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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하느님처럼 순수하게 되면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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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하느님처럼 순수하게 되면

 

 

문 익 환

신학은 예술의 아들

기독교신학은 모든 다른 신학처럼 예술의 아들이다. 보고 듣고 만지는 세계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휘휘 두른 남갑사 치마 속에서 율동하는 생명을 보듯, 보이는 현실의 휘장 배후에서 들려 오는 숨소리를 피부로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휘장 이쪽에서 경험하는 저쪽의 신비한 경험은 처음부터 예술적인 감흥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신비한 경험은 예술적인 옷을 입고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람은 동굴에 살면서 이미 그림을 그렸다. 벌거벗은 몸으로 뛰어다니면서도 해가 뜰 때마다 태양의 찬가'를 부르며 예배할 줄 알았다. 이렇게 종교와 예술은 본래 쌍둥이이었다. 아니 예술은 그대로 종교적인 신비한 경험의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

겉에 보이는 현실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깊은 데 있는 더 진실한 현실에 부딪쳐 몸을 부르르떨며 적어 놓은 종교적인 문헌 치고 문학 아닌 것이 없는 까닭이 이런 데 있다.

성서도 물로 예외가 아니다. 성서의 민족 이스라엘의 역사는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거듭되는 수난과 위기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모두 훌렁훌렁 벗겨 버리고 숨은 진실을 보는 눈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는 진실과 숨은 진실은 흔히 그 표준과 척도가 뒤바뀌는 것이어서 피카소는 '예술은 우리에세 진실을 깨우쳐 주는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겉으로 보이는 진실의 척도로 재 보면 예술이 보여 주는 진실은 거짓말로밖에 보이지 않은다는 것이겠다.

「욥기」를 들출 것도 없이 이스라엘 민족은 천여 년 동안 역사의 고빗길에 설 때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가상이 되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이던 밑바닥의 현실이 진실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이것은 무서운 충격을 주는 사건이다. 황홀한 떨림과 두려움 없이 우리는 이것을 경험할 수 없다. 이것을 신학의 영감이라고 부른다. 막혔던 시야가 탁 열리고 덮였던 진실이 불끈 솟아 오르는 것을 신학은 계시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민족이 천여 년 동안 거듭되는 충격을 받아 새로운 현실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두려워 떨기도 하고, 새로운 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떨기도 하고, 절망 속에 비쳐 들어오는 빛을 보고 희망으로 용솟음 치기도 하면서 격양된 상태에서 한숨 지우며 읊조리고 노래하고 울부짖은 것을 집대성한 것이 성서다.

 

사람들은 금방 돋아난 햇순을 아름답다고 느끼듯 금방 눈앞에 드러난 신선한 진실을 아름답게 느끼는 것일까? 그렇게 읊조리고 노래하고 울부짖는 것이 그대로 아름다운 감정과 정신의 발로로서 예술이 된다.

이스라엘 민족은 음악과 문학은 키웠지만 조형 미술은 파괴하였다. 하느님은 어떤 형상으로도 만들어 섬길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형 미술의 출로를 막아 버리고 마니까, 이스라엘의 예술적인 충동은 음악과 문학으로 출구를 찾아 터져 나왔다. 음악도 그속에는 시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예술적인 충동을 조형 미술로까지 골고루 발전시킨 다른 종교들에 비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예술적인 충동을 거의 문학 하나로 터뜨렸다. 그래서 예술적인 충동을 거의 문학 하나로 터뜨렸다. 그래서 성서는 문학 중의 문학이 되었다. 더군다나 성서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거대한 정신적인 자원과 페르샤와 헬라의 종교와 철학을 밑거름으로 삼고 자란 것이기 때문에 그 깊이와 넓이는 가위 범세계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학과 문학의 결별

기독교 신앙은 이렇게 문학의 옷을 입고 문학의 분위기를 마시면서 자랐다. 그런데 그 기독교 신앙이 논리의 일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헬라의 철학과 만나면서 신학이 탄생한다. 말하자면 신학은 철학과 대화할 목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문학에 평론이라는 비평적인 작업이 필요하듯 기독교 신앙에도 신학이 필요하다. 그런데 평론이 문학을 지배하게 되면 문학이 메마를 위험성이 있듯이 신학이 신앙을 지배하게 되면 신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신앙이 위축되고 생동하는 생명력과 감격을 잃고 논리만이 남을 때 신앙은 문학과 번지수가 달라진다. 이렇게 해서 신학과 문학은 거리가 멀어져 가게 되었다. 문학은 귀찮게만 구는 시어머니 같은 신학과는 아무 미련 없이 결별을 선언한다. 르네상스와 함께 일어나 휴머니즘은 중세기의 스콜라 신학의 사슬을 툭툭 끊어 버린다. 문학은 어떤 도그마건 도그마의 사슬에 매여 쭈그리고 앉아 있는 위축된 인간을 해방시키는 데서 시작되야 한다.

