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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 - 서사문학 바탕 이룬 웅녀의 극기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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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 - 서사문학 바탕 이룬 웅녀의 극기

(이 자료는 한국일보에 766월 초부터 773월말까지 연재된 내용입니다.)

대담 : 이어령, 장덕순

 

 

 

= 단군할아버지- 이렇게 우리는 아득한 신화의 한 주인공을 아주 가깝고 정다운 말로 부르고 있지요. 마치 우리 곁에 살고 있는 혈육처럼 말입니다. 단군이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 하는 사실보다, 어째서 모든 것이 과학화한 오늘날에도 그 신화가 여전히 우리에게 그토록 가깝게 느껴지는가를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것 같습니다.

 

= 그동안 우리는 단군신화를 역사적으로 풀이하기도 했고, 종교적인 신앙으로 믿어오기도 했지만 사실 신화 자체의 의미와 문학성으로 풀이해 보려고 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단군신화의 구조는 우리나라 서사문학의 총본산이고 특히 영웅서사시에 계승되어 있는 원초적인 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니까 단군은 역사적으로 볼 때에는 국조(國祖)가 되지만 문학적으로 볼 때에는 한국문학의 원조가 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역사책에는 단군을 뺄 수 있을지 몰라도 한국사상사나 문학사에서는 절대로 삭제할 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그 신화에는 한국인이 어떤 마음과 어떤 상상력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원초상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죠.

 

= 단군신화는 승() 일연이 쓴 고려 때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것이지만 그보다 앞서 씌여진 구삼국사(13세기 때까지 전해왔지만 현존하지 않음)나 아주 오랜 옛날부터 구전되어 온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황당무계한 것 같은 이야기가 수천년을 계속해서 전해 내려왔다는 것은, 분명 그럴만한 가치와 이유가 있었다는 방증이 아니겠습니까?

 

= 비단 우리의 경우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신화는 우주나라인간이나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의 창조 모티브에서 발생하고 있지요. 삶의 근원은 탄생이니까! 태어난다는 것, 그것을 해명하려는 것 - 여기에서 인간의 모든 의식도 함께 눈을 뜨는 것이지요.

 

= 단군신화는 건국신화이자 탄생신화에 속하는 것으로 둘다 다 탄생에 관계된 이야기로 볼 수 있지요. 단군이라는 한 인간의 탄생과 고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탄생 그러고 보면 그에 앞서 구약의 창세기와 같은 우주창조의 개벽신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 우주(자연)창조」 → 「인간창조」 → 「역사(국가)창조의 세 단계로 볼 때 단군신화를 분류해서 본다면 단군신화는 세 번째 단계에 속하는 후기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 대상이야 어쨌던 태어난다는 창조의 발상법은 모두 같습니다. 즉 하늘은 아버지고 땅은 어머니인데 하늘과 땅이 결혼하여 만물을 낳는다는 창조신화의 원형 말입니다. 인간은 남녀의 성적 결합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에서 아들이 태어나지요. 그런데 이러한 인간적 성경험이 보다 넓은 외계와 접촉하는 자연의 경험과 합쳐질 때 바로 그러한 신화체계가 생겨납니다. 땅에 씨앗이 떨어집니다. 만약 하늘에서 햇빛과 비가 내리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지요. 식물이 태어나 자란다는 것은 하늘과 땅의 성적 교섭으로 본 것이지요. 어메리컨 인디언들은 흙을 위대한 어머니의 자궁으로 보았고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성행위로 봅니다. 희랍신화에서는 우라노스(- 아버지)와 게아(- 어머니)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만물이 태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 창세기에서도 흙 속에 신의 입김()을 불어넣어 인간을 탄생케 합니다.

 

= 단군신화는 천상상제(天上上帝)의 서자(庶子) 환웅이 하늘에서 하강하고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습니다. ()가 합쳐서 고조선의 나라를 만든 왕을 낳은 것이니까, 하늘 = 아버지, = 어머니의 원형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비범한 영웅들의 탄생은 모두 부계가 하늘이거나 애매한 것으로 되어 있지요.

