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국어학습사전 / 소설(ㅇ~ㅈ)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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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의 정조(貞操) : 박종화 단편, 역사소설

아랑― 아랑은 백제의 새악시다. 아랑의 어여쁜 소문은 서울 북한 및 천호 장안에 자자하게 퍼졌다. 아랑의 남편인 도미는 솜씨 있는 목수로 그의 이름이 백제 서울에 유명했지마는, 그보다는 어여쁜 아내 아랑을 가진 복성스런(복 있어 보이는) 청년 도미로 이름이 더 높았다.

󰡐저 사람이 유명한 목수 도미야.󰡑 할 때보다도, 󰡐저 사람의 아내 아랑은 여간 어여쁜 것이 아니야. 왜 그 아내를 잘 두었다는 목수 도미란 사람 있지 않어? 바로 그 도미야.󰡑 듣는 데서나 아니 듣는 데서나 사람들은 이렇게 도미를 소개했다.

자기의 천직인 목수보다도 반드시 어여쁜 아내를 잘 두었다는……, 그것을 먼저 입초수(입)에 올렸다. 자기의 재주가 인정되어 세상에 유명해졌다는 것보다도 자기 아내의 아름다운 것 때문으로 해서 자기의 이름이 세상에 인정된다는 것은, 장인(손으로 물건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의 그다지 마음 즐길 일이 아닌 것이 보통 심경일 것이지마는 도미는 여기에 대해서 조금도 불복(불만)이 없었다. 불복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도미는 오히려 빙긋 웃어 입이 슬그머니 벌려지고 말았다. 무척 사람이 좋은 때문도 되지마는 나라에 제일 가는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는 행복스런 느낌이 도미의 가슴에 뻐근히 찼음이리라.

아닌게아니라 아랑은 무척 잘생긴 여자였다. 어여쁘다 해도 그대로 아기자기하게 어여쁜 편만이 아니다. 맑은 눈매하며 빚어 붙인 듯한 결곡(얼굴 생김새나 마음씨가 깨끗하고 여무져서 빈틈이 없음)하고도 구멍이 드러나지 않는 폭 싸인 아름답고 고운 코는 백제 여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수한 매력을 풍기는 미(美)지마는, 비둘기 알을 오뚝이 세워 놓은 듯한 동글 갸름한 얼굴판에 숱이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알맞은 눈썹과, 방긋이 웃을 때마다 반짝하고 드러나는 고르고 흰 이빨은 두껍지도 않고 얕지도 않은 하얀 귓불과 함께 홀로 아랑만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을 넋 잃게 할 매력이었다.

여기다가 아랑의 옷거리(옷을 입은 맵시)는 더욱 좋았다. 외로 여민 저고리 위의 날아갈 듯한 어깨판하며 거듬거듬 주름 잡은 눈빛 같은 흰 치맛자락엔 여위지도 않고 살찌지도 않은, 건강하고 젊음을 풍기는 탄력 있는 살결이 도마뱀처럼 물결쳐 흘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해서 아랑이 백제 서울에 제일 가는 미인이 될 수는 없었다. 아랑의 반듯한 이맛전 아래 고르게 벌여진 눈썹과 호수같이 맑은 눈매 근처에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러우면서도 서릿발같은, 사람이 감히 호락호락히 범하지 못할 맑고 맑은 기쁨이 떠돌았다.

여자란 흔히 아름다우면 음기를 품기가 쉬운 것이다. 그렇지 않고 처절하게 어여쁘다면 독기를 품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부드러우면서도 기품이 드러나고, 어여쁘면서도 결곡하기는 가장 드문 일이다. 억지로 우리가 구해 본다면 성스러운 관음 보살의 얼굴에서나 적이 이 고결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아랑을 한 번 본 사람은 백제 서울에 제일 가는 미인이라 떠들었고, 아랑을 한 번도 못본 사람이라도 떠도는 소문만 듣고 도미의 아내 아랑은 나라의 첫손을 꼽을 미인이라고 덩달아서 칭찬했다.

도미는 사실 행복스러웠다. 아내 아랑이 백제 서울 안에서 제일 가는 미인이 된다는 것도 사나이로 앉아서 즐거움의 하나지마는, 사실 아랑은 얼굴뿐만이 아니라 마음씨도 착하고 집안 일도 잘 보살폈다. 도미가 솜씨있는 목수로 나날이 예간다, 제간다 하고 으리으리한 대궐 이룩하는 일이나 대갓집 고래등 같은 기와집 짓기에 비두(첫째)로 뽑혀가는 동안은, 아랑은 길쌈을 짠다, 빨래한다, 온종일 부지런히 집안 일을 보살피기에 분주했다. 이리하다가 해가 설핏해서 서산에 걸릴라치면 또다시 부엌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저녁밥을 잦히고(밥이 끓은 뒤에 불을 약하게 하여 물이 졸아들게 하고) 된장찌개를 끓여서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땅거미가 질 무렵, 도미가 일터에서 일을 마치고 아랑이 혼자서 기다릴 생각을 하고는 걸음을 빨리하여 휘파람을 불면서 동구 앞으로 들어서면, 아랑은 물묻은 손을 행주치마에 씻으면서 부리나케 삽짝문(잡목의 가지로 엮어 만든 문짝) 밖까지 쫓아 나가서 쌍긋 흰 이빨을 드러내 웃으며,

󰡒도미! 어서 와요.󰡓

하고 반갑게 도미의 팔뚝을 끌어안는다. 이럴라치면 도미는 온종일 그립던 아랑이 반가워서,

󰡒아랑! 퍽 기다렸지?󰡓

하고 마주 아랑을 껴안으며 아랑의 그 맑은 눈을 정열이 타오르는 도미의 눈으로 쓰다듬어 위로해 준다. 이럴 때마다 아랑의 길고 검은 속눈썹에는 반가움과 행복감에 넘치는 안개같은 눈물이 촉촉히 서리곤 한다. 도미가 먼지를 털고 세수를 하고 일터 옷을 벗어서 고운 옷과 바꾸어 입은 뒤에 밥상을 받고 앉을라치면, 아랑은 상머리 맡에서 배추김치를 찢어 주고 식어 가는 된장찌개를 다시 데워다 준다.

󰡒밥 가지구 와, 우리 같이 먹어.󰡓

도미가 이렇게 말할라치면 아랑은 새색시같이 부끄러워했다.

󰡒이따 임자 상이 나거들랑.󰡓

󰡒이거 왜 밤낮 저 모양이야. 아랑이 밥 안 가지구 오면 나두 안 먹을 테야.󰡓

도미는 머슴애처럼 골을 내고 숟가락을 내던졌다. 흘기는 눈에는 담뿍 정열을 싣고. 아랑은 못 이겨서 봉당(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마루를 놓을 자리를 흙바닥 그대로 둔 곳)에 내려가 숟갈 하나와 밥 한 사발을 들고 왔다. 오기는 왔으나 밥사발을 도미의 소반 위에는 올려놓지 않는다. 방바닥에 놓고 조심조심 숟가락을 옮긴다. 아무리 남편의 앞일지언정 행여 입안의 밥알이 보일까 하고. 날마다 하루 한 때 이때부터가 도미와 아랑이 가장 행복을 느끼는 때였다. 밥상을 물리고 나서 도미와 아랑은 마주 앉아서 온종일 지낸 일을 서로 이야기했다.

󰡒도미, 오늘도 대궐 일 했소?󰡓

* 배경설화 : [삼국사기] 열전 ‘도미의 처’ 이야기에서 취재

* 배경

· 시간 : 백제 개루왕 때

· 공간 : 한강 유역

* 성격 : 설화적, 낭만주의적

* 등장인물

· 개루왕: 백제의 왕. 정치를 잘 한 인물이나 여색을 좋아함

· 도미 : 목수. 순박, 선량한 인물

· 도미의 처(아랑) : 아름답고 절개 굳은 여인. 기지로서 개루왕의 위협에 대처, 절개를 지킴.

* 1939년 [문장]지 발표


●아메리카 : 조해일 소설

󰏐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27> 조해일씨 `아메리카'

 

미국의 맨얼굴을 보기 위해 머나먼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도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곳에 가면 깨닫게 된다. 서울에서 정북방으로 20여㎞ 거리, 휴전선 이북의 원산을 향해 벋어 있는 경원선 국도와 철로가 나란히 지나가는 곳,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주한미군들과 몸 부대끼며 살아온 도시, 동두천이 그곳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에서 <함석헌>은 우리 겨레를 `학대받은 계집종'에 빗댄 바 있다. 그의 비유가 여유와 관조의 결과이기는커녕 냉정한 관찰의 산물임을 지나간 역사는 보여준다. 고려 때 원나라로 끌려간 공녀들에서부터 조선의 그 많은 논개들, 식민지 강점기의 일본군위안부들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여성들은 겨레의 굴종과 치욕을 온몸으로 감당해왔다. 게다가 그것은 이민족의 지배에서 해방된 뒤에도 끝나지 않았으니,

 

오늘날 양공주 또는 양색시로 불리는 이들이 그를 증거한다. 해방과 함께 이 땅에 들어왔으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진주를 확고히한 미군들은 이른바 기지촌을 형성시켰고 그것의 첫번째 필요조건은 몸 파는 여자들이었다.

 

팔려고 내놓은 한국 여자들의 몸뚱어리와 그것을 사고자 하는 미군 병사들의 욕정,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클럽으로 이루어지는 기지촌은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여러 시인․작가들이 그 세계에 눈을 주었음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시인 장영수․김명인씨가 각기 시집 <메이비>와 <동두천>에서 혼혈아와 기지촌 풍경을 다루었고, 소설가 천승세씨의 <황구의 비명>과 윤정모씨의 <고삐> 연작은 양공주 문제를 프리즘 삼아 한미관계의 예속적 본질을 까발렸다. 최근작으로는 복거일씨의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과 윤이나씨의 <베이비>가 기지촌과 양공주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1972년에 발표된 조해일씨의 중편 <아메리카>는 기지촌인 ㄷ읍 ㅂ리의 클럽에 스며든 대학 중퇴생의 눈에 비친 양공주들의 삶과 죽음을 소묘한다. 군을 제대한 뒤 학교에 복학하는 대신 당숙이 운영하는 클럽의 문지기로 취직한 `나'는 클럽을 드나드는 양공주들과의 성적인 일락(逸樂)에 기꺼이 몸을 맡기며 차츰 ㄷ읍의 사정에 눈을 떠간다.

 

무책임한 구경꾼이거나 기껏해야 본능에 몸을 맡긴 한 마리의 숫컷으로서만 자신이 몸 담고 있는 ㅂ리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에 변화가 오는 것은 우연히 목격한 양공주의 죽음으로 해서이다. 동거하던 여자를 밤무대 쇼에 나간다는 이유로 목 졸라 죽인 흑인 병사의 범죄를 겪고 그렇게 죽은 양공주의 장례식을 지켜본 그는 양공주들의 자치 조직인 `씀바귀회'를 찾아가 그들의 실상을 청취하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비록 그가 󰡒오늘 내게 그녀들의 춤은 이상하게도 삶에 대한 격렬한 거역의 몸짓처럼 보였다󰡓라며 시각의 변모를 토로하지만, 그것의 궁극은 󰡒가진 나라와 못 가진 나라 사이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갈등 내지는 소외관계라는 도식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무력감󰡓일 따름이다.

 

그같은 무력감의 결과일까. 소설의 결말은 홍수의 몫으로 돌아간다. 홍수는 클럽과 골목을 채우고 넘치지만, 기지촌 자체나 그것의 정치경제적 근거를 함께 쓸어가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명 구조용 고무보트를 타고 동네 골목에 나타난 미군들은 노약자들을 부대로 대피시켜 보살피기조차 한다.

 

그렇다면 미군의 자비와 잔혹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단 말인가. 같은 양공주 문제를 다룬 천승세씨의 <황구의 비명>이나 윤정모씨의 <고삐> 연작이 미군과 미국에 대한 <고발과 거부라는 명쾌한 결론>으로 나아가는 데 반해 상황의 한가운데에서 끝을 내버린 `아메리카'의 성취를 회의하는 시각도 있다. 그에 대해 작가는 󰡒현실에서 명쾌한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데 소설 속에서만 유독 매듭을 짓는 것도 작위적일 것󰡓이라며 󰡒나는 다만 기지촌과 양공주들의 실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가 `아메리카'를 비롯한 일련의 기지촌 소설들을 쓰게 된 데에는 부친이 동두천에서 클럽을 경영한 것이 계기가 됐다. 소설에 나오는 ㄷ읍 ㅂ리는 바로 작가의 부친이 클럽을 경영했던 동두천시 보산동을 가리킨다. 하지만 소설이 쓰여진 뒤 사반세기, 소설 배경으로부터는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96년 여름의 보산동은 소설에서 묘사된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보산동의 상징이었던 양공주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었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다. 한때 3천명 가까이에 이르렀다는 그 여자들은 지금은 겨우 30명 미만에 머물고 있다. 그 여자들이 출입하는 클럽주인들의 모임인 한국특수관광업협회 동두천지부의 이명석 지부장(46)은 󰡒현재 지부에는 33개 업소가 가입해 있지만, 실제로 영업을 하는 곳은 10여군데밖에 안 된다󰡓고 밝혔다. 달러의 위력이 현저하게 줄어든 데다 미군들에 대한 주민 감정이 나빠져서 그들이 전만큼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부대 밖으로 나오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흑인 병사에게 살해당한 동료를 단체로 장례지낸 `씀바귀회'의 모델인 민들레회 역시 회원 수의 격감으로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나마 주말 저녁에나 기지촌 분위기를 낸다는 보산동 골목의 평일 낮은 황구의 혓바닥만큼이나 늘어져 기신거리고 있었다. 인디언헤드니 맨해튼, 와일드캣, 뉴하우스, 리버티 따위의 영문 이름을 쓴 클럽이나 테일러, 사진관들이 오래 된 영화 세트처럼 꾸며져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활기와는 거리가 멀다. 땡볕이 내리쬐는 골목을 한동안 지키고 서 있어도 양공주로 짐작되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어슬렁거리는 사복 차림의 미군 병사들, 열살 미만의 흑인 혼혈아와 또래의 한국 아이, 무료한 표정으로 어서 밤과 주말이 오기 를 기다리는 듯한 동네 주민들이 골목을 오갈 뿐이다.

 

소설 속에서 흑인 병사에게 살해당한 양공주의 장례는 동료 양공주들의 집단적인 한풀이 의식과도 같이 치러진다. 소복한 여자들은 미군 부대 정문에서 노제를 지낸 뒤 부대 앞을 흐르는 신천의 다리를 건너 상패동 공동묘지까지 흙먼지 이는 길을 곡을 하며 나아간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졸(卒)한 양공주들은 동두천시 서쪽 상패동 공동묘지의 한켠에서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 `홍주리의 무덤, 면사포 한번 못 써보고' `양춘실의 무덤, 다음 세상엔 좋은 팔자 타고나기를' `박데비의 묘, 꺾인 꽃도 꽃이랍니다'…. 양공주들의 `경기'가 좋았던 시절만 해도 이런 묘비명이 적힌 나무 십자가를 흔히 볼 수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돌보는 이 없는 그 여자들의 무덤은 세월과 인정의 풍화작용에 씻기고 무너져 다시금 없을 무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아우를 위하여 : 황석영 단편 소설

뭔가 네게 유익하고 힘이 될 말을 써 보내고 싶다.

네가 입대해 떠나간 이제 와서 우울한 고향 실정이나 우리의 지난 잘잘못을 들어 여기에 열거해 놓자는 건 아니야.아무 얘기도 못해 주고 묵묵히 너를 전송했던 형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나는 우리가 지금쯤은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어떤 문제를 확실히 해두고, 또한 장래를 굳게 믿기 위하여 내 연애 이야기를 빌리기로 한다. 너는 십구 년 전에 내가 누구를 사랑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아마 놀랄 거다. 따져봐. 내 열한 살 때가 아니냐. 에이, 이건 오히려 형의 달착지근한 구라를 읽게 됐군, 하며 던져 버리지 말구 읽어주렴. 너 영등포의 먼지 나는 공장 뒷길들이 생각나니. 생각날 거야, 너두 그 학교를 다녔으니까. 아침마다 군복이나 물빠진 푸른 작업복 상의를 걸친 아저씨들이 한쪽 손에 반찬 국물의 얼룩이 밴 도시락 보자기를 들고 공장 담 아래를 줄이어 밀려가곤 했지. 우리 아버지두 그 틈에 있었을 거야. 참 그땔 생각하면 제일 먼저 까마중 열매가 떠오른다. 폭격에 부서져 철길 옆에 넘어진 기차 회통의 은밀한 구석에 잡초가 물풀처럼 총총히 얽혀서 자라구 있었잖아. 그 틈에서 우리는 곧잘 까마중을 찾아내곤 했었다. 먼지를 닥지닥지 쓰고 열린 까마중 열매가 제법 달콤한 맛으로 유혹해서는 한 시간씩이나 지각하게 만들었다. 먼지 나는 길, 공자의 담, 까마중 열매 다음에 생각나는 긴 땅에 반쯤 묻혀있던 노깡들이야. 사택 앞의 쓸쓸한 가로를 따라서 가죽나무가 서 있고, 나뭇가지에는 하늘소벌레가 살았고, 벽돌벽의 어지러운 선전문 자국들, 창고의 탄환 흔적, 그리고 인가 끝에 상두도가가 있었고, 실개천을 가로지르며 노깡들이 엇갈려 길게 누워 있었지. 노깡 속엔 우리가 그 무렵에 눈이 시뻘개서 찾아다니던 총알이 많이 나오곤 했었다. 총알을 찾으러 캄캄한 노깡 속에 들어갔다가 내가 기절했던 걸 어머니에게서 아마 들었을 거야. 애들이 그 속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며 전혀 접근을 꺼려하길래 어느날 나 혼자 들어갔지. 안은 아주 비좁구 캄캄했는데 물이 질퍽하게 괴어 있더구나. 손으로 더듬으며 중간까지 가보니까 예상대로 기관포 탄환이 많이 있더랬어. 나는 아이들의 찬탄과 선망을 독차지할 일을 생각하고 온통 가슴이 떨렸어. 탄창 사슬에 끼인 게 한 줄이나 되더라. 나는 정신없이 파구 또 팠지. 한참 동안을 파는데 꺼림찍한 기분이 들구 뭔가 손가락에 걸려 나오는거야. 나뭇조각인 줄 알았어. 돌보다는 가볍구 나무보단 좀 듬직하단 말이야. 그래 눈앞에 바짝 갖다 대구 들여다보니깐 뼈다귀야. 둥그런 관절두 달려 있는 진짜 뼈다귀 말이지. 이크...... 나는 그게 날 잡구 늘어지는 기분이더라. 양쪽 입구를 보니까 꼭 관솔 빠진 구멍만큼 보이는 거야. 소릴 지르다가 뻐드러졌어. 근처 실개천서 빨래하던 아줌마가 나를 끌어내줬단다. 어머니가 야단쳤어. "너 그런 데 들어가면 귀신이 잡아 먹는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어린애들이 그런 일루 호되게 놀라게 되면 잠잘 때 악몽을 꾸어서 식은땀을 흘리며 경기를 일으키는 거야. 내가 몸이 불편할 때 꿈을 꾸면 말이야, 언제나 그 노깡 속에 들어가 있는 거야. 어느 때는 그게 우리 영단 집의 시멘트 굴뚝 속이 되고, 피뢰침 달린 유리공장의 벽돌도가니 안이 되고, 시궁쥐가 많이 사는 공중목욕탕의 하수도 속이 되는 거야. 끝은 언제나 비슷하지. 양쪽 입구가 무너져, 해골바가지나 뼈다귀 손이 쑥 솟아올라서 내 머리털이나 발목을 말야 꽉 잡구 안 놓는 거야. 상두도가집 아이가 그 자리에 찾아가서 침을 세 번 뱉고 왼발로 세 번 구르면 된다기에 그대루 했는데두 여엉 무서운 기분이 가시질 않았어. 내가 일단 자기의 공포에 굴복하고 승복하게 되자, 노깡 속에서의 기억은 상상을 악화시켜서 나를 형편없는 겁쟁이루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 어떤 아름다운 분이 나타나 나를 훨씬 성숙한 아이로 키워줬지. 눈빛처럼 흰 여학생 칼라 뒤로 얌전히 빗어 묶은 머리를 길게 땋아 늘였고, 목소리가 노래하는 듯 고운 분이었어.우리를 위압하고 공포로써 속박하는 어떤 대상이든지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의 본질을 알아챈 뒤, 훨씬 수준 높은 도전 방법을 취하면 반드시 이긴다. 그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는 분명히 무언가를 배웠는데, 그 무렵엔 꼭 집어내서 지각할 수는 없었지. 이제 와 생각하니 그이는 진보(進步)의 의미와 사랑의 가치를 내게 가르쳐 주었던 거야.