신교라고 해서 별로 나을 것이 없었다. 오직 '믿음으로만 (Sola Fidei)'이라는 신교신학의 기치는 신앙의 본질을 밝힌 공적은 컸지만 인간의 창조적인 활동을 뒤받침하고 장려하는 일은 하지 못했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이 바하의 음악을 탄생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인간의 창조적인 작업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해 주지는 못했다. 신교도 곧 스콜라 신학에 못지 않은 편협한 도그마에 사로잡히고 만다. 한국에 흘러들어 온 청교도적 신앙도 인간의 문학적인 활동에 대해서 극히 소극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신학과 문학은 거리가 점점 멀어져만 갔다. 이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학자들 편에서보다는 문학가를 포함한 예술가들 편에서 진지한 노력이 있어 왔지만, 이 점은 예술을 하는 분들에게 미루고 나는 신학자들의 노력에 대해서 언급해 보기로 한다.

예술과 신학을 접근시키려 한 틸리히와 헤젤톤

교회는 전반적으로 반문학적이 아니면 문학을 시녀로 부리려는 전통적인 고자세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문학을 기독교 신앙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교회의 자세는 문학을 모욕하는 일이다. 문학을 기독교의 진리라는 보화를 싸는 보자기라고 생각하다가는, 백 퍼센트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를 반신 반인 (半身伴人)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탈을 쓴 신이라고 보는 가현설 (假現設, Docetism)의 이단에 떨어진다. 이것은 헬라적인 이원론이다. 기독교인이 쓰는 문학은 신앙의 육화(肉化)이지,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벗어 버려도 좋은 헌옷과 같은 것은 아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그림이요, 예술은 그 그림을 넣는 액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에 대한 몰이해가 판을 치는 교회안에도 틸리히와 같은 문화 신학자가 났다는 것은 천만 다행한 일이다. 그는 소위 기독교적인 예술 말고 예술 일반도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예술을 포함하는 모든 문화 활동은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신학과 대화할 길이 열릴 것도 같다. 왜냐 하면, 신학은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신학과 대화할 길이 열릴 것도 같다. 왜냐하면 신학은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화 일반에 종교적인 의미를 주려고 한 그의 진지한 의도는 높이 평가해야 하겠지만, 그것으로 신학과 문학의 만남이 이루어지거나 대화의 길이 트였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 대화란 한편은 질문하고 한편은 대답하는 일방 통행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틸리히의 노력은 터널을 절반밖에 뚫지 못한 것이다.

예술을 포한한 문화 일반에서 그것 자체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 의도는 좋았지만, 그것을 신학적인 아프리오리(인식의 보질상 또는 논리상, 경험으로부터 발생하거나 의존하거나 하지 않는 것)로 이해하려고 한 것은 잘못이었다. 수학에서 궁극적인 관심을 찾는 것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예술에 가서 궁극적인 관심을 찾는 것도 당치 않는 일이다. 신학적인 가치 기준을 수학에 적용할 수 없듯이 그것을 예술에다 적용할 수 없다. 수학에는 과학의 객관적인 엄밀성만이 적용된다. 문학에는 아름다움의 창조라는 예술의 가치 기준만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학은 예술에 이렇게 접근해야 한다』라는 작지만 훌륭한 책을 쓴 해젤톤의 입장이다. 처음부터 신학과 예술을 명화하게 구별하지 않고 논리를 전개시킨 흠은 있지만 입장은 시종 일관하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을 문제 삼을 때 우리에게 문제되는 것 둘이 있다. 그 하나는 아름다움이요, 다른 하나는 인간의 창조력이다. 이 둘은 다 전통적인 신학에는 생소한 것이다. 신학은 참과 좋음 또는 착함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아름다움에 관심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참과 좋음도 아름다움으로 보면 얼마나 색깔이 다채로워질 것인가?

