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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습사전 / 소설(ㅂ ~ ㅅ)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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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 마거릿 미첼(1900-1949) 소설

󰏐 [문학와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원작 마거릿 미첼/감독 빅터 플레밍]

 

가장 좋아하는 소설과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서슴없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꼽는다. 요즘의 시각과 감각으로 보면 다분히 구식인 이 소설과 영화가 아직도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 애틀랜타의 한 여기자가 쓴 이 소설을 불후의 명작으로 만들었을까.

 

그것에 대한 답은 곧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이 책의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폭풍처럼 몰아쳤던 남북전쟁의 패배로 미국 남부의 부와 영광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사라졌다. 노예가 없어진 지주들은 경작이 불가능해진 농장을 포기했고 북부의 뜨내기들은 남부로 몰려들어 헐값에 그 토지를 가로챘다. 불타버린 저택과 몰락한 가문과 갑자기 찾아든 빈곤 속에서 남부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명예와 자부심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무력감 속에서 목격해야만 했다.

마거릿 미첼(1900~1949)이 1926년부터 10년간에 걸쳐 집필해서 1936년에 퓰리처 상을 수상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바로 그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강인해지고 성숙해가는 한 여인의 삶을 서사시적으로 그린 대작소설이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마치 전통적인 남부처럼 오만하고 제멋대로이며 콧대높은 방년 16세의 아름다운 대지주의 딸이다. 그녀는 이웃남자 <애슐리>를 좋아하지만 애슐 리가 자기 사촌 <멜라니>와 결혼하려하자 복수심으로 애슐리 동생의 약혼자이자 멜라니의 오빠인 <찰스>와 결혼한다. 그러나 찰스가 전쟁에 나가 전사하고 북군들이 몰려오자 스칼렛은 극도의 가난과 고초를 겪게 된다. 온갖 궂은 일을 전전하던 그녀는 동생의 약혼자인 <프랭크>와 결혼해 애틀랜타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그 사업체 중 하나를 애슐리에게 맡긴다. 그러나 프랭크 역시 결투 중에 죽고 스칼렛은 다시 독신이 된다.

이제 27세가 된 스칼렛은 자신과 성격이 비슷한 <레트 버틀러>와 결혼한다. 그러나 애슐리를 잊지 못하는 그녀의 태도 때문에 레트는 결국 그녀를 버리고 떠난다. 사촌 멜라니가 죽은 후에도 애슐리가 자기를 거부하자 스칼렛은 비로소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레트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록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제 성숙해지고 강인해진 스칼렛은 자신의 땅 타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그곳으로 떠난다. 이 부분을 묘사하는 소설의 종반부는 보기 드물게 힘차고 아름다운 산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1939년에 데이비드 셀즈닉이 제작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빅터 플레밍 감독) 역시 할리우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대작명화로 평가된다. 스칼렛역을 위한 수많은 오디션, MGM사에서 빌려온 레트역의 클라크 게이블, 감독의 교체 등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이 영화는 오래 걸린 제작기간을 충분히 보상할 만큼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영국배우 비비언 리는 스칼렛 오하라의 이미지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서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상영시간 4시간의 이 방대한 대작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을 수상했으며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명되는 등 평단의 화려한 각광을받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상실감과 허무감을 그리고 있지만 궁극적인 주제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 불굴의 투혼」이라고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지금도 많이 팔리고 있고 영화 역시 부단히 재상영되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미국인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저자 사후에 속편인 「스칼렛」이 쓰여지고 영화화된 것도 바로 원작의 그러한 인기에 힘입은 것이다. 제목과는 달리,「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소설도 영화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도 오래 살아 남는 불멸의 작품이 될 것이다.


●바비도 : 김성한(金聲翰) 단편 소설 - [사상계](1956)발표

 

바비도는 1410년, 이단으로 지목되어 분형(焚刑)을 받은 재봉(裁縫) 직공이다.당시의 왕은 헤리 4세, 태자는 헨리, 후일(後日)의 헨리 5세다.

일찍이 위대하던 것들은 이제 부패하였다.

사제(司祭)는 토끼 사냥에 바쁘고, 사교(司敎)는 회개와 순례를 팔아 별장을 샀다.

살찐 수도사에게 외면하고 위클리프의 영역(英譯) 복음서를 몰래 읽는 백성들은 성서의 진리를 성직자의 독점에서 뺏고 독단과 위선의 껍데기를 벗기니, 교회의 종 소리는 헛되이 울리고, 김빠진 찬송가는 먼지 낀 공기의 진동에 불과하였다. 불신(不信)과 냉소(冷笑)의 집중 공격으로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교회를 지킬 유일한 방패는 이단 분형령(異端 焚刑令)과 스미스필드의 사형장뿐이었다.

영역 복음서 비밀 독회에서 돌아온 재봉직공 바비도는 일하던 손을 멈추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희미한 등불은 연신 깜박인다, 가끔 무서운 소름이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생각하면 할수록 못된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다. 순회재판소(巡廻裁判所)는 교구(敎區)마다 돌아다니면서 차례차례로 이단을 숙청(肅淸)하고 있다. 내일은 이 교구가 걸려들 판이다. (서두첫부분)

* 갈래 : 단편소설, 역사소설

* 문체 : 만연체, 강건체

* 시점 : 전지적 작가(부분적으로 1인칭)

* 배경 (시간) 헨리 4세 시대-1410년경 (공간) 영국 교회사회

* 구성

· 발단 : 사회의 부패상, 사제·사교의 타락과 민중에 대한 탄압

· 전개 : 바비도의 갈등, 지도자들의 변절, 믿음의 신념, 다가오는 재판

· 위기 : 재판정에 선 바비도, 회유와 거절, 교리 논쟁

· 절정 : 사형장의 바비도, 태자의 등장, 형집행 중지와 회유, 거절, 형 집행

· 결말 : 바비도의 죽음, 연기와 불길, 군중의 폭소

 

* 등장인물

· 바비도 : 낮은 신분의 재봉 직공에 불과하지만 양심과 신념에 따라 행동하며, 회유(懷柔)와 억압(抑壓)에도 굴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

· 사교 : 부패한 종교와 교단의 앞잡이이며, 기회주의적이고 도덕과 양심이 마비되어 약한 자에 게는 강하고 강한자에게는 약한 전형적인 부패관리

· 태자 : 내면적으로 인간미가 있고 정의와 양심이 무엇인지를 알고는 있으나, 조직과 집단의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신념을 굽히는 연약한 인간

* 주제 : 신념에 충실한 삶

---  소설 <귀환(歸還)>

 

 위클리프(Wycliffe, 1324-1384)와 중세 유럽의 성장과 변화

영국의 선구적 종교 개혁가. 옥스퍼드 대학 신학교수. 1374년 국왕 사절단의 차석으로 브뤼주에서 교황측과 교섭, 귀국 후 널리 선교 활동을 벌이고 저작(著作)을 발표, 국왕과 랭카스터공(公) 존 오브 고요트의 비호를 받음. 당시의 반(反) 교황적 조류를 타고 교황에 대한 납세 반대, 특히 교회 재산에 강렬한 공격을 가하여 ‘옥스퍼드의 꽃’으로 칭송되었다.

1378년 교회분열(시스마)을 계기로 카톨릭 교의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또한 성서의 번역을 시작하여 이른바 ‘가난한 성직자’를 보내어 민중에게 복음(福音)을 전했다. 1379년 이후 ‘화체설(化體說)을 부정하는 견해로 나가고, 특히 1381년의 와트 타일러의 난이 그의 설교에 기인하는 것이라하여 대학과 귀족의 지지를 잃어 실의 속에 인퇴(引退)했다.

1382년 그 저술에서 뽑아낸 24개조가 이단이며 오류로 판정되었으나 처벌은 면했다. 그의 교설은 30년 후 후스(보헤미안 인) 및 후스 전쟁으로 재연(再燃)되었다.

 

11세기부터 시작된 십자군 원정은 그 성격이 변질됨에 따라 성지 회복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결과적으로 중세 유럽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1) 교황권의 약화, (2) 봉건 제후의 몰락, (3) 왕권의 강화, (4) 화폐 경제 발달, (5) 장원제의 붕괴(자영농 성장, 인구감소, 농민의 반란)

 

󰏐 권영민, <김성한의 바비도> [한국현대소설작품론](문장, 1981)

작가가 목표하는 것은 역사적인 연관성 속에서의 인간의 삶이 아니라 역사를 벗어난 보편적인 인간의 신념(信念)이다. 작가 자신이 보편적인 인간 의지의 구현이라는 관념에 매달림으로써 소설 <바비도>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역사소설(歷史小說)의 본질적 속성에서 벗어난다.

 

󰏐 구중서 <이성계의 인간상을 부각> [수록작가 작품해설집] (삼성출판사, 1973)

--- 󰃫 <근대사를 다룬 역사소설들>

 

󰏐 김현 <신념과 체념의 인간상> [사회와 윤리] (일지사, 1974)

김성한의 소설에는 주인공들의 신념에 찬 표면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허무주의(虛無主義)적 요소가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수준 높은 지적 유희가 이 허무주의를 은폐하고 있다.

 

󰏐 김봉군, 이용남, 한상무 공저, <김성한론> [한국현대작가론](민지사, 1985) p.517

김성한의 <바비도>는 영국 역사에서 그 소재를 취한 작품이다. <바비도>의 첫머리에는 “바비도란 1419년(헨리 4세 당시) 이단(異端)으로 지목되어 형을 받은 재봉(裁縫)직공이다.”란 말이 붙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김성한이 영국 유학을 했고, 역사를 전공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 주는 것인가, 아니면 <바비도>란 작품이 실재(實在)의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해서 씌어진 역사소설이란 것을 말해 주는 것인가. 혹은 <바비도>가 기독교 문학의 범주에 드는 것임을 알려 주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들을 생각하면서 <바비도>에 도사린 문제를 분석해 보기로 하 자. <바비도>가 영국의 역사를 근거로 씌어졌다는 점은 새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역사소설이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니며, 현재의 시각에서 본 문학적 재해석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이 때 우리는 현재의 시각이란 말 속에 한국의 현재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실제적으로는 <바비도>가 영국의 역사를 소재로 했다는 점이 하등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이다. 바비도 시대의 영국 역사가 김성한 당대의 한국적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비도>를 볼 때 우리는 이 작품이 상당히 관념적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바비도>에는 한국적 뼈대가 없기 때문이다. 김성한은 <바비도>에서 인간 고유(固有)의 권리인 자유(自由)와 진리(眞理)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세계 어느 민족에게나 해당되는 추상적 문제이며 그만큼 보편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같은 문제가 바비도의 장엄한 순사(殉死)를 통해 제시될 때 이 문제는 더욱 추상적 냄새를 풍기게 된다.

