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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습사전 / 소설(ㅊ~ㅎ)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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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풍경(川邊風景) : 박태원 장편 소설

그러한 것을 생각하려 들었으나, 사실은, 자기가 가진 돈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될 뿐 아니라, 우선, 얼마 안 있어 시잘될 부회의원 선거전에, 그 비용으로, 한 이천 원 융통하지 않으면, 모처럼 벌렀던 입후보도 적지 않이 곤란한 일이라고, 문든 그러한 것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청춘’만큼은 불가능사가 아닌 듯싶은 ‘부귀’가 버썩 탐이 났다.

‘무어, 돈이 제일이지. 지위가 제일이지.’

민주사는, 자칫하였다면 입 밖에까지 내어 중얼거릴 뻔한 것에 스스로 놀라, 거울 속에서 다른 이들의 얼굴을 찾으려니까, 저편 행길로 난 창 앞에가 앉아 있는 이발소 아이놈의 얼굴이 이 편을 향하고 있는 것과 시선이 마주쳐, 어째 그 사이 그 놈이 자기의 표정으로 자기의 마음 속을 화안하게 들여다본 것만 같아, 그는 제풀에 당황하여, 순간에,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그러나 별로 민주사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다시 유리창 너머로, 서양녘의 천변 길을 오고 가는 행인들에게 눈을 주었다. (제2절 이발소의 소년 중 - 전개부)

* 감상

· 여인들의 집합 장소(빨래터)와 남성들의 사교장(이발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면들을 상세히 그려나감

· 행랑어멈, 이발사, 포목전 주인, 첩, 여관 주인, 당구장 보이, 아이스케키 장수, 전매청 직원 등 70여 명의 각종 직업의 인물들이 모자이크식으로 등장

 

* 갈래 : 장편, 세태소설

* 배경

· 시간 : 1930년대 어느 해 2월~이듬해 1월

· 공간 : 청계천변을 중심으로 한 서울

* 성격 : 모더니즘 계열

* 시점 : 전지적 작가(특히 카메라를 들고 찍는 듯한 기법이 특이함)

* 표현상의 특징

· 서민의 생활 모습을 50개의 절로 나누어 서술

· 카메라 아이(camera eye) 기법을 통해 상이한 장소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여줌으 로서 시간성과 공간성을 극대화함

* 구성 : 에피소드형

· 일반적 구성 단계인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 따르지 않고 에피소드형으로 구성하여 서술

 

* 등장인물 : 약 70여 명(특정한 주인공 부재)

· 재봉이 : 15-6세 가량의 이발소 사환. 손님이 없을 때 창밖을 내다보며 청계천변 이발소와 빨래터 골목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를 해 나간다. 주로 은방주인과 민주사가 그의 눈에 주로 비치는 인물이다.

· 창수 : 꾀많은 한약국집 사환. 재봉이 또래의 소년으로 시골에서 올라와 복잡한 서울의 풍경 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봉급을 적게 주는 주인을 비판하며 도시의 아이로 성장한다. · 민 주사 : 재력있는 50대 사법서사. 안성집과 취옥 사이를 오가며 주색잡기(酒色雜技)에 골 몰. 배금주의자. 부의회 선거에 낙선하고 마작 놀음에 밤을 새운다.

· 종로 은방 주인 : 순박한 시골 처녀를 서울로 유린해 온 금점꾼 여급에게 돈을 주어 환심을 하려 함

· 하나꼬 : 스물살 카페 여급.

· 이쁜이 : 천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 친정으로 쫓겨남

· 금순이 : 순박한 시골 색시. 가족과 헤어져 기미꼬, 하나꼬와 살아감

· 만돌 어멈 : 포악한 남편과 사는 행랑 어멈

 

* 주제 : 1930년대 서울 중산층과 하층민의 삶과 애환

* 의의 : 세태소설의 대표작

* 출전 : 1936년 [조광] 연재(1936. 8-1937. 1)

 

󰏐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8>박태원의 `천변풍경' (청계천/글 최재봉)

 

청계천은 경복궁 서북쪽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서울의 중심부를 뚫고 동진한 다음 답십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물길을 틀어 내려가다가는 성동구 사근동과 송정동, 성수동이 만나는 지점에서 중랑천과 합수해 한강으로 흘러든다. 성수대교와 동호대교의 어름이다. 태백시 인근에서 샘솟아 강화 북쪽의 서해로 몸을 풀기까지 5백㎞ 가까운 한강의 흐름이 대체로 서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한강의 제2지류인 청계천의 물길은 본류와는 정반대되는 행로를 밟고 있는 셈이다.

 

본디 이름이 청풍계천(淸風溪川)인 청계천은 그러나 일제 때 광화문 네거리에서 광교까지가 1차로 복개된 데 이어 1958년부터 시작된 여러차례의 복개로 지금은 용두동과 마장동 어름 이하를 제하고는 정작 물길을 볼 수는 없게 돼 있다. 폭 50m의 아스팔트가 덮이고 그것도 모자라 삼일고가도로가 공중을 가로지르는 지금의 청계천에서 `맑은 개울'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짐작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복개되기 전의 청계천에는 제법 맑은 물이 흘렀고, 시골의 여느 개울가와 마찬가지로 아낙들은 빨래더미 속에 일신의 번뇌와 세상 근심을 함께 넣어 두들기고 비벼 빨았다. 박태원(1909~86)의 장편 <천변풍경>은 바로 이 청계천 빨래터의 광경으로부터 시작한다.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히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 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

 

1936~7년에 걸쳐 월간 [조광]에 두차례로 나뉘어 연재된 <천변풍경>은 일제 통치의 극성기라 할 30년대 중반 서울 서민층의 삶을 꼼꼼히 재현하고 있다. 모두 50개의 짧은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제목이 가리키는대로 청계천을 중심으로 모여 사는 장삼이사들의 삶의 이모저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십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중심되는 사건도 주인공이라 할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이 소설에서 어찌 보면 청계천이야말로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청계천 주변이라는 것말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과 사건들을 하나의 소설 속에 모아 놓는다. 요컨대 청계천은 이 소설의 조직원리가 된다.

 

젊은 첩 안성댁이 학생놈과 보쟁이는 모양을 보고 속을 태우는 민주사, 바람둥이 남편에게 시집을 갔다가 남편의 무관심과 시부모의 학대를 못이겨 이혼하고 돌아오는 이쁜이, 처녀과부 신세로 호색한인 시아버지의 눈길을 피해 무작정 상경한 금순이, 술집 여급에서 부잣집 맏며느리로 신분이 격상됐으나 남편의 변심과 시댁 식구들의 냉대로 괴로워하는 하나꼬, 금순이와 하나꼬를 친언니처럼 보살피는 또다른 여급 기미꼬, 시골 가평에서 상경해 어리보기 취급을 당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서울 깍쟁이로 변모하는 소년 창수, 청계천 다리 밑 움막에 거주하는 거지들….

 

소설은 이들 천변 인물군상의 1년 남짓한 삶을 카메라의 눈처럼 충실히 좇을 뿐 그것들을 모아 하나의 통일된 주제를 일구어내거나 섣불리 도덕적 판단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소설은 문득 시작하고 불쑥 끝난다. 기승전결이 따로 없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에도 천변에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었고, 소설이 끝난 다음에도 그들의 삶은 아랑곳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럴진대, 소설의 의미란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 속에서 청계천은 근대와 전근대, 도시와 시골이 만나는 접경이다. 창수와 금순이, 만돌 어멈 등은 각자의 사정이야 어떠하든 시골집을 떠나 서울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시험해보고자 할 때 청계천변을 그 첫 무대로 삼는다. 그곳에는 기생과 카페 여급이 나란히 활보하며, 냉혹한 이익의 추구와 끈끈한 인간애가 공존한다. 시골에서와는 달리 청계천의 빨래터에는 엄연히 주인이 있어 빨래꾼들에게서 돈을 받아서는 다시 나라에 세금을 낸다. 그러나 전후사정을 모르고 빈손으로 나온 시골뜨기 아낙이 다른 빨래꾼들의 역성 덕분에 첫번의 요금 지불을 면제받을 만큼은 인정이 살아 있다.

 

<천변풍경>은 이처럼 두개의 시대의 공존과 자리바꿈을 세필화의 필치로 그려내지만, 그것은 그뿐,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 임화가 그 자연주의적 편향을 지목해 `세태소설'이라 이름붙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는 소박한 휴머니즘의 관점은 있을지언정 뚜렷한 이념이나 사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소설 속 어느 인물에게서도 당시의 민족적․계급적 모순에 대한 자각을 엿볼 수 없음은 물론 그에 대한 밖으로부터의 비판도 부재하다는 사실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바람 없고 따뜻한 날, 남향한 대청에는 햇빛도 잘 들고, 그곳에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귀돌 어멈과 할멈이, 각기 자기들의 일거리를 가지고 앉아 육십팔원짜리 `콘서트'로 `쩨․오․띠․케'의 주간방송, 고담이라든 그러한 것을 흥미 깊게 듣고 있는 풍경은, 말하자면, 평화―그 물건이었다󰡓는 대목은 그 직후에 나온 채만식의 <태평천하>와 <탁류>의 풍자적 어투나 비극적 분위기와 얼마나 다른가.

 

박태원은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이상, 이효석 등 30년대 모더니스트들과 함께 문학친목단체인 `구인회'를 결성해 활동한다. 그들이 내세운 바는 문학적 전문성과 프로의식이었거니와, 그것은 실은 카프 계열의 계급문학에 대한 반발에 다름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1일'과 <천변풍경>은 당시로 보아 최고의 문학적 기교를 갖춘 작품으로서 춘원 이광수와 월탄 박종화 등의 상찬이 잇따랐다. 그 박태원이 해방기에는 좌익계인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을 맡고 한국전쟁중 월북해 북한 최고의 역사소설로 평가받는 <갑오농민전쟁>을 집필한 사실은 지금도 숱한 논란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것, 다 괜은 소리… 덮긴, 말이 그렇지, 이 넓은 개천을 그래 무슨 수루 덮는단 말이유? 온, 참….󰡓

 

소설 속 한 인물은 청계천 복개에 관한 소문을 듣고 턱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마나 그 넓은 청계천은 어김없이 아스팔트로 뒤덮이고 이제 그 위로는 자동차들이 질주한다. 빨래하는 아낙들이 깃들었던 천변의 가옥 자리에는 높직높직한 건물들이 솟아 있다. 한때 맑았던 물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소음과 진동에 짓눌리며 질식 상태로 흘러간다. 광교를 중심으로 한 소설의 무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청계천 평화시장은 1970년 봉제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역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감싸안고 오늘도 청계천의 복개된 도로 아래로는 한때 맑았으나 더이상은 맑지 않은 물이 동쪽을 향해 흘러간다.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 1편

  평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홍생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홍생이 평양으로 가서 친구들과 같이 대동강에서 놀다가 술이 취한 후 부벽정(루)에 올랐다가 기자(箕子)의 딸을 만나 밤이 새도록 시를 주고 받으며 즐거움을 나누었다. 그런데 날이 새자 그 딸은 시를 남겨두고 홀연히 하늘로 올라가 버렸고, 시(詩)마저 회오리바람에 날라가 버렸다. 그 이후 홍생은 상사병을 얻어 죽게 된다. 그의 시체는 며칠이 지나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는데, 이는 기자왕의 딸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의 여주인공으로 기자왕의 딸을 등장시킨 것은 김시습이 당시 기자왕에 대한 한시를 많이 지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그리고 기자왕이 위만에서 나라를 빼앗긴 것은 단종(端宗)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것과 유사하다. 즉 기자왕의 딸을 사모한 것은 단종에 대한 연모의 정을 표현한 것이다.

 


●춘향전(春香傳) : 작자 미상 고대 소설

근읍(近邑) 수령이 모여든다. 운봉 영장(營將), 구례, 곡성, 순창, 옥과, 진안, 장수 원님이 차례로 모여든다. 좌편에 행수 군관(行首軍官), 우편에 청령 사령(聽令使令), 한가운데 본관(本官)은 주인이 되어 하인 불러 분부하되,

"관청색(官廳色) 불러 다담(茶啖)을 올리라. 육고자(肉庫子) 불러 큰 소를 잡고, 예방(禮房) 불러 고인(鼓人)을 대령하고, 승발(承發) 불러 차일(遮日)을 대령하라. 사령 불러 잡인(雜人)을 금하라."

이렇듯 요란할 제, 기치(旗幟) 군물(軍物)이며 육각 풍류(六角風流) 반공에 떠 있고, 녹의 홍상(綠衣紅裳) 기생들은 백수 나삼(白手羅杉) 높이 들어 춤을 추고, 지야자 두덩실 하는 소리 어사또 마음이 심란하구나.

"여봐라, 사령들아. 네의 원전(前)에 여쭈어라. 먼 데 있는 걸인이 좋은 잔치에 당하였으니 주효(酒肴) 좀 얻어 먹자고 여쭈어라."

저 사령 거동 보소.

"어느 양반이관대, 우리 안전(案前)님 걸인 혼금(箚禁)하니 그런 말은 내도 마오."

등 밀쳐 내니 어찌 아니 명간(名官)인가. 운봉이 그 거동을 보고 본관에게 청하는 말이

"저 걸인의 의관은 남루하나 양반의 후예인 듯하니, 말석에 앉히고 술 잔이나 먹여 보냄이 어떠하뇨?"

본관 하는 말이

"운봉 소견대로 하오마는……."

하니 '마는' 소리 훗입맛이 사납겠다. 어사 속으로, '오냐, 도적질은 내가 하마. 오라는 네가 져라.'

운봉이 분부하여

"저 양반 듭시래라."

어사또 들어가 단좌(端坐)하여 좌우를 살펴보니, 당상(當上)의 모든 수령 다담을 앞에 놓고 진양조 양양(洋洋)할 제 어사또 상을 보니 어찌 아니 통분하랴. 모 떨어진 개상판에 닥채저붐, 콩나물, 깍두기, 막걸리 한 사발 놓았구나. 상을 발길로 탁 차 던지며 운봉의 갈비를 직신,

"갈비 한 대 먹고지고."

"다라도 잡수시오."

하고 운봉이 하는 말이

"이러한 잔치에 풍류로만 놀아서는 맛이 적사오니 차운(次韻) 한 수씩 하여 보면 어떠하오?"

"그 말이 옳다."

하니 운봉이 운(韻)을 낼 제, 높을 고(高)자, 기름 고(膏)자 두 자를 내어 놓고 차례로 운을 달 제 어사또 하는 말이

"걸인도 어려서 추구권(抽句卷)이나 읽었더니, 좋은 잔치 당하여서 주효를 포식하고 그저 가기 무렴(無廉)하니 차운 한 수 하사이다."

운봉이 반겨 듣고 필연(筆硯)을 내어 주니 좌중(座中)이 다 못하여 글 두 귀〔句〕를 지었으되, 민정(民情)을 생각하고 본관의 정체(政體)를 생각하여 지었것다.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이 글 뜻은,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이렇듯이 지었으되, 본관은 몰라보고 운봉이 이 글을 보며 내념(內念)에 '아뿔싸, 일이 났다.'

이 때, 어사또 하직하고 간 연후에 공형(公兄) 불러 분부하되,

"야야, 일이 났다."

공방(工房) 불러 포진(鋪陳) 단속, 병방(兵房) 불러 역마(驛馬) 단속, 관청색 불러 다담 단속,옥 형리(刑吏) 불러 죄인 단속, 집사(執事) 불러 형구(刑具) 단속, 형방(刑房)불러 문부(文簿) 단속, 사령 불러 합번(合番) 단속, 한참 이리 요란할 제 물색없는 저본관이

"여보, 운봉은 어디를 다니시오?"

"소피(所避)하고 들어오오."

본관이 분부하되,

"춘향을 급히 올리라."

고 주광(酒狂)이 난다.

이 때에 어사또 군호(軍號)할 제, 서리(胥吏) 보고 눈을 주니 서리, 중방(中房) 거동 보소. 역졸(驛卒) 불러 단속할 제 이리 가며 수군, 저리 가며 수군수군, 서리 역졸 거동 보소. 외올 망건(網巾), 공단(貢緞) 쌔기 새 평립(平笠) 눌러 쓰고 석 자 감발 새 짚신에 한삼(汗衫), 고의(袴衣) 산뜻 입고 육모방치 녹피(鹿皮) 끈을 손목에 걸어 쥐고 예서 번뜻 제서 번뜻, 남원읍이 우군우군, 청

파 역졸(靑坡驛卒) 거동 보소. 달 같은 마패(馬牌)를 햇빛같이 번듯 들어

"암행 어사 출도(出道)야!"

외는 소리,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눕는 듯. 초목 금순(草木禽獸)들 아니 떨랴.

남문에서

"출도야!"

북문에서

"출도야!"

동․서문 출도 소리 청천에 진동하고,

"공형 들라!"

외는 소리, 육방(六房)이 넋을 잃어,

"공형이오."

등채로 휘닥딱

"애고 중다."

"공방, 공방!"

공방이 포진 들고 들어오며,

"안 하려던 공방을 하라더니 저 불 속에 어찌 들랴."

등채로 후다딱

"애고, 박 터졌네."

좌수, 별감 넋을 잃고, 이방, 호방 실혼(失魂)하고, 삼색 나졸(三色羅卒) 분주하네.

모든 수령 도망할 제 거동 보소. 인궤(印櫃) 잃고 과줄 들고, 병부(兵符) 잃고 송편 들고, 탕건(宕巾)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소반(小盤) 쓰고, 칼집 쥐고 오줌 누기. 부서지니 거문고요, 깨지느니 북, 장고라. 본관이 똥을 싸고 멍석 구멍 새양쥐 눈 뜨듯하고 내아(內衙)로 들어가서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른다, 목 들여라."

관청색은 상을 잃고 문짝 이고 내달으니, 서리, 역졸 달려들어 후닥딱

"애고, 나 죽네!"

이 때 수의 사또 분부하되,

"이 골은 대감이 좌정하시던 골이라, 훤화(喧譁)를 금하고 객사(客舍)로 사처(徙處)하라."

좌정(座定)후에

"본관은 봉고 파직(封庫罷職)하라."

분부하니,

"본관은 봉고 파직이오!"

사대문에 방 붙이고 옥 형리 불러 분부하되,

"네 골 옥수(獄囚)를 다 올리라."

호령하니 죄인을 올리거늘, 다 각각 문죄(問罪) 후에 무죄자 방송(放送)할세,

"저 계집은 무엇인다?"

형리 여짜오되,

"기생 월매 딸이온데, 관정(官庭)에 포악(暴惡)한 죄로 옥중에 있삽내다."

"무슨 죄다?"

형리 아뢰되,

"본관 사또 수청(守廳)으로 불렀더니 수절(守節)이 정절(貞節)이라 수청 아니 들려하고 관전(官前)에 포악한 춘향이로소이다."

어사또 분부하되,

"너만 년이 수절한다고 관정 포악하였으니 살기를 바랄쏘냐. 죽어 마땅하되 내 수청도 거역할까?"

춘향이 기가 막혀

"내려오는 관장(官長)마다 개개이 명관이로구나. 수의(繡衣) 사또 듣조시오. 층암 절벽(層巖絶壁)높은 바위 바람 분들 무너지며, 청송 녹죽(靑松綠竹) 푸른 남기 눈이 온들 변하리까? 그런 분부 마옵시고 어서 바삐 죽여 주오."

하며,

"향단아, 서방님 어디 계신가 보아라. 어젯밤에 옥문간에 와 계실 제 천만 당부하였더니 어디를 가셨는지, 나 죽는 줄 모르는가?"

어사또 분부하되,

"얼굴 들어 나를 보라."

하시니, 춘향이 고개 들어 대상(臺上)을 살펴보니 걸객(乞客)으로 왔던 낭군, 어사또로 뚜렸이 앉았구나. 반 웃음 반 울음에

"얼싸구나 좋을씨고. 어사 낭군 좋을씨고. 남원 읍내 추절(秋節) 들어 떨어지게 되었더니, 객사에 봄이 들어 이화 춘풍(李花春風) 날 살린다. 꿈이냐 생시냐, 꿈을 깰까 염려로다."

한참 이리 즐길 적에 춘향 모 들어와서 가없이 즐겨하는 말을 어찌 다 설화(說話)하랴. 춘향의 높은 절개 광채 있게 되었으니 어찌 아니 좋을쏜가?

어사또 남원 공사(公事) 닦은 후에 춘향 모녀와 향단이를 서울로 치행(治行)할 제, 위의(威儀) 찬란하니 세상 사람들이 누가 아니 칭찬하랴. 이 때, 춘향이 남원을 하직할새, 영귀(榮貴)하게 되었건만 고향을 이별하니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아니 되랴.

