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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도 말을 한다?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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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도 말을 한다?

 

김진우

우리가 동물 세계의 통신 수단을 관찰해 보려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언어와 질적으로 다른가 아니면 양적으로 다를 뿐인가 하는 것을 규명하려는 데에도 그 목적이 있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과 의의는 인간의 언어의 기원을 동물 세계의 통신 수단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윈(Darwin)의 진화론에 입각하여 인류가 원류에서 진화되었다면 인간의 언어도 원숭이류의 통신 수단에서 진화된 것일까? 아니면, 계통의 진화와는 관계가 없는 다른 요소들이 언어 발생에 작용했는가? 이러한 물음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대답할수 있기 위해서는, 동물의 통신 수단을 관찰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학자들의 따르면, 어류는 약 10에서 15가지, 조류는 약 15에서 25가지, 그리고 포유동물은 약 20에서 40가지 신호를 쓰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언어에는 적어도 수만에서 수십만의 단어가 있음을 상기해 보면, 동물의 단어 수는 인간의 그것에 비해 비교가 안 될 만큼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인간과 동물의 언어 차이가 신호(단어)의 많고 적음뿐이라면 그 차이는 양적인 차이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 차이는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를 코넬 대학의 교수인 찰스 하게트(Charles Hockett)라는 언어학자가 지적한 언어의 구성 자질 몇 가지에 입각하여 관찰해 보자.

(1)이원성(二元性)

인간의 언어에는 소리의 체계와 의미의 체계가 분리·독립되어 있는 한편, 동물의 신호(예:위험하다,배고프다)는 소리와 의미가 한 덩어리로 되어 있어 둘을 구분할 수가 없다. 인간의 언어에는 소리와 의미가 독립·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비슷한 소리가 전혀 다른 의미를 나타낼 수도 있고 다른 소리가 같은 의미를 나타낼 수도 있다. 영어에서 rug는 '양탄자'를 뜻하고 drug는 '의약품'을 뜻한다. 그러나 drug의 rug는 '양탄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국어에서 '담배'라는 단어는 '울타리'라는 뜻의 '담'과 '선박이라는 '배'가 합쳐서 된 말이 아니다. 또 '머리뼈'와 '대갈통'은 소리는 전혀 다르지만 그 뜻은 같다. 이러한 현상은 소리와 뜻이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동물 세계에서 어떤 일련의 소리가 '위험하다'를 뜻한다고 한다면 이 일련의 소리는 다른 뜻을 가진 신호들과 혼동됨이 없도록 아주 다르게 되어 있어서, 이 소리에 다른 소리를 보태서 다른 뜻을 만드는 경우도 없고 또 그 소리가 같은 뜻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없다.

(2)창의성(創意性)

사람의 언어는 그 어휘 수에 제한이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단어를 언제나 만들어 낼수 있으며 또 어휘에 다른 배합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통신 사항에는 제한이 없어서, 새로운 문장을 언제나 창조해 낼 수 있다. 그러나 동물의 통신 내용의 목록은 선천적으로 규정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국어의 '그녀', '고팅', '옥떨메'등과 영어에서 'nylon', 'laser', 'video'등의 단어는 최근에야 생긴 새로운 말들이며 다음과 같은 문장은 지금까지 아무도 꺼내 본 사람도 들어 본 사람도 없겠지만, 선뜻 할 수도 있고 또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그 실현의 가능성이야 어떻든 간에).

나는 보라색 코끼리가 포니 택시를 타고 종로에서 광화문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것을 끝없는 생산성 창의성이라 하는데 동물의 언어에는 이러한 자질이 없다. 숲속에서 만 살다가 동물원에서 살게 된 짐승이 새로운 사물인 '쇠울타리', '구경꾼'등에 해당하는 단어를 추가한다거나, '낮잠을 자고 싶은데 저 애들이 너무 떠드는 군'하는 식의 말(물론 동물어로)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상상할 술 없다.