 

= 그러므로 단군신화는 천··인의 삼재(三才) 사상을 원형으로 한 전형적인 신화이고 그 신화 속에는 하늘과 땅의 두 질서를 융합한 조화의 핏줄을 가진 인간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라는 생각을 낳게 된 것이지요. 왕이라는 글자는 석 삼()자를 가로 연결 「│」한 것인데 그것은 천· · 인의 세 질서를 통합하는 힘을 나타낸 것이라 합니다. 결국 신화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만의 영역에서 갇혀 있지 않고 우주와 결합하여 자신을 완성시키려는 동질성의 추구라 할 수 있습니다.

=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들을 거느리고 삼천명의 부하와 함께 땅으로 내려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에 속해 있는 비바람 구름을 나타낸 것이고 환웅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이 모든 기상을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신이지요.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은 홍익인간, 즉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였으니까 하늘과 땅의 화합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천과 지를 인간의 부모처럼 본 것이지요.

 

= 그러니까 오늘날 천지를 오염시킨 공해는 불효가 되는 것이지요.(웃음) 그런데 환웅이 내려온 장소가 삼위태백(三危太伯)이라는 산의 신단수 아래로 되어 있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 솟아 하늘과 맞닿은 장소이고 나무 역시 수직적 자세로 하늘을 향해 뻗어올라갑니다. 네발로 기어 다니는 동물들은 수평자세이지만 수목은 뿌리를 땅에 박고 있으면서도 그 가지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올라가고 있지요. 그러므로 수목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다리 구실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신단수는 하늘과 땅()의 결합에서 생겨난 단군의 예시적 이미지로 볼 수 있어요.

 

= 나무가 토착종교에서 신의 매개체로 숭앙받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풍경이 많이 변했지만 동리마다 으레 몇백년 묵은 거목이 남아 있는 것은 예나 마찬가지이지요. 신단수 밑에 환웅은 도시를 세웠는데 이 신들의 마을을 상징하는 나무가 오늘날에도 토착종교로 남아 있는데 아마 이것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민간신앙일 것입니다.

 

= 그것을 세계수(world tree)]라고들 부르지요. 유한한 땅에 살면서도 무한한 하늘을 그리워하는 마음, 사람들은 그 인간의 마음을 나무에서 본 것이지요. 그래서 끝없이 하늘을 향해 성장해 가는 나뭇가지는 오늘날의 문학작품에서도 신화의 세계수 같은 그런 상징으로 쓰이고 있어요. 그런데 포르네시아의 신화를 보면 하늘과 땅이 너무 열렬히 사랑해서 서로 떨어지지 않자 지상의 생물들은 어둡고 숨이 막혀 고생을 하죠. 그러자 큰 나무가 자라 하늘과 땅을 떼어놓았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전지의 결합만이 아니라 때로는 기둥 역할로써 분리의 의미고 같습니다.

 

= 우리는 하늘과 그 중간인 나무와 산을 이야기 했는데 땅을 봅시다. 땅에는 호랑이와 곰이 살고 있었고 그것들이 다같이 인간이 되고자 기원을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신의 아들도 인간세계를 탐하였고 곰도 인간이 되려고 했어요. 단군신화는 그런 점에서 인간 중심적인 신화라 할 수 있겠지요. 신이 하늘을 대표하고 곰과 호랑이가 지상의 동물들을 대표한다면 인간은 이 우극(雨極)의 중간자이고 이 인간에 의해서 하늘과 땅은 서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신과 동물이 다 부러워하는 존재, 이것이 인간이었지요. 서구인들은 말하자면 파스칼같은 사람들은 인간을 단군신화처럼 신과 동물의 중간적 존재로 생각했지만, 결론은 정반대입니다.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인간은 불안하며 비참한 것입니다. 양쪽으로 찢기는 고통, 인간만이 그런 운명에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양극에 놓인 이 한가운데의 존재를 도리어 화합과 안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구나 곰과 호랑이 가운데 참을성이 많은 곰만이 성공을 했다는 것은, 호랑이같은 야성(野性)의 힘에 인간의 가치를 두지 않고 인내심이라는 내적인 정신 속에 동물과 다른 인간성품의 기본을 두었다는 뜻이 됩니다. 한국고전작품을 봐도 모두가 생에 성공한 인물들은 호랑이같은 힘센 영웅이 아니라 곰과 같은 극기의 성자들이 아닙니까.