다음으로 문제되는 것은 인간의 창조력이다. 그것도 개성 있는 창조력이다, 지금까지 기독교 신학은 구원 신앙에 집중되어 있어서 창조론은 신학에서 구원 신앙이니 서론 정도의 위치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창조를 말할 때에도 사람은 피조물이라는 걸, 다시 말하면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라는 것, 따라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이 필요한 구원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기만 했다. 따라서 우주 만상을 지으시고는 '좋다' 하시고 사람을 지으시고는 '매우 좋다'고 하신「창세기」1장의 창조의 뜻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 상습이었다.

르네상스 이후로 문학을 포함하는 모든 창작 행위가 신학의 그늘에서 벗어남으로 해서 신학은 아름다움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새것을 창조하는 인간의 손길과 하느님의 손길은 실상 같은 손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신학과 문학의 유리는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선 우리는 인간의 창조적인 뜻과 힘과 재간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 보기로 하자. 인간이 창조한 예술품이 기독교적인 것이냐 아니냐는 문제를 논하기 전에 인간의 창조적인 작업 자체가 신학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헬라 조형 미술의 아름다움으로 시스틴 성당 천장에 <천지 창조>라는 장엄한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에다가 사람의 모습을 조각하면서 "나는 창조주의 완전성을 조각하고 있다." 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창세기」2장을 보아야 한다. 거기서 창조주는 조형 미술가가 되어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당신의 상상 속에만 있는 한 모습을 흙으로 빚어 간다.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정끝에서 솟아나는 아름다움을 보면서 사람을 처음 지으실 때의 창조주의 활홀한 경지에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미켈란젤로의 통찰을 주석학적인 근거에서 뒷받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창세기」2장 4절 하반절에서 5절까지는 이렇다.

야훼 하느님이 우주를 지으시던 날 들에는 아직 푸성귀가 없었다. 하늘에서는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았고 지상에는 땅을 갈 사람이 아직 없었다.

여기서는 창조의 상징은 풀에서 숨쉬는 생명이었다. 그 풀이 돋아나려면, 다시 말해 창조의 대업이 시작되려면, 하늘에서는 비가 내려야 했고 지상에서는 사람이 땅을 갈아야 했다는 말이 되겠다. 그래서 창조주는 우선 사람을 지우셔야 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창조적인 대업은 하느님과 사람의 협동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된 것은 예술이 아니지, 사람은 창조주와 함께 창조적인 대업에 동참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의 확대 해석은 정당한 것이 된다.

토스토예프스키에 괸한 좋은 연구를 남겨 준 베르자예프는「창세기」1장의 하느님의 형상을 창조주의 형상이라고 이해한다. 사람은 창조자로 창조되었다는 말이 되겠다. 창조주의 깊은 뜻을 자유롭게 흥겨워하면서 완성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재로 사람을 이해하려고 했다.「창세기」1장의 하느님의 형상을 창조주의 형상이라고 이해한다. 사람은 창조자로 창조되었다는 말이 되겠다. 창조주의 깊은 뜻을 자유롭게 흥겨워하면서 완성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재로 사람을 이해하려고 했다.「창세기」1장의 하느님의 형상(image Dei)을 창조주의 형상으로 이해하는 데 주석학적으로 적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 저자의 중심 의도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폰 라드가 말한 대로 저자의 중심 의도는 사람은 하느님 대신 우주 만물을 거느리는 '전권 대리자'라는 데 있었던 것 가타다. 그런데 베르자에프는 예술의 문제를 성서 본문에 던지고는 원주제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오는 여음에서 본 저자의 의도에는 없던 통찰을 얻은 것이다. 헬라적인 과학정신의 노예가 되어있는 주석가들의 견지에서 보면 이것은 완전히 외도지만, 예술 작품의 해석으로서는 이것은 충분히 용인되는 것이다. 성서 주석가들은 앞으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의 안목에서 해석학의 새로운 통찰력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성서는 우선 문학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실 성서 자체 안에도 이런 확대 해석은 거듭되어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르자에프가 인간이 받은 '이마고 데이'는 창조적인 뜻이요 능력이라고 해석한 것은 '이마고 데이'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던 중요한 것을 통찰한 것이라고 보아 마땅하다.

