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사정도 제각각, 정치도 제각각

by 처사21
728x90
반응형

사정도 제각각, 정치도 제각각

 

장을병

 

민주 정치와 정당 제도

 

현대 민주 정치를 흔히들 '국민에 의한 정치'라고 하지만 그것은 한낱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고, 실제를 살펴보면 '정당을 통한 정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당은 바로 '국민에 의한 정치'를 실제적으로 대행하고 있는 기구이다. 현대 민주 정치를 정당 정치라고 규정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라이프 홀츠의 말을 빌면 "국민 의사나 일반 의사란 현대 민주 국가의 현실에서는 정당을 통해서 형성된다. 정당의 매개 없이는 국민들은 국가적 현상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고, 아울러 자기 자신의 의사를 정치적으로 구체화할 수도 없다."고 한다. 결국 일반 국민들의 의사가 정치에 실제로 투입되기 위해서는 정당이라는 조직체를 매개로 할 수밖에 없다.

설사 헌법상으로 주권 재민의 권리가 제아무리 밝혀져 있다고 하더라도 개개 국민들이 조직으로 결속되고 있지 않는 한, 정치적인 세력으로서의 힘을 발휘라 수는 없다. 또한 아무리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국민들의 수가 많고 그들의 의식이 투철하다 하더라도 조직으로 결속되지 않는 한, 정치 세력으로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듀베르테의 말을 빌면 '국민들의 수 그 자체 만으로서는 정치적 무기로서 무력하다. 조직화를 이루는 길만이 정치적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조직화란 주로 이익 집단과 정당의 조직화를 뜻하는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국민들의 의사가 정치에 효율적으로 투입될 수 있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이익 집단들이 형성되어야 하고, 그 집단을 토대로 국민적 혹은 국가적 단계에서 정당이 조직되어야만 한다. 설사 이익 집단들이 형성되어 있다고 하더라고 잡다한 이익들을 국민적 혹은 국가적인 단계에 집합시키는 정당 조직들이 없는 한 일반 국민들의 의사가 효과적으로 정치에 투입될 수는 없다. 민주 정치에서 정당 조직을 투입 가능의 대동맥이라고 일컫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 민주 정치에서 정당들의 기능은 첫째로 국민들을 통합하고 동원하는 기능, 둘째로 공공 정책을 제시하고 형성하는 기능, 셋째로 정치 엘리트들을 충원하는 기능, 넷째로 정부를 이끌어 가거나 비판하는 기능 등 네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의 정당들은 민주 정치의 중요한 기능들을 두루 도맡고 있다고 할 만하다. 정당들을 가리켜 민주 정치의 대행 기구라고 일컫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정당이란 명목상의 존립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서 열거한 정치적 기능들을 수행하는 기능 집단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제아무리 그럴싸한 간판을 앞세우고 있다고 하더라고, 앞서 열거한 기능들을 수행하지 못하는 정당은 있으나마나 한 것으로 된다.

때로는 정당은 있되 정당 정치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명목상 존립하고 있는 뿐 주어진 정치적 기능들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당을 고찰하고 규정할 때에 어디까지나 기능적인 접근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우선 전체주의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는 올바로 기능하는 정당이란 존재랄 수가 없다. 설사 명목상 정당이 존립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국가 권력 속에 매몰되어 자율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고, 따라서 국민들의 의사를 정치에 투입하기보다는 통치장의 의사를 산출(혹은 하달)하는 기능밖에는 수행할 수 없다, 한편 권위주의적인 국가나 과두(寡頭) 지배적인 국가에서도 올바로 기능하는 정당은 존립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나라들의 정당이란 고작 지배 계층의 이익을 대변할 뿐 일반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여 들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나라들의 경우 정당 제도란 예외 없이 일당제 내지 일당 지배 체제로 굳어지게 마련이다.