"놀고 자던 부용당(芙蓉堂)아, 너 부디 잘 있거라. 광한루(廣寒樓), 오작교(烏鵲橋)며 영주각(瀛州閣)도 잘 있거라. 춘초(春草)는 연년록(年年綠)하되 왕손(王孫)은 귀불귀(歸不歸)라, 날로 두고 이름이라. 다 각기 이별할 제 만세 무량(萬歲無量)하옵소서, 다시 보긴 망연(茫然)이라."

이 때, 어사또는 좌우도(左右道) 순읍(巡邑)하여 민정을 살핀 후에 서울로 올라가 어전(御前)에 숙배(肅拜)하니, 삼당상(三堂上) 입시(入侍)하사 문부(文簿)를 사정(査定) 후에 상이 대찬(大讚)하시고 즉시 이조 참의(吏曹參議) 대사성(大司成)을 봉하시고, 춘향으로 정렬부인(貞烈夫人)을 봉하시니, 사은(謝恩) 숙배하고 물러 나와 부모전에 뵈온대, 성은(聖恩)을 축수(祝壽)하시더라.

이 때, 이판(吏判), 호판(戶判), 좌우 영상(左右領相) 다 지내고, 퇴사(退仕) 후 정렬부인으로 더불어 백 년 동락할새, 정렬 부인에게 삼남 이녀를 두었으니, 개개이 총명하여 그 부친을 압두(壓頭)하고 계계승승(繼繼承承)하여 직거 일품(職居一品)으로 만세유전(萬世流傳)하더라.

* 감상 : 신분을 초월한 연애와 평등 사상을 고취한 소설이다. 춘향의 수청 거부는 가렴주구의 관 료에 대한 반항을 의미하며 한편으로는 열녀불경이부의 고귀한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 주제 : 계급을 초월한 사랑과 여인의 정절, 탐관오리의 척결과 서민들의 신분 상승 의지

 


●치숙(痴叔) : 채만식 단편 소설

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기, 한참 당년(當年)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걸리라더냐 그걸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시방(時方) 앓고 누웠는 우리 오촌 고모부(姑母夫) 그 양반 ······.

뭐 말두 마시오. 대체 사람이 어쩌면 글세······ 내 원! 신세 간데 없지요.

자, 십 년 적공(積功), 대학교까지 공부한 것 풀어 먹지도 못했지요, 좋은 청춘 어영부영 다 보냈지요. 신분에는 전과자(前科者)라는 붉은 도장 찍혔지요. 몸에는 몹쓸 병까지 들었지요. 이 신세를 해가지굴랑은 굴속 같은 오두막집 단간 셋방 구석에서 사시장철 밤이나 낮이나 눈 따악 감고 드러누웠군요.

재산이 어디 집 터전인들 있을 턱이 있나요. 서발 막대 내저어야 짚검불 하나 걸리는 것 없는 철빈(鐵貧)인데.

우리 아주머니가, 그래도 그 아주머니가, 어질고 얌전해서 그 알뜰한 남편 받드느라 삯바느질이야, 남의 집 품빨래야, 화장품 장사야, 그 칙살스런 벌이를 해다가 겨우겨우 목구멍에 풀칠을 하지요. 어데루 대나 그 양반은 죽는 게 두루 좋은 일인데 죽지도 아니해요. 우리 아주머니가 불쌍해요. (발단부)

* 감상 : 옥살이를 하고 나온 주인공 ‘치숙(어리석은 아저씨)’의 생을 무지한 조카의 눈으로 포착 하여 서술하고 있는 소설이다.

* 갈래 : 풍자소설

* 배경 : 일제 강점기, 서울 지역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전지적 작가 시점의 효과를 나타냄)

* 표현상의 특징

· 대화적 문체를 구사

· 칭찬과 비난의 역전 : 작가는 겉으로는 ‘나’를 칭찬하고 아저씨의 사고 방식을 비난하지만, 사실은 ‘나’를 비판하고 아저씨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 속어나 비어를 많이 사용 : 사실성 제고

* 주제 : 일제의 강압 통치로 인한 사회상을 통렬히 풍자함

* 출전 : [동아일보] 연재 (1937)

 

 반어법(反語法), 풍자(諷刺)

화자인 소년은 일본인 주인 밑에서 일하는 생활에 만족하는 인물이다. 일인 주인이 나를 각별히 귀여워 하고 신용을 하니까 한 십 년만 더 있으면 다루 장사를 시켜 줄 눈치라고 좋아한다. 일인에게 잘 보이고, 안일한 생활을 꿈꾸는 소년이다. 더구나 일인 주인이 내지인 여자를 중매(中媒)서 준다고 한 말을 기대하고 있다. 조선 여자는 거저 주어도 싫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년의 눈에 비친 아저씨는 ‘미쳐 살기(殺氣)가 든 놈들이 세상 망쳐 버릴 사회주의를 하려 드는’ 인물이다. 소년은 세상이 망해서 뒤집히면 ‘그래 나는 어쩌란 말인가? 아무 것도 다 허사가 될테니 그런 억울한 데가 있드람?’라고 말함으로써 소년은 자신이 신뢰할 수 없는 인물임을 독자에게 탄로나게 된다.

 

<태평천하>에서 ‘윤직원 영감’과 ‘소년’의 유사점

: 자신의 안일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철저히 개인주의적 인물이다. 따라서 소년은 ‘믿을 만한 인물이 못되는’ 서술자이다.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입에서 당시 지식인인 아저씨가 비판되지만, 사실 ‘소년’이 비판되어야 함을 반어법을 사용, 풍자하고 있다. (--- 󰃫 문학이론 <신빙성 없는 화자>)

 


●침중기(枕中記) : 당(唐)나라 심기제(沈旣濟) 소설

노생이란 서생(書生)이 한단(邯鄲)이란 땅으로 가는 도중 여옹이란 도사(道士)의 베개를 빌어 잠이 들었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그는 부호의 사위가 되고, 진사 시험에 장원하고 문무(文武)의 공을 세워 정승(政丞)에까지 오르며 슬하에 많은 자손을 두는 등 부귀 영화를 누리다가 80세가 되어 죽는다. 그러나 잠을 깨니 잠들기 전에 짓던 황량(黃粱)이 아직 채 익지 않았다는 이야기

--- 어휘 <한단지몽(邯鄲之夢)>, <여옹침(呂翁枕)>, <일취지몽(一炊之夢)>, <노생지몽(盧生之夢)>

 


●카인의 후예(後裔) 줄거리: 김동리 소설

* 감상 : <카인의 후예>는 토지 개혁을 맞아 변하는 민심을 그린 작품이다. 박훈은 평양에서 공부 하는 동안 조부와 아버지의 사망으로 지주가 되었고, 도섭 영감은 이십여 년 동안 훈이네 토지 를 관리해 온 마름인데 박훈은 마름의 딸 오작녀를 좋아해 왔다. 훈이 고향으로 돌아와 배우지 못한 소작인의 자식들을 위해 야학(夜學)을 운영하게 되자 오작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시집 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훈의 집에 기거하며 그의 수발을 들어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해방이 되어 북한 세력이 들어서면서 훈은 야학을 압수당하고, 도섭 양반은 마름을 한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지주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군당부의 압력을 받아 토지 개혁 운 동에 앞장을 선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대회가 열리고 지주인 박용제와 윤주사가 반동분자로 몰려 숙청(肅淸)을 당하지만 훈은 오작녀의 도움으로 숙청을 면한다. 그러나 딸의 소행으로 인해 훈의 토지를 갖 지 못하게 된 도섭 영감은 훈의 할아버지 송덕비(頌德碑)를 도끼로 때려 부순다. 훈은 사촌 동 생 혁을 통해 오작녀와 월남 계획을 세운다. 그는 순안으로 돌아오다가 도섭 영감이 주도했던 지난 농민대회 때 숙청당한 삼촌 박용제를 본다. 사동 탄광에 끌려 갔다가 탈출한 용제 영감 은 트럭에서 몸을 날려 자살한 것이다. 오작녀와 순안을 떠나려고 했던 훈은 도섭 영감을 죽이 기로 작정한다.

이즈음 아들 삼득이가 박용제 영감의 묘자리를 파 주었다는 이유로 도섭 영감은 농민 위원장 자리에서 숙청된다. 산으로 올라가 훈과 맞선 영감은 훈의 칼에 옆구리를 찔린다. 영감은 이에 낫을 휘두르나 항상 훈의 신변을 걱정해 미행해 오던 오작녀의 동생 삼득이 이를 저지하다가 상처를 입는다. 영감은 삼득과 실랑이를 하다가 살의를 버린다. 삼득이가 훈에게 오작녀를 데리 고 빨리 떠나라고 말하자, 정신을 차린 훈은 오작녀와 함께 양짓골을 떠난다.

* 등장인물

· 도섭 영감 : 한 청년의 협박(脅迫)에 못 이겨 토지개혁의 행동대원으로 일하게 되는 것은 사 회주의에 대한 동조가 아니라 자기 생존 본능, 보호 본능으로 보아야 한다.

· 박훈 : 토지개혁에 직면해 삼촌(박용제)과 같이 일말의 미련을 보이지도 않고 윤주사처럼 증 오심(憎惡心)이나 최후의 몸부림을 보이지 않고, 관념과 체념의 상태에 빠진다. (패배의식과 충 동)

· 오작녀 : 매사에 적극적이며 열정적, 모험적, 분명한 성격임.

 


●탁류(濁流) : 채만식 장편 소설

금강(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가지고는 --- 한강이나 영산강도 그렇기는 하지만 ---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수 있다. 한 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 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저 준엄한 소백산맥이 제주도를 건너보고 뜀을 뛸 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또 한 번 우뚝 ······ 높이 솟구친 갈재(蘆嶺·노령)와 지리산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로 진안으로 무주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 놈이 영동 근처에서는 다시 추풍령과 속리산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으로 좌향을 돌려 충청 좌우도(左右道)의 접경을 흘러간다. (발단부) (중략)

그러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초라한 승재, 그가 의사가 되어가지고 돈도 많이 벌고, 의표(儀表)도 훤치르르하고, 이렇게 환골탈태(換骨奪胎)해서 척 정주사의 눈앞에 현신을 한다면, 그 때 가서야 정주사의 생각도 달라지겠지만, 시방의 승재로는 간에도 차지를 않았다.

그는 유씨처럼 승재가 일후 잘 되게 되는 날을 생각해 보려고는 않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초봉이가 승재한테 무슨 다른 기색이 있는 눈치를 안다거나, 또 유 씨라도 승재를 가지고 자약시 이만저만하고 이만저만해서, 나는 이 사람을 초봉이의 배필로 마땅하다고 생가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렇게 상의를 한다면 정주사는 마구 훌훌 뛸 것이었었다.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뉘 집 뼈다귄지도 모르는 천민(賤民)을 가지고 어엿한 내 집 자식과 혼인을 하다니 ~

* 감상 : ‘탁류’의 발단부은 작품 규모에 어울리게 지리적 배경에 대한 거시적 관점에서부터 시작 된다.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서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와 그 종착점인 군산항까지 도달하는 배 경 묘사의 수법은 마치 카메라의 시야가 이동하면서 점점 좁혀지는 것처럼 작품 공간을 독자 앞에 이끌어 낸다.

아울러 맑고 깨끗하던 물도 군산까지 이르면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할 것 없이 휩쓸려 탁 류로 변한다는 설명 속에 장차 전개될 사건들의 성격이 암시되어 있다. 군산항은 민족의 피땀 과 보람을 앗아가는 일제의 수탈이 그려지는 것이다.

 

* 등장인물

· 초봉이 : 여자 주인공. 어지러운 세파에 시달리는 고달픈 여인

· 박제호 : 정서꾼. 매우 탐학한 인간

· 고태수 : 은행 행원. 초봉이를 유혹하려고 시도함

· 장형보 : 꼽추. 간특하기 그지없는 인간

* 출전 : 1937. 10. 13 - 38. 6. 17 [조선일보] 연재

 

󰏐 [고전여행] 채만식 '탁류'

 

채만식(1902~1950년)의 '탁류'는 우리나라 풍자소설의 대명사이다. 식민지 시기 순정적인 여인 초봉의 인생 몰락을, 전라도 사투리가 짙게 밴 특유의 냉소와 욕설로써 절묘하게 풀어간 수준 높은 작품이다. 사실 채만식은 생전 독자와 비평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작가였다. 그의 풍자미가 일반인에게 알려진 것은 70년대 들어서서 였다.

 

채만식의 매력은 날카로운 사회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직접적 고발이 아닌 간접적 풍자로 소화해낸 점이었다. 이것은 일제의 냉혹한 탄압이 존재했던 당시 식민지 문학인이 현실을 고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대안 가운데 하나였다. 가혹한 독재의 시기였던 70년대에 채만식이 새삼 주목을 받게된 것은 이같은 점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 소설의 무대는 탁류가 흐르는 금강하구의 군산이다. 몰반 정주사의 딸 초봉은 자기 집의 하숙생 남승재와 사랑에 빠지지만 당장의 물질적 도움을 기대하는 정주사의 강권에 의해 은행원 고태수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고태수는 정을 통하던 여인의 남편에 맞아 죽는다. 초봉은 꼽추 장형보에게 겁탈당한 뒤 약국주인 박제호의 첩으로 들어 앉는다. 그리고 얼마후 초봉은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딸을 낳는다.

 

박제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초봉에게 싫증을 느끼고 그녀를 꼽추 장형보에게 넘긴다. 초봉은 자기 신세를 서러워하면서도 친정의 궁핍한 살림을 돌보기 위해 장형보에게 몸을 맡긴다.

 

그러던 어느날 초봉은 딸에게 함부로 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장형보를 살해한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옛 연인 남승재와 여동생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남승재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그러나 초봉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남승재가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살 대신 징역을 선택한다.

 

이 작품에서 정주사, 고태수, 박제호, 장형보는 모두 속물화하고 타락한 1930년대 한국사회의 인간상들이다. 이들은 초봉을 이용하고 탐하며 짓밟는다. 그리고 효용가치가 없다 싶으면 여지없이 그녀를 버린다.

 

채만식은 소설에서 이 속물들을 그만의 장기인 풍자로써 꼬집는다. 순결한 여인 초봉을 농락하는 이 사회가 채만식이 말하고자하는 탁류이다. 그런데도 초봉은 끝까지 이같은 탁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채만식은 남승재와 그의 연인 계봉에게 탁류를 헤치고 살아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나 암시적이어서 소설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이점에 채만식의 장점과 한계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 `탁류'의 무대 군산에 채만식 소설비 세운다

 

채만식(1902~1950)의 소설 '탁류' 의 무대인 전북 군산시내 곳곳에 채만식 소설비가 세워진다.

군산문화원은 최근 째보선창과 구 조선은행앞, 미두장등 3곳에 소설비를 설치한데 이어 앞으로 탁류의 주무대였던 싸전, 약국, 병원, 정주사의 집터 등에 소설비를 건립할 계획이다.

 

소설비가 세워진 째보선창은 탁류의 주인공 <정주사>가 충남 서천에서 선대의 유산을 팔아 군산항에 첫발을 디딘 곳이며, 미두장은 그가 가산을 탕진한 곳이다. 조선은행은 정주사의 사위 <고태수>가 당좌계 직원으로 근무하던 곳이다.

탁류가 흐르는 금강하구를 무대로 한 '탁류'는 1937년 신문에 연재된 소설로 순정적인 여인 정초봉의 인생 몰락을 중심으로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암울한 사회상을 남도 사투리가 짙게 밴 특유의 냉소와 욕설로 묘사한 우리나라 풍자문학의 대명사로 꼽히는 작품.

 

군산에서는 6월 채만식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이종록.군산공전학장)가 출범해 채만식의 유품과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군산시도 개항 100주년(1999년) 기념행사로 군산내항 공원에 문학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군산문화원장 이병훈씨(72.시인)는 "시내 곳곳에 소설비를 세워 채만식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군산을 '문학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9> 채만식의 `탁류'

 

󰡒…내가 느이허구 무슨 원수가 졌다구 요렇게두 내게다 핍박을 하느냐? 이 악착스런 놈들아!… 아무 죄두 없구, 아무두 건디리잖구 바스락 소리두 없이 살아가는 나를, 어쩌면 느이가 요렇게두 야숙스럽게… 아이구우 이 몹쓸 놈들아!󰡓

 

  채만식(1902~50)의 장편 <탁류>의 뒷부분에서 주인공 초봉이는 자신의 눈앞에서 가증스러운 작태를 연출하는 두 사내를 향해 이렇게 울부짖는다. 허랑방탕한 첫 남편 고태수가 결혼한 지 열흘 만에 비명에 가던 날 그의 친구인 꼽추 장형보에게 겁간을 당하고서 무작정 상경길에 오른 초봉이는 기찻간에서 만난 아버지의 친구 박제호에게 자신의 몸과 운명을 의탁한다. 1년 가까운 동거 끝에 초봉이가 아비 모를 딸을 낳을 즈음 초봉이에 대한 정도 식은 제호가 때마침 나타나 아이에 대한 친권을 주장하는 형보에게 자기들 모녀를 떼버리듯 넘겨주려 하자 순량하기만 한 초봉이의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채만식이 1937~8넌 <조선일보>에 연재한 <탁류>는 이처럼 선의를 짓밟으며 비비 꼬여만 가는 한 여인의 운명을 통해 식민지시대 한국사회의 그늘을 조망하려 한 소설이다. 초봉이의 기구한 삶의 역정과 초봉이 아버지 정주사의 몰락과정,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비참한 처지는 그 구체적인 실상을 직․간접적으로 전해주고 있음이다.

 

  `인간기념물'이라는 제목이 붙은 소설의 첫 장은 정주사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소개하는 데 할애된다. 선비의 집 자손으로 한일합방 직후부터 13년 동안 군청 서기로 일한 끝에 퇴직한 정주사는 선산과 논 몇천평, 집한 채를 팔아 빚을 갚고 남은 돈 얼마를 가지고 고향 서천을 떠나 군산으로 솔권하여 온다. 하지만, 이곳이라고 뾰족수가 있을 리 없어 미두(米豆) 중매점의 사무원을 거쳐 미두꾼으로 나선 그는 이태 만에 밑천을 날려버리고 거렁뱅이나 다름없는 하바꾼으로 전락한다. 채만식이 그 특유의 풍자적 어투로 일컬은 대로 󰡒입만 가졌지 수족은 없는 사람󰡓 정주사는 미두로 대표되는 식민지 수탈사를 증거하는 `인간기념물'이라 할 수 있다. 

 

정주사의 4남매 가운데 첫째인 초봉이는 아버지와 가족들을 곤궁에서 해방시키는 데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바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의 장사밑천을 떼어준다는 거짓 약속을 믿고 고태수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초봉이의 모습은 심봉사의 눈을 뜨이겠다는 일념으로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 가는 심청이의 효성을 연상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동생 계봉이가󰡒아주 켸켸묵은 생각󰡓으로 폄하하는 초봉이의 봉건적 자기희생의 이데올로기는 훗날 얼마든지 피할 수도 있는 형보의 사슬에 스스로를 얽어매는 데서 또한번 위력을 발휘한다. 형보의 등장으로 제호라는 끈이 떨어진데다 말을 듣지 않으면 딸 송희에게 해코지를 하겠다는 협박에 닥뜨린 초봉이는 사태를 이렇게 정리한다.

 

󰡒형보? 좋다, 형보는 말고서 형보보다 더한 놈도 좋다. 원수는 말고 원수보다 더한 것도 상관없다. 송희만 탈없이 편안하게 기르면 고만이다. 󰡓

 

갖은 학대와 악행을 견디다 못한 그가 결국 형보를 타살하고 살인자의 처지로 영락하는 과정은 그의 시대착오적 봉건 이데올로기와 운명에 대한 소극적 순응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 한켠에서는 식민체제에 대한 작가의 분노가 읽히는 듯도 하다. 악의로 똘똘 뭉친 형보를 독초(毒草)에 비유하고 󰡒그것을 가꾸는 `육법전서'에의 울분󰡓을 삼키는 등장인물 승재의 모습이라든가 󰡒천하에 몹쓸 악당. 그놈을 죽였다구 그게, 그게 죄란 말이냐?󰡓라는 초봉이의 절규에서 안중근과 이봉창 윤봉길 등의 거사를 연상했다면 지나친 것일까.