 

= 한국문학작품의 인물원형을 역시 따지고 보면 곰계와 호랑이계로 나뉘어지지요. 악역은 모두가 호랑이처럼 앙칼지고 힘이 있고 민첩합니다. 그러나 사랑받는 주인공은 처용, 영재, 흥부, 사씨부인, 춘향이 모두가 곰처럼 끈기있게 참고 견디어 끝내는 행복하게 됩니다.

 

= 인물형도 그렇지만 단군신화는 곰이 웅녀가 되어 시집가서 애를 낳는다는 이야기인데 그 과정은 우리 서사문학의 원형적인 줄거리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 곰은 환웅에게 두 가지 소망을 나타내지요. 인간이 되게 해달라는 것과 애를 낳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 웅녀가 환웅에게 애를 낳게 하달라는 장면은 주목할 만한 대목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노골적으로 유혹을 합니다. 사실 서동요에서도 그렇고 춘향전의 이도령도 그렇고 남자가 여자에게 우애를 하는 것이 옛날의 풍속인데 웅녀만은 그렇지 않았어요. 사랑의 적극성을 보인 아주 맹렬여성이죠.(웃음) 그점으로 단군신화는 일본의 이시나미노미꼬도의 신화처럼 모계사회 시대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렇죠. 그 신화에서도 여신이 먼저 남신을 보고 당신 참 아름답군요라고 말하면서 접근하지요. 그 때문에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자 남신이 불평을 하죠. 여자가 먼저 나서서 그렇다고요. 이번에는 내가 먼저 하겠다고(웃음) 그래서 일본의 국토를 낳게 되지요.

 

= 그러니까 단군신화를 이니시에이션 스토리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화인류학자, 가령 슐츠같은 학자는 인간의 연령계제(年齡階梯)의 원초적인 기본형태를 (A) 미성숙의 아이들 (B) 성숙한 남녀 (C) 기혼 남녀로 구분하고 있지요. 누구나 사람은 이 세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A)에서 (C)로 넘어가는 단계 즉 아이가 어른들의 사회에 들어오기 위해서 겪는 과정을 이니시에이션(入社)이라고 부르지요.

 

= 우리나라의 풍속에도 관례(冠禮)라는 것이 있었지요. 일정한 성년의 나이가 되면 의복, 호칭, 두발 모두가 달라지지요. 이 성년식을 통해서 사회의 한 성원으로 참가합니다. 옛날 사회에서는 성년식이란 게 까다로왔지요. 일정한 시련을 겪어야 하는 의식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 그래서 곰이 동굴 속에 들어가 웅녀가 된다는 것은 그러한 성년식의 체험을 나타낸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곰의 상태는 (A) 미숙한 아이에 해당하는 것이고 마늘과 쑥을 먹고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금기의 시련을 겪는 것은 바로 (B)의 성년식,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웅녀가 되었다는 것은 결혼 자격을 구비한 신부가 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단군신화는 남자의 결혼식 이야기로 볼 수 있으니까 이니시에이션의 원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군요. 동굴 속에서 햇볕을 보지 맑고 백일을 금기하라는 것은 신부가 첫날밤을 지내는 신방같은 것이라 할 수 있구요.

 

= 실제로 아프리카의 어느 종족들은 여자가 성년기에 접어들어 결혼을 하려면 단군신화의 동굴처럼 돼지울 같은 데다 가두어 둡니다. 수개월 동안…… 그래서 그곳 신부들은 전부 살이 쪄 있는 것이 관례라고 합니다.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새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뜻이 되지요. 죽어야 재생을 합니다. 태양이 떨어졌다 다시 떠오르고 겨울에 죽었던 식물이 봄에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이니시에이션은 하나의 죽음을 지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새로운 생명으로 죽 어른이 되어 결혼생활을 하게 되는 거구요.

