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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다움, 남성다움, 인간다움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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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다움, 남성다움, 인간다움

정 진 경

머리말

 

바람직한 인간상이란 과연 어떤것인가?라는 문제는 역사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물어왔고 학문,예술,종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명쾌한 답을 제공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애써왔다. 인간주의 심리학 발달의 기수인 매슬로우는 현대의 바람직한 인간상의 근간을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자기 충족감을 느끼는 단계에 이른 것, 즉 자아실현을 이루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아 실현을 위해서는 기본적인 욕구들,즉 생리적 욕구,사랑을 주고 받으려는 욕구, 남으로부터 존중받으려는 욕구, 현상을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욕구 등이 최소한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개인이 처한 사회 문화적 환경 안에서 이루어진다. 즉 한 개인에게 자아 실현이 얼마나 가능하냐 하는 문제는 그가 살고 있는 환경이 얼마나 이러한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에 달려있다.

어떤 사회 문화적인 환경 안에도 자아 실현에 장벽이 되는 요인들은 있다.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도 수많은 문제 요인들을 안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그 막대한 영향에 비해 너무도 그 양상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남성과 여성에 대한 편견 그리고 그에 근거한 차별 대우라고 할 수 있다. 이 오래되고 만연된 편견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고정관념이 되어 자리잡고 있으면서 수많은 남성과 여성의 삶을 제약하고 자아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이르러 이 장벽을 무너뜨리고 모든 사람들이 좀더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노력이 여러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심리학에서 창출해 낸 것이 양성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이다.

양성성에 대하여

 

지금까지 모든 여성은 여성답고, 모든 남성은 님성다운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왔던 고정관념과는 달리, 양성성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의미는 모든 인간이 각자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지금까지 사회에서 여성적이라고 규정지어 왔던 바람직한 특성과 남성적이라고 규정지어 왔던 바람직한 특성을 동시에 지닐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생리적으로 보면, 남녀는 모두 남성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남녀에 따라 그리고 개인에 따라 이 두 호르몬 사이의 균형이 달리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심리적으로도 이러한 남성성과 여성성이 한 개인 내부에 공존해 있다. 한편 문명론에 서도 이 양자 간의 병행이 강조되어 왔는데, 플라톤은 그의 향연 에서 반은 여자고 반은 남자인 존재를 묘사하였고, 콜리지도 위대한 정신은 남성적 특징과 여성적 특징을 혼합한 양성적 정신이라고 하였다. 이 이외에도 양성적인 인간 정신에 대한 찬양은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현대로 이어지면서,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 우리의 박경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도 보여지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1970년대에 산드라 벰이 양성성에 대한 연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많은 연구자들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전통적 심리학에서는 남성적인 남성, 여성적인 여성, 성격과 성별이 뒤바뀐 이상 심리자(즉 남성적 여성과 여성적 남성)로 사람을 나누어 왔는데, 이러한 구별법의 문제점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지적하여 오다가, 벰을 비롯한 진보적 심리학자들이 양성성이라는 개념으로 이 문제를 풀어낸 것이다. 이 새로운 이론을 밝혀 내고 있는 심리학자들은 한 개인이 남성으로 태어났든, 여성으로 태어났든,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적이라고 보는 성격과 남성적이라고 보는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자기 주장을 잘함과 동시에 양보심이 많고, 논리적임과 동시에 감정이 풍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벰의 주요한 연구 업적 가운데 하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것으로 보는 일반적 관점에 대한 비판이다. 전통적으로 남성적 특성을 많이 가진 사람은 당연히 여성적 특성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고, 여성적 특성을 많이 가진 사람은 역시 당연히 남성적 특성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여 연구가 전개되어 왔다. 이에 반하여, 벰은 이 두 가지 특성들이 한 사람 안에서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으며, 그 둘 사이의 균형의 정도는 각 개인의 고유한 성격이 다양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며 또 이루어질 수 있음을 밝혀 내었다.