 

* 감상 : 6.25 전쟁 직후의 초등학교 한 상급반 교실에서 벌어지는 풍경이 그려져 있다. 나이 많고 힘 좋은 학생들이 급장인 영래를 중심으로 학급을 장악한 채 갖가지 폭행을 자행한다. 대다수 선량한 학생들은 그 폭력에 당하고만 있다. 여기에 교생 실습을 나온 여선생님이 등장하는데 그녀는 어지러운 학급을 정돈해 가며 인간미가 넘치는 교실로 가꾸어 간다.

* 문체 : 1인칭 서간체 (군대에 간 아우에게 보내는 형의 편지 형식)

* 주제 : 폭력과 불의를 거부하는 진정한 용기

* 주제 : 폭력과 불의를 거부하는 진정한 용기

 


●앵무새 죽이기 : 하퍼 리 소설

 [문학과 영화]「앵무새 죽이기」···· [원작 하퍼 리 / 감독 로버트 멀리건]

미국문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인종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인종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하퍼 리(1926~)의 소설「앵무새 죽이기」를 읽게 된다. 1960년에 출판돼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미국의 인종문제를 다룬 소설들 중에서 어쩌면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뛰어난 명작일 것이다.

 

이 소설은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의 시골에 사는 <스카웃>이라는 여섯 살 난 소녀의 눈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스카웃은 두 살 때 엄마를 잃고 아빠 <애티커스>와 오빠 <젬>과 같이 살고 있다. 변호사인 아빠 애티커스는 백인여자 성폭행 혐의를 쓰고 억울하게 구속된 흑인 로빈슨의 변호를 맡아 그를 옹호함으로써 마을 백인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로빈슨의 무죄를 믿는 애티커스는 변호사로서 자신의 경력이 위태로워짐에도 불구하고 로빈슨을 백인들의 편견과 집단 린치로부터 구하려고 노력한다. 법정에서 애티커스는 로빈슨의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한다. 그러나 백인들로만 구성된 배심원들은 유죄평결을 내리고 절망한 로빈슨은 이송 중 도망치다가 사살되고 만다.

 

만일 거기에서 그쳤다면 「앵무새 죽이기」는 그저 또 하나의 감동적인 인종차별비판소설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하퍼 리는 로빈슨 사건과 몇가지 중요한 주제들을 병치시킴으로써 이 소설을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진 복합적이고도 격조높은 문학작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예컨대 스카웃의 이웃집에는 사람들이 정신병자라고 무서워하는 부 아저씨(영화에서는 로버트 듀발 분)가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와의 점진적인 우정을 통해 모르는 이웃에 대한 자신들의 두려움이 얼마나 근거없는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에 부 아저씨는 스카웃과 젬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한 아이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또 다른 세계에 눈뜨게 된다. 이 소설에서 <학교는 마을의 축소판이자 인간들의 소우주로 제시>되고 있다.

 

이 소설의 또 한가지 중요한 주제는 애티커스가 보여주는 <민주적인 아버지상>이다. 애티커스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며 모든 것을 설득과 대화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새사냥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앵무새를 쏘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말한다. <앵무새>는 물론 유색인이나 광인이나 빈자같은 죄없는「타자」를 상징한다. 불만스러운 아이들은 그러한 비폭력적이고 민주적인 아버지의 태도를 나약하고 비겁한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그들은 곧 아버지가 마을 최고의 명사수이며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앵무새 죽이기」(국내 개봉 제목은「앨라배마에서 생긴 일」)는 1962년에 영화화되었는데 로버트 멀리건 감독은 원작에 버금가는 수작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해아카데미 주연상과 각색상을 수상했고 감독상 작품상 여우조연상 후보로도 오른 이영화는 원작의 주제를 충실하게 살려냈으며, 영화 자체가 또 하나의 문학작품이라는호평을 받았다. 일부러 흑백으로 제작한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 애티커스 역의 그레고리 펙과 스카웃 역의 메리 배드햄의 뛰어난 연기였다. 전자는 부드러우면서도 사려깊은 아버지와 변호사의 역할을, 그리고 후자는 사내아이 같으면서도 섬세한 화자의 역할을 거의 완벽하게 연기해내고 있다.

 

「앵무새 죽이기」는 편견으로 가득 찬 어른들의 부끄러운 세계를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더욱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래서 60년대에 이책이 국내에 처음 번역되었을 때 역자는 「아이들은 알고 있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앨라배마에서 생긴 일」은 한국에서도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역시 스카웃처럼 죄없는 앵무새를 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앵무새 죽이기」는 어른들의 편견에 대한 아이들의 「고발장」이다. (김성곤)

 


●양반전(兩班傳) : 정조 때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 한문 풍자소설.

정선군에 한 양반이 살았다. 이 양반은 어질고 글읽기를 좋아하여 매양 군수가 새로 부임하면 으레 몸소 그 집을 찾아와서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 양반은 집이 가난하여 해마다 고을의 환자(還子)를 타다 먹은 것이 쌓여서 천 석이 되었다.

강원도 감사가 군읍을 순시하다가 정선에 들러 환곡의 장부를 열람하고 크게 노여워 하여

“어떤 놈의 양반이 이처럼 군량을 축냈단 말이냐?”

하고, 곧 명해서 그 양반을 잡아 가두게 했다.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힘이 없는 것을 딱하게 여기고 차마 가두지 못했지만 무슨 도리도 없었다. 양반 역시 밤낮 울기만 하고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중략)

군수는 양반이 환곡을 모두 갚은 것을 놀랍게 생각했다. 군수가 몸소 찾아가서 양반을 위로하고 또 환자를 갚에 된 사정을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 양반이 벙거지를 쓰고 짧은 잠방이를 입고 길에 엎드려 ‘소인(小人)’이라 자칭하며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서 부축하면서

“귀하는 어찌 이다지 스스로 낮추어 욕되게 하시는가요?”

하고 말했다. 양반은 더욱 황공하여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엎드려 아뢴다.

“황송하오이다. 소인이 감히 욕됨을 자청하는 것이 아니오라, 이미 제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았습지요. 동리의 부자 사람이 양반이올습니다. 소인이 이제 다시 어떻게 전의 양반을 모칭(冒稱)해서 양반행세를 하겠습니까?”

군수는 감탄해서 말했다.

“군자로구나 부자여! 양반이로구나 부자여! 부자이면서도 인색하지 않으니 의로운 일이요, 남의 어려움을 도와 주니 어진 일이요, 비천한 것을 싫어하고 존귀한 것을 사모하니 지혜로운 일이다. 이야말로 진짜 양반이로구나 그러나 사사로 팔고 사고서 증서를 해 두지 않으면 송사(訟事)의 꼬투리가 될 수 있다. 내가 너와 약속을 해서 군민으로 증인을 삼고 증서를 만들어 미덥게 하되 본관이 마땅히 거기에 서명할 것이다.”

건륭 10년 9월

위에 명문은 양반을 팔아서 환곡을 갚은 것으로 그 값은 천 석이다. 오직 이 양반은 여러 가지로 일컬어지나니, 글을 읽으면 가리켜 사(士)라 하고, 정치에 나아가면 대부(大夫)가 되고,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이다. 무반(武班)은 서쪽에 늘어서고 문반(文班)은 동쪽에 늘어 서는데, 이것이 ‘양반’이니 너 좋을 대로 따를 것이다.

야비한 일을 딱 끊고 옛것을 본받고 뜻을 고상하게 할 것이며, 늘 오경만 되면 일어나 황(黃)에다 불을 당겨 등잔을 켜고 눈을 가만히 코 끝을 보고 발꿈치를 궁둥이에 모으고 앉아 동래(東來)박의(博議)를 얼음 위에 박 밀 듯 왼다. (중략)

이와 같은 품행이 양반에 어긋남이 있으면, 이 증서를 가지고 관에 나와 변정할 것이다.

성주 정선군수 화압(花押). 좌수 별감 증서

이에 통인이 탁탁 도장을 찍어 그 소리가 엄고 소리와 마주치매 북두성이 종으로, 삼성(參星)이 횡으로 찍혀졌다.

“양반이라는 게 이뿐입니까? 나는 양반이 신선 같다고 들었는데 정말 이렇다면 너무 재미가 없는걸요. 원하옵건대 무어 이익이 있도록 문서를 바꾸어 주옵소서.”

그래서 문서를 다시 작성했다.

“하늘이 백성을 낳을 때 넷으로 구분했다. 사민(四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이 사(士)이니, 이것이 곧 양반이다. (중략) 진사가 나이 서른에 처음 관직에 나가더라도 오히려 이름있는 음관(蔭官)이 되고, 잘 되면 남행(南行)으로 큰 고을을 맡게 되어, 귀밑이 일산(日傘)의 바람에 희어지고, 배가 요령 소리에 커지며, 방에는 기생이 귀고리로 치장하고, 뜰에 곡식으로 학(鶴)을 기른다. 궁한 양반이 시골에 묻혀 있어도 무단(武斷)을 하여 이웃의 소를 끌어다 먼저 자기 땅을 갈고, 마을의 일꾼을 잡아다 자기 논의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너희들 코에 잿물을 들이붓고 머리끄덩을 희희 돌리고 수염을 낚아채더라도 누구 감히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부자는 증서를 중지시키고 혀를 내두르며

“그만 두시오, 그만 두어. 맹랑하구먼. 나를 장차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인가.”

하고 머리를 흔들며 가 버렸다.

부자는 다시 양반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환자(환곡) : 고을 사창에서 백성에게 곡식을 꾸어주던 제도

-모칭 : 성명을 거짓으로 꾸며댐

-건륭 : 청나라 연호.(1745년, 영조 21년)

-동래박의 : 송나라 여조겸이 지은 책. <춘추좌씨전>에 대한 사평(史評)임

-화압 : 손으로 사인(sign)함

-남행 : 과거에 의하지 않고 문벌을 따라 벼슬을 내림

* 감상 : 신분 질서가 해체된 조선 후기에, 양반이 양반답지 못한 현실을 개탄하고 풍자하고 있다. (양반 계층 자체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1차 작성 양반 문건은 형식과 가식에 얽매여 있는 양반들, 즉 무위도식하며 공허한 관념에 얽매여 비생산적 계층으로 남아 있는 모습을 희화화했고, 2차 작성 문건은 양반들이 자행한 작태를 비판하고 있다.

 

* 사상적 배경 : 실사구시(實事求是)

* 성격 : 풍자적

- 풍자대상 : 무위도식하는 무능한 양반, 분수없이 신분 상승을 꾀하려는 상인계층

* 특징

① 몰락 양반의 위선적 행동을 묘사

② 평민 부자의 새로운 인간형 제시

③ 실사 구시의 실학사상을 반영함

④ 양반의 전횡을 풍자적으로 비판함

* 주제 : 양반들의 무기력하고 위선적인 생활에 대한 비판과 풍자.

* 출전 : [방경각외전]

 


●어둠의 혼 : 김원일 소설

아버지가 잡혔다는 소문이 온 장터 마을에 좍 깔렸다. 아버지는 어제 수산 장터에서 붙잡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젯밤 진영(進永) 지서로 묶여 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밤에 아버지가 총살당할 거라고들 말했다. 지서 뒷마당 웅덩이 옆에 서 있는 느릅나무에 칭칭 묶여 총살당할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선바위산 묘지골로 끌려가서 총살당할 거라고들 떠들었다.

 

병쾌 아버지를 포함해서 아버지와 같은 짓을 했던 마을 청년들이 이미 일곱 명이나 총살을 당했기 때문에 아버지도 죽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아버지는 한줌의 연기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게다. 그 사라진 연기를 다시 모을 수 없는 것같이 이제 우리 오누이들은 아버지라고 불러 볼 사람이 없게 된다. 그것이 슬플 뿐, 다른 생각은 안 난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이태 넘어 늘 집에 없었으니깐. 산도둑같이 텁석부리로, 또는 선생처럼 국방복을 입고 문득 나타났다 잽싸게 사라져 버리는 요술장이 아버지. 이제 아버지의 그 요술도 끝이 나고 말았다. 무엇을 위한 요술인지 알 수 없는 요술, 그 요술의 뜻을 내가 미처 깨치기도 전에 아버지가 죽는다는 게 슬플뿐, 사실 나는 지금 그보다 더 큰 괴로움에 떨고 있다. 굶주림이다. 배가 고프다. 지독히 고프다. 그러나 아직 어머니는 안 온다. 보리쌀을 빌리러 나간 지가 벌써 언젠데. 두 시간? 그쯤은 되었을 거다. 그렇다, 내가 영어 숙제를 하고 있을 때 나갔으니 이 집 저 집 너무 많이 빌려다만 먹었는데 누가 또 빌려줄려구.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이모네 집으로 터덜터덜 갔을 거야. 그럼 이모는 틀림없이 어머니한테 욕설을 퍼부을 거야. 그러나 이모는 마음이 착하니 금세 아이구 불쌍타 새끼들이 불쌍타 하며 쌀 한 되쯤, 아니면 보리쌀 두 되쯤은 빌려줄 테지. 그럼 내일까지는 염려없다. 죽을 쒀 먹는다면 모레까지는 걱정없다. 이모네 집에서는 많이도 빌려다 먹었다. 그걸 언제 다 갚을까. 지금은 아무 쓸데도 없는 아버지긴 하지만, 아버지마저 총살을 당하고 만다면 누가 다 갚게 될까. 아, 나도 이젠 아버지가 없는 아이가 되는구나. 그러데 아버지는 왜 그 짓을 하게 되었는지 몰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고 무서워들 하는 그 짓을 왜 하고 다녔는지 몰라.

 

몇 해 전, 해방이 되던 날만 해도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다. 쨍쨍 내리쪼이는 햇빛 아래서 목이 터져라고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언제쯤부터인가? 그렇다, 재작년 겨울부터 아버지는 사람의 눈을 피해 숨어서 다니기 시작했었지. 밤을 낮삼아 다니기 시작했었지.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간 나타나고, 나타났다간 사라져 버리곤 했었지.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맡아서 그러고 다녔는지는. 마을 사람들이 아버지를 두고 쑤군쑤군했고, 순사들이 자주 우리집을 들랑거렸지만 재작년 겨울부터 그들은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인지, 누구를 시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쌀 한 톨 생기지 않는 일에 목숨을 걸고 산길을 타고 다닌 아버지의 요술을 어쩜 다른 사람은 알 필요가 없다. 아버지가 하는 짓은 스스로의 문제라는 듯 나에게는 물론 어머니나 이모부에게조차 알리지를 않았으니깐. 꽃이 왜 피는지, 꽃은 향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듯 이 세상에는 남이 모를 일이 너무 많으니깐.

 

국민학교 이학년 때던가. 나는 아버지와 산책을 나갔던 적이 있었다. 안개도 자욱한 초여름의 이른 새벽이었다. 이슬에 바짓가랑이를 쫄닥 적신 채 아버지와 나는 들길을 거닐었다.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았고, 잠으로부터 트이기 시작하는 나의 귀는 종달새의 자랑스러운 재잘거림을 듣고 있었다. 아버지는 물기 맑은 풀잎에서 폴짝 뛰어오르는 한 마리의 청개구리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아버지의 손톱 만한 그 놈의 빛 고운 연초록 등판은 윤기가 쪼르르 흘렀고, 얇고 흰 뱃가죽은 놀람 탓인지 연신 팔닥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요 꼬마 놈은 매일 아침 하루도 쉬지 않고 높이뛰기 연습을 한단 말이야. 첫날은 반 뼘을 뛰지만, 이튿날은 한 뼘을 뛰거든. 다음날은 한 뼘 반을 뛰고 그 다음날은 두 뼘을 뛰고 그 다음날은……. 아버지, 그럼 나중에 하늘에 닿겠네요? 아니지, 하늘에 닿아 보려고 뛰지만 결국 하늘에는 닿지 못하지. 왜냐하면 하늘은 끝이 없으니까. 그럼 죽을 때까지 뛰겠네요? 그렇지, 죽는 날까지 매일 뛰지. 참 불쌍한 놈이네요? 아냐, 자기가 뛰고 싶어 뛰니깐. 왜 뛸까요? 그건 아버지도 몰라.

 

아, 무섭다. 땅거미가 깔린다. 곧 어두워질 것이다. 어둠은 무섭다. 밤이 싫다. 벌써부터 내일 새벽이 기다려진다. 선바위산 뒤에서 해가 솟아오르고 날이 훤해질 때까지 나는 잠을 설칠 것이다. 그래서 날이 밝으면 왜 내가 어릴 적 그런 거짓말을 했냐고 묻기도 전에 아버지는 죽고 없을 것이다. 청개구리 말이다.그런데 어머니는 왜 안 올까. 지서에 갔을까.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나서 울고 있을까. 아니야. 지서에는 가지 않았을 거야. 어머니는 늘 아버지 험담만 퍼부었으니 지서에 가지는 않았을 거야. 조금 전만 해도 처자식 요렇게 고생만 시키니 죽어도 싸다고 오히려 악담만 퍼붓고는 휭하니 나갔으니 지서에 갔을 리가 없다.