헤젤톤은 베르자데프의 해석에 동의하면서도 신학자들의 눈치를 살펴서 그런지는 몰라도 창조라는 말보다는 셰일스피어를 따라 형상화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시작(詩作)이란 '미지의 것의 모습을 돋쳐 내는 것이요, 공허한 것에게 앉을 자리를 마련 주고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라고 했다.이것은 실상 창조론보다는 성육신(成育身)의 신앙에 기초를 둔 주장인 아닐까? 그러나 헤젤톤은 성서의 창조 신앙인 무에서 창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더 성서의 창조 신앙에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는 미켈란젤로나 베르자에프에 못지 않게 '인간의 창조성과 하느님의 창조 사이에는 부정할 수 없는 공동 기반이 있다.'고 단언한다. 예술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상상은 없는 것을 머리 속에서 형상화하는 것이요, 예술이란 거기에 살을 입혀 존재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가는 창조주와 같은 일을 하는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작품이나 평가할 때 작가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 작품이 기독교적이냐 아니냐는 것을 따지기 전에 그 작품이 모방이 아니고 정말 창조적이냐 아니냐는 것부터 따져야 한다. 인간의 상상력을 질식시켜 창조성을 말살시켜 오던 신학은 전과를 뉘우치고 이제 자유로운 상상력을 질식시켜 창조성을 말살시켜 오던 신학은 전과를 뉘우치고 이제 자유로운 상상력에 살을 입히는 창조적인 예술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이제 순수 예술을 인정하고 그 앞에 머리를 숙이는 일에서부터 예술과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바하보다는 음악의 뮤즈라고 할 수 있는 모차르트를 바르트가 더 좋아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순수 예술의 높은 가치는 인간의 창조성에 대한 신학적인 인식에서 뿐만 아니라, 예술의 핵심이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도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이스라엘적 전통

앞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신학은 참과 좋음에만 관심하다가 아름다움에는 관심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사막적인 기질에서 기인한 것이다. 아름다움은 여유를 가진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다. 온갖 상상력을 촉발할 수 있는 돌맹이까지 빵으로 보이는 각박하고도 여유 없는 현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사막적인 풍토다. 그들 하나의 아름다움도 솔로몬의 온갖 영화보다 아름답다'고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시기까지 솔로몬이 누린 아름다움은 격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어 이스라엘은 끝내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지 않고말았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심미안이 없었느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들의 예술적인 창조력이 전적으로 문학이라는 예술의 한 장르로 출구를 찾았지만 그것은 조형 미술과는 달라서 그들은 거기서 아름다움 그것을 보지는 못하고 말았다. 그들은 조형 미술은 남기지 않았지만, 그들이 남긴 문헌을 펼치면 한쪽 한쪽에서 그야말로 생의 마당을 무대로 하고 멋지게 살아간 생의 예술가들이 뛰어나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 구약 성서를 통틀어 41회 사용되었을 뿐이다. 말씀만으로 우주 만물을 하나 하나 창조하신 다음 창조주의 입에서 퉁겨져 나온 말은 '아름답다' 는 말이 아니라 '좋다'는 말이었다. 밤하늘 우주의 장엄한 광경을 넋을 잃고 쳐다보는 「시편」8편의 시인은 창조주의 이름이 찬란하다고 노래할 뿐이었다. 우주 만상은 실용 가치로 평가되었다. 창조주를 찬양하는 우주 만상을 말하면서도 저희가 부른 노래의 아름다움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기독교 신앙이 미학을 어떻게 발전시켰겠는가? 그래서 기독교 신학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심정보다도 윤리를 표방하고 그 여인을 비난한 가롯 유다의 편에 서고 싶은 것이다. 예수는 그 여인에게서 풍겨 오는 그윽한 향기, 생의 예술의 예술에 도취할 수 있었지만,「요한 복음」저자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윤리적인 관심에 집착해 있는 가롯 유다에게 '도둑놈이기 때문에'라는 터무니없는 욕설을 퍼부은 것이다. 예수에게는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의 여유, 사랑의 멋, 생의 예술이 있었다. 예술가의 눈에 비친 예수의 생은 그대로 아름다움의 화신, 멋의 화신이 아닐까?

