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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과학자들 / 제임스 트레필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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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과학자들 / 제임스 트레필

 

자연 과학자들이 쓴 글은 어딘가 모르게 어눌한 경우가 많다. 책 제목이 내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단순한 논증으로 고급 독자로 하여금 차디찬 미소를 짓게 하는 측면도 있다. 트레필의 [도시의 과학자들]도 이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먼저, 책 제목부터 어리숙하기 그지없다. [도시의 과학자들]이라니, 도대체 어떤 책인가? 도시에서 사는 과학자의 삶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업적에 대한 것인가? 제목은 책의 내용을 암시해 주는 동시에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도시의 과학자들]이라는 제목은 내용을 표현해 주지도 못하고, 독자의 흥미를 끌지도 못한다. 신촌문고에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받은 느낌은 이 정도였다. "어리숙한 과학자의 어리석은 책."

그러나, 결국 나는 이 책을 사고야 말았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과학에 대해 무지한 인문학도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그 '무엇' 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부제(副題)'과학자의 눈으로 본 도시 이야기'이다. 확실히 과학자들의 눈에 비친 도시는 인문학자들의 눈에 비친 도시와 달랐다. 인문학자들이 '사람'의 관점에서 도시를 본다면, 과학자들은 '기술'의 관점에서 도시를 본다.

 

'과학적으로 본다면', 도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력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은 도시의 새로운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트레필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정 반대의 주장을 편다: "도시 성장을 방해했던 기술의 한계란 이제 더 이상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도시는 결국 해체 될 것이다."

 

트레필은 도시를 건설하는 재료, 도시를 움직이는 힘,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능력이라는 세 가지 차원을 설명하는 가운데 그 결론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이제 그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1. 도시를 건설하는 재료

도시의 건축물을 이루는 소재는 나무--철근의 순서로 발전해 왔다. 건물의 소재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도시의 모습은 달라진다. 먼저, 나무가 소재였을 시절의 도시에는, 고층 건물이란 있을 수 없다. 나무는 압력에 견디는 힘이 약해 목재로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돌과 벽돌은(벽돌의 화학적 구성은 자연석과 똑같다) 압력에 견디는 힘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목재보다는 더 높이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있다. (한 장의 벽돌 위로 2,400미터까지 벽돌을 쌓아 올린다 해도, 맨 아래 벽돌은 부서지지 않는다. 그 정도로 벽돌은 압력에 견디는 힘이 강하다.) 그러나 벽돌 등의 석재는 바람 때문에 생기는 옆에서 받는 압력(전단하중)에 견디는 힘이 약하다. 따라서, 4-5층 이상의 건물을 순전히 석재만으로 짓는다는 것은 무리다. 이 삼 백 년 된 파리의 구시가의 건물들이 나지막한 것은 다름 아닌 건축소재로서 석재가 갖는 한계 때문이었다.

 

현대의 제철기술은 비로소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가능하게 했다. 강철은 단단하면서도 매우 유연하기 때문에 바람에 잘 견딜 수 있다. , 돌이 압력에 견디는 힘과 강철의 유연함을 결합한 '철근 콘크리트'는 건물 높이의 관한 한 생길 수 있는 한계를 아예 없애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건축물은 중력, 바람, 지진에 견디게끔 설계되어야 하는데, 철근 콘크리트는 아주 극악한 조건에서도 버틸 수 있는 건물을 짓는 데에 가장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이제 이론적으로는 200층 짜리 건물을 짓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 높이의 건물을 짓는데는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고층 아파트에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건물은 바람이 불 때 마다 조금씩 흔들린다.(이 것을 공진이라 한다.) 100층이 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최고 60센티미터씩 좌우로 흔들린다. 200층 짜리 건물은 좌우로 15미터 이상 흔들릴 것이다. 배 멀미를 잘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건물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 고층 건물에는 빠른 엘리베이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속도는 시속 32킬로미터 이상 낼 수 없다. 이보다 빠르면 사람의 귀가 기압의 변화를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200층 화장실에서 내린 물이 지상의 닿을 때의 속도는 시속 160킬로미터가 넘는다. 이런 수압에 견디도록 배관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할 것이다. 언젠가는 기술자들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사람들은 고층 건물을 지으려 하지 않을 것 같다. 고층 건물을 지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교통과 정보 통신의 발달에 있다.

 

2. 도시를 움직이는 힘: 교통의 발달

도시의 성장에는 '45분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도심까지 45분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까지 도시가 성장한다는 뜻이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런던의 반경은 5킬로미터 정도였다. 이 거리는 걸어서 도심에 45분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주 교통 수단이 도보였던 시절에는 이 이상으로 도시가 성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철도의 발명은 이제 도시의 반경은 20-30킬로미터 이상으로 급속하게 성장해 갔다. 무엇보다도, 도시의 성장에 기여한 것은 자동차이다. 자동차는 도로만 있다면 어디에나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이제 도시의 확장(스프롤 현상)은 극에 달했다.

 

이제, 교통 수단의 발전은 '45분 규칙'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듯하다. (자동차로 인한 공해와 교통 혼잡의 문제는 전기 자동차와 GIS(지리 정보 시스템)을 이용한 '스마트 하이웨이'에 의해 해결될 것이다.) 앞으로 실용화될 자기 부상열차는 시속 480미터로 달리면서도 곡선으로 틀 수 있다고 한다. 시속 480킬로미터의 속도로 운송하는 수단이 있다면, 반경 160-240킬로미터의 광대한 지역이 한 생활권이 될 것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역설적으로 도시는 해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2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45분만에 도심까지 출근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굳이 도시에 모여 살 필요가 없다. 최근의 '변두리 도시'가 증가하고 있듯이, 이제 도시의 모습은 점점이 흩어진 소부락의 형태로 변해 갈 것이다. 나아가 정보 통신의 발단은, 이제 일을 하기 위해 도심에 간다는 '도심의 필요성' 조차도 없애 버릴 것이다.

 

3. 정보 통신의 발달: 도시의 해체

지금도 재택 근무는 점점 일반화되는 추세에 있다. 2050년경이 되면 이제 재택 근무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근무 방식이 될 것이다. 나아가, 가상 현실 기술의 발달은 수 백 킬로 미터 밖에 떨어진 사람들을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재현시킬 것이기 때문에, 굳이 직접 만나야 할 일 조차도 별로 없게 될 것이다.

 

교통, 통신 등 기술의 발전이 현대의 거대 도시를 가능하게 했다면, 이제 그 기술의 발전 때문에 도시는 해체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모든 도시는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 도시는 곧 쇠락하고 사라져 버린다. (탄광촌 같은 곳에서 우리는 이런 도시의 운명을 가장 직접적으로 볼 수 있다) 정보와 통신 기술의 발전은 이제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살아야 할 '이유'를 점점 없애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트레필은 이 시점에서 다소 신중하게 한 발 물러선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살아 남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는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던 시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적한 시골에 살고자 남았듯, 인구가 급격하게 교외로 분산되어 가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에 살고 싶어 할 것이다. 왜냐하면 도시에는 특유의 생동감, 자유, 발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여전히 사람들을 끄는 그 나름의 매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본 교양 과학 서적 중에서는 꽤 괜찮은 책이다. '알기 쉽게 설명한' 과학서적 중 실제로 알기 쉬운 책들은 별로 못 보았다. 그러나 이 책은 상당히 평이하게 건축, 도시 설계, 정보 통신에 관한 과학 기술을 서술하고 있다. 완전 문외한이 내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라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더구나 머리 아픈 내용도 아니기에 지하철 안에서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교사 안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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