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싸울까
by 처사21사람은 왜 싸울까
박 덕 규
20세기의 심리학
생물학적 인간학에서는 인간은 다른 젖먹이 동물들보다 12개월이나 먼저 세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즉, 인간이 다른 동물들처럼 태어나면서 즉시 적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지 위하여 걸을 수 있고, 또한 생존에 필요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최소한 12개월은 더 모체 내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런 움직일 힘도, 먹이를 찾을 능력도 없이 벌거벗은 채 거의 핏덩이 상태로 태어나는 것은 두 가지 특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첫째는 인간은 나면서부터 부모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워야 하며, 둘째는 배움을 통하여 다른 동물의 능력보다 훨씬 월등한 생활 양식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자를 생물학적 인간학에서는 '배움의 필요성'이라 하며, 후자를 '배움의 가능성'이라 한다. 이같이 인간은 배움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타고나므로 다른 동물에 비하여 1년을 일찍 태어나며, 생후 1년간의 가정 생활은 모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의 연속으로 보아 사회학적 인간학에서는 가정을 '제 2의 모체'라고 한다. 이 기간 동안에 인간이 되는데 필요한 언어·사고력·사회성 등 인격체에 요구되는 모든 조건들이 일차적으로 생성되므로 모체 내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중요한 시기라는 의미이다.
인간이 이처럼 다른 동물에 비하여 아주 연약하게 태어나고 있음을 제일 먼저 발견한 이는 스위스의 소아과 의사 폰 랑게이며, 이를 생물학적 인간학에서 연구하여 '배움의 필요성'과 '가능성'때문이라고 정리한 이는 독일의 동물학자 아돌프 포트만이고, 이와 같은 이론을 교육학적 인간학에 도입하여 교육 원리로 정립한 이는 역시 독일의 하인리히 로트이다.
인간이 교육을 통하여 삶을 영위하게 되려면 필연적으로 그에 필요한 충분한 성장기간을 가져야 한다. 과연 인간은 긴 성장기간을 지니고 있다. 다른 젖먹이 동물들은 1~2년, 또는 길어야 3~4년의 성장기간을 거치면 곧 생식 능력을 갖게 되지만 인간은 육체적으로는 최소한 10여 년, 정신적으로는 최소한 15년 이상의 긴 성장기간을 거쳐야 한다. 이와 같은 긴 성장기간이야말로 인간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하여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는 중요한 교육 기간인 것이다.
니콜라이 하르트만이 쓴 『존재론』에서는 인간은 육신·정신·영혼으로 혼합된 생명체라고 한다. 하르트만은 자신도 유신론자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영혼이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곳이 인간의 육신이며, 육신의 생명체적인 기능을 수행하도록 작용하는 중산 매체가 정신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신력은 뇌의 작용력을 말하는 것이다. 정신이 나갔다는 의미는 뇌의 작용의 일부가 정지되었음을 뜻하며 분리되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생겨나서 죽기까지 전체 과정에서 정신력은 계속 발달한다고 한다. 육신의 성장이 정신력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인지 또는 정신력이 육신의 성장을 이끄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심신 상관설(心身相關說)이라 하여 두 개체가 서로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한다. 존재론에서 말하는 '정신'을 '심리'라고 규정하는 심리학은 우리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정신의 상태, 즉 심리적 상태를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여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행동을 보고 심리를 분석하는 연구를 심리 분석이라 하며, 정신력과 같은 구체적이고 원천적인 면에까지 연장하여 분석하는 연구를 심층 심리학이라 한다. 인간 심리학에서 심리 분석학과 심층 심리학은 인간의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학문이며, 심리 치료 학자뿐만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필요한 과목들이다.
심리학은 또한 인간의 기 성장 과정에서 정신의 변화하는 측면에 대한 연구도 한다. 즉, 인간의 육신이 무방비 상태로 태어나지만 정신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교육이 가능하며, 이러한 교육에 따라 정신력이 더욱 발달한다고 본다. 이러한 발달이 육신의 성장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에는 발달 심리학이 있다. 발달 심리학은 육신의 성장에 따라 정신도 동시에 변화하며, 이 같은 성장 과정에서 정신적인 변화의 상태는 성인이 된 후의 심성, 즉 성격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일생동안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정신력의 특성인 이러한 개성 또는 성격은 일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성격 형성 과정인 성장기간에 발달 심리학이 연구하는 성장과정의 심리적인 특성을 교육에 반영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심리학이 교육을 위하여 인간 심리의 특성을 연구하는 분야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교육 심리학이다. 교육 심리학의 중요한 연구 대상 가운데에는 학습, 즉 배우는 데 관계되는 심리적 상태·변화 등에 관한 분야를 다루는 학습 심리학이라는 것이 있다.
