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이영미, "흥남부두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by 처사21
728x90
반응형

이영미, "흥남부두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평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음악, 미술에 대한 평론은 아주 질색이다. '뱀 다리(蛇足) 달기'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예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노래나 그림은 이미 제대로 된 예술이 아니다.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면 수십 장의 그림 보다 제대로 된 한 편의 논문이 더 낫다. 반면 예술은 수십 편의 논문도 줄 수 없는 감동을 단 한 곡의 노래만으로도 줄 수 있다. 진정 예술이란 의미를 생각하기 전에 가슴으로 느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위 '평론가'라는 자들은 작품과 감동 사이에 논리라는 장벽을 놓아버린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작품해설'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을 설명은 오히려 쉬운 것을 어렵게 만들고 소박한 감동을 지겨움으로 바꾸어 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작업은 내게 있어서는 뛰어난 몸매를 가진 뱀에게 다리를 달아주어서 병신 뱀으로 만들어 놓는 잘난 척하는 식자들의 추악한 짓거리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흥남부두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이하 {흥남부두...})}는 이런 나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부수어 놓았다. 이 책은 진정한 평론이란 예술을 감상하는 즐거움에 맛있는 양념을 더 해주는 작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난 후로 가요는 더 깊고 맛깔스럽게 들렸던 것이다. 전에 듣던 가요가 날고기였다면 이 책을 읽은 후에 듣는 노래는 양념해서 구어 먹는 불고기 맛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저자는 이 책에서 한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동을 깊고 넓게 해주는 평론의 제대로 된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가사에 대한 사회학적인 분석과 해설을 통해 노래 밑바닥에 깔려있는 '시대의 감성'을 드러내고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의 서술방식은 의미 있었던 노래들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가며 1920년대서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가요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가요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 초창기 노래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이다. 동경 음악 학교로 유학을 했던 우리 나라 최초의 소프라노였던 윤심덕의 이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수준이 '할머니 찬송가 정도'라는 저자의 평가에 선뜻 동의할 것이다. 내 판단으로도 윤심덕의 노래는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는 할머니들의 수준보다도 못하다. 음정이 정확하지 않을뿐더러 고무줄 박자에다가 음량도 가늘고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적 감성이라는 것은 과학기술처럼 진보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감수성이 있다. 서양의 음악과 화성(和聲)에 익숙한 지금으로서는 형편없이 들리지만, 가락 위주의 창()과 민요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의 귀에는 윤심덕이 조수미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하다. 비록 서양의 음악을 부르고 있지만, 윤심덕의 노래에는 당시 대중들에게 익숙했던 민요의 전통적인 창의 기법과 정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에 대한 감수성은 빨리 바뀌는 것이 아니다.

 

또한, 지금은 하층민의 노래가 되어버린 '트로트'는 이 시기에 있어서는 도시의 가장 세련된 사람들의 노래였다. 일본 유학 등을 통해 서양 문물을 보다 빨리 접한 사람들만이 트로트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민층이 즐기던 노래는 주로 민요였다. 그래서인지, '하숙생', '희망가'와 같은 노래들은 요새 트로트와는 달리 상당히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느낌을 준다.

 

1950년대는 '삼팔선 헤매는 아리조나 카우보이'들의 시대였다. 한편에서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굳세어라 금순아' 같이 전쟁의 상처와 애통함이 절절이 묻어 나는 노래가 불리어 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풍요한 미국 문명에 대한 동경이 담긴 곡들이 많이 나왔던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노래들에는

 

"...저 멀리 인디안의 북소리가 들려오면...고개 너머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립고", 샌프란시스코에 '비너스'가 등장하는 등, 지금 사람들의 눈에는 우습기 짝이 없는 노래 가사들이 많이 있다. 미국은 전쟁으로 비참했던 한국의 현실을 잊게 해주는 환상의 패러다이스였던 것이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군대를 소재로 한 노래들의 변천사이다.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시기의 군대 노래들은 주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는', '화랑담배 연기 속에 전우가 사라지는' 비장하고 결연한 노래들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될수록 이제 군대도 일상 생활의 일부가 되어 간다. 이에 따라 군대 노래들도 적을 무찌르고 전우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군인다운' 노래들은 점점 사라지고 휴가 나온 김일병이 작대기 두 개가 어디냐고 자랑을 하고, 입영열차 안에서 짧은 머리를 만지며 애인이 자기를 잊지 않을까 걱정하는 일상의 노래들로 변해 가는 것이다. 이처럼 노래는 시대를 반영하고 보여준다.

 

1960년대는 현미, 패티김, 한명숙, 이금희 등이 활동하면서 '팝 음악'이 자리를 잡으며 트로트를 농민과 도시 소외 계층의 노래로 밀어낸 시기였다. 민요에 가까운 트로트 5음계를 쓰고 가락에 중점을 두는 노래보다는 7음계를 완전히 구사하고 합창, 중창 등 음악의 화음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가요가 많이 등장했다.

