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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평등한 세상 열어갈 ‘변혁의 모태’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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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평등한 세상 열어갈 변혁의 모태

한겨레신문 / 해외석학에게 듣는다(마쓰이 야요리)

 

 

 

21세기는 새로운 천년기의 시작

 

앞으로 5년이 지나면 새로운 천년기가 시작된다. 그 막이 올라가는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고도 일컬어진다. 일본이 먼저 경제대국을 구축했고 이어 한국, 대만 등 신흥공업국들이 경제성장을 이뤘으며 나아가 타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가 경제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인도 등 남아시아가 그 뒤를 쫓고 있으며 사회주의경제의 붕괴 결과 중국, 몽골, 인도차이나 3국이 개방경제로 이행해 급속한 경제발전을 시작했다.세계가 아시아의 고도성장에 주목하고 이를 5백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서구문명에 대한 도전이라고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거대한 인구에 힘입은 경제발전의 도전만으로는, 달리 말하면 사상적으로 서구의 근대를 초월하고 새로운 가치관에 기초해 지구문명을 쌓아올리지 않는 한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의 경제발전이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희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 대한 저항의 또 다른 한 줄기는 이슬람권의 전통회귀, 근본주의다. 그러나 전통이나 종교가 여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며 문화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폭력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여성들은 절규하고 있다.

 

결국 경제개발 우선주의에도, 근본주의에도 저항하면서 전혀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고 있는 쪽은 여성들이며 새로운 사상,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다.

 

'빈곤의 여성화'와 남북문제

95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베이징 제4회 세계여성회의에 모인 4만명이 넘는 정부 및 비정부기구(NGO)의 여성들이 가장 큰 문제로 삼은 것은 지구화한 세계경제가 가져오는 '빈곤의 여성화'였다.

 

정부회의가 채택한 행동강령은 12개의 중대관심분야를 열거하고 그 해결을 위해 각국 정부와 국제기관이 2000년까지 취해야 할 전략을 기술하고 있는데 빈곤이 맨 첫 순위다.

 

이는 57억의 지구인구 가운데 10억 이상이 절대빈곤­식료, 식수, 주거, 초등교육, 보건 등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 시달리고 있으며 유엔개발계획에 따르면 절대빈곤층의 7할 이상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차별받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받는 빈곤의 중압은 더욱 무겁다. 빈곤의 구조적 원인은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파탄하고 지구화한 자유시장경제 아래서 북쪽 공업선진국의 남쪽 개도국에 대한 착취와 수탈이 한층 더 강화돼 '신식민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남북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데 있다.

 

여성들이 고발하고 있는 북쪽의 경제적 지배틀은 개도국의 늘어난 채무를 변제시키기 위해 세계은행 등이 강제하고 있는 구조조정정책(SAP), 빈곤층의 강제퇴거를 강요하는 정부개발원조(ODA), 여성노동자의 인권침해와 환경파괴를 초래하는 다국적기업의 해외진출, 개도국의 농민을 더욱 궁핍화시키는 무역자유화 등이다.

 

사실 개도국의 빈곤은 선진공업국의 대량생산대량소비 생활방식에 의해 야기되고 있다. 따라서 남쪽의 여성들이 빈곤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여성의 자립과 위상강화를 지원할 필요가 있지만 우선은 선진공업국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고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빈곤의 여성화는 이런 남북문제와 남녀평등, 말하자면 젠더의 문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성차별로 가부장제 아래 남성우위여성열위의 관계)가 겹쳐져 있으므로 여성운동은 이 양면에서 대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성의 인권, 여성에 대한 폭력

베이징대회의 또 한가지 초점은 여성의 인권,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 젠더 폭력의 문제였다. 이것도 여성해방에서 경제나 정치의 문제에 뒤지지 않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이지만, 유엔'여성의 10'(76~85) 설정 이래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까지 경시돼왔다.

