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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론 / 로크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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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상태의 정치 원리

 

인간의 자연상태는 또한 평등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일체의 권력과 지배권은 상호적인 것이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는 일은 없다. 즉, 조금도 다름없이 똑같은 종류와 등급의 피조물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아무런 차별도 없이 모두 자연의 혜택을 똑같이 누리며, 똑같은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적어도 일체의 피조물의 주(主)이시며 지배자이신 신께서 어떤 한 사람을 지명하시어 그에게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지배권과 주권을 부여하시지 않는 한, 사람들은 누구나 남에게 종속되거나 또는 복종하는 일이 없이 모두 평등해야 한다.

저 현명한 두뇌의 소지자인 후커(Hooker)는 이와 같은 인간의 자연적인 평등은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이 너무도 자명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러한 인간의 평등을, 사람들이 서로 남을 사랑해야 하는 도덕상의 구속력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 위에다 사람들 서로가 짊어지게 되는 여러 가지 의무를 설정하고, 그곳으로부터 정의와 사랑이라는 위대한 원리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원래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자연적인 욕망을 갖도록 되어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남을 사랑하는 일은, 곧 그들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 평등한 것들은 모두 똑같은 척도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서 바라게 되는 선(善)한 것을 나도 반드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이기를 원하게 마련이다.

만일 내가 남에게 어떤 해를 끼친다면, 나도 남으로부터 어떤 해를 입게 되리라는 것을 예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내가 그들에게 표시한 것 이상의 사랑을 나에게 표시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래 자기와 평등한 사람들로부터 되도록 많은 사랑을 받고 싶으면, 당연히 그들에게 대해서도 전적으로 똑같은 사랑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 자신과, 우리와 똑같은 성질을 가진 사람들은 이와 같이 서로 평등한 관계에 놓여 있다.

'(교회정치론) 제1권'

그러나 이러한 자연상태는 자유의 상태(a state of liberty)이기는 하지만 결코 방종의 상태(a state of licence)는 아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사람들은 자기의 신체와 소유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잇는 완전한 자유를 갖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살할 수 있는 자유와 또한 그의 소유로 되어 있는 어떠한 피조물(生物)도-그것을 살해해 보리는 편이 그것을 단순히 보전해 가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귀중한 도움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살해할 수 있는 자유는 결코 가질 수 없다. 자연의 상태에서는 그것을 지배하는 하나의 자연법이 있는데, 누구나 그것에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이야말로 다름 아닌 자연법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러한 이성의 소리에 다소라도 귀를 기울이게 되면 ant 사람들은 모두 평등한 존재이므로-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생명, 건강, 자유 또는 소유물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두 유일한 전지전능하신 조물주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작품)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원래 유일 최고의 주(主)되시는 신의 명령에 따라서, 그리고 그의 하시고자 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 땅 위에 보내어진 종이며 또한 주님의 뜻에 부합되는 동안만 생존해 갈 수 있도록 지음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동일한 능력이 부여되어 있는 우리들은 모두 하나의 자연이라는 것을 공동재산으로 갖고 있다. 즉, 우리들은 모두 하나의 자연의 공동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급의 피조물이 우리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서로 상호간에 도움이 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처럼 생각하여, 남을 살해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종속관계를 우리들 사이에 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제각기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 가도록 해야 하며, 또한 자기의 담당 부서를 고의로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것과 똑같은 이유로, 적어도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해 가는 일이 위협을 당하지 않는 한, 되도록 다른 사람들도 안전하게 보호해 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며, 또는 서로 위해를 가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평화와 모든 인류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자연법이 수호되도록 하기 위하여, 자연상태에 있어서는 자연법의 진행이 각자의 손에 위임된다. 이리하여 각자는 이 자연법의 위반자들을 - 이법의 위반을 방지할 수 있는 정도에서 -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법은-만일 자연상태에 있어서 이 법을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그것으로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을 보호해 주며 또한 이 법의 위반자를 억제할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다면-마치 이 땅 위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관계되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완전히 평등한 사회에서는, 즉 누구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 우월성이나 지배권을 갖는 일이 없는 완전히 평등한 사회에서는, 자연법의 시행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능히 행할 수 있는 것은, 그 밖의 모든 사람들도 역시 그것을 행할 수 있는 권리를 반드시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여 자연상태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다른 사람을 능히 제재할 수 있는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죄를 범한 자를 붙잡았을 때, 자기의 격정이 발동되는 대로, 또는 터무니 없이 방자한 자신의 의사에 따라서 그를 처치해 버려도 좋은 절대적인 또는 자의적(恣意的)인 권력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단지 냉정한 이성과 양심이 명하는 바에 따라서 죄  범한 자에게 그 범죄의 정도에 상응하는 것을, 즉 그 범죄에 대한 손해의 배상과 범죄의 억제라고 하는 이 두 가지는 한 사람의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대해서 합법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즉 이른바 형벌을 가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자연법을 위반한 자는 그 법을 위반함으로써 신이 인간 상호간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규정해 주신 인간 행동의 기준이 되는 이성과 일반적 형평의 공정한 규칙 이외의 별개의 규칙에 따라서 살아갈 것을 스스로 선언하는 일이 된다. 이리하여 이러한 범법자는 인류에게 위험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위해와 폭행으로부터 수호해야 할 유대는 그런 자에 의해서 멸시를 당하며 또한 단절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인류와 또한 자연법에 의해서 이룩된 인류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침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사람들은 인류 전체를 보전해 가기 위하여, 보유하고 있는 권리에 의거하여 인류에게 해로운 자들의 행동을 제지시키며, 필요한 경우에는 이들을 절멸(絶滅), 즉 살해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리하며 누구든지 자연법을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그러한 위법행위를 후회케 함으로써, 또한 그를 하나의 본보기로 보임으로써, 그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다시는 동일한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게 할 수 있는 벌을 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모든 사람들은 자연법의 위반자를 능히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또한 자연법의 집행자로도 되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

