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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속의 한국 경제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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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속의 한국 경제

이한경

 

 

세계 경제란 무엇인가

 

최근 세계 경제를 보면 각국간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고 있는 듯하면서도 서로간의 이해 관계가 날카롭게 대립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의 개방, 개혁 정책의 영향으로 세계 경제는 활기를 보이면서도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

전 세계에는 크게 보면 현재 선진 자본주의 국가군, 개발 도상 국가군, 사회주의 국가군 등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개발 도상 국가들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세계 경제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다. 국민 경제가 국내의 각 경제 주체의 이해 관계에 따라 편성되고 움직이듯이 세계 경제도 마찬가지로 각 국가들 사이의 이해 관계에 의해 편성되고 움직여 나간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 경제를 이해하려면 각 나라들 사이의 이해 관계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역학 관계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후진국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이해 관계와 힘에 의해 세계 경제가 좌우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후 세계 경제, 미국 주도의 IMF와 GATT체제

 

우리는 2차 대전 이후의 세계 경제를 가리켜 흔히 전후 세계 경제라고 부른다. 그러면 전후 세계 경제가 그 이전과 뚜렷이 구별되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2차 대전을 통해 명실공히 세계 경제 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은 종전과 함께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의 수립에 착수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이 중점을 둔 것은 세계 시장의 독점적․통일적 지배를 위한 국제 무역 체제 및 이를 통화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국제 통화 체제의 구축이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국제 무역 측면에서는 자유 무역 원칙에 입각한 GATT체제, 국제 통화 측면에서는 달러를 기축 통화로 하는 IMF체제였다. 이후 미국 주도의 IMF와 GATT체제는 다소의 우여 곡절을 겪으면서도 오늘날까지 전후 세계 경제의 기본적 틀로 유지되어 오고 있다. 당시 미국이 자유 무역 원칙을 내세운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이 최대의 공업국이고, 따라서 세계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IMF체제는 각국 간 가치의 안정과 국제적 차원에서 결제 방법을 통일하는 것을 그 주된 목표로 하고 있었다. IMF체제의 성립에 의해 달러화는 금과 함께 세계 통화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받았으며, 동시에 각국은 금 또는 미 달러화에 대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할 의무가 부과되었다. 미국은 각국에 대해 환율을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후진 공업국이 경쟁력 제고 수단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환율 절하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으려 했던 것이다. 이처럼 GATT와 IMF로 집약되는 전후 세계 경제 질서는 당시 세계 최대의 공업국인 미국의 의도가 일방적으로 관철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는 미국 경제의 세계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후퇴한 반면 일본과 EC나라들의 경제적 지위는 꾸준히 상승하고 발전 도상국들도 제국주의적 경제 질서에 나름대로 저항해 나가자 커다란 대립과 균열을 낳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전후 세계 경제의 한 축인 IMF체제는 50년대와 60년대를 통해 미국의 과도한 군사비 부담과 대외 원조가 누적되면서 미국의 국제 수지가 악화됨에 따라, 우선 1971년에는 금과 달러화의 교환이 정지되고 1973년에는 고정 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 환율제로 이행함으로써 사실상 붕괴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GATT체제 역시 70년대 이후 미국의 보호주의 경향이 확대되면서 그 동요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면 전후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지위에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변화하는 세계 경제 내의 세력 판도

 

