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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자의 세계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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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자의 세계

 

 

정진수

 

물질의 기본 구조를 밝히기 위한 노력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커다란 발전을 하게된다. 또한 이러한 노력은 19세기에 원자론의 주된 기수였던 화확으로부터 물리학의 영역으로 옮아가게 된다. 물리학은 코페르니쿠스에서 시작되어 뉴턴에 의해 완성된 17세기의 과학 혁명 이후 안정된 발전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러한 고전 물리학의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실험 사실들이 나타나고 이러한 실험 결과들을 설명하기 위해 물리학은 여러 가지 개념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물리학은 20세기의 벽두 약 30, 40년간에 걸쳐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에 의한 또 하나의 혁명을 경험하고 현대 물리학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고전 물리학의 많은 개념을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수수께끼 같은 개념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

이 두가지 새로운 과학 중 상대론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거의 독자적으로 수립되었으며 기본적으로 두 편의 논문에 기초하고 있다. 상대론은 시간과 공간,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개념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이에 비해 양자론은 여러 천재적 과학자들의 독창적인 실험과 과감하고 혁명적인 해석에 의해 점차적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구성해 나갔다. 또한 상대론이 매우 빠른 운돌이나 거대한 공간, 질량 등에 의한 현상을 기술하는 반면 양자론은 매우 작은 세계에서 펼쳐지는 물질의 새로운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후에 그 당시를 돌이켜보며 "땅이 꺼져나가는 것 같았고 새로 세울 확고한 기반은 아무 데에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히 그 당시의 폭풍우와도 같은 변화를 짐작케 하는 말이다.

 

현대에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원자의 모양, 즉 양성자와 중성자로 아루어진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퍼져'있는 모양은 양자론의 설명을 바탕으로 한다. 데모크리토스가 이름 붙인 원자는 '더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이다. 그리스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유지되던 이 뜻은 20세기에 들어와서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원자는 더 작은 다른 입자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그 원자를 이루고 있는 입자들마저도 더 쪼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원자보다 작은 이원자의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론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모든 물리적 현상을 완전히 설명하는 것으로 믿어졌던 고전 물리학은 19세기 말에 들어오면서 몇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흑체 복사라 불리는 현상이 그 중의 하나였다. 이 현상은 나중에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진공도가 높은 방전관의 음극에서 방출되는 음극선이란 존재였다. 음극선은 직선으로 나아가므로 도중에 어떤 물체가 있으면 그 물체는 그림자가 생긴다. 1885년에 뻬랭은 이음극선이 음전하를 나르는 것을 보았고, 1897년 톰슨은 음극선의 속도를 측정했다. 이로부터 질량과 전하의 비를 추정하여 이 입자의 질량이 수소 원자 질얄의 1/1000보다 작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원자보다 작은 어떠한 것도 발견되지 않았던 터이라 이 새로운 입자는 처음에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이 음극선이 스토니가 1891년 명명한 전자의 흐름이라는 것을 발견한 공으로 톰슨은 노벨상을 타게 되고 후에 전자의 질량은 수소 원자 질량의 1/1836배로 측정됐다. 첫 번째 이원자 입자의 발견이며 고전물리학의 원자 개념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전자만이 아니었다. 1895년 11월 며칠 동안 전세계 신문의 머릿기사를 장식한 뢴트겐에 의한 X선 발견이 있은 지 몇 달 안되어 베크렐은 질산우라늄으로부터 방사선이 방출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또 하나의 고전적 개념, 즉 라부아지에의 원소 불변의 법칙의 붕괴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 방사선은 영구 불변인 것처럼 여겨지는 화학 물질로부터 저절로 생산됐기 때문이다.

물질의 기본 구조를 다루는 데에는 두 가지 개념, 즉 연속적 물질과 덩어리(더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이라는 개념이 항상 싸워 왔다. 19세기 초 돌턴에 의해 득세한 원자론은 이 당시에는 위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19세기 말 전자기학과 빛의 복사 이론에서 명성을 얻은 장 이론에서는 연속성이 요구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사건들 때문에 원자론이 다시 우세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원자론은 이제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불변의 원자가 아니고 좀더 작은 다른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원자를 상정했다.

톰슨 모형에서 리더퍼드 모형으로

전자를 발견한 톰슨은 1898년 새로운 원자의 모형을 제시했다. 그의 모형에 따르면 원자의 모습은 건포도를 넣은 빵처럼 질량이 없는 구형의 양전하(빵)에 질량을 가진 전자(건포도)들이 박혀 있는 모습이다. 예를 들면 수소 원자에는 1천 8백 36개의 전자가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형은 1911년 원자핵을 발견한 러더퍼드의 모형에게 곧 자리를 양보한다.

