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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자유스러워야 하는곳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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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자유스러워야 하는곳

 

이상우

대학은 예지와 양심의 담당자

 

사회를 사람 몸에 비한다면 대학은 머리와 가슴에 해당한다. 생각하고 느끼는 중추다. 생각이 모자라면 아무리 몸의 다른 모든 기관이 튼튼하게 돌아가도 제 구실을 못하거나 미치거나 한다. 바르고 그른 것을 분간하지 못하므로 걸어야 할 길을 찾아 헤쳐나가지 못한다. 세상에는 많은 단위 사회들이 있어도 바르고 떳떳하게 뻗어 나가면서 인류 사회 전제에 큰 기여를 하는 것들도 있고, 풍부한 자원, 좋은 환경 속에서도 가난과 무지, 무질서한 속에서 이웃에 폐를 끼치거나 아예 망해 버리는 것도 있다. 생각이 짧은 탓이다. 중요한 때 중요한 결정을 여러 번 잘못하면 어떤 단위의 사외도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양심을 잃은 인간은 인격적 파멸을 일으켜 더 이상 인간으로 살아가지를 못한다.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할 줄 모르며, 미워해야 할 것을 미워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면, 누가 더불어 인간이라 하겠는가? 마찬가지로 사회가 전체적으로 양심을 잃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의 마당이 아니라 아귀들의 소굴로 전락할 것이다. 실로 소름끼치는 터가 될 것이다.

사회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하나의 공동체이다. 서로가 일을 나누어 맡아 행하면서 전체가 조화를 이루어 모든 구성원에게 편안함과 풍족함과 사람다운 삶을 마련해 주는 집단이다. 이 사회라는 집단도 전체로서 결정을 해야 하고, 또한 분별 있는 처신을 해야하고, 사랑과 미움, 참과 거짓을 가려 느껴야 제대로 사회 구실을 하면서 발전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밝은 지혜를 갈고 닦고 그 시대의 바른 마음을 가꾸어 나가는 전문적인 기구를 따로 마련하고 있다. 마치 사람의 머리와 가슴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생각과 느낌을 맞고 있듯이 사회에서도 이에 해당하는 기구를 두고 있다. 그것이 바로 대학이라는 곳이다. 즉 사회의 예지와 양심의 담당자로서 대학이라고 하는 기구가 가능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세 가지 기능

 

사람 몸의 모든 부분이 다 제 기능을 해야 건강하듯이 사회도 구석구석 모든 부분이 충실하게 제 기능을 해야 제대로 발전한다. 그러므로 어느 부분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으로 잔존하기 위해서는 머리와 가슴이 가장 소중하듯이 사회에서도 사회가 바르게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대학이 제 구실을 해야한다. 매일 같이 닥치는 숱한 문제에 대해 바른 판단을 내려 주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제시해 주어야 하고, 거칠어 가는 사회 풍토에 끊임없이 양심의 불빛을 비쳐 주고 소리를 들려 주어야하기 때문에 대학은 소중하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대학이 맡고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로 꼽고 있다. 하나는 연구 기능이다. 생각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각 분야에 걸쳐 앞선 선현들의 이야기도 찾아보고 다른 사회에서의 지식도 구해 보고, 서로 토론도 해 보고, 시험도 해 보고, 앞날을 점쳐 보기도 하면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지식을 창출해 내는 일이 바로 이 연구 기능이다. 따라서 한 사회의 지식 수준은 그 사회의 대학의 연구 수준과 같게된다. 대학의 연구 수준이 낮은 사회는 그만큼 낮은 지식 수준에서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훌륭한 대학들은 가진 사회는 다른 사회에 비해 높은 지식의 활용으로 앞선 생활을 모든 사회 구성원에 베풀어 줄 수 있는 것이다.

대학의 두 번째 기능은 교육 기능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 온 지식을 정리하여 사회 구성원들에게 전수하는 기능이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중책을 맡고 일해 나가야 할 젊은이들에게 바른 지식과 바른 양식을 나누어주어야 사회 전체를 바름으로 채워 나가게 하는 기능이다. 대학은 해마다 그 사회의 똑똑한 수재들을 골라 뽑아 몇 년간 데리고 있으면서 가르쳐서 사회에 내보내고 있다. 이 교육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사회가 아무리 높은 지식과 곧은 양심을 지닌 대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 전체는 무지와 어지러움 속에서 헤매게 된다. 사회 전체에 바른 지식과 곧은 마음이 고루 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기능은 이 바른 사회 봉사이다. 대학은 지식의 창출과 학생 교육 이외에도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그때그때 공급해 주는 기능을 한다. 아무리 대학에서 잘 가르쳐 내보낸 인재일지라도 아주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일을 당하여서는 혼자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이때 대학이 나서서 그 지식을 공급해 주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사회 봉사 기능은 특수 연구소가 감당해 주기 때문에 점차로 중요성이 덜하게 되지만 아직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다.

대학은 이렇듯 중요한 기능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나 아주 소중히 여기고 있다. 대학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거기서 몇 년간 공부하는 학생 그 자체가 특별히 대접받아야 할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대학이 사회에서 담당하고 있는 일이 워낙 소중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

 

여러분들은 대학에서 적어도 4년을 살게 된다. 대학원까지 진학할 학생은 10년까지도 살게 된다. 이 기간은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삶의 토막이 될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여러분들은 이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앞장서서 일하는 데 필요한 지식들을 쌓아 나갈 것이고, 또 이 시대의 양심을 나누어 잦고 나가게 될 것이며, 여러분 스스로를 몸과 마음 모두 튼튼하게 다지고 가꾸어 성숙된 사회인으로 성장하여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대학의 존재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면 그 답은 스스로 명백해진다. 대학은 한마디로 만남의 장소이기 때문에 이 만남을 소중히 알고 이 만남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우선 대학에서 여러분들은 선생님들을 만난다. 평생을 한 영역에서 학문을 하는 것을 천직으로 한고 있는 교수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로부터 바른 지식을 얻, 또 지식을 얻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앞서 살다 간 선현들과 먼 땅에서 활동하고 있는 석학들을 만나게 된다. 여러분들의 정신 세계는 수천 년의 시폭(時幅)과 전 우주의 공역으로 확대된다. 이 어찌 소중한 만남이 아니겠는가? 또한 이들과 함께 여러분들은 살고 있는 사회와 시대가 겪고 있는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시대 감각'을 익히게 된다.