(3)임의성(任意性)

이는 말의 소리와 그 소리가 상징하는 개념 사이에의 관계가 필연적이 아님을 뜻하다. 예르 들면, '말[馬)'이라는 개념을 여러 나라 말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국어:말

영어:호오스(horse)

불어:슈발(cheval)

독일어:프훼르트(Pferd)

스페인어:까바요(caballo)

아랍어:싸바프(sabap)

라틴어:에쿠스(equus)

여기엔 표현 방식의 아무런 공통점이 없으며, '말'이라는 개념이 어떤 특정한 소리로 표현 되어야 함을 우리는 발견할 수 없다. 화가가 캔버스에 '말'을 그릴 때는, 아무리 추상화라 하더라도 '말'의 모습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어느 화가가 그린 말이든 거기에는 공통된 말의 모습이 있지만, '말'의 개념과 이 개념을 표현하는 음성 사이에는 완전히 임의적인 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필연적인 관계를 가정해서 든다면, '하나(一)'를 '하나'라고 할 때, '둘'은 '하나-하나', 셋은 '하나-하나-하나', 넷은 '하나-하나-하나-하나' 등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 한 예가 될 것이며 섭씨 영도의 기후를 '춥다'로 표현할 때 영하 5도를 '추웁다'로, 영하 10도를 '추우웁다', 영하 20도를 '추우우웁다'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또 한 예사 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언어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찾아볼 수가 없다(한자 숫자의 一, 二, 三이나 로마 숫자의 Ⅰ, Ⅱ, Ⅲ등의 예가 고작이다.).

개념과 말소리 사이의 임의적인 관계에 예외가 되는 것으로 의성어라는게 있다.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멍멍', '꼬끼오', '뻐꾹'등과 사물이나 자연의 소리를 흉내내는 '출렁출렁(물결)', '핑핑(팽이)', '땡땡(종)'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휘의 숫자는 극히 제한된 소수이며, 또 이러한 소리들조차 각 나라 말마다 그 상징 방법이 다름 걍우가 많다. 개[犬]들이 몇 나라 말로 어떻게 짖는가 다음 예를 들어보라.

국어:멍멍

영어:바우와우(bow-wow)

러시아어:가브가브(gav-gav)

이 예들에서 우리는 의성어도 소리의 상징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의 소리와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알 수 있다.

의성어와 비슷한 예로 음성 상징이라는 게 있다. 다음에 든 영어의 예를 보면 'gl'로 시작하는 많은 단어들이 '빛'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glare 섬광, 눈부시게 빛나다

gleam 미광, 반짝 빛나다

glitter 광채, 반짝이다

gloss 광택, 윤기

glisten 번쩍거리다

glimmer 깜빡이다

glint 번득이다

glow 백열, 빛나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gl'이라는 소리에 '빛'이라는 개념이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면, 영어 아닌 다른 나라 말들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으며 또 영어 자체 내에서도 'gl'로 시작하는 모든 단어가 '빛'과 관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glass'유리', glide'미끄러지다', glove'손장갑', glottis'성문(聲聞)', glutton'대식가(大食家)' 등의 단어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glacial'냉담한', gloomy'암흑의, 우울한', glum'음산한' 등처럼 빛과는 전혀 반대의 의미를 보여 주는 단어도 있다. 결국, 소리와 그 뜻의 관계는 전혀 임의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교환성(交換性)

이것은 화자가 수시로 청자도 되고 청자는 화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즉 동일한 통신자가 메시지(message)의 송신자도 될 수 있고 수신자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동물 세계에서는 송신자와 수신자의 기능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공작새는 수컷만이 꼬리를 부채처럼 펴서 암컷에게 교신할 수 있으며, 닭도 수탉만이 울 수 있듯이 많은 짐승이나 새의 경우, 수컷과 암컷의 통신이 구분되어 그 기능을 상호 교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5)전위(轉位)

인간의 언어는 '지금'과 '여기'를 떠나 과거와 미래, 또 가까운 곳과 먼 곳에서 일어났던 사항들을 서술할 수 있으며, 사실무근의 거짓말도 할 수 있으나, 동물 세계의 언어는 현재와 현장에 관한 것을 통신하는 데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비유로 잘 말해 주고 있다.

