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교육시론 - 뛰는 세상의 걷는 아이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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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세상의 걷는 아이

옥 명 희(가정부인/샘이깊은물,945월호에서)

 

 

가을이 되어 낮이 짧아지면 새들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새들의 몸 속 어딘가에 계절을 헤아리는 시계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 몸 속의 시계가 똑딱똑딱 소릴 내기 시작하면, 그때까지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던 푸른 하늘의 별들, 그 중에서 특히 북극성을 찾아 그 별을 나침반으로 삼아 더 따뜻한 데로 떠난다 한다. 도시에 사는 우리의 몸속에도 그러한 시계는 아직 있을까? 프리지아 한 다발 사다 꽂거나, 화사한 봄옷을 사 입거나, 또는 괜히 몸에 바람이 들어 좀쑤셔 하는 그런 것말고, 진짜 몸시계!

 

그래도 그 중에서 근심없고 순수하다는 아이들도 이즘은 정말 눈 코 뜰새 없이 바빠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단다. 학교 가서 공부하고 틈틈이 매 맞고, 학원 가서 또 공부하고, 비교하고 비교받고, 이른바 바늘구멍 곽고(과학고)” 아이들이나 되어 보자면, 이른 아침 시계의 경적으로 하루가 뜨고 져서 내 한몸 밖의 시계도 지겨운데 어디 몸 속의 시계까지 찾을 여유가 있으랴.

 

 

밭을 갈다 왔어요

해마다 이맘 때에 봄이 돌아오면 우리 아들의 밭갈이가 시작된다. 가장 땅값이 비싼 서울의 한 모퉁이 조그만 아파트에 사는 우리에게 무슨 밭뙈기라도 한뼘이나 있겠나?

 

열살이 되던 해에 한국에 돌아온 아이는 일년 뒤 어느 날, 세배 돈 칠만원을 찾고 싶다고 했다. 찾아서 무엇에 쓰겠느냐고 물었더니, 저는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싶은데 그러려면 땅이 필요하다고 했다. 땅을 사서 동물도 키우고 실험도 하고,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며 사는 것이 즐거운 삶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네가 커서 돈 벌어서 사라고 했더니 한국에서는 땅값이 매우 급히 오른다고 들었댄다. 그러니 지금 사 두어야 한다며 땅값을 물었다. 사실대로 땅값을 알려 주었더니 제 돈으로는 아주아주 시골에 가서 한평쯤은 살수 있지만 제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하니 다닐 수 없다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의 원대한(?) 꿈을 잊어 버렸다.

 

이듬해에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이른 아이들은 사춘기가 시작되기도 한다 해서 우리들 첫아이의 엄마들은 아이의 하교 시간을 잘 지켜 보라는 선배들의 말을 십계명처럼 가슴에 새겨 두었다. 그런데 나날이 몹시 지쳐서 돌아오는 아이를 유심히 살펴보니 하교 시간이 다른 아이들보다 거의 한 시간이 늦을 때도 있었다.

 

마침내 어느 토요일에 이 순진하다고 믿은 아이는 꼬리를 잡혔다. 영락없이 바람난 애숭이처럼, 샤워를 하고 새옷을 갈아입고 나가더니 세 시간이 거의 다 지나서 비를 쫄딱 맞고 들어서는 것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는 어미 앞에서 자꾸 별일 없었다던 아이가 마침내 밭을 갈다 왔어요.” 하고 겁에 질린 음성으로 말했다. 돈이 모자라 땅은 살수가 없고, 그래서 개간을 하기로 마음먹었댄다.

 

 