* 감상 : 좌익 활동을 하다 경찰의 추적을 받는 갑해의 아버지는 가족을 돌보지 못해 갑해는 어머 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간다. 식량을 구하러 나간 어머니를 찾으러 나간 ‘나’는 아버지가 체포되 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는 결국 사형을 당한다.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 한 아버지의 죽음과 가족 공동체의 몰락을 보여 줌으로써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폭로한 작품 이다.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주제 : 이데올로기의 허구성 고발과 비참한 삶의 극복 의지

 


●어머니 : 한승원 소설 ---  <한(恨)>, <서라벌예대 문창과>

 

1.

미역 장사를 해야 되겠다고 이를 악문 채, 왼팔과 오른손에 든 지팡이를 부지런히 내저으며 윗마을로 들어서는 늙은 어머니는, 비루먹은 황소 등허리의 털 빠진 살갗처럼 희끗희끗 쌓인 앞산의 눈을 쓸어 검은 들판을 건너온 찬바람이, 마을 앞 사장의 늙은 팽나무 가지를 쌩 스치고, 흰 가는 베 치맛자락과 반백의 머리털을 쥐어뜯을 듯이 싸고돌았을 때, 쿨룩하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시작되자, 차분히 쪼그리고 앉아 윗몸을 움츠리며 연거푸 쿠울룩 터뜨려 놓았다. (발단부)

 


●엄마의 말뚝 : 박완서 연작소설, 이상문학상 수상작

󰏐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15>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강화/글 최재봉)

 

아지랑이 아롱대는 봄 들이다. 황토색 논과 밭은 또 한 해의 농사를 위해 일제히 갈아엎어져 있고, 곳곳의 틈바귀마다에는 스스로 아름다운 봄꽃들이 자랑처럼 고개를 꼿꼿이 들고 서 있다. 팔뚝을 걷어부치거나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들판 이곳저곳에서 허리를 굽힌 채 일에 열중이고, 널찍한 들길로는 트랙터며 트럭이 오고 간다. 이 분주하고도 평화로운 풍경 위로 갈매기 한 마리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으며 선회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북성리 758 OP(관측소)에 설치된 망원경에 잡힌 이 광경은 임진강과 합수해 서해로 흘러드는 폭 2㎞의 한강 하구 너머로 보이는 개성직할시 개풍군 광덕면 일대의 것이다. 발돋움하고 손을 내밀면 그만 손끝에 잡힐 것처럼이나 가깝게 보이는 이 한 폭 풍경화는 그러나 인간의 수치로 계량할 수 없는 아득한 분단의 강물 너머에서 꺼질 듯 가물대고 있다. 첫눈에 평화와 풍요의 훈김을 내뿜던 그 풍경은 그곳이 북한 땅이라는 인식이 개입하자 기아와 폭동 따위 살벌한 단어들로 덧씌워지고 만다. 변변한 나무 한 그루 없이 헐벗은 야산들과 `주체조선' `반미' 등의 구호가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한반도적 초현실성으로 무장한이 모든 풍경에 눈을 주던 작가 박완서(65)씨는 󰡒반세기 동안이나 가지 못한 고향땅이 이토록 지척에 보인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박완서씨의 고향은 개풍군 청교면 박적골. 강 건너편 기슭에서 8㎞ 정도 들어간 마을이다. 관측소 관할 장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던 그는 󰡒그래요. 예전에는 개풍에서 강화까지 친척들을 찾거나 일을 보느라 걸어다니기도 했죠. 조오기 당두포리 나루에서 이쪽으로 배를 건너는 것말고는…󰡓이라며 사뭇 상기된 표정을 짓는다.

 

󰡒오빠의 살은 연기가 되고 뼈는 한 줌의 가루가 되었다. 어머니는 앞장서서 강화로 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우린 묵묵히 뒤따랐다. 강화도에서 내린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서 멀리 개풍군 땅이 보이는 바닷가에 섰다. 그리고 지척으로 보이되 갈 수 없는 땅을 향해 그 한 줌의 먼지를 훨훨 날렸다.󰡓

 

박완서씨의 자전적 연작 `엄마의 말뚝․2'에서 어머니가 가루로 변한 오빠의 유체를 들고 와 강물에 뿌리던 곳이 이 어름이었을 것이다. 남달리 똑똑하고 심성 또한 무던하여 알토란 같았던 외아들이 전쟁의 와중에 개죽음을 당하고 난 뒤 그 혼백이나마 고향땅으로 흘러가도록 물가에 나와 뼛가루를 날리는 어미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어머니는 한 줌의 먼지와 바람으로써 너무도 엄청난 것과의 싸움을 시도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그 한 줌의 먼지와 바람은 결코 미약한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머니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간, 어머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단이란 괴물을 홀로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엄마의 말뚝' 연작은 모두 세 편으로 되어 있다. 연작의 첫편은 향리인 박적골에서 하찮은 복통으로 남편을 여읜 어머니가 어린 오누이와 함꼐 서울로 출분해서부터 억척과 의지로 마침내 집 한 채를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애초에 고향을 떠날 때의 거창한 포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대문 밖 현저동(지금의 무악동) 산꼭대기에 여섯칸짜리 누옥을 장만한 어머니는 무량한 감개를 이렇게 토로한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

 

작가에게 이상문학상을 안겨준 `엄마의 말뚝․2'는 이 연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쟁과 오빠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해방 뒤 한때 좌익에 가담했다가 전향한 오빠는 삼팔선을 넘어 물밀듯이 남진해온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있는 동안 이웃의 고발로 끌려가서는 의용군으로 입대한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과 9․28 수복에 이어 다시 중국군의 개입으로 인한 1․4 후퇴가 시작될 즈음 육신과 정신이 다같이 망가진 오빠가 󰡒흉몽처럼󰡓 돌아온다. 시민증이 없는 오빠 때문에 남들의 피난대열에 합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민군의 재입성을 앉아서 기다릴 수만도 없던 일가는 예전에 살던 현저동 산꼭대기의 한 집을 피난처로 정해 틀어박혔으나, 오빠는 결국 인민군에게 발각돼 죽임을 당한다. 소설은 40년 가까이 애써 덮어두고 있던 그 끔찍한 기억이 수술을 위한 마취의 부작용으로 어머니의 머릿속에서 곱다시 되살아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연작의 마지막 편은 이 마취 사건 뒤로도 7년을 더 살다 간 어머니가 아들과 마찬가지로 화장돼 강물에 뿌려지길 바랐던 당신의 소망과는 달리 서울 근교의 공원 묘지에 묻히기까지의 이야기이다.

 

명민하고 헌칠하여 어릴적 영웅이었던 오빠를 앗아간 전쟁의 악의(惡意)라는 모티브는 박완서 소설의 가장 커다란 화두가 됐다. 이미 등단작인 장편 <나목>에서부터 변형된 형태로 오빠의 죽음을 다루었던 작가는 그뒤 `부처님 근처'와 `카메라와 워커'를 비롯한 단편들, 그리고 가장 최근작인 장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 줄기차게 동일한 모티브를 반복, 변주하고 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한 생때 같은 청년의 죽음이 한 가족의 아픔과 고난으로 그치지 않고 민족 전체의 비극을 대표하게 되기 때문이다.

 

솔권하여 서울로 온 작가의 어머니가 마당이 세모꼴이라서 괴불마당집이라 불린 여섯칸짜리 집을 마련한 현저동 산동네는 거센 재개발 바람에 휩쓸려 있다. 대부분의 집들은 이미 철거돼 벽돌과 베니어 합판, 녹슨 철제 캐비닛, 부러진 우산대, 스티로폼 조각 따위로 어지럽다. 옛 집들이 뭉개진 자리에서는 포클레인이 새롭게 터를 닦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무악 제1구역 세입자대책위원회'가 쇠파이프와 폐타이어를 이용해 세운 감시용 망대가 을씨년스럽다. `뭉치면 주거 해결 흩어지면 살 곳 없다' `무주택 서민 목 조이는 개발정책 개혁하라'는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는 개발과 정비에 가린 서민들의 아픔을 절규한다. 어지러운 골목길을 한동안 기웃거린 끝에 마침내 옛 집터를 찾아낸 작가는 󰡒우리 집 앞의 `부장집'은 아직 남아 있는데 괴불마당집은 이렇게 무너졌네요󰡓라며 무너진 대문 옆 주춧돌 자리쯤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울에서 김포를 거쳐 강화에 이르는 길은 곳곳의 도로확장공사 덕분에 평일임에도 극심한 체증을 빚었다. 마침내 강화대교를 건너서는 강화 읍내를 지나 북쪽으로 채 10분을 못 가서 송해면 당산리 호박골 민통선 검문소를 만난다. 이곳은 철원과는 달리 민통선 안쪽에도 자연부락들이 산재해 있으며 군내 버스도 수시로 검문소를 들락거린다. 그렇더라도 인마와 탈것의 진행은 북쪽 해안의 철책선 너머로는 더 이어지지 못한다. 물위를 건널 배가 없어서가 아니다. 분단의 부자연을 깨칠 가슴이 없음이다.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 박완서 소설

󰏐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88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부군에 대한 간병기를 소설로 재구성한 것임

‘우리 집 오동나무 이층장 위칸에는 남자 모자 여덟 개나 들어있다’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항암제의 투여로 남편의 머리카락이 한움큼씩 빠지면서 사들인 여덟 개의 모자가 작가로 하여금 남편과 나누었던 이별의 의식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일년은 참으로 아까운 시절이었다. 죽을 날을 정해놓은 사람과의 나날의 아까움을 무엇에 비길까. 애끓는듯한 애달픔이었다. 세월의 흐름이 빠른 물살처럼 느껴지고 자주 자주 시간이 빛났다. ’

소설은 결국 남편의 환갑날 찍은 부부 사진에서의 작가를 오려내고 남편의 영정을 만들어야 했던 순간에 이르고 여덟 개의 모자만이 작가에게 수없이 많은 말을 건네면서 끝을 맺는다.

 


●역마(驛馬) : 김동리 단편 소설 --- 󰃫 <운명론>

그의 발 앞에는, 물과 함께 갈리어 세 갈래로 나 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 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퉁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위를 굽이 돌아 구례쪽을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쪽을 등지고 하동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서,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그의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이 되어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결말부)

* 줄거리 : 남사당(체장수)과의 하룻밤 인연으로 태어난 옥화는 다시 떠돌이 주인공인 중과의 인연 으로 성기를 낳는다. 성기는 태어나면서 역마살을 운명적으로 갖게 된 것이다. 그 역마살을 풀 어주려고 옥화는 체장수가 데리고 온 딸(계연)과 인연을 맺도록 하나, 계연이 자기의 이복 동생 이자 성기의 이모가 됨을 알게 된다. 단순히 보면 사건들이 우연성의 남발이라고 여길 수 있으 나, 김동리는 이를 운명론으로 이끌어 나간다. 작중 인물들의 삶은 작가의 주제 의식에 따라 운 명의 테두리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 등장인물

주모 - 체장수(젊은 시절의 한 남사당) - 어떤 여인

▼ ▼

떠돌이 중 - 옥화 - 계연(옥화 이복동생, 성기 이모)

성기

* 갈래 : 순수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

* 성격 : 운명적

* 배경 : 전라, 경상 접경지역(화개장터)

* 주제 : 역마살(驛馬煞)이라는 인간의 운명론에 바탕을 둔 인생 순응

* 출전 : [백민(白民)](1948)

 


●오발탄(誤發彈) : 이범선 소설

“X경찰서 앞입니다.”

철호는 눈을 떴다. 상반신을 번쩍 일으켰다. 그러나 곧 또 털썩 뒤로 기대고 쓰러져 버렸다.

“아니야. 가.”

“X경찰서입니다. 손님.”

조수 애가 뒤로 몸을 틀어 돌리고 말했다.

“가자.” 철호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어디로 갑니까?”

“글쎄 가!”

“하 참 딱한 아저씨네.”

“··············.”

“취했나?”

운전수가 힐끔 조수 애를 쳐다보았다.

“그런가 봐요.”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운전수는 기아를 넣으며 중얼거렸다. 철호는 까무룩히 잠이 들어가는 것 같은 속에서 운전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멀리 듣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혼자 생각하는 것이었다. ‘ ···········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아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

철호는 점점 더 졸려 왔다. 다리가 저린 것처럼 머리의 감각이 차츰 없어져 갔다.

* 감상 : 전쟁 뒤 고향을 떠난 월남 피난민 가족의 비참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뿌리뽑 힌 자들의 가난과 고통, 그리고 편안한 삶을 방해하는 비정한 현실을 심도 깊게 묘사하고 있다.

 

󰃚 제목의 상징성으로 거리가 먼 것은 ? ❹

① 인물의 상황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② 인물의 희망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준다.

③ 작품의 주제 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❹ 주인공의 운명에 대한 체념의 심리이다.

⑤ 주인공의 현실에서의 고통을 의미한다.

 

󰏐 오발탄에 대한 평가 (김현, ‘소시민의 한계)

짙은 서정적 정취를 밑바닥에 깐 회상적 취향. 얼마되지 않는 봉급에 뿌리혹박테리아처럼 다닥다닥 매달린 식구들을 즐겨 보여주는 그의 소시민에 대한 완강한 집착, 그러면서도 양심이라는 가시를 끝내 빼버릴 수 없는, 아마도 틀림없이 기독교적 교육의 잠재인 듯한 도덕률, 이런 모든 그의 특성은 <오발탄>에서 희귀하리만큰 완벽한 예술적 환치를 거두고 있다.

 

󰏐 [영화 100년 100편] <42> 오발탄

 

<오발탄>은 1960년에 만들어져 1961년에 상영되었다. 5․16 쿠데타 세력에 의해 상영이 중단되었다가 1963년에 다시 상영되었고 이후 20여년이 지나 이 영화는 다시 떠오르게 되었는데, 이러한 복권 아닌 복권은 한국 영화의 굴곡과 비슷한 그래프를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80년대 세대'에 의해 <오발탄>은 다시 대중들 앞에 나타났고, 이제는 비디오 가게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틈만 나면 󰡒가자󰡓고 외치는 늙은 어머니, 상이군인인 동생 영호, 만삭인 아내와 어른들을 믿지 않는 딸, 양공주가 된 여동생, 신문팔이를 하는 막내동생 그리고 주인공 철호는 언덕바지에 있는 마치 영화 세트 같은 판잣집에서 살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꿰뚫고 있는 것은 바로 `전쟁'이다. 환경과 심성의 뒤틀림은 전쟁으로 비롯된 것이며,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없다. 60년대 한국영화의 놀라운 포착이다.

 

비록 이범선의 원작에 기대고 있긴 하지만 유현목이 자기 작품에서 포착한 것은 문학적 서술이 아니라 영화적 표현, 에이젠슈테인에 기대서 말하자면 유기성과 파토스(정념)였던 셈이다. 유현목은 전쟁이 휩쓸고 간 서울의 바지런함 속의 공허, 공허 속의 실낱같은 희망, 희망의 좌절 등을 차례차례 그려가고 있다. 이런 순차적 배열은 계획적인 주제전달로서 유기성을 획득하고 그 결과 치열한 정서가 폭발한다.

 

멀쩡한 신사복 사내가 치통이 있으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동생이 양공주가 된 사연과 동생 영호의 은행 강도짓이라든가 딸의 불신 등을 이해하는 것 또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주요 배경인 집안을 비춘 화면구도와 빛의 명암 그리고 배우들의 동선과 그것을 잡은 카메라 렌즈의 깊이 등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공을 좀 들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불협화음이 일어난다. 반항아 영호(최무룡扮) 등이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배경과 몸짓, 집안 실내 배경의 서구적 구도 등은 미학적으로는 완결성을 갖추고 있지만 낯설게 보인다. 이 낯설음은 서구 영화를 기준으로 하면 낯익은 것이고, 우리 상황으로 보면 낯선 것이다. 유현목은 안의 고민을 바깥 것을 동원하여 드러내려 하였고 그럼으로써 `근대영화'에 다가섰던 것이다. 어디로 갈것인가. 유현목의 발걸음은 갈팡질팡한다. 죽은 아내가 있는 병원? 동생이 갇힌 경찰서? 어머니가 있는 집? 꼭 그만큼 그는 방황한다. 감정의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영화? 네오 리얼리즘? 몽타주? 할리우드 또는 유럽의 대중 영화? 결국 유현목은 결정하지 못한다.

 

단지 택시기사가 󰡒나참,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군…󰡓하고 불평할 뿐이다. 이렇게유현목은 단역의 입을 빌려서 영화를 마감하였다. 꼭 그만큼 유현목은 전쟁과 서울을 놀랍도록 날카롭게 묘사하지만 그 고민 방식은 어딘가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오발탄>의 좌표는 한국 현실이라는 수직선과 `빌려온 근대영화적 고민'이라는 수평선 위에서 찍힌다. 수직으로는 한없이 올라간 지점이며 수평으로도 멀리 나아간 지점. 물론 수평의 마이너스 영역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추앙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 될 때, <오발탄>은 다시 부활할 것이고 당분간 혹은 오랫동안 한국 최고의 영화라는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손창섭 소설 <비 오는 날>

 


●오분간(五分間) : 김성한 소설

프로메테우스가 코카서스의 바윗등에서 녹슨 쇠사슬을 끊은 것은 천사가 도착하기 1분 전이었다. 2,000년을 두고 비바람을 맞는 동안 그는 모진 고난 속에서 자유를 창조하였다. 쇠사슬을 끊은 것은 결코 자유가 그리워서 한 일이 아니었다. 당초에 그렇게도 지긋지긋이 밉살스럽던 쇠사슬도 2,000년의 고난을 같이한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정다움을 느끼게 하였다. 그저 호기심에서 한번 툭 채어본 것이 끊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그 자신으로서는 쇠사슬은 결코 자유와 속박의 경계선이 아니었다. 장구한 세월을 두고 쇠사슬과 겨룬 끝에 쇠사슬을 짓밟는 논리를 배운 것이었다.

그러기에 쇠사슬이 썩은 새끼 모양으로 끊어진 후에도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2,000년의 과거는 바윗등에 한 개 움직일 수 없는 무엇으로 결정(結晶)되어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신께서 지금 당장 올라오시랍니다.”

소리도 없이 나타난 천사는 생긋 웃으면서 애교를 떨었다. 2,000년만에 처음 보는 이 모습에도 그는 놀라지 않았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뚫어지게 보다가 그는 물었다.

