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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사회 / 듀이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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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개조 과정으로서의 교육

 

나는 구교육 의 대표적인 특징들은, 아동의 태도를 수동적으로 이끌고 아동을 기계적으로 집단화하고 교과과정과 교육방법을 획일화한다는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한 마디로 이를 요약하면 중력의 중심이 아동이외에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중력의 중심이 교사·교과서·기타 어디에 있었든 간에, 아동 자신의 직접적인 본능과 활동이외의 장소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곳에 기초를 두면 아동의 생활에 관하여 기론할 여지가 없다. 아동의 학습에 관하여는 논의할 점이 많을지 모르나, 학교는 아동이 생활하는 장소는 아니다. 이제 현대교육에 다가오고 있는 변혁은, 중력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중심을 지구로부터 태양에 이동시킨 데 비할 만한 변혁이요, 혁명이다. 이제 와서는 아동이 태양이 되고, 그 주위에 교육상의 모든 영위가 회전하는 것이다. 즉, 아동을 중심으로 하여 교육상의 모든 영위가 조직되는 것이다.

여기에 한 이상적 가정이 있어 부모가 아동을 위해서 무엇이 최선의 것인가를 변별(辨別)할 예지(叡智)를 가지고 , 아동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할 능력을 갖춘다면, 이러한 가정에서 아동은 가족 사이의 일상적 담화와 관습을 통해서 훌륭한 학습을 하는 셈이 된다. 가족사이의 일상적 담화와 관습을 통해서 훌륭한 학습을 하는 셈이 된다. 가족사이에 주고받는 담화 가운데는, 아동에게 흥미 있고 가치 있는 여러 가지 요소가 담겨 있다. 따라서 아동은 여러 가지로 발언을 하고, 질문을 던지고, 토의가 행해져서 아동은 부단히 학습을 계속한다. 그는 자기의 경험을 진술하고 잘못된 생각은 정정을 받는다. 또 아동은 각종 가사에 참가하여 실제로 일하는 동안에 근면·질서 그리고 타인의 권리와 사상을 존중하는 습관을 기르고, 자기의 활동을 가정 전체의 이해와 중속시키는 근본적 습관까지 몸에 지니게 되는 것이다. 가사에 종사함은 또한 지식을 얻는 기회가 된다. 이상적인 가정에는 당연히 공작실이 있어서, 아동은 거기서 자기의 구성적 본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거기는 소실험실이 있어서, 실험실에서 아동은 각종 설문에 대한 해결의 길로 인도될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서 아동의 생활은 집 밖으로 향하여 정원으로, 근접한 전야로, 삼림으로까지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아동은 소풍을 하고 걸어다니고 담화하는 가운데, 집밖의 관대한 세계가 그의 눈앞에 전개되는 것이다.

이상 모든 것을 조직화하고 일반화하면, 곧 이상적인 학교가 성립한다. 이 이상적인 학교에는 아무런 신비성도 없으며 교육학내지 교육이론상 신기한 발견도 없다. 그것은 다만 보통 가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비교적 빈약하고 우연적인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을, 조직적으로 또 대규모적이고 지적이고 충분한 방법으로 행한다는 과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첫째로 이상적 가정이 확대되어야 한다. 아동의 생활을 가장 자유롭고 가장 풍부한 사회생활이 되게 하기 위하여는, 아동의 생활을 가장 자유롭고 가장 풍부한 사회생활이 되게 하기 위하여는, 아동을 더 많은 성인들과 더 많은 아동들에게 접촉시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가정이라는 환경 안에서 행해지는 여러가지 작업관 인간 관계는 원래 아동의 성장을 위하여 특별히 정선된 것은 아니다. 그 주된 목적은 다른 곳에 있으며 아동이 거기서 자기의 성장을 위하여 얻는 바가 있다 하여도, 그것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학교의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아동의 생활이 다른 모든 것을 지배하는 목적이 된다. 아동의 성장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모든 매개물이 여기에 집중되는 것이다. 학습은 어떻게 되는가? 물론 학습이 행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생활이 첫째이고 학습은 이 생활을 통해서, 생활과의 관련 아래 추진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동의 생활을 모든 것의 중심으로 삼고, 아동은 첫째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존재로 생각할 수는 없다. 전혀 그 반대이다.

