100원을 벌면 10원 90전을 저축했고, 1982년에는 14원이나 저축했음을 볼 때에, 재산 모이기 힘드는 까닭이 반드시 소득 수준이 낮은 데에 있다고만 주장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잘살고 재산을 모아 가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상책이겠지만, 짧은 시간에 그러기가 어려우니 소극적으로나마 저마다 생활의 만족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슬기롭게 소비함으로써 저축을 늘이고 재산을 모아 가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왜냐 하면, 현재의 우리 나라 소득 수준과 비슷했던 1970년의 일본 가정이나 1982년의 대만 가정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높은 저축(반대로 말하자면 낮은 소비)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생활의 만족도는 우리보다 훨씬 더 높지 않았나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는 적극적으로 많이 버는 방법 대신에, 소극적으로 슬기롭게 덜 소비하면서도 만족 수준을 크게 떨어뜨리지 않는 방안을 궁리해 보려고 한다.

 

소비의 몇 가지 성격

 

적극적으로 많이 버는 방법을 모르거니와 안다고 해도 그럴 능력이 없으면 덜 쓰면서도 많이 벌어서 많이 쓰는 사람만큼의 만족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생활 태도는 반드시 많이 벌지 못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많이 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꼭 갖춰야 할 태도이다. 다만 많이 버는 사람에게는 돈을 덜 쓰지 않더라도 쓸 돈이 많아서 생활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을 뿐이다. 더구나 우리 나라같이 나라 살림으로 보더라도 쓸 데는 많은데 저축한 돈이 모자라서 외국돈을 꾸어다 쓸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는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저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많이 번다고 해서 돈을 함부로 쓰거나 사치스런 생활을 하게 되면 가난한 사람에게 격차 의식을 자극해서 사회적인, 정치적인, 경제적인 반감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사이에는 틈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사회는 일체감을 잃어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경제 성장이 지체될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가진 사람이 살 수 있는 터전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슬기로운 소비의 길은 가진 사람에게나 못 가진 사람에게나 다 같이 필요한 생활 태도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고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질 때에는 흔히 슬기로운 소비 생활 태도를 지키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슬기로운 소비 생활의 길은 아주 가난하고 정체된 경제에서보다, 성장하는 경제에서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먼저 소비에는 어떤 성질이 있는지를 알고 슬기로운 소비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사람들의 소비 형태에 어떤 성질이 있을까?

 

첫째로, '소비의 불가역성 원리'라는 것이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질 때는 돈벌이가 잘 되니까 쓰는 것도 풍성풍성해져서 소비 수준도 같이 높아지기 마련이고 생활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진다. 그러나 경기가 나빠지고 돈벌이가 안 될 때라고 해서 소득 수준이 낮아지는 만큼 소비 수준을 낮추기는 어렵다. 왜냐 하면, 잘살던 버릇을 고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소비 수준을 낮추면 만족도도 떨어지는데, 만족도가 높아질 때는 즐겁지만, 만족도가 떨어지면 참기가 힘드므로 종전의 소비 수준을 낮추려고 하지 않는다. 소비의 그런 성질을 전문적인 말로 '소비의 불가역성 원리'라고 한다.

우리는 소비의 이런 원리가 적용되는 일을 지금도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고 실제로 경험해 왔다. 자가용을 손수 몰고 다니던 이가 어떤 이유로 갑자기 자가용을 굴리기 어려울 만큼 생활 수준이 낮아졌다면, 곧바로 전처럼 시내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을까? 대개는 그런 경우에 택시를 타기 쉬울 것이다. 더구나 아이들은 자가용 타던 버릇이 들면 시내 버스로 바꿔 타는 버릇을 새로 기르기가 대단히 힘들 듯하다. 그렇게 되니 옛날에 잘살던 버릇 때문에 높은 수준의 소비만 계속되고 소득은 없어서, 자연히 빚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모아놓은 재산이 넉넉치 않으면 말이다.

그런 소비의 성질로 보아서 생활의 만족 수준을 높여 가면서도 소비를 슬기롭게 해가려면 돈벌이가 잘될 때에 소비 수준을 늘어난 돈벌이에 못 미치게 잡도록 해야 한다. 사실 어떤 사람이거나 기본 생활 위에 문화 생활을 좀 유지할 수 있으면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생활에 대한 불편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경기가 좋아져서 소득이 많아지거나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소득이 많아지거나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소득이 넉넉해서 잘살 수 있는 이들에게,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평균 소비 수준보다는 조금 낮춰서 생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장래의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해서 바람직한 길임을 강조하고 싶다.

