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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 홍자성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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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맛은 오직 담담할 뿐

 

도덕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은 한때가 적막하고, 권력이나 세도에 아부하며 의지하는 사람은 만고에 처량하다. 만물에 통달한 사람은 사물 밖의 사물을 보고 육신 뒤의 몸을 생각하느니, 차라리 한 때의 적막함을 받을지언정, 만고의 처량함을 취하지 말라.

귀로는 항상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듣고 마음속에는 항상 마음에 어긋나는 일을 가지면 이것이야말로 덕과 행실을 갈고 닦는 숫돌이 될 것이다. 만일 말마다 귀를 기쁘게 해주고, 일마다 마음을 기쁘게 해 준다면 곧 자기 몸을 짐새의 독소에 파묻게 되리라.

모진 바람 성낸 비에는 새들도 근심하고, 갠 날씨 따뜻한 바람에는 초목도 기뻐한다. 천지에는 하루라도 온화한 기운이 없어서는 안되고, 사람의 마음에는 하루라도 기쁜 마음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히 알 수 있다.

짙은 술, 살찐 고기, 맵고 단 것은 참맛이 아니다. 참맛은 오직 담담할 뿐이다. 신기한 재주와 뛰어난 행실이 지인이 아니다. 지인은 오직 평범할 뿐이다.

밤은 깊어 사람은 잠들어 고요할 때 홀로 앉아 마음을 살펴보면, 비로소 망령된 생각이 다하고 진실된 마음이 나타남을 깨닫게 되거니와, 언제나 이런 가운데서 큰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이미 진실된 마음이 나타났는데도 망령된 생각에서 벗어남이 어려움을 깨닫는다면 또한 이런 가운데에서 큰 부끄러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은혜로운 가운데서 본래 재앙은 싹트는 것이니, 그러므로 만족스러울 때 모름지기 빨리 머리를 돌려 살펴보라. 실패한 뒤에 도리어 성공할 것이니, 그런 고로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여서 곧 손떼지 말라.

자랑을 받음과 이익되는 일에는 남보다 앞서지 말고, 덕행과 일에는 남의 뒤에 처지지 말라. 남에게서 받음은 분수 밖으로 넘지 말고, 몸을 닦음은 분수 안으로 줄이지말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한 발짝 양보함을 높게 여기며, 한 걸음 물려난다는 것은 곧 스스로 전진하는 토대가 되는 것이니라. 사람을 대답함에는 일푼 너그러이 함이 복이 되거니와, 남을 이롭게 함은 실로 자기를 이롭게 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니라.

좋은 이름과 훌륭한 공로는 반드시 혼자서 차지하지 말라. 조금은 나누어서 남에게 주어야 해를 멀리 하고 몸을 보전할 수 있느니라. 욕된 행실과 더러운 이름은 마땅히 남에게만 전부 밀리 말 것이니, 조금은 끌어다가 나에게로 돌려야 가히 빛을 지니고 덕을 기를 수 있느니라.

천리의 길 위는 매우 넓어 조금만 마음을 두어도 문득 가슴속이 넓고, 크게 틔어 명람해짐을 느끼게 되고, 사람의 욕심의 길 위는 몹시도 좁아서 겨우 발만 붙여도 눈앞이 모두 가시덤불, 진흙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니라.

마음은 비어 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 비어 있으면 의리가 와서 살며, 마음을 항상 채워 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 꽉 차 있으면 물욕이 들어오지 못한다.

 

땅이 더러우면 만물을 많이 내고, 물이 맑은 것에는 언제나 고기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마땅히 때묻고 더러운 것도 받아들이는 아량을 지닐 것이요, 깨끗한 것을 좋아하여 홀로 행하려는 지조도 가지지 말 것이니라.

자기를 반성하는 사람은 부딪치는 일이 모두 약이 되고, 남을 원망하는 사람은 생각을 할 때마다 모두 창이 되리라. 하나는 모든 선의 길을 열고, 하나는 모든 악의 근원을 파헤치니,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니라.