이와 같이 20세기의 심리학은 인간의 정신력을 연구하는 심층 심리학, 정신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공헌하고 있는 심리 분석학, 성장 과정의 심리적 특성을 연구하는 발달 심리학, 인간이 성장과정에서 어떻게 사회화·문화화·인격화되어 가며 어떻게 성숙되느냐 하는 것을 다루는 학습 심리학 등이 있다. 이처럼 심리학은 많은 영역에서 인간의 육신의 변화와 정신력의 특징을 규명하여, 교육학이 인간의 인격적인 완성을 성취하려는 행위에 확신을 갖게 해주고 있다.
사람의 공격성
그러나 교육학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의 하나인 교육학적인 낙관론의 실현은 아직도 묘연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경우에 따라서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목숨도 끊어 버리도록 만들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종교를 통한 구원의 손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으며,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되었다는 핵무기가 이제는 인간 세계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만큼 많아지고 있다. 또 세상의 곳곳에서는 온통 전쟁과 살인·내란·음모·비행기 납치·교통 사고·자살·자녀와의 동반 자살·공기와 물 및 자연 환경의 파괴와 오염 등 인간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요소들이 산적해 있고, 증가와 일로에 있으며,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만약에 인간의 마음(정신)을 현미경과 같은 어떤 특수 기구로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러나 하르트만이 『존재론』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언제든지 분리될 수 있는 전혀 다른 세 가지 요소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들이 개별적인 조절은 불가능하며 정신적·육체적인 욕구나 갈등에 대하여도 통제가 어렵다.
따라서 인간에게서 공격성을 제거하려면 성장기간에 아직은 덜 성숙된 정신력을 바르게 교정하는 일이 최선일 것 같다. 다행히 인간에게는 긴 성장기간이 있기 때문에 희로애락을 충분히 맛보게 해줄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에 자아의 가치·인격·욕망·소망·애정뿐만 아니라 우주관·종교 등 포괄적인 문제들을 넓고 깊게 체험하고, 생각하고 토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거절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분별 의식을 기름으로써 잘못된 판단·가치관·충동에 쉽게 반감 작용하는 '인격 결핍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의학·심리학 등에서는 출산의 고통은 모체만이 아니라 새 생명에게도 충격적이라는 점을 연구해 냈다. 아이가 출생과 동시에 우는 것은 호흡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는 주장이 압도적이기는 하지만 심리학과 의학에서는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라도 추측하고 있다. 어쨌든 아픔을 경험함으로써 출생의 기쁨을 부여받는다고 가정한다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갓 출생한 아기에게서는 인간의 비정한 면을 생각하는 것조차도 죄악으로 느껴질 만큼 아이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순진한 그 자체이다. 이와 같은 정결한 육신과 정신과 영혼을 지니고 태어나는 새 생명들이 자라면서 울기도 하며, 웃기도 하고, 심술을 부리기도 하며, 욕심도 내고, 싸우고, 때리고 깨물며 반항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유를 배불리 먹고도 잠을 잘 자지 않으며 보채고, 부모의 정성도 아랑곳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밝고 건강하게 자라서 성인이 되어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달으며 재미있게 살아가도 죽을 때는 아쉬워지는 게 사람의 일생인데 어째서 파괴하고 훔치고, 싸우고, 자살하고, 전쟁을 일으키며, 살인을 하는 것일까?
태어날 때는 모두 한결같이 깨끗하고 섬세하며 순수하게 모두 제각기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건만 어찌하여 누구는 사회를 어둡게 하는 '가정 파괴의 정신적인 살인자'가 되어 꽃다운 청소년 시절에 사형 선고를 받아 부모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것일까?
인간은 과연 이토록 약한 존재인가? 인간은 과연 카인의 후예인가? 인간에게 있어서 욕망·충동·파괴의 정체는 무엇이며 이것들의 제거는 불가능한 것인가?
