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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론적 우주관과 그 종말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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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론적 우주관과 그 종말

 

F.A울프

 

자연 현상을 단순히 관찰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사물을 탐구

과학자들이 전체 속의 부분들을 조심스럽게 연구하면서 물리학의 세계는 더욱 단순해지고 이해할 수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이 단편들을 종합함으로써 그들은 어떤 복잡한 운동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나무의 성장도 분자와 원자의 운동 법칙에 따른다고 믿었다. 그들의 견해는 나무만을 세심한데 연구해도 숲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숲은 결국 숲을 뿐, 아직도 원자와 분자의 운동에 의해 어떻게 나무가 성장해 가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뉴턴의 운동 법칙을 우주의 최고 법칙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 법칙의 틀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미묘한 가정 ― 관찰자는 관찰 현상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 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찰자는 '저 밖'에 있는 것을 관찰할 뿐이지 그것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뉴턴의 운동 법칙은 물질 세계를 거대한 시계 장치로 보고 있는 셈이다. 시계 장치는 여러 부분으로 분해될 수 있으며 다시 짜 맞추어질 수 있다. 그리고 재조립된 시게는 전과 같이 작동한다. 이러한 뉴턴의 운동 법칙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대칭성'을 제시해 주었다. 시계는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과거로도 작동할 수 있다는 대칭성이 그것이다. 연속성의 수학으로 묘사된 뉴턴의 법칙에 의하면 미래는 이미 완전하게 결정된 것이며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운동의 법칙에 따라 현재를 알고 과거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의 추정은 뉴턴의 운동 방정식에 내재해 있는 '시간 대칭성'에 입각한 것이었으며, 희미한 인간의 기억에 의거한 추정은 아니었다. 과거는 현대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래 또한 현재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었으며, 19세기까지 이성을 중요시하던 '기계주의 시대'는 절대적으로 신봉하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말이 되면서 새롭지만 다분히 고정적인 자연관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 가지 불가사의한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첫 번째 사건은, 빛이 매질 없이도 전파된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빛에 대한 역학적 모형의 결함이 드러난 사건이었으며, 두 번째는,뜨겁게 달구어진 물질에서 방출되는 빛의 색깔에 관한 문제 ―흑체 복사 현상― 였다. 방출되는 빛의 색깔은 물체의 기계적·역학적 운동이나 진동에 의해서는 결코 설명될 수 없었다.

 

빛과 열에 관한 이 불가사의한 현상이 발견된 이후로, 끊임없는 분석 정신을 통하여 양자 역학이 발견되면서 '확실성의 시대'의 탄탄한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확실성을 신봉하던 물리학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양자 역학은 결코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뉴턴이 말한 '거인들'이라는 소집단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다.  

뉴턴의 거인들 ― 이성의 시대

뉴턴이 말했던 '거인들의 시대', 즉 이성의 시대를 최초로 연 사람은 코페르니쿠스였다. 16세기경에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했으나, 그 시대에는 그러한 사실을 입에 담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다, 13세기경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 산학은 전개하면서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별들은 지구 주위를 완전한 원형 궤도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려면 종교 재판에 의해 사령을 받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151년,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정지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자신의 첫 번째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종교계의 반발이 너무 거세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견해를 철학적 방식으로 저술하였다.

 

그는 대담하게도 그후 20년간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는 자료들을 계속 수집하였다.

 

마침내 1543년, 임종을 불과 몇 시간 남겨 두고 그는 20년간의 노력이 책으로 출판되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기독교 신학의 미몽에서 깨어나 지신의 이성을 되찾은 루터파의 한 젊은 교수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 명명된 그책을 가져다 보여 주었다,. 이 책은 뉘른베르크에서 출판되었으며, 곤 가톨릭 교회에 의하여 출판을 금지당했다. 그리고 그후 300년간 그 책은 다시 출판되지 못했다.

 

뉴턴의 두 번째 거인은 브루노였다. 그는 1548년에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으며, 모종의 경로를 통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접하게 되었다. 젊은 브르노에게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며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이 매우 신비롭게 여겨졌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하늘을 바라보면 태양이 떠올라서 내 머리 위를 지나 움직이는 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구가 돌고 있다고 한다면 내가 진실이라고 믿어 왔던 많은 것들이 진실이 아니란 말인가?' 브루노는 이러한 의문에 휩싸였을 것이다.