 

고기잡이 그물을 쳐 놓은데, 기러기가 그 가운데 걸려 들고, 사마귀가 탐내자, 참새가 또 그 뒤에서 엿보고 있다. 기략 속에 또 기략이 숨겨져 있고, 이변 밖에 또 이변이 일어나거늘 지혜와 기교를 어찌 능히 믿을 수 있으랴!

물은 파문이 일지 않으면 스스로 안정하고, 거울은 먼지가 끼지 않았으면 스스로 밝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굳이 맑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니, 흐린 것을 제거하면, 맑음은 절로 나타난다. 낙은 꼭 찾을 필요는 없는 것이니, 그 괴로움을 제거하면 즐거움이 절로 있다.

 

일을 급히 서두르면 명백하지 않지만, 너그러이 늦추면 혹 절로 밝아지느니, 그 분함을 서둘러서 조급하게 하지 말라. 사람을 부리려 하던 순종하지 않되, 놓아 두면 혹 감화되는 수가 있으니, 심하게 부려 그 고집을 더해 주지 말라.

복숭아꽃, 오얏꽃이 비록 고운들, 어찌 푸른 소나무와 푸른 잣나무의 굳은 절개와 같겠으며, 배와 살구맛이 비록 단 것이나, 어찌 노란 등자, 푸른 귤의 맑은 향기만 같겠는가. 믿을지어다. 짙고 일찍 죽는 것은 담박하고, 오래 가는 데 따르지 못하니, 일찍 빼어남은, 늦게 이루어지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낚시질은 편안한 일이나, 오히려 살리고 죽이는 자루를 쥐고 있으며, 바둑과 장기는 맑은 놀음이나, 또한 전쟁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이것으로 볼 것 같으면, 일을 기뻐함은, 일을 덜어서 한가히 지냄만 같지 못하고, 재능이 많음은, 무능하여 본 마음을 보존함만 같지 못하니라.

꾀꼬리 울고 꽃 가득히 피어 산색이 질고 골짜기가 아름다운 것은, 모두 이 천지의 거짓 모습이요, 물 마르고 나뭇잎이 떨어져서 앙상한 바위에 마른 언덕은, 비로소 천지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느니라.

 

세월은 본래 길건마는, 바쁜 사람은 스스로 줄이고, 천지는 본래 넓건마는, 비천한 사람은 스스로 좁히며, 바람과 꽃과 눈과 달은 본래 한가한 것이지만, 악착스러운 사람은 스스로 빠르다 하느니라.

 

손님과 벗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실컷 마시고, 기강껏 놀다가, 이윽고, 시간이 다하고, 촛불 가물거리며 향내음 사라지고, 차도 식어 버리면, 모르는 사이에 오히려 흐느낌을 이루어 사람으로 하여금 한없이 처량하게 한다. 세상 모든 일이 이와 같거늘, 사람들은 어찌하여 빨리 머리를 돌리지 않는 것일까.

한 개의 사물 가운데서 참맛을 얻을 수 있다면, 오호의 아름다운 경치도 마음속으로 다 들어올 것이요, 눈앞의 기밀을 깨닫는다면, 천고의 영웅도 손아귀에 다 들어오느니라.

숲 사이 솔 바람 소리와 돌 위의 샘물 소리도 고요한 가운데 들으면, 모두가 천지자연의 음악임을 알게 되고, 수풀 사이의 안개빛과 물속의 구름 그림자도 한가한 가운데 보면, 천지 최상의 문장임을 알게 되느니라.

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을 치도;, 물을 잊어버리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면서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이 이치를 알면, 가히 물질의 얽매임을 벗어날 수 있고 하늘의 작용도 즐길 수 있느리라.

 

풍정을 얻는 것은 많음에 있지 않다. 좁은 못, 작은 돌 하나에도 연하가 깃든다. 훌륭한 아아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오막살이에도 시원한 바람, 밝은 달이 있다.

고요한 밤 종소리를 듣고 꿈속의 꿈을 불러 깨우며 맑은 못의 달 그림자를 보고 몸 밖의 몸을 엿보는도다.