“얘, 너 기집애냐, 사내냐?”

“아이 참, 신께서 올라오시래요.”

“기집애냐, 사내냐 말이다……”

“천사에 무슨 성별이 있어요? 그건 지상의 기준이에요.”

“지상의 기준?”

프로메테우스는 한걸음 다가서 얼굴을 천사에게 부딪칠 듯 들이대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 지상의 기준으로 너는 무어냐 말이다.”

“남자도 여자도 아니에요.”

“흥 그럴 거다. 너 따위 중성이 그 자를 둘러싸구 있으니까 죽두 밥두 안 되지 뭐냐 말이다.”

“전 그런 건 몰라요. 신께서 오시라는데 빨리……”

“응, 알았다. 오라구 해서 갈 내가 아니다. 고기를 많이 먹구 얼마나 살쪘나, 그렇잖아두, 한번 꼬락서니를 보려던 참에 잘 됐다.”

“그런 천벌 맞을 소리! 고기라군 냄새만 맡아두 질색이신데.”

프로메테우스는 돌아서 손가락으로 멀리 벌판을 가리켰다.

“얘, 기집애야!”

“뭐라구? 저더러 기집애라구?”

“내 눈에는 틀림없는 기집애니까 기집애라구 하는 거 아냐?”

“프로메테우스가 기집애라면 천사두 기집애 될까?”

“땅 위에 내려와서까지 주둥아릴 맘대루 놀리다간 큰코 다칠 줄만 알아. 여기는 내 땅이란 걸 알아야지. 일찍이 너의 나라에서는 달이여 나타나라 하니 달이 나타났다지. 여기서는 내가 나타나라는 건 무어든지 나타나고야 만다. 너 따위 하나쯤이야……”

천사는 화가 나서 팽 돌아서 금시 날아가려고 했다. 프로메테우스는 날갯죽지를 부여잡아 주저앉혔다.

“요놈의 기집이, 여기는 내 세계라니까. 눈을 들어 저 아래를 내려다보아라. 지금 너의 신이 잡아가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 똑똑히 보란 말이다. 이 넓은 목장에 짐승과 풀을 뜯어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동물을 길렀다가 때가 차면…… 아 저것봐, 아인슈타인을 또 잡아가는구나…… 저렇게 잡아다 먹는 거 아냐, 제멋대로 뛰놀아서 노린내 나는 놈은 지옥칸에 쓸어넣었다가 염라대왕더러 먹으라 하구, 염란지 무엔지 찌끼나 먹는 더러운 자식…… 그리구 티 하나 안 묻은 깨끗한 놈만 골라잡아서는 천당칸에 비장했다가 살금살금 혼자 먹는 거 아니냐 말이다.”

천사는 여기서 일대 충성심을 발휘하였다.

* 줄거리 : 프로메테우스가 코카서스의 바위에서 녹은 쇠사슬을 끊은 것을 안 신은, 천사를 보내어 그에게로 데려 오게 한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천사가 같이 신에게로 가자고 하나 자기를 다시 쇠사슬에 묶어 두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신의 세계와 지상세계의 중간에서 만나자고 제의하고 싫으면 그만두라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신은, 프로메테우스를 괘씸해하며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처음 회담이 시작되고는, 지상에서 신과 프로메테우스의 괴뢰들이 제각기 자기가 옳고 자기가 잘났다고 싸우면서 서로의 종교를 힐난(詰難)한다. 신은 프로메테우스와 타협하여 이러한 일을 수습하고자 하나, 프로메테우스는 머리를 흔든다. 계속해서 신과 프로메테우스의 회담이 중립지 대에서 이루어지고, 회담 사이에 현재 지상에서의 고쳐져야 할 일과 그릇되고 빗나간 일들이 나열된다.

여기에 이정민이란 인물을 내세워, 한국의 뒷골목을 배회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당 시의 시대상황이 그만큼 혼란(混亂)한 시기였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세상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혼돈(混沌)과 교지(狡智), 폭력(暴力), 간악(奸惡)이 활개를 치면서 신의 옆구리를 차겠다고 날뛰고 있었다.

신은 결심하고 프로메테우스에게 마지막으로 물으나 그는 싫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 회 담은 5분만에 끝나고 각각 다른 길로 되돌아간다.

신은 도중에 “제 삼자의 존재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그 시비를 내 어찌 책임질 쏘냐.”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이정민이 행길로 나와 크게 한숨을 쉬면서 장면은 거기서 끝이 난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등장인물

· 프로메테우스 : 신의 독신과 잔인성을 증오하고 그에 반항하는 인물

· 신(神) :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회의(懷疑)에 빠져 감

- 신(神)적 속성을 가져 인격 부여가 불가능하나, 부조리한 인간상을 형상화하기 위해 작가 는 인격(인간)을 부여하고 있다.

* 구성 : 신과 프로메테우스가 대좌(對坐)하여 담판하는 형식

· 담판 도중에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인간 세계의 단면을 주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인간들의 파렴치(破廉恥)한 행위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 배경 : 신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의 중간(中間)지대 구름 위

·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공간으로서 어디면 됨

* 의의 : 작가의 상상력(想像力)은 설정하기 어려운 작중 현실을 창조해 내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옥단춘전(玉丹春傳) : 작자, 창작연대 미상 고대소설. 국문본.

* 줄거리 : 숙종대의 재상인 이정과 김정에게 각기 이혈룡, 김진희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함께 공부하면서 장차 서로 돕기를 약속했다. 김진희가 먼저 등과하여 평안 감사가 되었을 때 자기를 찾아온 이혈룡을 박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이려고 했다. 이 때 기생(옥단춘)은 뱃사공을 매수하여 이혈룡을 살리고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뒤에 이혈룡이 암행어사로 내려와 김진희의 악정(惡政)을 징계하고, 옥단춘과 반가이 재회한다.

* 구성상 <춘향전>, <오유란전>과 비슷함

 


●옥련몽(玉蓮夢) : 1840년경 창작. <옥루몽>으로 개작

* 줄거리 : 성관(仙官) 문창성과 여러 선녀들이 마하지(摩河池)에 핀 연꽃을 꺾어가지고 술을 마시 며 희롱하다가 이것이 허물이 되어 신불(神佛)의 법력으로 인간계로 하강, 문창성은 양창곡으 로, 제방옥녀(帝傍玉女)는 윤소저, 천요성은 황소저, 홍란성은 강남홍, 제천선녀는 벽성선, 도화 성은 일지련으로 태어난다. 그리하여 양창곡을 중심으로 그의 정실 윤부인·황부인, 또 부실 강 남홍·벽성선·일지련 등 다섯 여인이 한 집에 모여 화합하는 내용. <구운몽>에 비해 훨씬 스케 일이 큰 대장편으로서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통속적인 흥미가 더 있다.

 

* 작자는 이설(異說)이 있으나 남영로(南永魯)로 보는 설이 유력

* 구성 : 회장식 (51회)

* 원본 : 한문본( 異說 : 한글본 )

* 특징

· <구운몽>과 구성, 인물, 주제에 대조가 됨

· 특히 여성의 성격이 특징있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 중 강남홍과 벽성선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 다.

· 내용상 <구운몽>이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데 비해 이것은 더 현세적이고 세속화된 작품이다.

· 차이점

- <구운몽> : 종국적으로 인생을 부정하고 영원한 종교적 세계 지향

- <옥련몽> : 인생을 긍정하고 현세에서 세속적인 행복을 추구하려 함

 


●요한시집 : 장용학 소설

한 옛날 깊고 깊은 산 속에 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토끼 한 마리 살고 있는 그 곳은 일곱 가지 색으로 꾸며진 꽃 같은 집이었습니다. 토끼는 그 벽이 흰 대리석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나갈 구멍이라고 없이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게 땅 속 깊이에 쿡 박혀든 그 속으로 바윗돌이 어떻게 그리 묘하게 엇갈렸는지 용히 한 줄로 큼이 뚫어져 거기로 흘러든 가느다란 햇살이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것처럼 방안에다 찬란한 스펙트럼의 여울을 쳐놓았던 것입니다. 도무지 불행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일곱가지 고운 무지개색밖에 거기에는 없었으니까요. (발단부)

* 갈래 : 실험적 소설 - 우화(寓話)의 도입

· 동굴 속에 갇힌 한 토끼가 빛을 찾아 동굴을 빠져 나왔을 때 홍두깨 같이 찌르는 빛의 충격 에 눈멀어버린다는 이야기로 시작함

* 구성·시점 : 각 사건이 시간 순서나 스토리와 어긋나 단절되어 있다.

· 서(序) : 우화(寓話)

· 상(上) : 1인칭(주인공-동호)

· 중(中) : 3인칭

· 하(下) : 1인칭 유서(遺書) 형식

* 기법 : 1인칭 독백

* 등장인물

· 동호 : 일인칭 화자.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누혜의 집을 찾아감.

· 누혜 : 최고훈장을 받은 인민군 출신의 표로. 끝이 안으로 굽어진 철조망 말뚝에 목을 매고 자살함.

· 노파 : 누혜의 어머니. 고양이가 잡아주는 쥐를 먹고 연명함.

* 줄거리

① 토끼의 우화 : 옛날 깊은 산속 굴에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토끼는 바깥 세계를 동경하기 시작하였으나 나갈 구멍을 찾을 수 없었다. 얼마 후 자기 생일날 토끼는 창 쪽으로 발돋움해 그쪽으로 손을 대었다. 그러자 무지개빛이던 방안이 까맣게 되며 토끼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며칠 동안 일어나지 못하던 토끼는 그 창을 통해 나갈 수 없을까 하는 ‘위험한’ 사상을 품게 되었다. 토끼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면서 창을 통해 바깥으로 기어나가기 시작 했다. 이윽고 토끼는 최초로 바깥 세계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토끼는 태양 광선을 견딜 수 없이 눈이 멀어 쓰러져 버렸다. 토끼는 그후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영영 잃을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 토 끼가 죽은 후 그 자리에 버섯이 났고 후예들은 그것을 ‘자유의 버섯’ 이라고 부르며 그것에 제사지냈다.

 

② 상 : ‘나’(동호)는 누혜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하꼬방(판자집)으로 찾아간다. 포로 수용소인 섬에서 나는 누혜를 만났고, 잠자릴 나란히 하는 벗이 되었던 것이다. 누혜가 죽은 뒤로 나는 배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자유는 오히려 무거움, 또 다른 포로 수용소의 문에 지나지 않았다. 하꼬방에 지나지 않는 삶을 유지하고 잇는 중풍 걸린 누혜의 어머니가 있다. 노파는 굶어 죽음에 직면한 채 고양 이가 잡아다주는 쥐를 먹으며 연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섬, 막바지었다. 나는 쥐를 빼앗아 고양이의 면상에 팽개치곤 노파의 가슴으로 엎어진다. 그리고 노파의 손목에 매달려 어린애처럼 어머니를 부른다. 등골이 시려온다. 노파의 식은 피가 내 혈관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이윽고 “누혜!”하고 부른 후 노파는 죽는다. 고양이의 두눈이 파란 요기를 뿜고 있었는데, 누혜의 눈인 것만같다.

 

③ 중 : 누혜는 괴뢰군이었다. 그는 누워 푸른 하늘을 쳐다보기를 좋아했고, 봉황새나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고 싶어했다. 수용소 안에서의 생활은 두 번 째의 전쟁과도 같았다. 인민의 영웅이었던 누혜는 타락한 인민의 적으로 몽둥이질, 발길질을 당했다. 그는 어느날 “나의 열매는 익었다. 그러나 내가 나의 열매를 감당할 만큼 익지 못했다...... 영원히 익지 못할 것이다! 내게는 날개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철조망에 목을 매고 자살한다.

 

④ 하 : 누혜의 유서가 저기서 파란 두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의 유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생을 살리는 오직 하나의 길은 자유가 죽는 데에 있다.” “자살은 하나의 시도요, 나의 마지막 기대이다. 거기에서도 나를 보지 못한다면 나의 죽음은 소용없는 것이 될 것이고, 그런 소용없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생이라면 나는 차라리 한시바삐 그 전신을 꾀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어둠 속에서 고양이는 아직도 나를 노리고 있다. 자기를 잡으려는 나의 손을 피 해 고양이는 고목나무 가지 위로 올라간다. 나뭇가지에 웅크리고 앉은 고양이의 윤곽이 까만 동화처럼 달 속에 걸려든다.

* 주제 : 󰏐 작가의 말

“주제는 자유를 ‘요한(john)'적인 존재로 본 데에 있다. ······ 예수가 올길을 닦고 요한이 죽은 것처럼 그 ’무엇‘이 오려면 ’자유‘가 죽어야 한다. 그래서 자유를 죽이려고 한 것이 이 작품이다.”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 김시습 <금오신화> 중 1편

  이 작품은 <남염부주지>와 같이 꿈속의 사건을 표현해 놓고 있다. 주인공 한생은 용왕의 초대를 받아 용궁으로 들어간다. 용왕의 청에 따라 그는 상량문을 지어 준다. 용왕은 뛰어난 시작(詩作)에 감탄을 하고는 잔치를 후하게 연다. 잔치가 끝난 후 용왕의 허가를 얻어 용궁을 구경하는데 그곳에는 기이한 것이 많았다. 누각이며, 번개를 치는 전모(電母)의 거울이며, 뇌공(雷公)의 북, 비를 오도록 만드는 기구 등을 구경했다. 구경을 마친 뒤 용왕에게 하직하고 나오려 하자 용왕이 선물을 주었는데 선물을 받고 나오는 도중에 잠을 깼다. 이 작품은 김시습 일생의 한 부분과 같은 작품이다. 즉, 용궁으로 들어간 사실은 세종이 신동인 시습을 궁중으로 불러들인 것과 같다. 또 상량문을 지어 감탄하게 한 것은 삼각산(三角山) 시를 비롯한 뛰어난 한시를 지어 임금을 놀라게 한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빙초를 선물받은 것은 세종으로부터 명주를 하사받은 것과 비유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소설

벌써 삼십 년이 다 돼 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어쩌면 그런 싸움이야말로 우리 살이[生]가 흔히 빠지게 되는 어떤 상태이고, 그래서 실은 아직도 내가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받게 되는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당 정권이 아직은 그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그해 삼 월중순, 나는 그때껏 자랑스레 다니던 서울의 명문 국민학교를 떠나 한 작은 읍(邑)의 별로 볼것없는 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공무원이었다가 바람을 맞아 거기까지 날려간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가 이사를 가게 된 까닭이었는, 그때 나는 열두 살에 갓 올라간 5학년이었다.

그 전학 첫날 어머님의 손에 이끌려 들어서게 된 Y 국민학교는 여러 가지로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붉은 별돌로 지은 웅장한 3층 본관을 중심으로 줄줄이 늘어섰던 새 교사(校舍)만 보아 온 내게는, 낡은 일본식 시멘트 건물 한 채와 검은 타르를 칠한 판자 가교사(假校舍) 몇 채로 이루어진 그 학교나 어찌나 초라해 보이는지 갑자기 영락한 소공자(少公子)의 비애(悲哀)같은 턱없는 감상에 젖어들기까지 했다. 크다는 것과 좋다는 것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한 학년이 열여섯 학급이나 되는 학교에서 공부해 온 탓인지 한 학년이 겨우 여섯 학급밖에 안된다는 것도 그 학교를 까닭 없이 얕보게 했고, 남녀가 섞인 반에서만 공부해 온 눈에는 남학생반 여학생반이 엄격하게 나뉘어져 있는 것도 촌스럽게만 보였다.

거기다가 그런 내 첫인상을 더욱 굳혀 준 것은 교무실이었다. 내가 그때껏 다녔던 학교의 교무실은 서울에서도 손꼽는 학교답게 넓고 번들거렸고, 거기 있는 선생님들도 한결같이 깔끔하고 활기에 찬 이들이었다. 그런데 겨울 교실 하나 넓이의 그 교무실에는 시골 아저씨들처럼 후줄그레한 선생님들이 맥없이 앉아 굴뚝같이 담배 연기만 뿜어 대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데리고 교무실로 들어서는 어머니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담임 선생님도 내 기대와는 너무도 멀었다. 아름답고 상냥한 여선생님까지는 못 돼도 부드럽고 자상한 멋쟁이 선생님쯤은 될 줄 았았는데, 막걸리 방울이 튀어 하얗게 말라붙은 양복 윗도리 소매부터가 아니었다. 머리 기름은커녕 빗질도 안해 부스스한 머리에 그날 아침 세수를 했는지가 정말로 의심스런 얼굴로 어머님의 말씀을 듣는둥 마는둥 하고 있는 그가 담임 선생이 된다는게 솔직히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 뒤 일 년에 걸친 악연(惡緣)이 그때 벌써 어떤 예감으로 와 닿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악연은 잠시 뒤 나를 반아이들에게 소개할 때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 전학온 한병태다. 앞으로 잘 지내도록.」

담임 선생은 그 한 마디로 소래를 끝낸 뒤 나를 뒤쪽 빈 자리에 앉게 하고 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새로 전학온 아이에 대해 호들갑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자랑 섞인 소개를 늘어놓던 서울 선생님들의 자상함을 상기하자 나는 야속한 느낌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대단한 추켜세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가 가진 자랑거리는 반아이들에게 일러주어, 그게 새로 시작하는 그들과의 관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그때 내게는 나름으로 내세울 만한 게 몇 있었다. 첫째로 공부, 일등은 그리 자주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 별난 서울의 일류 학교에서도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었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내 이익을 지켜 주는 데 적지 않은 몫을 하던 내 은근한 자랑거리였다. 또 나는 그림에도 남다른 솜씨가 있었다. 역시 전국의 어린이 미술대회를 휩쓸었다 할 정도는 아니었어도, 서울시 규모의 대회에서 몇 번의 특선은 따낼 만했다. 내 성적과 어울러 그 점도 어머니는 몇 번이나 강조하는 듯했는데, 담임 선생은 그 모두를 무시해 버린 것이었다. 내 아버지의 직업도 경우에 따라서는 내게 힘이 될 만했다. 바람을 맞아도 호되게 맞아 서울에서 거기까지 날려가기는 했어도, 내 아버지는 그 작은 읍으로 봐서는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직급 높은 공무원이었다.