 

브루노의 상상력은 계속 펼쳐져서 그는 수많은 태양계가 우주에 흩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각 태양계 속에는 우리 지구와 유사한 많은 지구들이 존재하고 또한 그 지구들 위에는 생명체들이 살아 있다고 상상했다. 결국 그는 이와 같이 말한 죄로 1600년 에 이단자로 몰려 화형 당하고 말았다.

 

뉴턴의 세 번째 거인은 1572년 독일에서 태어난 케플러였다. 그는 천문학과 점성술을 좋아했다.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의 조수로 일하면서 그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견해를 입증해 가는 가운데 천체 운동에 관한 세 가지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 세 가지 법칙은 나중에 뉴턴의 운동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세가지 법칙은 나중에 뉴턴의 운동 법칙에 토대가 외었으며,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더 나아가서 이 세 법칙은 새로운 우주관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시계장치― 을 낳기도 하였다.

케플러는 아마 자신의 관찰 결과를 공식화하기 위하여 수학을 사용한 최초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수학적 해석 방식은 그리스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수학적인 설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컨대 그는 음악을 수학적인 현의 진동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케플러는 자신의 수학적 해석 방식을 입증하기 위해서 무언가의 절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네 번째 거인은 데카르트였다. 그는 1691년 바바리아에서 폭설이 내린 2주일간 집안에 갇혀 지내면서 세 가지 착상을 얻었다. 이 착상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때가지 알고 이해했던 모든 것에 관하여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이 착상으로 말미암아 그는 그때까지 알고 이해했던 모든 것에 관하여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그는 종교 교리를 거부하게 되었으며 권위의 상징들을 물리쳤다. 그 결과 그는 오직 한 가지만을 확신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이른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다시 고대 그리스인들의 관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온 '존재 대 변화' 의 논쟁이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그 논의를 한 걸음 더 발전 시켰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논리적으로 추론해 냈다. 즉 자신이 존재한다는 자각이야말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대단히 힘차면서 단순한 논리였다. 물론 태어나기 전이나 죽은 뒤에도 자신이 존재한다고 상상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데카르트는 존재와 변화가 상호 보완적인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모든 것은 존재하는 것만도, 또 변화하는 것만도 아니라고 믿었다.

 

'나는 존재한다.' 는 말은 존재를 의미하며 '나는 생각한다.'는 말은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존재는 변화의 토대이다. 또한 변화는 존재를 자각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데카르트는 뉴턴에게 '논리적 사고'라는 확고한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학파들은 데카르트가 사용한 분 것과 사고 방법을 따르고 있다. 모든 만물에는 틀림없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므로, 행성이 태양을 돌고 있다면 거기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대담하게도 '존재와 변화의 요소'만 가지고 우주에 관한 완전한 이론을 만들려고 했다. 그 요소란 바로 물질과 운동이다. 또한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연결하려고도 했다. 그는 운동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바다에 떠 있는 두 배가 서로 충돌했을 때, 어느 쪽 배가 잘못한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과연 어느 배가 상대편의 배로 와서 충돌한 것인가? 두 배는 모두 상대편 배의 잘못을 주장할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 충돌이 운동의 상대성에서 기인함을 지적하였다. 즉, 두 배 안의 승무원들은 서로 자신의 배는 정지해 있었는데 상대편 배가 자신의 배를 향하여 움직여 왔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들 네 명의 분석적 과학자 ―코페르니쿠스, 브루노, 케플러, 데카르트― 에 의해 운동에 관한 새로운 견해가 태동하였다. '자연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절대적 움직임'이라는 운동에 관한 견해는 '사물이 왜 운동하는가?' 하는 의문을 해결해 주지 못하였으며, 이제는 수학적인 해석 방식과 분석 방법이 과학의 믿음직한 도구가 되었다. 게다가 다섯 번째의 거인은 존재와 운동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뉴턴에게 제공해 주었다. 그는 자연을 능동적으로 조작한 최초의 실험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다.

 

갈릴레이 ― 최초의 능동적 관찰자

갈릴레이는 현대적 의미로 최초의 물리학자였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모든 물리학의 기초로서 사용하고 있는 관찰, 묘사 및 분석에 관한 거의 모든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는 수동적 관찰을 능동적 관찰로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하였으며, 마침내 우리들로 하여금 양자 역학의 발견에까지 이르게 하였다.