"개가 아무리 웅변술이 좋다 하더라도, 자기 부모는 가난했지만 정직했노라고 짖어서 말해 줄 수는 없다".

(6)문화적 전달(文化的 傳達)

이것은 언어 전승이 문화적이지 유전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한 어린애가 한국어를 하는 것은 그 부모가 한국인이거나 한국어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어 문화권 내에서 언어를 습득했기 때문인 것이다. 한국어를 하는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라 하더라고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 영어를 배우게 되기 마련이다. 즉, 어떤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냐 하는 것은 어떤 문화권 내에서 어를 습득하느냐에 달려 있지 무모에게서 어떤 혈통을 유전받았느냐 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는 그렇지가 않다. 새든 짐승이든 유전적으로 신호의 목록이 이미 결정되어, 아세아의 참새나 유럽의 참새나 미대륙의 참새나 그 지저귀는 소리가 같고, 참새가 까치들 틈에서 자랐다고 해서 까치 소리를 낼 구는 없는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언어의 구성 자질들을 몇 가지 보았는데, 어떤 통화 수단이 이러한 자질을 모두 구비하고 있지 않은 이상 그것을 인간의 언어답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인간만이 언어의 소유자라는 말은, 동물 세계의 통신 방법에서는 위와 같은 자질들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사실인가? 이 대답을 우리는, 동물 세계에서 신통하다 할 만큼 가장 발달된 꿀벌의 통신 방법과, 진화론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는 침팬지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쳐 주려던 노력의 결과가 어떠했나 하는 것을 살펴봄으로써 얻어 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에 앞서 우리는 '그럴 듯한' 경우들을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앵무새가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미나예요', '안녕히 가서요' 등등의 문장을 똑똑히 발음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앵무새가 국어를 말할 줄 안다고는 할 수 없다. 문장의 뜻을 전혀 모르고, 외운 문장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뜻도 모르는 헝가리에 문장을 두어 개 외워서 발음했다고 해서 헝가리어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음과 같다. 또 하나의 그럴 듯한 예는 이른바 영리한 한스 증상(Clever'Hans Syndrome)이라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독일 베를린에 폰 오스텐이라는 수학 교수가 있었는데, 한스라는 자기의 말이 아주 영리하여 셈본을 잘 한다고 하면서 그 묘기를 유럽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보여 주었다. 주인이 '셋 보테기 넷은?', '열 빼기 다섯은' 하고 물으면, 한스가 앞발굽으로 땅을 쳐서 정답을 주곤 하는 것이었다. 소문이 너무 자자해지자 과학자들이 이를 조사해 보았더니, 말이 보태기.빼기 등을 할 수 있을 만큼 영리했던 것이 아니라, 정답이 가까워지면 주위의 군중의 얼굴 표정이나 태도가 조금 바뀌는 것을 눈치 채고 그때 발굽으로 땅을 지던 동작을 멈추더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십중 팔구 정답을 맞추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단서는, 군중이나 실험자 자신이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눈치도 보이지 못했을 때,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말의 양쪽에 서서 저쪽 사람에겐 들리지 않도록 숫자를 하나씩 말의 귀에 속삭였을 때는, 한스가 정답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계속 땅을 치더라는 것이다. 한스가 영리하긴 영리한 말이었지만, 숫자를 세고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영리하진 않았던 것이다. 영리한 개가 '앉아', '이리와'. '악수'등등 주인의 말을 잘 알아듣고 복종하는 경우도 '영리한 한스 증상'에 불과하다. 개가 이러한 말의 뜻을 알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받은 대로 맹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앉아', '이리와', '악수'라는 어휘 대신 '하나', '둘', '셋'이나 '쿵', '딱', '띵'이라는 신호로 처음부터 훈련을 시켰더라면 '쿵'하면 앉고 '딱'하면 오곤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인이 "내가 앉아 해도 앉지 마." 하고 말해도, 그 문장 속에 든 '앉아'라는 말 때문에 개는 앉을 것이다. 음식이 안 보여도 종소리만 나면 침을 흘리던 파블로프의 개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는가?

