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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주제별 특강 3 - 앎과 지식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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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별 특강 3 - 앎과 지식

 

미셀 푸코가 논하고 있는 ‘과학적 변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리하고, 이를 통해 통념적인 진리관과 사회적 권력의 관련성에 대해 각자의 견해를 논술해 보라.

 

거대한 과학적인 변혁들은 아마 종종 어떤 발견의 결과들로서 읽힐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또한 진리에의 의지에서 새로운 형태들의 출현으로서 읽힐 수도 있는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19세기에 그 형태에서나, 그 대상 영역들에서나, 그 사용 기술들에서나 고전주의시대(178세기)의 문화를 특징짓는 지식에의 의지와는 일치하지 않는 어떤 진리에의 의지가 존재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자. 16세기로부터 17세기로의 전환기에, 특히 영국에서, 그 현실적인 내용들을 예상함으로써, 관찰 가능한, 측정 가능한, 분류 가능한 대상들의 평면들을 도안했던 지식에의 의지가, 그리고 모든 경험에 앞서 인식하는 주체에게 어떤 위치를, 어떤 시선을 그리고 어떤 기능(보고 검증하는 기능)을 부여했던 지식에의 의지가, 그리고 또 인식들이 검증 가능하거나 유용하도록 투자되어야 하게 만든 수준을 규정하는 지식에의 의지가 출현했다. 모든 것이 거대한 플라톤적인 분할로부터 출발해, 진리에의 의지가 그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진리에의 의지는, 배제의 다른 체계들에서처럼, 어떤 제도적 토대 위에 입각해 있다. 그것은 교육학과 같은 그리고 물론 책들의, 편집의, 도서관들의 체계와 같은 나아가 오늘날에는 과학자들의 집단이나 실험실과 같은 모든 실천들의 두께에 의해 강화되고 또 동시에 갱신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의심할 바 없이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 지식이 한 사회에서 사용되는 방식, 그것이 가치를 부여받고, 분배되고, 어느 면에서 부과되기도 하는 방식에 의해 갱신된다. 여기에서, 단지 상징적인 의미에서일 뿐이지만, 오래된 희랍적 원리를 상기해 보자. 그에 따르면, 산수는 민주적인 도시인들의 일인 바, 왜냐하면 그것은 동등함의 관계에서 가르치기 때문이며, 반면 과두제들에서는 기하학만이 교육되어야 하는바, 왜냐하면 그것은 비동등성에서 비율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제도적인 토대와 분배 위에 서 있는 그러한 진리에의 의지는 다른 담론들에 강제적인 힘으로서 일종의 압력을 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믿는다. 한 가지 예로서, 나는 서구의 문학을 오랜 시간 동안 자연적인 것, 사실적인 것, 진지한 것, 또한 과학적인 것 위에서 요컨대 진()의 담론 위에서 그 지지점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방식이 존재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사실들에 가장 덜 주목하였다. 마치 우리에게 진리에의 의지와 그의 우여곡절들이 진리 자체의 필연적인 전개 속에서 은폐되어 왔던 것처럼. 그 이유는 아마도 이와 같은 것이다. 참된 담론이 결국 희랍인들 이래 더 이상 욕구에 응답하는 담론 또는 권력을 실행하는 담론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다 해도, 진리에의 의지에서 그리고 진()인 담론을 말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욕구와 권력이 아니라면 무엇이었겠는가? 그 형태의 필연성이 욕구로부터 풀려나고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진()의 담론은 그를 관통하는 진리에의 의지를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오래 전부터 부과되어 왔던 그러한 진리에의 의지는 그것이 원하는 진리가 그것을 은폐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것이다.

 

- 미셸 푸코, 󰡔담론의 질서󰡕 중에서

 

 

<유의사항>

1. 논제와 성명을 쓰지 말 것.

2. 빈칸을 포함하여 글자 수를 1,600자 내외(±200)를 엄격히 지킬 것.

3. 제시문을 인용할 때는 인용부호(따옴표)를 붙여서 인용할 것.

 

 

【논제 분석】

 

1. 출제 의도의 파악

우리는 흔히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과학자 개인의 창조성의 소산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과학적 이론이 진리로 통용되는 것은 어떤 사회적 질서나 시대성과 무관한 것으로 인정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 과학사를 엄격히 연구해 보면 앞의 두 전제는 모두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다. 과학적 발견은 과학자 개인의 창조성의 결과도 아니며, 그런 과학적 발견이 이뤄지는 사회의 제도와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사안도 아닌 것이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나오게 된 것은 그런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이 존재하며, 설령 새롭게 제출된 가설일지라도 그것이 진리인가 거짓인가의 판단은 과학적 내용 그 자체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조건에 의존한다. 우리가 흔히 진리라고 알고 있는 수많은 지적 전제들은 우리 시대가 그런 것만을 진리로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의 진리성은 언제나 사회 권력과 관계됨을 상기하려는 것이 이 문제의 출제 의도인 것이다.

 

2. 논제 분석

미셀 푸코가 말한 진리에의 의지는 무엇이고, 진리와 권력은 어떻게 관계되며 이것이 통념적 과학관에 제기하는 문제를 논할 것.

 

3. 제시문에 나타난 미셀 푸코가 말하는 진리에의 의지의 성격을 정리해 보자.

 

첫째, 각각 시대는 무엇이 진리인가를 규정하는 규범적 틀이 존재한다. 이런 규범적 틀은 관찰과 측정의 대상은 무엇이고, 어떻게 분류하며,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관찰해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것이 진리에의 의지이다. 이 규범적 틀을 벗어난 과학적 발견은 과학 공동체로부터 배제된다.

 

둘째, 이런 규범적 틀은 어떤 제도에 기초하고 있다. 즉 그 규범들은 과학집단의 실험과 실천, 도서관과 출판제도 등의 사회적인 제도 속의 실천들을 통해 존재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사회가 지식들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배분하며, 요구하는 방식에 의존한다.

 

셋째, 이렇게 제도화된 지식에의 의지는 다른 과학적 실천들에게 동일한 방식을 강제한다. 그러므로 상이한 과학분과들이 동일한 실천의 틀 속에 매이며, 그렇게 됨으로써 다시 그런 규범적 틀은 진리에의 의지로 작용한다.

 

넷째, 이는 결국 권력과 관련된다. 결국 과학이 아무리 시대 초월적이라 주장되어도, 어떤 공통된 진리에의 의지에 기초한다는 것은 결국 과학외적인 권력과의 관련이 부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4. 과학에 대한 통념적 관점

과학은 과학자 개인의 창조물이다.

진리는 과학외적인 것과의 관련 속에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옳기 때문에 진 리인 것이다.

독립된 과학적 분과는 서로 상이한 전제를 갖고 있다.

과학은 권력과 독립된 과학 공동체 내에서의 문제이다.

 

5. 과학과 과학외적인 것의 관련의 문제

우리가 학교제도나 사회에서 진리라고 칭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사회나 권력으로부터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권력의 틀과 관련 속에서 진리로 승인된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적 발견으로 승인되는 것 또한 제도적 틀 속에서 그런 것이다. 제도에서 승인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가설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기각될 수 있다. 과학은 결코 사회권력과 독립된 존재라 할 수 없다.

 

6. 개요의 작성

서론 : 통념적 진리관이 갖는 문제에 대한 간략한 논의를 하면서 논제를 도출할 것.

본론 : 푸코의 논의의 정리

통념적 진리관과 사회적 권력과의 관계를 설명

작성자의 입장을 밝힐 것

결론 : 과학적 발견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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