기독교는 많은 예술을 낳았다. 그것은 다 예수를 위시한 많은 인물들에서 나타난 생의 예술에 자극을 받아 생겨난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학은 아름다움에 신학적인 뒷받침을 제공하지 못했다. 끝내 아름다움은 신학의 화랑에 들어오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신학은 자연을 심미적으로 보는 동양적인 세계관과 만나면 새로운 눈을 뜰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된다. 자연을 심미적으로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동양은 근대화의 물결에서 낙후하고 말았다고 탄식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다. 이점은 앞으로 풀어야 할 연구 관제로 남기기로 하겠다.

예술은 생의 축제

헤젤톤은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어떤 효용이 있느냐는 점을 거론한다. 여전히 서구적인 실용론이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하자. 그는 예술은 인간을 더러움에서 건지는 효능이 있다고 말한다. 비참, 절망, 부도덕, 좌절, 부조리, 죽음에 뒤범벅이 되어 뒹구는 인간의 생에 기쁨, 희망, 생명의 환희, 사랑의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와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에서 솟아나는 힘이겠다. 사랑에는 구속 하는 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이건 아니건 세계와 인간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예술가는 창조주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다만 예술가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사랑은 순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사랑이 순화되어서 예술가가 하느님처럼 순수하게 세계와 인간을 사랑하면서 아름다움을 창조해낸다면, 그 작품은 십자가의 효용을 가지게 된다.

또 헤젤톤은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술은 생의 축제라고 한다. 시인 박재삼 씨도, 시란 읽고 즐거워야 하는데 읽고 즐거운 시가 별로 없다고 탄식했다. 유교의 틀 속에서 질식한 고대 조선의 발랄한 정신을 풀어 놓아 우리의 삶 속에서 즐거움을 되찾아야 한다면, 중세기 금욕주의와 신교의 청교도적인 신앙의 메마른 분위기 속에서 시든 성서의 발랄한 종교, 삶을 그대로 긍정하고 삶을 축제로 보는 성서의 종교를 다시 살려 내는 일은 오늘 신학자들의 임무인 동시에 기독교 예술인들의 책임일 것이다. 천당에 가서 칼빈을 찾기 전에 모짜르트를 먼저 찾겠다고 한 바르트가 '하늘의 천사들은 하느님의 보좌 앞에서 바하를 연주하지만 자기들끼리 음악을 즐기 때에는 모차르트를 연주하리라.'고 한 말은 깊이 음미할 말이다.

기독교 예술의 자세

마지막으로 우리는 기독교 신앙과 예술이 완전히 일체를 이루는 소위기독교 예술의 문제를 다루어 보기로 하자. 특히 이것은 문학에서 두드러지게 문제가 될 것 같다. 문학이란 사상을 표현하는 말로 형상화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은 내용과 형식을 분리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기 쉬운 장르의 예술이다. 서예는 글의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글씨만 잘 쓰면 된다. 음악은 소리의 아름다운 배합만으로, 조각은 형상의 아름다운 구성만으로 사람에게 인상을 남기고 기쁨을 줄 수가 있다. 그런데 문학은 그렇지 않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아름답게 말을 아름답게 나열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말은 하나 하나 개성이 있는 내용, 곧 생각을 생명처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어떤예술보다도 생각하게 하는 면이 두드러지게 강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시인 김현승 씨는 '노래하는 시에서 생각하는 시'를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시가 생각하게 하면서도 시가 되려면 역시 '아름다움의 감흥'을 일으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하게 하는 기능 때문에 문학은 다른 어느 예술보다도 예술 이전이 되거나 예술 아닌 것이 될 위험성을 더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면 어떻게 이 위험을 극복할 것인가? 너무나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모습은 숨기고 그의 향기만 풍긴'생의 예술가'예수에게서 우리는 그 위기를 극복한 참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작고한 시인들 중에서 한용운 스님이나 윤동주에게서 그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절간 냄새를 하나도 풍기지 않으면서 부처님에게서 번져 오는 사랑을 그렇게도 아름답게 부를 수 있었던 한용운의 시작 태도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어두운 절망의 밑바닥에서 아침처럼 밀려올 민족의 내일을 넘어 인류의 참 내일을 건너다본 윤동주의 열린 시야가 바로 우리 기독교 문인들이 배워야 할 문학하는 자세가 아닐까?


문익환/한신대와 미국 프리스턴 신학대를 졸업했다. 한빛 교회 목사 겸 한신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신구교 성서 공동 번역을 하기도 했다. 북한을 방문하는 등 조국 통일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저서로는『꿈이 오는 새벽녘』,『새삼스런 하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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