최근 들어 우리는 미국의 몰락 또는 미국의 쇠퇴라는 얘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다소의 과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직도 미국은 여러 면에서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2차 대전 직후의 미국과 오늘날의 미국을 비교할 때 세계 경제 내에서 미국의 지위와 비중이 크게 저하한 것 역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도표1]은 전후에 세계 경제 내에서 주요 선진국의 경제력 변화 추이를 정리한 것이다. 이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 경제 내에서 미국의 비중 저하는 GNP, 수출 등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서독과 일본의 비중은 매우 뚜렷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70년대 이후 아시아 신흥 공업국들의 부상도 세계 경제 판도의 변화에 일정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미국 경제의 쇠퇴는 무엇보다도 대규모 무역 적자의 지속과 순채무국으로의 전락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75년까지만 해도 무역 흑자를 기록하였으나 1976년 이후 무역 수지가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80년대 들어와서는 무역 적자가 대폭적으로 증가, 1984년에 1,000억 달러를 넘어선 후 1989년까지 6년 연속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채무국으로 전락하면서 1989년 말 미국의 대외 순채무는 5,325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미국은 1986년부터 3년간 서독에게 세계 최대 수출국의 지위를 빼앗겼으며, 1989년에는 전후 처음으로 미국내 외국인 투자(잔액 기준)가 미국의 대외 직접 투자를 초과하여 직접 투자에서도 입초국 (수입 초과국)으로 전락하였다. 미국이 오늘날 이처럼 압도적인 경제적 우위로부터 쇠퇴해 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일본이나 EC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하여 미국의 강력한 경쟁 상대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국이 일방적인 경제적 우위를 누리던 시기가 지나가고 순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미국, 일본, EC등으로 경제 중심이 다극화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둘째, 미국이 패권주의적인 군사 정치 전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빠지게 된 모순 때문이다. 미국은 냉전 수행이나 군사 파병, 경제 원조 등을 통해서 전후에 선진 자본주의 나라나 후진국들을 종속적 동맹 내지는 재식민지화하는 노선을 취해 왔는데 이는 한편으로 미국의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주요한 수단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에 국제 수지 적자 그리고 과다 군사비 지출에 따른 재정 적자를 증가시켰다.

셋째, 미국은 다국적 자본(자본 수출)을 통해서 후진국에서 이익을 빼돌려 왔는데 이것이 미국의 국민 경제를 공동화시키고 (전통적 산업, 가령 경공업·제철 산업의 낙후 및 사양 산업화) 또 경제의 군사화에 따라 국민 생활과 밀접하거나 산업 생산에 기초적인 산업을낙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경공업이나 기초 중화학 제품이 신흥 공업국에서 재수입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 같은 처지에 몰리자 정치 군사적·경제적 우위를 뒷받침으로 하여 상대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강요하는 한편 자신의 국제 경쟁력이 취약한 산업에 대해서는 보호주의의 벽을 쌓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한국과 같이 자신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무차별적인 개방 압력을 가해 오고 있는데 이는 전자의 예이다. 그리고 후자의 예로는 슈퍼 301조의 발동 위협이다. 이 같은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로 각국간에 통상 마찰이 확대되고 급기야 세계 경제는 무역 전쟁이나 경제 전쟁을 야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세계 경제 체제의 재편 움직임, 지역주의와 우루과이 라운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오늘날 세계 경제는 미국의 쇠퇴와 함께 유럽, 일본 등의 경제적 비중의 증대되면서 소위 다극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힘의 변화는 미국의 압도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구축된 전후 세계 경제 질서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오고 있으며 특히 70년대 이후 약화 일로에 있는 미국과 80년대 전반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경험했던 유럽이 이러한 바람의 근원지가 되고 있다.