그렇다면 <바비도>는 기독교 문학의 범주에 드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대답 역시 부정적이다. 바비도의 죽음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 속에서 그에게 귀의(歸依)해 간 죽음이 아니다. 그는 일종의 시니시즘(cynicism, 냉소주의) 속에서 죽어갔다.

자신을 이단(異端)으로 몰아 처형하려는 권력자들에 대한 분노와 종교적 도그마(dogma, 교조주의·敎條主義)에 대한 반발은 그를 냉소적 인물로 만들었다. 자신이 믿는 바 올바른 종교적 신념은 자신을 박해하는 자에 대한 모멸 속에서 소멸되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사교는 상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단 말이냐?”

“다 흥미가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흥미가 없어지다니, 신성한 교회에 흥미가 없단 말이냐?”

“교회 뿐만 아니라 온 인간세상, 나 자신에 대해서까지, 흥미가 없어졌습니다.”

--- <바비도> 중에서

바비도는 “어지러운 인간세상에 태어난 것을 슬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에게 어지러운 인간 세상이 아닌 초월적 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에게는 그런 믿음도 없다. 따라서 위의 인용문에서 보인 바비도의 생각은 허무주의(虛無主義)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 세상만사가 꼴보기 싫고 이 놈의 세상에는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식의 생각을 바비도는 보여준다. 그가 체념 속에서 담담히 죽어가는 것은 하나님에게 자신을 맡기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냉소적 허무주의가 야기한 결과일 뿐이다.

 

기독교 문학이란 신(神)과 인간(人間)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극(間隙) 앞에서 좌절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는 데에 그 본령이 있다. 김성한의 <바비도>는 단지 소재적 차원에서 기독교를 다룬 작품에 불과한 것이다.

첫머리에 제시된 장엄한 문구들로 말미암아 독자를 위축시킨다.

“일찍이 위대하던 것들은 이제 부패하였다. 사제(司祭)는 토끼사냥에 바쁘고 사교는 회개와 순례를 팔아 별장을 샀다.”로 시작되는 문체의 장엄함은 독자들로 하여금 엄숙한 태도로 이 작품에 임할 것을 무의식 중에 요구하고 있다. 작품 중간의 여기 저기에 나오는 “가래침아, 너는 영원히 남아서 바비도의 모멸을 기념하여라!” 따위의 문장도 마찬가지로 독자에게 작용한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작품을 읽어감에 따라 장엄한 문체와 바비도의 나약한 체념(諦念)이 이루는 부조화(不調和)앞에서 일종의 허망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심각한 자세가 일종의 포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때 느끼는 심정이다.

 


●바위 : 김동리 단편 소설

(전략)

 

사흘째는 밭 임자가 왔다. 그는 무어라고 한참 동안 욕질을 하고 나더니,

“오늘이라도 곧 뜯어 내지 않으면 불을 놔 버릴 게다.”

큰소리로 이렇게 외치고는 돌아갔다. 그러나 또다시 지을 힘도 없을 뿐더러, 그 근처에는 달리 적당한 자리도 없었으므로, 그녀는, 비록 불에 살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뜯어 낼 수는 없었다. 기어이 이 기차 다리 부근에서 떠나가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것은 기차 다리에서 장터로 들어가는 마을 어귀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복을 주는 바위라 하여 ‘복바위’라고도 하고, 소원 성취를 시켜 준다고 하여 ‘원바위’라고도 하고, 범이 누운 것 같다고 하여 ‘범바위’라고도 부르며, 이 바위의 이름은 이밖에도 여럿이 있었다. 복을 빌러 오는 여인네는 사철 끊이지 않았다. 주먹만한 돌멩이를 쥐고 온종일 바위 위에 올라앉아 바위 등을 갈다가는 손의 돌이 바위에 붙으면 소원이 성취되는 것이라 하였다. 어떤 여자들은 연 사흘씩 밥을 싸고 와서 ‘복바위’를 갈기도 하였다.

 

이 바위를 아끼고 중히 여기는 것은 복을 빌러 오는 여자들만이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은 와서 말놀이를 하고, 노인들은 와서 여기다 허리를 기대어 들구경을 하고,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 바위를 대단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술이 어머니도 어쩐지 이 바위가 좋았다. 자기도 저 바위를 갈기만 하면 그리운 아들의 얼굴을 만나 볼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녀는 몇번인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며 술이의 이름을 부르며 복바위를 갈았던 것이다.

 

그녀가 ‘복바위’를 갈기 시작한 지 한 보름이 지난 뒤, 우연인지 혹은 ‘복바위’의 영검이었는지, 그녀가 주야로 그렇게 그리워하던 아들을 만나보게 되었던 것이다. 사방에서 장꾼이 모여드는 아침 장터에서 그녀가 바가지를 들고 음식전으로 들어가려 할 때 문득 소매를 잡는 사람이 있었다. 순간 그녀는 직감적으로 그가 술이인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하여 아들의 낯을 보았다. 순간 어미의 희고 긴 덧니가 잠깐 보이었다.

아들은 어미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었다. 장터에서 조금 나가면 무너진 옛성터가 있고 그 옆으로 오래된 지름길이 있었다. 길은 가을풀로 덮이고 지나다니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풀로 덮인 길바닥 위에 앉은 채 서로 잡고 불렀다.

“엄마.”

“술아.”

그들의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 어디서 어째 지냈노, 어째 살았노…… 엉엉엉…… 엄마……”

“……”

어미는 긴 덧니를 젖히며 자꾸 울기만 하였다. 피와 살은 썩어가도 눈물은 역시 옛날과 변함없이 많았다.

“엄마, 날 얼마나 찾았능교, 얼마나……”

술이는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목을 놓고 울었다.길바닥 잡풀 속에 섞여 핀 돌메밀꽃 위에 빨간 고추쨍이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길 건너 언덕에서는 알록달록한 뱀 한 마리가 돌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후략)

* 감상 : 이 작품은 육신의 저주받음과는 상관 없이 지극한 모성애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는 작품 으로 소망과 구원에의 인간적인 실상을 문제삼고 있다. 즉 ‘복바위(영험의 성소(聖所))’ 라는 토속적인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하여, 아들과의 재회라는 비원(悲願)을 바위에 기구하면서 천형 (天刑)을 감내하며 살다 간, 한 문둥이 여인의 한스러운 일생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여인의 일생은 겹치는 불행 속에서도 묵묵히 운명에 순종하는 전통적 한국인의 삶의 한방 식으로 김동리의 숙명론적 인생관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기에 문둥병이라는 천형을 받고 있 는 주인공의 삶이 처절하다는 느낌 대신에 그 어떤 신비적인 느낌을 준다. 「무녀도」와 주제면 에서 ‘전근대적 요소의 소멸’ 내지는 ‘무속 세계의 소멸’ 혹은 ‘토속적 샤머니즘의 패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은 김동리가 두번이나 개작을 할 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 는 작품 이며, 김동리의 주술(呪術) 미학의 본령과 시적인 수사학으로 짜여진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재가 문둥이라는 면에서 서정주의 「문둥이」라는 시와의 관련성을 살필 수 있다.

 

* 줄거리 : 북쪽 하늘에서 기러기가 울고 온다. 가을이 온다. 밤이 되어도 반딧불이 날지 않고 은 하수가 점점 하늘 한복판으로 흘러 내린다. 아무데서나 쓰러지는 대로 하룻밤을 새울 수 있던 집없는 사람들에게는 기러기 소리가 반갑지 않다. 읍내 가까운 기차 다리 밑에는 한 떼의 병 신과 거지와 문둥이들이 모여 있는데, 그중의 ‘아주머이’ 문둥이는 그래도 작년까지는 영감 과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장가갈 밑천으로 일백 몇 십원을 저금했다가, 그 대부분을 어미의 약값으로 쓰고, 나머지 이십여 원을 술과 도박으로 없애고는 어디론지 사라졌다. ‘아주머이’ 문둥이는 자신의 약값을 다 써버리고 사라진 아들 술이를 기다다 학대하는 영감에게 쫒겨나 이 곳에 머물게 된다. 그녀는 노숙과 구걸 행각 등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 다리 밑에 숙소를 정하고 아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근처의 ‘복바위’를 간다. ‘복바위’를 갈기 시작한 지 보름 뒤 장터에서 아들을 만나지만, ‘한 사날’ 뒤에 다시 온다던 아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들을 그리워하며 더욱 열심히 ‘복바위’를 갈러 다니던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아 들은 무슨 죄인지는 모르지만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은 듯하다. 다시 여인이 복바위에 갔 을 때 보니 이 번에는 살던 집마저 불태워지고 만다. 이튿날, ‘복바위’를 안고 죽은 여인에 대 하여 마을 사람들이 욕을 한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문둥이 어머니를 통해 나타난 인간 본연의 모성

 


●박씨전(朴氏傳, 일명 박씨부인전) : 작자 미상 고대 소설

차설 울대 군중에 명령하여 일시에 불을 지르니, 화약이 터지는 소리 산천이 무너지는 듯하고 불이 사면으로 일어나며 화광이 충천(衝天)하니, 부인이 계화를 명하여 부작(부적)을 던지고, 좌수에 홍화선을 들고, 우수에 백화선을 들고, 오색실을 매어 화염 중에 던지니 문득 피화당으로 조차 대풍이 일어나며 도리어 호진(胡陳) 중으로 불길이 돌치며 호병(胡兵)이 화광 중에 들어 천지를 분변치 못하며 불에 타 죽는 자가 부지기수(不知其數)라.