 

수동적 관찰이란 관찰 행위가 관찰 대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관찰이다. 즉, 관찰자의 존재가 관찰 결과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태양의 우리의 관찰과 상관없이 항상 떠오른다. 우리는 태양의 운동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현재 그것이 지구의 자전 효과임을 알고 있다. 지구의 자전을 멈출 수 있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진실이다.

 

갈릴레이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운동의 원인이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기했던 것뿐이었다. 운동에 대한 실험적인 분석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으며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과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가 겨우 17살이었을 때 피사의 교회 안에 있는 샹들리에가 흔들이 추처럼 흔들리는 것을 우연히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반쯤 열려진 교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샹들리에를 흔들고 잇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지루한 설교를 들으면서 그는 주의 깊게 샹들리에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손목을 짚고 맥박수를 특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즉 샹들리에의 흔들리는 주기가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이렇게 이럴 수가 있을까?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샹들리에를 큰 폭으로도 흔들고, 또 흔들리는 주기는 항상 똑같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그 샹들리에를 바라보다가 진자 시계의 원리를 최초로 발견했던 것이다. 진자의 운동은 시간 측정의 근거가 되었다.

 

뒷날 그는 이 실험을 기억했을 것이다. 모든 운동을 특정하는 데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1년이란 기간은 행성의 운동을 특정하는 시간이며 1초는 물체의 운동을 측정하는 시간 단위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뉴턴의 '거인들'과는 달리 갈릴레이는 관찰을 매우 철저하게 하였다. 단지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실험장치를 만들어 새로운 과학의 장을 열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갈릴레이는 종교 재판석에서 재판관들을 향해 망원경으로 달과 산맥과 분화구들을 바라보도록 요청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것을 보고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망원경이 실제의 것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망원경을 통하여 보이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본 것은 망원경이 만들어 낸 것이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은 아니다."하고 그들은 주장했다. 갈릴레이는 계속 그것이 달 표면의 실제 모습이라고 말했다. 마침내 재판관 가운데 한 사람이 망원경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그 안에서는 갈릴레이가 주장한 것과 비슷한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재판관은 부르짖었다."그 분화구란 바로 너의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다!" 갈릴레이가 반박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달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당신도 그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또 다른 예화를 들어 보자. 갈릴레이는 중세 이탈리아의 부유한 지배자 가문이었던 매디치 가(家) 앞에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였다. 그는 널빤지를 기울여서 경사지게 해놓고 여러 종류를 그 위에서 아래를 굴렸다. 그는 널빤지를 기울여서 경사지게 해놓고 여러 종류의 물체를 그 위에서 아래로 굴렸다. 그가 이 실험을 한 이유는 널빤지 위에 있는 물체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가속 운동을 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널빤지 위에 있는 물체들은 무게의 차이에 상관없이 일정한 가속도로 굴러서 동시에 바닥에 떨어졌다. 이 실험의 결과는 무서운 물체가 가벼운 것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메디치는 가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갈릴레이가 뛰어난 마술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갈릴레이여, 우리가 어찌 너의 그 마술을 믿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너는 속임수를 써서 빨리 달리는 무서운 물체를 저지시켰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네가 보여 준 것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바보 취급하지 말아라. 우리 또한 보는 눈이 있으며 생각하는 두뇌를 갖고 있다. 도저히 너의 그 유치한 속임수를 신의 진실한 운동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사람을 미혹케 하는 네 활동을 금지시켜 하겠다. 갈릴레이여, 너는 자연 법칙을 어긴 행위에 대하여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들의 말은 갈릴레이의 귓속에서 맴돌았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반대자들에게 과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 관찰대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그것이야말로 과학자가 할 일이었다. 그렇지만 첫 번째 이야기에서 볼 수 잇듯이 종교 재판관들은 달의 분화구를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망원경을 믿지 못했으며,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갈릴레이의 망원경이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이미 이성을 추월한 것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보면, 자연의 진실한 법칙을 드러내고자 하는 갈릴레이의 노력은 그가 사용한 방법이 너무 유치하다는 이유로 놀림감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그의 반대자들은 자연의 연속적인 운동이 갈릴레이의 무례한 개입에 의해 방해받은 것이 틀림없다고 분노하였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실험이 운동의 참된 본성을 단지 비슷하게 보여 주었을 뿐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방법이 유치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자연 법칙을 방해하였다는 사실만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진실을 왜곡시키는 것들을 제거하여 운동의 본질적 법칙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세심한 분석을 통하여 그는 우리의 관찰을 가리고 있는 외부로부터의 영향력들을 통찰할 수 있었다. 갈릴레이는 이러한 방법으로 현대실험 물리학의 선구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방법들은 현대 이론 물리학을 위한 견해로서 지금에 와서도 사용되고 있으며, 아이작 뉴턴도 갈릴레이의 방법을 발전시키는 데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역학의 연속성