80년대 후반 이후 본격화되고 있는 세계 경제의 재편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 할 수 있다. 하나는 지역주의 또는 경제 블록화이며 다른 하나는 우루과이 라운드이다. 이 가운데 지역주의 움직임은 EC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유럽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위기를 통해 경기 침체를 겪어야만 했던 유럽은 80년대 들어서도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세계 경제에서 EC의 지위 저하, 첨단 기술 산업 부문에서의 미국·일본과의 기술 격차 확대 등으로 위기감을 느껴 왔다. 이에 따라 80년대 후반 이후 통합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C통합은 1992년 말 완성을 목표로 역내 국가 간에 존재하는 물리적, 재정적, 기술적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실질적인 단일 시장을 창출함과 함께 금융 측면에서는 단일 중앙 은행과 단일 통화의 도입까지 게획하고 있다. 이러한 EC의 통합 움직임은 소위 '유럽의 요새화'라 하여 다른 나라에는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냐 하면, EC통합으로 세계 최대의 시장이 될 유럽은 역외 국가에게는 경쟁상의 차별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 일본 등은 통합된 EC가 배타적인 경제권이 도지 않도록 EC의 통합 작업을 견제하는 한편 이에 대항하기 위한 별도의 경제 블록의 형성에 나서고 있다. 즉, 미국의 경우에는 캐나다, 이스라엘, 멕시코 등과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 또는 추진하는가 하면 북미 경제권과 중미 경제권을 연결하는 미주 자유 무역 지대 구상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70년대 이후 세계 경제 내에서 그 비중이 급격히 증대해 온 아시아 제국들은 특히 EC통합에 대항하기 위해 1989년 아·태 경제 각료 협력 회의를 창설하는 등 아·태 경제 공동체 설립을 서서히 모색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지속될 경우 세계 경제는 멀지 않은 장래에 유럽, 미국, 일본을 각각의 중심으로 대응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가령 기존의 동남아의 아세안(ASEAN)이나 중남미의 중남미 통합 연합(LAIA), 아랍 지역의 걸프 협력 위원회(GCC)들도 각각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으며 이외에도 서남 아시아나 태평양, 아프리카 등지에서 새로운 상호 협력 기구를 결성할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제 블록화가 추진되는 한편으로는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자유 무역주의 경향도 강화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자유 무역의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자국의 경제적 곤란을 타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무역의 1/3 가량이 우루과이 라운드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의도는 우루과이 라운드가 다루고 있는 안건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서비스, 지적 소유권, 외국인 투자에 대한 투자 제한 조치의 완화 등 선진국의 이해와 밀접히 관련된 사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서비스 산업의 경우 금융, 운수, 통신, 광고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분야에서 후진국의 시장이 선진국에서 개방될 경우 이는 후진국 경제에 파멸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이 분명하다. 특히 세계 최대의 농업국인 미국은 자국 농산물의 해외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농산물 교역의 자유화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우루과이 라운드는 15개 안건을 둘러싸고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선진국 상호 간에 복잡한 이해 대립을 보이고 있고 그 때문에 당초 협상 만료 시한인 1990년 말까지 타결하는 데 결국 실패하였다. 그러나 우루과이 협상이 실패할 경우 각국 간의 쌍무 간 무역 협상은 여전히 남게 되어 치열한 무역 보복전도 예상되므로 어떻게든지 타결 전망은 높다고 보인다.

국제 분업 구조의 재편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앞에서 본 세계 경제의 흐름이 한국 경제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와 어떠한 연관을 갖고 있는가, 한국 경제가 어떠한 내적 구조를 갖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경제는 국제 분업 구조에 수직적으로 편입되어 있다. 세계 경제는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게 지배되면서 수직적인 국제 분업 구조를 형성해 왔다. 국제적인 분업 구조는 처음 '선진 자본주의 나라는 공업, 후진국은 농업'에서 점차 '선진 자본주의 나라는 중화학 공업, 후진국은 경공업' 식으로 변화되어 왔다. 한국이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경제 개발 계획을 수행해 왔던 것은 이러한 국제 분업 구조에 힘입어서였다. 이러한 국제 분업 구조는 70년대 후반 들어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이 기술 집약적인 고부가가치의 중화학 공업을 맡는 대신 한국 등 소위 신흥 공업국들은 노동 집약적인 저부가가치의 중화학 공업과 첨단 부품 생산을 맡는 식으로 이행해 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1973∼1975년, 1980∼1982년 두 차례에 걸친 공황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자본 축적 구조를 일정하게 바꾸도록 강제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너지 절약적 산업 구조와 과학 기술 혁명의 촉진이었다. 50∼60년대 주요 선진 제국의 경제력이 의존하고 있던 전통적 공업 부문(경공업)의 쇠퇴, 하이테크놀로지 부문의 급격한 고양, 일부 전통적 공업 부문의 신흥 공업국으로의 이전, 세계 무역에서의 과학 집약적인 생산물과 서비스재 비율의 상승 등은 과학 기술 혁명이 급속히 진전된 배경은 1973년 석유 위기로부터 시작된 1974∼1975년의 세계 경제 공황이다. 여기에서 천연 자원을 수입해서 써야 하는 경제 발전의 한계가 드러난 결과 에너지 절약적인 기술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0∼1982년의 공황은 미국 내 전통 산업 부문의 급속한 몰락과 하이테크 산업의 상대적 우위를 초래하였다. 우주 항공, 전자 통신, 원자력 등의 첨단 산업은 미국 독점 기업의 핵심적인 생산 기반임과 동시에 미국 경제가 생산력 우위를 갖는 고도 기술 산업군이다.