대학에서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학우들을 만나게 된다. 아마도 이 만남이 대학 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학우들이란 누구인가? 같은 땅에서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을 선발해서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사람들이다. 이들과의 모임에서 여러분들은 서로의 생각과 삶의 자세, 사물을 보는 눈, 느낌 등을 서로 교환하면서 배우고 남에게 자기를 인식시키며, 우정을 쌓고 뜻을 모으면서 각각 자기 성장과 함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해 나가게 된다. 대학생들이 형성해 나가는 공동체 의식과 시대 의식이 이 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같은 시대, 함께 대학 생활을 한 젊은이들이 선정하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각각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때, 사회의 각 영역은 이들의 공동 의식이라는 유대로 서로 연결되어 조화를 이루는 협동의 체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생국에서는 대학과 같은 공동의 엘리트 양성 기구가 발달되지 못하여 사회 각 영역의 지도자들 사이에 공통되는 시대 의식이 형성되지 않아 사회 분열, 갈등,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군인은 군인대로, 정치인들은 정치인대로 그리고 학계·언론계·실업계의 엘리트는 그들대로의 고립된 성장 배경을 갖게 된다면 이들 간에 사상적·이념적 균열이 생기고 마찰이 생기며, 서로가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풍토가 생겨 사회 불안을 조성하게 된다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대학 생활에서 젊은이들이 그 시대의 보편적 지식 체계를 터득하게 되며, 그 시대의 양심을 나누어 갖게 되며, 그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갖추게 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어찌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삶의 기간이라고 하지 못하겠는가? 그리고 한 사회를 이끌어 갈 장차의 지도자들을 이렇게 성숙된 인간으로 다지는 대학이 그 사회에서 소중한 기관이 되지 않겠는가?

대학의 자유

 

대학의 사회적 기능을 생각한다면 대학이 왜 자유스러워야 하는지는 분명해진다. 대학이 사회의 예지의 총 본산이며 양심의 표상이라고 한다면 대학의 자유는 곧 그 사회가 진리를 따르고 바른 마음이 충만한 사회로 발전해 나가는 원초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한 토막 한 토막은 비리와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는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사회가 바른 마음을 되찾으려는 예지와 바른 마음을 되찾으려는 양심을 지니고 있다면 언제라도 바른 길로 되돌아올 수가 있다. 탄력을 지닌 쇠가 일시적인 힘에 의해 휘었다하더라도 언젠가는 제 모습, 제 자리로 동아설 수 있는 것과 같다. 만일 한 사회가 진리 회복의 능력과 의지를 상실한다면, 그 사회는 영원히 정상 회복을 하지 못할 것이다. 마치 부러진 쇠처럼 될 것이다. 대학이 그 사회의 예지와 양심의 수호자라면 따라서 바른 대학이 남아 있는 한 그 사회는 암흑 속에 일시 묻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정상을 회복할 수 있다. 마치 뇌와 심장이 계속 작동하는 한 인체는 그 생명을 계속 지켜 나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이다.

대학은 한 사회 전체의 머리와 가슴이지 어느 개인, 어느 집단의 것일 수 없다. 한 시대를 통치하는 집단의 자의적인 종속물이 된다면, 그 대학은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은 어느 한 가지 교조적 주장에 의해 지배되면 죽는다. 대학은 참과 곧음이라는 기준을 준수하는 한, 모든 생각과 모든 이론, 모든 주장, 모든 믿음을 다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진리와 선은 모든 주장을 검토하는 가운데서만 발견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학의 자유는 이렇듯 한 사회가 바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그래서 불가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이라는 사회 내의 한 기관에 몸을 담고 있는 일부 대학인에게 특권을 주기 위해 대학의 자유가 주장되는 것이 아니다. 말을 바꾼다면 대학인 본연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에 대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슬기로운 사회는 대학을 아낀다

 

역사상 진리를 거부하고 시대적 양심을 짓밟았던 왕조 치고 제대로 살아 남은 것이 없었다. 통치자가 자기 오류를 시정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힘으로 대학 또는 이에 준 하는 기구를 자기에게 예속시킨 통치자는 자기 잘못을 확대 재생산의 순환 속에서 길을 잃고 자멸했었다.

슬기로운 사회는 대학을 아낀다. 대학이 자유롭게 기능 하도록 모든 배려를 다한다. 그리고 대학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대학을 바로 이용한다.

사회가 슬기롭지 못하여 대학을 아낄 줄 모르고, 통치자가 대학을 자기의 외고집 틀에 묶어 놓고,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도록 그리고 자기의 찬양만을 대변하도록 할 때 누가 대학을 지키고 대학의 자유를 수호해야 하는가? 대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회를 위해 어떤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 바로 알고 있는 대학인들이 일차적으로 그 일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인이 대학 속에서 연구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천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대학을 지키는 일도 자신의 천직의 일부가 되니까.


이상우/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 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정치 외교학과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안보 환경』,『국제 관계 이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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