󰏐 [문학과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원작 이문열 / 감독 박종원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국민학교 교실이라는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의 왜곡된 의식구조와 권력행태를 신랄하게 풍자한 <사회비판 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한 사회비판 소설과는 달리 고도의 심리분석 기법을 통해 권력에 대한 우리들의 은밀한 두려움과 비겁한 순응, 그리고 우리 사회의 뒤틀린 영웅관과 전도된 가치관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유당 말기 정치적 바람을 맞아 좌천된 부친을 따라 시골로 전학을 간 <한병태>는 강력한 힘을 가진 반장 <엄석대>에 의해 자신의 학급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반장은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전체주의적 권력기관인「빅 브라더」처럼 급우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며, 또 아이들은 모두 거기에 순응해 살고 있다. 그러나 반장은 단순히 억압적이지만은 않다. 때로는 미묘한 협박을 통해, 때로는 은밀한 회유를 통해 반항하는 세력을 결국 자신에게 굴복시키고 예속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다분히 정치적인 인물이다.

 

한병태 역시 처음에는 정면으로 반장의 억압과 횡포에 맞선다. 그러나 고도의 독재자인 반장은 그를 처벌하는 대신, 그의 주변 인물들을 괴롭힘으로써 한병태를 철저하게 고립시킨다. 그리고 동시에 은밀한 위협과 거절할 수 없는 회유공작을 시작한다. 담임교사와 학교당국은 철저하게 무능하고 부패해 있으며 심지어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반장 편을 들어준다. 결국 한병태는 살아남기 위해 권력의 위협과 회유에 굴복하고 독재자와 타협한다.

 

92년도 <몬트리올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박종원 감독의 동명영화는 원작의 심오한 주제의식을 충분히 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시골의 어느 국민학교 교실은 사실 어두운 우리 현대사를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들의 사회적 정치적 소우주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이나 줄 베른의 「15소년 표류기」처럼 아이들의 집단생활을 통해 성인사회를 비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를 격조높은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반장역을 맡은 홍경인과 화자역을 맡은 고정일의 뛰어난 연기와 표정과 분위기다. 특히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1위의 톱스타로 부상한 홍경인의 음침한 독재자 연기는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일품이었다.

 

독재자의 종말은 새로운 담임 김선생(최민식 분)이 부임해오면서 시작된다. 반체제적인 젊은 교사는 교실의 부정부패를 일소하면서 반장의 권력을 무참히 꺾어버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담임교사 역시 독선과 폭력을 행사한다. 아이들은 이제 새 담임교사에게 복종하고 교실은 또 다른 형태의 억압과 독재에 신음하게 된다. 역사는되풀이된다. <반장>은 <정치권력 메커니즘을 노련하게 조종했던 우리의 권력자>들을 연상시켜 준다. 그리고 개혁을 주창하며 등장해 결국은 정치에 입문한 그 젊은 담임교사에게서도 우리는 또다른 독재자의 모습을 본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영웅은 과연 누구인가. 반장과 한병태와 새 담임교사는 각기 다른 의미에서 영웅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일뿐이다.

 


●운수 좋은 날 : 현진건 단편 소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 날이야말로, 동소문(東小門)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문안에(거기도 문밖은 아니지만)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마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으로,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결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쟁이를 동광학교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발단부) (중략)

하여간 김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하는 추기--- 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올라온 먼지내, 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온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때가 켜켜이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썩은 내가 추기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중략)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천정만 보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 같은 눈물이 죽은이의 뻣뻣한 얼국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결말부)

* 갈래 : 사실주의

* 배경 : 비오는 겨울날, 일제 강점기의 서울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부분적으로 작가 관찰자 시점 혼용)

* 특징

· 김첨지라는 인력거꾼의 하루 일과와 그의 아내의 비참한 죽음을 통해 식민지 시대 하층민의 궁핍한 생활을 뛰어난 구성, 예리한 관찰력으로 부각시킴.

· ‘운수 좋은 날’이란 말은 가장 참혹하고 비통한 날(운수 나쁜 날)에 대한 반어적(反語的) 표 현임

· 첫부분의 배경 묘사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

- 눈 : 기대하는 바(행운)

- 얼다가 만 비 : 현실(불행 암시)

· 작품 속의 대화는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제시해 줌

* 구성 : 추보식, 단일구성

· 특징

- 행운의 절정 순간 아내의 죽음이라는 정반대 상황을 제시 (돈과 아내의 운명이 대칭을 이 루는 구조)

- 행운과 불안의 교차 전개 중 비극적 결말로 구성을 마침

* 주제 : 일제하 궁핍한 하층민의 삶

* 의의 : 우리 현대소설사에서 사실주의적 문학의 확립에 중요한 공헌을 한 현진건 초기의 대표작

* 출전 : [개벽] 48호 (1924. 6)

--- 󰃫 문학이론 <반어>, <복선>, <주제의 표출 방법>

 

 1) 이 작품에서 결말의 성격을 예고하는 소재를 찾아 쓰시오.

 얼다가 만 비

 2) 작품의 배경이 주제를 암시하는 작품 중에서 운수 좋은 날과 같이 비오는 날의 배경이 제시되고 있는 손창섭의 작품은 ?

 비오는 날 ( 음울한 작품 분위기 - 주제 암시 )

 3) 이 작품과 반대되는 희극적 반어(아이러니, irony)를 보이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은 ?

 B사감과 러버레터

※ 참고 : 전영택의 <화수분>도 반어적 성격의 제목임.

 4) 작품의 내용(운수 좋은 날)과 결말(비극적인 죽음)의 상호 관계가 반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기대와 현실의 어긋남’이 작품 서두에 암시 되어 있는데 그곳을 찾아 쓰시오.

 눈은 아니오고 비가 옴

 5) 하나의 소설이 아래와 같은 요소를 구비해야 한다고 할 때, 이 작품에서 결여된 부분을 지적하시오.

▷ [보기]

현실적 상황이 제시하고 만들어 내는 여러 요소들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이를 진지한 안목에 서 분석하여 의미를 분석할 때 문학은 그 존재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성을 구현하는 데 있는 것이라면 이를 효과적으로 드 러낼 수 있는 현실의 가능성을 찾아 내고 거기에 사람의 옷을 입혀 숨쉬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 다.

 1) 주어진 환경을 개척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 제시되지 않았음

2) 단순한 사회 현실의 제시와 고발로 끝을 맺고 있고, 현실적인 대안의 제시(혹은 작가의식)가 보이지 않는다.

 


●운영전 : 원제목 추정 ? <수성궁 몽유록>

* 판본

· 이본 : 20-30여 종, 대부분 한문 필사본

· 한글 사본 : 장서각 소장본, 이재수 소장본, 김기동 소장본 3종만 전함

· 신 활자본 : 영창서관 발행 <연정(演訂) 운영전(雲英傳)>

* 줄거리 : 임진왜란이 끝난 어느 해 봄날 지금의 청파동에 살던 ‘유영’이란 선비는 안평대군의 사 저였던 수성궁에 놀러 간다. 수성궁 가운데서도 그윽하여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서원으로 들 어간 유영은 바위에 앉아 소동파의 시를 읊조리며 가지고 갔던 술병을 풀어 다 마시고 취하여 누웠다. 잠시 후 술이 깨어 주위를 살피던 가운데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 찾아가 보니, 한 소 년이 절세미인과 마주 앉아 있었다. 이들은 유영이 다가 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맞이 했다. 그들이 곧 ‘운영’과 ‘김진사’이며, 두 사람은 자신들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유영에게 들려 준 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운영의 고향은 본래 남방으로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 속에서 삼강오륜과 당나라 시를 배우며 성장했으나, 13세 때 대군의 부름에 따라 입궁했다. 안평대군 은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난 궁녀 10명을 뽑아 시와 문을 가르치고, 이들에게 궁 밖에 나가서 도, 궁 밖의 사람들 가운데 궁녀의 이름을 아는 자가 있어서도 안 된다는 엄명을 내린다. 그러 던 어느날 외출에서 돌아온 대군이 궁녀들에게 시를 짓게 한다. 궁녀들이 시를 보고 난 다음 대군은 운영의 시 속에 외로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정감이 담겨져 있다고 운영을 추구한다.

 

하루는 김진사라는 아니 어린 선비가 수성궁을 방문하여 시를 짓는데, 운영으로 하여금 벼루 시중을 들게 한다. 운영은 김진사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를 사모하게 되고, 이후 김진사는 수 성궁을 자주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서로 대면하지 못하게 하여 문틈으로 엿보다가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시를 몰래 전한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사랑은 다른 궁녀들과 김진사의 하 인인 특의 도움을 받아 수성궁의 담을 넘나들며 더욱 깊어 간다. 이로 인해 궁중 담 안의 눈 위에 김진사의 자취가 드러나고, 운영이 지은 시와 김진사가 지은 상량문에서 임을 그리워하 는 마음이 있다면서 대군은 운영을 의심한다. 이에 자신들의 밀회가 드러날까 걱정하던 운영 은 수성궁을 탈출하고자 하지만, 운영의 재물을 탐내던 김진사의 노복이 배신하여 두 사람의 밀회는 탄로나고 만다. 크게 노한대군이 운영과 다른 궁녀들까지 죽이려 하자 궁녀들마다 나 서서 운영을 변호한다. 분노가 누그러진 대군이 운영을 별당에다 가두지만, 그날 밤 운영은 비 단 수건으로 목매어 스스로 죽는다. 운영이 죽자 김진사 역시 세상 일에 뜻을 잃고 고요한 곳 에 누워 죽는다.

 

이처럼 이 소설은 두 사람의 슬픈 사랑 이야기인데, 죽음을 통해서 사랑을 성취하고 있는 점 은 당시로서는 진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소설사적 특징

· 독특한 구성 방식 : 유영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유영과 두 사람과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이 중의 구조를 띤 액자 소설이다. 시간적으로 현재 - 과거 - 현재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이며, 공 간적으로는 현실 - 천상 - 몽중 - 현실 세계로 이어지는, 삼계를 잇는 입체적 구성을 보인다.

· 보통 사람들에게는 비경의 공간(궁중)을 배경으로 한 특수 사회의 염정 사건

· 죽음을 통해 사랑을 성취하는, 보기 드문 비극 소설

 


●웃음소리 : 최인훈 소설. 동인문학상 수상작(1966)

정한 시간까지는 아직 사이가 있었지만, 그녀는 곧바로 걸음을 옮겨 골목으로 꺾어지는 모퉁이를 돌았다. ‘바 하바나’라고 쓴 간판이 익숙한 눈어림 속에 들어왔을 때 그것은 마치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있던 사람을 거리에서 문득 만났을 때처럼 그녀를 서먹하게 했다. 그곳까지 걸어가는 사이의 시간이 그녀에게는 무척 길게 느껴졌다. 수없이 오고 간 그 골목이 아주 생소하고 힘든 저항을 받으며 헤쳐 들어가야 하는 뿌듯한 물체처럼 생각하는 것이었다.

문을 열고 홀 안에 들어섰을 때 그러한 느낌은 줄기는커녕 한층 심해졌다. 벽에 밀 이 붙여서 쌓아올린 의자들의 위쪽 것은 거꾸로 한 다리를 앙상하게 천장을 향하여 뻗치고 있고, 스크린이 두 겹으로 이 의자의 더미를 성벽처럼 둘러치고 남은 공간은 전에는 기름이 잘 먹어 검고 육중하게 빛나던 마루답지 않게 희부옇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녀의 눈길을 맞은 맨 처음 것은 이 공간이었고, 그 저편에 스크린으로 가려진 의자의 산(山)을, 그리고 그 봉우리에 솟은 삐쭉삐쭉한 금속의 다리들을 --- 이런 순서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발단부) (중략)

일주일을 더 묵고 그녀는 서울로 오는 열차를 탔다.

창가에 앉은 그녀는 매점에서 새로 산 줄칼로 골똘히 손톱을 다듬으면서 가끔 창밖으로 내다본다.

올 때나 마찬가지고 창밖에서 푸르게 오염된 사막이 흘러가고 있었으나, 그녀는 그 속의 한 풍경을 보고 있었다. 어느 사보텐의 그늘 속에 한쌍의 남녀가 가지런히 누워있다. 남자는 그녀가 모르는 얼굴이다. 여자는 사보텐에 가려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사보텐의 가시의 저편에서 여자의 짤막한 웃음소리. 손톱 다듬는 손이 저절로 멈춰지고 그녀는 홀린 듯이 그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주 귀에 익고 사무치는 목소리였다. 아주 귀에 익고 사무치는 목소리였다. 암암하게 들려오는 소리. 그것은 바로 그녀 자신의 웃음소리였다. (결말부분)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현재 공간(서울) 떠남 ⇨ 체험(P온천) ⇨ 새 삶의 현장(서울)으로의 복귀

* 등장인물

· 그녀(익명) : 차분한 성격의 주인공.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자 삶의 의욕을 잃고 자 살을 하기 위해 기도하나 나중에는 사랑에 대한 환명을 느끼고 새 삶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오 는 여인

* 주제 : 충격적인 두 남녀의 체험을 통한 새롭게 시작하느 성숙한 삶

 


●유예(猶豫) : 오상원 소설

걸음걸이는 그의 의지처럼 또한 정확했다. 아무리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걸음걸이가 죽음에 접근하여 가는 마지막 길일지라도 결코 흐트른, 불안한, 절망적인 것일 수는 없었다. 흰 눈, 그 속을 걷고 있다.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 선 언덕, 흰 눈이다. 연발하는 총성, 마치 외부 세계의 잡음만 같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는 흰 속을 그대로 한걸음, 한걸음 정확히 걸어가고 있었다. 눈 속에서 부서지는 발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난다. 누가 뒤통수서 잡아 일으키는 것 같다. 뒷허리에 충격을 느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흰 눈이 회색빛으로 흩어지다가 점점 어두워간다.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놈들은 멋적게 총을 다시 거꾸로 둘러 메고 본부로 돌아갈 테지. 눈을 털고 추위에 손을 비벼 가며 방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몇 분 후면 화롯불에 손을 녹이며 아무일도 없었던 듯 담배들을 말아 피고 기지개를 할 것이다. 누가 죽었든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 평범한 일인 것이다. 의식이 점점 그로부터 어두워갔다. 흰 눈 위다. 햇볕이 따스히 눈 위에 부서진다.

* 감상 : 이 작품은 전후소설을 쓴 오상원의 소설이다. 작가는 전쟁을 치르고 난 뒤의 인간의 존 재 가치, 생명의 본질, 삶의 모습 등에 관심을 두고 작품을 썼는데, 이 작품도 그러한 연장선 상에 놓인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과 1인칭 주인공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객관적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주인공 의식(내면) 세계, 독백을 중심.

* 배경 : 6·25전쟁 당시 어느 산골 마을

* 등장인물

· 그(또는 나) : 전쟁 때 패주(敗走)하는 낙오병들의 지휘관. 주인공

· 선임하사 : 그(나)의 의식세계를 보여주는 데 참고가 되는 주변 인물. 전쟁의 무의미함을 드 러내 주는 인물

* 주제 : 인간의 존재 가치를 말살시키는 전쟁의 잔인성에 대한 비판

--- 󰃫 이범선 소설 <오발탄>

 


 

●유충렬전(劉忠烈傳) : 조선조 후기 국문소설, 작자 미상, 영웅소설, 군담소설

잇의 조졍의  신 이스되, 셩은 유요 명은 심이니, 젼일 션조 황제 개국 공신 유기의 십삼 손이요, 젼 병부상셔 유현의 손자라. 셰 명가 후예로 공후(公侯)작록(爵祿)이 나지 안이 더니 유심의 벼살리 졍은 주부의 잇난지라.

위인이 졍직고, 셩정이 민쳡며 일심이 충셩야 국녹이 중중니 가산이 요부고 작법이 화평니 셰상공명은 일의 졔일이요, 인간 부귀나 만민이 충송 다만 슬하의 일졈 혈육이 업시 이것으로 탄야 일년일도의 션영 졔사 당면 홀노 안져 우는 말이,

“슬프다, 의 몸이 무삼 죄 잇셔 국녹을 먹거니와 자식이 업셔스니 셰상의 좃타들 조흔 줄 엇지 알며 부귀가 영화로되 영화된 줄 엇지 알이. 나 죽어 쳥산의 무친 골 뉘라셔 거두오며 션영 화(先塋香火)를 뉘라셔 주장리.”

음업난 눈물리 옷짓슬 젹시난지라. (중략)

빌기를 다미 지셩이면 감천이라. 황쳔인들 무심할가. 단상의 오 구름이 면의 옹위고, 산중의 발 신령이 일졀이 강하여 정결케 지은 졔물, 모도다 흠향(歆饗)한다. 길조가 여차니 귀자(貴子)가 업슬손야.

 

// 고귀한 혈통과 유심의 인물됨, 기자(祈子) 정성

* 줄거리 : 유심의 아들로 태어난 유충렬은 간신들의 모함으로 아버지와 장인까지 잃게 되자 도승 을 만나 수학하여 뒤에 적국과 밀통하고 반란을 일으킨 간신의 무리를 쳐부수고 대장군이 되 어 부귀를 누린다.

* 공간 배경 : 중국, 시대 배경 - 난세(亂世)

* 성격 : 영웅의 일대기, 비현실적, 우연적

* 주제 : 실세 계층의 실세 회복 의지

--- 󰃫 어휘 <홍진(紅塵)> 예⑤

 


●은세계(銀世界) : 이인직(1862-1916) 신소설. 가족사소설

겨울 추운 저녁 기운에 푸른 하늘이 새로이 취색한듯이 더욱 푸르렀는데 해가 뚝 떨어지며 북새풍이 슬슬 불더니만 - 산 뒤에서 검은 구름이 한 장 올라온다. 구름 뒤에 구름이 일어나고, 구름 옆에 구름이 일어나고 구름 밑에 구름이 치받쳐 올라오더니 (하략)

* 감상 : <은세계>의 전반부는 판소리 ‘최병두 타령’의 정착으로 보이며, 후반부는 옥남과 옥순 에 관한 이야기로 영웅 소설의 전통을 잇는 이인직의 창작적 첨가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이 인직의 작품 중에서 주제 의식이 가장 강하게 표출된 것으로 평가받는데, 작품의 구성적 특 성은 봉건 지배층의 정치적인 부패에 따른 백성에 대한 가렴주구, 이에 항거하는 민중의 반항 의식, 고루한 봉건 체제를 혁신하기 위한 개화 사상 등을 다루고 있다. 1908년 원각사에서 이 인직 자신에 의해 창극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한편, 이 작품은 전반부인 ‘최병두 타령’에 「농부가」, 「나뭇꾼의 노래」, 「상두소리」 등의 민요 적 가요가 많이 삽입되어 있다는 특이점과 함께 「혈의 누」에서 보였던 언문 일치, 사건의 역 전적 배치, 사실적 묘사 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등장 인물에서 나타나는 민족적 주체 의식의 부족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즉, 현실 고발, 민중저항, 신학문 고취 등이 나타나 있으나, 봉건 지배층에 항거하던 최병도의 민 중적 의지는 후반에서 옥남의 의식이 의병과 대립하는 가운데 고종의 강제 폐위(1907) 등을 옹호함으로서 친일적 성향을 보이는 한편 주체적이고 민중적인 의식이 소멸하게 된다.

