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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의 혁명 - 우주를 이루고 있는 원소 가족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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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의 혁명 - 우주를 이루고 있는 원소 가족

곽영직

 

역학과 생물학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던 17세기. 화학에서 큰 변화가 없었던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리스 시대부터 받아들여져 온 4원소설과 17세기부터 화학계를 지배하던 플로지스톤 설이 커다란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다.

플로지스톤 설은 1669년에 독일의 화학자 베케가 처음으로 주장한 후 슈탈에 의해서 체계화됐다. 슈탈은 물질이 연소하는 것은 물질에 잡혀 있던 플로지스톤이 물질로부터 분리되는 현상이라고 했다. 나무를 태우면 재가 남는데, 이것은 나무가 재와 플로지스톤의 결합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불에 잘 타는 물질은 플로지스톤을 많이 포함한 물질이고 잘 타지 않는 물질은 플로지스톤을 조금 포함한 물질이라고 했다.

금속과 같은 물질을 가열하면 오히려 무게가 증가하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플로지스톤 설에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플로지스톤은 마이너스의 무게를 갖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플로지스톤 마이너스의 무게 또는 플러스의 가벼움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뉴턴의 역학이 발견되기 이전으로의 퇴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플로지스톤 설의 악영향

18세기 초기에는 플로지스톤 설의 영향력이 매우 커서 화학자들은 그들이 발견한 새로운 현상들을 이 이론에 기초하여 설명하려고 노력했으나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는데 실패하곤 했다. 많은 화학자들의 노력으로 속속 새로운 기체가 분리되고 근대 화학의 기초가 성립된 것은 플로지스톤 설이 사라지는 18세기 말 이후였다. 플로지스톤 설이 화학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되었음을 단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중엽에는 고대의 4원소 중에서 흙에는 이미 많은 종류의 서로 다른 흙이 있음이 발견되어 흙은 더 이상 하나의 원소라고 생각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물, 공기, 불은 아직도 일반적으로 원소라고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화학의 새로운 기운은 공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국의 화학자이며 의사이기도 했던 블랙은 1754년에 탄산마그네슘을 가열해서 보통 공기와는 화학적 성질이 다른 기체를 분리하고 이 기체를 고정공기라고 불렀다. 블랙은 이 기체 중에서는 물질이 연소하지 않으며, 공기 중에 이 기체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 기체는 후에 이산화탄소라는 것이 밝혀졌다.

 

1766년 캐번디시는 금속을 묽은 산에 작용시켜 자신이 가연성 공기라고 명명한 수소를 만들고, 물이 더 이상 하나의 원소가 아니라 수소와 산소의 화합물이라는 것도 밝혀 냈다. 그는 수소를 공기 중에서 전기 불꽃을 이용해서 폭발시키면 용기 벽에 수증기가 묻게 되는 것을 발견하고 이 수증기는 수소의 폭발시에 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가 결합해서 생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캐버디시와 동료 화학자였던 영국의 프리스틀리는 여러 가지 기체들을 만들어 저장했는데, 그가 만들어 낸 기체 중에는 암모니아, 염산 가스, 산화질소, 산소, 질소, 일산화탄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프리스틀리는 성직자였으며 정치학자이기도 했는데, 1774년 8월 1일 묽은 수은을 가열하여 얻은 무색, 무취의 기체를 자신이 고안한 용기에 모았다. 그는 이 기체 속에서 양초를 태우면 양초가 매우 격렬하게 연소하는 것을 알아내고, 이 공기를 탈플로지스톤 기체라고 명명했다. 프리스틀리가 여행하는 도중 파리에서 라부아지에를 만나서 그가 발견한 이 기체, 즉 산소에 대하여 설명했는데 이 것은 라부아지에로 하여금 근대 화학의 기초를 닦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프리스틀리는 플로지스톤 설을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그가 발견한 현상들을 플로지스톤 설에 의해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스웨덴의 약사였던 셀레도 1773년경에 산소를 분리해 냈다. 그는 또한 공기가 단일의 원소가 아니라 연소를 도와 주는 공기인 산소와 연소를 방해하는 공기인 질소의 혼합물이라고 주장하고, 산소와 질소의 존재비는 1대 3이라고 하였다.

