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술의 조화
by 처사21인간과 기술의 조화
임 길 진 (미시간대, 도시계획학)
1. 젊은 전문기술자의 불안
그 정도가 예전만큼 높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전문기술자라는 직업은 계속 상당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인기도(배우자 직업선택 경향이나 입학시험의 높은 경쟁률)가 곧 사회 전체적인 평가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전문기술자라는 직업이 사회적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기술자에게는 상존하는 불안이 있다. 젊은 전문기술자의 경우 특히 그러하고 사려깊은 전문기술자일수록 그가 지닌 불안의 차원은 그만큼 높아진다. 상당수의 전문기술자들은 자만과 적당한 체념을 통하여 그 불안을 직시하지 않으려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젊고 야심적이고 사려깊은 전문기술자는 자만하기에는 때가 너무 이르고 체념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다. 사회적인 인정과 선망을 획득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사회의 인정과 선망의 과녁(인정과 선망의 타당성은 잠시 덮어두기로 하고)일 수 있는 전문기술자가 불안을 안은 채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2. 불안의 개념
불안을 지니지 않은 개인은 없다. 한 개인이 지니는 불안의 요소는 대단히 복잡하고 다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전문기술자의 불안은 그런 불안이 아니고 전문기술자라는 특수성이 갖는 불안을 말한다. ‘전문기술자의 불안’이라는 개념은 전문기술자의 의미와 기능이 고려된 상태에서 보다 분석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불안의 덩어리를 한데 묶어 쉽사리 파기해 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방편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체념, 방기, 자만, 숙명에의 전가 등이 그런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안일한 차원의 해결 방안으로는 일반인이 지니는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지언정 전문기술자이기 때문에 가져야 하는 특수한 불안은 결코 해소할 수가 없다. 그것이 일시적 안위를 제공할 수는 있을 것이나 그 해결 방안은 내부적 불안을 고질병으로 심화시키고, 필경은 그 불안의 주체를 좌절시키고 재기하기 어려운 나락의 길로 들어서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자기 불안을 해결해 나가기 위한 ‘전문기술자적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인기도가 높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것은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직업’이라는 ‘통속적 명제’에 기인한다. 그러면 그에 대해 사회적으로 가장 널리 인정된 이 명제에 대해서 자신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생활의 안정’이라는 통속적 차원에서 심각한 불안을 느끼는 전문기술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에게 불안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의 불안이 ‘안정된 생활의 추구’ 이상의 차원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안정된 생활 이상의 그 무엇’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정된 생활 이상의 무엇’을 요구한다는 것은 결국 무슨 뜻인가? 개인적 차원에서 볼 때 그것보다 높은 ‘성취 목표’의 설정을 뜻하고, 사회적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곧 개인적 생활 이상의 ‘사회적 역할 수행’을 뜻하게 된다.
3. 가치 지향의 문제
이러한 ‘성취 목표’나 ‘사회적 역할 수행’의 정체는 우선 직업의 선택 동기에서 가닥을 잡아낼 수 있다. 그 까닭은 직업 선택의 동기가 개인이 그 직업으로부터 획득하게 될 사회적인 기능과, 개인이 직업사회에 기여할 것으로 믿어지는 역할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실정상 이러한 방법으로 문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방법상의 어려움도 있으나 더 큰 어려움은 ‘직업 선택의 동기’가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성취 목표’나 ‘사회적 역할 수행’보다는 일시적인 유행과 맹목적 인기가 직업선택의 결정적 동기가 되어 왔다는 것은 확실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다분히 통속적인 ‘명제’가 맹위를 떨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때문에 전문기술자의 경우 일시적인 유행과 인기의 열기가 식고 ‘명제’의 차가운 현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불안이 싹트기 시작한다. 