 

* 줄거리 : 강릉 경금 동리에 사는 최병도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매우 근면하고 성실하였으 며, 개화당의 중진 김옥균의 감화로 구국의 일념을 품고 그 밑천을 마련하기 위하여 재산 모 으기에 힘써 상당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강원도 관찰사는 매관매직(賣官賣職)이 횡 행하는 시국에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아 돈을 모으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때마침 최 병도는 강원 관찰사에게 죄가 없이 붙잡혀가 곤장을 맞고, 관찰사의 흉계에 정면으 로 대항하 다가 갖은 고초를 겪고 풀려나 귀가하다 죽고, 부인은 정신 이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최병도 의 체포에 항거하여 동네 젊은이들이 민요(民擾)를 일으키려고 시도 하기도 하나 최병도의 만 류로 그만둔다. 그리하여 최병도의 재산 관리는 최병도와 뜻을 같이 하던 개화인 김정수가 맡 고, 다시 돈을 모아 최씨의 소생인 옥순(玉順), 옥남(玉男) 두 형제에게 새 학문을 배워주기 위 해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최병도의 딸 옥순과 유복자인 옥남이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그들 의 재산 관리인인 김정수와 더불어 도미(渡美) 유학을 하였으나 다시 불운이 겹친다.

 

김정수가 늘리어 놓은 최씨가의 재산은 관료에게 거의 빼앗기게 되고 이후 김정수는 매일 만 취로 세월을 보내다가 술 때문에 죽게 된다. 한편, 옥순, 옥남이는 갖은 고생을 겪고 공부를 마치고 10여 년만에 돌아와 어머니를 재회한다. 거의 폐인이 된 어머니는 잃었던 정신을 되찾 게 되고, 이튿날 옥남 남매가 어머니와 함께 선친의 명복을 빌려고 절에 갔다가, 뜻밖에도 정 부의 개혁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들을 만난다. 옥남은 “학정을 고치기 위해서는 고종의 양위 (讓位)가 지당하며 의병 또한 不可한 것.”이라고 역설하나 의병에게 붙들려 간다.

* 문체 : 거의 완전한 구어체, 묘사체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 : 판소리 사설적 특징을 보여줌.

* 등장인물

· 최병도 :평민, 양반 관료에 대하여 저항하다가 죽음.

· 김정수 : 최병도와 뜻을 같이 함. 술 때문에 죽음.

· 옥순, 옥남 : 최병도의 자녀.

· 김진사 등.

* 주제 : 평등과 자주 독립, 반봉건적 사상 고취 및 자주 독립 정신 앙양

* 의의 : 우리나라 최초의 신극, 정치소설, 1908년 원각사에서 창극으로 상연됨

* 출전 : 1908년 11월 20일 동문사

 


●이리도 : 황순원 단편·액자소설(1950)

그런데 만수 외삼촌이 한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우리들의 방문을 열고 벽에다 새로 큰 들창까지 뚫어 보다 넓고 새로운 세계로 통하게 한 이야기는 홍안령 저쪽의 이야기다.

우리는 소년 시절에 만수 외삼촌에게서 몽고 지방 어느 촌락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어느 추운 겨울날 밤, 우리의 한 칸 방에서 만수 외삼촌을 처음 뵈었었다. 그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의 이야기 - 만주 땅의 마적 이야기라든가, 불가사의한 중국 사람과 새에 관한 이야기 등 -를 해주었다.

만수 외삼촌이 몽고인의 집에 묵은 일이 있었는데, 같은 나이 또래의 일본인도 함께 묵게 되었다. 후한 인심의 집주인의 대접으로 술을 마시며 세상 이야기를 하던 중에 밤이 되자 개가 짖기 시작했다. 경험이 많은 몽고인 주인은 이리 같은 짐승이 나타났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때 일본인이 술로 붉어진 얼굴로 권총 한 자루를 들고 벌떡 일어났다. 이리를 쏘아 잡겠다는 것이다.

이리는 공포를 쏘아 쫓아 버려야지, 피를보게 하면 끝까지 달려드는 동물인다. 주인은 지난 번에 이리에게 죽음을 당한 군인 세 명의 이야기를 해가며 일본인을 말렸다. 주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월 의식에 찬 일본인은 총을 빼들고 집을 나섰다. 총소리, 이리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잠이 들었다. 만수 외삼촌에게 이튿날 주인이 내민 것은 검붉은 피가 말라붙어 있고 이리의 이빨 자국이 나 있는 권총 한 자루 뿐이었다. (중략)

이리의 이빨 자국 ? 음, 이게 바로 이리의 이빨 자국이라 ?

다음은 주인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좋았다.

이리도, 그러면 이리까지도 ?

* 감상 : 황순원의 소설 <이리도>와 <목넘이 마을의 개>는 민족의 생명력과 그 생명력을 장애 하는 것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생명에 대한 애착이 곧 ‘민족 정신의 상징’ 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이리의 끈질긴 저항을 통해 한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그린 작품 이다. 액자식 구성으로서 생명에 대한 의지와 이를 장애하는 데 대한 증오의 비극적 결말을 보여 줌으로서 민족의 생명력을 형상화하고 있다. 동물의 본능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주제를 제시하고 있으며, 환경의 변화에 관계없이 지켜져야 하는 모든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이를 옹 호하려는 범생명적 휴머니즘의 바탕 위에서 씌어졌다. 간결한 표현과 함축적인 결말이 특이하 다. 이런 소설은 자칫 감정에 치우쳐 예술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어렵다. 감정에 치우치는 것을 비껴나가는 장치로 ‘액자형 구성’이 자주 이용된다. 이 작품도 그러한 경우다.

 

* 갈래 : 단편 소설, 액자 소설, 본격 소설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과 작가 관찰자 시점

* 성격 : 민족적

* 주제 : 한민족의 끈질긴 생명력 혹은 모든 생명에 대한 외경심

 

󰃚 마지막 대사 ‘이리도, 이러면 이리까지도’의 뒷부분의 생략된 어구의 추리 상상

󰂼 생존을 위해 이렇게 저항했다는 말인가 ? (혹은)

침략, 폭력을 싫어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 !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 김시습 한문소설 , 전기(傳奇)소설, 염정(艶情) · 애정소설

* 세조 때, 김시습의 [金鰲新話(금오신화)] 중 1편

* 줄거리 : 개성에 살던 이생(李生)이란 젊은이가 하루는 선죽교 근처를 지나다가 담 안의 아름다 운 처녀를 발견하고 했는데 꽃들이 만발했고, 새들은 꽃나무 사이에서 고운 노래를 부르고 있 었다. 구슬로 만든 발은 반 정도 가렸고 비단 장막은 낮게 드리웠는데, 어여쁜 아가씨가 수를 놓다가 포근함을 이기지 못해 바늘을 잠깐 멈추고는 턱을 괴고 앉아 시를 읊었다.

 

사창(紗窓)에 홀로 비껴 수놓기도 귀찮구나.

활짝 핀 꽃다발 속에 꾀꼬리 소리 다정도 하네.

무단히 이 마음은 봄바람을 원망하고자

말없이 바늘 멈추고 생각에 잠겼도다.

저기 가는 저 총각은 어느 집 도련님인고

초록빛 긴 소매로 수양 가지 스쳐가네.

 

이에 매혹된 나머지, 사랑의 글을 써서 담 너머로 던진다. 그 뒤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부부가 된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홍건적(紅巾賊)의 난으로 여인이 도적의 칼에 맞아 죽고 만 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인이 이생을 찾아와 둘은 다시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3년이 지 난 어느날 여인은 들에 아직도 뒹구는 자기의 해골을 거두어 장사지내어 줄 것을 부탁하며, 이생과 작별한다.이생은 장자시낸 후 그 길로 병이 들어 신음하다가 아내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 주제 : 진실된 사랑은 죽음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음.

  전반부에서는 산 사람과, 후반부에서는 원귀(寃鬼)와 사랑을 나누도록 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삼교(三敎) 사상이 융합된 것이라 하겠다.

---  어휘 <거안제미(擧案齊眉)>

 


●이성계(李成桂) : 김성한 장편, 역사소설

󰏐 <이성계>에 대하여

소설의 출발점인 고려 말은 민족 수난사의 본막(本幕)과 그 무대다. 동북 변방의 향리풍정(鄕里風情)은 그 무대 구성에 잘 활용되었다. 인간 이성계에 대하여는 그 성품상의 면모, 즉 서민적인 일면과 과단성(果斷性)이 그려져 있다. 이 과단성은 주로 고려 말의 부패한 사회상에 대한 응징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성계가 당대 역사의 중심인물이며 이 소설의 주인공이므로 그의 인생적, 역사적 발자취가 소설의 줄거리를 이루어 간다.

 

그러나 역사 속의 영예로운 주역(主役)은 최영(崔塋) 장군에게 주어져 있다. 최영의 북벌(北伐) 계획은 당시로서는 민족의 대의(大義)였으며, 이성계도 감히 반대를 못한다. 그러나 [삼한의 역사에 없는 5월 홍수]를 운운하며 이성계가 압록강에서 회군(回軍)한 순간 민족사의 위축은 굳어져 갔다. 그 뒤 이성계는 책모의 명수들을 침묵으로써 교사(敎唆), 몽둥이와 인두로써 죄인을 조작해 가며 주권을 탈취한다. 대의를 잃은 권력자의 길은 잔인한 음모의 수법을 밀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 결과 역사도 망쳐지고 탐욕자의 인생도 허무와 불행으로 끝난다. 이성계가 말년에 아들끼리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에 낙심하여, 신강선사의 말대로 “그렇지, 자업자득(自業自得)이지. 내 허망한 꿈에 사로잡혀 광란(狂亂)을 일삼았소. 많은 사람을 해쳤고, 못할 일을 많이 했소.”하고 허무와 뉘우침의 길로 사라지는 것은 역사에 주는 이 소설의 교훈이다.

 


●인간문제 : 강경애(姜敬愛) 장편 소설

* 배경 : 일제시대, 용연읍, 서울, 인천

* 성격 : 사회고발적

* 시점 : 전지적 작가시점

* 등장인물

· 선비 : 주인(정덕호)에게 정조를 빼앗기고 노동자로 변신, 방적 공장에서 일하다가 폐결핵으 로 사망

· 첫째 : 소작농의 아들, 부두 노동자가 됨. 유신철에게 영향받음

· 유신철 : 노동운동을 하다가 전향함

· 정덕호 : 지주, 면장으로서 농민들을 착취

* 주제 : 일제시대 농민과 노동자의 비참한 삶의 모습을 통한 사회고발

* 출전 : 1934년 동아일보 연재

 


●인력거꾼 : 안국선 신소설

해는 거의 서산에 넘어 가고 겨울 바람은 냉랭하여 남의 집 행랑채에 세로 들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노동자의 여편네가 쌀은 없고 나무없어 구구한 살림살이 애만 부둥부등 쓰는 이 때에, 새문 밖 냉동 좁은 골목 막다른집 행랑채 한 간 방에 턱을 고이고 수심 중에 앉아서 혼잣말로 한탄하는 여편네가 있으니 (하략)

* 감상 : 이 작품은 안국선이 1915년 발표한 근대적 단편 소설집 「공진회(共進會)」에 수록된 작품 으로 신소설이 현대적 단편 소설로 발전하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는데 문학사적 의의가 있 다. 또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문명 개화니, 신교육이니 하는 거창한 주제가 아닌 가난한 노동자 의 일상 생활의 한 단면을 다루었다는 데도 특징이 있다. 전형적인 인물을 설화체의 해설적 문장을 통해 제시하는 한편, 부분적으로 압축된 묘사와 묘사적 표현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우연 성이라든가 상투적이고 과장된 표현, 율문적(律文的) 표현, 권선 징악적인 주제 등이 있는 것 은 고대 소설의 잔재라고 하겠다.

 

* 줄거리 : 양반의 후예인 김 서방은 게으르고 술도 좋아하여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가세가 타락하여 할 수 없이 남의 집 행랑채를 얻어 살며 지게벌이도 하고 남의 심부름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는 술을 너무 좋아하여 하루라도 술을 못 먹으면 병이 되는 듯했다. 그의 아내는 도 망가려고도 했으나 김 서방의 본심이 원래 착함을 믿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김서방 은 아내의 간곡한 권고로, 앞으로 3년간 술을 끊고 인력거를 끌어 남부럽지 않게 살기로 한다.

 

그런데 인력거꾼이 된 김 서방은 첫날 길에서 4천여 원이라는 큰 돈을 주웠다. 그의 아내는 남 편이 이 돈을 믿고 술을 마시자, 남편을 속여 그 일을 꿈에 일어났던 것인양 꾸미고는, 그 돈을 경찰서에 갖다 줘 버린다. 3년 동안 김 서방은 일을 열심히 하였는데, 뜻밖에 경찰서에서 주인 이 안 나타나니 돈을 찾아가라 하여, 아내는 모든 것을 고백하고 경찰서에서 찾아온 돈을 내놓 는다. 이에 김서방은 아내의 현명함에 감사하고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인력거꾼을 계속한다.

 

* 등장인물

· 김서방: 인력거꾼. 게으르다.

· 아내: 성실하고 의지적임.

* 문체 : 산문체, 언문 일치체에 근접, 설화체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 교훈적, 계몽적

* 구성 : 평면적, 단순구성

* 주제 : 인생의 괴로움과 성실한 삶에 대한 기대, 삶의 애환과 성실한 생활에의 기대, 근면과 절약의 삶

* 출전 : [공진회(共進會)[(1915. 8)

 


●임꺽정(林巨正) :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 대하 의적소설

󰏐 소설 [임꺽정]의 대미(大尾)부분 일부 <자모산성>편 발견

- 출판인 정해염씨, [조선일보] 연재분에서 확인

 

소설 [임꺽정]의 대미(大尾)부분이 발표된지 50여 년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1928년부터 39년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임꺽정] 중에서 지난 39년 3월 17일부터 7월 4일까지 연재된 <자모산성>편 36회(200자 412장 분량)가 처음으로 확인돼 발굴했다. 출판인이자 계간 [창작과 비평]의 편집 고문인 정해염씨가 일제 때인 39년과 40년에 출간된 을유문화사판(48년) 및 사계절판(85년) 등을 조선일보 보존판의 연재분과 대조해본 결과 지금까지 단행본 [임꺽정]이 모두 <자모산성>편을 누락시겼고, 모든 임꺽정 연구자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새로 발견된 <자모산성편>은 임꺽정의 부하였던 서림이 관군에 귀순한 뒤 조정에서 강원도와 황해도 순경사를 임명, 임꺽정의 본거지인 청석골을 치기로 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임꺽정과 심복들이 거처를 자모산성으로 옮길 것인가를 숙의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내용이다.

 

현재 유일하게 결정본으로 구할 수 있는 사계절판 [임꺽정](전9권)은 지난 48년 전6권으로 출간된 을유문화사판을 현대표 기법으로 고쳤고, 벽초가 지난 40년 [조광]지 10월호에 발표한 부분(200자 약 85장)을 마지막에 붙인 것이다. 그러나 벽초 홍명희가 광복 직후 월북하면서 미완성으로 남겼고, 북한에서도 완성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최근 확인됐다.

 

이 <자모산성>편은 [조광] 발표 부분의 앞에 놓이는 부분으로서, 임꺽정이 단순한 화적패들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조와민중이 벌인 정면대결을 형상화했음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작품 평가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임진록(壬辰錄) : 작자 연대 미상(조선조 후기)의 역사, 전쟁(군담-軍談) 소설.

* 주제 : 왜적에 대한 적개심과 임란 패배에 대한 정신적 보상을 보여줌.

---  문학이론 <피카레스크식 구성>

 


●잉여설(剩餘說) : 김동리 연작 소설(1938)

강면에서 시선을 돌리며, 철은 저만치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철을 따라 재호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연두빛 하늘, 분홍색 구름, 그리고 햇빛, 그리고 꽃봉오리, 그리고 ·······, 그리고, 무엇이 귀에 쟁쟁 지금도 자기를 불러주는 듯, 또 눈에 암암 어디서 자꾸 손짓을 하는 듯한 오월달 하늘, 아아 그러나, 그러나, 무엇이 있으랴, 가슴이 설레고 두 눈에 아뜩아뜩 현기가 일 뿐이다.

“종다리가 몇 마리나 되기 저렇게 시끄러울까.”

철의 목소리가 들린다. 재호는 역시 하늘을 쳐다보며,

“ 글쎄, 아주 하늘은 그놈들이 도맡았어.”

하고 고개를 돌려 철의 맑은 두 눈을 바라보았다.

󰈝 철은 화구(畵具)를 끌러서 스케치를 시작하였다.

재호는 혼자 강가에 어정대고 있었다. 돌멩이를 주웠다가는 버리고 주웠다가는 버리곤 하였다. 한참씩 강물을 바라보며 서 있곤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소란한 하늘에 귀 기울이고 서 있는 것이 재호는 즐거운 듯도 하였다.

그는 문득 자기의 나이가 몇 살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서른 넷에서 여섯 사이리라 하였다. 어쩌면 다섯이리라 생각하였다. 마흔에 가까운 나이라 생각하였다. 예순이 되어도 늘 슬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자기는 평생 이렇게 젊은 시절의 설움을 지니고 갈 것만 같았다. 그러자 그는 든든한 생각이 들었다. 남 모르는 고독과 슬픔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이 조금도 부끄러울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다행일는지 모른다고도 생각되었다.

󰈞 철이 어느덧 수채화 한 장을 그려내었다.

“저 건너 산과 자갈밭을 그려 봤습니다.”

“애썼다········· 이 물빛이 좀 어둡군.”

“전 오늘따라 산이 무척 밝은 것 같아요. 그래, 산 밝은 걸 그리려다 보니 물이 어두워졌구먼요.”

“산의 꽃은 이즘 피나?”

“철쭉도 졌을걸요.”

“······································”

“······································”

재호는 고개를 들어 건너편 산을 한참 바라보았다. 철도 같은 쪽을 바라보았다.

“산 그리기를 잘했다.”

재호는 문득 이렇게 엉뚱한 말을 하였다.

철이 잠자코 있으려니까, 재호는 또,

“산을 아주 뿌옇게 만들어 버릴 게지.”

하였다.

“좌우간 저 건너편 산에는 온갖 게 다 있는 것 같아요.”

“···························”

“하늘은 종다리 때매 쳐다볼 수 없어요.”

재호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햇살이 비낄수록 버들개지는 눈같이 쏟아졌다.