근대 화학의 아버지 라부아지에

천문학 혁명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자고 있던 지구 중심설을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화학에서의 혁명은 잘못된 플로지스톤 설을 부정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했다. 18세기 말에 플로지스톤 설을 부정하고, 아직 기초 단계에 있던 화학을 한 차원 끌어올려서 근대 화학의 기초를 닦은 사람은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라부아지에였다.

1772년경에 라부아지에는 이전부터 행해지고 있던 연소 실험을 되풀이해 보았다. 그는 인과 같은 비금속이나 주석과 같은 금속을 공기 속에서 태우면 무게가 증가한다는 것을 밝혀 내고 이 무게의 증가가 공기 중의 어떤 기체의 흡수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라부아지에는 플라스크에 금속을 넣고 밀폐한 후 가열했더니 가열이 끝난 후에도 무게의 증가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가열이 끝난 플라스크를 개봉했더니 공기가 들어가서 무게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때 증가한 무게는 가열하는 동안 증가한 금속의 무게와 같았다. 이것으로 그는 가열하는 동안에 공기가 금속에 흡수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라부아지에는 연소하는 동안 공기의 일부만이 흡수되고 가열을 계속해도 더 이상 흡수되지 않는 다는 것을 발견하고, 흡수되지 않는 부분은 흡수되는 부분과 다른 성질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물질이 연소할 때 공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1783년 라부아지에는 그때까지의 실험 결과를 종합하여 새로운 화학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화학 반응 전후에 있어서 반응 전 물질의 총질량과 생성물의 총질량은 변함이 없다는 질량 보존의 법칙과, 연소와 산화는 모두 물질과 산소의 결합임을 주장하였다. 라부아지에는 열과 빛은 연소 과정의 화학과는 무관한 것이고 연소와 산화시의 무게의 변화는 오로지 산소와의 반응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3종의 원소

이것은 1백 여 년 동안 화학자들의 사고를 한정해 오던 플로지스톤 설로부터의 해방 선언이기도 하였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플로지스톤 설은 오랫동안 화학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되어 왔었기 때문에 라부아지에의 이러한 선언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물리학에서의 뉴턴 역학의 발견과 견줄 수 있을 정도의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라부아지에는 캐번디시가 행했던 산소와 수소의 폭발에 의해 물을 만드는 실험을 하고 물은 수소와 산소의 혼합물이라는 결론을 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또 묽은 산에 금속을 녹이면 금속이 물에서 산소를 빼앗아 산화물을 만들어 산과 결합해서 염이 되도 물의 수소는 유리되어 기체로 발생된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바로 금속이 산에 녹아 수소를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발견과 라부아지에의 이론은 여러 가지 현상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었으므로 흙, 물, 공기, 불의 4원소설은 급속히 설 땅을 잃게 되었다. 그는 원소를 '화학 분석에 의해 도달하게 된 실재의 것'이라고 새로 정의하고 그의 저서인『화학 원론』에 확실한 원소 23종을 실었다.

라부아지에가 이룩한 화학에서의 성공은 몇 가지 경험적인 화학 법칙을 확립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화학 법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라부아지에가 발견한 질량 보존의 법칙일 것이다. 화학 변화에 전후에 화학 변화에 참가하는 물질들의 총질량은 일정하다는 이 법칙은 화학 변화가 무ㅈ슨 작용인가를 밝히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됐다.

다음으로 중요한 경험적 화학법칙은 돌턴이 제안한 '배수 비례의 법칙'으로서 두 가지 원소가 결합하여 두 종류 이상의 화합물을 만들 때, 한 원소의 일정량과 결합하는 다른 원소의 질량비는 간단한 정수가 된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 법칙은 '일정 성분비의 법칙'으로 프랑스의 프루스트가 1799년에 처음 제안했다. 일정 성분비의 법칙은 화합물을 얻는 방법에 관계 없이 한 화합물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의 질량비는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학 법칙이 성립되어야 하는 이유를 당시에는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었다. 따라서 새로 발견된 많은 기체와 실체에 대한 새로운 규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현대적인 원자론이 등장하기 위한 모든 준비가 안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돌턴의 원자설