꿀벌의 통신 방법은 1973년 노벨상 수상자인 칼 폰 프릿쉬 (Kanl von Frisch)가 관찰 한 것이다. 한 꿀벌이 어디서 꿀을 발견하면, 벌집에 돌아와서 다른 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데, 방향, 거리 및 꿀의 품질을 춤을 추어서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 준다는 것이다. 꿀벌 말에도 '방언'이 있어서 지역에 따라 변형은 있으나, 유럽 꿀벌의 경우 [도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8자형의 춤을 벌집의 벽을 향하고 춘다.

이때 꿀이 발견된 장소의 방향은 다음과 같이 전달된다 ([도표 2] 참조.) 꿀의 방향이 태양의 방향과 같으면 8자의 가운데 선이 수직으로 위를 향하도록 춤을 춘다.([도표 2]의 A).

반대로 꿀의 방향이 태양의 방향과 정반대쪽이면 8자의 가운데 선이 수직으로 아래를 향하도록 춤을 춘다. ([도표 2]의 C).

그 외의 경우 (예를 들면, [도표 2]의 B)는 벌집과 태양을 잇는 선과, 벌집과 꿀의 발견지를 잇는 선 사이의 각도(그림의 예에서 80°)를 중력을 나타내는 수직선과 8자 춤의 빈도로 나타낸다.

구체적으로 보면, 춤이 빠를수록 거리가 짧고 늦을수록 거리가 멀다. 약 15초안에 열 번돌면 100m가량, 여섯 번 돌면 500m가량, 네 번 돌면 1,500m 정도를 나타내며, 실험에 의하면 11km 거리까지 비교적 정확하게 교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세 번째로, 발견된 꿀의 품질은 춤이 얼마나 활기 있는가로 전달되는데, 춤이 활기를 띨수록 꿀의 품질이 더 높은 것임을 말해 준다고 한다.

폰 프릿쉬는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서 위와 같은 꿀벌의 통신 방법이 우연적인 것이 아니고 일관성 있는 것임을 알아냈다. 예를 들자면, 한 벌에게 벌집에서 2km 떨어진 지점에서 설탕물을 맛보게 하고 벌집으로 돌려보낸 뒤 설탕물을 원지점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옮겨도 원지점 근방에 벌들이 날아와 설탕을 찾는다든가, 같은 방향이지만 원지점보다 가까운 1.2km 거리에 설탕물을 놓아도 이곳을 지나쳐 버린다든가 한다. 한낱 곤충에 지나지 않는 벌이 이러한 통화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경탄할 만하다.