 

●잉여인간(剩餘人間) : 손창섭 단편 소설

오늘도 간호원을 도와 실내 청소를 마치고 난 익준은 대합실에 자리잡고 신문을 펴 들었다. 아마도 세상에 그처럼 충실한 신문 독자는 없을 것이다. 이 병원에 서 구독하고 있는 두 종류의 신문을 그는 한 시간 이상이나 시간을 소비해 가며 첫줄 처음부터 끝줄 끝자까지 기사고 광고고 할 것 없이 하나도 빼지 않고 죄다 읽어버리는 것이다. 익준은 또한 그저 신문을 읽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거기 보도된 기사 내용에 대해 자기류의 엄격한 비판을 가할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익준은 신문을 보다 말고 앞에 놓여 있는 소형 탁자를 내리치며 격분하여 고함을 질렀다.

“천하에 이런 죽일 놈들이 있어!” (발단부)

* 성격 : 전후소설

* 배경 : 6·25전후 사회, 서만기 치과 병원과 그 주변

* 경향 : 인본주의(휴머니즘)

* 시점 : 전지적 작가시점

* 구성

· 발단 : 치과 병원에 잉여 인간들인 익준, 봉우는 한담하기 위해 놀러옴

· 전개 : 봉우가 간호원을 짝사랑하고 봉우 부인은 서만기를 건물 증축 핑계로 유혹함

· 위기 : 유혹을 뿌리친 만기는 병원을 잃으면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

· 절정 : 병원을 비워 달라는 편지. 익준의 처가 죽음

· 결말 : 봉우 처의 돈을 융통해 장례를 치르고 익준은 상복 입은 아들을 대한다.

* 등장인물

· 서만기 : 치과의원 원장. 채익준과 천봉우의 중학 동창으로 ‘잉여인간’인 이들을 포용하고 어 려운 문제를 함께 풀어 나가며 자신의 삶을 굳게 지켜 나감.

· 천봉우 : 소극적, 실의에 빠져 있는 인물. 봉우가 간호원(홍인숙)을 사랑하나 만기는 이를 조 소하지 않음.

· 봉우의 처 : 경제 능력이 비범한 여인으로 행실이 나쁨

· 채익준 : 봉우와 함께 전쟁이 남긴 잉여인간들임.

· 채익준의 아들(채갑성)

· 은주 : 서만기의 처제. 형부를 연모함

* 주제 : 전후 사회의 인간 소외 고발

* 출전 : 1958년 [사상계] 발표

 


●장길산(張吉山) : 황석영 장편 대하소설

황해도는 동으로 함경도와 강원도에 인접해서 마식령 산맥의 산세에 닿고, 남은 예성강을 지경으로 경기도의 들판과 만나며 북은 대동강을 건너 평안도를 바라보는데 서쪽으로는 바다로 솟아나가 중국의 산동을 마주 보고 있다. 들판도 있으나 험한 산에 골짜기도 깊고, 오랫동안 수부(首府)에 가까워서 예부터 관의 혹정(酷政)에 민감했으며, 도둑이 많아 조정을 괴롭히곤 하였다. 팔대 명산의 하나이며 태고적 단군의 도읍지인 구월산은 그줄기가 남서쪽으로 우회하여 추산을 따라 불타산에 이르고 막바지로 그친곳에 장산곶(長山串)이라는 험한 해안 마루턱이 있으니, 옛노래에,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금월도 상봉에 님만나 보겠네

갈길은 멀구요 행선은 더디니

늦바람 불라고 서낭님 조른다.

 

하던 곳이 그곳이다. 그곳에 지방민의 입에서 지방민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 오는 전설이 있어 기록하였으되 (제1부 광대 발단부)

* 등장인물

· 장길산 : 쫓기는 노비의 몸에서 태어나 광대들의 손에서 길러진 그는 총명하고 날렵하고 힘 있는 젊은이로 성장한다. 같은 마을 力士(이갑송)과 함께 백성을 괴롭히는 간상배(奸商輩)들을 혼내주며 송상(박대근)과 손을 잡고 고통받는 민중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비운의 여인 묘옥과 평생을 함께 할 약조를 하지만 관가에 사로잡힌 그가 탈옥하는 사이에 헤 어지고 만다.

· 이갑송 : 장길산과 같은 재인말 출신의 광대로 힘이 장사다. 간상배 신복동 패거리를 징치하 며 괴력에 가까운 힘으로 길산을 도와 준다.

· 박대근 : 송도 상인 차인 행수로 상단을 거느리며 장길산과 손을 잡는다. 길산이 옥에 갇혔을 때 교묘히 탈출시키고 구월산 일당들과 광대패들을 돕는다.

· 묘 옥 : 흉년에 색상(色商)에 팔려 창기(娼妓)가 되었던 그녀는 재인말 총대 손돌노인에게 건져져서 그의 딸로 살게 된다. 뛰어난 미모의 그녀는 길산과 정분을 맺고 평생을 기약하며 가 슴에 ‘길(吉)’자의 연비(聯臂)를 새긴다.

· 마감동 : 구월산 화적패의 모사꾼인 그는 길산의 도움을 받아 잔인한 두목 노가를 처치하고 두령의 자리에 오른다.

· 우대용 : 신복동의 모함에 걸려 살인죄를 뒤집어 쓰고 투옥된 그는 박대근의 도움을 받아 죄 인들의 목을 치는 회자수로 전락하는데 때마침 투옥된 길산과 더불어 탈출한다.

· 강선흥 : 장연의 소금장수 출신의 力士. 남장을 하고 길산을 찾아나선 묘옥을 구해준다. 갑송 이와 힘겨루기 끝에 의형제를 맺는다.

· 고달근 : 안성사당패 모가비. 장사 강선흥과 한판을 겨루고 인연을 맺는데 묘옥을 그들 사당 패에 머물게 한다.

· 김 기 : 버림받은 선비 출신의 학자. 갑송이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진 그는 구월산 녹림당 과 한 패가 된다.

· 풍열스님 : 월정사의 괴짜 주지승. 문화 재인말 광대들을 탑고개에 정착시킨다. 장길산으로 하여금 금강산의 운부대사를 찾아가도록 권유한다.

 

󰏐 책을 내면서

두 해째나 장길산을 써오는 동안에 散文精神이란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가 있었다. 막대한 시간과 정력이 소요되므로 작가는 자연히 작품세계 속에서 울고 웃고, 싸우고 딩굴고, 넘어지고 일어나서, 사랑하고 미워하며, 더불어 사는 것만 같았다. 그러한 온갖 잡동사니와 불완전한 것들이 총화를 이루어 하나의 세계가 떠오르게 된다.

그것은 작가의 생생한 삶의 흔적이기도 할 것이다. 언제 끝날지 어떻게 전개될지, 성공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실패하고 있는지도, 똑똑히 가늠하거나 판단하지 못한 채, 일상이라는 시간과 자신의 무기력과 날마다 싸워야 하는 것이었다. (중략)

장길산은 비록 어느 도적의 이름이지만, 여기에 특정한 주인공이 없다. 그 시대의 각종 계층, 각종 신분의 사람 모두가 주인공인 것이다. 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은 그들이 조화되어 이루는 인간의 생활이다. 그렇게 쓰려고 노력하였고, 거의 신문 연재소설임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필자는 여기에다 우리들의 구전 민요·설화·민담·야사 등을 거의 줄거리나 원형그대로 도입하기도 했다. 이 소설의 연재를 읽어준 숱한 독자들게 감사를 드리고 계 속 좋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도록 앞으로도 격려 있으시기를 부탁드린다. (1976년 5월 황석영)

 


●장끼전 : 작자 미상의 고대소설

까토리 하는 말이,

“그 통 먹고 잘 된다 말은 내 먼저 말하오리다. 잔디 찰방(察訪)수망(首望)으로 황천 부사 제수(除授)하야 청산을 영이별하오리니 내 원망은 부대 마소. 고서(古書)를 볼량이면 고집불통 과하다가 패가망신 몇몇인고, 천고 진시황의 몹슬 고집, 부소의 말 듣지 않고 민심소동 사십 년에 이세 때에 실국(失國)하고 초패왕의 어린 고집 범증의 말 듣지 않다가 팔천 제자 다 죽이고, 무면도강동(無面渡江東)하야 자문이사(自刎而死)하야 있고, 굴삼려(屈三閭)의 옳은 말도 고집 불청하나가 진무관에 굳이 갇혀 가련공산 삼혼(三魂)되야 강상에 우는 새 어복(魚腹) 충혼 부끄럽다. 그대 고집 과하다가 오신명(誤信命)하오리다.”

 

-찰방수방 : 잔디로 덮인 무덤을 맡아보는 사람

-부소 : 진시황의 장자

-범증 : 초나라 항우의 모신

-진무관 : 초나라 회왕이 굴평의 충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란의 권유로 진나라를 방문하다가 사로잡혀 죽은 곳

-삼혼 : 사람의 넋

-오신명 : 몸과 목숨을 그르침

* 감상 : 여자(까투리)의 말이라고 무시하다가 죽은 남자(장끼)와, 장끼가 죽은 뒤 곧바로 재가(再 嫁)한 까투리를 통해 남존여비(男尊女卑)와 여자의 개가(改嫁)금지라는 유교 윤리를 풍자한 국 문소설이다.

* 줄거리 : 엄동설한에 장끼가 까투리가 아홉 명의 아들과 열두 딸을 데리고 굶주리는 형편이 되 어 밥을 찾아 큰 들을 지나게 되었는데, 들에서 발견한 붉은 콩 한 알을 발견했다. 간밤 꿈 이 야기를 하며 먹지 말라고 간청하는 까투리의 말을 무시하고 그 콩을 먹으려다가 덫에 걸리고 만다. 이때 죽음을 앞둔 장끼가 까투리에게 유언하기를 절대로 개가하지 말라고 한다.

까투리가 남편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조문(弔問)온 부엉이, 물오리 등이 까투리에게 청혼하나 이를 거절하는데 그러다가 조문 온 홀아비 장끼를 본 후 마음을 바꾸어 그와 재혼한다.

* 갈래 : 국문소설, 우화소설

* 주제 : 남존여비(男尊女卑)와 여자의 개가(改嫁)금지라는 유교 윤리를 풍자

 


●장마 : 윤흥길 단편

밭에서 완두(豌豆)를 거두어 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粉末)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다.

동구밖 어디쯤이 될까. 아마 상여를 넣어 두는 빈 집이 있는 둑길 근처일 것이다. 어쩐지 거기라면 개도 여우도 길고 음산한 울음을 충분히 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먼 곳일지도 모른다. 잠시 꺼끔해지는 빗소리를 대신하여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짬을 메우고 있었다. 그것이 저희들끼리의 무슨 군호(軍號)나 되는 듯이 난리통에 몇 마리 남지 않은 동네 개들이 차례로 짖기 시작했다. (발단부)

* 줄거리 :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날, 우리집에 국군인 외삼촌의 전사 소식이 전해진다. 외할머니 는 외삼촌의 전사 통지를 받고 빨갱이들은 다 죽어라고 저주하는 바람에 빨치산 삼촌을 생각한 할머니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나(동만) 역시 어떤 사람의 꼬임에 빠져 삼촌이 집에 왔었다는 말을 해서 아버지가 지서에 끌려가 한동안 고생하게 했던 사건을 할머니의 분노를 산 상태였 다.

한편 할머니는 ‘아무 날 아무 시’에 아무 탈없이 돌아 온다는 점장이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 었다. 그 날이 가까워지면서 우리 집은 장마통에도 할머니의 성화 때문에 대단히 바빴다. 드디 어 그날 그러나 오리라던 삼촌은 할머니의 기대와 달리 오지 않는다. 대신 나타난 것은 커다란 뱀이었고, 할머니는 기절한다. 그때 뱀을 삼촌의 현신으로 생각한 외할머니가 잘 수습하여 무사 히 내보낸다. 할머니는 뱀을 잘 보내 준 외할머니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화해하고 세상을 떠 난다.

*감상

① [장마]는 6·25가 한 가정에 준 상처를 소재로 하고 있다. 삼촌은 국군, 외삼촌은 빨치산에 속해 있는 이 가정의 비극은 남북 분단과 전쟁으로 찢어지고 갈려진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으 로까지 확대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비극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은 남북한간의 이데올로기 대 립이다.

남한과 북한이 각각 주장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가장 결속되어야 할 가정조차 갈라놓고 만 것 이다. 그러나 각각의 이데올로기가 주장하는 바를 평범한 이 가정의 구성원들이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해 서로 반목(反 目)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의 아들이 선택한 이데올로기를 잘 알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여기서 이들이 반목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혈육의 정이다. 그들이 반목하는 것은 서로 반대편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지, 이데올로기의 직접적 작용에 의한 것은 아니다.

② 이같은 대립은 해소하기 위해 이 작품에서 시도된 것은 민족 전통적 정서인, ‘뱀’으로 상징 된 샤머니즘을 통해 그 동안의 반목을 극복하는 결말로,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 대립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의 하나로서 민족적 보편 정서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분열된 민족이 합하려 면 양쪽에서 공통적인 것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 공통적인 것 중의 하나가 민족적 보편 정서라 는 것이다. 그러나 샤머니즘적인 것만이 민족적 보편 정서는 아니다. 또 다른 것으로 두 할머니 가 다 같이 가지게 된 피해자로서의 한(恨)을 들 수 있다. 과정은 어떻든 아들을 잃었다는 점은 두 할머니가 공통되며, 이런 점에서 남·북한은 같은 피해자인 셈이다.

③ ‘장마’라는 계절적 배경이 가지는 의미 --- 󰃫 <배경(背景)>

④ <장마>의 시점 : 유년기 시점

· 유년기 아동의 순진한 눈을 이용하는 이런 시점은 남북한의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도 그것의 부정적 실상을 잘 드러내 준다는 이점이 있다.

--- 󰃫 어휘 <신빙성 없는 화자>

--- 󰃫 주요섭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 송병수 소설 <쑈리 킴>

--- 󰃫 신경림 시 <장마>

 


●장한몽(長恨夢) :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

* 번안소설 -- 원작 : 오사키 <금색야차(金色野叉)>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 : 작자 미상의 고대 소설

* 감상 : 전처 소생의 딸과 계모 사이의 갈등을 그린 작품으로, ‘계모설화’, ‘신원(伸寃)설화’, ‘환 생설화’ 등을 근원 설화로 하여 줄거리가 진행되고 있다.

* 줄거리 : 계모의 구박과 모해(謀害)로 연못에 빠져 죽은 장화와 홍련의 혼령이 원한을 풀기 위해 관부에 나타나 부사들이 죽게 되자 담이 큰 ‘정동우’란 사람이 와서 해결되어 그녀들은 환생하 여 행복하게 살게 된다.

* 구조 : ‘낙원추방 - 고난 - 낙원회귀’형 구조

--- 󰃫 <춘향전>, <심청전>도 이와 같은 구조임

* 주제 : 권선징악

 

󰏐 근원설화

󰆲 계모설화 - 서양의 ‘신데렐라’ ‘콩쥐팥쥐’ 이야기

1. 배좌수의 처 장씨가 두 딸을 낳고 갑자기 세상을 떠남.

2. 못생긴 허씨가 후처로 들어와 아들 셋을 낳는다.

3. 배좌수가 두 딸을 끔직히 사랑하자 허씨는 딸을 모해(謀害)함.

· 살해 동기 - 가부장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욕심

4. 껍데기 벗긴 쥐를 잠든 딸의 이불 속에 밀어 넣고는 딸이 부정을 저질렀으 니 가문을 위해 없애 버려야 한다고 배좌수를 설득한 허씨는 아들을 시켜 장화를 처치함. 홍련도 못에 빠져 자결함.

󰆳 신원(伸寃) 설화

1. 장화·홍련의 혼백이 밤마다 나타나 철산 부사를 죽인다.

2. 그러나 주인공 <정동우>가 나타나 원귀의 이야기를 듣고 사건을 멋지게 해결함.

· 장화가 낳았다는 핏덩이를 가져오게 하여 배를 가르게 하는 판결

󰆴 환생(還生) 설화 : 심청전, 거타지 설화 등에서도 보임

1. 환생을 통해 낙원으로 회귀하는 장화·홍련

2. 배좌수의 제3처 윤씨의 쌍둥이로 태어나 성장, 결혼, 행복하게 삶

 


●전등신화(剪燈新話) : ---  책 <전등신화>

 


●젊은 느티나무 : 강신재 단편 소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 할 수 없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 쓰고 나오는 때이면 비누 냄새가 난다. 나는 책상 앞에 돌아앉아서 꼼작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 그의 표정이나 기분까지라도 넉넉히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

티셔츠로 갈아입은 그는 성큼성큼 내 방으로 걸어 들어와 아무렇게나 안락의자에 주저 앉든가, 창가에 팔꿈치를 짚고 서면서 나에게 방긋 웃어 보인다.

“무얼 해?” / 대개 이런 소리를 던진다.

그런 때에 그에게서 비누 냄새가난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가장 슬프고 괴로운 시간이 다가온 것을 깨닫는다. 엷은 비누의 향료와 함께 가슴 속으로 저릿란 것이 퍼져 나간다. ---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뭘 해?”

하고 한마디를 던져 놓고는 그는 으레 눈을 좀더 커다랗게 뜨면서 내 얼굴을 건너다 본다. (발단부)

* 감상 :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으로서 재혼한 남녀 사이에 있는 이복 남매 간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감동은 줄거리의 특이성은 물론이려니와 표현의 섬세함에 있다. 순수하면 서도 가슴 졸이는 사랑을 맛보게 한다. 또한 이 작품은 서술자인 ‘나’의 내적인 독백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에게 대해 깊은 마음의 말을 간직하고 있으나 쉽게 드러내 말할수 없는 ‘나’ 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오빠 현규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 속 세계가 작품의 구심점을 이 루며 사소한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순수한 사랑으로 구상화된다. 강한 서정적인 성향으로 마음 속 세계를 응시하면서 깊은 안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이 다른 작품인 <TABU>도 이런 성향의 작품이다. 사회 규범상 용납할 수 없는 사랑을 ‘윤리적 차원’에서 해 결하기보다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청순한 감정을 깨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현실의 고통과 아픔을 받아들이는 현규 와 숙희의 의지가 감동적이다.

 

* 줄거리 : 18 살의 여고생인 숙희와 22 살의 대학생인 현수는 한 집에사는 오누이와 같은 관계이 다. 즉 숙희는 후처가 데리고 온 딸이고 현규는 전처 소생의 아들이다. ‘나’ 즉 여고생 숙희는 ‘그’ 현규에게 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로 둘 다 균형과 조화가 잡혀 있는 아름다운 남녀이다. 그녀의 엄마는 무슈 리와 재혼을 했다. 혈연이 없는 남남이면서 그들의 부모가 부부라는 형식적인 제약때문에 서로 고민한다. 오누이의 관계에서 사랑하는 사 이이므로 고민에 빠지게 되나, 숙희가 알고 있는 K 장관의 아들이자 의과대학생인 지수가 숙희 에게 러브 레터를 보내자 현규는 분한 마음에 숙희의 뺨을 갈기고, 숙희는 현규의 사랑을 확 인하고 기뻐한다.