뉴턴은 수동적 관찰과 능동적 관찰을 조화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그의 관점에서 능동적 관찰이란 수동적 관찰의 확장일 뿐. 이 두 가지 관찰 방식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기계 장치는 단순히 어떤 현상을 인지할 뿐이다. 그것은 관찰되는 세계를 전혀 변화시키지 못한다. 능동적 관찰에 대한 이와 같은 사고 방식을 통하여, 17세기 말과 18세기초의 과학자들은 진리의 위대한 바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뉴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나는 단지 해변가에서 아름다운 조개 껍질과 조약돌을 주우면서 놀고 있는 소년에 불과하다. 위대한 진리의 바다는 내 앞에 미지의 상태로 펼쳐져 있다.  

 

뉴턴이 실제로 망원경을 통해 달을 관찰하였는지, 또는 갈릴레이의 실험들에 관하여 생각만 하였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뛰어난 수학과 훌륭한 실험 장치로 인해 과학자들이 우주를 더 명쾌하고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망원경과 현미경, 진공 펌프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고 기하학과 미적분학은 새로운 수학의 장을 열어주었다. 이 수학과 실험 방법의 결합은 뛰어난 통찰의 결과였다.

 

과학자들은 우주이 심오한 곳을 살펴보았고 극미의 세계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기계 장치들은 단순히 인간의 감각만을 확장시켜 주었을 뿐이다. 데카르트의 철학적 가르침에 의하면, 마음은 물질과는 다른 것이므로 관찰자 역시 관찰 대상과는 다른 것이다. 천상의 것을 제외한 모든 만물이 뉴턴의 분석 대상이 되었다.

 

코페르니쿠스로부터 갈릴레이까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뉴턴은 그 유명한 저서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매우 조리 있는 논리를 통해 우주의 모든 운동에 관한 사색의 시대를 열었다. 뉴턴에게 있어서 연속성의 개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으며, 이 개념으로부터 그는 세 가지 운동 법칙을 구체화 할 수 있었다. 연속성의 개념이 없다면 그 세 가지 운동 법칙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에 있어서 제논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쟁의 근원이었던 무한의 개념조차도 뉴턴에게는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았다. 뉴턴의 생각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뉴턴과 그의 제자와의 대화를 상상해 보도록 하자. 제자는 묻는다. "뉴턴 선생님,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뉴턴과의 대화

 

뉴턴의 대답을 상상해 보자.

 

"시간이란 무엇이냐고? 시간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절대적이며 진실한 것으로서, 매우 수학적이다. 시간은 어떠한 것과도 상관 없이 연속적으로 흐른다. 그러나 우리가 기간이라고 부르는 시간의 조각은 감지할 수 있으며 측정할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는 물체의 운동을 통하여 시간의 조각을 측정할 수 있으며, 그 조각의 이름을 운동의 크기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지정할 수 있다.

 

예컨대 1년이란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운동 주기이며, 한 달이란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의 운동 주기이다. "

 

그러자 다른 학생이 묻는다.

"뉴턴 선생님, 그러면 공간이란 무엇입니까?"

 

뉴턴은 대답한다.

"공간이란 고정되어 있는 무한한 것이다. 공간은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길이'는 그것과 다르다. `길이'는 감지할 수 있으며 상대적인 것이다. 비교를 통하여 우리는 `길이'를 측정할 수 있다. 예컨대, `이 사람은 저 사람보다 키가 크다' 등등……."

 

그러자 또 다른 학생이 묻는다.

"그렇다면 물체는 어떻게 움직입니까?"

 

뉴턴은 대답한다.