70년대 중반까지 우리 나라의 무역 구조는 섬유, 의류, 신발, 잡화 등 주로 노동 집약적 경공업 부문의 제품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수출하고 여기에 필요한 생산 수단은 일본 등에서 수입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이후 세계 경제의 위기와 선진 국가의 불균등한 발전, 그리고 유가 상승을 원인으로 하여 미국 등 선진국들은 산업구조를 기술 집약적인 산업 중심으로 재편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분업 구조, 좁게는 한·미·일 국제 분업 구조도 변화하였다. 이러한 국제 분업 구조의 재편은 국내에서는 조립 가공하거나 부품 생산을 맡는 노동 집약적인 중화학 공업 발전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여기에 필요한 자본은 차관 및 직접 투자 등에 의해 조달되었다.

한·미·일 간의 국제 분업 구조의 재편의 기본 방향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선 미국은 극소 전자(Micro-Eiectronics) 혁명에 의한 컴퓨터와 정보의 결합으로 나타난 새로운 첨단 산업과 군수 산업을 좀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철강, 자동차, 전기 전자와 같은 전통적인 중화학 공업 부문에서 미국 자본은 이 부문의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일본과 직합작 투자를 통해 기술을 흡수함으로써, 그리고 노동 집약적인 부문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 공업국과의 기업내 국제 분업과 국제적 하청 생산을 통해 부품을 공급하거나 저부가 가치 부문의 생산을 이들 지역이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국제 분업 구조를 이루었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70년대 중반 감량 경영, 경영 합리화 등을 실시하여 자동차, 전기 전자, 일반 기계 등 전통적 중화학 공업 부문의 경쟁력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품은 주로 미국에 수출되었다. 일본은 전통적 중화학 공업 부문의 비약적인 발전을 새로운 과학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확산, 흡수하기 위해 대대적인 설비 투자를 실시하였다. 이에 비해 그 당시 주력 수출 상품이었던 전기 전자, 자동차 등의 전통적인 중화학 공업 부문에서는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의 강화와 대미 수출 자율 규제 등 여러 가지 통상 압력을 계기로 하여 미국 현지 생산을 통한 시장 확보로 전환하였다.