// 박씨부인의 울대 군중 초토화

 

차시 박 부인이 계화로 하여금 적진을 대하여 크게 외쳐 왈,

“무지한 오랑캐놈아. 내 말을 들으라. 너의 왕은 우리를 모르고 너같은 구상유취를 보내여 조선을 침노하니 국운이 불행하여 패망은 당했거니와 무슨 연고로 아국 인물을 거두어 가려 하느냐. 만일 왕비를 뫼셔 갈 뜻을 두면 너희 등을 함몰할 것이니 신명을 돌아보라.”

하거늘, 호장이 이 말을 듣고 웃으며 왈,

“너의 말이 가장 녹록하다. 우리 이미 조선 왕의 항서를 받았으니 데려가기와 아니 데려가지는 우리 손안에 달렸으니 그런 말은 구차이 말라.”

하며 능욕이 무수하거늘 계화가 일러 왈,

“너희 등이 일향 마음을 고치지 못하거니와 나의 재주를 구경하라.”

하고 언파에 무슨 진언을 외오더니 문득 공중으로 두 줄 무지개 일어나며 우박이 담아 붓듯이 오며 순식간에 급한 비와 설풍이 내리고 얼음이 얼어 호진의 장졸이며 말굽이 얼음에 붙어 떨어지지 아니하며 촌보를 운동치 못할지라.

// 계화가 왕비를 모셔 가려는 울대를 혼줄냄

* 감상 :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고대 군담소설이다. 이시백의 아내 박씨는 영웅적인 기상과 뛰 어난 재주로써 호왕과 적장 울대를 물리치고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한다.

 

* 줄거리 : 조선 인조 때 박처사는 딸을 둘 두었는데, 둘째 딸 배필이 병조 판서 이득춘의 아들 이시백임을 알고 청혼한다. 남편은 박씨가 얼굴이 박색임을 알고 대면조차 하지 않았는데, 박 씨는 시아버지에게 청하여 후원에 피화당을 짓고 시비(몸종) 계화와 시내며 기이한 도술로 남 편을 장원 급제시킨다. 박씨는 3년 뒤 액운을 벗고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어 부부가 화목하 게 잘 살게 된다.

그 뒤 중국의 용골대 형제가 3만의 병사를 끌고 조선을 침략하게 되었을 때 박씨는 남자보다 뛰어난 기상으로 오랑캐의 침입을 막아낸다.

 

* 연대 : 조선 중종 때 추측

* 의의 : 병자호란 후 치욕에 대한 보복 성격, 자주 의식

* 주제 : 청나라에 대한 적개심과 복수심

(역사상 실존 인물인 이시백, 가공 인물인 그의 부인 박씨라는 인물을 통해 병자호란의 참상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적 승리를 보여준 작품이다.)

 


●방경각외전 : 연암별집(燕巖別集)의 한 부분. 한문소설 <양반전>, <마장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김신선전>, <우상전> 등

 


●배따라기 : 김동인 단편 소설

그의 살던 마을은 영유 고을서 한 이십 리 떠나 있는 바다를 향한 조그만 어촌이다. 그의 살던 조그만 마을(서른 집쯤 되는)에서는 그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열댓에 났을 때 돌아갔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곁집에 딴살림하는 그의 아우 부처(夫妻)와 그 자기 부처뿐이었다. 그들 형제가 그 마을에서 제일 부자이고, 또 제일 고기잡이를 잘 하였고, 그 중 글이 있었고, 배따라기도 그 마을에서 빼나게 그 형제가 잘 불렀다. 말하자면, 그 형제가 그 동네의 대표적 사람이었다.

팔월 보름은 추석 명월이다. 팔월 열하룻날 그는 명절에 쓸 장도 볼 겸, 그의 아내가 늘 부러워하는 거울도 하나 사 올 겸, 장으로 향하였다.

“당손네 집에 있는 것보다 큰 것이요. 닞디 말구요.”

그의 아내는 길까지 따라나오면서 잊지 않도록 부탁하였다.

“안 닞어.”

하면서, 그는 떠오르는 새빨간 햇빛을 앞으로 받으면서 자기 마을을 나섰다.

그는 아내를 (이렇게 말하기는 우습지만) 고와했다. 그의 아내는 촌에는 드물도록 연연하고 예쁘게 생겼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성내(평양) 덴줏골을 가두 그만한 거 쉽디 않갔시오.

그러니까 촌에서는, 그리고 그 당시에는 남에게 우습게 보이도록 그 내외 사이는 좋았다. (내부이야기, 발단부)

* 감상 : 낭만적이고 유미주의적 경향이 드러난 작품으로 운명 앞에선 인간의 무력함과 끝없는 회한, 바다를 배경으로 한 서정적 비애감이 소설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서도 잡가의 하나인 ‘영유 배따라기’를 제재로 하여 한 많은 인물의 내력을 엮어 놓았다.

---  <비애(悲哀)와 비장(悲壯)>

* 줄거리

 

▲ 외부 이야기

· 어느 화창한 봄날, 나(작중화자)는 대동강으로 봄 경치를 구경감.

· 영유 배따라기를 부르는 ‘그’를 만나 사연을 듣는다.

 

▲ 내부이야기 : ‘그’의 이야기 내용

· 그는 영유 사람, 그 어촌 마을에서 가장 잘 살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 그는 아름다운 아내와, 양순하며 다정다감한 아우를 두고 있었다.

· 평소 형(그)은 성품이 쾌할하고 친절한 아내가 동생에게 특히 친절한 것을 못마땅해 하였다.

· 어느 날 장에서 거울을 사들고 오다가 동생과 아내가 방에서 쥐를 잡다가 옷매무새가 헝컬 어진 것을 보고 두 사람 사이를 오해한 나머지 아내를 때려 내쫓자 아내는 물에 빠져 자살하 고 동생은 고향을 떠난다. (동생의 첫번 째 떠남 이유 : 형에 대한 원망, 자신에 대한 자책감)

· 오해였음을 깨달은 그는 사무치는 회한을 이기지 못해 배따라기를 부르면서 동생을 찾아 방 랑한다.

· 10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바람으로 인해 배가 부서져 정신을 잃고 물위에 떠돌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을 때 놀랍게도 아우가 불을 피워 놓고 간호하고 있었다.

“너 어떻게 여기 완?(왔느냐)”

“형님 그저 다 운명이웨다!”라는 말을 했다.

· 형이 다시 잠이 들고 두어 시간 단잠을 깨고 나니 동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동생의 두번 째 떠남 이유 : 숙명적인 것으로 세상사를 받아들이고 자책과 회한 속에서 유랑)

· 그 후 방랑을 계속하지만 동생을 만나지 못한다.

 

▲ 외부이야기

· 그날 밤 나는 그의 숙명적 경험담에 잠 못 이룬다. 다음날 아침 대동강에 가 보았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 구성 : 액자소설 - “그가 이야기한 바는 대략 이와 같은 것이다.”

* 시점

· 외부이야기 - 1인칭 관찰자 : 유토피아를 꿈꾸는 ‘나’의 이야기

· 내부이야기 - 전지적 작가 : 오해와 질투로 인한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의 이야기

* 경향 : 유미주의(唯美主義, 탐미주의)

 

* 등장인물

· 형 : 아내를 사랑하나 질투심이 많고, 성격이 급함(배따라기를 부르고 있는 그를 찾아 낸 나 의 관찰 - 얼굴, 코, 입, 몸집, 눈이 모두 네모지고 - 그의 이마의 굵은 주름살과 시커먼 눈썹 : 고생을 많이 함, 순진한 성격)

· 아우 : 배따라기를 잘부르는 호남형의 어부. 형의 오해와 형수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방랑.

· 아내 : 남편의 오해를 받고 바다에 투신 자살함

· 나 : 서술자. 관찰자

* 주제 : 오해가 빚은 형제간의 운명론적 비극

* 출전 : [창조](1921)


 

〇배반의 여름 : 박완서 소설

그 때가 아마 내 나이 일곱 살 때였을 게다. 연년생 누이동생이 다섯 살 나던 해 여름, 마을 앞을 흐르는 강이랄 것도 없는 개천에 빠져 죽은 다음 해 여름이었 으니까.

 

지금은 신층 주택가가 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돼지 우리와 돼지 우리 비슷하게 생긴 인가가 지독한 똥냄새를 풍기는 채 소밭 사이에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시골이면서, 인심과 주소만은 서울인 변두리에 우리는 살고 있었다.

 

마을 앞엔 개천이 있었는데 채소밭에서 나는 것과 같은 진한 똥냄새를 풍기며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지 모르게 질펀히 고여서 무수한 장구벌레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비가 오면 흐름이 빨라지면서 어른 한 길도 넘게 물이 불어나는 수도 있었다. 누이동생은 장마가 개고 불볕이 나는 7월의 어느 날 거기서 빠져 죽었다. 내 뒤만 졸졸 따라 다니는 게 성가셔서 감쪽같이 따돌리고 나서 불과 한 시간도 안 돼서 그 일은 일어났던 것이다. (발단부) (중략)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 아버지도 많이 늙었다. 나는 그 나이가 되도록 그런 어릿광대스러운 양복을 입고 수위 노릇을 해야 하는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낄지언정 앙심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우상처럼 섬기는 대신 사랑했고, 대신 새로운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 새로운 우상은 전구라 선생이었다. 내 방에는 전구라 선생의 다섯 권 전질의 전구라 사상 전집이 있었고, 일곱 권 전질의 전구라 수필집이 있었고, 여섯 권 전질의 전구라 문학 전집이 있었고, 열 번도 넘어 읽어 종이가 풀솜처럼 부드러워진 ‘청소년이여, 야망을 가지라.’는 전구라 선생의 청소년을 위한 문집이 있었고, 액자 속에 전구라 선생의 사진이 있었다. 전구라 선생이야말로 내 흠모와 동경을 아무리 바쳐도 아깝지 않을 인격이었다. 그는 뛰어난 사상가요 문필가였을 뿐 아니라, 명교수였고, 정치에도 관심이 있어 높은 관직을 여러 번 거쳤고, 현재도 모 고위층의 막후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중략)

아버지가 나를 풀속으로 팽개쳤을 때 허위적대다 방바닥을 딛기까지는 순식간이었고, 아버지가 자신의 우상을 스스로 깨뜨리고 나를 자동문 밖으로 팽개쳤을 때 허위적대다가 설 자리를 찾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 허위적거림에서 설 자리를 찾고 바로 서기까지는 좀더 오랜 시일이 걸릴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외부에서 찾던 진정한 늠름함, 진정한 남아다움을 앞으론 내 내부에서 키우지 않는 한 그건 영원히 불가능한 채 다만 허위적거림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홀로 늠름해지기란, 아, 아 그건 얼마나 고되고도 고독한 작업이 될 것인가. 나는 고독했다. 아버지의 낄낄낄이 내 고독을 더욱 모질게 채찍질했다.