몸시계때문에 맞은 뺨

아파트 뒤 탄천 옆의 부지를 파서, 돌멩이를 고르고 물길도 만들어 주고, 누구네 집 어벙한 아들이었는지 도와 줄 친구도 하나 구해 함께 씨도 뿌리고, 더운 날엔 학교나 아파트에서 물을 길어 이십분 거리에 있는 제 밭에 뿌려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날마다 집에 늦게 왔었고, 엄마가 공부 시간도 없대니까 그 사실을 숨겼다고 했다. 왜 새옷은 입고 갔느냐고 물었더니, 어린 싹들을 보러 가는 길이라 깨끗이 하고 가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날 집에 와 계시던 아이의 할머니는 그러니까 네가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사람이구나하시며 웃고 또 웃으셨다. 그제서야 소나기가 쏟아지면 창밖의 탄천을 내다보며 한숨을 짓던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듬해 봄엔 아이의 밭갈이는 양성화하였으니, 마침 끝집이었던 우리 아파트 대문 앞 복도에 대를 놓고 수세미, 상추며 갖가지 식물을 키웠다. 거름이며, 흙이며, 뒷정리는 본인이 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도시에서 자란 우리 내외가 하는 일이라곤 , 신기하다. 이렇게 싹이 나는구나또는 , 저렇게 제 때 물 못 주고, 비인간적일 수 있니?” 하는 코멘트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얗게 보송보송 자라는 아파트촌의 사내아이들은 손결도 쇼팽의 것처럼 얄상하다. 손톱 밑에 때가 어딜 가랴. 올해, 중학교 삼학년이 된 아이는, 그 몸 안에서 봄이 오면 똑딱뚝딱 해대는 몸시계때문에 생애 통산 네 번째의 뺨을 제 어미에게서 맞게 되었다. 그놈의 곽고때문에

 

 

신토불이의 교육관에 따라

과학고는 누가 가나?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띵똥땡.” 어떤 집 아이들이 가나? 타고난 극소수 수재와 철두철미 전면돌파형 교육관을 가진 어미의 자녀들. “띵똥땡.” 왜 가나?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고. “! 아깝습니다.” 서울특별대를 가려고. 이것이 이즘의 정답이다.

 

그러면 전면돌파형 교육관이란 무엇을 가리키나? 우선 서울대를 나오면 성공적인 인생이 기다린다는 확고한 인생관 위에서 설정한 목표에 회의가 터럭만큼도 없음, 그 자체요, 다음으로, 아이들은 이리저리 돌리면 팽이처럼 계속해서 머리가 돌아간다, 팽이가 어지러워하는 것을 보았느냐, 어지러운 것은 쳐다보는 우리일 뿐이라는 믿음이요, 그 다음으로 세칭 명문 학원을 찾고, 경쟁적 친우 관계를 바탕으로하여 새끼 과외 또는 큰과외를 하나 덧붙이고 독려하고 하는 것이다.

 

나라고 별다른 어미겠나? 나도 갑자기 인생관을 철두철미하게 바꾸기로 작정했다. 저래도 될까망설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고 뒷북이나 치던, 비현실적인 소신파에서 전향하기로 뒤늦게나마 결심한 것이다. 게다가 나랑 비슷하다고 믿었던 소신파친구들까지 이번엔 적극적으로 떠 밀었다. “, 별 아이가 가니, 왜 해보지도 않고 미리 피하니? 본인도 가고 싶다는 곳을.”

 

그러고 보니, “삼년 보고”(특수고 갈만한) 키울 아이가 아닐 성싶던 육년 보고내 아이가 갑자기 삼년 보고감으로, 새 희망에 불타는 내 앞에 떠올랐다. “그래,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아니, 신토불이의 교육관에 따라 일년만 참으면 삼년의 시간과 돈을 벌 것이다. 집값 비싼 강남땅을 벗어날 거주의 자유도 생긴다.”

 

더구나 우리 아이는 어릴 적부터 꿈이 생물학자가 아니더냐. 똑똑한 여느 아이들이 대통령, 대장의 위대한 꿈을, “생물학과보다는 의대를 꿈꿀 때에, 이 아이는 구체적으로 생물학자, 또는 의대의 기초 분야 학자 또는 수의사, 아니면 야생 동물원의 경비원이 되겠다고 했었다.

 

 

실험용 쥐가 한국말 하나?

중학교에 간 뒤 어느 날 소리를 질러 아이 방에 가보니, 저는 과학은 잘(?)하는데 왜 모든 과목을 다 공부해야 하느냐고, 왜 과학만 공부하는 학교에 다닐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고등학교가 있다고 했더니, “야아, 야야야야노래에 책상을 두드리며 좋아했다.