원래 정당(party)이란 그 어원에서 볼 수 있듯이 '일부분(part)'의 성격을 띠고 있고, 또 '일부분'이기 때문에 두 개 이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정당의 경우 하나라는 것은 곧 '전체'라는 것이고, '전체'라는 것은 곧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올바른 정당이란 둘 이상 존재해서 상호 작용을 하는 복수 정당 제도 아래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민주 정치 체제 아래에서만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정치 집단으로서의 정당들이 형성될 수 있고, 또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서 양면적인 매개체로서의 기능도 다할 수가 있다.

요컨대 올바른 정당이란 민주 정치의 산물이기도 하다. 구미 제국에서 정당의 성립이 많은 국민들의 공공 문제에의 참요 요구, 말하자면 민주화에의 요구가 비등해진 시기와 때를 같이했던 것은 우연아 아니다.

민주정치 아래에서는 정당들이 정치를 대행하거나 주도하기 때문에 정당 제도의 성격은 바로 그 나라의 민주 정치 체제의 특성을 규정짓는 중요한 요소도 된다. 이러한 정당 제도의 성격에 따라 민주주의 국가들을 분류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확고한 양당제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영·미 국가, 둘째, 무질서한 다당제로 혼란을 빚고 있는 유럽 대륙 국가들, 셋째, 정리된 다당제를 확립하고 있는 협동 민주주의의 국가들, 넷째, 민주 정치를 표방하면서도 일당 지배 체제로 신음하고 있는 개발 도상 국가들 등이다, 이제 이러한 네 가지 유형을 차례로 고찰해 보기로 한다.

양당제 아래의 영국과 미국

 

양당제의 전통이 가장 오래 지속되어 온 나라들이라고 하면 영국과 미국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두 나라는 한때 내적인 전통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는 양당제의 전통을 줄곧 이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우선 영국은 16세기 말엽에 종교 문제로 두 파로 분립된 이래 줄곧 양당제적인 성향을 띠어 왔다. 18세기 중엽에는 토리파와 휘그파로 양분되어 오다가,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던 19세기 중엽에 들어와서는 전자는 보수당으로, 후자는 자유당으로 개칭되면서 시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제각기 체질 개선을 이룩함으로써 현대적인 정당으로 이행하였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면서 노동자 계층이 정치에 참여하게 되자 이들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치 집단들이 형성되기에 이르렀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들 노동자 계층의 정치 조직들은 노동당의 간판 밑으로 흡수·통합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영국의 양당제적인 전통이 허물어지는 듯한 기미가 풍겼으나,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중도적인 처지에 몰렸던 자유당이 양분해서 우파는 보수당으로, 좌파는 노동당으로 흡수 통합되어 양당제적인 전통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한편 미국의 경우도 건국 초기부터 연방파와 분권파로 분립되면서 양당제의 성향을 띠기 시작해서 앵글로 색슨의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았다. 물론 미국의 경우 남북 전쟁이란 호된 내란을 치른 데다가 새로운 사회 계층의 대두로 인해 정당들의 체질 개선과 더불어 이합 집산이 빚어졌으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오늘날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제로 귀착되기에 이르렀다.

영국과 미국 두 나라에서 양당제가 이어져 온 이유들은 앵글로 색슨의 기질, 정치 제도, 특히 선거 제도의 특성 등 여러 가지로 열거할 수 있으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은 이들 두 나라가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두 나라의 역사 전개 과정을 보면 혁명적인 이데올로기의 침식을 당하지 않고 그때그때 주어진 문제들을 타협·조정하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온 전통을 함께 지니고 있다.

우선 영국을 보면 1698년의 명예 혁명을 통해 입헌 군주제를 수립한 후에는 두 번 다시 혁명의 소용돌이를 겪지 않았다. 물론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노동자 계층의 정치 참여 문제로 한때 소용돌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종국에는 지배 계층의 아량과 포용력을 통해서 원만하게 해결했던 것이다.