"물체가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그 물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움직임뿐이기 때문이다. 운동은 물체의 고유한 성질인 것이다. 오직 그 운동이 저지되었을 때에만 우리는 그 물체의 운동에 놀라워한다. 또한 우주의 모든 물체는 시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만약 우주 속의 한 물체를 떼어 내어 고립시킨다면 그 물체는 영원토록 그 운동이 변하지 않게 될 것이다(등속 직선 운동). 과거에 그 운동이 어떠하였든지 지금도 그와 똑같이 움직일 것이다. 만물은 연속적으로 움직인다. 그렇지만 물체들은 서로 상호 작용을 주고받는다. 이 상호 작용으로 그들의 운동은 휘어지기도 하고 가속되기도 한다. 예컨대, 행성의 궤도는 태양이 그 행성을 잡아당기고 있는 힘 때문에 태양 주위를 휘어돌게 될 것이다. 태양이 잡아당기는 힘을 나는 중력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공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 공의 운동 역시 중력에 의해서 변한 것이다. 떨어지는 공은 가속되면서 운동량이 증가한다. 이 모든 것들은 나의 운동 법칙과 중력 이론으로 설명된다."

 

그 젊은 학생은 또 묻는다.

"그렇지만 뉴턴 선생님, 그 힘은 운동을 불연속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뉴턴은 대답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힘이 작용할 경우에도 그 운동은 연속적인 것이다. 비록 힘이 운동을 변화시키지만, 그 변화는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즉, 매순간 가속되면서 떨어지고 있는 공은 아주 조금씩 속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매순간 행성의 궤도는 조금씩 휘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행성의 궤도는 직선이 아닌 원형 궤도를 그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힘이 작용했을 때의 상황이다."

 

그 학생은 의심에 차 또 묻는다.

"모든 운동을 이런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뉴턴은 대답한다.

"그렇다. 내가 사용한 수학 법칙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법칙은 더 많은 것도 보여 주고 있다. 나의 세 번째 법칙에 의하면 작용은 반작용과 크기가 같다. 즉, 지구가 달의 궤도를 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달 역시 지구의 궤도를 휘게하고 있다."

 

다시 그 학생이 반문한다.

"잠깐만요, 지구가 달의 궤도를 구부러지게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만, 달 또한 지구의 궤도를 휘어지게 하다니요. 믿어지지 않습니다."

 

뉴턴은 대답한다.

"사실이 그렇다. 달은 질량이 작아서 크게 휘어지지만, 지구의 질량은 달의 질량보다 6배 이상이 되므로 아주 조금만 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대화가 밤이 깊도록 계속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뉴턴의 대답은 모두 수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었다. 뉴턴의 이러한 통찰과 법칙은 이 세계를 더욱 단순하게 만든 동시에 더욱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뉴턴이 운동을 분석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이 세계는 더 단순해진 듯이 보였다. 한 물체의 운동이 휘어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있고, 그 물체의 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뉴턴의 수학적 분석 방법은 모든 운동이 연속적인 것이며, 그 운동은 조그만 부분들로 나누어 분석될 수 있다는 확고한 가정 위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매우 짧은 시간 간격에 해당하는 부분들 역시 운동 법칙을 확고하게 따르게 있었다.

 

그러나 이 세계가 부분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졌다는 또 다른 입장에서 보면 세계는 더욱더 복잡해진 셈이었다. 우주는 여러 개의 부분들이 모여 구성된 것으로서, 그 밖의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만약 뉴턴의 법칙에 위배되는 운동이 관찰되었다면, 그것은 그 물체에 영향을 주고 있는 또 다른 물체가 주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체란 부분들의 총합이며, 또 그래야만 하였다. 이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각 물체들은 다른 물체에 영향을 주면서 거대한 우주라는 기계의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기계들 역시 뉴턴의 분석 방식에 따라 이해할 수 있도록 작동되었다. 이리하여 기계론적 철학이 등장하였고 물질계와 비물질계 모두를 기계로 간주하려는 생각이 유행하였다.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합당한 원인이 존재해야 하고, 각 원인에는 합당한 결과가 있어야만 하였다. 따라서 미래는 과거의 결과로 결정되었으며, 그 누구도 이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사고조차 어느 정도는 뉴턴의 기계로 설명될 수 있을 정도였다. 신의 손에는 영원 전부터 작동하고 있는 기계가 쥐어져 있으며 아무도 그 기계를 정지시킬 수 없다. 모든 결과와 우리의 모든 생각까지도 영원 전에 있었던 최초의 원인에 의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은 이미 신의 뜻대로 결정되어 있으며, 자유 의지를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바로 `결정론적 우주관'이다.

