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새말의 탄생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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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말의 탄생

 

남기심(南基心)

 

1

말은 끊임없이 변한다. 개별적인 말의 소리가 변하고 그 변화가 쌓여서 음운 체계가 변하며,문법적 요소와 문법 체계도 변한다. 특히, 낱말은 끊임없이 새로 생겨나고, 없어지고 한다. 음운 체계의 변화나 문법의 변화는 그 속도가 대단히 느리지만 어휘의 변화는 그 양도 많으며, 변화의 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특히 지식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문물 제도가 급격하게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현대와 같은 시대나, 짧은 기간 동안에 사회 구조의 변동이 전에 없이 심한 오늘의 우리 사회와 같은 곳에서는 어휘 변동의 폭이 엄청나게 크고,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새로운 생각, 세분화되는 지식, 새로 생겨나는 사물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표현해야 할 새말이 그만큼 많이 요구되는 한편, 사라져 가는 문물 제도와 함께 사라져 가야 할 운명에 놓이는 말들도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어휘가 급격하게 변동하게 되면 많은 문제들도 뒤따르게 된다. 새로운 개념, 제도, 사물이 외국에서 수입될 때에는 흔히 그와 함께 말까지도 수입되는데, 이렇게 수입된 외국어가 외래어로, 그리고 다시 우리말로 정착되는 과정에서는 혼란이 생기기도 하고 의사 소통에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며 때로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해치기도 한다. 그 수입의 대상이 되는 언어가 여러 갈래일 경우에는 외래어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그만큼 혼란이 커지고, 의사 소통의 장애도 따라서 커지게 된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서 새말을 만들어 내기도 해야 하는데, 이 때에도 그러한 혼란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전문 용어로 사용하기 위하여 새말을 만들어 내거나, 우리말을 순화하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새말을 만들어 내야 할 필요가 있을때, 새로 만들어진 말이 대중의 호응을 얻어 생명을 가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2

우선 새말이란 무엇인가, 새말은 어떤 것을 지칭하는 것인가 하는 것부터 생각해 보자. ‘새말이란 이미 있었거나, 새로 생겨난 개념 혹은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 지어낸 말, 그리고 이미 있던 말이라도 새뜻이 주어진 것을 통틀어 일컫는다. 다른 언어로부터 사물과 함께 차용되는 외래어도 여기에 포함된다. 새말이 생겨나는 원인은 전에 없던 개념이나 사물을 표현하기 위한 필요 때문인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미 있던 개념이나 사물일지라도 그것을 표현하던 말들의 표현력이 감소됐을 때, 그것을 보강하거나 신선한 새맛을 가진 말로 바꾸기 위한 대중적 욕구에 의해서도 새말이 생겨난다. 광복 후 우리 나라에서는 국어를 정화, 혹은 순화하기 위해 많은 새말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새말은 그 구성 재료에 따라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뿌리로 된 것과 이미 있던 말을 재료료 하여 만들어진 것이 있다. 또한 새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서 외국어로부터의 차용어가 있다. 완전히 새로운 뿌리가 창조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있다고 해도 의성어나 의태어 계통인 것이 많다. 625 때 처음으로 미군 제트전투기가 등장했다. 이 제트기는 당시에 어느 비행기보다도 빨랐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쌕쌕소리를 내며 사라져 갔다. 그때 사람들은 이 비행기를 쌕쌕이라고 했다. 예전에 노를 젓던 나룻배나 돛단배가 모터에 의해 추진되는 배로 바뀌고 규모도 커졌다. 이 배가 움직일 때 내는 소리를 본떠서 똑딱이’, ‘똑딱선혹은 통통배라는 말이 생겨났다. ‘깍두기도 무를 써는 소리를 따서 만들어진 말일 것이다. ‘쌕쌕이’, ‘똑딱이’, ‘깍두기‘-는 예전부터 있던 접미사지만 쌕색’, ‘똑딱’, ‘통통’, ‘깍둑은 의성어로서 새로 생긴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있던 말들을 가지고 합성하거나 파생시켜 만드는 것이 가장 생산적인 방법으로서 새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어느 언어에서나 공통된 현상이다. ‘불고기, 꼬치안주, 가락국수, 한글, 낱말, 홀소리, 닿소리‧‧‧‧‧등이 합성법에 의해 만들어진 새말들이다. 좀 복잡한 구조를 가진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통조림은 파생법에 의한 조림의 합성, ‘맞춤법은 파생법에 의한 맞춤의 합성. ‘손톱깎이는 합성법에 의한 손톱깎-’에 접사 ‘-가 붙어서 파생된 새말들이다. ‘아빠-’에서 파생된 것으로 생각된다.

 

국어에서 한자말로 된 새말은 사실상 모두 이 범주에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자말은 음절 하나하나가 각각 독립된 형태소이기 때문에 두 개 이상의 한자말을 모아서 만든 새말은 그것이 통사적 구성에 의한 것이든지, 비통사적 구성이든지 모두 합성법에 의한 것이다. ‘흑백(黑白), 남북(南北), 수지(收支)’ 같은 말들은 두 뜻이 대등하게 합성된 말이니 더 말할 것 없고, 우주선의 달 착륙 후에 생긴 월석(月石), 월인(月人), 월진(月塵)’ 같이 한 뜻이 다른 뜻에 종속적으로 결합된 말들은 물론, ‘선생(先生), 사건(事件), 동생(同生)’ 같이 이미 이 말들을 구성하고 있는 글자 하나 하나의 뜻을 가려낼 수 없을 만큼 단일한 뜻을 나타내는 말들도 그 형성 과정은 합성법에 의한 것이다.