통속적 ‘명제’의 붕괴가 시작되면 적성과 소질에 적합했기 때문에 이 직업을 택한 사람도 일단은 심각한 불안을 맛보게 되고, 외부적 동기만으로 이 직업을 택한 사람은 방향 전환을 꾀하기까지 한다. 대부분의 경우 통속적 ‘명제’의 와해에서 빚어진 허망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전문기술자들은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성취 목표’를 설정하게 되는데, 이는 ‘사회적 역할 수행’이라는 문제와 결부되면서 더욱 극심한 불안을 형성한다. 더구나 이 방면의 초년생에게 ‘성취 목표’나 ‘역할 수행’은 빠른 시일에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젊은 층의 불안이 상대적으로 짙게 나타나며 많은 젊은 전문기술자는 불안의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성취 목표’와 ‘역할 수행’의 둘 중 어느 하나를(때로는 둘다) 포기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적 역할 수행을 포기한 자기 성취 지향’이나 ‘자기 성취를 포기한 사회적 역할 수행만의 주장’은 일종의 자기 파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주위에서 여러 형태의 자기 파산을 목격하고는 한다. 머튼(R.K. Merton)은 이러한 자기 파산의 원인이 성원이 지닌 소망의 기준이 되는 목표를 규정하는 문화적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서의 행동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제도적 규범이 언제나 통합되지 않고 있는 데 있다고 본다. 그것은 역할과 가치의 불균형 때문에, 즉 역할을 중시하느냐 가치를 중시하느냐 하는 갈등 때문에 일탈 행동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잠시 논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던 통속적 ‘명제’의 모순을 의미하며 이 모순이 개인을 지배함으로써 불안이 야기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전문기술자의 불안은 확실히 전문기술자 개인만의 소산이 아니며, 궁극적으로 그의 가치지향이 무엇이며 어떻게 개인과 사회의 조화를 이룰 것이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명백해진 셈이다. 직업 선택의 동기를 구성했던 통속적 ‘명제’가 사회의 문화적 목표와 행동 규범 간의 괴리를 거의 인식하지 못할 때, 개인의 경우 성취 목표와 역할 수행이 화해하지 못할 때, 불안이 야기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결국 전문기술자는 자기 불안의 해소를 위하여 문화적 목표와 행동 규범의 괴리를 지양할 전문기술자의 가치는 무엇이냐는 문제와 싸우지 않으면 안되며, 불행의 씨앗이었던 통속적 명제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전문기술자는 그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본 요소에 대한 명확한 개념 파악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문기술자의 가치 결정의 기본 요소, 그것은 다름아닌 인간과 기술이라는 요소이다.
4. 인간과 기술
전문기술자가 가치 결정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기본 요소가 ‘인간’과 ‘기술’이어야 하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가치관 문제가 대부분 산업 사회 이후의 사회적 특성으로부터 야기되었고, 산업사회에서 전문기술자의 가치는 기술의 혁신 속에서 인식되어 왔으며, 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에의 공헌과 피해는 현대 사회가 당면한 어려운 과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전문기술자의 가치를 논할 때는 인간과 기술이라는 개념이 가장 적합한 잣대가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 해결의 손쉬운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양자택일의 방법이다. 그러나 전문기술자는 기술만의 옹호자일 수도 없고 인간만의 주장을 할 수도 없다. 아니 그보다도 인간과 기술이라는 문제는 이미 양자택일의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지극히 복잡한 상황에 접어들어 있다. 발전으로 인하여 수정되어가고 있고, 기술이라는 개념도 점차 다원화되면서 과거의 단일한 기능 수행에서 점차 복합적인 기능수행으로 기능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 현대이기 때문이다.