 

악몽의 결정론

1880년경 프랑스 가정의 한 응접실 풍경을 상상해 보자. 흰 가발을 쓰고 흰색 스타킹을 신은 사람들이 저녁에 응접실에 모여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때 주인이 유명한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라플라스 후작이 도착했음을 좌중에 알린다. 그러자 주위가 조용해지면 술렁이기 시작한다. 라플라스가 들어온다. 사람들은 그를 왕처럼 환대하며 조용히 한편으로 물러선다. 그에겐 배우·예술가적 기질이 있어 보인다. 사람들은 반원형으로 둘러앉고, 라플라스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19세기 초엽 파리 사교계의 명사였다. 천체 역학이라 불리는 신비하고도 아주 난해한 과학에 관한 그의 극적이고 감동적인 이론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는 천상의 이야기로 청중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청중들은 뉴턴이 중력이라고 불렀던 원거리 작용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별들 사이에는 끈이 존재하지 않고 아직 관찰된 바도 없었지만, 원거리 작용은 가속도를 일으키는 원인으로서 전체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우주와 그 부분들은 같은 원리에 따라 명확히 정의된 법칙에 따르고 있었다. 또한 모든 것은 예측이 가능했다. 임의의 순간에 물체들의 질량과 속도, 위치를 알고 있다면 그 물체들에 작용하는 힘만 가지고도 모든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 그 물체가 무엇이든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별, 행성, 날아가고 있는 돌 등 모든 것이 힘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 우주는 거대한 뉴턴적 기계 시계였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그것을 지배했다. 아무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었다. 라플라스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는 우주의 현상태를 고거의 결과로, 그리고 미래의 원인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그 존재에 작용하고 있는 모든 힘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 그 마음은 모든 자료를 분석할 만큼 광대하다고 하자 - 그 마음은 우주에서 가장 큰 물체의 운동과 가장 작은 원자의 운동을 동일한 법칙으로 통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마음에는 불확실한 것이 전혀 없으며 미래 또한 과거와 같이 현존하고 있을 것이다.

 

그 거대한 기계의 필할 수 없는 작용의 결과로서, 인간의 슬픔에서부터 태양의 뜨고지는 것까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완벽한 결정론이 탄생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물리 법칙에 따라야 했다. 왜냐 하면,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자연을 궁극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원인에 해당하는 감추어진 힘을 발견했다. 일단 이 힘이 발견되자 자유 의지, 구원, 영원한 벌, 또는 사랑과 증오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가장 사소한 생각들조차 이미 태고 적부터 결정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윤리, 도덕성, 긍지, 편견 같은 것은 농담거리가 되었다. 당신은 자신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조차도 우주적 시계 장치가 기묘한 방식으로 작동함으로써 생긴 결과이다. 지금도 우주 전체의 신비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중이지만, 이러한 유물론적 철학은 우주를 이해하는 기초가 되었다.

 

자유 의지가 사라졌다는 생각이야말로`결정론의 악몽'인 것이다. 이러한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 이 시대의 사색가와 철학자들도 이와 같은 뉴턴적 사고에 당혹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물리학은 기껏해야 물질 현상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물리학은 소수의 원리를 통하여 행성의 운동에서부터 밀폐된 용기 안에 있는 가스 분자의 운동에까지 이르는 물질 현상만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19세기의 사상가들은 완벽함과 보편성을 추구하면서 물리학의 전반적인 체계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역사와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보편적 법칙을 찾으려 했다. 카를마르크스는 물질이란 단지 변화의 주체일 뿐이며, 변화는 물질에 내재한 상반된 두 힘들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의 산물이라는 철학을 발표했다. 즉, 한 힘이 다른 힘을 누렀을 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혁명 운동은 결코 지배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간의 상호 협동적인 것이 될 수 없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이라 불리는 이 이론은 뉴턴의 제 2법칙 - 힘은 운동의 원인이며 물질은 힘의 지배를 받는다. - 과 매우 비슷하게 보였다.

 

1925년 미국의 어느 고등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선 스코프스를 피고로 한 이른바 `원숭이 재판'에서 진화론을 변호했던 유명한 변호사인 다로도 뉴턴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또 다른 유명한 재판인 악명 높은 레오폴드·로엡 살인 사건 재판에서, 그 살인자들이 유전과 환경의 희생자임을 역설하면서 그들을 변호하였다. 그들은 분명히 죄를 지었지만,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자율적 행동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들이 자라온 환경도 그러한 원인의 일부가 되었다. 따라서 자율적 행동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던 그들을 이 사회가 어떻게 처벌할 수 있겠는가? 그 살인자들 역시 그들에게 살해당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죄의 희생자들인 것이다. 뉴턴의 시계 장치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처럼 라플라스, 마르크스, 다로가 뉴턴적 기계관에 영향받은 것은 분명하다. 확실히 전체를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부분의 합으로, 그리고 부분을 이해함으로써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과연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마음조차 물질에서 나온 복잡한 기계 장치에 불과하다. 바로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지그문트 프로이트였다.

