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과학
by 처사21종교와 과학
버트란트 러셀 ( 영국, 철학 )
송 상 용 옮김
종교와 과학은 사회생활의 두 측면이다. 종교는 우리가 인간의 정신사에 관해 이해하고 있는 만큼의 먼 과거로부터 중요한 것이 되어 왔으며, 한편 과학은 그리스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에서 단속(斷續)적으로 명멸(明滅)해 오다가 16세기에 이르러 갑자기 중요성을 인식했고, 그 뒤부터 점점 발달하여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사상과 체계들을 형성해 왔다. 종교와 과학 사이에는 오랜 투쟁이 있었는데 최근 몇 년 전까지도 과학은 변함없이 승리를 과시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도이칠란트에서 새로운 종교들이 발생하고 선교활동을 할 때 과학이 제공하는 새로운 수단들을 갖추게 되자 이 문제는 과학시대의 시작 때 그랬듯이 다시 혼미해졌다. 그리고 이에 따라 과학적 지식에 대해 전통적 종교가 수행해 온 싸움의 근거와 역사를 검토하는 것이 또다시 중요하게 되었다.
과학은 관찰이라는 수단과 그것에 기초한 추론을 통해서 먼저 세계에 관한 개별적 사실들을 발견하고, 다음으로는 그 사실들을 상호 연결해 주며, (운이 좋은 경우에는) 미래에 발생할 것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해 주는 법칙들을 발견해 내려는 시도이다. 과학은 이런 이론적 측면과 관련하여 과학적 기법이 있는데, 이것은 과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과학 이전의 시대에 는 불가능했거나 적어도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을 안락과 사치를 만들어 낸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있어서조차 과학의 중요성이 크게 인식되는 것은 바로 이런 면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고려한다면 종교는 과학보다 더욱 복잡한 현상이다. 위대한 종교는 역사적으로 모두 세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⑴ 교회, ⑵ 교리, ⑶ 개인도덕의 강령이다. 이상 세 가지 요소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상대적 중요성이 상당히 변해 왔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종교들은 스토아학파에 의해 논리적 요소를 지니게 되기 전까지는 개인도덕에 관해서는 별로 말할 것이 없었다. 이슬람교에 있어서도 사원은 군주와 비교해 볼 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근대의 프로테스탄티즘에는 교리의 준엄성을 완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 가지 요소들은 과학과의 갈등에 크게 관여하고 있는 사회현상으로서의 종교에 대하여 비록 그 비율은 여러 가지로 다르나 본질적인 것들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종교라도 과학이 반증할 수 있는 주장들을 피하려는 데 만족하는 한 그것은 가장 과학적인 시대에도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종교와 과학 사이의 갈등에서 지적 원천은 교리이다. 그러나 반대파의 신랄한 공격은 교리와 교회, 그리고 교회와 도덕률의 관계 때문에 생겨났다. 교리에 관해 의문을 품는 자는 성직자들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그들의 수입을 감소시키기도 했으며, 더욱이 도덕적 의무란 것도 성직자들이 교리로부터 이끌어 냈던 것이므로 그런 사람들은 도덕의 기초를 갉아먹는 자들로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성직자들은 물론, 속세의 지배자들도 과학을 하는 사람들의 혁명적 가르침을 두려워할 마땅한 이유가 있음을 느꼈다.
이제부터 우리가 관심을 갖고자 하는 것은 과학 일반도 아니고 종교 일반에 관한 것도 아니며, 과거에 그들이 갈등을 일으켰고 현재도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그런 점들에 관해서이다. 그리스도교에 관한 한 이런 갈등은 두 종류가 있었다. 성서에는 가끔 사실 문제, 예를 들어 산토끼가 되새김질하는 사실에 관한 어떤 주장을 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그런 주장들은 그것이 과학적 관찰에 의해서 반박될 때 과학의 영향으로 달리 생각해 보게 되기 전까지의 대부분의 그리스도 교도들이 그랬듯이, 성서의 모든 말은 신이 부추긴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든다. 그러나 관계된 성서의 주장이 본래적인 종교적 중요성을 띠지 않을 때에는 그런 주장들에 대해 변명을 하거나, 성서는 오직 종교와 도덕문제에 관해서만 권위가 있다고 결론지음으로써 넘어가거나 논쟁을 피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과학이 어떤 중요한 그리스도교의 교의(敎義) 또는 신학자들이 그들의 정통성에 필수적이라 믿는 어떤 철학적 이론을 논박할 때에는 더 깊은 갈등이 생긴다.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종교와 과학 사이의 갖가지 의견대립은 최초에는 첫번째 유형의 것이었으나, 점차로 더욱더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의 요체로 생각되었거나 생각되고 있는 부분의 문제에 관여해 왔다.