* 감상 : 한 소년이 세상의 의미를 배우게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여기서 ‘배반’의 의 미는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세상에의 ‘아름다움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 구성 : 회상 형식을 통한 3가지 배반에 관한 에피소드 (점층적 전개)

· 첫째 :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짐 (개인사적)

· 둘째 : 아버지의 직업에 관계 (개인사 + 사회사)

· 셋째 : 지식인 전구라 선생과의 관계에서 지식인의 이중 인격 폭로(사회사)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표현기법 : 아이러니와 성장소설적 구성

 


●백치(白痴) 아다다 : 계용묵 소설

그래도 아다다는 아무 대답이 없다. 무엇 때문엔지 수심의 빛까지 연연히 얼굴에 떠오른다.

“아니 밭이 2천평이문 조를 심는다 하구 잘만 가꿔 봐! 조가 열 섬에 조 짚이 백여 목 날터이야. 그래 이걸 개지구 겨울 한동안이야 못 살아? 그렇거구 둘이 맞붙어 몇 해만 벌어 봐. 그적엔 논이 또 나오는 거야. 이건 괜히 생------.”

아다다는 말없이 머리를 흔든다.

“아니, 내레 이게 거즈뿌레기야? 아 열섬이 못 나?”

아다다는 그래도 머리를 흔든다.

“아니, 그롬 밭은 싫단 말인가?”

아다다는 돈이 있다 해도 실로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 많은 돈으로 밭을 산다는 소리에 지금까지 꿈꾸어 왔던 모든 행복이 여지 없이도 일시에 깨어지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돈으로 인해서 그렇게 행복할 수 있던 자기의 신세는 남편(전남편)의 마음을 약하게 만듦으로, 그리고 시부모의 눈까지 가리는 것이 되어, 필야엔 쫓겨나지 아니치 못하게 되던 일을 생각하면 돈 소리만 들어도 마음은 좋지 않던 것인데, 이제 한 푼 없는 알몸인 줄 알았던 수롱이에게도 그렇게 많은 돈이 있어, 그것으로 밭을 산다고 기꺼워하는 것을 볼 때, 그 돈의 밑천은 장래 자기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리람보다는 몽둥이를 벼리는 데 지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밭에다 조를 심는다는 것은 불행의 씨를 심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다다는 그저 섬으로 왔거니 조개나 굴 같은 것을 캐어서 그날그날을 살아가야 할 것만이 수롱의 사랑을 받는 데 더할 수 없는 살림인 줄만 안다. 그래서 이러한 살림이 얼마나 즐거우랴! 혼자 속으로 축복을 하며 수롱을 위하여 일층 벌기에 힘을 써야 할 것을 생각해 오던 것이다.

“고롬 논을 사재나? 밭이 싫으문.”

수롱은 아다다의 의견이 알고 싶어 이렇게 또 물었다.

그러나 아다다는 그냥 고새를 주억여 버린다. 논을 산대도 그것은 똑같은 불행을 사는 데 있을 것이다. 돈이 있는 이상 어느 것이든지간 사기는 반드시 사고야 말 남편의 심사이었음에 머리를 흔들어 댔자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근본 불행인 돈을 어찌할 수 없는 이상엔 잠시라도 남편의 마음을 거슬림으로 불쾌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아는 때문이었다.

“흥! 논이 도흔 줄은 너두 아누나! 그러나 어려운 놈엔 밭이 논보다 나앗디 나아.”

하고, 수롱이는 기어이 밭을 사기로 그달음에 거간을 내세웠다.

그날 밤,

아다다는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남편은 아무런 근심도 없는 듯이 세상 모르고 씩씩 초저녁부터 자 내건만 아다다는 그저 돈 생각을 하면 장차 닥쳐올 불길한 예감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불을 붙안고 밤새도록 쥐어틀며 아무리 생각을 해야 그 돈을 그대로 두고는 수롱의 사랑 밑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짧은 봄밤은 어느덧 새어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처량히 들려 온다.

밤이 벌써 새누나 하니 아다다의 마음은 더욱 조급하게 탔다. 이 밤으로 그 돈을 처리하지 못하면 한 내일은 기어이 거간이 흥정을 하여 가지고 올 것이다. 그러면 그 밭에서 나는 곡식은 해마다 돈을 불려 줄 것이다. 그때면 남편은 늘어가는 돈에 따라 차차 눈은 어둡게 되어 점점 정은 멀어만 가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더 생각하기조차 무서웠다.

닭의 울음소리에 따라 날은 자꾸만 밝아 온다. 바라보니 어느덧 창은 희끄스름하게 비친다.

아다다는 더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 누운 남편을 지그시 팔로 밀어 보았다. 그러나 움쩍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못 믿어지는 무엇이 있는 듯이 남편의 코에다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대로 숨소리를 엿들었다. 씨근씨근 아직도 잠은 분명히 깨지 않고 있다. 아다다는 슬그머니 이불 속을 새어 나왔다. 그리고 실겅 위의 석유통을 휩쓸어 그 속에다 손을 넣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전뭉치를 더듬어서 손에 쥐고는 조심조심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며 살그머니 문을 열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일찌기 아침을 지어먹고 나무새기를 뽑으러 간다고 바구니를 끼고 바닷가로 나섰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깊은 물 속에다 그 돈을 던져 버리자는 것이다.

솟아오르른 아침 햇발을 받아 붉게 물들며 잔뜩 밀린 조수는 거품을 부걱부걱 토하며 바람결조차 철썩철썩 해안을 부딪친다.

아다다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허리춤 속에서 지전뭉치를 쥐어 들었다. 그리고는 몇 겹이나 쌌는지 알 수 없는 헝겊 조각을 둘둘 풀었다. 헤집으니 1원짜리, 5원짜리, 10원짜리, 무수한 관 쓴 영감들이 나를 박대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모두들 마주 바라본다. 그러나 아다다는 너 같은 것을 버리는 데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넘노는 물결 위에다 휙 내어 뿌렸다. 세찬 바닷바람에 채인 지전은 바람결 좇아 공중으로 올라가 팔랑팔랑 허공에서 재주를 넘어가며 산산이 헤어져 멀리 그리고 가깝게 하나씩 하나씩 물위에 떨어져서는 넘노는 물결 좇아 잠겼다 떴다 숨바꼭질을 한다.

어서 물 속으로 가라앉든지 그렇지 않으면 흘러 내려가든지 했으면 하고 아다다는 멀거니 서서 기다리나 너저분하게 물위를 덮은 지전 조각들은 차마 주인의 품을 떠나기가 싫은 듯이 잠겨버렸는가 하면 다시 기울거리며 솟아올라서는 물위를 빙글빙글 돈다. 하더니, 썰물이 잡히자부터야 할 수 없는 듯이 슬금슬금 밑이 떨어져 흐르기 시작한다.

아다다는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밀려 내려가는 무수한 그 지전 조각은 자기의 온갖 불행을 모두 거두어 가지고 다시 돌아올 길이 없는 끝없는 한바다로 내려갈 것을 생각할 때 아다다는 춤이라도 출 듯이 기꺼웠다.

그러나 그 돈이 완전히 눈앞에 보이지 않게 흘러 내려가기까지에는 아직도 몇 분 동안을 요하여야 할 것인데, 뒤에서 허덕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다보니 뜻밖에도 수롱이가 헐떡이며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야! 야! 아다다야! 너, 돈 돈 안 건새 핸? 돈, 돈 말이야 돈------.”

청천의 벽력같은 소리였다.

아다다는 어쩔 줄을 모르고 남편이 이까지 이르지 전에 어서어서 물결은 휩쓸려 돈을 모두 거둬 가지고 흘러 버렸으면 하나 물결은 안타깝게도 그날그날 한가히 돈을 흐를 뿐 아다다는 그 돈이 어서 자기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것을 보기 위하여 그닐거리고 있는 돈 위에다 쏘아박은 눈을 떼지 못하고 쩔쩔매는 사이, 마침내 달려오게 된 수통의 눈에도 필경 그 돈은 띄고야 말았다.

뜻밖에도 바다 가운데 무수하게 지천 조각이 널려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둥둥 떠내려가는 것을 본 수롱이는 아다다에게 그 연유를 물을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 옷을 훨훨 벗고 철버덩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수롱이는 돈이 엉키어 도는 한복판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겨우 가슴패기 잠기는 깊이에서 더 들어가지 못하고 흘러 내려가는 돈더미를 안타깝게도 바라보며 허우적 달려갔다. 차츰 물결은 휩쓸려 떠내려가는 속력이 빨라진다. 돈들은 수롱이더러 어디 달려와 보라는 듯이 휙휙 숨바꼭질을 하며 흐른다. 그러나 물결이 세질수록 더욱 걸음발은 자유로 졸릴 수가 없게 된다. 더퍽더퍽 물과 싸움이나 하듯 엎어졌다가는 일어서고, 일어섰다가는 다시 엎어지며 달려가나 따를 길이 없다. 그대로 덤비다가는 몸조차 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갈 것 같아, 멀거니 서서 바라보니 벌써 지전 조각들은 가물가물하고 물거품인지도 분간할 수 없을이만치 먼 거리에서 흐르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눈앞에선 아무것도 보여지는 것이 없다. 휙휙 하고 밀려 내려가는 거품진 물결뿐이다.

수롱이는 마지막으로 돈을 잃고 말았다고 아는 정도의 물결 위에 쏘아진 눈을 돌릴 길이 없이 정신 빠진 사람처럼 그냥그냥 바라보고 섰더니, 쏜살같이 언덕켠으로 달려오자 아무런 말도 없이 벌벌 떨고 섰는 아다다의 중동을 사정없이 발길로 제겼다.