의부가 외국으로 떠나고 엄마가 따라가자 숙희는 엄마가 없이 현규와 둘이만 있어야 할 집에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걱정한다. 그래서 그녀는 할머니에게 다녀온다고 우기고 서울을 떠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으면서 시골로 내려가서 거의 매일 뒷산에 올랐다.

 

느티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려고 할 때, 현규가 나타났다. 둘은 무의미한 윤리의 껍질을 벗어 던지고 연인으로 돌아가 사랑해도 괜찮을 방법을 찾으면서 느티나무를 잡고 이성으로 각자의 현재의 길(숙희에게는 학업의 길)을 걷자고 맹세한다. 우리에게는 외국으로 떠나는 길도 있다고 하며······, ······젊은 느티나무는 이들 연인의 기쁨을 품은 슬픈 맹세를 듣는 증인이 된다.

바람이 마주 불었다.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펑펑 울면서 하늘로 퍼져가는 웃음을 안고 있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 다.(본문 중)

 

* 시점 : 1인칭 주인공

* 갈래 : 낭만주의 소설, 성장소설

* 배경 : 1950년대 6·25전쟁 이후 S촌과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 표현상의 특징 : 내면 심리와 외부 사건의 조화, 독백체

* 구성

· 발단 : 나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이복 오빠 현규를 만나게 된다.

· 전개 : 나는 현규를 이성으로 느끼며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 위기 : 현규 친구로부터 나에게 온 연애 편지에 대해 현규가 질투한다.

· 절정 : 괴로운 마음을 안고 시골로 간 나에게 현규가 찾아 온다.

· 대단원 :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훗날을 약속하며 각자 현재의 길을 간다.

* 등장인물

· 나 = 숙희(주인공) : 18세의 여고생. 후처가 데리고 온 딸. 시골 외가에서 서울로 어머니를 따라 상경함. 이복 오빠(현규)와 동생 사이의 근친 상간이라는 윤리적 갈등을 겪음

· 그 = 현규 : 대학생. 전처 소생의 아들. 숙희의 이복 오빠로서 건강하고 세련된 젊은이. 숙희 와의 사이에 놓인 윤리적 갈등을 차분하게 헤쳐 나가는 인물

· 므슈 리 : 현규의 아버지이자 숙희의 새아버지. 뚱뚱한 경제학 교수

· 어머니 : 남편과 사별하고 므슈 리와 재혼함

* 주제 : (현실의 장애를 넘고 이루고자 하는) 젊은 남녀의 순수한 사랑

* 출전 : [사상계](1960)

  ‘젊은 느티나무’의 상징성 : 두 연인의 약속을 듣는 증인, 꿈을 잃지 않는 젊음

 


●제3인간형(第三人間型) : 안수길 단편 소설

 

1.

토요일 오후였다.

대청소를 한다고 비짜루(빗자루)며 물이 담겨 있는 바께스며, 이런 것들을 들고 다니며 떠들던 아이들도 이미 물러간 뒤였다. 따로 떨어진 일학년 교실에서 고등학교 합창부의 이부합창 연습하는 소리가 풍금의 멜로디에 섞이어 제법 곱고 우렁차게 전해 온다.

운동장에서 오육 명의 아이들이 싸쓰바람으로 땀을 흘리면서 바스켓볼 연습하는 외에 천 오백여 명이 날마다 생선 떼같이 펄펄 뛰던 교실도 교정도 한적하기 짝이 없다. 계절이 물러간 피서지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런 서글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로 무슨 큰 잔치를 치르고 난 뒤의 정적이라고 할까? 거뜬하면서도 피로가 마음을 가려앉혀주는 권태 --- 이런 기분에 잠기면서 석은 직원실 의자에 게으르게 기대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다행히도 석의 의자는 창밖으로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하였다.

눈을 들면 방파제 밖, Y학교가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암벽과 불쑥하니 내밀어 누워있는 영도산과의 사이에, 거울 같은 해면을 여수 항로의 맵시 좋은 여객선이 바다를 밭갈이하면서 내왕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활짝 개인 날이면 멀리 남쪽 수평선 위에 대마도가 자주빛 안개 속에 시야에 들어왔다. (발단부)

3.(전략)

“교육도 사내의 보람 있는 일이거니 차라리 훌륭한 교육자가 되자!”

그러나 교육가로서 석은 아직 애숭이였다. 아니 엑스트라의 자격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니, 또 이십 년, 마음의 지주였고 생활의 목표였던 그 길을 일조에 분필로 바꾼다는 것이 자신을 배반하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더욱이 제 자신에 충실하여 학교를 그만둔다면, 또 그나마도 생활의 방편이 막히는 것이었다. 직업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자신에도 엉거주춤하고, 이러한 자책(自責)의 채찍을 맞으면서, 석은 점심 밥그릇과 원고지권이 함께 들어있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벌써 십여 개월 날마다 삭막한 통근 코스를 흐리터분한 분위기 속에 학교에 왔다갔다 하였다. 초조감만 북돋아졌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은 공허해 간다. 그리고 안일(安逸)을 탐하여 현실과 타협하려고 들었다.

허탈된 마음으로 학교 주위의 바다 풍경을 즐기고, 이레 만에 찾아오는 일요일을 고대하는 게으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가 조운에게서 정신적 위압을 느낀 것은 그의 내면이 이러했기 때문이었다. (3장 끝)

7(전략)

“선생님 넥타인 항상 검정 거니 그건 무얼 의미하는 거예요?”

“내 넥타이가 검정이었던가?”

그제야 나는 내 넥타이가 낡아빠진 검정 것임을 깨닫고 그것을 어루만지며 우엇네.

“의민 무슨 의미야, 없으니 이걸 맺지.”

“인생에 대한 상장(喪章) 아녜요?”

“상장? 허허, 그런 걸 일일이 생각하구 옷을 입다간 머리가 빠지겠네.”

“난, 선생님 대할 때마다, 그리구 늘 검정 넥타이만 매구 계시는 걸 보구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무렇게나 생각하시지 그래.”

“체홉의 <갈매기>아지죠? 엊저녁 읽었는데 퇴역 중위의 딸 마아샤가 늘 검정옷을 입고 있는 걸 보구, 소학교 교사 메도베 ·········· 무언가 하는 청년이 묻지 않아요. 왜 검정옷을 입고 있는가구. 마아샤의 대답이 그거예요. 인생에 대한 상장이라구.”

“그런 거 있지, 그러나 난 그런 상징적인 의미로 검정 넥타일 매는 건 아냐.”

“선생님 태도와 검정 넥타인 어울려요.”

“어떻게 하는 말인지?”

“가령 세속적인 것에 초연한 거라든가········· 세상 일 얼굴 찡그리구 꼬치꼬치 캐서 생각하는 거라든가.”

“··············” (하략)

* 감상 : 6·25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세 사람의 삶의 방식을 조명하고 결국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인간이 어떻게 변모하는가를 살핀 작가의 문제 작인 것이다.

* 배경 : 6·25동란 당시의 부산과 그 전의 서울

* 경향 : 사실주의

* 시점 : 전지적 작가

* 어조 : 자조적(自嘲的), 반성적(反省的)

* 등장인물

· 석 : 전쟁 전 신문사에서 작가 활동. 피란지(부산)에서 생계를 위해 교원이 됨. 친구 조운을 만나 조운을 따르다 간호장교로 입대한 ‘미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삶의 태도에 감명을 받 음. 그런데, 자신의 어떤 하나의 일에도 충실치 못하는 모습에 대한 자책으로 괴로워한다.

· 조운(본명 최춘택) : ‘독특한 철학적인 문제를 난삽(難澁)한 문체로 표현하는’ 작가로서 개 성이 강한 인물. 문학에 대한 결백성과 자신에 대한 충실성을 인정받아 존경을 받는 인물. 6·25 가 발발하자 문학을 버리고 사업에 손을 대어 돈을 버나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생각도 얕아 지고,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한다.

곧, 반세속적 ⇨ 세속적 인물(로 변신)

· 미이 : 모 회사 중역의 딸로 조운을 사모하는 철부지 문학 소녀였으나 전쟁 중 가족의 죽음 을 보며 신념의 인간으로 성숙되어 간다. 조운의 경제적 도움을 거절하고 간호 장교로 지원한 다. 이때 ‘조운선생’이라고 쓴 봉투와 검은 넥타이를 조운에게 보낸다.

* 주제 :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져 가는 인간형과 새로운 각성으로 거듭 태어나는 인간형의 대비

* 출전 : 1953년 [자유세계]에 발표

 


●제1과 제1장 : 이무영 단편 소설

‘이만하면 나도 농촌 제 1과는 마친 셈인가?’

구수한 풀 향기가 코를 통해서 가슴 속까지 스며드는 것을 그것이라고 느끼며 수택은 이렇게 혼자 중얼거려 본다. 밤 이슬에 눅눅하니 젖은 셔츠에서도 차츰차츰 불쾌한 감촉이 없어져 간다.

* 감상 : 이 작품은 전원파 문학인의 한 사람인 작가의 귀향 뒤의 첫 작품이다. 제목이 말하고 있 듯이 주인공 수택이 겪는 어려움, 또는 작가가 그것을 매개로 하여 그리는 농촌의 실상은 매 우 단초적인 것이다. 주인공인 수택은 단지 “흙냄새를 맡아야 한다”는 지극히 소박한 이유만 으로 귀향을 한다. 농촌의 참모습은 수택이 낭만적 지식인의 때를 완전히 벗고 한 사람의 참 농민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드러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런 주인공 수택의 농촌 정착 과 정은 그의 <흙의 노예>(속 제 1과 제 1장)」에서 구체화된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당시의 평단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 진정한 농민이 될 수없음을 지적했었다. 이 작품의 농촌 소설로서의 특색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주인공 수택은 농민 보다 우월하다는 영웅 의식으로서가 아니라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농민과 동일해지려는 의 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둘째, 주인공 수택이 반농 반필(半農半筆)의 문필가 겸 농민이라는 점, 셋째, <흙>, <상록수> 같은 작품처럼 계몽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다. 이 작품 의 핵심은 수택의 귀향 동기이다. 작가 생활을 할 수 없어서 혹은 생활고 때문에 귀향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나, 그것보다는 이 작품에서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흙내’에 대한 향수때문 이라고 규정 짓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본다.

 

* 갈래 : 단편, 목가적인 농민소설(농촌 귀농형)

* 시점 : 전지적 작가

* 배경 : 1930년대 후반기, ‘샌터’라는 시골

* 특징 : 계몽성보다는 전통적 한국 농민의 흙에 대한 열정과 삶의 모습 제시

* 줄거리

· 주인공(수택)이 가족과 함께 이삿짐을 싣고 시골 신작로로 지나간다.

· 일찍이 수택은 12살에 타지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어느 겨울 집에 든 도둑을 유도 실력으 로 잡았는데, 오히려 아버지는 잃어버린물건도 없는데 몰인정하게 했다며 수택을 태렸던 적이 있다.

· 그후 동경으로 수택은 유학, 귀국 후 신문사 사회부 기자 생활을 함

· 신문사일에 쫓겨 일금 80원 받는 샐러리맨으로서, 동경에서부터 써오던 소설을 쓰지 못하게 되자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청량리에서 맡아본 흙냄새를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결심 한다.

· 농촌 생활에 적응하고자 하는 수택에게 아버지는 물 자리가 좋은 여덟 마지기의 논과 집 한 채를 받는다.

· 그런데 고향 생활에 잘 적응못하고 있는 수택은 스스로 ‘패배자(敗北者)’라며 자학(自虐)하기 도 하나 ‘흙내’로서 그 고통을 이겨낸다.

· 수택은 가을 추수 후 보람을 느끼나 소작료를 제하고 비료대와 지세(地稅)를 내자 떨어지는 것이 없자 착잡해 한다.

· 아버지는 거친 목소리로 지게를 짊어지라고 호통치자 수택은 눈과 콧속이 화끈해지며 넘어 진다.

· 코피를 흘리며 수택은 걸어간다.

* 등장인물

· 김수택 : 흙내음 때문에 귀농한 농촌 출신 지식인.

- 농민보다 우월하다는 영웅적 인식이 없는 인물

- 도회지 생활을 청산하고 농민과 동일해지려고 노력하는 인물 (농민 겸 문필가인 점)

· 김노인 : 수택의 아버지. 평생을 흙 만지며 살아온 전형적 인물

* 이 작품의 속편 <흙의 노예>

* 주제 : 농촌 생활에 대한 향수와 귀농(歸農)

 

 이광수 <흙> 에서의 ‘허숭’과 ‘수택’의 공통점, 차이점

차이점

<흙> --- 허숭

<제일과 제일장> --- 김수택

출신유형

농촌 출신 문필가

농촌 출신 문필가

인간형

관념적 이념에 들뜬 계몽적 면모의 인간형

농촌 세계에 대한 작가의 관념적 이상화가 빚어낸 인물로서 농촌 생활에 적응하려고 무척 노력하는 인간형

 


●조웅전(趙雄傳) : 작자·연대 미상의 고대 소설

* 감상 : 중국 송나라 때 조승상의 아들 웅과 장진사의 딸 장소저와의 애정담과 주인공 조웅의 전쟁을 통한 무용담(武勇談)을 그린 허구적 영웅 소설

 


●종생기 : 이상 소설

여기 이 이상(李箱) 선생님이라는 허수아비 같은 나는 지난밤 사이에 내 평생을 경력(經歷)했다. 나는 드디어 쭈글쭈글하게 노쇠해 버렸던 차에 아침(이 온 것) 을 보고 이키! 남들이 보는 데서는 나는 가급적 어쭙지 않게 (잠을) 자야 되는 것이거늘, 하고 늘 이를 닦고 그리고는 도로 얼른 자 버릇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또 그럴 세음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짐짓 기이하기도 해서 그러는지 경천 동지(驚天動地-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게 함)의 육중한 경륜(經綸)을 품은 사람인가보다고들 속는다. 그러니까 고렇게 내 시시한 자세나마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唯一無二)의 비결이었다. 즉 나는 남들 좀 보라고 낮에 잔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고 흔희작약(欣喜雀躍-너무나 좋아서 뛰며 기뻐함), 나는 개세의 경륜과 유서의 고민을 깨끗이 씻어 버리기 위하여 바로 이발소로 갔다. 나는 여간 아니 호걸답게 입술에다 치분(齒粉)을 허옇게 묻혀 가지고는 그 현란한 거울 앞에 가 앉아 이제 호화 장려(豪華壯麗)하게 개막하려 드는 내 종생(終生)을 유유히 즐기기로 거기 해당하게 내 맵시를 수습하는 것이었다.

* 감상 : 특별히 줄거리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는 이 소설은 이상이 죽기 한 달 전에 쓴 작품이 다. '나는 날마다 종생한다. 나는 하루를 평생으로 길게 느낀 만큼 삶에 지쳐 있으며, 이미 너 무 오래 살았다. 그럴 듯하게 죽어야 한다는 것만을 매일 생각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정희에 게서 엽서가 온다. 다른 남자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나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만나자는 편 지다. 나는 정희를 만나고, 기발한 말로써 그를 놀라게 하고자 한다. 그때 정희에게서, 헤어졌 다던 남자 중 하나에게서 바로 어제 온 편지가 떨어진다. 며칠 전의 밀회를 회상하는 내용이 다. 나는 속은 것이다. 나는 죽어 있는 시체, 또 다시 종생한다.'는 내용이다.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자신의 삶을 그대로 소설화한 사소설)

· ‘나’는 유서를 쓸 때는 물론이고, 외출 준비를 하면서까지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

* 기법 : 심리주의(특별한 줄거리 없이 내면 심리를 묘사함)

 

1)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못한 것은 ? ❶

❶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진술했다.

② 사소설(私小說)의 방식을 이용했다.

③ 화자의 심리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④ 지식인의 고뇌를 드러내려 했다.

 2) 서술자의 내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찾아 한 단어로 쓰시오.

 종생(終生) 혹은 자살(自殺)

 


●죽은 시인의 사회

* 줄거리

 

① 1959년 미국 버몬트. ‘전통, 명예, 규율, 최상’을 교육 이념으로 지켜온 웰튼 아카데미는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이 학교는 놀란 교장의 엄격한 지도 아래 미국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아이비리그 대학교들에 75%이상의 합격률을 자랑하는 일류 고교로서 자식들에게 엘리트의 꿈을 실현하려는 학부모들에게서 절대적인 신회를 받고 있다.

② 그 학기에 이 학교 선배인 존 키팅이 신임 영어교사로 부임한다. 키팅은 런던의 명문고등학교에서 수년 동안 교단에 섰던 유능한 교사이다. 숨막히는 학교에서 키팅 선생은 격식을 파괴한 수업방식으로 학생들을 사로잡는다.

③ 키팅 선생은 진학 예비학교의 선생답지 않게 교과서의 서문을 찢게 하고 책상 위에 올라가서 생각하게 하는 등 상식을 벗어난 수업방식으로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수업을 진행하고 ‘제군 오늘을 살자!’는 등의 명언을 구사하면서 학생들의 분방한 개성을 북돋워 주었다.

④ 이런 수업 방식에 교직원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했으나 키팅 선생은 굽히지 않고 교육은 독립심을 키워 주는 것이라 주장한다.

⑤ 선생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학생 시절 비밀 써클인 ‘죽은 시인들의 사회’를 인생의 진수를 만끽하려는 모임이었다고 이야기 해 준다. 닐, 코드, 믹스 등 일곱 명으로 구성된 새로운 ‘죽은시인들의 사회’가 미밀리에 활동을 시작한다. 심야 기숙사를 탈출하여 각자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고 마음을 털어 놓고 인생에 대해 고민한다. 닐은 부모가 기대하는 의사가 되기보다는 연극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있고, 달튼은 축구 선수, 녹스는 자유 분방한 사랑에 열중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혀 있다. 그들은 그들의 꿈과 부모님들의 기대 사이의 갈등을 발견하고 고민한다. 닐이 교내 연극의 주인공으로 뽑혀 아버지의 붙같은 노여움을 사지만 선생의 도움으로 멋지게 공연을마치게 된다. 이에 아버지는 닐을 육사로 전학시켜 보내려 하지만 닐은 자살하고 만다.

⑥ 이 자살사건에 대해 학교측은 철저한 원인 규명에 나서 그 책임을 ‘죽’써클을 권유한 키팅선생에게 돌리고 재단과 학부형의 동의를 얻어 학교에서 추방한다. 그가 떠나는 날, 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책상 위에 올라서서 ‘우리 선장 키팅’을 외쳐대면서 작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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