 

이 책은 '시민적 통치(정치사회)의 참된 기원과 범위 및 목적에 관한 논문'이란 논제로 발표된 제2논문으로 흔히 '통치론'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로크는 정치권력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자연상태'의 설명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에 의하면 정치권력은 자연상태로부터 '모든 개인의 동의(同意)에 의서 (사회계약)'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 것이 그의 정치이론의 대전제가 된다. 로크의 자연상태는 홉즈(Hobbes)의 자연상태, 즉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와는 달리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이며, 결코 방종의 상태(a state of licence)는 아니다. 즉, 로크에 의하면, 자연상태라는 것은 각자가 자연법(自然法)의 범위 안에서 자기의 행동을 규율하며,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그 소유물과 신체를 처리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 상태이며, 그곳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상태에서는 각자가 자연법에 따라서 생활하고 있으므로 그 상태는 본래 전쟁의 상태(state of war)가 아니라 평화적이며 목가적(牧歌的)인 상태이다.

그러면 로크가 생각한 '자연법'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자연법이란, 그에 의하면 이성(理性)의 법칙이다. 이성은 신에 의해서 부여된 것이다. 이러한 이성은 인류에게 '각 사람은 모두 평등하며 독립인(獨立人)이며,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러한 이성에 입각한 법, 즉 자연법은 인류 상호간의 안전을 위하여 인간의 행동을 규정한 준칙(準則)이며, 따라서 인류에게는 영원한 법칙으로 되는 것이다.

또한 로크는 인간의 유일의 전지전능하신 조물주의 피조물이며 소유물이라고 보았다. 즉, 인간의 생명은 신의 뜻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자연상태에서는 각자에게 생존의 권리가 부여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은 신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자기의 생명을 잘 보전(保全)해 갈 의무를 가진다. 따라서 각자는 마음대로 자기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 버릴 수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의 생명을 포기해 버릴 수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침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로크의 견해에 따르면, 신은 사람들에게 이 세계를 하나의 공유물(共有物)로서 부여하셨다.