교육은'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은 이미 지적되어 온 바인데, 그것은 다만 주입의 과정과 대조하는 의미로 해석할 때에 한하여 명언이다. 그러나 결국으로는 끌어낸다는 관념을 3세, 4세, 7세 내지 8세의 아동의 일상적 행동과 결부시키기는 곤란하다. 아동은 벌써 뛰어다니며, 물건을 엎지르며, 모든 종류의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아동은 어떠한 숨은 활동의 맹아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점차로 끌어 내기 위하여 성인이 다대한 용의와 숙련을 경주하여야 하는, 그러한 순수한 잠재적인 존재는 아니다. 아동은 이미 격렬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교육의 문제는 이 활동을 포착하고 이활동을 지도하는 문제이다. 지도를 통하여, 다시 말하면 조직적인 취급방식을 통하여 아동의 활동은 산만해지거나 단순한 충동적 발현 그대로 방임되지 않고, 가치 있는 결과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상 말한 바를 우리가 승인한다, 신교육이라 말하는 것에 관해서, 세인이 포지하고 있는 최대의 의혹을 해결된다기보다는 오리려 해소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한 의혹은 없어지고 만다.

우리가 수 없이 받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대들은 아동의 관념과 충동과 흥미에서 출발한다고 하나 아동의 관념, 충동, 흥미는 도무지 조야하고 무질서하고 산만하고 세련도 정신화도 되지 못해 있는데, 아동은 대체 어찌해서 필요한 훈련과 교양과 지식을 획득하게 되는 것인가?' 라고 만약에 아동의 이러한 충동을 자극하고 조장하는 이외에 아무런 방도도 없다면, 이 질문은 당연히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아동의 활동을 무시하고 억압하거나, 또는 아동의 충동에 아첨하여 비위를 맞추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시설의 조직과 재료의 조직을 가진다면, 또 하나의 다른 길이 우리에게 열려지는 것이다. 우리는 아동의 활동을 지도하여 그 활동을 일정한 진로에 따라 움직이게 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목표에까지, 즉 논리적으로는 아동의 진로의 최종점에 서 있는 목표에까지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

 

듀이에 의하면 이 세계는 영원 불변의 진리, 이념, 절대자가 인간의 행동을 떠나서 따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관념과 예지(銳智)는 인간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이며, 경험 가운데서 얻어진 관념을 다음에 오는 경험에 적용되고 시사(試査)되어 그 진실성이 증명되는 것이다. 원래 정신이란 신체와 마찬가지로 자연 가운데서 발생하고 발달한 것이며 모든 정신적 활동은 자연의 연속적 발전의 하나의 구절로 보아야 한다. 정신은 어떤 신비적 방법으로 인간에게 주어지 실체도 아니며 인간의 내부에 잠재한 능력도 아니다. 인간도 다른 생물과 같이 허다한 욕구를 가지고 환경에 부딪쳐서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며 만족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행동에 통제를 가할 필요가 생길 때, 비로소 정신의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주어지는 환경에 대처하여 당면한 상황을 관찰하고 필요한 과거의 관념을 회상하면서 특정한 행동을 선택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 계획은 말하자며 일종의 가설로서 그것은 행동의 과정가운데서 시사되고 증명되는 것이며, 소기의 만족한 결과에 도달할 때 그 진실성이 보장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얻어진 관념이 지식으로서 습득되어서 다시 장래의 행동에 사용되는 것이며, 이러한 과정은 우리의 경험 가운데 부단히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이것이 즉 듀이가 말하는 반성적 인식이며, 사고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사고는 경험의 한 요소로서 행동과 그 결과를 관련시키는 방식이며 인간이 욕망의 충족을 초자연적인 신에게 구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자연을 개변하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능력은 확대되어 가고 인간의 생활은 복잡 풍부해지는 것이다. 행동을 위하여 사고하고 행동을 통하여 관념을 정정 확충시켜 가는 곳에 세계는 개척되고 생활은 끊임없이 갱신되는 것이다. 기술·과학·예술 등 모든 문화는 실로 인간의 실험적 경험의 산물인 것이다.