러더퍼트는 1902년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알파(ㄷ)선의 정체가 전자 두 개를 잃어버린 헬륨 이온임을 보이고, 1911년 이 알파 입자를 얇은 금박을 지나 통과하게 하였다. 그 결과 대부분의 알파 입자는 얇은 금박을 뚫고 지나가지만 가끔은 (2천 개에 하나 꼴로)큰 각도로 휘거나 심지어 반사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현상을 작은 질량이 고르게 퍼져 있는 톰슨의 모형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크기가 매우 작고 질량은 매우 크며 양의 전하를 띤 입자가 있으면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러더퍼드는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하였다. 즉 원자는 양전기를 띤 무거운 원자핵과 그 주위를 태양계의 행성처럼 도는 음전기를 띤 매우 가벼운 전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모형은 태양계를 닮은 원자의 모습을 상정한 고전 물리학에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형은 고전 물리학 때문에 다시 무너진다. 고전 물리학에 따르면 달이 에너지를 잃으면 지구로 떨어지듯이, 궤도를 도는 전자기 복사에 의해 점점 에네지를 일고 차차 핵에 접근하게 되므로 안정된 원자로 남아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플랑크의 양자론

해결되는 듯하다가 곧 문제가 다시 발생하는 원자의 모습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의 또 다른 분야에서 시작된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했는데, 이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 흑체 복사를 설명한 플랑크의 양자론이다. 파장이 짧아짐에 따라 라디오파, 초단파, 적외선, 빛(가시 광선), 자외선, X선, 감마(r)선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는 전자기파는 흑체(검은 물체)에서도 복사된다. 아무리 검은 물체도 온도가 올라가면(전구의 필라멘트가 가열되면 빛을 내듯이) 빛을 내게 되는데,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복사되는 빛은 빨간색에서 시작하여 노란색, 흰색, 파란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고전 물리학은 특정 파장에서 가장 세게 복사가 나오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다.

20세기 시작되는 1900년, 플랑크는 몇 가지를 가정했다. 즉 전자기 복사의 에네지가 연속적이 아니라 최소 단위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에너지의 정수배만 가진다면, 그리고 이 최소 단위의 에너지가 파장에 반비례한다면 흑체 복사의 현상을 정량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최소의 단위를 양자라 부른다. 이는 현대 물리학이 새 출발하는 데 아주 적당한 사건이었으나 고전 물리학에게는 기초마저 흔들리는 위기였다. 에너지가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니! 그렇다면 움직이는 자전거의 속도도 연속적으로 증가하지 않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km, 다음에는 시속 2km로 불연속적으로 증가한다는 말인가? 다행히 에너지 양자의 크기가 매우 작아(예를 들면 시속 10-30km와 같이) 자전거와 같은 거시적인 현상에 대한 고전 역학의 연속성은 유지되지만, 이원자의 세계에서 고전 물리학은 그야말로 땅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였다.

당연히 과학자들은 땅이 무너지는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플랑크의 가설을 무시하려 하였다. 그러나 1905년 아인슈타인은 빛의 에너지가 덩어리로 존재해야만 광전 효과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며 이를 지지하였고, 이 덩어리를 광자라 이름 붙였다. 빛의 파장이 변함에 따라 광자 하나의 에네지는 연속적으로 변할 수 있으나, 정해진 파장에서는 빛은 한 개, 두 개로 셀 수 있는 양자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로써 파동이라고 믿어져 왔던 빛은 입자의 지위를 확고히 차지하게 되고, 과학자들은 덩어리로 존재하는 양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어의 원자 모형

이러한 양자의 개념을 도입해 1913년 러더퍼드와 함께 일하던 보어는 새로운 원자모형을 만들었다. 원자 내에는 특별한 궤도가 존재하는데 전자는 이 궤도에서 에너지를 잃지 않고 운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사는 전자가 높은 에너지의 궤도로부터 낮은 에너지의 궤도로 옮길 때에 그 에너지 변화만큼의 양자로 방출된다는 것이다. 이 모형으로 보어는 복사의 에너지가 일정한 양자에서만 방출된다는 것을 포함해, 설명되지 않았던 많은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확실한 원자의 모형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의 가설은 어떤 궤도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또한 원자 내의 전자에 특별한 지의를 허용함으로써 뉴턴 이래 기계론적으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던 고전 물리학은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 왜 원자 내의 전자는 다른 운동 법칙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이 산 너머 산의 미궁에서 헤어나기 위해 물리학은 다른 도약을 준비해야 했다.