의학과 약학의 발달은 인간 생명의 인위적 연장을 가능하게 하였고 내장의 이식에 의한 생명의 연장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게 된다. 인공 내장과 인공 기관에 의하여 한 사람의 생명이 유지된다면 그의 생명은 과연 그 사람의 것인가 아니면 인공 장치의 것인가? 장기이식의 기술과 인공 장기 개발의 기술이 더욱 발전해 나가면 이 문제는 인간 자체의 정의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야기시킬 것이다. 신의 부름에 의하여 이승을 떠났던 과거의 인간과는 달리 미래의 인간은 기술의 결정에 의하여 이승을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기술의 영역은 확대일로에 있으며 근본적 개념은 급속한 속도로 변해간다. 오틀리엔펠트는 이미 50년 전에 기술의 종류를 구별할 때 이 점을 명백히 했다. 그는 기술 중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기술(전기, 기계 기술 등)은 실질 기술이라고 부름으로써 다른 기술, 즉 개인기술, 사회 기술, 지식 기술 등과 구별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혼란을 경험한다. 지금까지 통용되던 기술이라는 개념은 확실히 실질 기술만을 의미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의의 범주를 넓히기 위해서는 개념이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의 수정이 쉽게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 새로운 개념의 기술, 포괄적인 기술이 던지는 문제가 쉽게 포착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대두되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는 현대 국가에서 현대 기술이 기술적, 사회적, 정치적 이유에 의하여 능률 형태가 점점 국가화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점은 헬무트 쉘스키가 현대 국가가 기술 국가화해 가는 과정을 설명할 때 명백해진다. 그는 사용되는 기술적 수단이 다수의 운명에 영향이 크면 클수록 그 기술적 수단은 정치적 결정에 크게 의지하게 된다고 주장하면서, 2차 대전 후 모든 군수 산업과 전시 경제 체제가 개인기업으로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의 생산과 연구는 여전히 국가의 관리하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 현대 기술 촉진을 위한 결정적 투자는 흔히 전 국민의 집결적 역량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가 많은데, 이는 국가가 기술적인 이유에서부터 한 사회의 여러 기술적 가능성을 체계화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범위를 좁혀 실질 기술의 문제점만을 살펴보자. 위에서 언급한 기술 국가라는 문맥에서 이 문제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곧 우리는 실질 기술이 당면한 문제점이 결코 용이하지 않다는 것을 자인하게 된다. 기술 발전의 대표적인 지역인 미국의 경우에서도 실질 기술이 당면한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것임을 다음의 예에서 곧 알 수 있다. 머튼은 기계와 노동자와 전문기술자에 대한 그의 논고에서, “무지를 지식으로 바꾸기 위한 제1보는 우리 지식의 정도를 송두리째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전제하고, 기술적 진보가 절대선(絶對善)이라는 믿음이 너무도 널리 퍼지고 깊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 조건을 인지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기술적 진보가 실업을 초래할 경우, 노동자의 불안과 초조는 증대하고 작업임무의 분화가 동질성의 상실을 초래한다는 점을 들어, 기술(실질기술의 의미)의 변화가 일으키는 사회적 결과를 중시한다.
결국 그는 생산 체계에서 일반 참모로서의 전문기술자의 역할이 사회적, 정치적 중요성을 획득하게 되는 현상과 함께, 계층으로서의 전문기슬자 집단과 그들의 작업이 지니는 사회적 효과를 중요시한다. 결론적으로 그는 전문기술자들의 책임 있는 사회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전문기술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자기 해명의 길은 오로지 전문기술자들의 충성, 전망, 관심에 대한 전체적 탐구뿐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실질 기술의 한계는 명확히 드러난 것이며 전문기술자는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실질 기술적 차원에서 포괄적 기술의 차원으로 자기 향상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인간이 기술의 진보를 꾀하고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변화를 지속시키는 한, 기술 진보의 담당자인 전문기술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실한 추구자가 되어야만 기술에 의한 인간의 파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는 인간의 파괴를 막기 위하여 기술의 포기를 주장할 수 있다. 히피즘이 주장하는 물질 문명의 거부 운동이 문명의 사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의 포기나 물질 문명의 포기를 주장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상황은 아직도 미숙한 기술과 전근대적인 생산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전문기술자는 우리의 상황이 던지는 핵심문제와 불가피하게 결부되어 있다. 전문기술자는 인간의 파괴가 없는 기술의 진보와 기술의 후퇴가 없는 인간의 향상을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문기술자는 인간의 편에 서서, 인간을 위한 기술 진보를 통하여 인간의 발전을 구현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사이버네틱스의 이론을 세운 위너는 “진보와 제5의 자유(착취의 자유)에 대한 전통적 예찬이 계속 된다면, 인류는 10년도 못가서 파멸과 절망에 직면할 것”이라는 말로 기술적 발전이 인간에게 풍부한 삶을 누리게 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결국 전문기술자는 인간과 기술의 균형 있는 조화에 근거한 가치관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과 기술, 그것은 전문기술자가 영원히 지녀야 할 지표이며 과제인 것이다.