 

그렇다면 소박한 휴머니스트라 할 승재의 경우를 살펴 보자. 고아 출신 의사로 갑돌이 갑순이식 연애의 상대였던 초봉이가 갑작스레 결혼한 뒤 그의 동생 계봉이에게로 마음을 돌린 승재는 가난하고 무지한 동포들을 위해 무료로 의술을 베풀고 야학에 참여하는 등 깜냥껏 애써 보지만, 체제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계봉이와 나눈 대화에서는 가난의 원인이 분배의 불평등에 있다는 말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더 깊이있는 인식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한다. 사태의 핵심에 가 닿기 직전에 멈칫거리는 태도에서 검열의 그림자를 본 것 역시 지나친 것일까.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채만식의 당대에 식민 조선의 암담한 현실을 상징했던 금강 하류는 여전히 흙빛을 머금은 채 서해로 흘러든다. 정주사 일가가 새로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군산을 향해 똑딱선에 올랐던 장항읍 용당에서 서쪽으로 2㎞ 떨어진 도선장에서는 지금도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당 두차례씩 군산행도선이 강을 건넌다.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지금의 군산여고 앞 월명동 일대에는 그때 지어진 일본식 가옥들이 잘 가꾼 정원수와 함께 남아 있어 마치 일본의 한 마을을 재현한 영화 세트와도 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런가 하면,

 

󰡒급하게 경사진 언덕비탈에 게딱지 같은 초가집이며, 낡은 생철집 오막살이들이, 손바닥만한 빈틈도 남기지 않고 콩나물 길듯 다닥다닥 주어박혀, 언덕이거니 짐작이나 할 뿐인 것이다.󰡓

 

숫적으로 절대다수였던 조선인들이 조건도 열악하고 터도 좁은 곳에서 복닥대며 살아야 했던 개복동과 둔율동 일대의 산동네는 초가와 생철이 슬레이트와 기와로 바뀌긴 했지만, 게딱지와 콩나물이긴 매일반인 채로 90년대 중반을 통과하고 있다. 그 동네 초입의 공중전화 박스에서 90년대의 초봉이는 생활정보지의 안내를 받아 가며 거푸 전화번호를 눌러 본다. 갈색으로 부분염색한 머리, 엉덩이를 겨우 가린 똥꼬치마,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 부츠, 허리께에서 달랑거리는 앙증맞은 핸드백 차림인 그가 신호를 보내고 있는 곳은 아마도 초원까페, 사계절단란주점, 귀빈룸싸롱 따위이리라.

 

군산시 북서쪽 해망동과 신흥동, 월명동을 끼고 있는 월명공원에는 1984년에 세운 `백릉 채만식 선생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탁류>의 머릿글을 앞면에, 채만식의 문학적 업적을 적은 행장기를 뒷면에 새겨넣은 문학비는 물 오른 철쭉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바람도 자고 유난히 햇볕도 따스운 날, 문학비 근처 매점 앞 탁자에는 동네 노인들 서넛이 나와 앉아 물결처럼 흘러간 지난 생을 되씹고 있는데, 노옹들의 한담을 한 귀로 흘리며, 철쭉이며 벚나무의 새순이 움트는 기색에 귀를 쫑긋거리며 문학비는, 흘러흘러 서해로 잠겨드는 금강 줄기를 말없이 굽어보고 있다.

 


●탈출기 : 최서해 단편 소설

김군! 수삼 차 편지는 반갑게 밧엇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회답(回答)지 못하엿다. 무론(毋論) 군의 충졍에는 나도 감사를 들이지만 그 충졍을 나는 밧을 수 업다.

--- 박군! 나는 군의 탈가(脫家)를 찬셩할 수 업다. 음험(陰險)한 이역에 늙은 어머니와 어린 처자(妻子)를 버리고 나선 군의 행동을 나는 찬셩할 수 업다.

박군! 돌아가라.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군의 부모와 처자가 이역(異域) 로두(路頭)에서 방황하는 것을 나는 눈 압헤 보는 듯십다. 그네들의 의지할 곳은 오직 군의 품밧게 업다. 군은 그네들을 구하여야 할 것이다.

군은 군의 가뎡(家庭)에서 동량(棟樑)이다. 동량이 업는 집이 어듸 잇스랴? 조고마한 고통으로 집을 버리고 나선다는 것이 의지가 굿다는 박군으로서는 너머도 박약한 소위이다.

군은 ××단에 몸을 던져서 ×션에 섯다는 말을 일전 황군게서 듯기는 하엿스나 그러타 하여도 나는 그것을 시인(是認)할 수 업다. 가족을 못 살리는 힘으로 엇지 사회를 건지랴.

박군! 나는 군이 돌아가기를 충졍으로 바란다. 군의 가족이 사람들 발 아래서 짓밟히는 것을 생각할 ! 군의 가삼인들 엇지 편하랴. --- (발단부)

* 감상 : 이 작품은 최서해의 자전적인 소설이며 서간체 소설이다. 자신의 만주로의 탈출을 변명하 고 있다. 이 작품은 1920년대 우리 민족의 비참한 삶의 모습을 묘사한 ‘빈궁문학(貧窮文學)’의 대표적 작품이다. 다른 사실주의 작품들이 단순히 빈궁한 삶 자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데 반해, 그러한 빈궁에 항거하는 반항적 주제를 강력히 내세우고 있는 특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주인공이 자신의 빈궁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이른바 신경향파 문학의 특징이 잘 나타나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자연발생기 프로 문학사에서 가장 성 공적인 작품으로 손 꼽힌다.

 

* 줄거리 : 오년 전, 무지한 농민을 일깨워 이상촌을 만들겠다는 꿈을 지닌 나는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간도로 갔으나 땅은 고사하고 굶기를 밥먹듯했다. 꿈은 아랑곳없이 나는 중국인에게도 땅을 얻어 농사짓기가 어려워 날품팔이로 전전한다. 나와 나의 가족은 항상 굶주리고 실의 속 에 살아간다. 어느 날, 내가 일거리를 얻지 못하고 탈진하여 집에 들어 가서 보니 임신한 아내 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나는 잠깐 아내를 의심하고 원망하였다. 그래서 아내가 먹 다가 던진 것을 찾으려고 아궁이를 뒤졌다. 재를 막대기로 저어 내니 벌건 것이 눈 에 띄었다. 그것은 거리에서 주운 귤 껍질이었다. 아내는 너무도 먹고 싶은 나머지 귤 껍질을 주워 먹은 것이다. 내 눈에는 눈물이 괴었다. 비통하여 나는 더욱 열심히 살려고 생선 장수도 하고 두부 장수도 한다. 온갖 궂은 일을 다 했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세상이나 어머니나 아내에 대해 충 실하게 살려고 했지만 세상이 우리를 멸시. 학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족 을 희생하면서까지 어떤 집단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리 노력하여도 우리는 우리의 생의 만족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어찌 하여 겨우 연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죽지 못하는 삶이 될 것이다.(······) 김군, 이것이 나의 탈가 이유를 대략 적은 것이다. 나는 나의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내 식구에게 편지도 않으려고 한다. 그네가 죽어도 내가 죽어도 ······나는 이러다가 성공 없이 죽는다 하더라도 원한이 없겠다. 이 시대. 이 민중의 의무를 이행한 까닭이다. 아아 김군아 ! 말은 다하였으나 정은 그저 가슴에 넘치누나.

 

* 성격 : 사실주의적, 현실 비판적.

* 표현 : 1인칭 고백체(편지글), 사실적 서술

* 시점 : 1인칭 주인공

* 배경 : 일제시대, 만주의 간도 일대(‘나’의 성격을 변하게 만드는 요인)

* 등장인물

· 나(박군) : 작품의 화자(話者). 가난에 찌든 젊은이. 세상을 성실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빈궁한 현실과 허위에 찬 제도 때문에 저항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 집을 탈출하여 ××단에 가입 ×선 에 서게 된다.

· 아내 : 보조적인물로서 ‘나’의 아내. 순박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시골 여인

· 어머니 : 보조적 인물로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인물.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여 당시 한국 여인의 전형적 모습을 보임

· 김군 : 나의 편지의 수신인. 나의 탈가를 반대함

* 구성 : 一부터 六까지 6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구성의 긴밀성은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순행적 구성을 하고 있다.

* 주제 : 일제하 가난한 삶의 고발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

* 출전 : [조선문단] 6호(1925. 3)

 

 주제의 직접적 노출

“나는 나에게 최면술을 걸려는 무리들, 험악한 이 공기의 원류를 쳐부수어야 한다.”는 주인공의 말은 주제를 직접 노출시킨 것이므로 이 작품은 함축적 방법보다는 명시적 방법으로 제시했다.

 

채만식 소설 <레디 메이드 인생>과의 비교

레디 메이드 인생

탈출기

공통점

· 식민지 하층민의 빈궁한 삶

· 인텔리 계열의 인물 설정

차이점

당시 풍토적 배경과 상황 풍자

적극적 저항과 반항 의식


 

●태백산맥 : 조정래 장편소설

󰏐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14> 조정래의 `태백산맥' (벌교/글 최재봉)

 

󰡒벌교는 한마디로 일인(日人)들에 의해서 구성, 개발된 읍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벌교는 낙안고을을 떠받치고 있는 낙안벌의 끝에 꼬리처럼 매달려 있던 갯가 빈촌에 불과했다. 그런데 일인들이 전라남도 내륙지방의 수탈을 목적으로 벌교를 집중 개발시킨 것이었다. 벌교 포구의 끝 선수머리에서 배를 띄우면 순천만을 가로질러 여수까지는 반나절이면 족했고, 목포에서 부산에 이르는 긴 뱃길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정래(53)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일본의 조선 지배가 남겨 놓은 흔적으로부터 시작한다. 소설의 시점(始點)이 되는 1948년 10월의 여수․순천 반란사건은 제주 4․3항쟁 진압 명령을 거부한 병사들에 의해 일어난 것이었으며, 4․3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총선거 저지를 목표로 내걸었었다. 이승만에 의한 단독 정수립 기도가 일본의 패망 이후 38선 이남과 이북에 각기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의 현상고착 방침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 동족상잔과 분단 고착화로 이어지는 여순사건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이다.

 

2백자 원고지로 1만6천5백장에 이르는 장강과도 같은 길이의 <태백산맥>이 문을 여는 첫 장면은 제석산 아래 자락에 자리잡은 현 부자네 제각 부근이다. 당으로부터 지역의 거점 확보를 명령받은 정하섭이 그 대상으로 새끼무당 소화를 설정하고 제각 옆에 있는 소화네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일제 지배 당시 일본인 나카지마(中島)가 조선인 소작농들을 동원해 20리 벌교 포구를 따라 제방을 쌓아 조성한 중도들판이 훤하게 내려다 보이는 지점에 세워진 제각은 한옥을 기본틀로 삼되 구석구석에 일본식을 가미한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이다. 가령 마루는 조선식에 천장은 일본식이고 툇마루를 타고 돌아가면 본채와 붙어 있는 변소에 이를 수 있으며, 기와지붕 아래 처마에는 벚꽃 무늬를 단청으로 새겨 넣는 식이다. 이 집을 지은 지주는 또한 큰길에서 제각에 이르는 소로 양옆으로는 벚꽃나무를 심었으며 집 앞 마당에는 일본식 연못이 있는 정원을 꾸며놓았으니, 일제 식민당국에 대한 그의 감사의 염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음이다. 

 

비밀임무의 수행이 주는 긴박감과 청춘남녀의 만남에서 오는 풋풋함이 버무려져 피워내는 착잡한 분위기로부터 시작된 <태백산맥>은 여순사건의 끝자락에서부터 전쟁 직후까지 한국사의 가장 긴박한 한 시기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여기서 총체적이라는 것은 단행본 10권의 방대한 분량이나 전쟁을 중심으로 그 전후의 사건 전개를 두루 담았다는 소재의 차원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마침내 전쟁이라는 형태로 폭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민족사의 모순을, 그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

 

<태백산맥>의 총체성을 우선적으로 담보해 주는 것은 이 소설이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민족적 비극의 연원을 민족 내부의 사정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분단내인론'이라고도 불리는 이 견해는 그간 논의의 편의를 위해서, 그리고 민족 자존심의 훼손을 막고자 흔히 동원되었던 논리―

 

한민족은 소련과 미국이라는 두 외세의 대리전을 치렀을 뿐이라는―를 정면에서 반박하고 민족 구성원 내부의 분열과 대립이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것은 땅의 문제를 둘러싼 지주와 소작인 사이의 갈등으로 표출된다.

 

지식인 출신 야산대장 <염상진>과 그를 따르는 농민 전사 <하대치>, 회의하는 지식인이지만 역사로부터 끊임없이 선택과 실천을 강요당하는 <김범우>, 양심적인 국군 장교 <심재모>, 부패한 우익의 대표자 <최익승․최익달>, 염상진의 동생인 우익 행동대장 <염상구>, <손승호>, <서민영>, <안창민>, <소화>와 <이지숙>, <외서댁, 들몰댁>…. 수백명의 등장인물이 엮는 크고 작은 사건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거대한 역사의 양탄자를 짠다. 그 양탄자 위에서 민중의 나날의 삶과 역사라는 이름의 추상은 완벽하게 호응하여 일치를 이룬다.

 

<태백산맥>의 문학적 성취를 보장한 요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라도 방언의 탁월한 구사이다. 거기다가 걸쭉한 육담과 예술의 경지에 오른 욕설 등은 민중적 삶의 활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소설의 사실성을 더하는 효과를 지닌다.

󰡒그 양귀신덜이 들이닥침스로 시상 판세가 위찌 돌아가등가? 코가 석자나 늘어졌든 지주덜이 새 기운 얻어 되살아나고, 순사질 해묵은 죄 지가 먼첨 알고 뽕빠지게 도망질혔든 눔덜이 도로 그 자리 차고 앉고, 그 공평허게 일 잘허든 인민위원회럴 공산당 못자리판이라고 몰아때레 사람 덜 잡아딜이고, 자네덜도 다 아는 이약 새 날아가는 소리로 일일이 되짚을 것도 없이, 지대로 잘 돼가는 밥솥얼 엎어뿐 것이 누구냐 그것이여. 보나마나 그 양코배기덜 아니었드라고?󰡓

 

최인훈씨의 <광장>이 1960년 4․19의 자식인 것과 같은 맥락에서 <태백산맥>은 정녕 1980년대의 아들이다. 5․16 이후, 아니 4․19의 꿈같던 한 순간을 제하고는 해방 이후 줄곧 우리 사회를 옥죄어온 우익독재의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80년대를 통틀어 격렬히 용솟음쳤고 그 결과 최소한의 이념적 자유와 균형의 틈이 마련되었거니와, <태백산맥>은 바로 그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한 떨기 민들레와도 같았던 것이다. 이념적 균형을 위한 작가의 고민이 거꾸로 이념의 역편향이라는 비판에 노출되는 결과를 낳기는 했지만 말이다.

 

<태백산맥>이 비록 논픽션이 아닌 소설이긴 하지만 현실의 벌교에는 소설 속 사건이 펼쳐졌던 이런저런 무대들이 소설과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모양으로 남아 있다. 하대치의 아버지가 한 뙈기 소작논을 바라 등뼈가 휘도록 돌덩이를 져날라 쌓은 중도방죽, 방죽에서 읍내로 이어지는 소화다리, 염상구가 읍내 주먹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담력 싸움을 벌였던 철교, 염상진이 하대치를 시켜 압류한 지주의 쌀을 쌓아 놓았던 횡갯다리, 김범우의 집, 그리고 염상진의 야산대가 한동안 해방구로 삼았던 율어 등….

 

특히 좌우로 첩첩 산줄기들이 벋어내려오다가 문득 자진해버린 바탕에 적당한 크기의 분지성 들판이 조성된 율어의 지세는 독립성과 안전성이라는 해방구의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다. 소설과 현실의 이런 일치는 작가 자신이 한국전쟁 이후 3년 동안 벌교읍에 살았던 경험의 소산이다.

 

󰡒해방에서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를 다루는 대하소설의 무대로 벌교를 삼은 것은 제가 벌교읍의 골목골목까지도 훤히 안다는 이점말고도 벌교가 겪은 역사가 우리나라 전체의 역사를 대표할 수 있는 전형성을 지닌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주와 소작인 사이의 갈등, 인근 벌교읍에서 조계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빨치산의 투쟁 루트 등이 소설의 배경으로서 적당했기 때문이죠.󰡓

 


●태평천하(太平天下) : 채만식(蔡萬植) 장편 소설

윤 직원 영감은 마치 묵직한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 맞은 양, 정신이 멍-해서 입을 벌리고 눈만 휘둥그랬지, 한동안 말을 못하고 꼼짝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으르렁거리면서 잔뜩 쪼글뜨리고 앉습니다.

“거, 웬 소리냐? 으응? 으응? ······ 거 웬 소리여? 으응? 으응?”

“그 놈 동무가 친 전본가 본데, 전보가 돼서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윤 주사는 조끼 호주머니에서 간밤의 그 전보를 꺼내어 부친한데 올립니다. 윤 직원 영감은 채이듯 전보를 받아 쓰윽 들여다보더니, 커다랗게 읽습니다. 물론 원문은 일문이니까 몰라보고 윤 주사네 서사민 서방이 번역한 그대로지요.

“종학, 사-상 관계-로, 경-시청에 피검! ······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다냐?”

“종학이가 사상 관계로 경시청에 붙잽혔다는 뜻일 테지요!”

“사상 관계라니?”

“그 놈이 사회주의에 참예를 ······.”

“으엉?”

아까보다 더 크게 외치면서 벌떡 뒤로 나동그라질 뻔하다가 겨우 몸을 가눕니다.

윤 직원 영감은 먼점에는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이 멍했지만 이번에는 앉아 있는 땅이 지항을 해서 수천 길 밑으로 꺼져 내려가는 듯,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결말부 중)

* 감상 : 이 작품은 5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로서 소위 ‘가족사 소설’의 전형에 드는 작품이다. 또한 성격 묘사에다가 사회 전체의 실상을 암시하려는 성격소설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1930 년대 말에 한국 사회는 일제의 수탈과 착취에 의해 빈궁화 현상이 계속되어가고 있었다. 윤직 원은 놀부형으로서 일제가 조장한 상업자본주의에 기생하여 자신의 부를 늘린 대표적인 인물이 다. 작가는 전 면에 윤직원을 내세워 왜곡된 사회와 그 속의 부정적 인물을 조롱하고 있다. 즉, 일제 강점하의 현실을 태평천하라고 믿는 주인공의 시국관을 풍자한다.

 

표현상의 특질을 몇 가지 살피면 판소리의 수법을 이용한 것이 우선 눈에 띈다. 판소리의 창자 (唱者)처럼 “ - 입니다.” 식의 경어체를 빌려 독자와 가까운 위치에서 작중 인물을 조롱하고 있다. 또한 독자와 작중 인물의 중간에 서서 작중 인물을 평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점은 판소리사설에서의 창자의 역할과 같다. 판소리 사설처럼 풍자를 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런 존대말의 풍자는 봉산탈춤에서 말뚝이가 양반을 놀리는 장면과도 유사하다.

 

* 줄거리 : 윤직원 영감은 이름난 부자이며 노랑이다. 명창대회에 구경갔다 오는 길에 인력거 삯 을 주지 않으려다 터무니없이 깎아서 주고 자동차를 타고서도 요금을 주지 않는다. 그의 선친 윤용규가 계유년 삼월 보름날에 화적떼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재산을 약탈 당하자 그는,

“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하고 세상을 부르짖는다.

식구들에게도 사사건건 참견을 한다. 며느리들에게도 상스런 욕을 퍼부을 정도로 구박도 한다. 그는 브로커 올창이와 돈놀이 해서 부를 축적해 간다. 어느날 그는 올창이로부터 첩을 얻으라 는 권유를 듣고, 사실은 연전에 첩을 얻었는데 다른 남자와 배가 맞아 재산을 몽땅 털어 도망 을 갔다고 실토한다. 첩이 도망간 이후 춘심이에게 추파(秋波)를 던지나 실패한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 경시청에 손자인 윤종학이 사상범으로 체포되었다는 전보를 접하나 영감 은 사회주의를 한다는 그 한가지 사실에, 분해한다.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이 태평 천하에....”

“······그놈이 만석꾼이 집 자식이 세상 망쳐 놀 사회주의 불한당(不汗黨)패에 찬성을 하여? 으 응 죽일 놈! 죽일 놈!”하고 울화통을 터뜨리며 소리친다.

 

* 수법

· 풍자적 수법 : 부정적 인물(윤직원 영감)을 내세운 반어적 풍자.

· 판소리 사설의 문체

· 반어와 희화(戱畵)를 통한 풍자적, 해학적 어조.

