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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의 위기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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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의 위기

이 문 열(소설가 조선일보 시론, 96. 05. 9.)

 

 

국통일을 위해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는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에도 당나라와 힘겨운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당군을 퇴치하려고 679년에 건립된 절이 경주 남산에 있는 사천왕사였다. 현재 사천왕사는 그 터만 남아있는데, 일제는 동해남부선을 건설할 때 일부러 사천왕사지의 가운데로 철도를 부설해 지금은 절터마저도 반으로 갈라져있다.

 

그리고 경주 서쪽의 선도산 기슭에는 무열왕릉과 그의 아들 김인문의 묘가 있다. 일제는 역시 묘소 가운데로 도로를 냈고, 그 앞에는 대구에서 경주까지 오는 철도가 부설되어 있다.

 

최근 고속전철의 경주통과를 놓고 건설교통부와 문화체육부간에 의견이 맞서고 있는데, 이같은 역사적 의미가 감안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노선을 확정짓기전에 거론됐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현재 검토되고 있는 안은 나름대로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건교부의 실시설계노선으로, 경주 동국대 앞과 김유신-김인문묘 앞을 지나 경부고속도로 경주인터체인지 근처를 통과할 때 경주남산을 동쪽으로 바라 보면서 내려가는 것이다.

 

둘째는 건교부의 기술조사노선으로, 동국대 앞을 통과하지 않고 건천을 지나 선도산의 남쪽을 돌아가는 안. 경주인터체인지 근처를 지나 고속전철은 대구부산으로 바로 가고, 대구경주간 전철복선을 새로 건설한다는 구상이다.

 

어느쪽을 선택하느냐는 문제는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철도는 일단 놓여지면 1백년이상을 사용하게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경주의 문화재를 최대한 보호하고 일제가 저지른 것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첫째안의 문제점은 지하및 고가 건설구간이 많고 도심지를 통과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토지보상액도 많고 거리상으로도 둘째안에 비하여 길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남쪽에서는 민애왕릉, 희강왕릉 근처를 통과하게 된다.

 

둘째안은 금척리 고분군, 법흥왕릉과 효현리 3층석탑 근처를 지나지만 도심지를 통과하지 않고 민애왕릉과 희강왕릉에서도 멀리 떨어지게된다. 역사도 첫째안의 경우는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근처로 포석정, 지마왕릉, 박혁거세의 나정, 양산재, 삼릉 등과 가까운 곳에 있다. 둘째안의 역사는 서쪽으로 멀찌감치 건천에 건설돼 당장은 불편할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발전에 대비해서는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

 

포항까지의 전철을 연결할 때에도 건천에서 연결하는 편이 훨씬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안대로 하면 포항을 가기 위해서는 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 동쪽으로 갈라져야 한다.

 

고속전철이 경주를 통해 부산까지 연결된다면 동해남부선의 필요성은 극히 적어질 것이므로 완전히 없애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계속 사용할 계획이라면 철도를 옮겨 호국사찰인 사천왕사터를 원상태로 복구하고, 절 자체를 복원하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몇개 남지 않은 신라 향가의 작자인 월명대사가 살았던 사천왕사를 복원하는 것은 문화민족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현재 남아있는 주춧돌로 비추어 사천왕사에는 일금당, 이탑, 우경루 좌경루와 강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터에는 지금도 목이 잘린 구부 2기가 남아있으며 당간지주도 그대로 서있다. 이 절에 있던 사천왕상은 양지스님이 만든 것이라 하는데 지금은 허리밑의 부분만이 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대단한 걸작이다.

 

또한 사천왕사가 있는 낭산의 정상에는 선덕여왕릉이 있으며 여왕이 죽기 전에 도이천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가 죽은 뒤 사천왕사가 그 밑에 건립되었으므로 선덕여왕은 그것을 예견했다는 것이다.

 

경부고속전철은 우리의 경제여건을 감안할때 반드시 건설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에앞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떳떳한 결정을 하려면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신라천년의 유물을 조금이라도 덜 다치는 현명한 결정을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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