양성성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쏟아져 나오고 토론이 활발이 진행됨에 따라, 양성성에 대한 개념 규정이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초기에는 양성성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보는 남성적 특성(예를 들어, 용감하고 논리적이고 추진력이 있다는 등) 과, 여성적특성(예를 들어, 남을 잘 돌보아 주며, 감수성이 풍부하고 자애롭다는 등)이 혼합된 상태라고 생각하였으나, 이러한 이상형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고정관념을 창출해 낸다는 지적과 함께 양성성의 속성은 달리 규정되고 있다. 즉 양성성을 양성적인 사람이 지니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에 의해 규정하고 있는데, 그 특징이란 첫째, 다양한 반응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 둘째, 상황의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하는 것, 셋째,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들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남성적 특성 혹은 여성적 특성만 지니고 있는 사람에 비하여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은 훨씬 더 다양한 자극에 대하여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반응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때그때의 상황의 요구에 따라 적합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곧 사회적 환경에 더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러한 양성성은 정도 나름이지만 우리가 실제로 주위에서 흔히 접하고 있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여성적 특성과 남성적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남성성, 혹은 여성성만을 지니고 있지는 않음을 우리는 약간만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곧 알게 된다.

 

고정관념이 형성되는 과정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에는 나이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 사회 경제적 지위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 인종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 등 수많은 방법이 있으나, 아마도 가장 보편적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방법이 성별에 따른 분류일 것이다.

양성성에 관한 연구는 성별에 따른 분류에 관한 그 사회의 인식 또는 해석 양식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대해서는 상식 수준에서 누구나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남녀는 각기 어떤 특성을 지녀야 하고,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규범적인 생각으로부터 기존 모델에 맞지 않는 행위에 따르는 비난에 이르기까지 남녀를 구분해서 언급하는 것을 보거나 듣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거의 하루도 없을 정도로 우리는 성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살고 있다.

이렇게 지극히 성차별적인 사회 안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은 성별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게 된다. 갓난아기 때 여자면 분홍색, 남자면 파란색을 주로 입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갓난 아기를 안고 소근대고 얼르는 것이 여자 아기인 경우 더 빈번하고, 데리고 놀때에는 남자 아기인 경우 신채적으로 더 과격한 운동을 시킨다는 것 등, 생각없이 그냥 하는 부모의 무수한 행동이 실제로 아기의 성별에 따라 크게 달라짐이 밝혀지고 있다. 커가면서 구별은 더욱 엄격해져서 어린이는 성별에 따라 해도 되는 행동과 하면 안 되는 행동이 있음을 알게 된다. 남자 어린이의 경우 부모는 로봇이나 트럭을 사다 주고 그것을 가지고 놀면 만족해 한다. 그러나 그 어린이에게 인형을 사다 주는 부모는 거의 없다. 혹시나 누나의 인형을 가지고 놀려고 하면, 부모는 사내애가 무슨 인형놀이냐, 계집애같이. 하고 꾸짖거나, 내버려 두더라도 최소한 이를 장려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에 여자 어린이는 인형을 가지고 놀면 칭찬을 받지만, 혹시 골목에 나가 동네 꼬마 친구들과 공이라도 차다가 넘어져서 집에 오면 위로 대신 계집애가 사내애들하고 어울려 공이나 차고 다니니까 그렇지.하고 꾸중 듣는 경우까지도 있는 것이 일반적 현실이다. 어머니가 딸보다는 아들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더 너그럽게 장려 또는 허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사회 일반의 이러한 경향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렇게 어린이는 타고난 자연스러운 호기심으로 성별에 무관하게 다양한 새로운 행동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성별에 적절한 행동을 할 때 칭찬, 상, 또는 은근한 미소로 격려를 받는 반면, 부적절한 행동은 꾸중, 벌, 무관심 등으로 제지를 당함으로써, 자신의 풍성한 잠재력의 한 부분을 일찍이 잠재워 버리게 된다.

