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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 / 데카르트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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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의 증거 및 인간의 영혼-철학의 기초

이 나라에서 나의 최초의 사색에 관해 말해야 할지 어떨지 나로선 알 수가 없다. 그것은 극히 형이상학적(추상적)이라 일반적인 생각으로부터 동떨어져서 아마 누구나 흥미를 가진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택한 토대가 충분히 탄탄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받기 위하여, 나는 그것에 관해 말해야 할 어떤 의미의 강요를 받고 있다. 아무튼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실생활에 있어서는 극히 불확실하다고 알고 있는 의견이라도, 마치 그것이 의심할 수 없는 것처럼 따르는 일이 때로는 필요하다고 나는 훨씬 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다만 진리 탐구만을 바라고 염원하고 있으므로, 전혀 반대의 일을 해야만 하리라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은 모두 절대로 그릇된 것으로서 내던져 버리고, 그런 다음에 전혀 의심할 수 없는 무엇이 나의 신념 속에 남아 있는가를 보아야만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감각이 때로는 우리들을 기만하는 까닭에, 나는 감각이 우리들의 마음에 그려내는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상정하려 했다.

다음에, 기하학의 가장 단순한 문제에 관해서 조차 오류추리(誤謬推理)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므로, 나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차가지로 잘못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내가 이전에는 명백한 논증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온갖 추리를 그릇된 것으로서 던져버렸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깨어 있을 때에 갖는 모든 사상이 그대로 우리들이 잠자고 있을 때에도 역시 우리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며, 더구나 이 경우에는 그런 사상의 어느 것도 참이라고는 할 수 없다(꿈의 사상에는 존재가 대응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여, 나는 그때까지 나의 정신에 들어와 있었던 모든 것은 나의 꿈의 환상과 마찬가지로 진실이 아닌 것으로 가정하리라 결심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자 나는 즉시 깨달았다. 내가 이와 같이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는 필연적으로 무엇인가가 아니면 안 된다고,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je Pense, done je suis)'라고 하는 이 진리는 회의론자의 어떠한 터무니없는 상정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견고하고 확실한 것이라는 점을 나는 인정했으므로, 나는 이 진리를 내가 구하고 있었던 철학의 제 1원리로서 이미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나는 무엇인가를 주의 깊게 음미하고, 다음(두 가지)의 것을 인정했다.

즉, 나는 내가 신체를 갖지 않고 세계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있는 장소라는 것도 없다고 가상(假想)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가상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반대로 내가 다른 것의 진리성을 의심하고자 생각하는 것 자체로부터 극히 명증적으로 극히 확실하게 내가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내가 만일 단지 생각하는 것 자체로부터 극히 명증적으로 극히 확실하게 내가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내가 만일 단지 생각하는 일만을 그만두었다고 하면, 비록 그때까지 내가 상상했던 모든 다른 것(나의 신체나 세계)이 진실이었다 해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사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믿을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일로부터 나는 다음의 것을 알았다. 즉, 나는 하나의 실체(實體)로서 그 본질 혹은 본성은 다만 생각한다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고, 존재하기 위한 어떠한 장소도 필요하지 않으며, 어떠한 물질적인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따라서 이 '나'라고 하는 것, 즉 나를 존재하도록 하고 있는 바의 '정신'은 물체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며, 또한 정신은 물체보다도 인식하기가 쉽고 비록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도 정신은 정신으로서 존재하기를 그만두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다음에 나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명제가 '진실'이며 확실한 것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고찰했다. 왜냐하면 진실이고 확실하다고 내가 아는 하나의 명제를 지금 찾아낸 것이므로, 그 확실성이 무엇에 있어 성립하는 것이냐도 역시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고 하는 명제에 있어 내가 진리를 언명(言明)하고 있음을 나에게 확신시키는 것은, 생각하기 위해선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극히 명석하게 내가 본다고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것을 인정했으므로, 나는 ‘우리들이 극히 명석하고 분명히 이해하는 것은 모두 진실이다’ 라고 하는 것을 일반적 규칙으로서 인정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만 우리들이(단지 ‘명석하게’ 라고 할 뿐 아니라)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바르게 인정하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곤란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에 이어서 나는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점, 따라서 나의 존재는 온갖 점에서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점(왜냐하면 의심하기보다도 인식하는 편이 보다 큰 완전성이라는 것을 나는 명석하게 보기 때문에)을 반성하고, 나는 나 자신보다 완전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일을 대체 어디서 배웠던 것일까에 대해 탐구하는 것으로 향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것이 실제로 나보다 완전한 어떤 존재자에 의해서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명증적으로 알았다. 나의 밖에 있는 다른 많은 것, 이를테면 하늘이나 땅이나 빛이나 열이나 그밖에 수많은 것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사상에 관한 한 그것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아는 데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상 중에서는 그것들을 나 자신보다 뛰어난 것으로 하게 하는 듯이 보이는 점은 아무것도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그것들이 진실일 경우에는 나의 본성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할 수가 있었고, 또한 그것들이 거짓일 경우에는 그것들이 무(無)에서 비롯된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결함을 갖는 까닭에 그것들은 나의 내부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존재보다도 완전한 존재의 관념에 관한 한 나는 마찬가지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관념을 무로부터 끄집어내는 일은 명백히 불가능했고, 또 그것을 나 자신으로부터 끄집어내는 일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보다 완전한 것(신의 관념)이 보다 불완전한 것(나의 존재)의 결과이고 이것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함은, 무로부터 어떤 것이 생긴다고 하는 것 이상으로 모순이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정작 관념은 나보다도 완전하고 또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완전성을 자기 자신 안에 갖는 존재자, 즉 한마디로 말하면 신의 존재자에 의해 나의 내부에 놓여진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것에 덧붙여 다음과 같이도 생각했다. 나는 내가 갖지 않은 몇 개의 완전성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현존하는 유일의 존재자가 아니며(여기서 스콜라 철학의 용어를 자유로이 사용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따라서 내가 그것에 의존하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나에게 주는 원천으로서의 완전한 다른 존재자가 아무래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유일의 것으로서의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된 존재이고, 따라서 약간이나마 완전한 존재로부터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나 자신의 힘으로부터 얻고 있는 것이라면, 같은 이유에 의해 내가 나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다고 알고 있는 바의 나머지의 완전성 전부까지도 나 자신으로부터 끄집어낼 수가 있었을 것이며, 나는 스스로 무한이고 영원이고 불변이고 전지(全知)이고 전능(全能)이며, 결국 신에게만 가능하다고 내가 인정한 온갖 완전성을 가질 수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위에서 행한 추리(신의 존재의 두 가지 증명)에 의하면, 나의 본성으로서 가능한 최대한에 있어 신의 본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의 내부에 그 관념을 갖는 온갖 것에 관해 그 자체를 소유하는 일이 완전성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고찰하는 것만으로 충분했고, 한편 어떤 불완전성을 제시하는 것은 신의 내부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밖의 모든 것이 신의 내부에 있다고 하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아는 것이다.

