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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 풍속과 놀이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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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 풍속과 놀이

심우성

나라마다 다른 풍속

풍속이란, 옛날부터 한 생활 공동체가 지켜 내려오는 남다른 습관을 말한다. 신앙, 생산 수단,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한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발전하면서 얻은 전통적 행동 양식을 우리는 풍속, 습관, 관습 등으로 부르고 있다. 풍속이란 생활 공동체에 따라서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한 마디로 이런 것이요 하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첫째로, 자연 조건에 따라 다르니, 산악, 평야, 해변, 습지, 건지, 섬 들로 나뉘며, 기후로도 열대, 아열대, 온대, 아한대, 한대에 따라서 기본적으로 행동 양식이 다르게 된다. 둘째로, 생산물, 생산 방법에 따라 크게 작용하는 것이니 우리가 어느 민족 또는 국가의 생활사를 살필 때, 수렵, 농경, 어로 들을 먼저 가리려 함도 바로 그 때문이다. 셋째로, 위와 같은 여건에서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동안 주변의 다른 공동체들과의 대립과 교류 관계가 또한 하나의 풍속을 이루는 데 큰 작용을 한다. 이렇게 놓고 볼 때, 풍속이란 자연의 터전 위에 인간이 스스로의 역사를 발전시켜 오는 가운데 얻어 낸 하나의 규범이라 해도 틀림이 없다.

흔히 아주 먼 나라의 풍속이 괴상함을 표현할 때, 서로 코를 잡는 인사법, 뺨을 때리는 인사를 흉내내며 우스워한다. 그러나 그쪽에서 볼 때, 맥없이 손을 잡고 흔들거나, 엎드려 땅바닥에 머리를 대는 것을 보면 역시 같은 웃음이 터질 것이다. 이제는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에 왕래가 잦아짐으로써 세계가 이웃처럼 되어 간다고 하지만 아직도 서로 다른 생활 공동체 사이의 풍속은 각기 그 기능이 발휘되고 있다. 또한 한 공동체가 역사적인 맥락에 따른 자기 존립과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독창성이 바탕으로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풍속과 옛 풍속인 고속(古俗)을 같은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근대화라는 것이 다분히 주체적이지 못한 결과로 해서 제 것은 밀쳐 버리고 서양 흉내를 내는 것이 배운 사람의 자랑인 양 잘못 인식되고 있는 이 때에, 서둘러 우리의 풍속을 되찾아 오늘에 살릴 수 있도록 확인하고 선택하여 다시금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 땅 위에서, 숱한 욕됨과 영화로움을 극복하며 창출함으로써 민중 생활의 규범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우리의 풍속이기 때문이다.

 

씨 뿌리기를 마치고 자연에 제사지냈다.

풍속은 앞에서 설명이 되었기에 `세시`를 알아본다. 세시란 1 년 가운데 때때를 일컬으니 춘하추동 계절을 이르기도 하고 다달의 일이나 명절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인간이 한 평생을 지내는 것을 `통과의례`라 하여 `관혼상제`의 순서로 나타낸다면 세시 풍속이란 한 공동체가 해마다 집단적으로 되새김하는 1 년의 일정표이다.

우리 민족의 세시 풍속의 역사는 아주 오래다. 우리에게도 수렵, 채집 단계의 역사가 있었을 것이나 그 무렵의 기록은 전하지 않고 그 후의 농경 단계로 들어와 주목할 만한 몇 가지 기록이 전한다.

 

위지 동이전(A.D. 3세기)이라는 중국의 역사 책에 삼한 시대에 있었던 농경 의례가 나타난다. `......씨 뿌리기를 마치고 난 5월과 농사가 끝난 10월에 자연에 제사지냈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들도 모두 한 공동체의 의례요 축제였던 것이다. 우리가 벼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6천 년 전 신석기 시대로까지 소급된다는 고고학계의 의견에 耷른다면 㟌위지 동이전㟍의 기록보다 훨씬 전부터 벼 재배와 그 밖의 농경에 따른 세시 풍속이 짜여져 왔으리라는 추축이 든다.

