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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보도의 어려움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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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보도의 어려움

송건호

 

 

길가에서 택시 운전수들이 다투고 있다. 차가 서로 스쳐 자체가 우그러졌는데 누구에게 잘못이 있느냐로 시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말이 서로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어느 쪽 말이 옳은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우리들이 일상 생활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조그만 광경이다.

 

신문에는 거의 날마다 몇 건의 교통 사고가 보도되고 우리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 기사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지금 예에서 본 바와 같이 하찮게 보이는 교통사고 보도에서조차 엄격히 따질 때 진실 보도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

 

무엇이 진실이냐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단순한 교통 사고조차 진실 보도가 이처럼 어렵다면 진실 보도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큰 사건이나 큰 문제일수록 진실 보도가 더욱 어렵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또 신문 기사 자신들조차 진실 보도를 자명한 것처럼 생각하고 또 말하고 있으나 문제를 좀더 파고들어 가 생각해 보면 생각할수록 독자들에게 진실 보도를 하기가 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을 파악하는 방법

진실이란 어느 사건 또는 어느 문제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란 무엇인가. 어떤 사실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모든 사실은 그 존재가 다원적이다. 꼭 진실을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일수록 그 존재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 이어 한 면만 보고서는 그 사실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위에서 인용한 교통사고의 경우도 시비하는 두 운전사의 말을 이쪽저쪽 다 듣지 않고서는 공정하고 옳은 판단을 할 수없다. 따라서 언론에 있어 진실이라, 첫째 사물을 부분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따라서 신문이 사건이나 문제를 전체적으로 또는 그 전모를 밝히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확대시켜 과장 선전하기도 하고 불리한 면은 이를 은폐하여 알리지 않거나 보도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한다. 이와 같이 부정확한 보도는 우선 일방적이며 편파적인 보도임을 말한다.

 

논평에서도 진실한 논평을 하려면 이런저런 측면을 다 같이 검토하고 거기에서 공정한 판단과 결론을 내려야 한다. 공정한 논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사고의 자유로운 활동이다.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문제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못 쓴다거나 또는 이 문제는 이런 방향, 이런 각도로만 생각해야 하며 그 밖의 각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이 곧 진실과 반대되는 곡필 논평임은 말할 것도 없다.

 

곡필을 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사고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곡필은 어느 선 이상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자유롭게 다각도의 사고를 하면 진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둘째, 언론에 있어 진실한 보도와 논평을 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역사적으로 관찰할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어떠한 사물을 옳게 보도하거나 논평할 수 있으려면 그 사물의 의미 또는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사물의 가치는 역사의 발전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도 내일에는 부정되고 오늘 부정된 가치라도 내일에는 평가를 받는다. 따라서 항상 어떠한 가치에 서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사람의 안목은 결정된다. 안목이 있는 사람이란 발전하는 새로운 가치의 입장에서 사물을 볼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 치고 누가 발전하는 입장의 가치를 거부하겠느냐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 사회적 가치란 사회적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기의 이해 관계에 따라 사물을 보는 입장이 서로 달라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긍정적 가치도 어떤 사람에게는 부정적 가치가 된다. 이것은 이해 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자기의 입장, 자기의 이해 관계의 입장에 서서 사물을 보기 때문에 같은 사물, 같은 문제인데도 보는 관점이 서로 달라 견해차가 생긴다. 따라서 사물을 볼 때에는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 퇴보의 가치가 아니라 발전하는 가치의 입장에 서서 판단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사물을 볼 때에는 어느 면이 더 중요하고 어느 면이 덜 중요하다는 점을 똑똑히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실은 그 존재가 다원적이라고 했다. 교통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가이다. 버스가 전복했는데 차체가 어느 만큼 파손됐느냐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면이 그 사건의 근거가 되고 그렇지 않은 면이 그 사건의 조건이 된다. 따라서 사물을 옳게 이해하려면 그 사물의 어느 측면이 근거가 되고 또 조건이 되는가를 예리하게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근거와 조건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한 문제 또는 사건의 이해가 크게 달라지고 이미지가 전혀 달라진다. 보도 기사에는 리드라는 것이 있다. 보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리드로하여 기사를 작성한다. 그런데 기사의 어느 부분을 리드로 잡느냐에 따라 가사가 독자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진다. 사물의 어느 면이 중요한가는 관심도에 따라 다르며 관심도는 이해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외신을 다루어 보면 같은 사건인데도 입장에 따라, 즉 기자의 국적에 따라 리드가 제각기 달라 사건을 보는 눈에 묘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월남의 최후를 보도하는 각국의 신문을 보면 이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반공 진영의 나라와 공산 국가의 신문 사이에 월남 사태를 보는 눈이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반공 진영의 나라라도 역점을 두는 측면이 나라에 따라 다르다.