이를테면 의심이라든가 마음의 동요라든가 슬픔이라든가, 그 밖의 비슷한 것은 나 자신이 그것들을 모면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므로 신속에는 있을 수 없다고 나는 인정했다. 그리고 이것들 외에 나는 감각적이고 물체적인 많은 것들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었지만(왜냐하면 나는 꿈꾸고 있고 내가 보든가 상상하든가 하는 것은 전부 거짓이라고 상정했던 것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의 관념이 나의 생각 속에 진실로 있다고 하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나는 이미 지성적 본성이 물체적 본성과는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아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또한 합성이라는 것이 언제나 의존성을 나타내는 것인 까닭에 의존성은 명백히 하나의 결함이라는 것을 생각한 후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즉, 두 개의 본성으로 합성되어 있다는 것은 신이 갖는 하나의 완정성일 수가 없고, 따라서 신은 (정신과 물체로서) 합성되어 있지는 않다고, 또한 세계 속에 어떤 물체, 온갖 점에서 완전하다고 할 수 없는 어떤 지성적 존재자(이를테면 천사) 또는 다른 존재자(이를테면 인간)가 있는 것이라면, 이러한 것의 존재는 신의 힘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것들은 신 없이는 한 순간도 존속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서

 

이해와 감상

 

데카르트는 우선 어떤 앎을 근거로 다른 앎을 확립해 가는 방법으로서 연역적인 방법을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어떤 명제와 다른 명제간에 연역적인 관계가 성립할 경우에 한해 그 어떤 명제가 다른 명제를 뒷받침하는 정당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지식은 어떤 최초의 근본적인 명제에 관한 앎으로부터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에 의거하여 차례로 이끌려 나옴으로써 성립한다.

 

그와 같은 데카르트의 견해는 기하학의 체계에 대한 관찰로부터 형성된 것임이 분명하다. 고대 그리스의 유클리드에 의해 체계화되어 후세로 전해진 논증 기하학은 공리라 일컬어지는 소수의 자명한 명제를 출발점으로 하여 연역적인 논증에 따라 단계적으로 모든 기하학의 명제를 이끌어 내고 있다.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은 모든 전제가 확실하게 참이기만 하면 결론도 확실하게 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연역적인 방식으로 확립된 지식은 기초적인 앎을 이루는 최초의 근본적인 명제가 확실하게 참이기만 하면 모두 확실한 삶이 된다.