원자력의 가공할 힘은 그 쓰임새에 따라 인류에게 복을 줄 수도 있고 재앙을 줄 수도 있다. 이러한 상극적인 두 가능성이 공존하는 기술의 산물이 결국 전문기술자에게는 하나의 미궁이 된다. 인간과 기술의 조화로운 발전을 꾀하는 한 전문기술자는 미궁 앞에 서는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그리고 한 분야의 기술 재량, 한 과정의 작업 관리가 그때마다 전문기술자에게는 한 차례의 ‘미궁 탈출의 모험’이 된다. 빠져나갈 수도 있고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기술자는 막다른 골목에서 미궁의 괴물 미노타우르스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의 가치관은 결코 미궁의 지름길이 그려진 약도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그의 길을 비춰줄 뿐이다. 그러나 인간과 기술에의 성찰은 그가 품안에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나침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이다. 이것을 잃은 전문기술자는 영원히 미궁 속을 헤매지 않으면 안 된다.
5. 미래를 위한 제언
현대인의 불안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의 위구심(危懼心)과 급속한 변화의 속도에 의해 야기되고 가속된다. 불안의 상황을 초극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통찰하는 힘과 동시에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미래는 현재의 결과인 바, 미래적 상황의 예측과 변화하는 양상에 대한 대처는 현실의 예리한 분석과 정밀한 판단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전문기술자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술 국가의 가능성이 제시한 문제는 실질 기술의 개념을 넘어선다. 그러나 그것은 다가올 미래사회의 충격적 단면을 가장 적절히 표출한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국가의 차원에서 통용될 기술과 전문기술자의 의미와 개념에 대한 예비적 자세와 그 시대를 이끌어갈 철학이 무엇일까에 대해 통찰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 한편 우리의 관점을 실질 기술의 범위로 국한시킨다 하더라도 전문기술자의 사회적 역할이 지니는 의미는 기술 국가의 그것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술과 전문기술자의 개념을 협의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전문기술자가 지니는 ‘사회적 역할’의 문제는 계속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처음부터 불행한 시작이었던 통속적 명제에 대한 질정(叱正)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전문기술자가 스스로 ‘자기 파산’의 길을 택하지 않는 한 자신의 ‘성취 목표’ 달성이 유발하게 될지도 모르는 사회적 결과에 대해 책임 있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 새로운 기계주의는 전문기술자의 노력으로 예방되어야 한다. 새로운 기계 파괴주의는 전문기술자의 노력으로 예방되어야 한다. 이것을 위하여 그는 일반적으로 산업사회의 근본문제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우리가 지닌 산업구조의 특수한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이는 결코 자체의 특질을 토대로 한 우리 민족의 발전을 위한 기술의 공헌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 모든 노력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성실한 탐구의 자세가 공동사회 속에서의 공동정진을 통하여 수행될 때 비로소 완전히 책임 있는 사회 참여로 결과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안한 상황을 이기고 자기 파산의 위기를 극복하여 자기의 ‘성취 목표’와 ‘사회적 역할’간의 균형 있는 조화를 이룩하는 길은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 연관성 속에서 뚜렷하게 가치관을 정립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계층으로서 전문기술자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이 점에 있는데, 중간매체 집단이 절대적으로 약한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전문기술자 개체와 사회간 매체집단과의 가치 수용체계에 대한 정체 규명은 실로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전문기술자는 기술 만능의 미신을 타파하고 물질주의적 낙관적 사변의 미망에서 깨어나 인간과 기술의 조화를 바탕으로 한 인간과 기술의 발전을 꾀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전문기술자의 불안을 발전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이며 미궁 속의 전문기술자가 삶을 이겨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 미래를 향한 인간적 계획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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