 

국제적인 여성운동의 결과 93년의 빈 세계인권대회에서 여성의 인권이 처음으로 명기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여성 인권침해의 핵으로 간주됐다. 인권에 젠더의 시점을 도입한 국제문서가 처음으로 채택된 것이다. 베이징회의의 행동강령도 중대분야의 4번째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그 방지를 위한 전략으로서 3개 핵심을 들고 있다.

 

하나는 인신매매 대책인데 아시아의 경우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가 경제성장의 진전에 따라 축소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경제 발전이 눈부신 타이는 인신매매가 가장 심각한 나라의 하나로 북부 국경지대 산악민족의 소녀들과 빚에 시달리는 농민의 딸이 매춘업소에 팔려 연간 70%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한다. 더구나 주변의 미얀마에서 4, 5만명이 넘는 소녀들이, 또한 라오스, 캄보디아, 중국 윈난성에서 다수의 소녀들이 타이로 인신매매돼 성착취를 당하고 있다.

 

인신매매는 피해자가연소화하고, 타이에서 다시 일본이나 대만 또는 서유럽으로까지 송출되는 등 국제화하고 있다.남아시아에서는 네팔 소녀들 수만명 이상이 인도의 매춘업소에 팔리고 방글라데시 여성들은 파키스탄으로 내쫓기고 있다. 지구화한 자유시장경제는 모든 것을 이윤추구를 위해 상품화하고 다국적 성산업은 여성의 성을 탐욕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또한 국제관광산업의 확대도 섹스관광을 동반하고 있다.

 

'이민의 여성화'라고 일컬어지듯 여성의 국제이동이 급증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유수의 노동력수출국인 필리핀의 여성들은 중근동과 홍콩, 싱가포르, 한국 등에 가사노동자로, 일본과 서유럽 등에는 연예인으로서 수십만명 이상이 고국을 떠나 돈벌이를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여성들은 같은 이슬람인 중근동, 말레이시아 등지에 일하러 간다. 여성들은 이곳에서 성폭력과 경제적인 착취를 당하고 있다. 일본의 농촌에는 필리핀과 타이, 중국으로부터 신부가 와 농업후계자를 낳아 기르며 노인들을 돌보고 농업과 공장노동에서도 땀을 흘리고 있다.

 

'생산은 남성, 재생산은 여성'이라는 근대사회가 낳은 젠더분업의 타파가 유엔 '여성의 10' 이래의 과제이다. 인간의 생존에 불가결한 재생산노동이 무보수로 이뤄져온 데 대해 행동강령은 무상노동을 평가하고 있다. 그같이 낮게 평가된 재생산노동을 남쪽의 여성들 은 해외에서까지 부담하고 있으므로 여성들은 모든 면에서 지구화한 체제 안에 편성돼 있는 것이다.

 

무력분쟁과 평화

여성에 대한 폭력의 사례로서 무력분쟁도 부각되고 있다. 동서냉전의 종결로 초대국의 핵전쟁 위협은 줄었지만 그 대신 옛 유고슬라비아 등 세계 각지의 지역분쟁이나 내전이 여성들의 생활을 위협하고 성폭력을 야기하고 있다.

 

행동강령은 무력분쟁 때의 강간이 전쟁범죄라고 엄격한 관점을 취했다. 그리고 위안부문제에 대해 군대 성노예제도의 사실규명, 가해자 처벌,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명기하고 있다. 일본군의 위안부에 대한 보상을 일본 정부는 거부하고 있지만 아시아 각국의 피해여성들에 대한 보상문제는 예컨대 21세기로 미뤄진다고 해도 결코 책임회피가 용납될 수 없다.

외국군사기지의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도 잊어서는 안된다. 베이징회의가 한창일 때 오키나와에서 여자 국교생이 3명의 미군에게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쟁에서 20만명,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죽었던 오키나와 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염원은 강하며 베이징회의에 참가했던 오키나와 여성들은 군대의 폭력을 폭로하고 미군기지를 없애자고 호소했다. ' 기지가 없는 평화로운 섬을 돌려달라'는 오키나와의 절규는 똑같이 외국군대의 장기주둔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각국 여성들의 기지철거 국제연대운동에 대한 호소이기도 하다.