엔고로 결과된 미일 간의 마찰로 일본은 자본 축적 전략의 전환이 불가피했다. 즉, 일본은 대미 현지 생산 이외에 대미 수출용 최종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중간재의 생산을 한국 등 아시아 신흥 공업국, 아세안으로 떠넘기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 독점 자본의 이들 지역에 대한 직접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섬유와 의류 등의 노동 집약적 산업의 대미 수출이 점차 감소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저부가 가치 및 저기술 수준의 중화학 공업 부문의 대미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즉 전기 전자 중에서는 TV, 라디오 등 가정용 전기 전자 부문과 조립 가공 재수출용의 부품 산업이 확산되었다. 자동차의 경우는 소형 저급차가 주로 수출되었다. 원재료 중에는 후판과 같은 저부가 가치 부문의 대외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의 다국적 기업이 이러한 부문을 서로 경쟁적으로 직합작 투자 내지는 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을 통해 확보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한국의 독점적 대기업과 그에 하청 계열화된 중소 기업이 그들의 집중적 투자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은 고도의 생산력을 무기로, 후진국들을 국제적인 수직적 분업 체계에 철저히 예속시키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 왔다. 한국은 바로 이러한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 의해 지배되는 다분히 제국주의적인 국제 경제 질서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저 현상으로 한때나마 호황을 누린 것도 미국에서 전통 산업 부문이 쇠퇴한 대신 한국이 전통적인 산업 부문(가령 자동차나 철강 따위)이나 첨단 부품 산업을 이전받아 하청 생산하는 구조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한국의 기술, 시장, 자본이 미국에 더욱 깊이 종속되게 되었다. 한국 경제는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전한 부품 산업이나 일부 전통적인 산업을 끌여들여 여기에 매달리는 기형적인 비자립적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경제가 불황에 빠지거나 아니면 이를 수입하는 나라들이 규제를 강화하게 되면 당장 어려움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나 이들 이전 산업들의 경우 다국적 기업이 자본, 기술, 시장을 철저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국민 경제의 중추는 바로 이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좌지 우지되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 한국과 일본 간의 경제의 실상이 이것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한국이 미국의 시장 개방 압력을 받아 전전 긍긍하며 아무런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또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한 무역에서 여전히 큰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기술적으로도 종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경제 속에서 한국 경제의 활로는

 

세계 경제는 앞서 본 것처럼 전례 없는 변화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역주의 경향이 대두되면서 역내 국가들이 다른 나라들에 대해 배타적으로 울타리를 둘러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보여지듯이 각국 간의 치열한 이해 다툼을 다자간 협상의 틀로 조정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과 일본, EC 등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알다시피 미국은 불황-이는 주로 경제의 군사화와 세계의 패권을 쫓는 미국 내 모순에 뿌리를 두고 있다.-탈출 전략의 일환으로 자신의 경쟁 상대인 일본이나 EC에 무역 보복을 다짐하고 이들은 여기에 반발하면서 세계 경제 전쟁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세계 경제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 EC 등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로부터 시장 개방 압력과 무역 규제를 당하며 심한 견제를 받고 있다. 동시에 중국 등 세계 시장에 무서운 속도로 등장하는 후발 개도국의 위협적인 추격을 받고 있다. 사면 초가의 형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선진국의 값싸고 한물 간 기술과 부품을 들여다가 저임금으로 가공해 파는 안이한 성장 전략은 더 이상 먹혀 들지 않는다.

한국 경제는 이런 세계 경제의 변화를 도약을 위한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현재의 한국 경제는 커다란 좌절을 맛보고 있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그동안 파행적인 성장 속에서도 나름대로 국민적인 성장 잠재력이 축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또 사회주의권의 해체에 따라 냉전이 해소되고 있고 어느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단계가 끝나고 새로운 세계적인 경제 협력이 요청되고 있고 아시아 태평양권의 성장 잠재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주목을 받고 있다.

문제는 한국 경제가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과연 새로운 도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이러한 기회를 살려 낼 수 있는가 여부이다.

한국 경제가 당당하게 세계적으로 활로를 찾아 나가려면 우선 자체적으로 상당 수준의 기술 개발을 이룩해야 한다. 또 다른 나라들이 한국 경제를 무시할 수 없는 협력 파트너로서 인정하도록 한국 경제가 자립적 조건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가 기술 개발을 이룩하고 자립적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산업간 균형이 하루 빨리 회복되고 중소 기업이 산업의 각 분야에서 자체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또 중소 기업에 대한 횡포를 일삼고 독점에 안주하고, 지하 경제의 온상이 되는 재벌 경제를 개혁해야 한다. 아울러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건전한 중소 기업인들이 정당한 대접을 받고 이들이 한국 경제에서 주인된 위치로 서야 한다. 그리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 개혁이 경제 각 부문에서 시급히 이루어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약 이러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주변적인 위치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한경/ 경제평론가이며, 사계절 출판사 편집 부장이고, 저서로는 '이야기 한국 경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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