 

신앙적인 면에서는 토착 신앙인 무속이 바탕이 되면서 뒤에 들어온 외래 종교인 불교, 유교, 도교 들이 깊이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지정학적으로 주변의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 동남 아시아들과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벼 재배를 위주로 한 농경을 영위하면서도 3면의 바다와 수많은 섬에서는 어로가 활발했으니 크게 보아 우리의 세시 풍속은 내용에 있어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세시 풍속을 이루는 것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계절과 날자, 시간을 분간하는 역법이 있다. 원초적인 방법으로는 해와 달 같은 천체의 움직임에 따른 것과, 식물이 돋아나고 말라 죽거나, 동물들의 동면 같은 생활 변화에 의하여 짐작한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달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 역법`을 만들어 냈는데 중국의 경우는 삼짓(3월 3일) , 단오 (5월 5일) , 칠석 (7월 7일) , 중구 (9월 9일) 들을 명절로 삼았으나 우리 민족은 대보름 (1월 15일), 유두 (6월 15일), 백중 (7월 15일), 한가위 (8월 15일) 등 달이 둥굴게 뜨는 보름을 명절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일반 민중은 역법에 의존한다기보다 오랜 경험에 의한 자연의 변화를 기준으로 한 자연력에 따라 삶을 영위해 온 것이 사실이다.

투박한 듯하면서도 절실하고 진실한 노래

수박 겉핥기로 우리의 세시 풍속이 짜여지게 된 바탕을 소개하려 했는데 여기에 꼭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이다. 그 역사란 우리가 흔히 배우고 있는 왕조사 중심의 것이 아닌 민중사의 줄기를 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세시 풍속이란 민중사를 지탱하고 발전시켜 온 슬기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 년 열두 달 농사짓고 고기잡는 순서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염원을 하나로 모으는 정월의 '당굿'으로부터 계절에 걸맞게 가다듬고 풀면서, 섣달 그믐에 이르기까지 일과 놀이를 하나로 하며, 다양한 공동체의 의견들을 통일시키는 의지가 그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세시 풍속은 생산의 단계 단계에 일꾼들의 건간과 계절의 변화, 그리고 더 풍요한 생산을 위한 일정표로 짜여져 온 것이다. 한편, 세시 풍속을 영위해 나가는데, 기계를 잘 돌아가게 하는 데 쓰는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예능과 놀이이다. 시절에 따라, 고장에 따라 불려지는 다양한 민요들은 심금을 울리고 의욕을 북돋우면서 역사와 함께 발전하고 있는 겨레의 노래이다.

그 표현이 투박한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절실하고 진실하다. 탈놀음도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 함경 남도의 '북청 사자놀음', 황해도의 '봉산 탈춤', '강렬 탈춤', '은율 탈춤', 중부 지방의 '양주 별산대놀이'와 '송파 산대놀이', 강원도의 '강릉 관노 가면놀이', 경상 북도의 '하회 별신굿 탈놀이', 경상 남도의 '통영 오광대놀이', '고성 오광대놀이', '가산 오광대놀이', 부산의 '수영 들놀음', '동래 들놀음' 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무형 문화재들이다. 그러나 이 밖에도 전군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풍물(농악)놀이와 함께 하고 있는 양반 광대(갖가지 탈을 쓴 놀이꾼)들과 '지신밟기'에 등장하는 환칠(분장)한 놀이꾼들이 즉흥적인 연희들도 소중한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전통 예술의 기둥 역할을 하는 것은 '풍물'이다. 타악기 위주로 짜여진 이 민족 음악을 조선 왕조의 봉건적 지배자들과 그 뒤를 이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농사꾼들이나 하는 음악이라 하여 '농악'으로 이름 붙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본디는 풍물이었음을 밝혀 두고자 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민속놀이가 있다. 요즘 각급 학교에서 운동회 때, 줄다리기 하는 것을 보면 거의가 왜식(일본식)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우리의 세시놀이로 놀아졌던 줄다리기는 왜식 줄다리기와는 노는 방법이나 놀이의 뜻이 아주 다르다. 동 서 양편으로 갈라 두 가닥의 굵은 줄을 꼬아 그것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데서부터 놀이는 시작된다. 줄꾼들은 각기 자기 편에 매달려 힘껏 끌어당기는 데 서로 힘을 다하는 가운데 두 개의 큰 힘이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고 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둘의 힘이 하나의 더 큰 힘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줄꾼들의 발이 붕하니 공중으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바로 이 팽배의 아름다운 경지를 만끽하는 것이 줄다리기의 맛이요 정신이다. 끝마무리도 깔끔하다. 이긴 편 마을은 논농사 잘 되고, 진 편 마을은 밭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시냇물 하나 사이에 그럴 리가 없다. 다 잘 되자는 마음씨이다.