‘흥앗!’소리가 났다고 아는 순간, 철썩 하고 감탕이 사방으로 튀자 보니 벌써 아다다는 해안의 감탕판에 등을 지고 쓰러져 있었다.

“이! 이! 이------.”

수롱이는 무슨 말인지를 하려고는 하나, 너무도 기에 차서 말이 되지 않는 듯 입만 너불거리다가 아다다가 움찍하는 것을 보더니, 아직도 살았느냐는 듯이 번개같이 쫓아 내려가 다시 한 번 발길로 제겼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아다다는 가꿈선 언덕을 떨어져 덜덜덜 굴러서 물 속에 잠긴다.

한참만에 보니 아다다는 복판도 한복판으로 밀려가서 솟구어 오르며 두 팔을 물 밖으로 허우적거린다. 그러나 그 깊은 파도 속을 어떻게 헤어나랴! 아다다는 그저 물위를 둘레둘레 굴며 요동을 칠 뿐,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어느덧 그 자체는 물 속에 사라지고 만다.

주먹을 부르쥔 채 우상같이 서서 굼실거리는 물결만 그저 뚫어져라 쏘아보고 섰는 수롱이는 그 물 속에 영원히 잠들려는 아다다를 못 잊어 함인가? 그렇지 않으면 흘러 버린 그 돈이 차마 아까워서인가?

짝을 찾아 도는 갈매기떼들은 눈물겨운 처참한 인생 비극이 여기에 일어난 줄도 모르고 끼약끼약하며 흥겨운 춤에 훨훨 날아다니는 깃[羽]치는 소리와 같이 해안의 풍경도 도웁고 있다.

* 감상 : 작가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오랜 침묵 끝에 발표한 작품으로 <인생파적 경향>과 <예술 지상주의적 태도>를 담고 있다. <인생파>란 인간, 특히 인간의 생명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구 하면서, 인간의 삶을 에워싼 본능적 세계를 다루는 작품 경향을 말한다. 계용묵의 경우, 심리의 미묘한 추이, 인간의 본능, 인간의 조건을 관심있게 추구해 들어가는 태도를 보인다. 이 작품에 서 아다다(본명, 확실이)의 행동은 <휴머니즘>의 실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보편적 진 리에 바탕을 둔 인생관을 정립함으로써 고전주의적인 사실주의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비록 병신인 아다다이지만, 물질적 세계를 벗어나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그녀의 행동은 결국 죽음까 지 이르게 된다.

 

* 배경 : 1930년대 평안도 어느 마을, 신미도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한 여인의 삶,그 비극적 운명

* 출전 : 1935년 [조선문단] 발표

 


●벙어리 삼룡이 : 나도향 소설

내가 열 살이 될락말락 한 때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십 사오 년 전 일이다.

지금은 그곳을 청엽정이라 부르지마는 그 때는 연화봉이라고 이름하였다. 즉 남대문에서 바로 내려다보면은 오정포가 놓여있는 산등성이가 있으니, 그 산등성이 이쪽이 연화봉이요, 그 새에 있는 동네가 역시 연화봉이다.

지금은 그곳에 빈민굴이라고 할 수밖에 없이 지저분한 촌락이 생기고 노동자들밖에 살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으나 그때에는 자기네 딴은 행세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이라고는 십여 호밖에 있지 않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게 과목밭을 하고 또는 채소를 심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콩나물을 길러서 생활을 하여갔었다.

여기에 그중 큰 과목밭을 갖고 그중 여유있는 생활을 하여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잊어버렸으나 동네 사람들이 부르기를 오생원이라고 불렀다.

얼굴이 동탕하고 목소리가 마치 여름에 버드나무에 앉아서 길게 목늘여 우는 매미 소리같이 저르렁저르렁 하였다.

그는 몹시 부지런한 중년 늙은이로 아침이면 새벽 일찍이 일어나서 앞뒤로 뒷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집안 일을 보살피는데 그 동네에는 그가 마치 시계와 같아서 그가 일어나는 때가 동네 사람들이 일어나는 때였다. 만일 그가 아침에 돌아다니며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이 이상하여 그의 집으로 가보면 그는 반드시 몸이 불편하여 누웠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때는 일년 삼백 육십 일에 한 번 있기가 어려운 일이요, 이태나 삼 년에 한 번 있거나 말거나 하였다.

그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는 얼마 되지 아니하나 그가 언제든지 감투를 쓰고 다니므로 동네 사람들은 양반이라고 불렀고, 또 그 사람도 동네 사람에게 그리 인심을 잃지 않으려고 섣달이면 북어쾌 김톳을 동네 사람들이 쓰게 하므로 그 동네에서는 가장 인심 후하고 존경을 받는 집인 동시에 세력있는 집이다.

그 집에는 삼룡이라는 벙어리 하인이 하나이 있으니, 키가 본시 본시 크지 못하여 땅딸보로 되었고 고개가 빼지 못하여 몸뚱이에 대강이를 갖다가 붙인 것 같다. 거기다가 얼굴이 몹시 얽고 입이 크다. 머리는 전에 새 꼬랑지 같은 것을 주인의 명령으로 깎기는 깎았으나 불밤송이 모양으로 언제든지 푸하고 일어섰다. 그래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면, 마치 옴두꺼비가 다니는 것같이 숨차 보이고, 더디어 보인다. 동네 사람들이 부르기를 삼룡이라고 부르는 법이 없고 언제든지 ‘벙어리’ ‘벙어리’라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앵모’, ‘앵모 한다. 그렇지만 삼룡이는 그 소리를 알지 못한다.

그도 이 집 주인이 이리로 이사를 올 때에 데리고 왔으니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부지런하고 세차다. 눈치로만 지내 가는 벙어리이지마는 말하고 듣는 사람보다 슬기로울 적이 있고 평생 조심성이 있어서 결코 실수하는 적이 없다.

* 감상 : 이 작품 속의 삼룡은 벙어리라는 생리적 결함 외에 옴두꺼비 같은 모습의 소유자며, 물건 으로 존재하는 하인의 신분이다. 이런 삼룡이가 새색시를 연모함은 일견 환상적, 낭만적 행위일 지 모르나 새색시에 대한 연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오생원 아들의 새색시에 대한 억압과 학대는 삼룡에게 동정을 넘어서서 연모의 정을 품게 했기 때문이다.

 

* 성격 : 낭만적, 사실성이 혼합

* 주제 : 못생기고 무식하지만 인간성을 가진 벙어리 삼룡이의 강렬하고 특이한 애정

* 출전 : 1925년 7월 [여명]

 


●별 : 황순원 단편 소설

동네 애들과 노는 아이를 한동네 과수 노파(老婆)가 보고, 같이 저자에라도 다녀오는 듯한 젊은 여인에게 무심코, 쟈 동복 누이가 꼭 죽은 쟈 오마니 닮았디 왜, 한 말을 얼김에 듣자 아이는 동무들과 놀던 것도 잊어버리고 일어섰다. 아이는 얼핏 누이의 얼굴을 생각해 내려 했으나 암만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뛰면서 아이는 저도 모르게, 오마니 오마니, 수없이 외었다. 집뜰에서 이복 동생을 업고 있는 누이를 발견하고 달려가 얼굴부터 들여다 보았다. 너무나 엷은 입술이 지나치게 큰 데 비겨 눈은 짭짭하니 작고, 그 눈이 또 늘 몽롱히 흐려 있는 누이의 얼굴. 아홉 살 난 아이의 눈은 벌써 누이의 그런 얼굴 속에서 기억에는 없으나 마음 속으로 그렇게 그려 오던 돌아간 어머니의 모습을 더듬으며 떨리는 속으로 찬찬이 누이를 바라 보았다. 참으로 오마니는 이 누이의 얼굴과 같았을까. (발단부) (중략)

누이가 비단 색헝겊을 모아 만들어 준 낭자를 튼 예쁜 각시인형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언제나 란도셀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인형이었다. 과목은 요일을 따라 바뀌었으나 항상 란도셀 속에 이 인형만은 변함없이 들어 있었다. 아이는 인형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는 이 인형의 여태까지 그렇게 이쁘던 얼굴이 누이의 얼굴이나처럼 미워짐을 어쩔 수 없었다. 곧 아이는 인형을 내다버려야 한다는 걸 느꼈다. 그걸 품에 품고 밖으로 나섰다. 저녁 그늘이 내린 과수 노파가 사는 골목을 얼마 들어가다 아이는 주위에 사람 없는 것을 살피고 나서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칼끝으로 땅을 파가지고 거기에다 품속의 인형을 묻었다. 그리고는 그곳을 떠났다. (중략)

어느새 어두워지는 하늘에 별이 돋아났다가 눈물 괴인 아이의 눈에 내려왔다. 아이는 지금 자기의 오른편 눈에 내려온 별이 돌아간 어머니라고 느끼면서, 그럼 왼편 눈에 내려온 별은 죽은 누이가 아니냐는 생각에 미치자 아무래도 누이는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머리를 옆으로 저으며 눈을 감아 눈 속의 별을 내 몰았다. (1941)  

* 감상 : 죽은 어머니의 이미지를 찾아 헤매는 한 소년의 마음의 방황을 그린 단편으로 어렸을 때 여읜 어머니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찾아 헤매는 소년은 현실 속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를 찾으려 는 완고한 집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실현될 수 없는 꿈이다. 인형, 누이, 어느 소녀 등 현실 속의 그 어떤 것도 어머니의 아름다운 이미지에 비교될 수 없으며, 심지어 밤하늘의 별도 마찬가지라고 여기며 눈을 감는 소년의 애환을 통해 영원성에 대한 인간 모두의 바람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9개의 에피소우드로 진행되는 사내 아이의 누이에 대한 미움은 사실은 미움이 아니라 죽은 어 미에 대한 깊은 그리움의 역설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불필요한 대화의 생략과 암 시’를 통해 아이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어 심리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아동 문학으로 볼수있는 작품이나, 작자가 제 시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자기 조성과 성숙 이전의 인간의 삶의 근본 문제’라고 할수 있다.