천지는 아연하여 움찍히지 않으되 그 작용은 조금도 쉬지 않는다. 해와 달은 밤낮으로 바삐 달리건만 그 밝음은 만고에 변하지 않는다. 이러므로 군자는 한가로운 때에 다급한 마음을 마련하고 바쁜 마당에 느긋한 맛을 지녀야 한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오매 바람이 지나가면 대기 소리를 지니지 않고 기러기가 차운 뭇을 지나매 기러기 가고난 다음에 못이 그림자들 머무르지 않나니 그러므로 군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에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나니리.

산림에 숲어 삶을 즐겁다 하지 말라. 그 말이 아직도 산림의 참 맛을 못 깨달은 표적이라. 명리의 이야기를 듣기 싫다 하지 말라. 그 마음이 아직도 명리의 미련을 못 다 잊은 까닭이라.

이해와 감상

 

채근담의 종류는 두 가지로 전하여지고 있는데, 첫째는 명나라 만력연간에 환초도인 홍자성이 지은 것에 우공겸의 제사가 붙어 있고, 그 편제는 전편으로 되어 있다. 둘째는 청나라 건륭연간에 환초당주인 홍웅명이 짓고, 우씨의 제사가 없는 대신, 환초당수인의 식어가 붙어 있으며, 편제는 앞의 것과는 달리 수성, 웅수, 평의, 한적, 개론, 홍자성본에 비하면 24장이나 많다. 특히 이 책 안에는 청나라 석상재의 손으로 된, 속채근담의 어구가 곳곳에 나오는 것을 보면, 후일의 딴 사람이 합찬한 것으로 보인다.

채근담이란 이름은, 홍자성이 이 책을 저술할 당시의 생활상을 이 책이름에 붙인 것이니, 전편의 내용이 난세에 몸을 지키는 비결과 자연에 맡겨 도를 중히 여기는 것을 볼 때, 그 제명은 더욱 뜻이 있는 것이다. 책이름은 송나라 학자 왕신민의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모든 일을 가히 이루리라."란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 소학에 보면 "호안국은 이 왕신민의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경탄했다."고 했으며, 소학을 쓴 주자도, 또한 그의 주에서 "지금 세상 사람들을 보매, 채근을 씹을 줄 모르므로 말미암아, 자기 마음을 어지르는 이들이 많기에 이르렀으니, 가히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채근의 참맛을 모르는 자는 기름진 고기맛에 반하여 명리에 팔리고 눈앞의 이익에만 끌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채근담'은 전편이 담박을 귀히 여기고 농후를 싫어하며, 회사를 버리고 질박을 취함으로써 주지를 삼고 있다. '짙은술, 살진 고기, 맵고 단 맛은 참맛이 아니다. 참맛은 오직 담담할 뿐이다.'라는 말도 이 '채근담'이란 제명의 참뜻을 나타낸 것이다. 요컨데 채근담이란 곧 사람이 항상 외물인 부귀영화를 찾아 헛되이 헤매지 않고, 한 표주박의 밥과 한 표주박의 나물국에 만족할 수 있다면, 인생의 모든 채근담 전후편을 통하여 살펴보면, 홍자성은 그 사상의 뿌리를 유교에 두고 있으며, 노장의 도교나, 불교의 사상까지도, 폭넓게 꿰뚫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인생을 깨닫되, 외물에 좇지 말고, 천지의 무한한 도를 따르라고 강조하였다. 물질과 명예도 맹목적으로 부정만을 하고 있지는 않다. 이는 그의 경험에서 나온 참된 생활 철학이기도 하므로, 현대인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까닭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귀한 사람에게는 경계를 주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기쁨을 주며, 성공한 사람에게는 충고를 주고,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는 희망을 주어, 누구에게나 인격 수양의 보탬이 되게 하고, 삶에 지혜를 주며, 만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글이기도 한 것이다. 우씨의 제사가 그것을 말해 준다.