비근한 예로써 1867년의 제 2차 선거법을 통해 도시 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는데, 이렇듯 획기적인 개정 선거법을 보수당이 주도했던 점은 주목할 일이다. 기실 영국의 보수당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 변화에 적절히 순응하는 것이 요체'리고 하는 개혁적인 보수주의를 터득하고 있었다. 변화의 요구가 비등할 때, 지배계층이 그 요구에 순응해서 변화를 수용하면 , 구태여 유혈 혁명을 일으킬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노동자 계층의 참정권 문제가 제아무리 주요 쟁점이었다고 하더라도 자유·보수 양당간의 타협·조정으로 해결될 수 있었고, 또 평화적인 방법으로 참정권을 획득한 노동자계층도 투쟁적인 방법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을 터득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리고 자기네들의 요구를 포용해 주는 현존 정치 체제에 대해서도 숭앙심을 갖고 일체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1920년대에 노동당이 자유당을 대신해서 양당제의 일익을 담당했을 때도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개혁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생각에는 변화를 일으킬 수 없었다.

오늘날의 영국의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은 명칭상으로 볼 때는 계급 정당의 성격마저 띠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정치의 근본 월리, 말하자면 현존 정치 체제에 대해서는 함께 숭앙심을 갖고 있고, 함께 옹호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이들 양당은 현존 정치 체제의 테두리 속에서 다만 부차적인 원리, 말하자면 방법이나 절차상의 문제에 대해서만 경쟁을 빚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영국의 정치는 '체제 속에서의 경쟁' 이라고 일컫게 된다.

양당 정당 사이에 공감성이 있다는 면에서는 미국의 경우도 다를 바가 없다. 1860년대의 남북 전쟁을 통해 국론이 분열되어 적대시하는 일이 빚어졌지만, '누구에게도 보복은 없고 자비는 모두에게'라고 한 링컨의 주장대로 승자의 아량과 포용력을 통한 한때의 상처는 쉽사리 아물 수가 있었다. 더욱이 중산 계층을 기반으로 해서 발전해 온 미국이었기에 계급 의식이 싹틀 여지가 별반 없어서 양대 정당들 사이에는 정책상의 두드러진 차이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엄격히 따져보면 민주당은 진보적인 색채를 그리고 공화당은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지만, 이러한 차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양대 정당들 사이의 동류성 때문에 '미국의 정당들이란 상표를 달리한 두 개의 빈 병간의 경쟁'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영국과 미국을 정치 제도상으로 볼 때, 전자는 의원 내각제이고 후자는 대통령제고 큰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실제 정치 기능상으로 볼 때, 말하자면 행정부가 정치를 주도해 나가고 있다는 면에서는 유사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바로 두 나라가 함께 양당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데서 연유하고 있다.

의원 내각제이더라도 양당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선거에서는 자동적으로 다수당이 출현함으로써 선거란 바로 수상의 선거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영국의 총선거는 바로 국민들이 수상을 선출하는 것과 같고, 이것은 또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도 흡사하다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은 이처럼 정치 제도상으로 대조를 이루더라도 정치 기능상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이 두 나라를 한데 묶어 '앵글로 아메리칸 데모크라시(Anglo-american democracy)'라고 일컫는다.

무질서한 다당제 아래의 유럽 대륙

 

유럽 대륙의 민주 정치의 특성은 한 마디로 말해서 난잡하리만큼 무질서한 다당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전통을 지닌 몇몇 대정당들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군소 정당들이 난립해서 혼란을 빚어내고 있다.

군소 정당들이라고 해도 간판만을 갖고 있는 유명 무실한 정당들이라면 아예 무시해 버릴 수도 있지만, 유럽 대륙 국가들의 군소 정당들이란 의회 내에 의석을 확보하고 있고, 때로는 정치의 돌풍을 타고 심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수도 있으니까 문제인 것이다. 잠잠히 있다가도 어떤 바람을 타고 돌기하는가 하면, 기세 등등하다가도 쉽사리 수그러지는 포말 정당들(ephemeral patties)이 허다하다.