 

듀이의 이러한 근본적 입장은 실용주의, 실험주의, 도구주의 등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바로서, 그의 전생애를 통한 학문적 실천적 활동의 기조로 되어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부터 1930년까지 그가 콜럼비아 대학을 은퇴하기에 이르는 동안, 차례차례로 나타난 불후의 저작들은 이 근본사상의 전개요 대성이었다.

듀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세계 여러 나라를 역방하고 신흥 민족들의 격동하는 모습에 친히 접촉하였다. 중국을 비롯하여 일본, 터어키, 소련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사태는 듀이의 관심을 점차로 사회와 역사의 문제로 이끌어 갔다고 한다. 1929년은 듀이가 70회의 탄신을 맞이한 해이며 미증유의 공황이 아메리카 전토를 내습한 해이다. 아메리카 사회가 영구 번영의 꿈으로부터 깨어나서 새로운 근본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하였을 때, 고희(古稀)를 넘은 듀이는 그 선두에서 교육 문제를 비롯한 정치 역사 경제 사회문제의 해결에 투신하였던 것이다. 다시 제2차 세계 대전을 겪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90의 고령으로도 한결같이 사회적 활동은 계속하면서 소장학자들 사이에 끼어서 학문상의 논쟁에 참가하고 있었다. 한다. 이리하여 그는 전생애를 통하여 자기의 근본사상을 자기자신에게 끝까지 적용하였던 것이다.

'학교와 사회' 는 1986년 듀이가 시카고 대학에 실험소학교를 창설한 이래 3년 동안의 교육실험을 통하여 도달한 학설을 3회의 강연으로 발표한 것이며, 그것이 저작으로 세상에 나타나자 미국의 교육계에 큰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 후 수십 개 국어로 번역되어서 전세계 새교육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이 책은 그 사상내용의 중요성은 물론이고 그것이 널리 세계교육의 혁신을 촉진시킨 점에 있어서 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교육 사상 위대한 고전으로서의 부동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인간이 반성적 인식으로 경험을 개조하여 가는 과정은 그대로 인간이 생장하는 과정이요, 인간의 생장은 곧 넓은 의미의 교육이다. 어떠한 환경과 조건이 주어질 때에 인간은 가장 능률적인 생장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교육적 노력의 핵심적인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듀이의 철학은 곧 그의 교육학에 연결되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과정을 조작함으로써 인간 정신이 발전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있고 정신 발달의 과정을 파악함으로써 교육의 끊임없는 혁신을 꾀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그는 실험소학교에서 교육의 실험에 착수하였던 것이다. 대학에 물리학, 생물학의 실험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 발달을 연구하는 실험실이 즉 실험학교이다. 여기서 그는 움직이고 있는 인간의 사회생활 그 자체를 실험재료로 하여 교육의 연구를 하였던 것이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사상, 즉 아동의 내부적인 욕구가 정신 발달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 아동의 창조적 활동은 그에 필요한 환경을 요구한다는 것, 그 환경은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회생활이어야 하며, 따라서 학교는 정리된 환경을 제공하는 사회적 기구이고, 교육은 지식 교과의 전달이 아니라 유희와 작업과 지적 활동의 결합으로, 경험을 개조시켜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등은 오늘날에 와서는 그다지 신기한 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듀이가 그것을 제창하던 당시의 교육계를 돌아보고 그 후 반세기 동안 그의 사상을 계승하는 무수한 교육학자들의 눈부신 활동과 소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 교육의 혁신되어 온 모습, 나아가서는 전세계의 구석구석에 일어난 신교육운동의 자취를 더듬어 볼 때에, 이 저작은 새삼 교육사상에 길이 빛나는 보전이란 느낌이다.

듀이/학교와 사회John Dewey ; School and Society에서

 

참고 자료

듀이(1859∼1952)

 

미국의 철학자 ·교육학자.