찾아오는 사람을 쫓고, 외로이 초가에 은거하여, 학문을 같이하는 사람은 사귀어 즐기되 그 밖의 사람들과는 사귀어 놀지 않았다. 망령되게 옛적의 성현들과 오경의 뜻이 같고 다름을 의논하되 부질없이 두서너 소인배와 같이 자연의 변화를 좇아, 구름이는 변화 많은 산기슭에 마구 흔적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날마다 어부·농부와 같이 오호의 물가나 푸른 들 가운데서 시를 읊조리고 노래로 화답하되, 한 점의 이익을 다투고 한 말지위를 영화로 여기는 사람과는 인정을 나누지 않고 날고기에 파리떼가 모여드는 소굴에서 서로 사귀지 않았다. 간혹 염락의 설을 배우려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가르쳐 주고 불교의 공부를 하는 이가 있으면 그 몽매함을 깨우쳐 주되, 헛되게 하늘을 말하고 용을 새기는 굉장한 변론을 하는 자는 멀리하였으니, 이렇게 함으로써 산중 생활의 능력을 다 마치기에 족하다고 여겨 왔다.

마침 나의 벗 홍자성이란 이가 있어, 그의 저서 채근담을 가지고 와서, 내게 보이고 서문까지 부탁하는지라. 처음에 나는 대단치 않게 여기고, 이것을 건성으로 보려 하였더니, 이윽고 책상 위의 옛 책을 치우고, 가슴속의 잡념을 없애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손에 잡고 읽어보니, 비로소 그가 천성을 논함에 곧 현묘한 지경에 들고, 인정을 말함에 간곡히 전부 밝혀서, 양천부지하여 가슴이 탁 트임을 깨닫고, 속세의 공명이 티끌 같아서, 식견과 취미가 문득 높아짐을 알겠다. 붓의 힘이 이루어내는 것은, 녹수 청산 아닌 것이 없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모두 변화를 가져 연비 어탁의 경지이다. 이 그의 자득함은 어떠한가? 진실로 아직 깊이 믿을 수 없지만, 그러나, 그가 털어놓는 말에 의하면, 모두가 세상에 약이 되고, 사람을 깨우쳐 주는 간요한 것뿐으로, 귀로 들을 것을 입으로 말하는 허황된 것이 아니로다. 이 글을 채근이라 이름하였거니와, 이는 본래 작자 스스로가 청고를 겪고 단련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스스로 심고 물 주어 가꾸는 속에서, 얻어진 것으로서, 그가 얼마나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고, 인생 행로의 험난을 맛보았는가를 가히 상상할 수 있다. 홍씨가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몸으로써 수고롭게 하면, 나는 내 마음을 편안히 하여, 이를 보충하고, 하늘이 나를 역경에 빠지게 하면, 나는 내 도를 높임으로써 이를 트게 하리라." 하였으니, 이로써 가히 그가 스스로 경계하고, 스스로 노력하였음을 추측할 수도 있다. 이로 말미암아 몇 마디 말을 책머리에 적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채근담 가운데 인생의 참다운 맛이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참고 자료

채근담

중국 명말(明末)의 환초도인(還初道人) 홍자성(洪自誠)의 어록(語錄).

2권. 전집(前集) 222조는 주로 벼슬한 다음, 사람들과 사귀고 직무를 처리하며 임기응변하는 사관보신(仕官保身)의 길을 말하며, 후집(後集) 134조는 주로 은퇴 후에 산림에 한거(閑居)하는 즐거움을 말하였다. 합계 356조는 모두 단문이지만, 대구(對句)를 많이 쓴 간결한 미문이다.

사상적으로는 유교가 중심이며, 불교와 도교도 가미되었다. 이 책은 요컨대 동양적 인간학을 말한 것이며, 제목인 ‘채근’은 송(宋)나라 왕신민(汪信民)의 《소학(小學)》 <人常能咬菜根卽百事可成>에서 따온 것이다. 제사(題詞)에도 이 저자가 청렴한 생활을 하면서 인격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인생의 온갖 고생을 맛본 체험에서 우러난 주옥 같은 지언(至言)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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