 

프로이트는 어떤 꿈의 영상들을 원초적인 관념, 신화, 의례 등과 연관지어 생각했다. 그는 이 꿈의 영상들이 `고대의 단편적 흔적'- 즉, 태고 적부터 두뇌에 잔존되어 왔던 정신적 요소들 - 이라고 주장했다. 잠재 의식이란 일종의 쓰레기더미인 것이다. 우리는 죄짓는 것을 근심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수천 년 전부터 살인, 강도, 도둑질을 해 왔던 우리의 선조들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 물리학이 양자 물리학으로 대체되는 시기에 기계론적 과학과 유물주의의 옹호자였던, 『잉글랜드 애뉴얼 레지스터』의 편집인 휴 엘리어트가 있었다. 그는 세계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가정했다. 첫째로, 우주의 법칙은 균일하게 작용하며, 만약 우주가 무질서하게 보인다면 과학의 세심한 조사를 통하여 우주의 법칙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그는 목적론적 철학을 하나의신화로 보았다. 왜냐 하면, 우주에 목적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건은 물질 사이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보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모든 존재 형태들이 감지할 수 있는 물질적 특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어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의식 행위와 물질적 존재는 서로 별개의 것처럼 보인다. 의식 행위, 또는 사고 과정은 직접적으로 명백하게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 과정이 물질 과정, 즉 물질과 에너지의 변형 과정과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생각은 강하게 부정하고 싶다.

나는 엘리어트를 자주 인용한다. 왜냐 하면, 그 사람처럼 물질 우주이 전체성을 확고하게 믿었던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영적 존재와 같이 물질과 본질적으로 다른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과 정신이라는 각각 다른 두종류의 근본적 존재는 없다. 오직 한 가지 존재만이 ……."

 

이렇게 하여 우리 모두는 기계가 되고 말았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고전 물리학은 물질적 우주의 모형뿐만 아니라 인간 행동의 모형을 제시해 주기도 하였다. 17세기 사상사에 작은 물결처럼 일어났던 기계적 유물주의 사조는 마침내 거대한 파도처럼 모든 인본주의적 사상을 쓸어 버렸다. 물리학은 죽은 물체를 탐구했고, 물리학자는 살아 있는 사람을 기계 장치로 간주하였다.

 

과학의 길 어딘가에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이 철학은 갑자기 실종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데카르트의 철학은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로 뒤바뀌어졌을 것이다. 객관적 실체의 탐구, 즉 감추어진 기계적 질서의 원인과 결과만이 연구 대상이 되었으며, 그들에게는 과학의 지평선이 활짝 열러 있었다.

 

미래의 과학에 관한 이야기에서, 한 유명한 실험 물리학자 마이컬슨은 미래의 과학이란 단지 `지금 우리가 얻은 결과에 소수점 이하 몇 자리만 첨가시킨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당시 모두가 이 기계론적 우주관을 신뢰한 것은 아니었다. 그 중 한 사람이었던 켈빈경은 19세기 중반 유럽 물리학계의 태두가 되었다. 그는 19세기가 끝나 갈 무렵 뉴턴적 우주의 지평선에는 두 개의 검은 구름이 일기 시작했다고 비평했다. 그는 바로 빛과 열에 관한 역학적 모델의 두 가지 결함을 지적한 것이다.

빛과 열의 역학적 이론과 그 결함

19세기 말경 기계적 우주관은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과학자들은 우주를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했으며, 뉴턴적 기계 모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단순히 기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특성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물질 우주를 여러 개의 부분으로 분할하여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빛광 열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숯불, 산수소 불꽃, 달구어진 쇳덩이 등과 같이 뜨거운 물체가 내의 빛의 색깔은 어두운 빨강에서부터 파르스름한 색깔에 이르기까지 크게 다르다. 이 사실은 색깔이 온도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어쨌든 파란 부분이 가장 뜨거운 곳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각 온도별로 방출되는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함으로써 스펙트럼의 색 분포 변화로 인해 물체가 내는 빛의 색깔 변화가 결정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체는 뜨거워질수록 점차 흰색으로 빛나게 되며, 스펙트럼의 색 분포는 무지개와 같은 균형을 갖게 된다.