듀이(1859∼1952)는 미국의 동부에 있는 버몬트주의 벌링톤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친 사람이다. 그는 15세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버몬트대학에 입학했다. 이 대학을 졸업한 후 약 2년간 고등학교에서 고편을 잡았다. 그러다가 1882년 겨울 백부의 도움으로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대학원으로 가 소원하던 철학 연구를 시작했다. 거기서 그는 특히 윌리암 제임스로부터 심리학과 철학에 관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존스 홉킨스대학원을 나온 이후 그는 미시간대학과 미네소타대학에서 교편을 잡다가 1894년에는 시카고 대학으로 옮겨가 1904년 그곳을 떠날 때까지 많은 학문적 업적과 영향을 남겼다. 1904년 콜롬비아 대학으로 옮긴 이후 1930년 71세의 노령으로 은퇴할 때까지 26년동안 교수로서 봉사하였는데, 이 시절에 그는 철학자로서 교육자로서 또 사회비평가로서 실로 눈부신 활동과 공헌을 하였다.버몬트주(州) 벌링턴 출생. 버몬트대학을 졸업하고, 존스흡킨스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미네소타 ·미시간 ·시카고 ·컬럼비아 각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였다. 1930년 이후에는 컬럼비아대학 명예교수가 되었다.

그는 처음에 헤겔 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나, 차차 W.제임스의 프래그머티즘에 끌려, 이것을 발전시킴으로써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 또는 인스트루멘털리즘(도구주의)의 입장을 확립하였다. 그의 《논리학적 이론의 연구》(1903) 《실험적 논리학 논문집》(1916) 《사고의 방법》(1933) 등에 의하면, 모든 사고(思考)는 혼탁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명확한 상황으로 개조(改造)하는 노력, 다시 말하면 ‘탐구(探求)’인 것이다. 관념이란 이를 위한 실험적인 가설(假說)이며 도구이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무엇인지 모르는 것도, 이것은 오렌지의 일종이 아닐까 하고 잘라 보고 맛봄으로써 오렌지라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실험적인 가설로서의 관념은 상황을 개조하기 위한 도구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칼의 좋고 나쁨이 잘 드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되듯이, 관념의 좋고 나쁨(진위)은 상황을 개조할 수 있는지의 유효성(有效性)에 의하여 판정된다.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에서, 논리학은 모든 분야에서의 탐구 규범과 생차를 분명히 함으로서 앞으로의 탐구를 보다 더 유효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학―탐구의 이론》(1938)을 저술하였다. 또한 《경험으로서의 예술》(1934)에 의하면, 경험은 인식(認識)의 한 형식일 뿐만 아니라, 반성이 가미되기 전에 느껴지며 살아 있는 것으로서 널리 해석된다. 인간생활은 혼탁하고 불확정(不確定)한 경험에서 통일적인 경험으로 이행하는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의해서 성립되었다. 전자에서 후자에 이를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의미와 충족감이 주어진다. 이러한 이행(移行)의 달성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적인 작용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교육에 대해서는 《학교와 사회》(1899) 《민주주의와 교육》(1916)에 의해서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교육이란 경험의 끊임없는 개조(改造)이며, 미숙한 경험을 지적인 기술과 습관을 갖춘 경험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시키거나, 반대로 학생들의 자발성(自發性)에만 의존하면 불충분하므로 여러 가지 경험에 참여시킴으로써 창조력을 발휘시킬 수 있는 계획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일을 위하여 학교는 현실사회의 모델일 뿐만 아니라, 사회개조의 모체가 될 수 있는 이상사회로서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92세라는 그의 생애동안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고, 미국이 최대강국으로 부상한 시대였다. 그러나 독점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이 무너져가는 시대이기도 하였다. 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여 제퍼슨과 링컨의 고전적인 이상을 새로이 개조하고, 서민의 경험을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에 의해 소화하여 보편적 교육학설을 창출하여 세계 사상계에 기여하였다. 1932년 ‘전국교육협회’ 명예회장, 1939년 중국에서 제이드 훈장, 1949년 칠레에서 메리트 훈장을 받았고, 터키 ·러시아 등을 방문하여 교육혁명을 지도하였다. 1946년 87세에 42세인 로버타와 재혼, 1952년에는 뉴욕주(州) 자유당 명예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적 지도자들은 그의 이상을 배반하고 힘과 금력으로 전세계를 지배하려 하였다. 여기에 그의 사상의 비극적인 성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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