유럽 대륙 국가들 중에서도 무질서한 다당제의 대표 선수가 바로 프랑스이다. 정당들의 수가 정확히 몇 개라고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전통적인 대정당들(사회당·급진당·인민 공화당·공산당 등)을 제외하면 인물이나 선거 분위기에 따라 이합 집산을 거듭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 수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정치가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하던 제 3공화정 때 투표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당들의 수는 대체로 12개 정도였다고 한다. 가히 다당제 국가들의 대표선수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다당제적 전통은 제 3공화정 때만의 현상이 아니고 제 4공화정기에도 그대로 이행되었고, 심지어 프랑스 정치가 정리기에 접어들었다고 하는 제 5공화정에 와서도 이러한 전통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 프랑스에서는 어찌해서 정당들이 난립해서 혼란을 빚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밝혀지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정치 문화의 하부 구조가 이질적이고

분파적이며 대립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정치 문화의 하부구조가 이렇듯 이질적이고 분파적이며 대립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주로 역사의 진행 과정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근대 이후의 프랑스 역사를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철저한 절대주의 체제였고, 그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혁명도 가장 과격한 것이었다. 앞서 살펴본 영국의 역사와는 달리 프랑스의 역사는 타협이나 조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물리적인 힘에 의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었다.

 

영국은 1689년의 명예 혁명이 마지막 혁명이었지만, 프랑스는 1789년의 대혁명이 혁명의 시발이었다. 그 후 힘의 작용을 통해 정치 체제가 바뀐 것만도 열다섯 번을 넘을 정도였다. 교체되는 정치 체제의 성격은 극에서 극으로 내닫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는 유혈이 동반되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는 타협이나 조정이 이루어질 리 만무했고, 피의 응어리가 맺혀 역사의 찌꺼기가 남기 마련이었다. 하나의 정치 체제를 뒷받침했던 세력은 제각기 응어리로 남아 자기 나름의 세계를 그리게 되었다. 여기서 프랑스의 정치 문화는 이질적이고 분파적이며 대립적인 성격으로 굳어졌고, 그 결과 다당제가 자리잡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정치 체제가 안정세를 굳힘에 따라 이러한 성격이 어느 정도 순화되어 가는 조짐이 있다고는 하더라도 (예로서 유로 코뮤니즘의 성격 변화), 아직은 이러한 성격이 일소된 것 같지가 않다.

유럽 대륙 국가들 중에서 프랑스와 정당 제도가 정치 체제가 비슷한 나라는 이탈리아라고 할 수 있다. 지난날 독일의 경우도 이러한 범주에 속했지만, 전후 서독의 경우만은 오히려 분단을 통해 이데올로기 논쟁이 해결됨으로써 사민당·기민당·자민당 등으로 정리·통합되고 양극 세력들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그 외 유럽의 여러 나라들, 특히 스위스·네덜란드·벨기에·오스트리아 등은 겉으로는 다당제로서의 기본 성격을 지니면서도 정치 엘리트들의 각성 내지 정치 제도의 정비를 통해 다음에 언급할 협동 민주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정리된 다당제 아래의 협동 민주주의

 

협동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면 앞서 지적한 유럽의 소국가들과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들 나라가 협동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처한 불리한 지정학적인 요건과 정치 문화적인 여건의 반사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지정학적으로 볼 때 이들 나라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던가, 아니면 강대국들에게 침략을 당한 쓰라린 경험을 가진 나라들이다. 말하자면 이들 나라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경험을 맛보았던 나라들이다. 따라서 이들 나라의 정치 엘리트들은 강대국들의 위협 밑에서 어떻게 하든 국가를 보위해야 하겠다는 의식을 함께 지니기에 이르렀다.

그런가 하면 이들 나라의 정치 문화의 하부 구조를 보면 유럽 대륙을 휩쓴 갖가지 혁명들을 겪음으로써 이질적이고 분파적이면 대립적인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분열적인 성격이 그대로 노출되면, 강대국들의 제물이 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러한 불리한 여건들을 극복하지 않는 한 나라를 지켜 나갈 수 없다는 절박한 의식이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 싹트기 시작했고,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 협동심이 우러나오기에 이르렀다. 협동 민주주의의 '협동'이란 바로 정치 엘리트들 사이의 협동심을 뜻하는 말이다. 요컨대 협동 민주주의는 분열적인 정치 문화로 인해 불안정한 민주 정치를 안정된 민주 정치로 이행시키기 위해 고안된 정치 엘리트의 카르텔을 통한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나라의 경우는 정치 문화의 하부 구조가 이질적이고 분파적이고 대립적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당제의 성향을 띠게 마련이다. 따라서 협동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 구조적인 특성은 다당제라는 데 그 공통성이 있다. 그러나 다당제이면서도 유럽 대륙의 대국들 마냥 무절제한 다당제가 아니라, 정치 엘리트들의 협동심을 통해 조정·통합된 절도 있는 다당제라는데 차이점이 있다.