 

1970년대는 '청년문화'의 시대다. 생맥주와 청바지가 유행하고 장발과 미니스커트가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시기이다. 청년들은 자신이 '기성세대'들과는 다른 정신과 감성을 소유하고 있음을 드러내려고 했다. 이른바 '포크송'이 등장했고 이 것은 '노래는 가락이 구성지게 꺾어져야 제 맛'이었던 이전 가요들과는 달리 정확한 음정과 화음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노래들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서슬 퍼런 군사독재가 지배하던 때여서 가요 속에서 표현될 수 있는 정서에도 한계가 있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은 노래는 기껏해야 '고래사냥' 정도라고나 할까, 대부분은 '가난', '작음', '하얀', '맑음', '이슬', '유리', '어린아이', '작은 새' 등을 내세우며 '순수'를 강조하는 노래들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고고장'의 유행과 맞물려 신중현, 김추자 등이 주도하는 록의 열풍이 불었다. 반면 남진과 나훈아가 주도하던 트로트는 이제 완전히 하층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노래로 굳어져 갔다. 60년대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사내용이 주로 고향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에서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는 식으로 도시 하층민의 애환을 다루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70년대의 '청년 문화'1975년에 '대마초 사건'과 함께 수많은 가수들이 구속됨으로써 막을 내리고 만다. ' 한 놈을 쳐서 백 명을 쫄게 하는' 군사문화의 특성처럼, 독재 정권은 마약이라는 약발이 서는 명분을 내세워 그들의 눈에는 퇴폐적으로 보였던 가수들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들을 줄줄이 구속시킴으로서 '효과적'으로 반항적인 청년문화의 뿌리를 뽑아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80년대는 대중 가요의 음반 판매고가 비로소 팝송을 추월하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조용필이라는 대형가수가 등장하면서 '오빠 부대''팬클럽'이니 '매니지먼트'라는 개념이 나오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다. 80년대 중후반에 들어 음악시장이 대형화되면서, 가요는 '트로트, 발라드, '이라는 세 범주로 명확히 구분되기 시작했고 변진섭처럼 '가느다란 발성의 남성 가수'들이 인기를 얻곤 했다. 가락보다는 화성을 중시하는 서양의 음악정서가 이제는 거부감 없이 받아드려져서 대표적인 화성악기인 피아노가 반주로 자주 등장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대 들어 트로트는 주현미의 '쌍쌍파티'라는 음반에서 보이는 것처럼 슬픔을 상실하기 시작했고(지금에 와서 트로트는 가수가 아무리 애절하게 절창(絶唱)을 해도 슬프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단순히 '껌 씹는 맛으로 부르는' 놀이용 음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90년대를 특징짓는 사건은 '서태지'의 등장이다. 이들은 한국어 음가(音價)를 영어 억양에 결합시켜 랩을 도입 했을 뿐더러 댄스음악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해체, 부조화라는 '포스트모던(Post-modern)'의 사조는 대중음악에도 여지없이 나타나 의미 없이 '딸기가 좋아'같은 말들을 반복하는 가사들이 등장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저자가 보기에 1996년의 서태지의 은퇴는 1975년에 '대마초 사건'에 비견할 만한 사건이었다. 이후 더 이상 새로운 시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의 대중음악 역사는 참신한 선구자들이 개척해 놓은 길을 따라 이미 형성된 대중의 취향에 착실하게 비위를 맞추는 음반사들의 '성공의 법칙'이 지배하던 시기였을 뿐이다.

 

하지만 대중가요의 특성상 가사는 사회의 변화되는 면모를 여전히 반영하고 있어서, 이별노래는 '바짓가랑이 잡는 대신 멱살 잡는' 가사가 주종을 이루었고 IMF 때에는 지오디(GOD){어머니}에서 보듯, 갑자기 고개 숙인 기성세대를 위로하는 듯한 '착한 댄스뮤직'들이 나오기도 했다.

 

책의 내용을 소개하려다가 보니 어느덧 장황한 요약이 되고 말았지만, 저자인 이영미는 이처럼 길고 장황한 이야기를 가슴에 느낌표를 찍으며 속도감 있게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저자의 '글 맛'을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아울러 그는 어려운 이론에 현실을 거꾸로 꿰어 맞추려 하는 '식자 평론가'들과는 달리, 가요를 재료 삼아 일상의 말과 정서만을 가지고도 우리의 현실을 깊고 정확하게 꿰뚫어 본질을 드러내는 재주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 점에서 {흥남부두...}, '해설'이라는 미명하에 어려운 용어들로 현실을 감싸버려서 더더욱 삶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리는 이 시대의 인문학자들의 풍토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다. 사회와 삶을 분석하는 데 있어 새로운 형태의 '인문학 방법론'을 제시하는 획기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728x90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독서창고

처사21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