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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더미에서 발견한 과학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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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더미에서 발견한 과학

 

 

정재승

공사 현장에 가면 모래에서 자갈을 골라내는 기구가 있다. 가는 철망이 드리워진 네모난 도구에 모래를 올려놓고 약간씩 위로 쳐주면서 옆으로 흔들면, 자갈들은 위로 올라오고 고운 모래는 아래로 내려가 철망 사이로 빠져나간다. 물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브라질 땅콩 효과’라고 부른다. 여러 종류의 땅콩들을 한데 섞어놓은 땅콩 믹스 캔을 사서 뚜껑을 열어보면, 가장 큰 브라질 땅콩이 항상 맨 위에 올라와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기만 한 이 ‘브라질 땅콩 효과’가 제약 회사들에는 오래 전부터 골칫거리 중의 하나였다. 잘 섞어놓은 가루약을 차로 장시간 운반하면 가루약이 크기별로 층이 생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은 장거리 운반 후에 다시 골고루 섞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이 작은 현상 하나로 막대한 추가 비용이 지출되고 있는 것이다. - 브라질 땅콩 효과의 의미와 파장

고체나 액체, 기체에 관한 연구는 물리학 분야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알갱이에 관한 연구는 물리학자의 관심을 그다지 끌진 못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알갱이가 고체와 액체에서는 볼 수 없는 풍부한 특성을 가진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알갱이 역학’이 물리학 분야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산사태나 지진을 연구하는 지질학자들도 이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으며, 땅콩 회사와 제약 회사를 비롯해 가루 분말을 다루는 기업들의 연구비 지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물리학자들은 모래 알갱이와 땅콩들 속에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 최근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알갱이 역학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의 퍼 박(Per Bak) 박사는 한 줌의 모래가 만들어 내는 패턴 속에서 ‘스스로 짜여진 임계성[어떤 물리 현상이 나뉘어 다르게 나타나는 경계]’이라는 현상을 발견했다. 깨끗한 바닥에 모래를 일정한 속도로 조금씩 쏟아 부으면 모래는 처음 떨어진 곳에 그대로 멈춰 조금씩 쌓이면서 산 모양의 작은 모래더미를 만든다. 시간이 흘러 모래더미가 어느 정도의 경사를 이루게 되면 모래 알갱이들은 경사면을 타고 조금씩 흘러내리게 된다. 일정한 속도로 모래를 계속 부어 주면 쏟아지는 모래와 떨어지는 모래의 양이 평균적으로 균형을 이루면서 모래더미가 일정한 각도의 더미를 이루게 된다. 이때 만들어진 각도를 멈춤각(angle of repose)이라 부른다. 흥미로운 것은 멈춤각이 모래더미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일정한 값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모래더미의 각도가 멈춤각보다 작으면 모래가 계속 쌓이고 멈춤각보다 크면 옆으로 계속 흘러내려서 모래더미는 일정한 각도의 형태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상태를 임계 상태(critical state)라고 부른다. 시카고 대학의 재거 교수와 동료들은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모래더미의 경사면을 촬영한 결과, 위층은 마치 액체처럼 흘러내리고 안쪽은 고체처럼 고정된 상태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것은 알갱이들이 쌓여 있는 경우 ‘정적인 마찰력’에 의해 고체처럼 형태를 유지하려는 특성 때문이다. - 일정한 멈춤각을 유지하는 모래더미

이러한 모래들이 만들어내는 패턴이 복잡성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에게 주목을 받는 첫 번째 이유는, 모래더미 스스로가 일정한 각도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자기 조직화’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복잡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창발 현상(emergent phenomenon)’[구성요소(모래 알갱이)의 특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특성을 전체 시스템이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함]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스스로 자기 조직화하려는 성질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가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모래 알갱이들을 모래더미에 떨어뜨리면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려 모래더미는 자연스럽게 제 형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한 알의 모래 알갱이가 큰 산사태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연쇄 반응’ 때문이다. 한 알의 모래 알갱이는 경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다른 알갱이들을 건드리게 된다. 이 알갱이도 따라 흘러내리면서 주위의 알갱이를 건드리게 되고 이런 연쇄 반응은 큰 산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만약 모래더미가 멈춤각보다 큰 각도로 쌓여 있을 경우 한 알의 모래 알갱이가 큰 산사태를 만들 수 있다. - 모래들이 만들어 내는 패턴의 복잡성

그렇다면 만약 모래에 ‘물’이 첨가되는 경우, 모래의 성질은 어떻게 바뀔까? 노트르담 대학의 혼베이커(Ron Hornbaker) 교수와 동료들은 수분을 조금씩 첨가할 경우 모래더미의 멈춤각이 어떻게 바뀌는지 측정해 보았다. 그들의 실험에 따르면, 아주 적은 양의 수분이 첨가되기만 해도 모래더미의 멈춤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알갱이들은 서로 엉겨서 뭉치게 된다. 미세한 수분이 모래 알갱이들을 서로 고정시켜 주는 본드 역할을 해서 모래더미가 뾰족하게 쌓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 모래에 물이 첨가되면 멈춤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

모래 알갱이들의 운동은 모래더미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알갱이 역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모래나 곡물에 관한 연구뿐 아니라, 지진이 발생하는 원인, 흙더미의 붕괴, 크기가 다른 입자들의 혼합 과정, 우주 성운[엷은 구름같이 보이는 천체. 기체와 작은 고체의 입자로 구성되어 있음]의 형성 과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알갱이들이 만들어내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는 알갱이 역학

이 글은 최근 물리학 분야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알갱이 역학의 풍부한 특성을 설명한 글이다. 알갱이는 고체와 액체에서 볼 수 없는 많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브라질 땅콩 효과'이다. 크기가 다른 알갱이를 병에 넣고 흔들면 고운 모래는 아래로 내려가고 굵은 모래는 위로 올라오는 현상이 브라질 땅콩 효과이다. 또한 모래를 일정한 속도로 조금씩 쏟아 부어 보면 모래들은 자신이 처음 떨어진 곳에 그대로 멈춰 조금씩 쌓이면서 산 모양의 작은 모래더미를 만드는데, 시간이 흐르면 쏟아지는 모래와 흘러내리는 모래의 양이 평균적으로 균형을 이루면서 모래더미가 일정한 각도의 더미를 이루게 된다. 그런데 모래더미는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려는 '자기 조직화'의 특성을 보이는 반면, 상당히 불안한 상태를 보이기도 하며 매우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알갱이들의 운동은 모래더미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알갱이들의 운동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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