인간에게는 원천적인 공격성이란 게 있다고 한다. 공격성이라는 정신적인 특성이 어떻게 생겨나는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으나 어떤 경우에도 제거하거나 순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며 이 같은 조처는 성장기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간 사회의 모든 악의 근원이 인간의 공격성 때문이라고 '평화 교육학'에서는 믿고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긴 성장기간에는 충동에 의한 공격 행위가 거의 본능적으로 빈번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형성된 인격은 평생 동안을 지니게 되는 것이며, 이 같은 인격 형성 과정에서 공격성을 순화시켜 주지 않으면 성인이 된 후에도 습관화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성장기간의 인격 형성을 부정으로 이끄는 독버섯과 같은 공격성은 당연히 교육적으로 치료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배우면 고칠 수 있다
인간은 본래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 능력 사이에서 누구나 문제를 지니고 있다. 어린이들의 세계에서는 이 문제가 성격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조건들이다. 끝없는 욕망, 절제를 모르는 낭비. 물불을 가리지 않는 미성숙성, 애정에 반발하는 미움과 보호에서 해방되려는 무례함과 무지 등 어린이·청소년들은 성장이라는 과정에 놓여 있는 '변화 무쌍한 작은 도전자'인 것인가.
성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 행위는 어린 시절에 그들이 행동 선택을 능력을 지니도록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성장하여 성인이 되나, 성장 과정에서 모든 것을 배워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배움의 과정에서 공격성에 대한 자신의 지배 능력이 길러져야 한다. 인간이 기나긴 성장기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환경과 자신이다. 그러나 자신은 환경을 지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곧 자기의 능력이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마친 연극 배우가 어떤 역에서 훌륭하게 연기를 수행해야 하는 것처럼 인간은 삶 속에서 자기의 본분을 알고 역할에 충실하며, 알맞은 환경에 적합하도록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 아무리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라 하더라도 인지 능력을 계발함으로써 얼마든지 지배할 수 있다. 따라서 공격성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교육적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1) 일찍부터 고운 마음씨를 배우게 한다.
2) 원천적이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성장 발달 보호를 우선하고 그 다음에 성장 촉진을 돕 는다.
3) 어려서부터, 할 수 없는 일이나 성취될 수 없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며, 욕망 을 성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4) 무엇인가를 파괴함으로써 얻는 쾌감을 건설적인 기회로 전환시켜 잘못에 대해 반성할 줄 알게 한다.
5) 어린이의 특성인 기본적인 욕구는 가능한 채워 주도록 하되 채워 주지 못할 때는 좌절감이 생기지 않도록 이해시킨다.
6) 어린이들의 충동을 선별적으로 만족시켜 줌으로써 발달을 촉진시킨다.
7)부모와 자녀간의 동일성과 동질성을 깨닫게 한다.
8) 자기 자신과 타인의 자극 상태를 의식 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한다.
9) 양심을 잣대로 삼아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도록 한다.
10) 자신도 타인들과 같은 어린이·청소년임을 인식하도록 한다.
11) 교사나 부모의 교육적인 행위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도록 이야기한다.
12) 충동적인 욕망과 감정을 순환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13) 충동의 복종에서 배움의 복종으로, 다시 양심의 복종을 거쳐 자신의 복종, 즉 자신을 자기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니도록 한다.
14) 교육을 통하여 호기심을 지니는 태도를 유지하게 한다.
15)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굴복을 강요하는 힘을 뿌리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한다.
16) 정당한 경쟁의 긍정적 의미, 예술성 등을 아는 교육을 해야 한다.
여기에서 한마디 더 해 두어야 할 점을 '개구쟁이'는 공격성과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성격이 거친 아이들은 일단 공격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어린이들은 성격 교정을 위하여 억압적인 방법으로 제지하려 하면 점점 더 거친 성격으로 성장하게 된다. 공격적인 행동을 수정하려다가 정작 아이를 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으므로, 자녀들의 성품을 잘 관찰하여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학교의 교사나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
인간에게 주어진 긴 성장기간 동안 '사람은 누구나 배우면 고칠 수 있다'는 낙관적인 믿음 아래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인간의 공격성은 순화될 수 있으며 사회를 어둡게 하는 사건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박덕규/ 한국교육개발원 기획처장이며, 저서로는 '서독의 직업 학교 역사와 생산 인력 구조', '교직과 사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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