확실한 앎으로서의 지식을 확립하기 위해 남은 것은 이제 그와 같은 근본적인 명제를 찾아내는 일이다. 먼저 데카르트는 그러한 명제를 어떤 방법에 의해 찾아낼 수 있을까 고심하였으며, 그 결과 유명한 '회의의 방법'을 생각해 내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앎의 토대가 되는 기초적인 앎을 이루는 명제라면 혹시 거짓이 아닌가"라고 의심하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할 만큼 확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정도로 확실한 명제가 어떤 명제인지 당장에는 알 수 없으므로 데카르트는 그 반대의 명제, 다시 말해 의심하는 것이 가능한 혹은 의심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명제를 솎아내는 방법을 사용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데카르트는 조금이라도 의심할 여지가 있는 명제를 떨어 내기 위한 회의의 방법에 의해 궁극적으로 자신이 목표로 하는 전혀 의심할 수 없는 명제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였다. 최악의 경우 그러한 확실한 명제를 발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확실한 명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한 명제로 확립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데카르트의 의심을 흔히 '방법적 회의' 라고 부른다. 이 말은 그의 회의가 확실한 앎의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회의주의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의심이 아니라, 오히려 확실한 앎을 확립하기 위한 방법 내지는 수단으로서의 의심이라는 뜻이다. 또한 어떤 명제가 방법적 회의에 의해 거부되었다는 것도 반드시 거짓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한 명제들은 어쩌면 참일지도 모르고 거짓일지도 모르지만 참이라고 해도 일단 거짓이 아닐까 의심할 수는 있다는 뜻이다.

데카르트의 회의의 방법에 의해 많은 명제가 의심의 여지가 있는 명제로 추려지게 되었다. 먼저 감각적 경험에 의해 지각할 수 있는 대상에 관한 모든 명제들이 회의의 제물이 되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감각적인 지각은 가끔 우리를 속이므로 그러한 명제들이 과연 참인지 의심할 근거가 얼마든지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확신하는 어떤 수학적인 계산의 경과도 과연 참인지 의심 못할 바는 아니며, 우리의 육체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못된 마귀의 장난으로 우리 모두 육체를 지니고 있는 듯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회의해 볼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육체는 의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사유는 다르다.' 고 보았다. 다시 말해 '나는 생각한다,' 라는 명제는 아무리 회의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뒤엎을 수 없을 만큼 확실하다. 데카르트에 있어서 회의는 사유의 일종이다. 따라서 내가 '나는 생각한다.' 는 명제를 의심하는 것은 곧 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되며 그 명제가 참임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위의 명제는 즉, 그 명제가 거짓이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 곧 그것이 참임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특이한 면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생각한다.' 는 믿음은 어떤 경우에서건 착각일 수 없으며, 다른 증거 없이 그렇게 믿는 것만으로 바로 앎이 된다.

이렇게 해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혹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라는 명제를 의심할 수 없는 최초의 근본적인 명제로 확립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명제에는 말하고 있는 '나' 는 육체로서의 '나' 가 아니라 여러 가지 사유(思惟) 활동을 하는 정신으로서의 '나'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신체로서의 '나'의 존재는 이미 회의의 과정에서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판명된 바 있다.

사유하는 정신으로서의 나의 존재를 최초의 명제로 확립한 데카르트는 그 명제를 바탕으로 해서 회의의 과정에서 의문시된 여러 과학적인 지식의 가능성을 다시 입증해 보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확실한 것은 정신의 존재밖에는 없으므로 지식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오직 정신의 내용물로서 관념(idea)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정신 안에는 여러 종류의 관념이 있지만 외부의 대상을 감각적으로 경험함으로써 형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나뭇잎으로 보고 '푸르름'의 관념이 형성되며 연필을 만져봄으로써 '딱딱함'의 관념이 얻어진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관념들이 모두 우리 외부의 대상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이유로 '외래 관념' 이라고 불렀는데, 외래 관념들은 반드시 외부 대상과 일치한다고 장담할 수 없으므로 과학적 지식의 기초로 삼을 수가 없다.

관념이 오직 외래 관념뿐이라면 과학적인 지식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데카르트는 그러나 관념 가운데는 경험에 의해 비로소 형성되는 외래 관념만이 아니라, 경험과는 무관하게 이성의 능력으로부터 유래하는 본유 관념(innate idea)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분유 관념의 한 예로 신(神)의 관념을 들었는데, 그에 의하면 본유 관념을 이성적으로 직관함으로써 얻어지는 명제는 '나는 생각한다.'는 명제처럼 의심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명제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지식을 확립하는 데 기초로 삼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데카르트에 있어서 과학적인 지식은 관념을 직관함으로써 얻어지는 명제를 밑바탕으로 하여 연역적인 추리를 행함으로서 차례로 얻어진다. 그런데 본유 관념을 직관한다든가 연역 추리를 행하는 일은 모두 이성적인 작업이다. 따라서 플라톤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데카르트에 있어서도 지식을 확립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작업으로서 경험과는 무관하다. 지식에 관한 그러한 생각을 합리론 혹은 이성론이라고 한다.