·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던지는 말투 및 경어체의 문체

· 현재형 서술

* 성격 : 가족사 소설, 사회 소설, 풍자 소설

 

* 등장인물

· 윤용규(제1대) : 윤두섭의 부친. 화적떼에 피살됨

· 윤직원(제2대, 본명, 윤두섭) : 만석꾼으로 수전노. 그의 아버지 (윤용규)는 날건달 생활을 하 다가 변칙적으로 재산을 모았음. 아버지는 갑자기 들이닥친 화적떼에게 살해 당함. ‘직원’은 향 교의 수장자리를 돈 주고 산 직함임. 자신의 만수무강과 후손의 영화를 위해 매일 자신의 소변 으로 눈을 씻고 어린 아이의 소변을 사서 장복하는 등 갖은 양생법을 실천함. 고리대금업을 통 해 재산을 늘리는 데에만 급급한데 그러기 위해 아들과 손자를 군수와 경찰서장으로 만들고자 하나 아들은 노름에 빠져 금치산자(禁治産者)가 되며 손자들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 윤창식(제3대) : 윤직원의 장남. 주사이며 첩을 여럿 두고 있음. 재산에는 관심이 없음. 금치산 자가 됨

· 윤종수(제4대) : 윤창식의 장남(윤직원의 장손). 한량이며 오입쟁이. 윤경손은 그의 아들

· 윤종학(제4대) : 윤창식의 2남. 윤직원 영감이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손자. 동경유학 시절 사 회주의 사상으로 나중에 체포됨

· 서울 아씨 : 윤직원 딸. 30대 과부

· 춘심 : 어린 기생. 윤직원 집에 오가며 금전을 우려 내려 함

* 주제 : 경제적인 부를 가진 한 인간을 통해 도덕적인 왜곡상을 폭로

* 의의 : 1930년대 사회 현실의 격심한 퇴폐성을 비판적으로 풍자.

* 출전 : 1938년 <천하태평춘>이란 이름으로 [조광]지(1938) 1월~9월까지 연재, 전15장, 1940년 단행본으로 출간

 


●태형(苔刑) : 김동인 단편 소설

저녁을 먹은 뒤에 더위에 쓰러져 있던 나는, 아직 내어가지 않은 밥 그릇에서 젓가락을 꺼내어 손수건 좌우편 끝을 조금씩 감아서 부채와 같이 만들어서 부쳐 보았다. 훈훈하고 냄새나는 바람이 땀 위를 살짝 스쳐서, 그래도 조금의 서늘함을 맛볼 수가 있었다. 이깟 지혜가 어찌하여 아직 안 났던고. 나는 정신 잃은 사람같이 팔을 들었다. 이 감방 안에서는 처음의 냄새는 나지만 약간의 바람이 벌레 기어 다니는 것 같이 흐르던 가슴의 땀을 증발시키노라고 꿈같은 냉미(冷味)를 준다. 천장에 딱붙은 전등이 켜졌다. 그러나 더위는 줄지 않았다. 손수건의 부채는 온 방 안이 흉내내어, 나의 뒷사람으로 말미암아 등도 부쳐졌다. 썩어진 공기가 움직인다.

* 감상 : 감옥이라는 질식할 듯한 상황 속에서 죄수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통해 타인의 고통 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성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사건으로 미결수 감방에 온 1인칭 서술자(나)의 눈을 통해 감방의 비인간적인 모습이 제시된다. 더운 여름, 40 여 명이나 되는 죄수로 가득찬 감방에는 비좁은 공간과 악취가 풍겨 숨쉬기도 어려운 상황이 그려져 있다. 죄수들은 파리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 노인이 태형을 선고받고 돌아오는 데서 작품의 갈등이 등장한다. 노인 은 90대나 되는 태형을 맏고 죽을지도 모르니 상소하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죄수들은 조그마 한 공간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태형을 맏고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첫째 갈등) 또한 ‘나’의 내면 에 일어나는 도덕적 갈등도 긴장감을 더해 준다.

이 두가지 갈등, <인간의 이기적 욕구>와 <도덕성>에 관한 소설적 질문이 이 작품의 주제 이다.

 

* 시점 : 1인칭 주인공

* 등장인물

· 나 : 자신의 안일(安逸)만을 위해 노인을 태형장으로 보낸 자신을 책망하며 괴로워하는 인물

· 노인 : 태형을 받지 않으려 공소(항소)하나 다른 죄수의 매도를 당하는 인물

* 주제 : 자신의 안일만을 생각하는 인간의 비정함 고발

* 출전 : [동명](1922. 12~1923. 1)

 


●투명한 어둠 : 현길언 소설

󰏐 장편소설 [투명한 어둠](1,2부)

· 사회에 팽배한 독재의 횡포로 윤리와 양심의 기준이 마비된 70년대를 살아가던 지식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 제1부에서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연수원 입소를 포기, 다시 역사학을 전공한 주인공이 역사까지 왜곡하는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잠적하기까지를 다루었다.

· 제2부에서는 잠적한 주인공이 탄광촌에 들어가 일하면서 왜 현실 변혁 운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토지(土地) : 박경리 장편 소설

제1부

제1편 어둠의 발소리

 

서(序)

 

1897년의 한가위 ---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이때부터 타작 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들뜨기 시작하고 --- 남정네 노인들보다 아낙들의 채비는 아무래도 더디어지는데, 그렇 수밖에 없는 것이 식구들 시중에 음식 간수를 끝내어도 제 자신의 치장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 바람에, 고개가 무거운 벼 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 놓은 새 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후우이이 --- 요놈의 새 떼들아!”

극성스럽게 새를 쫓던 할망구는 와삭와삭 풀발이 선 출입옷으로 갈아 입고, 타작 마당에서 굿을 보고 있을 것이다. 추석은 마을의 남녀 노유,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강아지나 돼지나 소나 말이나 새들,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까지 포식의 날인가 보다.

빠른 장단의 꽹가리 소리, 느린 장단의 둔중한 여음으로 울려 퍼지는 징 소리는 타작마당과 거리가 먼 최 참판 댁 사랑에서는 흐느낌같이 슬프게 들려 온다. 농부들은 지금 꽃 달린 고깔을 흔들면서 신명을 내고, 괴롭고 한스러운 일상을 잊으며 굿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 최 참판 댁에서 섭섭잖게 전곡(錢穀)이 나갔고, 풍년에는 끼치지 못했으나 실한 평작임엔 틀림이 없을 것인즉, 모처럼 허리끈을 풀어 놓고 쌀밥에 식구들은 배를 두드렸을 테니 하루의 근심은 잊을 만했을 것이다.

이 날은 수수개비를 꺾어도 아이들은 매를 맞지 않는다. 여러 달 만에 소증 풀었다고 느긋해하던 늙은이들은 뒷간 풀입이 잦아 진다. 힘 좋은 젊은이들은 벌써 읍내에 가고 없었다. 황소 한 마리 끌고 돌아오는 꿈을 꾸며 읍내 씨름판에 몰려간 것이다.

최 참판 댁 사랑은 무인지경(無人之境)처럼 적막하다. 햇빛은 맑게 뜰을 비춰 주는데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 버렸을까? 새로 바른 방문 장지가 낯설다. (발단부)

* 감상 : 1969년부터 박경리가 집필한 대하소설로, 갑오년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 을미왜병 (1895) 등이 지나간 1897년 한가위로부터 광복의 기쁨을 맞본 1945년 8월 15일까지의 한국 근 대사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경남 하동 평사리라는 전형적 한국 농촌을 비롯하여 지리산, 서 울, 간도, 러시아, 일본, 부산, 진주 등에 걸치는 광활한 국내외적인 공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다. 탈고하기까지 26년 간의 집필 기간, 원고지 3만 매가 넘는 분량의 역작인 동시에 역사와 운명의 대서사시로서 한국인의 삶의 터전과 그 속에서 개성적 인물들의 다양한 운명적 삶과 고난, 의지가 민족적 삶으로 확대된 한국의 수작(秀作)이다.

 

* 갈래 : 장편 대하소설, 가족사 소설(전 5부 16권)

* 시점 : 전지적 작가

 

* 등장인물

· 최치수 : 최참판 댁의 당주. 병약하고 냉소적이며 신경질적인 인물

· 최서희 : 최치수와 별당아씨의 외동딸. 최씨 집안의 마지막 핏줄. 조준구에게 재산을 빼앗기 고 용정으로 가서 부(富)를 이룩함. 공노인과 임역관의 중개로 빼앗긴 토지의 대부분을 회수, 길상과 헤어져 귀국을 감행, 진주에 자리잡음. 몰락한 조준구로부터 집문서를 넘겨 받아 가문 의 재건과 복수를 마감한다. 양현이를 윤국과 짝을 맺어 며느니를 맞이하고자 하는 집착이 양 현의 거부로 좌절되고 길상의 재수감, 윤국의 학병지원으로 또 다른 한의 그림자가 생긴다. 이 런 고통은 그동안 방어적이고 폐쇄적이던 서희의 가슴을 열어 놓는 계기가 되어 자기 주장이 강하고 기상이 센 성격의 여인상에서 정감있는 어머니 상으로 변한다.

· 김길상 : 고아출신으로 연곡사 우관 스님의 보호로 자라다가 최씨 집안으로 심부름꾼으로 들 어가게 된다. 침모의 딸 봉순의 은근한 사모를 받지만 서희에 대한 동정과 연모의 정을 가진 다. 서희의 몰락 과정에서 그녀를 끝까지 보호한다. 용정으로 함께 이주하여 서희가 부를 축적 하는 데 크게 기여, 드디어 둘은 결혼한다. 서희의 귀국에 동행하지 않고 간도에 잔류, 독립 운동에 투신한다. 2년의 감옥 신세를 지고 진주에 은둔. 동학당 조직을 재건하려 하나 좌절, 원력(願力)을 모아 관음탱화를 완성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

 

· 구천 : 최참판 댁의 머슴. 출생의 비밀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인물

* 주제 : 격동기 민족의 한과 강인한 생명력

 

‘토지’의 상징성

 

삶의 터전으로서의 토지는 농경 사회에서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토지에 대한 믿음과 이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는 외부 세계의 대립 속에서 각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토지’와 근대사

 

(1) 1부(1897년 한가위~1908년 5월) :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 을사보호조약 체결,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함, 1897년 대한제국의 성립 - 최참판 가문의 몰락, 조준구의 재산 탈취

(2) 2부(1911년 5월 간도 용정촌의 대화재~1917년 여름) : 경술 국치 후 지리산 동학 잔당(殘黨)의 모임,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 1912년 중국민국의 성립과 러시아의 정세가 중요 배경이 됨. 1914년 1차 세계대전(~1918년), 1917년 러시아혁명 - 서희의 복수, 최씨가의 귀환

(3) 3부(1919년 3·1운동 ~ 1929년 원산 총파업, 광주학생사건) : 1919년 임시정부 수립, 1920년 김좌진의 청산리 대첩, 1929년 사회주의 사회 단체인 계명회 사건 - 김환의 죽음으로 송관수 등의 민중적 삶과 서울의 임명희를 둘러싼 지식인과 신여성들의 삶이 그려짐

(4) 4부(1930년 ~ 1939년) : 1940년 광복군 결성, 1933년 미국의 뉴딜 정책, 독일의 나치정권, 1936년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1937년 중일전쟁 발발, 1938년 남경학살 등 - 김길상의 출옥, 군자금 강탈 사건, 유인실과 일본인 오가다의 사랑

(5) 5부(1940년 8월 ~ 1945년 광복) : 1939년 제2차대전 발발, 1943년 카이로 선언, 일본의 항복 -

광복을 향한 민족의 삶, 양현과 영광의 사랑과 갈등

 

󰏐 [토지] 줄거리

[토지]는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문을 연다. 최씨 집안의 안주인인 윤씨부인(최치수의 모친)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후에 동학 접주가 되어 처형당하는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김환(일명 구천이)을 잉태한다.

 

그후 김환은 최씨 가문으로 잠입하여 하인이 되지만, 최치수의 아내인 별당아씨와 사랑에 빠져 둘은 지리산으로 도망친다. 최씨 가문의 재산을 탐낸 귀녀와 몰락 양반 김평산의 음모로 최치수는 교살당하고 음모를 꾸민 두 사람은 윤씨부인에게 발각되어 사형당한다.

 

최씨 집안의 외가 쪽 먼 친척인 조준구는 윤씨부인이 마을을 휩쓴 콜레라(호열자)로 죽자 최씨 집안의 재산을 강탈하려고 한다. 그는 한편으로 최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최치수의 외동딸 서희를 몰아내고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키면서 일본인들의 힘을 빌려 모든 재산을 손아귀에 넣게 된다.

 

여기에 더해 서희와 자신의 아들 병수를 결혼시키려는 음모를 꾸미자 서희는 충직한 하인 김길상 등과 함께 용정으로 탈출한다. 서희는 용정에서 윤씨부인이 남긴 금은괴를 자본으로 장사로 성공하여 거부(巨富)가 되고, 하인이었던 길상과 혼인한다. 여기까지가 토지 1·2부의 개괄적인 내용인데, 국권상실, 봉건 가부장 체제와 신분 질서의 붕괴, 농업 경제로부터 화폐 경제로의 변환 등 1900년대와 1910년 한국 사회의 변화가 소설의 밑그림으로 담겨 있다.

 

3·4부는 1·2부와 연속선상에 놓이면서도 시대·배경·인물의 변화와 변천에 따라 이야기의 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3·4부의 시간적 배경은 2, 30년대인데, 이 시기의 한국 사회의 격변이 소설의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음이 확인되고, 일제의 총독 정치가 가혹해지기 시작한 1920년대 식민지 상황의 암울한 분위기가 무겁게 소설을 누르고 있다.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 백성들은 굳건히 발붙이고 살 정착지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여기저기 떠도는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은 소설에도 고스한히 반영되어 소설의 무대가 다변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1부(1897~1908. 5)에서는 평사리, 2부에서는 용정으로 거의 국한되어 있다시피한 소설의 무대가 3, 4부에 와서는 서울·부산·진주·평사리, 그리고 국외로는 간도 일대와 일본까지 확대된다. 여기에 민족주의·공산주의·무정부주의 등 독립 운동의 여러 노선이 제시되며, 지식인들의 사상적 경향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시도된다.

 

이런 가운데 1·2부의 주역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난다. 용이와 그의 아내 임이네는 병으로 죽고 기생으로 전락한 끝에 이상현의 씨를 낳고 아편 중독자가 되고 만 기화(봉순)는 끝내 서희의 비호와 정석의 애끓는 연정을 뿌리치고 투신 자살한다.

 

동학 잔당의 세력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려던 김환(구천이)은 고문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용정 공노인의 부인과 조준구의 악착같은 부인 홍씨도 세상을 뜬다. 이들의 죽음과 함께 [토지]에서는 이들의 후손들이 점차 주역을 차지한다.

 

서희의 두 아들 윤국과 환국, 용이의 아들 홍이, 조준구의 아들 꼽추 조병수 등이 소설의 전면으로 나온다. 이와 함께 3·4부에 오면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인텔리 계층으로 작가는 이들을 통해 희망없는 식민지 상황의 암울함을 드러낸다. 임역관의 딸 명빈과 명희를 비롯해 귀족층의 조용하, 급진적 사회주의 사상가 서의돈, 극작가 권오송, 성악가 홍성숙, 조선에 대해 동정적인 일본인 오가다 지로, 유인실, 강선혜, 황태수 등과 진주 쪽의 박효영, 허정윤 등이 그러하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극단적 양상으로 치닫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광복의 감격까지를 다루고 있는 5부는 [토지]의 대단원의 장이다. 송관수의 죽음, 길상을 중심으로 한 독입 운동 단체의 해체, 길상의 관음 탱화 완성, 오가다와 유인실의 해후, 태평양 전쟁의 발발, 예비 검속에 의한 길상의 구속, 양현·영광·윤국의 어긋난 사랑 등이 이어지면서 대하소설 [토지]는 거대한 마침표를 향하여 달려간다.

 

󰏐 장편 대하소설의 절정

 

70년대의 소설은 박경리, 황석영, 김주영의 대하장편소설에 의해서 그 절정에 도달했다.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張吉山)>, 김주영의 <객주(客主)>는 그 개인의 탁월한 문학적 성과일 뿐만 아니라 70년대 문단의 기념비이기도 하다.

 

<토지>는 1897년부터 1917년 직후의 몇 년간에 이르는 거대한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개인사와 가족사와 전체사의 대종합을 시도한 작품이다.

 

제1부는 1897년 추석으로부터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이루까지 약 10년 동안 경상남도 하동의 <평사리>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봉건적인 농촌의 해체과정과 그 안에서 부침(浮沈)하는 인간군상들을 그리고 있다.

 

제2부는 1911년부터 약 6~7년간의 시간대 속에서 <평사리>에서 간도의 <용정>으로 옮아간 최씨집안과 그 주변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의 편력을 보여 준다.

 

제3부는 제2부의 주인공 최서희와 그 일행이 간도로부터 고향으로 돌아간 다음 3·1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 가을부터 몇 년 동안의 사건들을 다루면서 독립 운동가의 활동을 중심으로 그 시대의 풍속적 변화를 서술하고 있다.

<토지>는 봉건적 가족 제도와 신분질서의 해체, 서구문물의 수용과 식민지 지배의 과정, 간도 생활과 민족의 이동, 독립운동의 전개와 식민지 사회의 구조적 변화 등을 초점으로 개인의 운명과 역사의 조류가 서로 침투하는 웅대한 조망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개항기 이래 한국 사회의 풍속에 대한 풍성한 탐구, 각양각색의 인간상의 창출, 삶의 의미와 역사의 원동력에 대한 심오한 직관은 그 격변과 진통의 시대를 살아갈 한국인의 삶을 장엄한 파노라마로 육화시키는 데 공헌하고 있다.

 

󰏐 [토지] 탈고

1994년 8월 15일 새벽 2시 대하소설 󰡔토지󰡕를 탈고.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자택에서 대단원을 마무리한 박경리 씨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면서도 “아직도 써야 할 것이 잔뜩 밀려 있는 것 같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제시대 민족 수난사를 다룬 이 작품이 묘하게도 광복절에 맞춰 탈고된데 대해서는 “의도한 것은 아닌데 자꾸 원고를 손질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대답. (26만장 원고)

“마흔 셋이던 69년에 󰡔현대문학󰡕에 첫 원고가 실렸으니....꼭 25년이 걸렸군요. 어려움이 많았지만...연재를 시작한 바로 그 해 암 수술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문화일보]의 연재가 끝나는 9월 말 쯤 전 5부 16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며, 10월에는 [토지]완간 기념 세미나, 기념음악회를 열 예정.

 


●폭군(暴君) : 홍성원 중편 소설(1969)

차가 강변에 도착했다.

해가 막 지고 있어서 강변이 온통 놀빛이다. 일행 세명은 차를 내려 훤한 강가로 다가간다. 햇빛에 바랜 흰 자갈들이 강가로 질펀하게 깔려 있다. 일행들이 서 있는 발밑의 자갈들은 작은 둑처럼 약간 높게 싸여있다. 둑은 붉은 황토길에서 시작되어 살얼음 잡힌 강가에가지 연결되어 있다. <중략>

짙은 눈보라가 눈앞으로 몰아쳐서 10 미터 앞도 잘 안 보였다. 노인은 이제 범을 뒤따라 거의 뛰다시피 계곡으로 달려 내려갔다. 그는 자기의 이틀간의 추적이 이렇게 허망하게 보람없이 끝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거대한 짐승, 그 놈은 정말 얼마나 끈덕진가 ? ···· 노인은 갑자기 짐승을 향해 진정에서 우러나온 경탄을 보냈다. 그놈은 정말 노인이 겪어 본 어느 짐승보다도 끈덕지고 대담했다. 그놈은 결국 노인을 거느리고 이틀간 산중으로 산 구경을 시켜준 셈이었다. 그리고 이제 구경이 끝나자 다시 마을로 늠름하게 내려오는 것이었다. 노인은 나무에 얼굴을 찢기었으나 상처에는 곁눈도 주지 않았다. 범이 다시 마을로 향한 이상 그는 한시도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갑자기 부락 숙소에 남아 있을 사나이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는 지금쯤 노인을 이를 갈 정도로 원망할 것이었다. 아니 지금쯤은 부락을 떠나 서울로 다시 돌아갔을지도 알 수 없었다.그리고 저 부락 사람들, 그들은 정말 양처럼 온순했다. 담장이 무너지고, 가축이 물려 가고, 팔뚝이 찢겨지고,

가족이 물려 죽고 ······ 그러나 그들은 누구 한 사람 불평 한 마디 내뱉지 않았었다. 그들은 마치 폭군 밑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백성들과 흡사했다. 공포와 절망과 슬픔에 짓눌린 채 오히려 그 폭군을 떠받드는 착한 백성들 ······ 그들은 정말 백성 같았다. 착하디착한 백성들이었다. (중략)

노인이 범을 올려다 본 것과 범이 일어선 것과는 완전히 동시였다. 그들은 마치 쌍둥이 인형처럼 나란히 동시에 고개를 마주 돌렸다. 바위는 약 8미터 높이로 위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 있지 않았다. 범은 커다란 머리통에 가려 어깨 뒤쪽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그림에서만 보아온 거대한 괴물의 탈처럼 느껴졌다. 노인은 약 너댓 평 억새숲 한복판에 서 있었다. 바위와 노인과의 직선 거리는 미처 3미터가 될까 말까 했다.