이들 나라는 대체로 균형 있는 3당제 내지 4당제를 취함으로서 질서 있는 다당제라고 불리 우는데, 어쨌든 다당제이기 때문에 연립 정부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립 정부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양당제인 영·미의 민주 정치보다도 더 안정성을 누리고 있다는 데 특징이 있다.

흔히들 양당제는 안정된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방면 여론을 두 갈래로밖에 반영시킬 수 없는 약점이 있다고 하고, 거꾸로 다당제는 여론을 여러 갈래로 반영시킬 수 있는 반면 안정된 정부를 구성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고 하는데, 앞서 고찰해 보았듯이 협동 민주주의 국가들은 다당제를 기반으로 함으로써 정치에 여러 갈래의 여론을 반영시킬 수도 있었으면서, 아울러 안정된 정부도 구성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협동 민주주의는 지상에서 가장 바람직스러운 민주 정치라고 평가해도 크게 무리가 아닐 성싶다. 다시 말해 기후나 토양이 조악한 곳에서 오로지 인간의 알뜰한 노력을 통해 민주주의 소담스러운 꽃을 피운 결과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질적이고 분파적이고 대립적인 정치 문화에서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 이처럼 협동을 이루고 유지해 나가는 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들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구가에 대한 대외적인 위협의 존재이다. 대체적인 경우 대외적인 위협은 정치 엘리트들에게 서로간 통합하고 협동할 필요를 각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인 위협은 가 집단들 사이의 결속도 강화시키지만, 각 집단 내부에서 지도자와 추종자들 사이의 결속도 강화시킨다.

둘째는 사회 구조상으로 권력의 이원적 균형이나 한 집단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현상 대신 집단들 사이에 다원적인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의 집단이 다수파일 때 그 지도자들은 소수파와 협동하기보다는 지배하려고 들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두 개의 집단들이 팽팽히 맞서 있는 곳에서는 두 집단의 지도자들은 투표에서 다수를 차지할 가망을 노려서 협동보다는 지배를 통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셋째는 나라의 정책 작성 기구들에 주어지는 전체적인 부담, 말하자면 난제가 비교적 적어야 한다. 그리피드의 말대로 "민주 정치는 다른 조건들이 같을 때는 작은 나라들에서 더욱 잘 존속해 나갈 수 있다. 작은 나라들이 좀더 다루기 쉬운 까닭이다." 앞서도 지적했다시피 협동 민주주의 국가들은 비교적 작은 나라들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민주 정치란 토양이나 여건을 갖추어서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엘리트들이 각성해서 협동하면 오히려 조악한 토양이나 여건을 역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현재 협동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나라들과 같은 여건은 아니더라도 유사한 여건에 처해 있으므로 이들 나라로부터 많은 시사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는 한낱 목표로만 설정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지기 위해 알뜰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되씹게 된다.

정당 미비의 개발도상국들

 

정당은 민주 정치를 주도하는 기구이면서 또한 민주 정치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앞에서 밝힌 바다. 민주 정치와 정당의 관계는 상호 작용의 관계이다. 이들 사이에는 순환론이 적용될 수도 있다. 말하자면 민주 정치가 어느 정도 다져져야 정당이 자리를 잡을 수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정당들이 뿌리를 내려야 민주 정치가 올바로 실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른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역사에서도 쉽사리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개발 도상 국가들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개발 도상 국가에서 민주 정치가 정착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정당들이 미비해서 대중의 저변에까지 뿌리를 내리지 못한 탓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정당들이 미비한 것은 정치 엘리트, 특히 통치자들의 권위주의적인 사고로 민주 정치가 채 실현되고 있지 못한 까닭이라고 할 수도 있다.

