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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사례(문헌정보)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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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 경험에 대해, 배우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1000자)

 

 

어릴 적부터 위인전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것은 인물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에 불과했습니다. 인물들의 사상과 정책이 어떤 사회적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수능 사회탐구로 한국사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1학년 때 많은 양을 한꺼번에 배우다 보니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우연히 네이버에서 기획하고 있는 옛날신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기사들을 해설뿐만 아니라 기사 원본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은 역사를 공부하는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신문을 더 효과적으로 학습에 연결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신문 읽기를 넘어, 사건의 흐름을 한국사 공부에 접목시킨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우선 현대사를 정부별로 나누고 선을 통해 연도를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주요 사건들을 키워드별로 정리한 후 사건들을 디지털뉴스 아카이브를 통해 기사로 찾았습니다. 그런 다음 노트의 다음 장에 붙여 그 사건의 특징과 영향을 적어놓았습니다. 제가 만든 노트는 사건들이 줄기를 뻗치고 나가 이미지처럼 떠오를 수 있는 형태여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리한 스크랩 한국사 노트를 통해 저는 모든 한국사시험에서 만점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단편적인 사건의 암기를 넘어, 한 사건이 미래에 끼치는 영향력까지 분석할 수 있는 눈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노트를 만들면서, 공부를 할 때 개념을 기준으로 잡아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문화>를 공부 할 때에도 이 방법을 적용해 효과를 보았습니다. 교과서 단원의 개념을 세분화시켰고, 전 단원에 걸쳐 나와 있는 교육’, ‘성 불평등등의 개념을 바라보는 <기능론, 갈등론적인 관점>을 모아 따로 정리한 것입니다. 부족한 지식들을 저만의 개념 아카이브 노트에 쌓아가며 뿌듯함을 느꼈고 그것은 제게 큰 보물이 되었습니다.

 

 

 

2.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본인이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을 배우고 느낀점을 중심으로 3개 이내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 교외 활동 중 학교장의 허락을 받고 참여한 활동은 포함됩니다.1500자

 

1) 월드비전 금난새 멘토링 :다 배운 건데 쉽겠지?’ 처음에는 중학교 2학년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는 일을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멘티)의 창의적인 질문에 답을 해줄 때마다, 준비가 부족했던 저는 아이에게 미흡한 모습을 많이 보여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제 태도에 문제를 느끼고 EBS 중학 수학 교재를 틈틈이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집합을 설명하기 위해 , 공부법을 개발해 우리가 하나의 원소라고 생각하는 놀이를 하며 개념을 이해하도록 도왔습니다. 아이가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를 대하는 마음가짐까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어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만 살면서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고민들을 제게 털어 놓는 ***를 보면서, 저를 선생님으로 인정해주고 마음을 열어준 것이 고맙고 가슴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아이와 공부를 하면서 저는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떤 자세로 다가가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 많이 배웠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든지 제가 먼저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좋은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사서에게는 사용자의 필요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 모의유엔 : 영어의 독해 능력뿐만 아니라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게 **여고 모의유엔 대회(MUN)는 영어 소통에 대한 자신감을 조금이나마 갖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모의유엔에서 '대한민국의 대표로 참가해 국제사회의 식량문제 협력 방안에 대해 주장을 폈습니다. 강대국들은 금전적인 문제를 이유로 기아문제를 겪는 국가들에게 식량지원을 거부해, 협의가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협의체의 부대표였던 저는 식량부족 상황의 국가들에게 선진농업기술을 가르쳐 자급할 능력을 키워가도록 도울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식량 지원을 축소해 나가는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며 합의점을 찾아 결의안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강대국들은 기술과 인력을 바탕으로 해결방안을 제시했지만 자주 난관에 부딪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소수의 뛰어난 주장보다 다수의 깊이 있는 사고가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3) 토론동아리 ‘*****' : 비판적·논리적 말하기가 부족한 저는 고등학교 3년간 토론동아리 <*****> 활동을 하면서 단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활동 중 <아름다운 후퇴>의 전희식 작가님을 만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작가님에게 친환경 농산물의 가격문제 그리고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가들의 경제적인 문제를 뒷받침하는 것이 가능한지와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대화를 통해 농촌 복지의 해결에 대한 방법을 함께 이야기한 것은, 이론과 실제의 괴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자연 농법을 개발, 땅을 살리는 농사를 짓는 작가님의 모습을 실제로 보면서 가치 있는 삶의 기준은 꼭 돈이 아니며 각자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 학교 생활 중 배려, 나눔, 협력, 갈등 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를 들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1000자)

 

<**동아리 경진대회>는 교내의 동아리들이 참가해 그 동안의 활동들을 발표하는 대회로 수상경쟁이 치열한 편입니다. 이 대회에 제가 부장으로 활동 중인 신문편집부 <***>가 참가하기까지 부원들과 저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회가 열린 이후로 우리 동아리가 한번도 1등을 수상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가의 컨셉을 정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동아리에는 임택트 있는 사건이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장으로서 어떻게 하면 <***>를 참신하게 소개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솔직함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만년 2등이지만 <***>는 늘 노력하고 있는 동아리라는 점을 부각시키자고 제안했고 부원들은 각자 ‘학교신문1호 사진을 넣자!’, ‘그동안 촬영했지만 기사에 실리지 않았던 사진들도 풀어놓자!’ 등의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저는 사진 위주의 PPT를 제작한 후,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차분한 글씨체를 선택, 간단한 문구를 넣은 광고형식의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사진이 나올 때마다 학생들은 좋은 반응을 해주었고 마지막에 저는 솔직하게 <***>의 부족한 점을 밝혔습니다. 수상실적도 부족하고 화려한 활동도 없지만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노력해왔다는 저의 말에 심사위원 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많은 공감을 해주어서 뿌듯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또 ‘2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저와 부원들 모두에게 ‘1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리더였습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우울한 모습도 많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멋진 결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간의 신뢰감과 유대감, 자신감을 쌓아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정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한 것 같아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4. 진로 선택을 위해 노력한 과정 또는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좌절을 극복한 과정을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1000자)

 

저는 방송사의 아카이브관리부에서 다양한 컨텐츠를 보존하고 제공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언론인을 꿈꿔왔던 제게 신문은 시사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매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옛날 신문을 활용한 공부를 통해 특별한 시각으로 신문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미디어자료들이 현재, 그리고 과거의 사회상을 담은, 미래의 후손들에게 남겨주어야 할 자산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저는 그동안 ‘***실에 무질서하게 쌓여있던 옛 신문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자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20년 전 발행된 신문을 동문이나 시민들과 나누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부원들과 함께 1천여페이지가 넘는 신문을 스캔하는 것은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린 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며, 정보의 공유가 주는 소통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신문을 발간하는 것 못지않게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공부하면서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같은 기록 유산들이 주로 한정된 계층만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현대에는 미디어가 다양한 계층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매스 미디어의 콘텐츠는 훌륭한 기록물인 것입니다. 제가 방송사의 아카이브 관리부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 배경에는 이러한 생각의 과정들이 깔려 있습니다. 방송물들의 올바른 관리가 전체 역사의 훌륭한 보관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저는 방송자료들을 방송프로그램의 제작뿐만 아니라 교육기관에도 기민하게 연결해 보다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미래에 우리들의 발자취를 찾을 때 우리의 기록물들이 미래의 유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 위해 연세대 문헌정보학과에서 그 꿈을 키워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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