 

* 갈래 : 순수, 성장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

* 성격 : 동화적, 신비적

* 등장인물

· 소년 : 누이를 적대하다가 그 누이를 통해 어머니의 실체를 인식해 나가는 인물로 미성숙에 서 성숙(成熟)한 인물로 성장해 나가는 인물

· 누이 : 어머니처럼 소년을 보살펴 주는데 소년의 ‘모성 고착’의 원인을 제공함과 동시에 그를 성숙으로 이끄는 인물이기도 하다.

* 주제 : 누이의 죽음을 통한 아이의 성장 과정,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의 성숙

 

별과 인형의 상징성

· 별 : 죽은 어머니

· 인형 : 죽은 누이와 소년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물

 

 모성(母性) 고착(固着) (mother fixation)

이 소설의 주인공 소년은 모성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다가 누이의 죽음으로 인해 모성 고착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성숙해 간다.

---  김동인 소설 <광화사>


 

 

●별들의 고향 : 최인호 소설

󰏐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29> 최인호씨 `별들의 고향'

“남들이 다 돌아올 시간에 그녀는 떠난다. 밤에 더욱 빛나는 야광을 몸에 바르고 번쩍이면서 일몰의 저녁 순간에 불확실한 그림자를 길게 끌 며, 지치고 더러운 거리로 나가기 시작한다.󰡓(<별들의 고향> 중)

 

1970년대 고도성장이 노동자․농민의 소외와 함께 드리운 또 하나의 그늘은 <향락산업의 발흥>이었다. 성장의 결실에서 소외된 계층의 몸부림이 있는 한편에서 소수의 수혜자들은 두툼해진 지갑을 개인적 쾌락을 위해 선뜻선뜻 열고는 했다. 호스티스라는 직업이 일반화한 것이 70년대 들어 와서의 일이다. 술집을 찾는 남자 손님들의 말상대 노릇을 하며 때로는 몸을 팔기도 하는 이들은 봉건시대 기생의 후예라 할 만했다.

 

  1972~3년 신문연재를 거쳐 출간된 <별들의 고향>은 이 새로운 직장여성을 본격적으로 등장시킨 소설로서 이른바 `호스티스 문학'의 선도 구실을 했다. 착하고 예쁜 처녀 <오경아>를 나락으로 이끄는 것은 곤궁한 경제와 운명의 심술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가난 때문에 대학을 1학년에 그만둔 뒤 믿었던 남자에게 버림받고, 가까스로 결혼해 모처럼 안락한 가정을 꾸 미는가 했으나 이전의 낙태수술 후유증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됨으로써 다시금 버림받은 여자. 호스티스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의 이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별들의 고향>이 호스티스라는 직업의 연원과 현상에 관 한 사회경제적성찰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오히려 경아의 운명 의 변전을 개인 차원의 `사나운 팔자' 정도로 치부해버림으로써 동정적인 독자들의 눈물은 자아낼지언정, 전형성의 요건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경아는 몰락하고, 스물일곱의 이른 죽음을 맞는다. 첫 남자에게 몸을 허락할 때나, 짧은 평생 동안 단 한번이었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도 `버림받지 않기를' 바랐던 경아는 그 바람도 헛되이 거듭 버림 받고 혼자가 되고 만다.

 

소설의 화자인 <화가 김문오>가 어느 맥주홀의 호스티스로 있는 경아를 만났을 때 그 여자는 지치고 망가져 `정상적인' 결혼생활에 대한 꿈을 접 은 상태였다.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는 문오와의 관계도 불현듯 끝나고, 한참의 세월이 흘러 보기 흉할 정도로 살이 찌고 몸이 상한 경아는 말한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난 이제 지쳤어요.' 그러니, 누구 못지 않게 아름다운 꿈과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경 아를 이토록 망가뜨린 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래, 경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여자인지도 몰라. 밤이 되면 서울 거리에 밝혀지는 형광등의 불빛과 네온의 번뜩임, 땅콩 장수의 가스 등처럼 한때 피었다 스러지는 서울의 밤, 조그만 요정인지도 모르지. 그 래, 그녀가 죽었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죽인 것이야. 무책임하게 골목골 목마다에 방뇨를 하는 우리가 죽인 여자이지."

 

<별들의 고향>은 무엇보다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작가의 추산으로는 상․하권 합해서 1백만권이 팔렸다. 이 소설은 또 작가 자신의 각색을 거쳐 영화로도 만들어져 역시 수많은 관객을 모았다. 그 이후 최인호씨는 최고 인기작가이자 청춘의 우상으로 군림했다. 80년대가 이문열의 시대인 것과 같은 의미로 70년대는 최인호의 시대였다. 마침 통기타․생맥주․청바지, 그리고 장발로 상징되는 청년문화가 기세를 올리면서 최인호씨는 가수 송창식씨와 함께 그 상징과도 같은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그가 만끽한 대중의 사랑은 평론가를 비롯한 문학전문가들의 내침을 대가로 삼은 것이었다. 등단 이후 참신한 감수성으로 특히 산업사회 속 도시적 삶의 각박함과 소외, 소통불능 등을 섬뜩하게 그려내서 기대를 모았던 그는 <별들의 고향> 이후 `본격문학'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 작가 자신은󰡒아쉬울 게 없다󰡓는 태도지만, 본격문학쪽에서 보자면 재능있는 한 사람의 작가를 잃은 셈이 된다.

󰡒당신은 참 좋은 작가였다. 그런데 <별들의 고향>으로 대중작가가 되려 한다. 당신은 우리가 옹호하던 작가였다. 그런데 당신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난처한 우리의 입장이 점점 코너에 몰리게 됐다. 그러니 양자 중 에 하나를 택일해 달라.󰡓

지난 94년 샘터사에서 새로 나온 <별들의 고향> 앞머리에 쓴 장문의 ` 작가의 말'에서 최인호씨가 소개하고 있는 작고한 평론가 김현의 말이다.

 

여기서 `우리'란 창작과비평에 대한 문학과지성을 가리키거니와, 인용된 김현의 말은 당시의 문단 분위기와 최인호 문학의 방향전환과 관련해 시 사해 주는 바가 적지 않다.

 

<별들의 고향>에 대해서는 또한 말초적 감각과 감상으로 독자의 비판정신을 마비시켰다는 참여문학쪽의 비난도 가해졌다. 소설의 연재가 시작된 72년 9월은 저 악명높은 10월유신이 선포되기 불과 한달여 전이었다.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바깥 사회를 꽁꽁 얼렸던 한국적 민주주의의 철권통치와 질곡은 이 소설 속 어디에서도 끼어들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것은 가령, 마찬가지로 감각주의적 대중소설로 분류되며 역시 영화로 각색돼 크게 성공한 조해일씨의 <겨울여자>가 미흡한 대로나마 당시 도시빈민의 실태와 그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 그에 대한 당국의 탄압 등을 그리고 있는 것과 비교될 법한 점이다.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약간의 아가씨들을 모집해 맥주를 팔고 있는 좁은 홀 안은 침침할 정도로 조명이 어둡고 탁자와 탁자를 가리는 칸막이가 중국집처럼 놓여져 있어서, 우리들 중 몇몇 짓궂은 축들은 술을 들 생각은 않고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들과 뽀뽀를 나누거나 음담이나를 지나칠 정도로 퍼부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경아가 주로 근무했던 맥주홀은 역시 70년대적 문물이다. 전문화․첨단화하는 90년대의 술집 풍경은 그와는 같지 않다. 문오의 단골 맥주홀이 있던 서울 무교동은 상업지대로 탈바꿈했다. 맥주홀의 90년대적 변종은 룸살롱과 카페 따위일 터이다. 이밖에도 스탠드바니 찻집이니 방석집이니 요정이니 따위가 먹성 좋은 짐승처럼 서울 시 전역을, 아니 서울뿐이 아 니라 삼천리 팔도강산 구석구석을 삼켜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방배동과 신사동의 카페골목처럼 술과, 때로는, 몸을 함께 파는 호스티스들의 직장이 밀집된 지역은 있다. 그 풍경이야 뻔하다. 낮에는 도시의 여느 골목과 달라 보이지 않는 그곳은 밤이면 면모를 일신한다. 차라리 그곳은 낮에는 잠들어 있고 밤이 되면 인공조명과 함께 피어난 다. 술과 돈과 향수와 정액 냄새가 어지러운 군무를 추는 곳. 90년대의 경아들은 더이상 어수룩하지 않다. 투철한 직업의식과 프로 근성,󰡒즐기 면서 번다󰡓는 태도가 더이상 낯설지는 않게 된 것이 이즈음의 사정이다. 이것은 진보인가 퇴보인가.

 


●병신과 머저리 : 이청준 (제13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액자 소설

그렇다고 해도 이제 형은 곧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형은 자기를 솔직히 시인할 용기를 가지고, 마지막에는 관모의 출현이 착각이든 아니든 사실로써 오는 것에 보다 순종하여 관념을 파괴해 버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어쨌든 형을 지금까지 지켜 온 그 아픈 관념의 성은 무너지고 말았지만, 그만한 용기는 계속해서 형에게 메스를 휘두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창조력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

나는 멍하니 드러누워 생각을 모으려고 애를 썼다. 나의 아픔은 어디서 온 것인가. 혜인의 말처럼 형은 6·25의 전상자이지만, 아픔만이 있고 그 아픔이 오는 것이 없는 나의 환부는 어디인가. 혜인은 아픔이 오는 것이 없으면 아픔도 없어야 할 것처럼 말했지만 그렇다면 지금 나는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것인가.