그들은 지금 누가 먼저 움직일 것인가 꼼짝없이 대기한 상태였다. 노인은 짐승과 눈이 마주치자 머릿속이 갑자기 얼음처럼 맑아졌다. 그는 짐승이 왜 자기를 덮치지 않는지 잘 알았다. 짐승은 지금, 노인이 놀랄 만큼 자신도 노인에게 놀란 것이었다. 사실 범들은 사람과 마주치면 사람 못지않게 끔찍이 놀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표정만 변치 않을 뿐 사람을 사실은 엄청나게 두려워했다. 범은 지금 자기가 움직이면 노인이 공격해 오리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더구나 노인의 한쪽 손에는 '그' 쇠붙이가 들려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노인도 역시 범과 같았다. 그는, 조금만 움직여도 범이 자기에게 덮치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지금은 하늘에서 벼락이 치더라도 그는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 감상 : 중편소설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장편보다 단편에 가깝지만, 작품을 이끌어 가는 중심적 갈등의 줄기에 부수적 갈등이나 삽화가 첨가되어 사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 단편과의 차이 다. 이 작품의 중심되는 문제는 늙은 포수와 호랑이의 대결이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포수와 호 랑이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늙은 포수는 호랑이의 무서운 힘과 지혜에 경탄하면서 강력 한 적수와의 싸움에서 자신의 생애를 마쳐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포수는 가장 어려운 상대와의 치열한 싸움 속에 사냥꾼으로서의 삶을 마감할 만한 장엄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다. 이와 함께 진행되는 또 하나의 부수적 갈등은 사냥을 단순한 스포츠나 재미를 위한 살상 으로 여기는 중년 사냥꾼의 속물적 행동과 늙은 포수 사이의 긴장이다. 작품 서두에서 늙은 포수는 초라하고 호화로운 장비를 갖춘 중년 사나이의 기세는 당당하다. 그러나 호랑이와의 대결이 진행되는 동안 이 관계는 역전된다. 이부수적 갈등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진정한 용기 와 지혜란 무엇이며, 참다운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소설적 질문으로 제시한다. 즉 이익이나 재미, 취미로서가 아니라 생의 과제와의 대결에 자신을 바침으로써 삶의 의미를 발 견하고 있는 작품이다.

* 줄거리

· 어떤 산촌에 호랑이가 출현하여 사람들을 해친다.

· 마치 폭군처럼 이 호랑이를 잡기 위하여 두 사람의 포수가 파견된다.

· 한 사람은 사냥만으로 평생을 살아온 노인이고, 또 한사람은 퇴역 장군으로서 대기업을 경영 하며 사냥을 취미로 하는 사나이다.

·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여러 방법으로 잡을 궁리를 한다.

· 이에 갈등(중년 사나이의 성급한 욕심과 속물적 태도 때문에 노인과 갈등)이 생긴다.

· 호랑이의 공격을 받아 사나이는 다친다.

· 노인은 눈온 뒤 호랑이를 추적하는데 이를 눈치챈 호랑이가 마을로 내려오자 노인은 뒤를 따른다.

· 피할 수 없는 곳에서 노인과 호랑이는 대결하는데 이것이 서로에게 마지막임을 알고 노인은 방아쇠를 당긴다.

· 마을 사람들이 가보니 총에 맞은 호랑이와 노인이 한 덩어리로 엉켜 죽어 있었다.

* 주제 :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전생애를 걸고 묵묵히 행동하는 정신(숭고미)

* 출전 : 창작과 비평(1969)

---  문학이론 <집념과 좌절>

 


●표본실의 청개구리 : 염상섭 단편 소설(처녀작)

1.

무거운 기분이 침체(沈滯)와 한없이 늘어진 생의 권태는 나가지 않는 나의 발길을 남포까지 끌어 왔다.

귀성한 후 칠팔 개 삭간(朔間)의 불규칙한 나의 전신을 해면같이 짓두들겨 놓았을 뿐 아니라, 나의 혼백까지 잠식하였다. 나의 몸의 어디를 두드리든지 알코올과 니코틴의 독취를 내뿜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피로하였었다. 더구나 육칠월 성하(盛夏)를 지내고 겹옷 입을 때가 되어서는 절기가 급변하여 갈수록 몸을 추스리기가 겨워서 동네 산보에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친구와 이야기하려면 두세 마디째부터는 목침을 찾았다. (서두) (중략)

내가 중학교 2년 시대에 박물 실험실에서 수염 텁석부리 선생이 청개구리를 해부하여 가지고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장을 차례차례대로 끌어내서 자는 아기 누이듯이 주정병(酒精甁)에 채운 후에 옹위(擁圍)하고 서서 있는 생도들을 돌아다보며 대발견이나 한 듯이,

“자, 여러분, 이래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시오.”

하고 뾰족한 바늘 끝으로 여기저기를 콕콕 찌르는 대로 오장을 빼앗긴 개구리는 진저리를 치며 사지에 못박힌 채 벌떡벌떡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8년이나 된 그 인상이 요사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서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애를 써도 아니 되었다. (하략)

* 감상 : 3·1운동은 전후해 시대적으로 어려웠을 때 어두운 현실을 냉철히 관찰한 작품으로 지식 인의 고뇌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뛰어난 묘사와 사실성, 의식이나 심리, 관념의 세계를 감각적 표현으로 바꾸어 형상화한 점이 특징이다.

* 줄거리 : 우울한 기분과 권태로운 생활에 지친 나는 왠지 중학교 시절 개구리가 사지(四肢)가 핀 에 꽂힌 채 자빠져 있던 모습을 떠올린다. 다음 날 친구 H가 와서 억지로 가자고 하는 바람에 평양 근처의 남포까지 갔는데, 거기서 정신 이상자 김창억이라는 인텔리를 만나게 된다. 그는 일종의 영감(靈感)에 잡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세계 평화를 위한 회를 조직한다고 말한다.

내가 남포를 떠난 지 두 달 쯤 되던 어느 날, Y에게 편지가 왔다. 창억이 집에 불을 지르고 사 라졌다는 것이다. 그 후 창억의 행방을 아는 이는 없었다. 그는 평양 보통문 밖 짚더미 속에서 걸식(乞食)하며 살아가고 있었으나 그가 김창억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가 없었다.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등장 인물

· 김창억 : 어려서 신동이고 부자집 아들인 그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학 업을 중단하고 보통학교 훈도가 됨. 억울한 감옥살이를 한 후 출옥 하나 아내가 가출하여 창녀 가 된 사실을 알고 정신이상자가 되는 인물

· 나(서술자) : 3.1운동의 실패 후에 빚어진 심한 좌절감과 절망, 신경과민으로 불면증(不眠症) 에 시달리는 지식인.

* 주제 : 무기력한 청년 지식인의 고뇌

* 의의 :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심층적으로 묘사.

* 출전 : [개벽](1921)

 


●학(鶴) : 황순원 소설

삼팔 접경의 이 북쪽 마을은 드높이 갠 가을 하늘 아래 한껏 고즈넉했다. 주인 없는 집 봉당(封堂)에 흰 박통만이 흰 박통을 의지하고 굴러있었다. 어쩌다 만나는 늙은이는 담뱃대부터 뒤로 돌렸다.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멀찍이서 미리 길을 비켰다. 모두 겁에 질린 얼굴들이었다.

동네 전체로는 이번 동란에 깨어진 자국이라곤 별로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자기가 어려서 자란 옛 마을은 아닌 성싶었다. (중략)

저만치서 성삼이가 홱 고개를 돌렸다.

“어이, 왜 멍추같이 게 섰는 거야? 어서 학이나 몰아 오너라.”

그제서야 덕재도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새를 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단정학 두세 마리가 높푸른 가을 하늘에 큰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었다.(결말부)

* 감상 : <학>은 1953년 6.25전쟁이 막 휴전으로 치닫던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단짝으로 같이 자란 두 친구가 6.25라는 민족적 비극에 의해서 서로 반대편으로 갈라지나, 결코 변하지 않는 인간미가 두 사람의 동질성을 회복시켜 주는 내용.

 

* 줄거리

· 때는 6.25전쟁의 후반기. 주인공 성삼은 국군의 진격으로 수복된 고향 마을에 치안대원의 사 명을 띠고 오랜만에 찾아온다.

· 고향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지만 지금의 고향은 옛날의 고향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모두 경계의 눈초리로 성삼을 본다.

· 뜻밖에 덕재가 농민 부위원장으로 끌려 와 있는 것을 발견한 성삼은 몹씨 씁쓸해진다. 덕재 는 성삼과 어렸을 적부터 같이 밤서리도 하고 동네의 여자 아이 꼬맹이를 골탕 먹이던 단짝인 것이다.

· 덕재의 호송을 맡은 성삼은 호송 도중 덕재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부위원장직을 맡았다는 것 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을 풀게 된다.

· 덕재가 꼬맹이와 결혼했다는 말에 웃음까지 나오려고 한다. 결정적으로 덕재가 도망을 안간 이유가, 아버지의 뜻을 따라 농토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성삼은 덕재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회복한다.

· 산길을 가다가 때마침 학떼를 보게 된 성삼은 그 옛날 어른들 몰래 학을 풀어 주던 때를 생 각하고 덕재에게 학 사냥이나 하자며 은근히 도망치라고 한다.

 


●학마을 사람들 : 이범선 단편 소설

자동찻길엘 가재도 오르는 데 십 리, 내리는 데 십 리라는 영(嶺)을 구름을 뚫고 넘어, 또 그 밑의 골짜기를 삼십 리 더듬어 나가야하는 마을이었다.

강원도 두메의 이 마을을 관에서는 뭐라고 이름지었는지 몰라도, 그들은 자기네 곳을 학마을이라고 불렀다.

무더기무더기 핀 진달래꽃이 분홍무늬를 놓은 푸른 산들이 사면을 둘러싼 가운데 소복이 들어앉은 일곱 집이 이 마을의 전부였다. 영마루에서 내려다보면 꼭 새둥우리 같았다. (발단부)

* 감상 : 작품은 담담한 필치로 토착 서민의 생태를 그린 이범선의 초기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학의 도래 여부와 학의 상태를 마을의 행.불행 및 운명의 길흉으로 믿는 전래적이고 집단적인 속신(俗信)을 바탕으로 우리의 현대사를 이에 병렬시켜 전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동양적 운명 관을 기반으로 한 세계관이 있다. 이를 통해 작자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변천 및 그에 따른 인 간의 불행한 상태와 이를 극복하려는 희망과 끈질긴 향토애라는 주체를 형상화하고 있다.

* 줄거리 : 자동차길엘 가재도 오르는데 십 리, 내리는 데 십 리라는 영(嶺)을 구름을 뚫고 넘어, 또 그 밑의 골짜기를 삼십 리나 더듬어 나가야 하는 마을이었다. 강원도 두메의 학마을 사람들 은 학을 그들의 신처럼 믿어 왔다. 길흉의 전달자였기 때문이다. 학이 마을에 날아 온 해는 길 운이었지만 학이 날아오지 않은 해에는 어김없이 불행이 왔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기게 된 이 후로는 학이 찾아 오지 않을 뿐더러 한발과 재난이 이어진다. 일제 말 이장 영감과 박 훈장의 손자들이 징병에 끌려 가던 해에는 학이 날아 오지 않았다. 그러나 광복이 되고 징용갔던 젊은 이들이 돌아오던 해에 학은 어김없이 날아왔다.

 

그러던 어느 해, 나무에서 새끼학 한 마리가 떨어져 죽더니 6.25가 터지게 된다. 공산당이 된 박 훈장의 손자 바우에 의해 농민들은 반동으로 몰렸고, 바우의 총질로 학이 죽자 마을 사람들 은 피난이라는 전에 없는 수난을 격었다.

전쟁이 끝나고 피난살이에서 돌아온 마을 사람들은 페허가 된 마을에 묵묵히 날아올 학을 기다 린다. 덕이의 손을 더듬어 잡은 이장 영감은 여전히 누을 감은 채 간신히 입을 움직였다.

“학, 학나무를, 학나무를 ... ... ”

이장 영감은 잠들듯이 숨을 거두었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 등장인물

· 이장 영감 : 학과 학마을을 사랑하는 지도자

· 덕이 : 이장 영감의 손자. 징용 갔다가 돌아와 봉네와 결혼

· 바우 : 덕이와 봉네가 결혼하자 마을을 떠남. 징용 후에 공산당이 된 패륜아

· 봉네 : 순진한 처녀로 덕이와 결혼함

* 주제 : 민족의 수난사를 극복하려는 희구와 민족애

  상징적 의미

· 학이 날아옴 : 평화

· 학이 오지 않음 : 일제

· 학이 다시 옴 : 조국의 광복

· 새끼 죽음 : 동족 상잔의 비극

· 짝 잃고 떠남 : 분단

· 학을 기다림 : 통일의 열망

⇨ 학 = ‘민족, 국가의 운명’ 혹은 ‘학마을 사람들의 삶의 의미’ 상징

 


●한귀(旱鬼) : 박화성 소설

성섭이는 겉보리 섬 위에 꾸깃꾸깃하게 얹혀 있는 검정 홑이불을 집어 들고 와서 아이들 위에 덮어 주었다. 모기떼가 윙하고 날아갔다.

“못된 놈의 모기 새끼들. 보릿가루 죽이 남둥 배부르게 못 먹고 자는 새끼들에게 피를 빨아 먹으면 얼마나 먹겠다고 으응~”

그는 마당에 묻은 모깃불을 뒤적였다.

“불조차 꺼졌구만.”

그는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면서 다시 아이들을 돌아 보았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휴우, 없는 놈에게는 아들도 다 귀찮어.”

 


●한씨연대기 : 황석영 소설

* 줄거리 : 한영덕은 낡고 비좁은 다세대 적산(敵産) 가옥(家屋)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살고 있 는 늙은 노인이다. 그는 장의사에 빌붙어 시체 치우는 일을 거들며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뇌혈전(동맥경화 따위로 인해 뇌의 혈관 속에 핏덩이가 막혀 뇌가 부드러 워져서 일어나는 병)으로 쓰러져, 이웃의 연락을 받고 온 친구 서학준과 누이동생 그리고 친딸 이 바라보는 가운데 한 많은 생을 마친다.

 

젊었을 때 주인공 한영덕은 김일성 대학 의학부 산부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 때 6·25 전쟁이 일어나 대학 병원 내부는 온통 술렁술렁하는 분위기에 휩싸인다. 인민군이 남한 땅 깊 숙이 진격하고 부상자가 속출하자 의대 부속 병원 의사들이 의무 군관으로 징집되어 전선으로 출정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영덕은 성분이 나쁜 탓으로 입영 명단에서 빠져 병원에 남는다. 한영덕의 아버지가 기독교 목사였기 때문이다. 한영덕은 의약품과 의료 기구가 많이 부족한 가운데 전쟁 부상자를 치료하는 데 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위급한 민간인 환 자를 우선적으로 치료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고 반동 분자로 낙인 찍혀 투옥된다. 결국 그는 유 엔군과 국군이 평양에 입성하기 직전에 총살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한영덕은 왼쪽 귀 옆에 탄 환의 찰과상만 입을 뿐 전신은 말짱한 채 기적적으로 살아 남는다.

 

국군은 평양에 입성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평양에서 철수한다. 한영덕은 가족을 남겨 두고 혼자 남쪽으로 내려 온다. 남으로 온 한영덕은 대동강을 함께 건넜다가 되돌아간 아들이 혹시 인민군으로 출정해 포로로 잡히지 않았을까 해서 포로 수용소 주변을 배회하다가 의심을 받고 연행되어 심문을 받기도 한다.

 

한영덕은 육군 병원 군의관으로 있는 고향 친구 서학준을 통해 누이동생 한영숙을 만나 몸을 의탁한다. 그러나 누이의 신세만 질 수가 없어 박씨 성을 가진 무자격자가 경영하는 산부인과 의원에 취직해 불법 낙태 수술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 후 전쟁 미망인인 윤마담과 재혼을 해 살아가던 한영덕은 양심의 가책을 못이겨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 간다.

 

그 후 박씨의 병원에는 무면허 의료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의료 감시반이 들이닥친다. 이를 한 영덕이 고발한 것으로 오해한 박씨는 정보대에 한영덕을 간첩이라 투서한다. 그리하여 한영덕 은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한다. 그 후 누이동생 한영숙의 끈질긴 노력과 친구 서학준의 도움 으로 겨우 풀려나지만, 삶의 의욕을 잃고 폐인이 되어 윤마담과 자신의 딸을 버려둔 채 집을 나온다.

 

한영덕의 친딸 혜자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도 울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가 살았 던 시대를 새롭게 실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임종 후 잠시 잠에 빠졌다가 새벽에 눈 을 뜬 혜자는 아버지의 유품 중 수첩을 들고 그 집을 빠져 나온다. 고별식은 끝났고 이제 그는 망령마저 떠돌 수 없도록 땅속 깊이 묻힐 것이다.

 


●해방전후 : 이태준 중편 소설

현은 무슨 사상가도, 주의자도, 무슨 전과자도 아니었다. 시골 청년들이 어떤 사건으로 잡히어서 가택 수색을 당할 때, 그의 저서가 한두 가지 나온다든지, 편지 왕래한 것이 한두 장 불거진다든지, 서울 가서 누구를 만나 보았느냐는 심문에 현의 이름이 끌려든다든지 해서, 청년들에게 제법 무슨 사상 지도나 하고 있지 않나 하는 혐의로 가끔 오너라 가너라 하기 시작한 것이 인젠 저들의 수첩에 준요시찰인(準要視察人) 정도로는 오른 모양인데, 구금을 할 정도라면 당장 데려갈 것이지 '호출장'이니 '시달서'니가 아닐 것은 짐작하면서도 번번이 불안스러웠고 더욱 이번에는 은근히 마음 쓰이는 것이 없지도 않았다. 일반 지원병 제도와 학생 특별 지원병 제도 때문에 뜻 아닌 죽음이기보다, 뜻 아닌 살인, 살인이라도 내 민족에게 유일한 희망을 주고 있는 중국이나 영미나 소련의 우군을 죽여야 하는, 그리고 내 몸이 죽되 원수 일본을 위하는 죽음이 되어야 하는, 이 모순 된 번민으로 행여나 무슨 해결을 얻을까 해서 더듬고 더듬다가는 한낱 소설가인 현을 찾아와 준 청년도 한둘이 아니었다. 현은 하루 이틀 동안에 극도의 신경 쇠약이 된 청년도 보았고, 다녀간 지 한 일주 일 뒤에 자살하는 유서를 보내온 청년도 있었다. 이런 심각한 민족의 번민을 현은 제몸만이 학병 자신이 아니라 해서 혼자 뒷날을 사려해 가며 같은 불행한 형제로서의 울분을 절제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전혀 초면들이라 저 사람이 내 속을 떠보려는 밀정이나 아닌가 의심하면서도, 그런 의심부터가 용서될 수 없다는 자책으로 현은 아무리 낯선 청년에게라도 일러 주고 싶은 말은 한 마디도 굽히거나 남긴 적이 없는 흥분이곤 했다.

그들을 보내고 고요한 서재에서 아직도 상기된 현의 얼굴은 그예 무슨 일을 저지르고만 불안이었고, 이왕 불안일 바엔 이왕 저지르는 바엔 이 한 걸음 절박해 오는 민족의 최후에 있어 좀더 보람있는 저지름을 하고 싶은 충동고 없지 않았으나, 그 자신 아무런 준비도 없었고, 너무나 오랫동안 굳어 버린 성격의 껍데기는 여간 힘으로는 제 자신이 깨트리고 솟아날 수 없었다.

 

* 감상 : 이태준의 자전적 소설 작품이다. 지조를 잃지 않기 위해 일제에 비협조적이었던 주인공 ' 현'은 민족의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 번민하는 주위 청년들의 정신적 귀감이 되어 문제 해결의 상담 역할까지 맡아 왔었다. 그런 현이 대동아 전기 번역에 사역하고는 강원도 산골로 이사를 단행한다. 그렇지만, 면장과 주재소 때문에 시골 생활도 쉽지 않았고, 그런 현에게 유일한 즐거 움은 향교 직원인 김직원과의 교류이다. 하지만 문인 보국회의 궐기 대회에 억지로 참석하게 된 현은 연설 도중 뛰쳐 나가고 만다. 시골에 다시 은둔한 현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지 내다가 광복을 맞이 한다.