특히 빈 벌집에서는 춤을 추지 않으며, 꿀의 발견지와 벌집 사이를 직행하지 않고 우회해서 날아 와도 꿀 소재지의 방향과 거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신비스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어느 한도 내에서는 방향과 거리가 바뀌어도 이를 충실히 표현할 수 있으니, 벌의 통신에도 창의성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태양과 중력이 같은 기준선으로 동일시되어야 할 논리적 이유가 없고, 춤의 속도와 거리 사이에도 필연적인 비례관계가 없는 이상 벌의 '언어'에는 창의성도 임의성도 없음을 알게 된다. 우선 먼 거리일수록 가는 데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실험 결과는 벌의 '언어'에 전혀 창의성이 없음을 보여 준다. 벌을 날아가게 하지 않고 꿀 소재지까지 걷게 했더니, 돌아와서 춤을 추는데 거리를 스물다섯 배로 오산하더라는 것이며, 벌집 자리에서 수직으로 50cm 높이의 나뭇대를 세우고 그 위에 꿀을 얹어놓고 벌이 맛보게 한 뒤 벌집으로 돌아가게 했더니, 다른 벌들에게 그 위치를 가르켜 주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즉, 수평적인 거리는 10km 까지 정확하게 춤으로 전달할 수 있음에도, 50m의 수직적 거리는 교신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빈 벌집에서 키운 벌을 벌이 들끓는 벌집에 옮겨 놓았더니 바로 벌춤을 추더라는 사실과 연관시켜 볼 때, 벌의 '언어'도 유전적으로 받은 것이지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 아니며, 새로운 수직의 거리를 잴 수 없는 것처럼 환경에서 그 환경에 맞는 통신을 하는 창의성도 없음을 알 수가 있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인류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가 침팬지, 원숭이, 고릴라 등이기 때문에, 이들의 통화 방법이 인간의 언어와 비슷한 데가 없나, 또 인간의 언어의 기원을 이들의 통화 수단에서 엿볼 수 있지 않나 하는 기대 때문에 이들 영장류의 통신 모습이 많이 관찰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들의 자연 번식지에서 음성, 몸짓, 후각, 촉각 등으로 '위험', '분노', '순정' 등 여러 가지를 교신함이 관찰되었으나, 이러한 '어휘'의 수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으며, 대체적으로 그때그때의 감정의 노출에 지나지 않았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서 새로운 신호가 나타나지도 않았고, '지금⋅여기'를 떠나 어제나 내일 또는 산 너머의 일을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위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일부 동물 심리학자들은, 원숭이류가 인간되어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않는 ?) 것은 그들의 자연 환경이 인간의 생활 환경과 다르기 때문이며, 그들의 생활 조건에서는 더 이상 복잡한 통신이 필요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원숭이류가 인간과 똑같은 생활 환경에서라면 인간다운 언어를 습득할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아래, 침팬지나 고릴라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는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실험은 대체로 한 부부가 갓난 침팬지 (흔히 암컷)를 마치 자기의 어린아이를 기르듯 집안에서 데리고 기르면서 언어를 가르치는 형식을 취한다.

이러한 실험이 성공한다면, 즉 이러한 환경에서 침팬지가 언어 습득에 성공한다면 이는 동물에게도 인간의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고, 따라서 특유의 어떤 생리학적인 요인에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다음의 [도표 3]은 지금까지의 실험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구아 (Gua)에겐 말을 시키지는 않고 말을 알아듣도록만 가르쳤는데 16 개월 만에 약 백 개쯤 되는 어휘를 구별해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발성을 처음 배운 것은 비키 (Viki)였는데, 겨우 서너 단어를 한다면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케이쓰를 'papa', 캐씨를 'mama'라고 부르고,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면 'cup'이라고 했다.). 비키를 찍은 영화를 본 가드너 부부는, 비키의 손짓이 매우 활발한 것에 착안, 비키의 빈약한 어휘는 침팬지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두뇌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침팬지의 발성기관이 인간의 그것과 달라서 인간의 언어 같은 말소리를 발성할 수 없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침팬지의 두뇌력을 시험하기 위해, 귀머거리들이 쓰는 「미국 기호 언어」를 와쇼라는 침팬지에게 가르쳐 주기로 하였다. 한 살이 조금 넘어서 기호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와쇼는 22개월 후 34개의 기호를, 네 살 때에는 85개, 다섯 살 때에는 132개, 그리고 14살이 되던 1979년에는 약 250개의 기호를 습득하였다. 예를 들면 '먹다', '더', '듣다', '개', '열쇠', '너', '나' 등이었으며, '내 애기 (baby mine)', '네가 마셔 (you drink)', '빨리 안아 (hug hurry)', '꽃 줘 (give-me flower)' 처럼 두 개의 기호를 결합하기도 했다고 한다. 침팬지 님 침스키도 약 4년만에 125개의 기호를 배웠고, 두 기호를 연합한 '문장'이 무려 1,300개나 되었다 한다.

언어의 특징 중의 하나가 임의성임을 보았거니와 기호 언어의 기호 중에는 기호와 그 의미 사이에 자연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예를 들면, '먹다'의 기호는 먹는 시늉을 하고, '자다'의 기호는 자는 시늉을 하는 등), 침팬지가 완전히 임의적인 기호도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실험이 두어 번 있었다. 하나는 컴퓨터의 건반을 [도표 4]가 보여 주는 것처럼 무의미한 기하학적 도안으로 그리고 침팬지가 이 건반을 타자기처럼 쳐서 통신하게 한 시험이고 (래너의 경우), 또하나는 플라스틱으로 실물과 모양이 다른 기호를 만들어 이 기호를 가지고 통신하게 한 실험이었다 (쌔러의 경우).