 

학살정권에 의해 수백만명이 희생당하고 여성과 아동만의 나라가 된 캄보디아에서 선거감시를 위해 들어간 유엔 평화유지활동 다국적군이 매춘을 확대해 에이즈를 만연시키고 성폭력을 범했다. 유린당한 캄보디아 여성들의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한 연대활동도 아시아 여성운동의 과제다.

 

환경파괴와의 투쟁

자유시장경제의 지구화는 지구환경의 파괴로 돌진하고 있다. 경쟁과 효율의 원리에 따라 다국적기업의 전지구적 활동이 열대우림 파괴, 대기와 물의 오염 등 갖가지 환경파괴를 가져오고 자원을 수탈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60년대부터 고도경제성장의 그늘에서 심각한 산업공해가 일어났고 유기수은에 의한 미나마타병 등 공해병, 약해, 식품공해는 현 세대의 생명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인 태아의 건강마저 파괴했다. 그런 공포에 남성보다도 민감한 여성들이 일본 전국에서 환경을 지키는 운동을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보팔이나 체르노빌 등의 재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은 여성이었다. 92년의 리오 환경정상회담이 채택한 의제21에서도, 베이징의 행동강령에서도 환경보호 담당자로서 여성의 역할이 중시되고 있다.

 

선진국의 과잉개발과 개도국의 저개발이라는 남북의 불평등과 환경파괴를 가속화하는 잘못된 현대의 개발은 남성중심으로 추진돼온 개발이며 여성의 힘으로 그런 개발의 도식을 변혁시켜 지속가능한 개발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꿔 말하면 생태나 젠더는 서로 연결돼 있고 여성주의의 다양화 속에서 환경여성주의의 사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활동적인 생태학자 반다나 시바와 함께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책을 쓴 독일사회학자 마리아 미즈는 5백년 전부터 시작된 서구 지배, 근대산업문명은 식민지(남쪽)와 자연()과 여성(무상노동) 의 착취수탈로 성립됐다고 지적했는데 서구문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문제, 환경문제와 함께 젠더문제의 해결이 불가결하다.

 

대안적인 사회를

20세기를 되돌아보면 민족해방운동으로 남쪽의 나라들이60년대까지 정치적 독립을 획득했고 70년대에 환경보호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됐으며 여성해방운동은 80년대에 아시아에서 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21세기의 여성운동은 약육강식, 착취, 폭력, 차별 등을 악화시키는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대신하는 다민족 공생과 남녀의 공정한 관계에 기초한 대안적인 사회를 어떻게 창조할 것이냐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 목표를 향한 일상의 과정이 중요하며 남녀 모두 일상생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정 속에서의 남녀관계 재정립 및 직장의 여성차별 문제 해소, 노조와 각종 비정부기관에서의 여성지위 향상, 성폭력과 성의 상품화에 대한 투쟁, 교육학문매체의 젠더적 시각 교정, 정치의 민주화 등 남녀 모두 한사람 한사람이 그때그때마다 할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성운동이 더욱 더 힘을 강화해 변혁을 위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전쟁과 혁명과 좌절의 20세기 말을 남겨놓고 좀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고자 싸우다가 넘어지고 희생한 무수한 남녀들을 생각하고 그 혼의 격려를 받으면서 여성운동을 강화해 개발의 아시아가 아닌 해방의 아시아, 그리하여 북과 남, 인간과 자연, 여와 남이 함께 살 수 있는 공정한 21세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마쓰이 야요리

언론인. 아시아여성자료센터대표.

1934년생.

도쿄외국어대학 영미과 졸업. 미국 미네소타대, 프랑스 파리대 수학

아사히신문 싱가포르 특파원, 사회부 편집위원

요코하마국립대 객원교수

저서

현대를 다시 묻는 여행­해외의 시민운동

여성해방이란 무엇인가

여자들의 아시아

시민과 원조­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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