민속놀이 하나를 예로 들었지만, 이 민속놀이도 세시 풍속의 하나로 존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주로 정월 대보름에 노는 이 놀이는 새해를 맞으면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뜻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좋은 일보다는 궂은 일이 많다. 그 궂은 일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극복하면서 삶을 보람 있게 꾸려 나가느냐 하는 데 한 집단의 슬기로서 지켜져 온 것이 바로 세시 풍속이다. 그것은 신앙, 생산, 문화가 다 생활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계절에 따라 꼭 쓰일 곳과 있어야 할 때에 안배되고 있다. 세시 풍속은 한 생활 공동체의 역사적 슬기로서 오늘의 우리를 지켜 왔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흔히 오늘의 시대를 말할 때 , 어쩨가 옛날이요, 밤이 낮 같은 세상이라고 한다. 그런 가운데 우리의 근대화 과정 또한 타율적인 성격이 강하고 보니 역사적으로 물려받았어야 할 세시 풍속도 맥을 잇지 못하고 있다. 1900년대 초 세시 풍속의 근간이 되는 역법이 음력에서 양력으로 바뀐데다가, 한 달 단위, 일 년 단위의 생활이 일 주일 단위로 변한 데 큰 까닭이 있다. 또한 농경 위주에서 상공업 위주의 사회로 변모한 탓도 크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일방적인 복고 취향으로 세시 풍속을 그대로 오늘에 되살린다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며 또 불필요한 일임도 알고 있다. 농경 생산을 위주로 한 세시 풍속이지만 오늘의 우리 농촌에서도 이제는 생산 기술이 발전하고 보니 부적격한 것이 되고 말았다. '일 노래'를 하나의 예로 들어 보자. 모를 심고 논을 매고 벼를 벨 때 부른 노래들은 실제 일 장단과 맞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기계를 쓰다 보니 그 노래들이 쓸모 없이 된 경우와 같은 것이다.

이 마당에 세시 풍속을 오늘에 되살리자 함은 옛날 일정표를 오늘로 가져 오자는 뜻이 결코 아니다. 공동체를 이룩했던 슬기, 나아가서는 지극히 어려웠던 상황의 연속이었지만 이 땅을 지켜 올 수 있었던 바탕의 힘과 기백을 오늘로 이어 보자는 데 있다. 세시 풍속들에서 본디의 뜻을 확인하고 그것을 재창조하는 작업이 소중한 것이다. 분단 민족인 우리이기에 이 일은 남달리 긴요한 면도 있다. 물론 오늘에 합당한 것은 그대로 이어받아도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주체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이 역사 민족으로서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심우성/홍익 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0년대 이후 인형극과 일인극 무대에 직접 출연, 작품 활동을 해 왔다. 현재 한국 민속극 연구소 소장이다. 저서로는 (한국의 민속극, 남사당패 연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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