 

그러나 아이에게 방금 어렵다고 집어던진 국어도, 도덕도 모두 잘해야 간다고 일러 주었더니, 이번에는 순 사기다. 실험용 쥐들이 한국말 하는 것 관찰할 것도 아닌데 왜 국어도 잘해야 해요?” 하며 몹시 실망했다. 국어가 모든 공부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지녔던 나 자신도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싸하긴 했다. 그러나 논리적 설명을 잘 못하는 나답게 , 제 나라 말도 제대로 못하는 놈이 무엇을 제대로 하겠니? 과학고 가고 싶으면 알아서 공부해

 

내가 불안할 때마다 괜히 들먹이며, 공부하라고 더러 채근했지만, 구체적으로 보내겠다고 작정해 보지도 않았던 과학고, 그곳이 갑자기 멀고도 가까운 이웃처럼 보였다.

 

 

너만 짐승처럼 사니?”

육년 보고삼년 보고따라가다 가랑이나 찢어질까 더럭 겁이 나는데, 겨울의 찬 기운이 가신 어느 날 마침내 일이 터졌다. 그러잖아도 올해는 시간이 없으니, 그 짓(?)을 못하게 해야지 싶어, 내가 아무 화분이라도 갖다 놓자고 벼르고 있었는데, 외출했다 돌아오니 삼십분 뒤에 학원 갈 아이가 일을 벌리고 있었다. 신문지를 집앞에 잔뜩 펼쳐 놓고, 새 흙이며 거름을 화분에 담고 있었다. 다른 일에선 쉽사리 배터리가 떨어지는 아이인데, 그 몸시계만은 영구 배터리일까?

 

나지막한 소리로 집에 들어오라고 일렀다. 그런데 이 아이가 내가 뭘 잘못 했다고소리를 지르며 제 방의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니었나. 방에 따라 들어가 숙제는 했느냐고 묻자, “하든 말든 내 맘이죠. 왜 엄마 마음대로 키워요?” 했다. “네가 과학고 가고 싶어 했잖아?” 하자 누가 이렇게 짐승처럼 살자고 가려 한 줄 아세요?” 했다. “너만 짐승처럼 사니? 다들 그렇게 살지. 짐승처럼 매 안 맞고, 하고 싶은 공부하며 살고 싶은데 그걸 못 참아? 너같이 학원 안가고 어슬렁어슬렁 오가며 노는 놈이 짐승이지. 짐승의 정의가 뭔지 알기나 아니?” 했던 논쟁 끝에 나는 결국 막무가내인 아이의 뺨을 때리고 말았다.

 

왜 아이는 그렇게 절망적으로 화를 내었을까? 나야 늘 변덕스럽게 화를 잘 내는 어미지만. 다만 사춘기의 한 증후일 뿐일까? 하기야 봄이 와서 아파트 십일층 복도의 화분에나마 씨 뿌리는 것이 뭘 잘못 한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돈 들여 배터리를 갈아 주지 않아도 봄이 오면 때르릉하고 절로 울리는 것이 아이의 몸시계이니, 아이의 절망적인 고성은 그 자명종이 깨어지는 비명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아이는 그 이틀 뒤, 사월 일일에, 대단치도 않은 성적에 계속해서 다니면 미리 주눅만 키운다고 생각하여 과학고 목표의 학원을 그만 두었다. 마치 만우절에 거짓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친구들은 만우절의 거짓말인가하여 속지 않으려고 자꾸 눈을 껌벅이다, 사실임을 안 뒤엔 걱정스레 아이를 바라보았다. 왜 너는 시작도 제대로 안 해 보고 곽고도 못 간 보통의 무덤덤에 속할 작정을 하느냐는 듯이. 달콤하게 또한 씁쓸하게 잠깐 꾸어 본 삼년 보고의 꿈에서 깨어났을 뿐인데.

 

 

지렁이의 촉감과 도마뱀의 피부

아이가 오학년이 되던 해에 우리는 미국에서 돌아왔다. 미국에서 공부 잘 못하는 한국 아이 없듯이 우리 아이도 공부를 꽤 잘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도 재미 한국 부모들이 좋아하는 월반을 시키지도, 천재 프로그램에 보내지도 않았다.