민주 정치와 정당과의 관계는 상관 관계에 있으므로 인과론으로 따질 수는 없다. 다만 정당 제도라고 하는 측면에서 보면 개발 도상 국가들의 경우는 극히 소수의 나라를 제외하면 대체로 권위주의적인 일당 지배 체제이던가, 아니면 정당들은 명목상의 존재일 뿐 정치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면 개발 도상 국가에서 복수 정당 제도가 자리를 잡을 수 없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엄격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요인들이 밝혀지겠지만, 그 주된 요인은 통치자의 권위주의적 성격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개발 도상국가의 통치자들은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인물이거나 군부출신이 대다수이다. 이들의 사고 방식은 비판을 꺼리고 일사불란한 명령체제를 숭상한다. 게다가 이들은 조속한 국가 발전을 지상 과업을 설정하고 있다. 요컨대 시급히 근대화를 서두르기 위해서는 국정을 일사불란하게 밀고 나가야 하겠다는 것이다. 명령체제를 숭상하는 그들의 사고 방식에 근대화의 추진이라고 하는 그럴싸한 명분마저 갖추어진 것이다.

개발 도상 국가의 통치자들이 근대화를 구실 삼아 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 체제를 수립하면 그들은 으레 비판 세력과 반대파를 국가 발전의 적으로 몰아서 억압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비판 세력이나 반대파가 억압될 때 통치자들은 상징 조작을 통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국민들을 외곬으로 몰고 간다. 이럴 때 정당들은 고사하고 매스미디어, 노동 조합, 기업, 심지어 대학 등도 자발성과 자율성을 상실하고 통치자로부터 내려오는 지시에 예속되고 만다.

이런 나라에서는 통치자의 요구와 필요에 순응하고 그 비호 아래에 있는 정당, 말하자면 외생 정당만이 존립하고,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율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정당, 말하자면 자생 정당은 존립할 수 있는 터전을 잃고 만다. 개발 도상 국가가 일당 지배 체제로 굳어지고 균형 있는 복수 정당제가 수립되기 힘든 요인이 바로 여기에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이 일당 지배 체제 아래 있는 일반 국민들은 지배 정당에 가입하지 않고서는 그 정치 체제에 접근할 수 없으므로 지배 정당에만 편파적으로 참여한다. 여기서 반대당은 만년 야당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껍데기만 앙상하게 남게 된다.

물론 개발 도상 국가에서 근대화를 조속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당 지배체제가 일시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당 지배 체제는 효율적인 통솔력을 통해 국민들을 동원함으로써 급격한 변화에 쉽사리 적응할 수 있고, 특히 발전 초기 단계에는 국민들의 행동을 하나의 구심점으로 조직화하는데 유리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엄격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당 지배 체제는 비판이나 반대를 억압함으로써 국민들 속에 내재된 불만 층을 정치 체제 속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는 게 커다란 약점이 있다. 그리고 정치체제 안에 대체 세력을 길러 내지 못한다는 데도 또 하나의 약점이 있다. 밀리칸의 말대로 가장 무서운 것은 '낡은 가치가 안전장치의 힘을 잃었는데 거기에 대체해야 할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 일'인 것이다. 따라서 민주정치에서 반대당이란 삼중 보험(三重 保險)의 구실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집권당이 과오를 범할 때 앞질러 그것을 지적함으로써 교정을 촉구해 준다는 데서 하나의 보험이고, 둘째는 국민들 중에 불만 층을 체제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데서 또 하나의 보험이며, 셋째는 집권당이 통치 능력을 상실했을 때 대체 세력으로 이바지한다는 데서 역시 또 하나의 보험이다.

따지고 보면 개발 도상 국가들의 정치는 반대당의 존립을 허용하지 않거나 그것을 형해화(形骸化)함으로써 민주 정치의 보험을 소홀히 하는 데서 정치적 불안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장을병/ 성균관대학교 총장 역임 및 국회의원 , '한국정치론', '인간 회복의 정치론' 등이 있다


 

728x90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독서창고

처사21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