 

= 그렇게 보면 곰이 동굴의 어둠 속에서 고난을 겪는다는 것은 상징적인 죽음의 세계에 들어가 웅녀로 환생하는 즉 신부가 되는 재생 모티브를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지요.

 

= 아버지남편으로 어머니아내로 대처(對處)되는 생활이 결혼 생활이니까 결국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떠나야만 사람은 어른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니시에이션의 원형은 격리(隔離)라든가 구약성서의 탕자 이야기처럼 집을 나가 여행을 한다거나 시련이나 일정한 어려운 과업을 치르는 상징적인 사건을 포함하게 되지요. 동굴 속에 갇힌 곰의 이야기는 그러한 고대의 성년식을 반영한 것이고 곰이 웅녀로 바뀌었다는 것은 아이가 어른이 된 상태, 즉 새로운 생명으로 재생되는 과정을 나타냈다고 풀이될 수 있습니다. 사실 동굴이라는 것은 정신분석학에서는 여자의 자궁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 마늘과 쑥을 먹으라고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것이 다 일종의 정력강장제로서 고대문헌을 보면 여성생리의 특효약이라 할 수 있지요. 쑥은 여성갱생의 비약(秘藥)으로 성욕을 북돋우니 근육이 새로워지고 그렇게 되어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요즈음 TV 같은 데서 한창 선전하고 있는 정력강장제는 단군신화와 함께 시작된 것이군요.(웃음)

= 아이가 어엿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나 짐승의 상태에서 인간의 상태가 되는 과정이나 따지고 보면

같은 것이지요. 고난을 참고 견뎌야만 새 생명을 얻고 재생할 수 있다는 …….

 

= 쑥과 마늘은 달콤한 음식이 아니라 쓴 약이지요. 언뜻 보기에 먹기 역겨운 음식이지만, 이것을 참고 먹으면 도리어 인간에게 새 활력을 주듯이 고난의 의미 역시도 그렇게 해석한 것이지요. 어둠의 동굴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스스로 받아들일 때 곰은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한국인은 재생의 광명을 도리어 고난의 어둠 속에서 구하려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어른일 되는 길이요, 참된 인간이 되는 길, 무엇인가를 창조(아이를 낳는)하는 힘이라고 말입니다.

 

= 인간이 통과해야만 될 어둠, 고립, 시련 그것을 곰이 웅녀로 바뀌는 그 과정으로 보여주고 있는 단군신화는 한국서사문학의 중요한 플로트가 된다고 할 수 있구요.

 

= 춘향전의 춘향이도 옥에 갇히고 그 시련을 이겼을 때 이도령의 참된 배필이 되지요. 심청이는 임당수에 몸을 던졌을 때 재생하여 심황후가 되지요. 흥부는 놀부의 집에서 떠나 자기 움막에서 고난을 겪고 비로소 부자로 재생하지요. 춘향전의 , 심청전의 임당수, 흥부전의 움막집」 … 이 모두가 곰의 상태와 같은 원형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 물론 종교적으로 보려는 사람도 있지요. 곰을 수신(獸神)으로 보는 ……. 한국의 토템 사상 말이지요. 그리고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수렵생활을 하던 우리의 조상들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요.

 

= 신화는 복합적으로 보아야겠지요. 아이누족들은 지금도 제를 지내는데 아이누 말로 곰은 가무이즉 일본어의 신(가미)과 같은 말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단군신화를 통해서 천, , 인의 융합, 그리고 고난을 극복하므로 재생에 이르는 한국인의 사상이나 문학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인간은 그냥 인간이 되는 것이 아리나 고난을 통해 완성해 가는 것이라는 그 굵직한 상징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귀중한 암시를 주는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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