 

하기야 부부가 살기에 다 바빠서 아이를 실어 나를 수 없는 것도 한 이유였지만 굳이 그 때문은 아니었다. 학교는 거의 사십분을 차로 가야 하는 곳에 보냈고, 바이올린도 먼 곳까지 데리고 다녀 가르쳤다. 이유는 아이란 제 또래 아이들과 뛰놀며 커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공부를 잘하는 것은 기본이라는 헛된 자만심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방학 때에 천재 프로그램에 가는 대신에 우리 아이는 대학의 여름 캠프에 가서 종아리가 반짝거려 흑인처럼 보이도록 뛰어 놀았다. 보낸 학교도 성적보다 창의적 과정을 중시하는 매릴랜드 주의 실험 학교였다.

 

그뿐일까? 암기식 수학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제 아빠의 지론에 따라 아이는 국민학교 사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구구단을 외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가 좋아하는 ”, “상어”, “귀뚜라미”, “흰쥐에 관해선 욀 수 있을 만큼 많은 책을 읽었다. 하다 못해 도서관에서 소설을 빌려 와도 매디슨가의 귀뚜라미집 나가는 쥐같은 것이 되기까지 했다.

 

대학교의 아파트라 동네 친구도 없었고, 허구한 날 제 어미랑 산보를 하는 것이 낙이었던 어느날, 나는 놀이터의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아이가 즐거운 목소리로 불렀다. “엄마, 이것 보세요.” 돌아다 보는 순간에 나는 아주 잠시 정신을 잃었다. 아이가 들고 있던 것은 길다랗고 허연 지렁이였다. 놀란 아이가 엄마 왜 그러세요, 정신 차리세요. 엄마 보여 주려고 깨끗이 씻었는데, 이렇게 긴 것은 본 적이 없어요했다. 정신을 차린 다음 순간에 나는 소리를 정말 꽥 질렀다. “그만 두지 못 해.” 언젠가 아이에게서 지렁이가 촉감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그뿐일까? 생일에 받은 도마뱀도 피부가 아름답다는 것을 어찌 말릴 수 있겠나.

 

 

아들에게 들은 일장 훈계

그러나 아이는 운이 좋았는지 우리 주변에는 아이의 기괴한(?) 취미를 잘 이해하고 귀여워하는 대학원생들이며 박사가 많았다. 아이는 그이들을 따라서 병원의 실험실에도 가고, 심부름을 잘 해서 때로는 사백원쯤 벌어오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실험용 쥐도 얻어 키우게 되었다.

 

흰쥐가 우리 집에 온 첫날, 그때 십팔개월쯤 되었던 딸애가 제 장난감 트럭에 태운다고 꼬리를 잡아 꺼내다 놓쳐 버렸다. 나는 징그러워서 울며, 도망치는 그 쥐를 잡아 겨우 통속에 넣었다. 게다가 아이는 쥐의 몸색깔을 본다고 암놈은 흰쥐, 숫놈은 까만쥐를 골라 함께 키웠는데 여덟살짜리가 연구원들에게 배워 임신 여부를 확인한답시고 쥐를 쳐들어 성기 주변의 테를 찾고 있는 모습, 그것을 보는 내 심사도 편치만은 않았다.

 

손꼽아 기다리던 이십이일 뒤에 멘델의 법칙대로 흰쥐는 검회색 아홉 마리, 검정색 세 마리를 낳았는데, 아이는 어미쥐가 고생했다고 제가 먹을 치즈를 주었다. 새끼쥐 열두 마리가 꽤 자란 뒤에도 하얀 어미 옆에 붙어 젖을 먹으면 여간 징그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학교 간 뒤에는 나무 젓가락으로 젖을 못 먹게 떼어놓거나 때려 주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아이에게 들켜 일장 훈계를 들었다. 자기가 정말 사랑하니까 키우던 물고기며, 거북이도 자기를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게 정들여 키운 쥐며, 물고기들을 나누어 주고 아이는 한국에 왔다. 잠시 여행길에 오른 듯이 즐거워 했던 아이가 칼기의 트랩에 올라, 비행기로 들어가기 직전 갑자기 돌아서더니 울며 소릴 질렀다. “노노, 나는 안가. 나는 못 가.”