그러면 이와 같이 신이 공유물로서 부여한 것을 과연 어떻게 해서 각자는 그 중의 일부를 사적(私的)소유물로 가지게 된 것일까? 로크는 그와 같은 사유재산의 발생을 그 목적물에 가해진 각자의 '노동'에서 구하고 있다. 로크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오크나무 밑에서 도토리를 주워 가지거나, 숲 속에서 사과를 따 가질 때, 즉 노동을 했을 때, 그 토지는 다름 아닌 바로 그 사람의 것으로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그런 것들을 소유해도 좋은 것일까? 그 소유권의 한계들을 소유해도 좋은 것일까? 로크는 우리들에게 자기보전을 위하여 먹을 것과 그 밖의 것들을 이용할 것을 인정해 준 저 자연법이 동시에 소유권의 한계도 정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자연의 혜택을 '향락하는' 정도이다. 즉, 적어도 이용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는 누구도 자기의 노동으로써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자연상태에 있어서는, 인구의 수는 적고 토지는 광대하고 자연의 산물도 풍부했었을 것이므로 전쟁상태로 되는 일도 없고 매우 평화로운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화폐라는 것이 발명되자 사태는 달라지게 되었다. 화폐는 썩지 않으며 얼마든지 축적할 수가 있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는 근면의 정도의 차이가 있으므로 마침내 사람들의 소유물(재산)에는 많고 적은 정도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으며, 그리고 화폐의 발명은 이러한 정도의 차이를 확대시키는 기회를 마련해 주게 되었다고 로크는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람들 사이에 소유물의 차이가 생기게 되면 다른 사람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자도 생기게 된다. 그런데 자연상태에서는 그것을 처벌할 수 있는 공통의 권력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이 생기게 되었다. 로크에 있어서의 자연상태는 투쟁상태가 아니라 평화로운 상태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황금시대의 상태나 낙원적인 세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가끔 투쟁상태에 빠지기 쉬운 계기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자연상태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결함이 있다고 로크는 말하고 있다. 즉, 첫째로 자연상태에서는 옳고 그른 것의 표준으로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판결할 상통의 척도(尺度)로서 일반의 동의(同意)에 의해서 승인되고 확정된 볍률(law)이 없다. 둘째로, 자연상태에서는 확립된 법률에 따라서 온갖 분쟁을 해결해야 할 권위를 가진 공평한 `재판관(judge)'이 없다. 셋째로, 자연상태에서는 판결이 적당했을 때 그것을 지지하고 집행해야 할 `권력(power)'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와 같이 자연상태는 `법률' `재판관' `권력' 의 셋이 되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을 향수(享受)하려고 해도 그것은 매우 불확실하며, 끊임없이 타인으로부터 침해를 받을 위험 앞에 놓이기가 쉽다. 이와 같은 자연상태의 불편이나 불확실성으로부터 벗어나서 보다 더 안전한 생활을 누리기 위하여 사람들은 하나의 정치 사회를 설립하게 된다. 즉, 각자는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사회(community)를 결성할 것을 계약한다. 그 계약의 목적은 각자의 생명과 자유와 자산을 사회의 안과 밖의 침해자로부터 보호하고, 평화롭고 안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케 하는 데 있다. 즉, 인간이 정치사회를 만든 목적은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소유'를 보다 더 잘 보호해 주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치사회에 있어서는 다수자의 의사 ㅡ 다수결 ㅡ 가 그 공동체를 움직여 나간다.

이와 같이 정치사회의 기원을 각자의 생명과 자유 자산의 보호에서, 그리고 각자의 자발적 동의에서 찾으려는 생각은, 정치권력의 기초는 국가의 모든 구성원에 있다고 보는 국민주권론의 원형을 이루는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이 `통치론' 속에서 전개되는 로크의 정치사상은 오늘날의 중요한 민주주의의 위대한 건설자였다. 그의 사상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현대의 우리들의 사상 속에서도 맥맥히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의 민주주의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먼저 로크의 이론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리라 믿는다.

- 로크/통치론 John Locke;The Second Treatise of Government 에서

 

 

참고 자료

 

로크(1632~1704)

 

영국의 철학자 ·정치사상가.

브리스틀 근교의 링턴 출생. 계몽철학 및 경험론철학의 원조로 일컬어진다. 아버지는 소지주 ·법률가로서 내란 때는 의회군에 참가하여 왕당군과 싸웠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배웠고, 한때 공사(公使)의 비서관이 되어 독일 체류 중에 애슐리경(뒤의 샤프츠베리 백작)을 알게 되어 그의 시의(侍醫) 및 아들의 교사 그리고 고문이 되었다. 백작이 실각되자 반역죄로 몰려, 1683년 네덜란드로 망명했다가, 1689년 사면되어 귀국하였다. 망명생활 동안 각지를 전전하면서 여러 학자들과 친교를 맺고, 귀국 후 《종교 관용에 관한 서한》(1689) 《제2서한》(1690) 《제3서한》(1692) 《통치이론》(1690)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1690) 등을 간행하여 국내외에 이름을 떨쳤다. 그 후 관직에 있었으나 1700년 이후 은퇴하여 에식스의 오츠에서 사망하였다.

데카르트 철학과 I.뉴턴에 의해 완성된 당시의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졌고 반(反)스콜라적이었다. 《인간오성론》은 그의 영향을 바탕으로 G.버클리, D.흄에게로 계승되었던 경험론과 내재적 현상론(內在的現象論)의 입장에서, I.칸트에 이르러 결실을 보게 되는 인식을 근본 과제로 제기하여 논술한 저서이다.