오늘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중세에 존재했던 것과 같은 그리스도교의 교리의 대부분이 현재는 불필요하며, 실제로는 종교적 생활에 대해 방해만 된다고 느끼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가 과학이 부딪친 반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런 반대를 합리적으로 보이게 해 준 관념체계 속으로 일단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사람이 사제(司祭)에게 왜 살인을 해서는 안되느냐고 물었다고 가정하자. ‘그대가 교수형을 받게 될 것이므로’란 대답은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느껴졌다. 왜냐 하면 교수형의 정당성을 설명해야 했으니까. 그러나 과학이 융성하기 전에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할 만한 것으로 보인 답이 있었다. 즉 시나이山에서 신이 모세에게 계시를 준 십계명에 의해 살인을 금한다는 답이다. 지상의 정의를 교묘히 피한 범죄자도 신의 분노는 피할 수 없었는데, 신의 분노는 뉘우칠 줄 모르는 살인자들을 교수형보다 더 무서운 끝없는 형벌에 처했었다. 그러나 이 논의는 성서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는데 성서를 전체로서 받아들일 경우에만 그대로 주장될 수 있는 것이다. 성서가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이 보이면, 우리는 갈릴레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성서의 진술을 지지해야만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인자들과 기타 모든 종류의 악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논의를 지금 받아들일 사람은 극소수라 할지라도 그것을 불합리한 것으로 간주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도덕적 유기(遺棄)를 한 것으로 보아서도 안된다.
중세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견해는 오늘날에는 잊어 버린 제대로의 논리적 통일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과학이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교리의 권위적 해석자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꼽을 수 있겠다. 그는 주장하기를 ― 그의 견해는 아직까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견해로 되어 있다. ― 그리스도교의 기본적 진리들 가운데 일부는 계시의 도움 없이 독자적인 이성의 힘으로 증명될 수 있다고 했다. 전능하고 자비로운 창조주의 존재가 그 가운데 하나다. 창조주의 전능과 자비로부터 그가 그의 피조물들이 그의 섭리에 관한 지식, 즉 그의 뜻을 순종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지식도 없이 지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따라 나왔다. 그러므로 신의 계시가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으며 이 계시는 물론 성서와 교회의 결정 안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점이 성립하면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의 나머지는 복음서와 전체 그리스도교 평의회의 성명(聲明)들로부터 추론될 수 있다. 이 모든 논의는 그리스도교의 거의 모든 교인이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전제로부터 연역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 논의가 현대의 독자들에게 때때로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해도, 당시의 대다수 지식인들에게는 그 오류(誤謬)가 분명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논리적 통일성은 강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다. 논리적 통일성은 논의의 한 단계를 받아들인 사람이면 누구나 나중의 모든 단계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강점이며, 나중 단계의 어떤 것을 거부한 사람이면 역시 최소한 초기단계의 일부를 거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약점이다. 교회는 그것과 과학과의 갈등에 있어 그 교의의 논리적 정합성에서 나오는 강점과 약점을 모두 보여 주었다.
과학이 그 믿음들에 도달한 방식은 중세신학이 그 믿음들에 도달한 방식과 현저히 다르다. 일반적 원리들에서 출발하여 연역적으로 진행해 나아감을 그 원리가 참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에, 또 그 원리에 기초한 추론이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 위험한 것임이 경험을 통해서 밝혀졌다. 과학은 큰 가정들에서가 아니라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발견한 개별적 사실들에서 출발한다. 많은 이런 사실들로부터 일반적 규칙이 얻어지며, 만일 그것이 참이라면 문제된 사실들은 그 일반적 법칙의 보기들이다. 이 규칙은 적극적으로 주장되는 것이 아니고, 우선 하나의 가설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정확하다면 지금까지 관찰되지 않은 현상이 특정한 상황에서 발생할 것이다. 만일 그런 현상이 실제로 나타난다면 그만큼 그 가설은 확증된다.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가설은 폐기되지 않으면 안되고 새로운 가설을 창안해 내야만 한다. 아무리 많은 사실들이 그 가설에 맞는 것으로 밝혀진다 해도 그것으로 그 가설이 확실한 것으로 되지는 않는다. 결국은 그 가설이 높은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기에 이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 경우 그것은 가설이라기보다는 이론으로 불린다. 몇몇 상이한 이론들은 각각 직접적으로 사실들을 기초로 하여 세워진 것으로서 새롭고 더 일반적인 가설, 즉 그것이 참이라면 그것으로부터 그 이론들 모두가 도출되어 나올 가설의 기초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일반화의 과정에 대해서는 어떤 한계도 설정될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비해 중세적 사고에 있어서는 가장 일반적인 원리들이 출발점이었지만, 과학에 있어서는 종국적 결론이다. 여기서 종국적이라 함은 비록 나중 단계에 가서는 어떤 보다 넓은 법칙의 보기가 될 것 같은 경우라 해도 주어진 순간에 있어 그렇다는 뜻이다.