원자론은 영국의 퀘이커 교도로 과학의 여러 방면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던 돌턴에 의해 1803년 처음으로 주장됐다. 19세기 초에는 이미 공기가 여러 가지 성분들, 즉 산소, 질소, 수증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돌턴은 뉴턴의 설명대로 원자가 서로 반발한다면 여러 가지 원자가 섞여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여러 가지 기체의 원소는 같지 않고, 같은 원소끼리는 반발하지만 다른 원소들은 서로 반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돌턴이 주장한 이러한 원자설은 그 후 오랜 동안 많은 실험에 의해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수정되고 보완되었다. 특히 19세기 말에 방사능이 발견되어 원자도 분해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져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고 한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화학 반응을 원자의 결합과 분리로 파악한 것은 아직도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돌턴의 원자설은 그때까지 밝혀졌던 경험적 화학법칙을 설명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였다. 원자설에 따르면 화학 변화는 원자들의 결합 상태만을 바꾸는 것이므로 화학 반응 전후에 질량이 일정해야 한다는 질량 보존의 법칙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화합물이 형성되는 방법에 관계 없이 어떤 화합물의 조성비는 같아야 된다. 이것이 일정 성분비의 법칙이다.

돌턴은 원자의 여러 가지 특성들 중에서 원소들을 구별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성질은 원자의 상대적 질량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수소 원자의 질량을 단위로 한 상대적 질량표를 만들었다. 각각의 원소사이에 반응하는 양, 즉 당량이 이미 실험적으로 결정되어 있었으므로 당량을 기초로 상대적 질량을 결정할 수 있었다. 수소 1g과 반응하는 산소의 당량은 8g이므로 소수 1개와 산소 1개가 반응한다고 하면 산소의 질량은 수소 질량의 8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소 사이에 반응하는 양을 이용하여 원소의 원자량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한 원소의 원자 몇 개가 다른 원자 몇 개가 다른 원소의 원자 몇 개와 결합하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수소 1g과 산소 8g이 반응한다는 실험적 사실로부터 수소 원자량과 산소 원자량의 비를 구하기 위해서는 수소 원자 몇 개와 산소원자 몇 개가 결합하는지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원자의 결합수를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이 쉽게 발견될 것 같지 않아 원자설은 시련을 겪기도 했다.

원자의 결합수를 결정하는데 새로운 지표를 제공할 새로운 가설을 1811년 아보가드로가 제안했다. 이보다 앞서 게이 뤼삭이 두 종류의 기체가 화합하는 경우 두 기체의 질량비뿐만 아니라 부피도 간단한 정수비를 이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견을 기초로 아보가드로는 소로 다른 원소라도 같은 온도, 같은 압력, 같은 부피에는 같은 수의 입자가 들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발표했다.

돌턴의 원자론이 제기된 이래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속속 새로운 원자가 발견되었고, 또 원자들의 여러 가지 화학적, 물리적 성질이 밝혀졌다. 간단한 화학적 방법에 의해 분류해 낼 수 있는 원소들은 19세기 말에 이미 거의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어떤 원소들은 과학자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20세기 와서야 발견되기도 했다. 발견된 원소의 수가 늘어나고, 이들의 성질이 밝혀지면서, 원소들이 가지는 성질에 여러 가지 규칙성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주기율표의 등장

원소가 가진 규칙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19세기 초반부터 시작됐다. 이때에는 이미 많은 원소들의 원자량과 원자가가 실험에 의해 결정돼 있었다. 이러한 원소들의 성질을 이용하여 서로 관련이 있는 원소들을 여러 개의 집단으로 분류하려는 노력이 프랑스, 독일의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마이어와 러시아의 멘델레예프의 시도였다.

마이어와 멘델레예프는 주기율을 정식화하여, 여러 원소의 성질은 원자량이 불어남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주기율표를 만들어 이러한 원소의 성질이 변화함을 나타냈다. 마이어와 멘델레예프가 독립적으로 만든 주기율표에는 아직 빈 자리들이 남아 있었는데, 그들이 빠진 원소들의 성질을 놀랄 만큼 정확하게 예견했다. 멘델레예프는 그의 주기율표에 빠져 있던 칼슘 다음의 원소와 아연 다음의 두 원소의 질량과 성질을 정확히 예언했다. 멘델레예프의 예언에 따라 1874년 갈륨이 발견됐고, 1879년에 스칸듐, 1885년에 게르마늄이 발견됐다.