그 후 상경한 현은 문학 단체들의 난립을 막기 위해 '조선문화중앙건설협의회'를 찾아 그 단체 의 임원이 되는데, 어느 날 김직원이 찾아와 신탁통치를 찬성하게 된 현을 심하게 나무라고 돌 아간다. 현은 그 뒤 프로 예맹과의 합동에 신경쓴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 주제 : 일제 강점기 하의 한 문인의 갈등

 

󰏐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12> 이태준의 `해방 전후' (철원/글 최재봉)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심훈, `그날이 오면' 첫연).

 

소설 <상록수>의 저자이기도 한 심훈(1901~36)의 시 `그날이 오면'은 일제 통치의 전기간을 통틀어 조국 해방에의 의지를 가장 절절하게 노래한 시편에 속한다.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옥살이를 겪고 일시적일망정 상하이로 망명까지 했던 그의 이력은 이 시의 진정성과 절박함을 담보하고 있음이다. 그러나 주제의 선명함을 미학적 고려에 앞세우는 데서도 느낄 수 있는 그 절박함은 역으로 `그날'의 요원함에 대한 뼈저린 회한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마침내, 그날은, 왔다. 심훈이 보지 못한, 아니 윤동주와 이육사와 한용운이 끝끝내 살아서 보지 못한 그날은 늙은 히로히토의 침통한 항복선언과 함께 문득 현실이 되었다. 심훈과 윤동주와 이육사와 한용운은 그날을 만난 기쁨에 죽지 못하고, 죽어서야 그날을 맞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한으로 남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살아서 그날을 맞이한 이들에게 1945년 8월15일은 새로운 가능성과 의욕의 이름이었다. 4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이민족의 지배 아래 신음해온 겨레붙이들로서는 이제야말로 누구의 간섭과 훼방도 받음이 없이 제출물로 근대화라는 역사의 신작로를 활보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상허 이태준(1904~?)의 중편 <해방 전후>는 반성과 희망이 교차하는 민족사의 갈림길을 배경으로 작가 자신의 행적과 사유를 기록한 자전소설이자 보고문학이다. 해방 전과 후에 정확히 절반씩의 분량을 할애한 소설의 전반부에서 주인공인 소설가 `현'은 일본 관헌의 압력에 못이겨 대동아전기(大東亞戰記)의 번역에 손을 빌려준 일을 두고 괴로워하다가 강원도 어느 산읍에 처박혀 낚시질 따위로 세월을 기다린다.

 

이곳에서 그는 향교의 직원(直員)으로 있는 전통 선비 `김직원'을 만나 시국담을 주고받으며 울분을 나누기도 한다. 일제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서는 의견이 일치했던 두 사람은 그러나 막상 해방과 함께 그 적이 사라지자 현격한 견해의 차이를 내비친다. 철저한 근왕주의자인 김직원과 반봉건 근대화론자인 현은 해방 조국의 미래 설계를 놓고 갈라서게 되는 것이다. 새 나라의 국체에 관한 견해 차이는 해방정국 최대의 쟁점이었던 신탁통치에 대한 평가로도 이어진다. 김직원의 완강한 반대 입장을 󰡒비실제적인 환상이나 감상󰡓으로 치부하면서 신탁통치야말로 󰡒가장 과학적이요 세계사적인 확실한 견해󰡓라고 믿는 현의 생각이 그것을 보여준다. 소설 속의 현이 다름아닌 작가 이태준 자신의 가탁임을 상기할 때, 그가 당시 남로당을 필두로 한 좌파의 노선을 좇아 찬탁 쪽에 섰다는 사실은 마땅한 설명을 기다리는 수수께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30년대에 카프의 계급문학에 반발해 순수문학 그룹인 구인회를 결성했던 현/이태준이 해방 직후 좌익 문인단체인 문학가동맹의 부위원장을 맡고 이듬해에는 마침내 월북을 택하기에까지 이른 것은 또 어찌된 일일까. 그가 물론 궁극적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을 숙청의 운명을 미리 알고 있지는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소설 속에서 그에 대한 충분하고 납득할 만한 설명은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소설 마지막 문단에서 보이는 막연한 희망과 활기가 당시 그의 기분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바람이 아직 차나 어딘지 부드러운 벌써 봄바람이다. 현은 담배를 한대 피우고 회관으로 내려왔다. 친구들은 `프로예맹'과의 합동도 끝나고 이번엔 `전국문학자대회' 준비로 바쁘고들 있었다.󰡓이것을 비슷한 무렵에 발표되었고 해방공간이라는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채만식의 단편 <역려>의 마지막 문장들과 비교해 보자.

 

󰡒비는 오고. 다음 차가 언제 있을지 모르는 차를 우리는 음산한 정거장에서 민망히 기다려야 하였다.󰡓

 

해방이라는 동일한 조건을 받아 놓고 이태준이 보이는 낙관과 채만식이 내비치는 주저와 회의 사이에는 얼마나 너른 간격이 가로놓여 있는가. 그 두 가지 태도의 차이가 결국 이태준의 월북과 채만식의 낙향이라는 상반된 결과를 낳았으리라.

<해방 전후>의 전반부에서 현이 마음의 평화를 찾아 숨어든 곳은 경기도 이천군 안협면, 지금은 휴전선 북쪽이다. 이태준의 고향인 강원도 철원군 산명리 역시 휴전선 너머에 있으며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철원군 율이리는 남방한계선 남쪽의 민통선 안에 자리잡고 있다. 상허와 고향 전의 자취를 좇는 여정은 따라서 분단현실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해방기를 그린 소설의 무대가 바로 분단의 현장이 되었다는 사실은해방이 약속했던 기회와 희망이 거꾸로 분단이라는 위기와 질곡으로 뒤바뀌어 버린 민족사의 역설을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휴전선 이남에서 안협과 산명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은 구철원으로 알려진 민통선 안쪽이다. 옛 철원군 노동당사와 월정리역, 철의 삼각전망대, 샘통 철새도래지 등이 있는 이 일대는 일반인들로서는 전적관에서 주관하는 안보관광을 신청해야만 둘러볼 수가 있다. 민통선 출입을 관할하는 제5검문소를 지나 불과 1백m 정도만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그 유명한 노동당사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전쟁의 이빨에 모질게 할퀴여 뼈대만 남은 이 삼층 건물의 벽에는 지난 반세기 동안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낙서의 사이사이에 Cpt Stephens, 1SG Reese 따위의 미군들 이름이 보이는가 하면, `서태지 만세'와 `북조선사회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가 공존하고 있기도 하다.

 

노동당사에서 철새도래지와 옛 철원역터를 지나 월정리역과 철의 삼각지 전망대에 이르는 길의 좌우로는 철원평야의 광활한 논과 밭이 펼쳐진다. 자세히 보면 무너져내린 가옥과 건물의 흔적이 논과 밭 사이에 숨은 그림처럼 새겨져 있다. 수시로 나타나는 도로봉쇄용 낙석과 지뢰 주의 표지판을 지나쳐 가던 길은 휴전선 남방한계선에 가로막히는데, 그곳이 철의 삼각지 전망대와 월정리역이다.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에 눈을 대면 시야 왼편으로 나타나는 백마고지 너머로 <해방 전후>의 무대인 안협이 아련히 보이는 듯도 하다. 군인들의 간헐적인 구호와 대남․대북방송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오는 가운데 외출을 나온 일단의 병사들이 무리지어 기념촬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전망대와 역 주변에서는 무력대치의 긴박감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은 어김없는 분단의 현장. 민족의 완전한 해방은 여전히 유예되고 있으며, 전쟁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허생전 : 박지원 한문소설

허생은 묵적골〔墨積洞]에 살았다. 곧장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렸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글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글을 읽어 무엇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장인바치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장인바치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장인바치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 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칠 년일걸……."

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운종가(雲從街)로 나가서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변씨(卞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변씨를 대하여 길에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만 냥(兩)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만 냥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를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변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은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을 하겠느냐?"

* 정리

1) 갈래 : 고대소설, 한문소설, 풍자소설, 단편소설

2) 문체 : 역어체, 산문체

3) 표현 : 냉소적 현실 풍자

4) 인물성격

- 허생 : 비판적 지식인으로 비범한 능력과 異人다운 면모

- 변씨 : 도량이 크며, 허생으로 하여금 경륜을 펴게 함.이완과 접촉시키는 역할

- 이완 : 당대 무능한 사대부 상징. 북벌론의 핵심 인물.

5) 배경 : 시간적 - 17세기 후반 조선 효종 때

공간적 - 서울과 한반도 전역.

6)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7) 제재 : 선비의 이단적(異端的) 삶

 

* 짜임

-발단 : 허생의 가난한 삶

① 가난한 생활 속에서 글읽기 좋아함.

② 허생의 무능함 하내가 질책

③ 독서 중단하고 집 나섬

-전개 (1) 허생의 시험

① 변씨에게서 돈을 빌림.

② 장사를 해서 큰 이익을 남김

③ 빈 섬을 물색함.

④ 도둑을 이끌고 빈 섬에 가서 경영함.

⑤ 빈민을 구제하고 변씨의 돈을 갚음.

-전개 (2) 허생과 변씨의 교우

① 허생과 변씨의 교우관계

② 허생이 돈을 번 내력 설명

③ 허생의 운명관 피력

④ 허생이 인재 등용의 모순 개탄

-위기 : 허생과 이완의 대면

① 변씨가 이완을 소개함

② 문전박대하는 허생

③ 시사 3책

④ 이완의 대답은 불가능하다 함.

-절정,결말 : 허생의 사대부 비판

① 사대부의 허례허식 비판

② 북벌론의 허구성 비판

③ 이완을 죽이려 하자 달아남

④ 허생이 종적을 감춤

* 주제 : 양반의 무능 비판 및 선비의 자아각성 촉구

* 출전 : [열하일기] 중 옥갑야화


 

●혈의 누(血의 淚) : 원각사를 세워 신극 운동 전개한 이인직(李人稙, 1862-1916)의 첫 장편.

일청전쟁의 총소리는, 평양 일경이 떠나가는 듯하니, 그 총소리가 그치매 사람의 자취는 끊어지고 산과 들에 비린 띠끌뿐이라. 평양성 외 모란봉에 떨어지는 저녁볕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저 햇빛을 붙들어 매고 싶은 마음에 붙들어 매지는 못하고 숨이 턱에 닿은 듯이 갈팡질팡하는 부인이 나이 삼십이 될락말락하고, 얼굴은 분을 따고 넣은 듯이 흰 얼굴이나 인정없이 뜨겁게 내리쬐이는 가을볕에 얼굴이 익어서 선앵두빛이 되고, 걸음걸이는 허둥지둥하는데 옷은 흘러서 젖가슴이 다 드러나고 치맛자락은 땅에 질질 끌려서 걸음을 걷는 대로 치마가 밟히니 (하략)

부인이 홧김에 편지를 박박 뜯어 보니 옥련의 편지라. 모란봉에서 지낸 일부터 미국 화성돈(워싱턴) 호텔에서 옥련이 부녀가 상봉하여 그 모친의 편지 보던 모양까지 그린 듯이 자세히 한 편지라. 그 편지 부쳤던 날은 광무 육 년(음력) 칠월 십일일인데, 부인이 그 편지를 받아보던 날은 임인년 음력 팔월 십오일이더라.

아래권은 그 여학생이 고국에 돌아온 후를 기다리오.

상편 종(上篇終)

* 감상 : 이 작품은 한국 근대문학사에 나타난 최초의 근대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한국 소설은 그 이전의 전근대적인 때를 벗기 시작하였다. 이전의 한국 고대소설은 이야기 중심이 고 우연성이 심하게 나타나 있었다. 이 작품은 10년의 시간 속에서 한국, 일본, 미국을 무대로 한 여주인공 옥련의 기구한 운명에 얽힌 개화기의 시대상을 그린 것으로서 ‘자주 독립, 신교 육, 신결혼관’ 등이 그 주제로 되어 있다. 등장 인물들은 다소 친일적이고 역사 인식이 부족 한 인물들이며, 그 당시 대다수의 지식인들과 부합하는 사실적(寫實的)인 인물(人物)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의 신소설적 성격을 간단히 살피면 첫째, 언문 일치(言文一致)에 거의 근접해 있으며, 둘째, 서술 시간이 역전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셋째, 표현에서 묘사체 문장이 시도되고 있고, 넷째, 개화 사상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또한 여섯째, 그 소재들이 대체로 우리 주변에서 일 상 일어나는 일들로 택해져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의 후편은 작품 말미에 “아래권은 그 여학생이 고국에 돌아온 후를 기다리오”라고 예 고된 후, 1913년 2월에 와서 <모란봉>이라는 이름으로 [매일신보]신문에 65회에 걸쳐 연재되 었다.(1913년 6월까지)

 

* 줄거리 : 이야기의 발단은 청일 전쟁(淸日戰爭)의 회오리 바람이 막 지나가고 피비린내가 만연 한 평양 어느 곳에서 삼십세 가량의 여인이 옷도 풀어 헤친 채 허둥거리는 장면에서 부터 시 작된다. 이 여인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아내를 잃고 찾아헤매던 어느 외간 남자 와 부딪혀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이 부인은 남편 김관일(金冠一)과 의딸 옥련(玉蓮),세 식구가 난리통에 서로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최씨부인은 남편을 기다리다가 끝내 돌아오지 않자 자살을 결심하고 대동강 물에 뛰어 드나 뱃사공에게 구출되어 평양에 그대로 머물렀으며, 김 관일은 나라의 큰일을 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옥련은 피란길에 폭탄의 파편을 맞아 부상했으나 일본군 군의관 이노우에(井上)의 후의로 그 의 양녀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 간다. 그녀는 원래 총명하고 예쁜 탓으로 이노우에 군의의 부 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옥련은 그 후 이노우에 군의가 전사(戰死)하자, 부인으로부터 냉대 를 받게 되고 갑자기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구완서라는 청년과 알게 되어 함 께 미국으로 건너 간다. 구완서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뜻을 품고 조선을 독일의 바이마르 공 화국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유학길에 오르던 중이었다. 옥련은 그곳에서 고등 학교 를 우등으로 마치고 이미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 김관일과 10년만에 만나게 된다. 옥련이 우등으로 졸업하자 그곳 신문에 옥련에 관한 기사가 나고 이것을 옥련의 아버지인 김관일이 본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옥련과 구완서는 일생의 반려가 되기로 기약하며 약혼을 한다. 그리 고 어머니가 아직 평양에 살아 있음을 확인한 옥련은 매우 기뻐하며, 그리움 속에 어머니에게 우선 편지를 띄운다. 구완서는 우리 나라를 문명한 강대국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였고, 또 옥련은 우리 나라 여자들의 지식을 넓혀서 남자에게 눌리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며, 또한 여자들도 사회에 유익하고 명예있는 백성이 되도록 교육할 것을 마음먹는다.

 

* 연대와 성격 : 1906년 계몽적 성격의 신소설.

* 표현 : 묘사체, 산문체(언문일치에 접근, 일부는 여전히 문어체 흔적 남아 있음)

* 등장인물

· 옥련 : 주인공. 문명주의자(文明主義者)인 김관일의 딸.

· 김관일 :옥련의 아버지. 청일전쟁을 계기로 부국강병의 뜻을 품음.

· 구완서 :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뜻을 품은 유학생.

* 주제 : 자주독립, 신교육 사상과 새로운 결혼관.

* 의의 : 최초의 성격의 신소설

* 연재 : 1906.7-10월 [만세보] 연재

 


●호질(虎叱) : 연암 박지원 한문소설

정(鄭)나라 어느 고을에 벼슬을 탐탁하게 생각지 않는 학자가 살았는데 북곽선생(北郭先生)이었다. 그는 나이 40에 손수 교정(校正)해 낸 책이 만 권이었고, 또 육경(六經)의 뜻을 부연해서 다시 저술한 책이 일만 오천권이었다. 천자가 그의 행의를 가상히 여기고 제후가 그 명망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 고장 동쪽에는 동리자(東里子)라는 미모의 과부가 있었다. 천자가 그 절개를 가상히 여기고 제후가 그 현숙함을 사모하여, 그 마을의 둘레를 봉해서 동리과 부지여(東里寡婦之閭)라고 정표(旌表)를 해주기도 했다. 이처럼 동리자가 수절을 잘 하는 부인이라 했는데 실은 슬하의 다섯 아들이 저마다 성을 달리 하고 있었다.

어느날 밤 다섯 아들들이 서로 말하기를

“강 건너 마을에서 닭이 울고 강 저편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데 방안에서 흘러 나오는 말소리는 어찌 그리 북곽선생의 목청을 닮았을까?”

하고 다섯 아들이 차례로 문틈으로 들여다보는데, 동리자가 북곽선생에게

“오랫 동안 선생님의 덕을 사모했삽는데 오늘 밤은 선생님 글 읽는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 하고 간청하매 옷깃을 바로 잡고 점잖게 앉아 시를 읊었다.

이에 다섯 아들이,

“북곽 선생과 같은 점잖은 어른이 과부의 방에 들어올 리가 있겠나. 우리 고을의 성문이 무너진데에 여우가 사는 굴이 있다더라. 여우란 놈은 천년을 묵으면 사 람 모양으로 둔갑할 수 있다더라. 저건 틀림 없이 그 놈이 북곽선생으로 둔갑한 것이다.”

* 감상 : 위선적인 인물, 북곽과 동리자를 설정하여 당시의 양반 계급의 부패한 도덕 관념을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북곽 선생은 겉으로 도덕 군자로 이름이 나 있으나, 실상은 ‘여우’같은 인간이요, ‘똥’같은 인물이며, 끝까지 위선과 허세를 부리는 이중적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동리자 역시 겉으로는 정절이 높기로 소문이 나 있으나, 다섯 아들의 성씨가 각가 다르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위선적인 인간임을 폭로하고 있다.

 

* 갈래 : 한문소설

* 주제 : 조선 후기 허위 의식(도덕관념)을 풍자적으로 비판

* 출전 : [열하일기]

 


●홍길동전(洪吉童傳) : 허균 소설

화설(話說) 됴선국(朝鮮國) 세둉됴(世宗朝) 시절의 흔 샹(宰相)이 이시니 셩은 홍(洪)이어 명(名)은 뫼(某)라. (代代)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쇼년등과(少年登科)여 벼이 니죠판셔(吏曹判書)의 니르 물망(物望)이 됴야(朝野)의 읏듬이오, 충효겸비(忠孝兼備)기로 일흠이 일국(一國)의 진동(振動)더라. 일즉 두 아들을 두어시니, 일(一子)는 일흠이 인형(仁衡)이니, 졍실(正室) 류시(柳氏) 쇼이오, 일는 일흠이 길동(吉童)이니 시비(侍婢) 츈셤(春蟾)의 쇼이라. (발단부)

 

각셜(却說) 길동이 부모 니별고 문을 나, 일신이 표박(漂迫)여 쳐 업시 더니,  곳의 다다르니,  졀승(景槪絶勝)지라. 인가  졈졈 드러가니, 큰 바회 밋 셕문(石門)이 닷쳐거 가마니 그 문을 열고 드러가니 평원 광야의 슈 호 인(人家ㅣ) 즐비고, 여러 사이 모다 잔며 즐기니 이 곳은 도젹의 굴혈(掘穴)이라. 문득 길동을 보고 그 위인(爲人)이 녹녹(碌碌)지 아니믈 반겨 문 왈,

“그 엇던 사이완 이 곳의 왓뇨. 이 곳은 영웅이 모도여시나 아직 괴슈(魁首) 치 못여시니, 그 만일 용녁(勇力)이 이셔 녀코져 진 져 돌을 드러보라.”

길동이 이말을 듯고 다(多幸)여 (再拜) 왈,

“나 경셩(京城) 홍판서의 천첩(賤妾) 소생(所生) 길동이러니, 가중 천대 밧지 아니려 여 사 팔방(四海八方) 으로 졍쳐 업시 단니더니, 우연이 이 곳의 드러와 모든 호걸의 동뇨되믈 니르시니 불승 감샤(不勝感謝)거니와 쟝뷔(丈夫ㅣ) 엇지 져만 돌 들기 근심리오.”

고, 그 돌을 들어 슈십 보 다가 더지니 그 돌 무긔 쳔근이라. 졔적(諸賊)이 일시의 칭찬 왈,

“과연 장(壯士ㅣ)로다. 우리 슈천 명 의 이 돌 들  업더니, 오날날 하이 도으샤 쟝군으 쥬시미로다.”

하고, 길동을 상좌(上座)에 안치고 슐을 례로 권고 마(白馬) 아 셰며 언약을 굿게 니, 즁인(衆人)이 일시의 응낙(應諾)고 죵일 즐기더라.

이 후로 길동이 졔인으로 더브러 무예 연습여 슈월지(數月之內)의 군법이 졔(整齊)지라. 일일은 졔인이 니되,

“아등(我等)이 발셔 합쳔(陜川) 인사(海印寺) 쳐 그 물을 탈취코져 나, 지략(智略)이 부죡여 거죠(擧措) 발치 못여더니, 이졔 쟝군의 의향이 엇더시니잇고.”