[도표 5]를 보면, 쌔러가 습득한 플라스틱 기호들은 모양이나 색에 있어서 실물과 전혀 닮은 데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사과'의 기호는 보라색 삼각형이며, '바다나'의 기호는 붉은 색 정사각형이고, '적색'의 기호는 회색, '황색'의 기호는 흑색, '갈색'의 기호는 청색, '녹색'의 기호는 백색이다. 쌔러는 이러한 기호의 의미를 개별적으로 배웠을 뿐만 아니라, 몇 개의 기호들을 연결해서 '문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APPLE AND BANANA DIFFERENT

'사과와 바나나(는) 다르다'

CHOCOLATE BROWN COLOR

'초콜렛은 갈색 (이다)'

뿐만 아니라, 훈련사가,

IF SARAH PUT RED ON FREEN, MARY GIVE SARAH CHOCOLATE

'적색을 녹색 위에 엎으면, 매리가 쌔러에게 초콜렛을 주 (겠)다'

IF SARAH TAKE BANANA, MARY NOT GIVE SARAH CHOCOLATE

'쌔러가 바나나를 먹으면 매리가 쌔러에게 초콜렛을 안 주겠다'

와 같은 문장을 쓰면, 쌔러가 이해하고 올바르게 행동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주었을 때

SARAH INSERT APPLE DISH BANANA PAIL

'쌔러' '넣어라' '사과' '접시' '바나나' '물통'

사과와 접시와 바나나를 모두 다 물통에 집어 넣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고 사과는 접시에, 바나나는 물통에 넣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침팬지가 다음에 보이는 바와 같이 괄호 속의 단어가 생략된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프리맥은 주장한다.

SARAH INSERT APPLE DISH (AND INSERT) BANANA PAIL

'사과는 접시에 (넣고) 바나나는 물통에 넣어라'

침팬지가 이렇게 생략된 구절까지 염두에 두고 문장을 이해하고 구성할 수 있었다면 이는 실로 놀라운 업적이지만, 이러한 문장을 일관성 있게 처리할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도 없다. '일관성 있게'라는 말은, 어쩌다가 우발적으로가 아니며 또 실수도 거의 없이라는 말이다. 실상 침팬지 실험자들은 그들의 가정이나 주장을 뒷받침하는 현상만을 보고하는 경향이 있어서, 어떤 '놀라운 언행'을 침팬지가 보여 주었으면 거기에 얼마만한 일관성이 있었는지, 그리고 침팬지의 언행에 실수가 있었으면 실수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있으며 어떤 빈도로 실수를 했는지 등등은 자세히 보고가 되어 있지 않다. 쌔러가 생략문을 이해했다고 하는 것은 해석일 뿐, 우연적으로 들어맞는 행위였을 수도 있다는 배제하지 못하였다.

두 개의 기호를 연결하는 것도 터레이스의 관찰에 의하면 88%가 사람 (훈련사)을 흉내내어 되풀이 한 경우이고, 자발적인 경우는 12%에 불과했다고 하니, 침팬지의 '언어'에 인간의 언어에서와 같은 창의성이 있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 어린아이는 언어를 배울 때 어른의 말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경우가 아주 드물며, 곧 독창적으로 새로운 문장을 구성해 낸다.

인간 아닌 영장류가 인간다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냐 하는 질문에 아직 확답을 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서 배운 언어를 침팬지가 다른 침팬지들에게나, 자기의 새끼들에게도 가르쳐 주는가 실험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팬지나 고릴라가 언어를 배웠다면 그들도 인격으로 상승하였으니까, 이젠 이들을 동물원의 짐승으로 가두어 둘 수 없다는 주장은 조금 지나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진우 / 연세대학교 영어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언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일리노이 대학 교수이자 연세대학교 초빙 교수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언어-그 이론과 응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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