한편 어린이는 더욱 무의식적 차원에서 성역할 구분을 배우는데 이는 주로 모델의 선택과 관련되어 있다. 어린이는 사회적인 많은 행동을 자기를 돌보아 주고 가까이 있는 사람, 그리고 힘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모방함으로써 배우게 되는데, 여자 어린이는 주로 어머니를, 남자 어린이는 주로 아버지를 모방함으로써 그들의 고정화된 행동을 은연중에 배우게 된다.

부모 이외에도 동기간, 친척, 이웃, 친구, 교사 등 주위의 역할 모델은 매우 많다. 거의 모든 어린이는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성역할을 습득하게 되고, 그 외에 그림책, 동화, 교과서를 비롯하여 TV의 프로그램과 각종 광고를 통해서도 사회의 고정관념을 암암리에 주입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러한 성역할과 성적인 고정관념을 사회화 과정 안에서, 특히 보상과 처벌, 그리고 일정한 역할 모델을 통하여 습득하면, 이는 곧 어린이의 자아 개념의 중요한 일부분을 형성하게 된다. 이 전제를 발전시킨 인지 이론에 따르면 일단 자아 개념이 형성되면 그 이후에는 외부로부터의 보상과 처벌에 관계 없이도 자아 개념에 부합하도록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심리적 보상을 받게 되고 이것이 곧 초기에 형성된 고정 관념을 유지 존속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 사회 안에서 대부분의 경우에, 어린이는 그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다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그의 성별에 따라 제한된 영역 안에서만 활동하고 그에 만족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성역할과 성적 고정관념을 받아들이는 정도에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나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사회의 전체적 경향성에서 크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래에서는 남녀 노소를 불문한 우리 모두의 삶에 차별적 고정관념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인간이 잠재력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성역할에 관한 어린시절의 사회화 과정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 가에 관한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성차이에 대한 연구

 

사람은 남자, 또는 여자로 태어나서 자신을 자기의 성별에 비추어 파악함으로써 성적 정체감을 갖게 된다. 자기에게 주어진 신체적 구조와 생물학적 현상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남자가 만일 임신하기를 간절히 원한다거나, 여자가 자기의 몸매를 싫어하고 남자의 신체처럼 되기를 기를 쓰고 원한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성적 정체감과 성적 고정관념을 혼돈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양자의 차이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여성만이 아기를 낳고 젖을 먹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필연적으로 한 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또한 남자는 항상 용감해야 하고, 여자는 항상 얌전해야 한다는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당연한 것처럼 인정되어 온 사실이었지만, 이역시 합리성에 근거한 영원 불멸의 진리가 아니다.

남녀간에 차이가 크리라고 일반적으로 간주해 왔던 것들이 실제로 별 차이가 없음이 연구에 의하여 이미 분명히 밝혀지고 있다. 여성과 남성이 차이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를 총정리한 매코비와 재클린은 여성이 언어 능력의 면에서 우세한 반면 남성은 시각, 공간 지각, 수리 능력 분야에서 우세하고 여성보다 좀더 공격적이라는 것에서만 남녀의 차이를 발견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차이도 통계적으로 본 남녀의 평균 사이의 차이를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여성이 모든 남성보다 언어 능력이 우수하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주로 미국에서 발견된 결과들을 모아 해석한 것으로서, 다른 모든 문화권에서도 같은 차이가 역시 발견되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무리이다. 비교 문화 연구에서는 더욱이나 모성적 남성, 공격적 여성의 집단이 발견되고 있고, 공간 지각 면에서도 남녀가 같은 능력을 보이는 사회가 있음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고정관념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

 