길동이 쇼(笑) 왈,

“ 장 발군(發軍)리니 그 등은 지휘로 라.”

고, 쳥포 흑(靑袍黑帶)의 나귀 타고 죵(從者) 슈인을 다리고 나가면 왈,

“ 그 졀의 가 동졍(動靜)을 보고 오리라.”

고 가니, 완연(宛然)한 샹가(宰相家) 졔라. 그 졀의 드러가 먼져 슈승(首僧)을 불너 니르되,

“나 경셩 홍판셔 졔라. 이 졀의 와 글공부라 왓거니와, 명일의 미(白米) 이십 셕을 보 거시니, 음식을 졍(淨)히 찰이면 너의들노 가지로 먹으리라.”

* 구성

· 발단 : 홍판서의 서자(庶子, 엄격히 말하면 ‘얼자·孼子’임)로 길동이 태어나 천대 받음

· 전개 : 적서차별의 사회제도에 반항해 이상을 찾아 집을 떠남

· 위기 : 도적의 무리 ‘활빈당’의 괴수가 되어 빈민을 구제함

· 절정 : 나라에서 길동을 잡기 위해 애쓰나 잡지 못하고, 길동은 율도국으로 떠남

· 결말 : 율도국에서 이상국을 세우고 선정을 베풂

 

* 주제 : 조선조 소설은 대부분이 체제 옹호적인 보수적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홍길동전>은 체제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 적서(嫡庶) 차별 반대

· 탐관오리 비판

· 해외 이상향 건설

 

* 창작동기 : 임란 이후 사회의 혼란과 양반 토호들의 횡포가 극에 이르자 이를 개혁하려는 의지 가 나타나고, 특히 적서차별에 대한 서류 진출이 불가능했기에 이를 개혁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 동기가 되었다.

---  문학이론 <영웅적 인물>


 

●홍염(紅焰) : 최서해 단편 소설

1.

겨울은 이 가난한󰠏󰠏󰠏백두산 서북편 서간도 한귀퉁이에 있는 이 가난한 촌락 빼허[白河]에도 찾아들었다.겨울이 찾아들면 조그만 강을 앞에 끼고 큰 산을 등진 빼허는 쓸쓸히 눈 속에 묻히어서 차디찬 좁은 하늘을 치어다보게 된다.

눈보라는 북국의 특색이다. 빼허의 겨울에도 그러한 특색이 있다. 이것이 빼허의 생령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오늘도 눈보라가 친다.

북극의 얼음 세계나 거쳐오는 듯한 차디찬 바람이 우하고 몰려오는 때면 산봉우리와 엉성한 가지 끝에 쌓였던 눈들이 한꺼번에 휘날려서 이 좁은 산골은 뿌연 눈안개 속에 들게 된다. 어떤 때는 강골 바람에 빙판에 덮였던 눈이 산봉우리로 불리게 된다. 이렇게 교대적으로 산봉우리의 눈이 들로 내리고 빙판의 눈이 산봉우리로 올리달려서 서로 엇바뀌는 때면 그런대로 관계치 않으나, 하뉘[天風]와 강바람이 한꺼번에 불어서 강으로부터 올리다른 눈과 봉우리로부터 내리다른 눈이 서로 부딪치고 어울어지게 되면 눈보라와 바람 소리에 빼허의 좁은 골짜기는 터질 듯한 동요를 받는다.

등진 산과 앞으로 낀 강 사이에 게딱지처럼 끼어 있는 것이 이 빼허의 촌락이다. 통틀어서 다섯 호밖에 되지 않는 집이나마 밭을 따라서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모두 커단 나무를 찍어다가 우물정(井)자로 틀을 짜 지은 집인데 여기 사람들은 이것을 ‘귀틀집’이라 한다. 지붕은 대개 좃짚이요, 혹은 나무 껍질로도 이었다. 그 꼴은 마치 우리 내지(간도서는 조선을 내지라 한다)의 거름집[堆肥舍]과 같다. 심하게 말하는 이는 도야지굴과 같다고 한다.

이것이 남부여대(男負女戴)로 서간도 산골을 찾아들어서 사는 조선 사람의 집들이다. 빼허의 집들은 그러한 좋은 표본이다.

험악한 강산 세찬 바람과 뿌연 눈보라 속에 게딱지처럼 붙어서 위태스럽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 모든 집에도 어느 때든󰠏󰠏󰠏󰠏공도가 위대한 공도(公道)가 어그러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꼭 한때는 따뜻한 봄볕이 지내리라. 그러나 이렇게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우짖으면 그 어설궂은 집 속에 의지 없이 들어백인 사람들은 자기네로도 알 수 없는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게 된다.

이렇게 몹시 춥고 두려운 날 아침에 문 서방은 집을 나섰다. 산산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뿌연 상투에 휘휘 거둬감고 수건으로 이마를 질끈 동인 위에 까맣게 그으른 대패밥 모자를 끈달아 썼다. 부대처럼 툭툭한 토수래(베실을 삶아서 짠 것이다.) 바지저고리는 언제 입은 것인지 뚫어지고 흙투성이 되었는데 바람에 무겁게 흩날린다.

“문 서뱅이 발써 갔소?” (중략)

“훠쓰(불이야)!”

하는 고함과 함께 사람의 소리는 요란하였다. 모진 바람에 하늘하늘 일어서는 불길은 어느새 보릿짚더미를 살라 버리고 울타리를 살라 버리고 울타리 안에 있는 집에 옮았다.

“푸우 우루루루 쏴아……”

동풍이 몹시 일면은 불기둥은 서편으로 서풍이 몹시 부는 때면 불기둥은 동으로 쏠려서 모진 소리를 치고 검은 연기를 뿜다가도 동서풍이 어울치면 축늉[火神]의 붉은 혓발은 하늘하늘 염염이 타올라서 차디찬 별󰠏󰠏󰠏󰠏억만 년 변함이 없을 듯하던 별까지 녹아내릴 것같이 검은 연기는 하늘을 덮고 붉은 빛은 깜깜하던 골짜기에 차흘러서 어둠을 기회로 모아들었던 온갖 요귀(妖鬼)를 몰아내는 것 같다. 불을 질러놓고 뒷숲속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그 그림자󰠏󰠏󰠏󰠏딸과 아내를 잃은 문 서방은,

“하하하……”

시원스럽게 웃고 가슴을 만지면서 한 손으로 꽁무니에 찼던 도끼를 만져보았다.

일 동리 사람들과 인가의 집 일꾼들은 불붙는 데 모여들었으나 모두 어쩔 줄을 모르고 떠들고 덤비면서 달려가고 달려올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울타리는 물론 울타리 속에 엉큼히 서 있던 큰 집 두 채도 반이나 타서 쓰러졌다.

이런 불 속으로부터 여러 사람이 오고 가는 밭 가운데로 튀어나가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하나는 커단 장정이요, 하나는 작은 여자이다. 뒷간 숲에서 이것을 본 문 서방은 그 두 그림자를 향하여 내리뛰었다. 그는 천방지방 내리뛰었다. 독살이 잔뜩 올라서 불빛에 번쩍이는 그의 눈에는 이 두 그림자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으윽 끅.”

문 서방이 여러 사람을 헤치고 두 그림자 앞에 가 섰을 때 앞에 섰던 장정의 그림자는 땅에 거꾸러졌다. 그때는 벌써 문 서방의 손에 쥐었던 도끼가 장정 인가의 머리에 박혔다. 도끼를 놓은 문 서방의 품에는 어린 여자의 그림자가 안겼다. 용례가……

그 바람에 모여섰던 사람들은 혹은 허둥지둥 뛰어버리고 혹은 뒤로 자빠져서 부르르 떨었다. 용례도 거꾸러지는 것을 안았다.

“용례야! 놀라지 마라! 나다! 아버지다! 용례야!”

문 서방은 딸을 품에 안으니 이때까지 악만 찼던 가슴이 스르르 풀리면서 독살이 올랐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이렇게 슬픈 중에도 그의 마음은 기쁘고 시원하였다. 하늘과 땅을 주어도 그 기쁨을 바꿀 것 같지 않았다.

그 기쁨! 그 기쁨은 딸을 안은 기쁨만이 아니었다. 적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 같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

불길은󰠏󰠏󰠏󰠏그 붉은 불길은 의연히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처럼 하늘하늘 올랐다.

* 감상 :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다음 세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최학송은 만주 등지를 방랑하며 직업을 전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을 했다. 둘째, 소 재를 궁핍한 것에서 찾았으며 구성은 지주 대 소작인, 또는 공장주 대 노동자의 대립으로 되어 있고, 결말이 살인, 방화로 끝나는 이른바 ‘신경향파’ 적인 요소가 전형적으로 나타나 있다. 셋 째, 결말의 살인, 방화는 신경향파의 한계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살인, 방화는 자포자기의 상태 에서의충동적 행위이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일제의 경제 수탈로 궁핍을 면치 못하던 1920년대 서간도 빼허를 배경으로 그 곳에 사는 조선인들의 비참하고 억눌린 삶을 그리고 있다. 지주에게 딸을 앗기고 그 충격으로 아내 마저 죽게되자, 방화와 살인으로 보복을 감행하는 주인공의 극단적인 행동은 민족적 울분의 심 도를 짐작하게 하는 한편으로 그 한의 극복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 다. 극적인 줄거리를 묘사보다 서술에 의존해 이끌어감으로써 ‘들려주는 이야기’ 의 효과만 을 얻게 된다. 또한, 이 작품은 신경향파적인 작품으로서 빈곤과 민족적 대립 문제가 중심 갈등 요인으로 되어 있다.

* 줄거리 : 백두산 서북편 서간도 귀퉁이의 가난한 촌락 빼허[白河]의 눈발이 날리는 1920년경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이다. 주인공 문서방은 경기도에서 소작인으로 살다가 간도로 유 랑해 들어와 중국인 지주 인가의 소작인이 된다. 한국에서 이민 간 농부들이 사는 이 마을의 소작인 문 서방의 딸 용례를, 중국인 지주 인가는 빚(흉년이어서 소작료를 체납하게 되자 빚이 된다.) 대신 강제로 데려간다. 딸을 빼앗기 문 서방은 중국 ‘되놈들’에게는 ‘조선 거지’, 한국 인들에게는 ‘딸팔아 먹은 놈’으로 손가락질 당하고, 외동딸을 ‘되놈’지주에게 빼앗긴 아내마 저 일년 후에 발광하여 죽고 만다. 아내가 죽은 다음 날 밤, 문 서방은 지주(地主) 인가의 집으 로 달려가 불을 지르고, 도끼로 인가를 해쳐 죽인 뒤 딸을 부여안는다.

그 기쁨! 그 기쁨은 딸을 안은 기쁨만이 아니었다. 적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 같은 성벽 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성격 : 사실적, 현실 고발적, 신경향파적

* 문체 : 간결하고 직설적인 문체

* 등장인물

· 문서방 : 한국 이주민. 입체적 인물. 소작인

· 인가(은가, 殷哥) : 문서방의 사위. 중국인 지주. 탐욕스러운 사람.

* 주제 : 일제 식민지하 조선인의 비참한 삶과 저항.


 

 

 

●화랑의 후예 : 김동리 소설

봄도 지나 여름이 되었다. 새는 녹음 속에 늙고, 물은 산골을 울리며 흘렀다. 그 때 돌연히 숙부님이 어떤 사건으로 피검(被檢)이 되자, 나는 시골 어느 절간에 가 지내려던 피서 계획을 포기하고, 괴로운 여름 한철을 서울서 나게 되었다. 물론, 숙부님의 사건이란 건 당시 나도 잘 몰랐는데, 세상에서 들리는 말로는 만주에서 발단된 '대종교 사건'의 연루라는 것으로, 숙부님 검거, 금광 채굴 중지, 가택 수색,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당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어느 날은 서대문 밖에 숙부님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광화문통을 지나오려니까,

󰡒아, 이건 노상 해후로구랴!󰡓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연록색 인조견 조끼에 검은 유리 안경을 쓴 황 진사가 빨아 말린 두루마기를 왼쪽 팔에 걸고, 해 묵힌 누렁 맥고모는 뒤통수에 잦혀 쓰고, 그 벗겨진 앞 이마를 햇살에 번쩍거리며 총독부 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네, 일재 선생 오래간만이올시다.󰡓

하고 내가 인사를 한즉,

󰡒댁에서들 모두 태평하시구, 완장 선생께도 소식 자주 듣고……. 아, 이건 참 노 상 해후로구랴!󰡓

또 한 번 감탄하고 나더니,

󰡒이리 잠깐 오, 날 좀 보.󰡓하고, 그는 나를 한쪽 구석에 불러 놓고, 지극히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노라고 한다. 나는 사정이 전과 다른 형편에 있는 터이라, 혹시나 이런 데서 무슨 자세한 내용이나 알게 되나 하여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긴장한 낯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인데, 그는

󰡒아, 내 조상께서는 모르고 지낸 윗대 조상을 근일에 와서 상고했구랴.󰡓

나는 너무 어이없어 어리둥절해 있노라니,

󰡒왜 그루? 어디 편찮우?󰡓

한다. 괜찮으니 얼른 마저 이야기하라고 하니,

󰡒아, 이럴 수가……. 온, 내 조상이 대체 신라적 화랑이구랴!󰡓

하고 혼자 감개해서 못 견디는 모양이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아 냈느냐고 한즉, 근일에 여러 가지 서적을 상고하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라 하였다. 황 진사를 광화문통에서 만난 뒤, 두 달이 지난 어느날, 나는 숙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가 총독부 앞에서 전차를 내려 필운동으로 들어가노라니 '모루히네' 환자 치료소 옆에서 조금하면 못 보고 지나칠 뻔하다가 그를 보게 되었다. 머리가 더부록한 거지 아이 몇 놈과, 아편 중독자 몇과 그 밖에 중풍장이, 앉은뱅이, 수족 병신들이 몇 둘러싼 가운데에 한 두어 뼘 길이쯤 되는 무슨 과자 상자를 거꾸로 엎어 놓고, 그 위에 삐쩍 마른 두꺼비 한 마리와, 그 옆의 똥그란 양철통에 흙빛 연고약을 넣어 두고 약 쓰는 법을 설명하는 위인이 있다.

󰡒두꺼비기름, 두꺼비기름, 에헴, 두꺼비기름이올시다. 옻 오른 데도 쓰고, 옴 오른 데도 쓰고, 등창, 둔창, 화상, 동상, 충치, 풍치, 이 앓는 데도 쓰고, 어린애 귀젓 앓는 데, 머리가 자꾸 헐어 '하게 아다마' 되랴는 데, 남녀 노소, 어른 애, 계집 사내 할 것 없이, 거저 누구든지 헌 데는 독물을 빼고, 벌레가 먹는 데는 벌레를 내고, 고름이 생기는 데는 고름 뿌리를 빼고, 살이 썩는 데는 거구 생신을 하고, 자, 깊이깊이 감춰 두면 반드시 한 번씩은 찾게 되는 약, 첩첩이 싸서 깊이깊이 넣어 두면 언제든지 한 번은 보배가 되는 약! 자아, 두꺼비기름이올시다. 두꺼비 코에서 짠 두꺼비기름. 자, 그러면 이 두꺼비가 얼마나 무서운 신효가 있는가를 여러분의 두 눈 앞에 보여 드릴 터이니까 단단히 보시오.󰡓

그는 약물에다 흙빛 고약을 찍어 넣어서 저으며,

󰡒자아, 단단히 보시오. 우리 몸에 있는 썩은 피가 두꺼비 코끝만 들어가면 그만 이렇게 홍로일점설, 봄철의 눈과 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하고, 약물 접시를 들어 여러 사람 앞에서 한 번 내두르고 나서 기침을 한 번 새로 하더니,󰡒여러분, 여기 계시는 이분은 우리 조선에서 유명한 선생이올시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두 달 전부터 충치를 앓으셔서 병석에 누워 계시다가 이 약으로 말미암아 어저께 벌레를 내고 오늘부터 이렇게 이 곳까지 나와 주시게 되었습니다.󰡓하고, 궐자가 손으로 가리키는 바로 그 곁에는 전날에 보던 그 검정색 안경을 쓴 우리 황 진사가 점잖게 먼산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궐자는 다시 말을 이어,󰡒선생께서는 또 이 방면에 연구가 대단히 깊으실 뿐 아니라, 곰의 쓸개, 오리의 혀, 지렁이 오줌, 쥐의 똥, 고양이 간 같은 걸로 훌륭한 약을 지어서 일만 가지 병마를 퇴치시킬 수도 있는, 말하자면 이인과 같은 능력을 가지신 어른이올시다.󰡓할 즈음에 순사가 왔다. 에워싸고 있던 거지, 아편쟁이, 수족 병신들은 각기 제구석을 찾아 헤어졌다.

이 꼴을 보신 숙모님은 나에게 눈짓을 하시며 앞서 가셨다. 나도 숙모님 뒤를 쫓아 한참 오다 돌아본즉, 아까 연설을 하던 작자는 빈 과자 상자에 마른 두꺼비와 고약통을 담아 가슴에 안고, 황 진사는 점잖게 두 손을 두루마기 옆구리에 찌른 채 순사를 따라 건너편 파출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결말부)

 

* 감상 : 어느 해 가을 날, 작중 인물 '나'는 가문에 대한 자존심이 매우 강한 조선의 심벌 '황진사 '를 숙부(완장선생)의 소개로 만나게 된다. '나'는 황진사(황일재)의 행동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 하는 데, 그는 자신의 문벌에 대해 화랑의 후예라며 허세나 부리고 남에게 빌붙어 신세를 지 기까지 하며, 약장수의 패거리에 끼여 효험이 증명되지 않은 약 선전에 참가하다가 결국 경찰 에 끌려가기까지 한다. 이 작품은 황진사의 이러한 삶의 모습이 몇개의 삽화 형식으로 연결되 어 있다.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주제 : 자존심과 허세의 인간 비판

 

--- 황진사

(1) '조선의 심벌' (작중에 완장 선생의 표현)

(2) 몰락한 양반의 후예

(3) 변화된 세상을 살아갈 방도를 찾지 못하는 전형적 인물

 


 

●화수분 : 전영택(田榮澤) 단편 소설

1.

첫겨울 추운 밤은 고요히 깊어 간다. 뒤뜰 창 바깥에 지나가는 사람 소리도 끊어지고 이따금씩 찬바람 부는 소리가 휘익 우수수 하고 바깥의 춥고 쓸쓸한 것을 알리면서 사람을 위협하는 듯하다.

“만주노 호야 호오야.”

길게 그리고도 힘없이 외치는 소리로, 보지 않아도 추워서 수그리고 웅크리고 가는 듯한 사람이 몹시 처량하고 가엾어 보인다. 어린애들은 모두 잠들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눈에 졸음이 잔뜩 몰려서 입으로만 소리를 내어 글을 읽는다. 나는 누워서 손만 내놓아 신문을 들고 소설을 보고, 아내는 이불을 들쓰고 어린애 저고리를 짓고 있다.

“누가 우나?”

일하던 아내가 말하였다.

“아니야요. 그 절룸발이가 지나가며 무슨 소리를 지껄이면서 그러나 보아요.”

공부하던 애가 말한다. 우리들은 잠시 그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으나 다시 각각 그 하던 일을 계속하여 다시 주의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우리는 모두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자다가 꿈결같이 으으으으으으 하는 소리를 들었다. 잠깐 잠이 반쯤 깨었으나 다시 잠들었다. 잠이 들려고 하다가 또 깜짝 놀라서 깨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물었다.

“저게 누구 울지 않소?”

“아범이구려.”

나는 벌떡 일어나서 귀를 기울였다. 과연 아범의 우는 소리다.행랑에 있는 아범의 우는 소리다.

‘어찌하여 우는가, 사나이가 어찌하여 우는가. 자기 시골서 무슨 슬픈 상사의 기별을 받았나? 무슨 원통한 일을 당하였나?’ 나는 생각하였다. 어이어이 느껴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아범이 왜 울까?”

“글쎄요, 왜 울까요?”

 

2.