1924년 드 브로이는 아인슈타인의 광자 개념을 거꾸로 입자에 적용했다. 파동이라 믿었던 것이 입자라면, 입자라고 믿었던 것도 파동이 안 될 이유가 있는가? 당연한 것같으면서도 인정하기 힘든 이 사실은 실험으로 확인됐다. 입자라 믿었던 전자가 파동의 고유 현상인 회절을 일으킨다는 것이 1927년 실험에 의해 관측됐다. 이제 과학자들은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지닌 새로운 실체를 인정해야만 했다. 파동과 입자가 하나의 실체로 다가온 것이다.

불확정성의 원리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닌 새로운 실체는 또 다른 혁명적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다. 즉 새로운 실체는 그것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면 속도를 확실히 알 수없게 되고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면 위치를 확정지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날아가는 야구공과 같은 거시적 물체의 속도와 위치는 계기가 허용하는 한 정확히 (예를 들면 위치는 10-20m의 정확도, 속도는 초속 10-10m의 정확도까지) 측정할 수 있으며 고전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원자 수준 이하의 세계에서는 불확정이나 관찰도 더 이상 객관적이 아니고 실체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관찰을 하기 전에는 "전자가 어디에 있다"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진 것이다.

원자의 구조에 관한 문제는 많은 철학적·신학적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고전 역학에게는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결정론마저도 파괴당하는 쓰라림은 안겨 주었다. 특별한 전자의 지위, 파동도 입자도 아닌 새로운 실체, 불확정성. 이로 인해 이제 아원자의 세계에서 고전 물리학은 사라지는 노병의 역할밖에는 할 수 없었고, 그뒤에는 수수께끼 같은 새로운 개념들만 남았다. 수수께끼만을 만들어 오던 원자의 모양은 1926~1927년에 걸친 양자 역학의 탄생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는 각각 다른 수학적 방법을 사용 하여 모든 실험적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모형을 내놓았다. 이 새로운 방법을 양자 역학이라 부른다. 이 이론에 따르면 핵의 전하량, 즉 양자수만 알면 보어의 모든 전자 궤도가 수학적으로 결정된다. 전자는 핵의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드 브로이가 주장한 파동의 형태로 '퍼져' 있게 된다. 전자의 위치를 관측하지 전에는 '돌고 있다라는 말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흔히 원자의 모양을 핵과 주위를 도는 전자로 그리는데 이러한 그림은 틀린 그림이다. 전자의 위치는 오직 확률적으로만 예측된다. 그런데 빛이 입자의 성질을 띠고 있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양자 역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아인슈타인은 이 확률론적 해석에 대하여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말로 반박했다, 그러나 곧 많은 과학자들이 이 이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20세기 초반의 이러환 사건들을 거쳐 현대 물리학이 자라나게 되었다. 때로는 기존 이론에 정면으로 거역하는, 따라서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설명들이었지만, 이 '반역'에 의해 물질의 기본 입자인 원자의 모양이 밝혀졌다. 이제까지 언급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벨상을 수상할 만큼 이러한 사건들은 아주 새롭고 혁신적인 개념들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실제의 자연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19세기의 세상이나 20세기의 세상이나 같은 물리적 실체인 것이다. 다만 자연을 쳐다보는 우리의 생각만 새롭게 변화한 것이다.

계속 쪼개지는 입자들

그러나 물질의 기본 구조를 밝히는 일은 아직도 끝아지 않았다. 1932년 채드윅에 의해 중성자가 발견됐다. 또한 1928년 양자 역확에 상대론을 포함시킨 디랙에 의해 예견된 양성자, 즉 모든 성질이 전자와 같으나 양의 전하를 띤 입자가 1933년 실험적으로 관측됐다. 새로운 입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쪼개진 원자의 구성 성분인 전자와 핵 중에서 핵이 또 쪼개지기 시작했다. 1938년 한과 스트라스만에 의해 우라늄이 분열되면서 절반 정도의 원자량을 가진 물질이 생성되는 것이 발견됐다. 어디까지 쪼개지고 어떤 새로운 입자가 또 나타날 것인가? 원자의 구조를 이해하자마자 물질의 기본 구조를 밝히는 일은 또다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해야 했다.


정진수/ 충북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며, 물리학 관련 논문이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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