합리론이란 과학적인 앎의 특징을 확실성으로 보고, 또 그 원천을 이성에서 찾는 입장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합리론적인 지식이론은 수학 혹은 논리학과 같은 형식적인 학문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잘 들어 맞는다고도 할 수 있지만 경험 과학에 대해서는 별반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이 많다. 그들은 이성을 앎의 유일한 원천으로 보는 한 경험 과학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지 설명하기 곤란하므로 앎이 성립하는 과정에서 경험이 하는 역할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그들 가운데 특히 근대의 영국 경험론자들은 이성이 아닌 경험이 오히려 앎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데카르트(1596-1650)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투렌라에 출생. 근세사상의 기본틀을 처음으로 확립함으로써 근세철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그는 세계를 몰가치적(沒價値的)·합리적으로 보는 태도(과학적 자연관)를 정신의 내면성의 강조(정신의 형이상학)와 연결지워 이를 이원론(二元論)이라고 하였다. 이원론은 동시에 근세사상 전체에 통하는 이원성의 표현이다. 프랑스 중부의 관료귀족 집안 출신으로 생후 1년 만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10세 때 예수회의 라 플레슈학원에 입학, 프랑수아 베롱에게 철학을 배웠다. 1616년 푸아티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학교에서 배운 스콜라적 학문에 불만, 세상을 통해 배울 것을 결심하고 여행에 나섰다. 1618년에는 지원장교로서 네덜란드군에 입대했다. 수학자 베이크만과 알게 되어, 물리수학적 연구에 자극을 받아 ‘보편수학(普遍數學)’의 구상에 이르렀다. 1620년 군대를 떠나 유럽 각지를 전전하다가 1625년부터 파리에 체재, 광학(光學)을 연구한 끝에 ‘빛의 굴절법칙’을 발견하였다. 1629년 이후에는 네덜란드에 은거하며 철학연구에 몰두하여 형이상학 논문 집필에 종사하였으나, 같은해 3월 제자로부터 환일(幻日) 현상의 해명을 요청받고 중도에 자연연구로 전향, 결국 자연학(自然學)을 포괄하는 《우주론 Le Trait暴de la monde》의 구상으로 발전하였다.그러나 이 논문의 완성단계에 G.갈릴레이의 단죄사실(斷罪事實)을 듣고, 지동설을 주내용으로 한 이 책의 간행을 단념, 그 대신 1637년 《방법서설(方法敍說) Discours de la m暴hode》 및 이를 서론으로 하는 《굴절광학》《기상학》《기하학》의 세 시론(試論)을 출간하였다.

1641년 형이상학의 주저 《성찰록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1644년에는 《철학의 원리 Principia philosophiae》를 출간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데카르트 사상의 혁신성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 ‘자유로운 나라’였던 네덜란드도 캘빈파(派) 신학자들의 박해로 살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그 무렵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1649년 가을 스톡홀름으로 가서 지내던 중 폐렴에 걸려 생애를 마쳤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는 수학자로서는 기하학에 대수적 해법을 적용한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물체에는 무게라는 실재적 성질이 있기 때문에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는 스콜라적 자연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물리 수학적 연구를 통하여 물질, 즉 연장(延長)이라는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이끌려 갔다. 그의 형이상학적 사색은 이른바 방법적 회의(懷疑)에서 출발한다.

학문에서 확실한 기초를 세우려 하면, 적어도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은 모두 의심해 보아야 하는데, 세계의 모든 것의 존재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더라도 이런 생각, 즉 의심을 하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근본원리가 《방법서설》에서 확립되어, 이 확실성에서 세계에 관한 모든 인식이 유도된다. 의심하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에서 무한히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이 결과할 리가 없다는 데서 신의 존재가 증명되고, 신의 성실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여 물체의 존재도 증명된다.

더욱이 정신은 사고하는 것만으로, 다시 말하면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심신의 실재적 구별도 확정된다. 이리하여 정신과 물체가 서로 독립된 실체로 세워지고 이 물심이원론에 의해 기계론적 자연관의 입장의 기초가 마련된다. 그러나 인간에게서 심신결합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덕의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이 물심분리와 심신결합의 모순 조정에 데카르트 이후 형이상학의 주요한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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