아범은 금년 구월에 그 아내와 어린 계집애 둘을 데리고 우리 집 행랑방에 들었다. 나이는 한 서른 살쯤 먹어 보이고 머리에 상투가 그냥 달라붙어 있고 키가 늘씬하고 얼굴은 기름하고 누르퉁퉁하고 눈은 좀 큰데 사람이 퍽 순하고 착해 보였다. 주인을 보면 어느 때든지 그 방에서 고달픈 몸으로 밥을 먹다가도 얼른 일어나서 허리를 굽혀 절한다. 나는 그것이 너무 미안해서 그러지 말라고 이르려고 하면서 늘 그냥 지내었다. 그 아내는 키가 자그마하고 몸이 똥똥하고, 이마가 좁고, 항상 입을 다물고 아무 말이 없다. 적은 돈은 회계할 줄 알아도 ‘원’이나 ‘백냥’ 넘는 돈은 회계할 줄 모른다. 그리고 어멈은 날짜 회계할 줄을 모른다. 그러기에 저 낳은 아이들의 생일을 아범이 그 전날 내일이 생일이라고 일러 주지 않으면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속일 줄을 모르고 무슨 일이든가 하라는 대로 하기는 하나 얼른 대답을 시원히 하지 않고 꾸물꾸물 오래 하는 것이 흠이다. 그래도 아침에는 일찌기 일어나서 기름을 발라 머리를 곱게 빗고 빨간 댕기를 드려 쪽을 찌고 나온다.

그들에게는 지금 입고 있는 단벌 홑옷과 조그만 남비 하나밖에 아무 것도 없다. 세간도 없고 물론 입을 옷도 없고 덮을 이부자리도 없고 밥 담아 먹을 그릇도 없고 밥 먹을 숟가락 한 개가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보기 싫게 생긴 딸 둘과 작은 애를 업는 홑누더기와 띠, 아범이 벌이하는 지게가 하나 - 이것 뿐이다. 밥은 우선 주인집에서 내어간 사발과 숟가락으로 먹고 물은 역시 주인집 어린애가 먹고 비운 가루 우유통을 갖다가 떠 먹는다.

아홉 살 먹은 큰 계집애는 몸이 좀 뚱뚱하고 얼굴은 컴컴한데 이마는 어미 닮아서 좁고 볼은 아비 닮아서 축 늘어졌다. 그리고 이르는 말은 하나도 듣는 법이 없다. 그 어미가 아무리 욕하고 때리고 하여도 볼만 부어서 까딱없다. 도리어 어미를 욕한다. 꼭 서서 어미 보고 눈을 부르대고 ‘조 꺽정이가 왜 야단야단이야.’하고 욕을 한다. 먹을 것이 생기면 자식 먹이고 남편 대접하고 자기는 늘 굶는 어미가 헛입 노릇이라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저 망할 계집년이 무얼 혼자만 처먹어?’하고 욕을 한다. 다만 자기 어미나 아비의 말을 아니 들을 뿐 아니라, 주인 마누라나 주인 나리가 무슨 말을 일러도 아니 듣는다. 먼 데 있는 것을 가까이 하려면 손수 붙들어 와야 하고, 가까이 있는 것을 비키게 하려면 붙들어다 치워야 한다.

* 감상 : 화수분은 일제의 수탈이 가속화된 새대에 궁핍한 환경 속에서 굶주리다 죽어간 어느 부 부의 참혹한 실상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지식인인 ‘나’가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 행 랑 아범(화수분)과 그 가족의 비참한 삶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화수분 내외의 사람됨과 그들의 삶을 아주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자연주의적 사실주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 줄거리 : 이 소설은 해설자격인 ‘나’가 주인공인 화수분과 그의 가족에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겨울 어느 추운 밤, 남편은 잠결에 행랑에 세들어 있는 행랑 아범의 울음 소리를 들 었다. 이튿날 알아보니 며칠 전 그의 아내가 큰애를 남의 집에 주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데리고 있으면 굶어죽을 판이었다. 아범의 이름은 화수분이며 양평의 부자였었다. 그런 며칠 후 화수분 은 주인에게 휴가를 얻어 시골로 내려가나,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세 살 먹은 아이를 데리고 사는 그의 아내는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주인에게 화수분의 주소를 얻어 편지를 했으나 화수분에게선 소식이 없다. 어느 추운 날, 어멈도 뒤따라 내려갔다. 후에 우리는 동생 s에게서 그 뒤의 화수분의 소식을 들었다

한편, 시골에 내려간 화수분은 형 대신에 일을 하다가 과로하여 몸져 눕게 되었는데 아내의 편 지를 받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러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길을 떠난다.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 산을 넘던 화수분은 아내와 딸을 보았다. 화수분은 와락 달려들어 껴안았다. 이튿날 아침 길을 지나던 나무 장수가 젊은 남녀의 껴안은 시체와 아이를 발견하고 어린 아이만 소에 싣고 갔다.

 

* 성격 : 자연주의적 사실주의, 인도주의(휴머니즘)

* 특징 : 객관적, 사실적, 묘사적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제1, 2, 4, 5장

· 1인칭 주인공 시점 : 제3장

· 전지적 작가시점 : 제6장

* 구성 : 액자소설

▲ 내부액자

아범은 금년 구월에 그 아내와 어린 계집애 둘을 데리고 우리 집 행랑방에 들었다. 나이는 한 서른 살쯤 먹어 보이고 머리에 상투가 그냥 달라붙어 있고 키가 늘씬하고 얼굴은 기름하고 누 르퉁퉁하고 눈은 좀 큰데 사람이 퍽 순하고 착해 보였다. (발단부)

* 등장인물

· 주인공 : 화수분(행랑아범). 한때는 부유한 집안 출신

· 어멈 : 가난하지만 착한 행랑아범의 아내

· 귀동이, 옥분이 : 화수분의 딸들

· 나 : 서술자로서 집주인

* 주제 : 가난한 부부의 사랑과 어린 아이의 생명에 바탕을 둔 휴머니즘

* 출전 : [조선문단](1925.1)

 

 ‘화수분’ 제목 : 반어적 성격 - 주인공의 가난한 삶과 반대되는 이름임

 

이튿날 아침에 나무장수가 지나가다가 그 고개에 젊은 남녀의 껴안은 시체와 그 가운데 아직 막 자다 깨인 어린 애가 등에 따뜻한 햇볕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어린 것만 소에 싣고 갔다. (결말 부분)

- 작가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객관적 서술의 효과는 무엇인가 ?

 비극성을 제고시킴

 


●화엄경(華嚴經) : 고은 장편 서사시적 소설

- 관련기사

이 소설은 고 운허(耘虛)스님의 권유로 집필을 시작한 작품으로, “1959년 운허스님이 화엄경에 나오는 남순동자(南巡童子) 선재(善財)가 진리를 찾아 다니는 일대기를 서사시(敍事詩)로 써보라는 권유가 계기가 됐다”면서 “운허스님은 춘원이 쓰려다가 못쓴 것이니 일조(고은씨의 법명) 수좌가 쓸 차례라고 권했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고은 씨는 환속한 뒤 69년 독서신문에 <어린 나그네>를 연재하면서부터 집필을 시작, 74년 연재된 것만으로 책을 냈는데, 그후 22년에 걸쳐 성우 향봉 지선스님과의 인연으로 나머지 2천여 장을 집필, 500 페이지가 넘는 장편이 됐다고 밝혔다.

 

화엄경은 부처님 설법 초기에 다온 대승사상을 담은 경전으로 주인공 선재의 구도기(求道記)이다. 선재동자가 구도를 위해 남인사 순례 여행에 나서 53인의 스승을 만난 끝에 문수보현 보살의 가르침으로 궁극의 경지에 이른다는 줄거리이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특유의 시적이고 잠언(箴言)적인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즉 딱딱한 경전에 문학적 향기를 불어넣어 선재동자의 진리를 찾아가는 역정을 인간적인 이야기로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화엄경이 입법계품 그대로라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면도 있다. 이를 닮았다면 그것은 내 문학의 어리석음이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만큼 자신의 상상력(想像力)과 통찰력(洞察力)이 스며있음을 강조해 눈길을 끌고 있다.

 


●화척 : 김주영(金周榮) 장편 소설(전5권)

 [인터뷰] 장편「화척」7년만에 완성 김주영씨

 

작가 김주영씨가 장편소설 <화척(禾尺)>을 집필 시작 7년여만에 전5권으로 완성, 출간했다. <화척>은 수렵등으로 생활해 나갔던 유랑민들을 가리킨다.

 

이 소설은 고려의 국운이 쇠락해가던 의종 말년, 정중부가 일으킨 반란에서부터 최충헌이 집권하기까지의 28년여 세월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권력을 두고 살육(殺戮)을 거듭했던 고려 무신집단과 최충헌의 노비였던 만적 일가를 양축으로 홀대(忽待)받던 무신들의 울분과 가축처럼 다뤄지던 천민집단의 한맺힌 움직임을 담아내고 있다.

 

그는 작품 완성도를 높이기위해 결벽증 가까운 집착을 갖고 있는데 실제로 <쇠둘레>라는 단편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배경이 되는 철원지방으로 세번이나 답사하러 간 적도 있다는 것. <화척>의 경우도 ‘국내외 고서와 논문들을 참조하여 고려시대 개성 시가지를 지도로 만들어보기도 했으며 등장 관리들의 승급 일자나 생몰일 하나하나가 실록과 같도록 했다’고 밝혔다.

 

작가는 ‘작품을 써오면서 고려사를 연구하는 사학자들이 의외로 적다는데 실망하기도 했다.’며 ‘이는 북한측의 고려 중시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각되지만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 우리의 중세사를 이룬 국가라는 점을 감안, 합당한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출세작 <객주(客主)>에서처럼 이번 작품의 각권 말미마다에도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옛말들과 순우리말의 풀이들을 실어놓았는데 ‘통일이 되면 개성의 옛 거리와 북한의 고어들을 살리기 위해 작품을 더 손질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황토기(黃土記) : 김동리 단편 소설

상룡설. 옛날 등천(騰天)하려던 황룡 한 쌍이 때마침 금오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에 맞아 허리가 상하니라. 그 상한 용의 허리에서 한없이 피가 흘러 내려 부근 일대를 붉게 물들이니 이에서 황토골이 생기니라.

쌍룡설. 역시 등천하려던 황룡 한 쌍이 바로 그 전야(前夜)에 있어 잠자리를 삼가지 않은지라. 상제(上帝)께서 노하시고 벌을 내리사 그들의 여의주(如意珠)를 하늘에 묻으시매, 여의주를 잃은 한 쌍의 용이 슬픔에 못이겨 서로 저희들이 머리를 물어뜯어 피를 흘리니, 이에서 황토골이 생기니라.

이상의 상룡설 또는 쌍룡설 밖에 또 절맥설도 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절맥설. 옛날 당(唐)나라에서 나온 어느 장사가 여기 이르러 가도대, 앞으로 이 산에서 동국의 장사가 난다면 감히 중원을 범할 것이라, 이에 혈을 지르니 이 산골에 석달 열흘 동안 붉은 피가 흘러 내리고 이로 말미암아 이 일대가 황토지대로 변하니라. (발단부)

* 감상 : 첫머리에 제시되어 있는 세 전설, ①상룡설(傷龍說), ②쌍룡설(雙龍說), ③절맥설(絶脈說) 은 모두 좌절(挫折)의 전설이란 공통점을 갖는다.

이 작품은 좌절의 한을 그린 작품이다. 억쇠와 득보라는 두 힘센 장사를 통해 전설 속의 두 마리 용을 은유하고, 여인(설희)를 여의주에 은유하여 설희를 차지하려는 두 장사의 아무 보람 도 없는 자학적인 싸움을 설화적으로 처리하였다.

이처럼 설화를 바탕으로 한 허무주의적 성향은 샤머니즘과 함께 김동리 초기문학의 특징이다.

 

---  <주제 표출방법> ④ 분위기를 통한 포출 - 배경이 주제를 암시함.

 


●후조(候鳥) : 오영수 소설

더우면 오고 추우면 돌아간다.

또 추우면 오고 더우면 가기도 한다.

언제나 패를 짜서 먹이를 찾아 갔다가 떼를 지어서 돌아온다.

이것은 후조의 생리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후조가 있다.

 

지난 가을 --- 포도 위에 가로수 잎이 깔릴 무렵이니까 아마 시월 중순경인가 보다. 민우가 을지로 6가로 해서 동대문 밖 숙소롤 돌아오니까 웬 구두닦이 아이놈이 불쑥 앞을 막아서면서 양복 소매를 잡아 흔든다. 그때 민우는 뭣 때문엔지 마음이 좀 우울한 데다, 갓 지어 입은 양복을 그 때묻은 손에다 잡힌 것도 좀 불쾌해서

“안 닦는다, 임마!”

하고 빽 고함을 질렀다.

* 감상 : 계모의 슬하에서 구박을 받으며, 구두닦이로 생활하는 한 소년의 불행한 생활상을 작자의 섬세한 기법으로 제시한다. 작자에게는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가난에 의해서 때묻는 것이 문제 가 된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끼리 의지하면서 착한 마음을 지키고 사는 것은 언제나 작자의 관심거리다. 최선생, 계모, 아버지 등의 거친 행동이 나오지만, 이것은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정의 세계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도록 도와 주는 장치들이다.

 


●흔들리는 성(城) : 현기영 중편

- 흔들림 ?

 

급속하면서도 자연파괴적이며 인간파괴적인 변화, 그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쏘아본 작품이다.

아직도 우리의 수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이 소설에서도 앞만 보고 뛰는 개발론 자들은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적대자)로 그려지고 있다.

 

이 소설은 인천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청해도를 무대로, 그곳 섬사람들이 세웅그룹의 대규모 관광단지 조성사업에 휘말려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조용한 삶의 기조를 파괴당하고 마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세웅그룹은 청해도라는 보물을 합법적으로 취하려는 음험한 계획 아래 청해도 주민들에게 눈깔사탕주는식의 선심공세를 편다. [세]는 청해국민학교생 서울초청, 청해도와의 자매 결연, 건물 신축 기증, 청해도 젊은이들 직장알선, 돌섬 고가구입 등의 사업들을 단계적으로 펼친 끝에 섬사람들 대부분을 마취시키는 데 성공하게 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거의 평생을 청해도에서 보냈으면서 정신적 지주로 대접 받아온 백재호 교장은 깨어있는 자, 멀리보는 자의 입상(立像)을 간신히 지켜 내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자연보호주의자들이 승리하는 식의 결말을 내지 않았다.

 

개발 열풍 앞에서 도덕주의자로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그려놓고 있다. 오히려 냉철한 현실 파악의 자세로 주인공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백교장의 모습은 작가는 물론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개발이니 건설이니 하는 것은 결국 급격한 변화를 도모하는 구체적 작위에 해당한다. 급격하면서도 부자연스런 변화는 언제나 그림자를 남기고 가듯이, 이 소설은 순희라는 순진한 섬처녀를 ‘화려한 변신’에서 ‘버려진 여인’으로 급진전시키면서 끝을 맺고 있다.

 


●흙 : 이광수 소설

* 감상 : 당시 성행한 농촌 계몽 운동에서 취재된 인도주의적 경향이 짙은 작품이다. 무지와 핍박 의 농촌 살여울을 부유한 이상촌으로 건설하고자 하는 허숭의 노력이 작자의 민족주의 사상과 결합하여 표현된 작품이다.

 

* 줄거리 : 전문학교를 나온 변호사 ‘허숭’은 갑부의 무남독녀인 ‘정선’과 결혼한다. 그는 고향인 ‘살여울’을 유복한 이상촌으로 건설해 보려는 소망으로 고향으로 내려가 농촌 계몽 사업을 전 개한다. 허숭과 고향 처녀 ‘유순’의 사이를 의심한 정선은 김갑진과 부정한 관계에 빠지고, 유 순의 남편도 이들을 의심하고 유순을 구타하여 죽게 한다. 허숭은 아내 정선과 헤어지고 살여 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탄다. 정선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허숭이 탄 기차에서 투신 자살하려고 뛰어내리다가 불구의 몸이 되어 허숭의 설득으로 과거의 죄과를 뉘우치고 함께 살여울로 간 다. 허숭은 고리 대금 업자 정근의 모해를 입어 투옥되고, 정선에게 살여울을 지켜 달라고 부탁한다.

 

* 주제 : 농촌 이상향 건설

* 출전 : [동아일보] 연재 (1932. 4.12 ~ 1933. 9.2)

---  문학이론 <농촌소설>

---  심훈 소설 <상록수>, 이무영 소설 <제1과 제1장>

 


●흥부전(興夫傳) : 작자 미상의 고대소설

눈을 부릅뜨고 팔뚝을 뽐내여 왈,

“이놈 흥보야, 잘 살아도 내 팔자요 못살아도 내 팔자니, 형을 어찌 길게 뜯어벅고 매양 살라 하느냐? 잔말 말고 어서 나가거라.”

흥보의 어진 마음 생각하니 형의 심법이 벌써 이러하니 만일 요한하게 굴어 남이 알진대 형의 흉이 더 드러날지라. 잠잠코 저의 방으로 돌아와 아내와 나갈 일을 의논하니 흥보 아내 또한 현숙한 부인이라 장부의 뜻을 받아 한마디 원망이 없이 낙루(落淚)하며 하는 말이,

“시아주버니께서 저리하니 아니 나갈 길 전혀 없고, 나가자 하니 방 한 구석이 없으니, 어린 자식들과 어데로 가서 의지하리.”

* 갈래 : 판소리계 고전소설

* 관련설화 : 방이설화, 박타는 처녀, 동물보은(報恩)설화

* 판소리 사설로는 [박타령], [흥보가], [박흥보가] 등이 있음

* 주제

· 표면적 주제 : 권선징악(勸善懲惡), 형제간의 우애

· 이면적 주제

- 빈부간의 격차(화폐 경제의 반영)

- 무능력한 흥부, 무식하고 욕심뿐인 놀부를 통해 조선 후기 퇴락해 가고 있는 양반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음.

* 이 작품은 1912년 이해조에 의해 <연(燕)의 각(脚)>이란 신소설로 개작됨.

---  고전 (판소리) <흥보가>

 

- 관련기사

흥부전의 주인공인 임부자(林부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이 발견된 전북 남원군 아영면 성(城)리 마을에서 일제 말엽까지 흥부를 기리는 ‘흥부축제’가 전승되어 온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1992년 1.28일 남원군에 따르면, 흥부전에 관한 자료수집 등 학술조사를 위해 지난 25일부터 아영면과 동(東)면 일대에서 조사를 벌여오던 이보형(李輔亨-문화재 전문위원)는 ‘흥부축제’가 마을 주민들에 의해 일제 말엽까지 전승돼온 사실을 밝혀 내고, 판소리 흥부가의 주인공인 임씨가 실존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마을 지명이 흥부전 내용과 같으며 판소리의 대가인 송홍록 선생이 운봉면을 중심으로 활동한 점 등을 들어 흥부전 비문이 발견된 아영면 성리 일대와 동면 성산리 일대가 흥부마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경희대 민속연구소의 고증, 흥부마을은 ‘동면 성란리’

 

최근에 동면 성산리와 아영면 성리가 서로 <흥부전>의 배경이라 주장하고 나서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그 이유는 판소리 <흥보가>의 많은 이본 중 공통점이 “충청 전라 경상도 얼음”에 있고 더 구체적으로는 지정한 판본에는 “경상도는 함양이오, 전라도는 운봉이라 항양 운봉 두 얼품”이며, “성편동 복덕촌”이란 대목 때문이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해지자 경희대 민속학 연구소에서 조사하게 되었다.

 

아영면 성리에는 ‘춘보’라는 전설적 인물을 추모하는 ‘춘보제’를 지금도 지내고 있고, 고개 넘어 장수에 복덕리가 있는데 이곳이 복덕촌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그리고 흥보의 집터하는 고둔터, 생금 모퉁이, 화초장 바우거리 등 <흥부전>과 일치하는 많은 지명이 있어 흥미롭다. 마을 뒷산 연소혈에서 임세강의 묘비를 파내어 이 분이 박춘보, 즉 흥보라는 것이다. 성리는 이런 전설 외에도 경치가 수려해 가 볼 만한 곳이다. 분지 형태의 넓은 고원, 전국 최고의 봉화산 철쭉 자생지, 아막성, 삼남대로, 고분군 등이 발길을 잡는다.

 

성산리는 인월에서 함양으로 넘어가는 팔령제 밑에 있어 경남 함양군과 바로 접하고 있다. <흥부전>의 배경이라는 주장은 성산리에서 먼저 제기했다. <흥부전>의 창본 중에 “운봉 연재를 넘어들어 놀보집을 당도”라는 구절과 성산리에 전해 오는 설화에 ‘박첨지 설화’가 있는데 그 내용이 <흥부전>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둑놈골, 박바가기 마을, 연상다리, 제비봉 등의 지명으로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길에서 마을은 보이지 않고, 입구로 들어가면 성황당이 있어 눈길을 잡고, 큰 정자나무 가에 아담한 호수, 호수 뒤로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일견해도 명당이 분명하다.

 

경희대 민속학 연구소의 고증 결론으로는 성산리는 흥부, 놀부의 출생지이고, 여기에 흥부가 복덕촌으로 이사했다가 성리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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