외국어로부터 들어온 말도 새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 중에는 , , (), 보라매, 구두, 남포, 담배, 고추, 고무, 부처등과 같이 완전히 우리말처럼 되어 외래어라는 의식조차 없는 것이 있는가 하면, ‘구역질(區逆-), 비위(脾胃), 반찬(飯饌), 자반()’ 등과 같이 거의 그 어원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우리말이 된 것도 있다. ‘데모, 원피스, 아나운서, 렌즈, 페이지, , 넥타이, 우동, , , 귀신, , ()’ 등과 같이 서구어 계통, 일본어 계통, 한자어 등에서 왔다는 것이 의식은 되고 있으나 우리말 어휘 목록에 그 지위를 굳힌 말들, 그리고 바캉스, 트러블(말썽), 트릭(속임수), 넘버(번호), 뮤지컬 쇼(음악극), 리더(지도자), 테스트(시험), 아르바이트(, 일자리), 라이벌(적수, 맞수), 코스트(원가), 볼륨(부피), ()’ 등과 같이 외국어라는 의식이 분명하여 그 지위가 아직 확고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새말은 민중에 의해서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져 쓰이는 것과, 언어 정책상 계획적으로 만들어져 보급되는 것이 있다.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지는 새말들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새로운 사물을 표현하기 위한 실제적인 필요에 의해 생겨나는 것과, 언어 표현이 진부해졌을 때 그것을 신선한 맛을 가진 새 표현으로 바꾸기 위한 대중적 욕구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있다. 여기에는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등이 모두 재료로 쓰인다. 정책적인 계획 조어의 경우는 대개 국어 순화 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주로 고유어가 사용되며, 한자말일지라도 아주 익어서 고유어처럼 된 것들이 재료로 쓰인다.

 

한글, 단팥죽, 꼬치안주, 가락국수, 덮밥, 책꽂이, 건널목등은 계획 조어로서 생명을 얻은 것들이며, ‘덧셈, 뺄셈, 모눈종이, 반지름, 지름, 맞선꼴등의 용어들이 학교 교육에 도입되면서 자리를 굳혔다. ‘불고기, 구두닦이, 신문팔이, 끈끈이, 맞춤, 병따개, 비옷, 나사돌리개, 사자, 팔자, 코트깃, 싸인복, 오버센스등 누가 먼저 지어냈는지 모르지만 생명을 얻은 말들도 많다. 이렇게 해서 새로 나타난 말들은 민중들의 호응을 받아서 기성 어휘로서의 지휘를 굳히는 것과, 잠시 쓰이다가 버림을 받는 것, 처음부터 별로 호응을 받지 못하여 일반화되지 못하는 것 등이 있다. 잠시 쓰이다가 버림을 받게 되는 말들은 대개 어느 한 사회 계층이나 특정 지역에서만 호응을 받았을 뿐 널리 일반화될 기회를 얻지 못한 것들이다.

 

3

국어에 한자(漢字)가 도입된 이후, 한자말이 고유한 우리말을 밀어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였을 뿐 아니라, 새말을 만드는 데도 주로 한자가 사용되면서 고유어에 의한 조어법은 점점 쇠퇴하여 버렸다. 그러한 과정에서 -가옥(家屋), -도로(道路),‧‧‧‧‧와 같은 유의어(類義語)가 무수히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계집-여자(女子), 늙은이-노인(老人),‧‧‧‧‧등에서와 같이 고유어 쪽이 비하(卑下)의 의미가 담기는 사례도 생기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묏비탈, 뫼아리, 묏골, 묏곶, 묏기슭, 묏봉우리, 묏마루, 묏부리, 묏불, 묏언덕, 노문뫼,‧‧‧‧‧등과 같이 대단히 생산적이던 고유어의 조어법도 산정(山頂), 산록(山麓), 산간(山間), 산사(山寺), 산신(山神), 산화(山火), ()돼지, 고산(高山), 명산(名山),‧‧‧‧‧등에서 보듯이 한자에 밀려났다. 그 결과 사전에 올려진 어휘의 반 이상이 한자말이 되고 말았다.

 

일제 강점하에서는 일본말의 도입이 극심하였으며, 심지어는 서양말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조어된 에그 프라이, 오페라 밴드, 오픈 샤쓰, 위스키 티, 싸인북‧‧‧‧‧등과 같은 원래의 영어에도 없는 말들까지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그 중에서 일본말은 이제 많이 추방되었다. 해방 후부터 지속적으로 펼친 일본말 몰아내기와 우리말 되찾기 운동이 많은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일본말에 대신하기 위하여 이 때 만들어진 말들이 도시락, 가락국수, 덮밥, 꼬치안주‧‧‧‧‧등이다.

 

그 동안 정부와 국어 운동 단체들이 펼쳐 온 국어 순화 운동의 결과로 일본어나 한자말 대신에 만들어진 고유어가 새말로서 자리를 굳힌 것이 많다. 그 결과 순우리말을 가지고 새말을 만들자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서양 외래어에 대해서 아직 큰 반성이 일지 않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외래 문화의 유입과 더불어 외래어의 수입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일이나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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