제1권에서는, 먼저 R.데카르트나 케임브리지 플라톤파(派)의 본유관념(本有觀念)과 원리를 부정하고, 그 위에 제2권에서는, 인지(人智)는 모두 감각과 반성이라는 경험을 통하여 얻어지는 단순관념에 유래하며, 그로부터의 복합관념으로 설명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실체(實體)’ 개념도 단순관념의 복합이며, 기체(基體)는 그 배후에 상정되는 불가지(不可知)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단, 색(色)·향(香)·음(音)과 같이 감각에 대하여 상대적인 제2성질과, 연장(延長)·운동 ·고체성(固體性)과 같이 물(物) 자체에 구비된 제1성질과 구별하여, 전자(前者)는 후자가 감각기관에 자극을 줌으로써 생긴다고 생각하여, 당시의 과학적 실재론을 전제로 삼았다. 또, 불가지인 물적 실체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정신에 대해서도 반성의 관념과 기능적 인격에 의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정신실체나 신의 존재를 인정한 점에서, 그 문제를 다음의 버클리와 흄에게 남겨 놓았다.

제3권의 언어론은, 스콜라적 실체형상(實體形相)의 비판, 개념론 또는 유명론적(唯名論的)인 보편개념의 설명 ·정의에 대해서의 견해 등 현대 의미론(意味論)에 통하는 중요한 고찰을 포함시켰다. 제4권은 제3권까지 논술한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지식의 확실성 ·가능성 ·종류 등을 논했다. 제4권에서 자아의 직각지(直覺知)를 지식의 근원으로 하는 것 등 이성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으나, 지식을 관념과 대상 간이 아니라 관념간의 일치 또는 불일치의 지각(知覺)이라는, 관념간의 관계라고 한 것은 후의 경험론의 방향을 보인 것이다.

그에게는 《인간오성론》에서 단편적으로 취급된 이외에는 정리된 윤리서(倫理書)는 없다. 그러나 도덕의 심리적 해명 방법이나 쾌락주의 ·행복주의의 경향과, 도덕을 신(神)의 법, 자연법, 국법과의 일치에서 구하려고 한 방향 등은 영국 고유의 윤리와 공통된 성격을 보인다. 또, 계시(啓示)의 뜻을 인정하면서도 이성적 논증(理性的論證)의 한계를 넘는 것을 개연적(蓋然的)이라 생각하는 점에서 종교상 이신론(理神論)을 조장하는 입장에 섰다.

법 ·정치 사상에서는 계약설을 취하지만, 홉스의 전제주의(專制主義)를 자연상태보다도 더 나쁘다고 생각하여 주권재민(主權在民)과 국민의 반항권을 인정하여 대표제에 의한 민주주의, 3권분립, 이성적인 법에 따른 통치와 개인의 자유 ·인권과의 양립 등을 강조하여 종교적 관용을 역설했다. 그의 정치사상은 명예혁명을 대변하고 프랑스혁명이나 아메리카 독립 등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서유럽 민주주의의 근본 사상이 되었다.

또 교육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당시의 교육법을 통렬히 비판하여 그리스 ·라틴어 집중주의, 암기식 주입주의를 반대하고 수학적 추리와 유용한 실제적 지식, 신체 ·덕성의 단련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그 사람의 소질을 본성에 따라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하여 가정교사에 의한 교육을 주장했다. 저서로 《금리저하와 화폐가치와 화폐가치 앙등의 결과에 관한 고찰》(1691) 《교육론》(1693) 등이 있다.

보조 자료

 

로크(1632~1704)는 1632년 8월 9일 브리스톨 부슨 월링톤이라는 촌락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청교도의 소지주였고 또한 시골 변호사였다. 그는 1652년 당시 독립교회파 세력 밑에 있었던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B.A, M.A 학위를 받았다. 그는 독립교회파의 신학자이고 동대학의 학장인 존 오웬의 많은 감화를 받았다. 또 휘그당의 창설자인 샤프츠베리 백작의 시상적 영향을 입었고 1666년 백작의 청으로 최초의 정치논문인 ‘관용론’을 썼고 또 정치생활을 하게 되었다. 만년에는 주로 성서의 연구와 종교적 사색으로 돌아갔다. 그는 인식론 철학분야에서는 영국 경험주의철학의 아버지로서, 법철학 분야에서는 위대한 자연법 사상가로서, 정치이론, 정치철학분야에서는 근대정치 이론의 확립 자로서 높이 평가된다.

“정치권력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또한 그것의 기원을 찾아보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대체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고찰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이다. 즉, 그것은 사람들이 일일이 다른 사람의 허가를 얻는 다는가 또는 다른 사람의 의사에 전적으로 따른다는가 하는 일이 없이, 자연법의 범위 안에서,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데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며 또한 자기의 소유물과 자기의 몸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인 것이다.”

1704년 10월 28일 교육・신학・자연과학 등 각 분야에 30여의 저서를 남기고 교구 교회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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