소비의 둘째 성질은 소비가 생존과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도 일어난다는 점이다. 사실 소비의 근본 목적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충족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최저 수준은 의식주에 국한된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문명 생활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욕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현대 생활 속에서는 모든 사람이 생활의 편리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의식주와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 생활을 나무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소비 형태에는 생존과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남에게 보여주고 과시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있다. 상당히 질이 좋고 값도 그리 비싸지 않은 국산품이 있는데도, 굳이 값비싼 외국제 상품을 사서 쓰되 다른 사람에게 그런 물건을 보이기 좋아하는 것이 그 보기에 든다. 아마 그런 종류로 대표되는 상품은 의류나 화장품일 것이다. 더구나 여자들은 되도록 값비싼 외제 화장품을 쓰면서 친구들에게 자기는 외제가 아니면 안 쓴다는 것을 자랑하기도 한다니 굳이 국산품 애용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가정 생활에 보탬이 되는 소비 생활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사람이 비록 얼마 안 된다 해도 그 소비 생활은 소비 지출을 늘려서 저축할 여유를 줄이는 원인이 된다.

그런 소비 형태의 성질을 전문적인 용어로는 '소비의 과시성'이라고 부르는데, 소비의 과시성이 있으면 객관적인 만족 수준은 높이지 못하면서 지출만 증대한다. 그러니 슬기로운 소비의 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소비는 자기 자신의 생존과 생활의 편리를 추구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는 점을 새겨 두고, 유난히 편리하나 소비 생활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물건을 사 써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보면 사치품이나 유명 상표 덕에 비싼 상품, 그리고 거개의 외국제 상품은 과시성 상품일 것이니 그것들의 선호도를 줄여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은 이런 상품의 선호도는 많이 줄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과시성 소비가 아예 손가락질을 받을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소비의 셋째 성질은 우리가 흔히 대기업들의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선전에 말려들어 소비 충동을 느낀다는 점이다. 사실 80년대에 들어와서는 우리 나라에서도 파는 쪽의 사람이나 기업이 시장을 좌우하지 못하고, 사는 쪽의 사람이나 기업이 시장을 좌우할 만큼 생산력이 커졌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들은 그들이 만든 상품의 구매 충동을 일으키기 위해서 온갖 광고망을 통해서 끈질기고 교묘한 방법으로 선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소비자들은 실제로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니고 급하게 쓸 것이 아닌데도 사고 싶은 충동이 생겨서 소비 지출을 늘리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 경우에 자식들이 쓸 물건, 특히 교육에 필요한 것일 때에 집중적이고 끈질긴 선전 광고가 부모의 구매 충동을 매우 강하게 부추기는 듯하다. 그 뿐만 아니라 여자 용품의 거개도 선전 광고에 매우 강한 구매 충동을 일으킨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리하여 실제로는 별로 쓰이지 않는 것인데도, 비슷비슷한 것을 여러 개씩 사서 한 번 쓰고 처박아두는 경우를 보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이를테면 교육용 외국어 테이프나 녹음기, 유행과 철따라 사 입고 사용하는 의류라든가 장신구가 그렇다.

그런 소비 형태를 전문 용어로는 '소비의 의존성'이라고 부르는데, 소비자 저마다의 자유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고 선전 광고에 따라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선전 광고에 따라 소비 욕구가 생기는 경우에는 소비가 소비자의 생존이라든가 편리를 헤아려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한편으로 꼭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구매 충동을 일으켜 과도한 소비 지출을 하면 늘 돈은 없애고도 그 소비가 그만큼의 만족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선전 광고가 극성맞은 세상일수록 선전 광고에 휩쓸려 소비 충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단단히 마음을 다져야 할 것이다. 선전 광고는 오직 비슷한 여러 상품을 소비자가 견주어 보기 위한 상품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이다.

그런 소비 형태의 성질 곧 소비의 불가역성, 소비의 과시성, 소비의 의존성에 비추어 볼 때에 개인적으로 보나 나라 살림으로 보나 합리적인 생활 태도를 갖고 슬기롭게 소비함으로써 소비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원칙은 알면서도 구체적으로 물건을 살 때에 어떻게 구매를 하면 그 원리를 충족시키면서도 생활의 불편을 덜어 가면서 문화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을 터득하기는 쉽지가 않다. 더구나 사람이 살면서 생존 수준만을 유지하기 위해서 죽자고 일하고 돈을 버는 것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 못지않은 문화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소비 지출을 줄여 나갈 수 있는 슬기로운 소비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슬기로운 소비의 길

 

슬기로운 소비의 길은, 먼저 가계비 지출 계획을 엄격하고 정확하게 세우고 그 한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물건을 사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어떤 사람에게나, 어떤 가정에나 꼭 필요한 지출 항목은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주ㆍ부식비, 주거비, 광열비, 세금과 공과금, 자녀 학교 공납금 들이 그것이다. 가계비 지출 계획을 엄격하고 정확하게 세워야 한다는 것은 그런 경비 지출 계획을 빠짐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세워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80년대로 들어서기 전에는 물가 변동이 하도 심하고 물건 사기도 어려울 때가 많아 필수품 구입 계획을 세워도 계획과 실천이 맞아 떨어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요 몇해 동안은 물가가 꽤 안정되어 있고, 물건 사는 데에 선택의 폭도 넓어져서 계획과 실천이 맞아 떨어지기가 쉽다. 그러므로 가계 지출 계획을 세울 때에 구입하고자 하는 상품의 제조 업체별 가격과 품질, 규격 들을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값싸고 질 좋은 것으로 구입할 계획을 세울 수가 있다.