이때까지 원소를 분류하는 데는 원자량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있었다. 그런데 1861년 크룩스가 분광법을 이용하여 탈륨을 발견한 이래 원소가 내는 스펙트럼은 원소의 여러 가지 성질과 함께 원소의 고유한 성질로 자리를 굳혀 가고 있었다. 원소가 높은 온도에서 내는 빛은 모든 파장의 빛이 아니라 원소에 따라 고유한 파장의 빛만을 내게 된다. 소금을 태우면 노란색 불꽃이 나오는 것은 나트륨이 내는 고유한 빛이 노란색의 파장과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소의 특성 스펙트럼은 마치 원소의 지문과 같아서 원소의 종류를 구별하거나, 새로운 원서를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1890년에 레일리는 여러 가지 기체의 비중을 측정하는 가운데 대기 속의 질소 비중이 화학적으로 만든 질소의 비중보다 크다는 것을 발견하고, 공기를 자세히 분석하여 공기 중에는 질소 이외의 새로운 기체가 소량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기체의 스펙트럼을 조사한 결과, 이 기체가 내는 스펙트럼은 그때까지 알려진 다른 어떤 기체의 스펙트럼과도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최초로 발견된 비활성 기체인 아른곤이었다. 그 후 램지가 헬륨, 네온, 크립톤, 크세논 등 비활성 기체를 발견했다. 비활성 기체의 발견으로 주기율표는 7족에서 8족으로 불어나게 되었고 완전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주기율표에는 아직 빈 자리가 남아 있었다. 이러한 빈 자리를 완전히 메우고 주기율표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자연을 이루고 있는 원자 가족들을 완전하게 우리에게 드러나게 한 사람은 영국의 물리학자 모즐리였다. 모즐리는 원소가 내는 특성 x선의 파장과 원자 번호 사이에 간단한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특성x선은 특성 스펙트럼과 마찬가지로 원소에 따라 파장이 달라지는 고유한 x선을 말한다.

그는 x선 분석을 이용하여 수소에서 우라늄까지 원소가 92가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란탄족 원소 15개(원자 번호 57~71)와 우라늄보다 가벼운 원소 7개가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 냈다. 그는 또한 원자량의 순서로 나열한 주기율표가 원자 번화의 순서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Ar과 K, Co와 Ni, Te와 I가 그런 원소들이었다. 이 원소들은 모즐리에 의해 제 자리를 찾게 되었다.

실제 원자 가족은 90개

대개의 독자들은 중·고등 학교 과학 교과서나 화학 교과서 맨 첫장이나 뒷장에 실려있는 주기율표와 이미 친숙해져 있을 것이다. 이 주기율표는 105가지 원소가 차례로 실려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인간이 발견한 원소가 105가지라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원소 가족이 105가지라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 시대부터 믿어져 오던 4원소설과 비교하면 물질의 최소단위라 할 수 있는 원소가족이 꽤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우주의 모든 물질이 겨우 105가지의 원소로 이루어 졌다고 생각하면 105가지나 되는 원소들이 꽤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105가지 원소도 모두 자연 상태로 존재 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에서부터 원자 번호가 92번인 우라늄까지는 wk연계에 존재하는 원소지만, 93 넵투늄부터 103번 하늄까지의 13가지 원소는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 인공으로 만들어 낸 원소이다.

그러나 원자 번호가 43인 테크네튬과 원자 번호 61인 프로메튬은 안정된 동위 원소를 지니고 있지 않아 92번 보다 앞에 있는 원소이면서도 자연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입자 가속기를 이용해 인공적으로 만들었다. 가장 수명이 긴 테크네튬의 동위 원소인 테크네튬98마저 반감기가 4백 20만 년 밖에 안돼 기나긴 지구의 역사를 견디어 내지 못하고 모두 붕괴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 가족은 90인 셈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가짓수가 실제로 몇 가지나 될 것인가는 과학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계에 안정한 형태로 존재하는 원소가 지금까지 발견된 것 외에 더 이상 있으리라는 데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러나 가속기를 이용하면 더 많은 원소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원자 번호가 100이상이 되면 원소들은 매무 불안정해서 몇 분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해 버린다. 아마 원자 번호가 더 큰 원소를 합성한다면 이 원소들은 불과 몇 초 이상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짧은 수명을 가진 것도 원소라고 할 수 있을지는 원소에 대한 정의의 문제가 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원소인 것만은 틀림없다. 일단의 과학자들은 원자 번호 114근처에 원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수명을 가진 무거운 원소가 존재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많은 실험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새로운 원소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곽영직/서울 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수원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알기 쉬운 과학 이야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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