 

 

가장 주관적인 보도가 진실 보도이다.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도하려면 기사를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있는 그대로를 조금도 주관을 섞지 않고 기사를 써야만 정확한 보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이라는 표현은 좀 주의해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 하면, 가장 정확하고 올바른 보도일수록 기사가 이른바 객관적이기보다 오히려 훌륭한 의미에서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사태를 가장 정확하게 알리는 보도일수록 주관적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은 얼핏 납득하기 어려운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구체적 예를 들면서 설명해 보면 조금도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윤봉길 의사가 1931년 중국 상해에서 일제 시라까와 대장 등을 폭사시킨 테러 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만약 정확한 보도라는 것이 주관을 전혀 개입시키지 않은 거울같이 보이는 그대로를 보도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윤 의사는 일본군의 엄숙한 대식전을 피바다로 물들인 엄청난 살인적 테러리스트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문은 마땅히 윤 의사를 규탄하는 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가 사건을 정확히 알리는 보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없다. 윤 의사의 장거는 우선 역사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식민지 제도라는 것이 인류 역사상 배격, 규탄되어야 할 역사적 유제(遺制)라는 판단이 앞서야 하고 이러한 역사적 가치 판단뿐 아니라 윤 의사의 장거 당시 국내의 삼천만 동포가 일제의 착취와 탄압 아래 얼마나 신음하고 있었느냐를 윤 의사의 테러행위와 관련시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 사건을 전체적역사적 근거와 조건을 식별하는 입장에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판단 위에 서야만 이 사건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비로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윤 의사의 테러 행위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이 위와 같이 수많은 다른 사실들과 횡적종적(역사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우선 알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사건을 정확히 보도하는 데 만약 이와 같이 풍부한 학문적 지식이 필요하다면 이것은 높은 차원에서 주관적 보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한 보도 활동에는 고도의 사회 과학적 소양, 이밖에 문학적철학적 소양까지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 대기자 올솝 형제가 훌륭하고 정확한 보도는 본래 가장 주관적인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러한 점을 지적해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윤 의사의 테러행위라는 좀 극단적 예를 든 것이 적절치 못하다고 할는지 모르나 가장 정확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실일수록 진실을 전달하려면 오히려 고도의 주관적 보도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해관계가 진실을 좌우한다.

신문이 진실 보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없는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실 보도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전적으로 보도 활동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양심 문제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기자가 정의감에 불타 있으면 진실 보도에 과감하고 그렇지 않으면 곡필을 휘두른다는 것이다. 또는 좀 좋게 말해서 취재 기술의 미숙에서 진실 보도를 못한다는 견해가 있다. 어느 편이나 다 같이 진실 보도를 하고 안하고는 보도 활동에 종사하는 기자 쪽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피상적인 견해임을 면치 못한다.

 

물론 진실 보도를 하고 안하고의 책임이 기자 쪽에 있다는 말 자체에 잘못이 있다는 것은 아니라. 다만 진실 보도가 안 되는 이유를 전적으로 기자들의 윤리 문제로 해소시켜 버리는 것은 신문 제작의 현실을 모르는 불충분한 견해라는 것이다. 정확한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부분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봐야 하고 역사적으로 새로운 가치의 편에서 봐야 하며 무엇이 근거이며 무엇이 조건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준칙을 강조하는 까닭은, 문제를 전체가 아닌 부분만보고 새로운 것 대신 낡은 역사적 측면에서 보고, 근거를 조건으로 조건을 근거로, 즉 중요한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뒤바꾸어 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신문 방송학과에서 배우는 것처럼, 기사 작성의 기술이 미숙하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특정 문제를 보도하는 데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이해 관계가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진실 보도다 아니다라고 할 때 그것이 AB라고 보도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현대 신문이 이렇게 졸렬한 거짓말 보도를 하는 예는 지극히 드물다. 사실에 입각해 보도하면서도 어느 특정 면을 특히 확대시킨다든지, 발전적이 아니고 낡고 소수를 위한 전시대적 가치의 편에서 보도한다든지, 중요한 점이 아닌 면을 중요한 것처럼 확대시킨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무엇인가 이해 관계가 깊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 세상에서 중요한 문제로 보고 또 정확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기대되는 보도일수록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필사적인 압력을 가하려는 외부 세력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쁜 것을 나쁘다고, 시정할 것을 시정해야 한다고 보도하고 논평하는 것이 진실한 언론임을 의미한다면 진실한 언론은 부조리를 개혁하려는 다분히 현실 부정적, 현실 지양적 언론이 될 수밖에 없다. 이와 반대로 만약 곡필이 부조리한 현실을 추종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표면상 온건하고 긍정적이며 따라서 건설적으로까지 보이는 것은 진실의 언론이라기보다 곡필의 언론이며, 그것은 더욱 그럴싸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진실 보도를 하려는 언론은 항상 현실 비판적이며 따로 현실 부정의 모습을 취하기 때문에 진실의 언론일수록 파괴적 언론으로 당시의 권력에 의해 탄압받기 일쑤이다. 그러므로 진실 보도는 일반적으로 수난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권력에 저항하여 진실을 위해 살기는 어렵다. 양심적이고자 하는 신문 또는 언론인이 때로 형극의 길과 고독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건호/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주요 일간 신문에서 논설 위원과 편집 국장을 지냈다. 한때 언론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한겨레신문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분단과 민족, 한나라 한겨레를 향하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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