더 나아가 그 계획에 따라서 생활 용품을 구입하기 쉬운 만큼 계획과 실천을 일치시키고 가계비 지출을 크게 줄일 수도 있다. 그런 계획성이 없이 부인들이 시장이나 백화점에 나가서 물건을 사게 되면, 잘 진열되고 화려하게 꾸민 환경 때문에 필요치 않은 물건, 필요한 것일지라도 값비싼 물건을 사기 쉽다. 그렇게 되면 지출 계획은 허사가 되고, 소비를 줄일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가계비 지출 계획을 세우기 전에 시장을 고루 둘러 보고, 다른 친구나 전문가를 통해서 상품의 가격과 품질, 규격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정확한 상품 정보에 따라 선택된 구입 계획품의 경우에는 웬만하면 상품 선택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자칫 잘못 판단하여 비싼 상품을 사게 되는 일을 피할 수 있고, 계획을 정확하게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말해 둘 것은 가계비 지출 계획을 세우거나 실제로 물건을 살 때에 헤아려야 할 점이다.

첫째로, 생활 필수품을 살 경우에, 정부의 소비자 물가 조사 대상품이 있으면 비슷한 다른 상품이 있더라도 소비자 물가 조사 대상 품목을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대개 정부의 소비자 물가 조사 대상 품목은 가격을 함부로 올리기도 어렵지만 품질을 눈에 띄게 낮추기도 어려우니 그런 품목은 안심하고 사도 된다. 어떤 것이 그런 품목인가는 경제 기획원 조사 통계국이나 소비자 고발 센터 같은 기관에서 알고 있으니 그곳에서 알아보기 바란다.

둘째로, 굳이 큰 백화점이나 크고 화려한 가게에서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흔히 노점이나 전문점이 많이 모인 상가 지역은 장소가 화려하지 못하고 진열이 질서정연하지 않아서 믿음이 덜 간다. 그러나 상품 정보를 충분히 알고 상품의 질을 판별할 수 있을 때는, 그런 곳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훨씬 값쌀 때가 많다. 특히 유의해서 부지런히 시장을 둘러보기 바란다.

셋째로, 특별히 유행을 타지 않는 상품은 대량 생산업체인 대기업 제품의 기성품을 사기보다 중소 기업이나 영세 전문 개인 업체에 물건을 주문해서 사는 것이 값싸고 질이 좋아서 가계비를 많이 줄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그런 보기는 양복이나 구두 같은 의류와 장신구에 많다. 사실 이름 있는 기성복보다 변두리 양복점이나 양장점이 우수한 디자이너나 숙련공이 있어서 값싸고 질 좋으며 유행 감각에도 맞는 옷을 지어 입기에 더 좋을 수가 있다. 가구도 그런 실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으니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문제는 어떤 업체가 그런 업체인가를 알아내는 것인데, 그것은 친구의 경험이나 자신의 실험을 통해서 터득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사람에게 믿음이 가야 하는데, 그 믿음이 경험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상품 구입 태도를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소비 생활 태도로서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오늘날처럼 제조 기술이 발전하고 업체가 커져서 하루하루 기술이 개발되고 새 상품이 쏟아져 나올 때는 새 상품, 유명한 제조업체의 제품, 값비싼 상품이 좋은 상품일 가능성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값비싸고 신상품이며, 유명한 제조업체에서 만든 상품이 반드시 '그 값만큼' 좋은 것일까? 식료품처럼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면 좀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값이 훨씬 싸면 유명한 제조업체가 만든 물건이 아닌 것이 경제적이면 실용적일 수가 있다. 따라서 그런 생각에서 가계 소비 계획을 세울 때에 앞에서 말한 슬기로운 소비의 길이 찾아진다는 것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다시 말하거니와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잘살고 싶어 하고 경제적으로도 잘살고 싶어 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 가운데서 경제적으로 잘사는 길은 많이 벌되 슬기롭게 소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극적으로는 소비 수준을 너무 높여서도 안 되고,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소비하는 과시 소비를 해서도 안 되며 선전 광고에 휘둘려 소비가 촉발되는 나약함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노랭이처럼 죽자고 벌기만 하고 죽어서 가져 가는 것도 아닌데 쓸 데 안 쓰고 안 쓸 데도 안 쓰는 사람이 되자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죽자고 벌되, 쓸 데는 쓰고 안 쓸데는 안 쓰는 슬기로운 소비 태도를 가진 구두쇠가 되어, 개인적으로는 현재도, 장래에도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닦고 국가적으로는 외국 빚 없이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자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진리는 역시 평범한 생활 속에 있으니 말이다.


전철환/서울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맨체스터 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회 정의와 경제의 이론」,「한국 경제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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