나의 일은, 그 나의 화폭은 깨어진 거울처럼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것을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나는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시간을 망설이며 허비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힘으로는 영영 찾아내지 못하고 말 얼굴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의 아픔 가운데에는 형에게서처럼 명료한 얼굴이 없었다. (결말부)

* 감상 : 의사인 형과 화가인 동생의 고뇌를 다룬 이 작품은 형이 실상 자신의 전적인 책임도 아 닌 수술의 실패를 계기로 고민에 빠지고 이어 6·25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괴로워한다. 전쟁 때 적진에 고립되었던 형이 자신의 생존과 성욕만을 아는 아는 이기적인 ‘관모’의 위협 때 문에 사명을 다하지 못한 채 부상당한 김일병을 죽게 만들었던 사건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형은 당시 상황을 소설로 재구성해 간접 체험하게 되는데 관모를 죽임으로써 일단 결말을 짓고 의사일을 하게 된다. 동생이 우연히 형의 소설을 보고 자신의 고민과 형의 고민이 매우 유사함 을 안다. 그러나 관모로 상징된 ‘부정적 현실의 힘’을 동생은 과도하게 평가하여 형의 소설 중 형 스스로가 김일병을 죽이는 것으로 결말을 짓는다. 동생은 신념이나 사명감을 완벽하게 펼 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아예 시도도 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이자 회의주의자인 것 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행동하는 두 지식인상인 것이다.

 

* 등장인물

· 형(의사) : 행동주의적 유형(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믿음)

· 동생(화가) : 현실 문제에 완벽한 대응이 서지 않으면 실천하지 않고 완백해질 때까지 기다리 며 생각하는 회의주의적(懷疑主義的) 인간

· 관모 : 인간의 이기심과 생존 욕구

· 김일병 : 암담한 현실에서 고통받으며 사라지는 민중들

 

󰃚 형이 쓴 소설에서는 관모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관모는 살아있다. 형은 거짓말을 한 셈인데, 그럼에도 왜 형이 그렇게 거짓으로 소설을 써야만 했는가?

󰂼 형의 입장에서는 어떻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그것을 가로막는 관모를 관념(觀念) 속 에서라도 없애야 했다.

 

[새로읽는 그때그작품] 이청준 소설 `병신과 머저리'

14년 전인 1983년, 대학 2학년 때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를 처음 접했다. 교정에 진주해 있는 무수한 사복경찰의 행렬, 학생회관 옥상에서 비참하게 끌려가던 선배, 가슴을 환하게 밝혀주던 전태일 평전 등 이내의식에 남긴 강렬한 화인에 비교할 때, 그 소설은 나에게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환부를 알 수 없는 아픔 때문에 고뇌하는 동생의 복잡미묘한 내면과 6․25때 패잔병으로 낙오되어 체험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고뇌를 거듭하는 형의 치열한 지적인 성찰은 만19살의 감동 잘하는 문학도에게는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심연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전개된 나의 문학적 여정은 어떤 의미에서는 [병신과 머저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하여, 소설 속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화가의 [환부 없는 아픔], [밀도 깊은 내면적 성찰], 그리고 의사인 형의 [소설쓰기를 통한 상처 다스리기], [실존적 아픔에 대한 냉철한 응시], 아울러 소설 전편을 통해서 은은히 배어 있는 지성의 향취 등을 열린 가슴으로 이해하고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1966년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병신과 머저리]는 6․25를 통해 온인생을 건 체험을 거친 형 세대와 4․19 혁명의 환희와 5․16이라는 배반을 거쳐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 속에서 절망하는 동생 세대 사이에 놓인 [실존적 감각]의 미묘한 차이를 묘사하고 있다. 6․25라는 확실한 아픔의 원인을 지닌 형에 비할 떠, [나의 아픔 가운데에는 형에게서처럼 명료한 얼굴이 없었다]고 진술되는 동생의 아픔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환부를 알 수 없는 아픔]의 메타포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혁명이 좌절된 세대, 혹은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싸울 대상을 발견하지 못한 세대의 나른한 환멸이 아닐까 한다.

1966년, 그 무렵이 바로 그러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6․3사태를 거친 후에 박정희 정권은 적어도 표면적인 차원에서는 탄탄일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지식인들은 경제개발과 선진조국 건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외에는 별다른 묘수가 없었다(지하조직으로 잠적해들어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병신과 머저리]에 등장하는 동생의 초상은 겨누어야 할 뚜렷한 과녁(적)을 발견하지 못하는 지금 우리 시대의 지식인과 닮아 있다. 무척이나 무덥던 1997년의 여름날 나는 [병신과 머저리]를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의 지식인은 [병신과 머저리]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었던 그 치열한 자기반성과 냉철한 자기응시를 보여 주고 있는가? 우리 시대의 젊은 소설가들은 31년전, 27세의 이청준이 보여주었던 정밀한 예술가 정신을 보여주고 있는가?

<권성우 동덕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발행일 : 97년 07월 29일

 


●봄·봄 : 김유정 소설

- 발단 : 결혼 문제를 둘러싸고 장인과 나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의 내용

 

“장인님! 인젠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 뭐구 미처 자라야지!”

하고 만다.

이 자라야지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장차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 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 하고 꼬박이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 전개 : 나와 장인의 갈등이 더욱 심화됨. 갈등의 발전에는 친구 뭉태의 충동질과 특히 <점순이>의 쫑알거림이 중요한 원인이 됨.

“밤낮 일만 하다 말텐가!”

하고 혼자서 쫑알거린다. 고대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좋은 수가 있는가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잣말로,

“그럼 어떻게?”

하니까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떻게.”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발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질을 친다.

(중략)

낮에 구장님 앞에서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고 빈정거는 것이 아닌가.

“그래 맞구두 그걸 가만 둬?”

“그럼 어떻하니?”

“임마, 봉필일 모판에다 거꾸로 박아 놓지 뭘 어떻해?”

(중략)

“네가 세번 째 사윈 줄 아니, 세번 째 사위.”

(중략)

“쇰(수염)을 잡아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

󰅉 절정 : 갈등이 마침내 서로 바짓 가랑이 잡는 사건으로 이어지고 <나>가 지게 작대기에 맞아 머리가 터지기가지의 요란스런 활극 장면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바짓가랑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옴켜 잡고 매달렸다. ‘악’ 소리를 치고 나는 고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 빙장님! 빙장님! 빙장님! ”

“······.”

나는 엉금엉금 기어 가 장인님의 바잣가랑이를 코기 옴키고 잡아 낚았다.

󰅊 결말 : 요란한 희극적 싸움이 끝나고 나와 장인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대목

내가 머리가 터지도록 매를 얻어 맞은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가 또한 우리 장인님이 유달리 착한 곳이다. 여느 사람이면 사경을 주어서라도 당장 내어 쫓았지. 터진 머리를 불솜으로 손수 지져 주고 호주머니에 희연 한 봉을 넣어 주고 그리고, “올 갈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 암말 말구 가서 뒷골의 콩밭이 나 얼른 갈아라.”

“······.”

“빙장님 ! 인제 다시는 안그러겠어유!”

이렇게 맹세하며 부랴부랴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갔다.

󰅋 작품상의 결말 : (바짓가랑이 잡는 싸움의 해학성 강조)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장인님을 원수로만 여겨서 잔뜩 잡아 당겼다.

“아! 아, 이놈아! 놔라, 놔, 놔!”

“······.”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

이렇게 꼼짝 못하게 해놓고 장인님은 지게 막대기를 들어서 사뭇 내려 조졌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도 않고 암만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점순이의 얼굴 멀거니 들여다 보았다.

“이 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해?” (결말부)

* 감상 : 혼인을 핑계로 일만 시키는 교활한 장인과 그런 장인에게 반발하면서도 끝내 이용당하는 어리석은 머슴인 ‘나’의 갈등을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농촌의 궁핍상과 순박한 생활상 을 향토적 정서와 함께 해학적 어조와 문체로 그려 내었다.

 

* 배경 : 1930년대 봄, 강원도 산골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우직하고 순박한 성품과 행동을 생생하게 묘사

* 표현상의 특징

· 과장된 희극적 상황 설정.

· 유머러스한 토속적 언어와 구어체 사용

· 엇갈린 시간구성

· 구성의 특이함 - 사건의 시간과 서술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역순행적 구성

⇨ [결말]이 [절정]속에 삽입 ( [절 (결말) 정] )

(이유 : 절정의 희극적 싸움이 주는 긴장감과 해학성을 살리기 위한 의도적 배치)

· 절정과 결말 부분이 명확히 나뉘어지지 않음

 

* 등장인물

· 장인 (봉필 = 욕필이;욕을 잘해서) : 혼인을 핑계로 ‘나’를 일만 시키는 의뭉한 인간. 첫째 딸 은 열 살 때부터 열아홉까지 데릴사위 열 사람을 갈아치웠으며, 그외 둘째 딸(점순이), 막내딸 (6세)을 두고 있다.

· 나(26세) : 작중화자. 우직,순박한 데릴사위인 머슴. 혼인시켜 준다는 말만 믿고 3년 7개월을 무일푼으로 머슴살이 함.

· 점순이(16세) : 붙배기 키에 모로만 자라는 몸으로 묘사. 키가 작으나 야무지고 당돌한 성격. 나의 배후에서 조롱하며, 장인과의 싸움에서는 엉뚱하게 장인 편을 든다.

· 뭉태 : ‘나’의 행동을 충동질 부채질함

 

* 제재 : 데릴사위

* 주제 : 의뭉하고 교활하기까지 한 장인과 어리숙한 데릴사위 사이의 해학적 갈등

* 출전 : [조광](1935)

 


●북간도(北間島) : 안수길 장편 대하소설

동쪽 창문이 훤했다.

날이 새기 시작하는가 보다.

꼬꼬 ------.

닭이 벌써 여러 홰 울었다.

멍, 멍, 머어 멍!

멀리서 세차게 개 짖는 소리가 단속적으로 들려 온다.

여우가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로도 들렸다. 슬픈 것 같으면서도 간절한 걸 호소하는 듯한 소리였다.

6월 초순, 음력으로는 단오가 지났다.

제법 짧아진 초여름 밤, 이 밤을 남편 때문에 뜬 눈으로 샌 뒷방예는 멀리서 전해오는 개 짖는 소리에 가슴이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 상기 오잴까?”

이 고장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렇지마는 뒷방예는 유난히 혀끝이 짧은 것 같은 발음으로 말을 한다. 지금도 그런 발음으로 한 마디를 뇌이면서 일어났다.

문을 열었다. 정주방 허리문이었다.