 

물체의 온도와 방출되는 빛의 스펙트럼 사이의 관계는 역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1800년의 게이 뤼삭의 업적 아래로 과학자들은 높은 온도란 큰 운동 에너지, 즉 더 빠른 운동과 관계있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물체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열을 가하면 원자가 빠르게 진동할 것이다. 따라서 달궈진 물체가 발하는 빛의 색깔은 그 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 - 진동자라고도 부른다. - 들의 진동 운동을 통하여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빛의 진동수는 바로 진동자의 진동수와 같아야 한다.

 

맥스웰에 의하여 빛이 전자기적 진동의 일종임이 밝혀진 이래로, 과학자들은 뜨거운 물체가 발하는 빛의 색깔 변화는 진동자의 서로 다른 진동수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붉은빛은 푸른빛보다 더 느리게 진동한다고(낮은 진동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에테르를 찾으려는 시도가 점차 미국에 빠져들고 있었지만, 과학자들은 색깔과 진동자의 진동수가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뜨거운 물체가 내는 빛의 색깔도 19세기 말에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당시 음파 연구의 전문가였던 레일리 경은 뜨거운 물체가내는 빛을 뉴턴 역학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의 이론은 빛의 파동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뜨거운 물체가 발하는 빛 에너지는 차가운 물체가 발하는 빛 에너지보다 높은 진동수로 방출되어야만 했다. 그 이유는 파동성 때문이다. 파동의 진동수는 파장과 연관되어 있다. 진동수가 높아질수록 파장은 짧아진다. 크기가 일정한 상자 안에 빛의 파동을 집어넣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파장이 긴 빛보다는 파장이 짧은 빛이 상자에 들어갈 확률이 크다. 이러한 기하학적 요인 때문에 뜨거운 물체는 긴 파장의 빛보다 짧은 파장의 빛을 더 쉽게 방출할 수 있다. 그 결과 달구어진 부지깽이는 붉은색보다는 푸른색으로 빛나려고 하고, 푸른색보다는 보라빛으로 빛나려 하며, ……이 과정은 끝없이 진행되어 마침내 뜨거운 물체는 자외선보다 더 짧은 파장으로 빛나려 하게 된다. 즉, 모든 뜨거운 물체는 자외선 너머의 빛으로 열 에너지를 방출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자외선 파탄'이라 부른다. 그러나 자외선 파탄은 오직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든 성냥불을 켜고 그 불꽃을 볼 수 있다. 레일리 경의 이론에 의하면 성냥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으로 빛나야 한다. 그러나 성냥불은 매우 선명하게 보인다. 이와 같이 뉴턴적 역학 이론으로는 뜨거운 물체의 복사 현상을 설명 할 수 없었다. 뉴턴의 지평선에 두 번째의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이다.

기계론적 시대의 종말

두 개의 먹구름이 뉴턴 역학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뉴턴 역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뉴턴 역학적 세계관을 재정립하려고 다음의 가정을 세웠다.

 

첫째, 사물의운동은 연속적이다. 모든 운동은 그 규모의 크기에 상관 없이 모두가 연속적이다.

 

둘째, 사물의 운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운동의 원인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운동은 결정되어 있으며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셋째, 모든 운동은 부분적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다. 이때 각 부분은 우주라는 거대한 기계의 일부분이며, 우주의 복잡성은 부분들-비록 우리의 인식 너머에 있는 부분일지라도-의 단순한 운동을 통하여 이해될 수 있다.

 

넷째, 관측자는 관측만 할 뿐 그 대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서투른 관측자의 실수같은 것들은 관측된 사물의 운동을 분석함으로써 모두 없어질 수 있다.

 

이들 네 개의 가정은 틀렸음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그것은 50년에 걸친 긴 투쟁의 결과였다. 빛의 신비와 열의 신비는 과학 세계에 혁명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였다. 그결과 능동적 관찰자의 개념은 대상에 영향으러 미치는 관찰자의 개념으로 변천하였다.


F.A 울프 / 샌디에이고에서 물리학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세계를 다니며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과학은 지금 물질에서 마음으로 가고 있다. "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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