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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글라써, "긍정적 중독( Positive Addiction)"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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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글라써, "긍정적 중독( Positive Addiction)"

 

공부에 흥미 붙이지 못한 아이 일수록 '잔머리'가 발달할 가능성은 높다.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지루한 시간을 피하기 위해 온갖 핑계거리들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은 PC 게임이나 축구 등 즐겁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는 무척 열심이다.

 

"게임할 때처럼 공부했으면 진작 1 등 했지!" PC 게임에 '중독'된 아이를 둔 부모라면 한번쯤 중얼거려 보았음직한 말이다. 현실요법의 대가(大家) 글라써 박사의 '긍정적 중독'이란 바로 이런 부모 심정을 실현가능한 형태로 구체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약이나 술과 담배, PC 게임 같은 해로운 일들에 중독되는 것처럼 공부, 운동 등 생산적인 일에 '중독'되게 할 수는 없을까?

 

사실 우리는 주변에서 '긍정적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곧잘 볼 수 있다. 조깅과 명상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조깅 광()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 뛰고는 못 배긴다. 단전호흡 등 명상 수련의 빠져든 사람도 하루라도 수행할 짬을 내지 못하면 초조하고 불안해한다. (나의 경우에는 '활자 중독'이 있다. 잠시라도 틈만 나면 뭔가를 읽고 있어야 한다. 몇 시간 동안 무엇이건 읽지 못하면 초조해지고 몹시 불편하다. 활자 중독은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증상'이기도 하다.) '긍정적 중독자'들은 어떤 면에서 마약 중독자들과 비슷하다. 중독 된 활동에 집착하고 그 것을 해야만 마음이 편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긍정적 중독은 마약 같은 것에 집착하는 부정적 중독과 아주 다르다. 긍정적 중독은 생산적이지만 부정적 중독은 개인을 파멸로 이끈다는 점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똑같은 '중독'이라도 중독되는 양상은 다르다. 부정적 중독은 단기간 내에 익숙해지며 재빨리 강렬한 쾌락을 주지만, 긍정적 중독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마약은 몇 번의 투입만으로도 중독되지만 조깅의 '참 맛'을 알고 '중독'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주 이상 꾸준히 뛰어야 한다. 긍정적 중독에 빠지기 힘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부정적 중독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그 것을 할 때마다 쾌감을 느끼지만, 긍정적 중독은 반드시 쾌감만을 주지 않는다. 마약 중독자는 마약에서 강렬한 쾌감만을 떠올리지만 '조깅 중독자'는 달리기가 주는 상쾌함을 이를 때까지의 지루하고 귀찮은 몸놀림도 함께 떠올린다. 긍정적 중독은 쾌감에 앞서 귀찮은 활동이다. 그럼에도 중독자들은 그 일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왜냐하면 하지 않고 거른다면 "성가신 불안, 죄책감, 불편한 감정"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긍정적 중독을 주는 활동이란 마치 생활을 위한 내공 쌓기와 같아서 다른 일을 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매일 조깅하는 사람이 보다 활기차고 건강하며, 명상하는 사람들은 매사에 집중력이 높고 차분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긍정적 중독 상태에 이를 수 있을까?

 

글라써는 긍정적 중독 상태에 이르기 위한 6가지 단계를 제시한다. 첫 째, 중독의 이를 수 있는 활동은 스스로 선택하고 매일 1시간 정도 투자할 수 있으며 경쟁적이지 않은 일이어야 한다. 둘 째, 쉽게 할 수 있으며 잘 하기 위해 많은 정신적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은 일이어야 한다. 셋 째, 그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으며, 넷 째, 활동이 자신에게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일이어야 한다. 다섯 째, 자신이 향상될 수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 나아진 정도를 느끼고 알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기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활동이어야 한다.

 

글라써의 여섯 조건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간단하고 상식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군대 갔다 온 사람이라면, 23개월 동안 매일 아침마다 구보하고서도 자신이 조깅에 중독되지 않은 사실에서 그의 주장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강제로 하는 일은 중독되지 않는다. 게다가 스스로 자학하며 하는 활동도 중독되지 않는다. 스스로 자유롭게 결심하고 가치와 보람을 느끼는 활동에만 긍정적인 중독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은 개념만을 설명하고 있을 뿐, 긍정적 중독에 빠져들기 위한 '실천적 매뉴얼'이 없다는 것이다. PC게임에 빠져있는 자녀를 공부 중독에 빠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학부모들에게는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그러나 {긍정적 중독}1976년에 나온 책이다. 후에 이 개념을 물려받은 다양한 저서들이 나왔다. 90년대 나온 칙센트미하이(M.Cskzentmihaly)'몰입(Flow)' 개념은 글라써의 '긍정적 중독'의 개념과 거의 똑같다. 우리나라에서 칙센트미하이의 책은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쓸만한 '실천 매뉴얼'은 찾기 어렵다. 생각만큼 현실에서 중독을 이끌어 내기란 쉽지 않다는 해석이 가능하겠다.

 

그럼에도 생산적인 일에 마약 중독자같은 강한 정열을 불러 일으켜 몰두하게 한다는 글라써의 발상은 무척 흥미롭고 참신하다. 구체적인 '중독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한 지금에도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긍정적 중독자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혹시 지금 삶의 의미를 잃고 표류하는 사람이 있다면 술이나 마약 보다는 글라써가 권하는 긍정적 중독활동에 빠져들어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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