종교적 교리는 영원하며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리를 구현할 것을 요구하는 점에서 과학과 다르다. 과학은 언제나 임시적이며, 그 현재의 이론들이 조만간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밝혀짐을 기대하고 있으며, 그것의 방법이 완전하고 종국적인 증명에 도달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발전된 과학에 있어 요구되는 변화들도 일반적으로 겨우 약간 더 큰 정확성을 주는 데 기여하는 정도의 것이다. 낡은 이론들은 오직 조잡한 근사치가 문제될 때만 가치가 있으며, 어떤 새로운 관찰의 정밀성이 가능해지면 쓸모가 없어진다. 더구나 낡은 이론에 의해 제시된 기술적 발명들은 그 이론들이 어떤 시점까지는 일종의 실제적 진리를 지녔었다는 증명으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과학은 절대적 진리의 포기를 고무하며 ‘기술적’ 진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대가를 고무하고 있는데, 이 기술적 진리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나 발명에 있어 성공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어떤 이론에도 귀속되어 있다. ‘기술적’ 진리는 정도 문제인 것이다. 발명과 예측을 성공적으로 더 많이 산출한 이론은 보다 적은 결과를 낸 이론보다 더 참이다. ‘지식’은 우주의 정신적 거울이 되기를 중지하고 단순히 물질의 조작(操作)에 사용될 실제적 용구로 된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의 이런 의미들이 과학의 개척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진리탐구의 새로운 방법을 실천했으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신학적 반대자들이 그랬듯이 진리 자체를 적대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중세의 견해와 근대과학의 견해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은 권위에 관한 것이다.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성서, 카톨릭 신앙의 교의, 그리고 (거의 동등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독창적 사고며, 심지어 사실들에 관한 탐구도 사변적(思辨的) 대담성이 이 불변의 경계선들에 의해 설정된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어서는 안되었다. 지구의 정반대 쪽에 있는 지점에 사람들이 있는지, 목성이 위성들을 갖고 있는지, 물체는 그들의 질량에 비례하는 속도로 낙하하는지 등의 물음은 관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나 복음서로부터의 연역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물음들이었다. 신학과 과학의 싸움은 거의 권위와 관찰 사이의 싸움과 같은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어떤 중요한 권위가 어떤 명제들을 참이라고 했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믿어야 할 것인지를 묻지는 않았다. 반대로 그들은 감각의 증거들에 호소했고, 필요한 관찰을 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는 사실들에 기초한 것으로 믿어지는 교의들만을 주장했다. 새로운 방법이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굉장한 성공을 거두게 되자 신학은 점차적으로 자신을 과학에 순응시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불편한 성서 구절들은 비유적으로나 상징적으로 해석되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종교에 있어 권위의 위치를 처음에는 교회와 성서로부터 성서만으로, 다음에는 개인의 영혼으로 옮겼다. 점차로 종교생활은 사실의 문제, 이를테면 아담과 이브의 역사적 존재와 같은 사실의 문제에 관한 언명들에 의존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종교는 외유를 포기함으로써 성채(城砦)를 안전하게 보존하는 길을 찾아왔다. 그것이 성공적인가 아닌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그러나 종교생활의 한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서 과학의 발견들로부터 독립해 있으며 우리가 우주의 본질에 관해 무엇을 믿게 되거나 간에 살아 남을지도 모른다. 종교는 교리 및 교회와만 연관되어 온 것이 아니라 종교의 중요성을 느낀 사람들의 사생활과도 연관되어 왔다. 가장 훌륭한 성자들과 신비주의자들 속에도 특정한 교의에 대한 믿음과 인간생활의 목표에 관한 특정한 느낌의 방식이 함께 존재했다. 인간의 운명의 문제들, 인류의 고통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미래에는 우리 인간의 최선의 가능성들이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 등을 깊이 느끼고 있는 사람은 오늘날 그가 전통적 그리스도교를 아무리 적게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하나의 종교적 견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흔히 말해진다. 종교가 느낌의 한 방식 안에서 성립하는 것이지 일련의 믿음들 안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닌 이상, 과학은 그것을 건드릴 수 없다. 교의의 퇴조는 아마도 심리적으로 그런 느낌의 방식을 잠정적으로는 더욱 어렵게 할는지도 모르는데, 그 까닭은 그것이 신학적 믿음과 매우 밀접하게 결부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영원히 지속할 필요가 없다. 실상 많은 자유사상가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서 이 느낌의 방식이 교리와는 본질적 연관을 갖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참된 탁월성은 결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근거 없는 믿음과 결부되어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만일 신학적 믿음들이 근거 없는 것이라면 그것들이 종교적 견해가 지닌 어떤 가치있는 것을 보존하는 데 필수적일 수 없다. 이와 달리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발견할지도 모르는 어떤 것에 관한 두려움으로 충만되어 있음이며, 이것은 장차 세계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시도들을 방해할 것이다. 그러나 참된 지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은 오직 우리가 그런 이해를 성취하는 그 조치에 의해서이다.
< 종교와 과학, 1989, 전파과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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