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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준비 위원회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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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준비 위원회

 

 

1920년대 후반에 사상적 대립을 극복하고 독립 운동의 전력을 강화하기 위한 민족적 협동 전선이 이미 성립되었고, 해방 직전까지도 통일된 민족 국가 수립을 위한 민족 연합 전선이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해방 전 국내에서도 해외 독립 운동 연합 전선과의 연결을 기도하면서 비밀리에 건국 동맹이 조직되었고, 해방과 함께 그것을 모체로 한 건국 준비 위원회가 발족하여 통일 민족 국가 수립을 지향하였다.

 

1944년 여운형(呂運亨)에 의해 결성된 건국 동맹은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을 인식하고 해방 후의 정치 권력 창출을 준비하였다. 건국 동맹은 불신(不信)불문(不文)불명(不明)3대 철칙으로 삼고 그 강령으로,

 

1)조선 민족의 자주 독립의 회복

2)반추축국(反樞軸國)과 협력하여 대일(對日)연합 전선의 형성

3)반동 세력의 박멸

4)민주주의 국가의 건설

5)노동 대중의 해방을 채택하였다. 건국 동맹의 조직은 중앙에 내무부외무부재무부를 두는 한편 지방은 전국 각도의 조직을 완성했으며, 농민 동맹 조직 등 대중 조직을 이루어 갔다. 참가 주체의 대부분은 좌익이었고, 우익에서는 안재홍(安在鴻) 등이 활동했다. 건국 동맹은 태평양 전쟁 말기에 국내에 조직된 유일한 건국 준비 조직이며, 연안의 독립 동맹과 연결되어 있었고, 좌우익 세력이 함께 참가한 건국 준비 조직이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한편, 일본의 패망과 더불어 여운형은 조선 총독부로부터 권력을 인계 받고, 건국 동맹을 모체로 한 건국 준비 위원회를 발족시켰다(1945. 8. 15). 발족 초기의 '건준'은 당면 목표를 치안의 확보, 건국사업을 위한 민족 역량의 일원화, 교통통신금융 및 식량 대책에 두고, 한편으로는 좌우 정치 세력을 포섭하고 조직을 확대하였다. 건국 준비 위원회의 강령은,

 

1) 완전한 독립 국가의 건설을 기함

2) 전 민족의 정치적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을 기함

3)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여 대중 생활의 확보를 기함으로 그 목적을 분명히 했다.

 

건국 준비 위원회는 발족 당초에 송진우 계열의 협조를 얻지 못함으로써 해방 당시 국내 정치 세력의 총합체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좌우 연합 전선 형태를 띠고 전체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정치적 공백기에 있는 국내 정치와 치안을 담당하며, 해방 정국을 주체적으로 주도하였다.

 

건국 준비 위원회는 8월말까지 전국 145개의 인민 위원회를 결성하고 미군의 상륙 이전에 정부를 설립할 목적으로 조선 인민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인공(人共)'의 각료 명단에는 이승만, 김구, 여운형, 김규식 등 좌우를 망라한 것이었으며, 실제로 실권을 행사할 위치에 있었던 것은 대부분 건준계와 좌익계 인사들이었다.

 

한편, 조선 인민 공화국의 정강을 살펴보면,

 

1)조선의 완전한 자주 독립

2)일제와 반봉건 세력의 숙청

3)노동자농민 등 일체 대중 생활의 향상을 기하고,

4)세계 평화를 지향한 것 등이다.

 

그 시정 방침에서는 더욱 선명히 제시되어, 일제와 반민족주의자의 토지기업을 몰수국유화해서 통일 전선의 연장이며, 민중들의 광범위한 공감을 받았다.

 

한편 인공(人共)은 삼권(三權)의 귀일 및 통일 전선의 형성을 지향하였으나, 미군정에 대한 인식 결여, 또 미군의 상륙에 의해 인공(人共)이 인정되지 않음으로써 일단 실패했다. 건국 준비 위원회는 건국 동맹을 근거로 하여, 해방 직후의 정치적 공백기에 통일 민족 국가 수립을 목적한 정치적 핵심이었으며, 그후 좌우 합작 운동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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