 

 

냉동실 속의 개구리

누가 그랬던가. 지네 편한 대로 데리고 갔다가 또 지네 편한 대로 데리고 온다고. 갓난아기로 가서 열살이 되어 돌아온 아이는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암산으로 연필이 춤을 출 때에, 덧셈도, 혀로 더듬듯이 했다. 도덕 시험을 보면 기상천외한 답을 썼다. “한번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것은?”의 정답은 신뢰인데 아이는 시력이라고 쓰는가 하면, 하다못해 대변검사도 못 써서 화가 나 , 오줌도 구별 못 하니?” 소릴 질렀더니, “인지는 알았지만 그것이 대변인 줄은 몰랐고 어떻게 점수 하나 더 맞으려고 똥검사라고 쓰겠느냐는 것이었다.

 

정말 답답한 놈이 우리 아이였다. 미국에서는 몰랐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남말고 내가 보아도 지진아의 여러 특성을 다 지닌 양 보였다. 우선 발음이 신통치 않았다. 옷에 유념하지 않았다. 지렁이도 여전히 만지는 게 분명했다.

 

어느날 일기에서 아이의 거의 첫 거짓말을 발견했다. “나는 오늘 학교 가다 몸에 습기가 없는 지렁이를 발견하고 불쌍해서 집게로 집어 진흙 속에 넣어 주었다. 그래서 학교에 늦을 뻔했다.” “, 너 집게를 어디서 구했니?” 하니 한국 선생님은 분명히 더럽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 그랬어요. 손 씻었어요.” 했다. 천성이 낙천적인 아이였지만 둘러싸인 아파트만 보면 답답하다고 했다. 게임팩을 들고 다니며 노는 동무 관계도 답답하다고 했다.

 

한 번은 서울 대학교 뒷산에 다녀오더니 재수를 백번 해서라도 서울 대학교를 가겠다고 했다. 얘가 이제 철이 들려나 했더니 이유인즉슨 넓고 사람이 적어서였다. 그래서 다시 좁은 집에 흰쥐가 들어오고, 동네 수족관에서 얻어온 개구리알도 키우게 하고,

 

새끼 손톱만한 개구리가 부화하여 어느날 아침에 우리를 모두 들뜨게 하고 이유도 모르게 죽어가 슬프게 하기도 했다. 어느 하루는 냉동실을 열었더니, 조그만 용기 안에 죽은 개구리가 언 채로 있었다. 시간이 있을 때에 해부하여 보려고 했댄다. 그래서 나는 또 그 징그러운 것을 참아내기로 했다. 삭막한 땅의 능력없고 게으른 어미가, 보통아이를 남달리 키우자면 참는 것말고 무슨 도리가 있겠나.

 

 

난초 앞에서 서로 비교하지 마세요

아직도 아이는 농구를 하며 뛰놀 동무는 많지만, 같이 현미경을 볼 동무도 선생님도 없다고 불평한다. 미국에서처럼 마음껏 빌려 볼 도서관도 없다고 불평한다. 과학동아가 고작인데 그것도 제대로 보는 친구들이 없다고 불평한다. 그리곤 시간이 나면, ‘곽고갈 아이들은 어려운 과학 문제를 풀고 있을 때에, 제 어린 동생과 거북이 산보를 시키러 나간다. 또는 콩의 새싹을 들여다보고 무슨 색깔이 될까 점쳐 본다. 내 아이는, 제가 좋아하는 생물학적 표현을 빌려 말해, 환경에 부적합한 종일까? 아니면 새로운 종일까?

 

우리집에는 난초 분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내가 키우다 거의 다 죽인 것을 아이가 되살린 것이고 하나는 최근에 제 아빠가 선물로 받은 것으로 아이가 역시 키워 주고 있다. 일요일 아침, 화초에 물을 준 뒤에 빈둥대던 아이에게 과학자(?)인 제 아빠가 말했다. “역시 새 것이 생생해서 보기 좋구나.” 아이가 제 아빠의 팔을 당겨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 그러지 마세요. 황희 정승의 두 마리 소 이야기아시지요? 난초 앞에서 서로 비교하지 마세요.” 나는 문밖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외쳤다. “어머님, 제 아들이 어머니의 아들보다 낫지 않습니까? , ‘곽고아이들만 사람입니까?” 

 

 

옥명희/ 미국에서 십년쯤 살다가 몇해 전에 돌아왔다. 출판일을 하는 한편으로 러시아 대사관에서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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