이와 같이 성역할과 성적 고정관념이 인위적이며 필연성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인식함과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양성의 행동을 뚜렷이 구별짓는 성역할 규범은 일찍부터 남녀 어린이 모두의 발달과 가능성을 제한하고, 나아가서 성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삶의 영역을 제한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건강하게 적응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려면 각자가 자신의 성별에 매임이 없이 스스로의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성별에 따른 구분이 삶의 영역을 제한하고 그 본질까지도 왜곡시킨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남자 아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어려서부터 활발하고 경쟁적이며 앞장서서 지도력을 보이고 운다든지 하는 일이 없이 강해서, 나중에 커서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을 보여야만 부모는 안심한다. 그러나 모든 남자 아이가 다 이런 성격을 타고 나는 것이 아니며 또 그렇게 길러질 수도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여기서 그렇지만 내 아이만은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닥달한다면 그것은 그가 가진 자연스러운 자질마저 억압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슬프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서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눈물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작은 아이가 있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하고 건강한 모습일 지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익히지 못한 채 어느덧 장성하여 성공에 대한 압박감에 항상 가위눌리고 책임과 의무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많은 성인 남자의 모습은 우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억울한 이 아이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의 삶에서의 제한과 왜곡은 새삼스러이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고정관념을 초월하여 자신에게 맞는 특성과 행동과 일을 추구할 수 있는, 많은 선택이 허용된 상황이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상황이다.

미래 사회와 양성적 인간

 

사회의 변화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그분들의 일생을 통하여 겪은 급격한 사회 변화는 그분들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수십 년 적에 겪은 변화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큰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생을 통하여 겪을 변화에 비교하면 그분들이 겪은 변화가 미미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후대에서는 얼마만큼의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는 이미 우리의 제한된 상상력을 초월한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엔 3초마다 세대가 다르다는 우스갯소리가 의미 심장하게 들리는 현실이다.

그러면 어린이들이 커서 살아가게 될 미래의 사회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우선 생산 체계가 거의 완전히 자동화되어서 신체적 힘에 의한 노동이 필요없게 될 것이고, 또한 여가 시간이 늘어나서 창의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늘어날 것이라고 미래 연구가 토플러는 낙관적 논의를 펴고 있다. 그의 낙관론에는 쉽사리 동의할 수 없더라도 생활 양식과 가족 구조에 급격한 변화가 올 것은 분명하고, 문화가 지향하는 가치관에도 변화가 얼 것이다. 이런 모든 변화가 우리의 노력 없이 오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고, 우리의 바로 다음 세대에서 모두 일어나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급격한 변동이 성큼성큼 일어나리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이런 사회가 도래했을 때,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전통적 성역할 규범은 골동품이 되고 말 것이다. 남녀 모두가 직장의 컴퓨터를 집에 연결해서 집에서 일하게 되고, 시장의 컴퓨터를 집에 연결해서 집에서 주문을 하며, 어린이를 같이 돌보고 키우게 됨으로써 남자는 일터에, 여자는 가정에라는 오랜 공식은 더 이상 성립되지 않게 될 것이다. 성차별 의식, 권위주의, 형식주의 등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고정관념이 없이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상황에 고루 적응 할수 있는 사람이 바람직한 모습으로 부각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가능하게 할 일꾼들은 누구일까?

지난 봄, 전국 컴퓨터 경진 대회의 국문 학교부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어린이데 대한 기사가 신문에 났던 적이 있다. 5학년에 다니고 있는 이 남자 어린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좋아하고, 축구도 좋아하고, 자기가 빵을 만들어서 누나와 동생과 같이 나누어 먹는 것도 좋아하고, 수를 놓으면 정신 집중이 잘 되기 때문에 시장에서 수틀과 수실을 사다가 수를 놓는 것도 좋아한다는 내용이었다. 열린 마음으로 가능성을 열어 갈 때, 좋아하는 것도 다양해지고, 잘하는 것도 많아지고, 친구와도 잘 어울리고, 생활이 즐거워지는 것이다.

이 어린이는 바로 우리가 그 또래에게 기대하는 최고의 적응 수준과 자아 실현 수준을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는 참으로 흐뭇하고 믿음직스런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양성적 어린이며 미래의 주인공이다.

양성적인 기질을 가진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에 비해 지능과 창의력이 높고 적응도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나와 왔다. 이들이 자라면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으며, 자신감이 있고, 사회적 압력에 복종하는 경향이 덜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섬세하게 마음을 써줄 줄 아는 양성적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열어 갈 미래는 좀더 인간적인 것이리라.


 

정진경/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심리학 및 여성학 관계 서적 등이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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