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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꼬시는 방법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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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들을 꼬시는 남자들의 심리

 

속된 말로 여자 아이들을 꼬시는 남자들의 심리를 갈파한 찰리 쉐드의 관찰은 흥미롭다.

첫 번째는 '상처입은 비둘기 전술'  -  그들은 말한다.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고 나빠. 나에게 치유할 수 없는 많은 상처를 입혔어. 너 외에는 나를 친절하고 정당하게 대우한 적이 없어." 한마디로 이들의 전술은 모성 자극 전술이다.

둘째는 '불쌍한 당신 전술'  -  이는 첫 번째와 대조적이다. "너는 올바른 사랑을 받지 못했어. 가족, 형제, 선생님, 온 세상이 너를 나쁘게 취급해. 난 그게 마음이 아파." 이런 위로를 받은 여자 아이들은 '걔 처럼 저를 이해해주는 아이는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셋째는 '모든 사람이 다 그래' 전술  -  "세상 사람이 다 그래. 우리만 뒤쳐질 순 없잖아. 그저 현실을 즐기는 거야." 이 전술은 데이트만 목빠지게 기다리는 소녀들에게 효과가 있다.

넷째는 '사랑을 증명해 줘' 전술  -  "너 정말 나를 좋아하니? 그런데 뭘 망설이는거야" 이는 유사시대부터 전해져 온 쾌락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수법. '나는 이 사람과 헤어지면 죽을거야'라고 생각하는 소녀들에게 효과가 있다.

이 밖에도 그는 '성숙한 여인으로 만들어줄게' 전술, '남자들은 연애 경험이 많은 여자를 좋아해' 전술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대를 초월한 가치들이 무시받고 

세상이 가벼워지고 있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찰나와 편법과 외형이 영원과 적법과 내면을 깔보는 것이다. 이는 편리(便利)가 곧 진리 혹은 돈이 곧 진리라는 편의주의(convenientism)와 글로벌 캐피털리즘(Global Capitalism)의 한 결과로 보여진다. 정직, 정의, 양심, 성실, 자선 등의 시대를 초월한 가치들이 무시받고 있다. 거짓말하는 아들도 걱정이지만 정직한 아들도 걱정이라는 부모의 탄식은 이미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히지만 아이들이 정말 위인들처럼 살려고 하면 깜짝 놀라 말린다는 어느 지식인의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가벼움은 혼란스러움을 잉태한다. 백화점의 정기세일을 알리는 광고는 신문 전면을 도배하고 안중근의 서거 기념식을 알리는 기사는 찐빵보다 작은 크기로 구석에 웅크린지 오래다. 몇 개월만에 수백억을 벌은 벤처기업가의 얼굴 사진은 장애인들을 돌보며 한평생을 헌신한 한 노인네의 키만 하다. 덩크슛하는 미국 프로농구의 한 선수 사진이 군함 크기라면 아무 대가없이 신장을 기증한 한 사내의 가십 기사는 돛단배이다.

가벼운 것은 공중으로 자꾸 떠오르고, 떠오르는 것은 안정을 하지 못하고 자꾸 흔들린다. 흔들림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쾌락을 낳는다. 가벼움의 종착지는 쾌락이다. 쾌락은 진지함과 무거움을 거부한다. 그것들은 여름날의 오버코트처럼 거추장스러우며 쾌락의 즐거움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성은 유용한 선물이지만

진지함과 무거움이 백안시되는 현상은 성과 사랑에서도 나타난다. 양심이나 실존, 사유등 인생의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전혀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유독 성과 사랑에서만은 자유를 절규한다. 육체의 손상된 욕심을 자유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성은 유용한 선물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이거나 목표는 아니라는 리데나우어의 충고는 귀 기울여볼만 하다. 입안의 침은 유익하지만 땅에 떨어진 침은 더럽다. 난로 안의 불은 유익하지만 난로 밖으로 나온 불은 집을 불사른다.

성과 사랑의 자유를 옹호하는 자들의 최고 유혹은 '남들도 다 그래'이다. 이러한 현실 인정론은 주체가 죽은 자들의 쓸쓸한 자기 위안이다. 유사 이래로 세속의 큰 흐름이 진리였던 적은 없다. 그래서 시대마다 '순교'를 낳았고 의로운 죽음을 낳았으며 또 성경은 '좁은 길로 가라'고 권하지 않는가.

성과 사랑은 자칫 비탈길에서 타는 썰매와 같다. 잘못된 사랑에서는 반드시 누군가 벌을 받게 되어 있다. 세네카는 육체의 노예가 된 자는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뒤를 이어 쾌락주의 계보를 이어온 헨리 시드윅은 쾌락주의의 역설을 말한다. '쾌락을 추구하면 쾌락을 잃게 된다. 쾌락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사실은 부산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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