밖에 나갔다. (발단부)

* 배경 : 1870년 조선말기부터 광복까지, 만주 북간도

* 경향 : 사실주의

* 줄거리 : 월강(越江)이 금지되어 있는 두만강 건너편 비옥한 토지를 개간하여 이한복은 죽음을 무릅쓰고 북간도에서 농사를 짓는데, 어느 날 밤 몰래 감자를 가져온 그는 아들 장손(2대) 때문 에 관가에 잡혀 가서 신관 사또에게 당당히 북간도의 현실을 말하고는 곤장 10대를 맞고 풀려 난다. 한편 사또는 이한복을 다시 불러 함께 백두산 정계비를 확인하기에 이르고, 이후로 정부 의 협조로 북간도의 이주가 시작된다. 이런 사실을 안 청나라에서는 조선인의 생존권을 위협하 나 이한복을 중심으로 한 비봉촌 사람들은 끝까지 항거한다.

 

어느 날 창윤(3대)이 지주 밭에서 감자를 캐다가 잡혀 청국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한복은 손자의 억지 변발(辮髮)을 가위로 자르다가 분함에 쓰러져 죽는다. 비봉촌에는 차츰 중국인 지 주 동복산의 주구(走狗)로 변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결국에는 그의 송덕비를 세우게 된다. 그날 밤 송덕비 비각이 불타고, 창윤은 용정으로 도망가서 사포대에 지원한다. 얼마 후 다시 고향으 로 돌아와서 살았으나, 자식 정수(4대)의 교육과 지주의 잦은 압력으로 용정으로 옮긴다 정수는 신명 학교에 다니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창윤은 기와 굽는 일이 잘 되어 가는데 1차 대전이 터진다. 정수는 자신에게 항일의식을 길러 주던 교사(주인태)와 같이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만 세를 부르짖는다. 김좌진 장군 휘하(麾下)에 있는 정수는 일본군과 교전(交戰)도 했으나, 주위의 설득과 애인(영애)의 권유로 자수, 형(刑)을 살고 나온다. 옥에서 나온 정수는 우여곡절(迂餘曲 折) 끝에 직장을 가지나 다시 잡혀 옥에 갇힌다.

1945년 8월 15일 영애의 마중을 받으면서 정수는 감옥에서 나온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 구성

· 제1부 : 이한복 일가, 북간도 비봉촌으로 이주하여 청국 관헌과 토호들의 횡포로 인해 고난에 찬 삶을 산다.

· 제2부 : 1909년 간도협약으로 삶은 더욱 악화된다.

· 제3부 : 청인들의 압력으로 비봉촌을 떠나 용정에 정착하나 용정 대화재 (1911.5)로 기와 부업 이 활발해진다.

· 제4부 :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청인들의 배일 감정을 고조했으며, 조선인 이주민들 은 독립운동을 한다.

· 제5부 : 독립군은 일본군에 대항하고 정수는 이에 활약한다. 45년 일본의 패배와 함께 정수는 출감(出監)한다.

* 주제 : 한민족의 주체적 저항과 창조적 삶의 역사

* 의의 : 염상섭, 박경리 등과 함께 민족적 리얼리즘 작가로서 간도 이주민의 투쟁으로 점철된 삶과 애환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 출전 : 1959~67년까지 [사상계] 연재된 5부작

 

󰏐 역사소설로서의 북간도

역사소설은 당대적 현실을 인식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관련되는 문학이다. 그런데 이 과거는 시간의 적층 깊이 매몰되어 있어서 여간한 고통이 없이는 그 매장 상태가 쉽사리 벗겨질 수 없기도 하려니와, 역사 속에서 삶의 보편성을 살피고 역사에 대한 해석과 심미적인 정관을 정당화하는 것 역시 결코 용이하지 않은 과제가 부과되어 있는데, 역사소설은 바로 이 문제와 관련된 소설이다.

 

소설 <북간도>는 바로 이와 같은 점에 유의하면서 역사적 상상력을 가지고 간도의 역사와 국제적 힘의 역학 관계의 교차와 밀착되어 있는 간도적인 삶의 특이함을 소설화함으로써, 이전의 전통적인 역사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역사소설의 좌표를 분명히 하고 있는 소설이다.

 


●불 : 현진건 단편 소설

시집온 지 한 달 남짓한 금년에 열 다섯 살밖에 안 된 순이는 잠이 어릿어릿한 가운데도 숨길이 갑갑해짐을 느꼈다. 큰 바위로 내리누르는 듯이 가슴이 답답하다. 바위나 같으면 싸늘한 맛이나 있으련마는 순이의 비둘기 같은 연약한 가슴에 얹힌 것은 마치 장마 지는 여름날과 같이 눅눅하고 축축하고 무거운데다가 천 근의 무게를 더한 것 같다. 그는 복날 개와 같이 헐떡였다. 그러자 허리와 엉치가 뻐개내는 듯, 쪼개내는 듯, 갈기갈기 찢는 것같이, 산산히 바수는 것같이 욱신거리고 쓰라리고 쑤시고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발단부) (중략)

 

그날 밤에 그 집에는 난데없는 불이 건너발 뒷곁 추녀로부터 일어났다. 풍세(風勢)를 얻은 불길이 삽시간에 온 지붕에 번지며 훨훨 타오를 제 그 뒷집 담모서리에서 순이는 근래에 없이 환한 얼굴로 기뻐 못 견디겠다는 듯이 가슴을 두근거리며 모로 뛰고 세로 뛰었다. (결말부분)

* 시점 : 전지적 작가

* 등장인물

· 순이 :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육체적으로, 성적(性的)으로 고통받는 여인

· 남편 : 아내 순이를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인물

* 주제 : 한 어린 소녀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학대에 대한 비판

 


●불꽃 : 선우 휘 중편 소설 (제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고 노인은 또 한 번 동굴을 올려다보았다. 저 동굴 안에서 아들이 죽었고, 지금 또 손자가 저 속에서 죽음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자기도 또한 그것을 목격하며 위기의 순간에 서 있었다. 이 야릇한 숙명적인 불행의 부합(附合). 다시 고 노인은 눈길을 선친의 산소에 돌렸다. 문득 이처럼 가혹한 숙명의 사슬에 엉키도록 자기는 조상의 뼈를 묻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변사(變事) - 전쟁 앞에는 어떠한 원리도 무색해지는 것일까. 혈통이 이어져 뻗어가는 기준의 상실. 골수에 젖은 풍수원리(風水原理)를 굳게 믿고 조상의 뼈다귀를 메고 다닌 지난날의 노력의 공허.

* 감상 :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의 3대에 걸친 가족사, 3·1운동에서 6·25전쟁에 이르는 시대적 상 황 속에서 가족의 고난, 즉 민족의 수난사를 고현이란 젊은이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 줄거리 : 주인공 고현의 아버지는 1919년 3월 서울에서 북으로 백여 리 떨어진 P고을에서 일어 난 독립 만세 운동에 앞장 섰다가 일본 경찰의 총격으로 죽는다. 현은 유복자(遺腹子)로서 아버 지가 죽고 나서 아홉 달 만에 태어난다. 목에 혹이 나서 혹부리라고 불리는 현의 할아버지(고 노인)은 P고을에서 싸전(쌀 가게)을 경영하며 자기 개인만을 위해 살아왔다. 아들을 잃은 고 노 인은 젊은 여자를 재취(再娶)로 맞아들였고, 며느리인 현의 어머니에게는 현을 놓아두고 친정으 로 돌아가 재혼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의 어머니는 시아버지 말에 따르지 않고 현을 키우며 홀몸으로 살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고 노인은 강 건너에는 논 몇 마지기와 작은 초가집을 마련 해 주어 현의 모자가 따로 나가 살도록 한다.

농사를 짓는 어머니 밑에서 현은 5년제 중학교를 평범하게 마친다. 고등학교나 전문대학으로 진학하는 동급생이 적지 않았으나, 현은 어머니를 도와 농사 지을 생각으로 진학을 포기한다. 그러나 2년 뒤 어머니의 권유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현이 일본에서 공부한 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전선 확대로 병력이 부족해지자 일 본인 학생뿐 아니라 조선인 학생마저 동원해 가기 시작한다. 현도 동원되어 중국 전선으로 나 간다. 하지만 구타와 학대로 얼룩진 군대에 혐오를 느낀 현은 보초를 서다가 어둠을 틈타 탈출 한다. 중국 대륙을 헤매 다니던 현은 전쟁이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된다. 여학교에서 그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조 선생을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서 희미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살아 돌아온 기쁨도 잠시였다. 6·25전쟁이 일어나고 북한의 군대가 남침 하게 되고 P고을을 정복했던 것이다. 북으로 넘어갔던 현의 어릴 적 친구 연호는 공산당 골수 분자가 되어 돌아와 현을 설득한다. 그리고는 반동분자를 즉결 처형하는 인민 재판을 벌이고, 현에게 참석토록 권유한다. 인민 재판에 참석한 현은 그 야만성과 무도(無道)함에 분노해 총을 빼앗아 처형 집행자를 사살하고 그 옛날 아버지가 죽음을 맞았던 인근 부엉산 산마루 동굴로 피신한다. 연호는 현의 할아버지 고 노인을 앞세워 부엉산을 수색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이익만 을 위해 살았던 고 노인은 마지막 순간 자신은 죽더라도 자신의 손자는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동굴에 숨어 있는 현에게 도망가라고 소리를 친다. 결국 고 노인은 연호의 총에 맞아 죽 게 되고, 총소리를 들은 현은 동굴에서 뛰쳐 나온다. 연호와 현은 서로에게 총을 쏜다. 연호의 총알은 현의 어깨를 스쳐 가고, 현의 총알은 연호의 가슴을 뚫는다. 저 멀리 유엔군의 포성이 가까워지고 있다.

* 갈래 : 중편, 전후 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

* 표현 : 내적 독백, 의식의 흐름

* 등장 인물

· 고 현 : 할아버지(숙명론)와 아버지(저항주의) 가운데서 방황

- 일제말 학병, 탈출

- 광복 후 교사

- 6.25 전쟁 후 좌우 대립과 인민 재판을 경험

- 친구인 연호에게 총을 당겼을 때 ‘생명에의 불꽃’(새 차원의 비약을 다짐하는 생명력, 생 명의식)을 느낌

⇨ 우리 민족의 수난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인물

(소설 후반의 능동적 행위 말고는 기백이 결여된 소극적인 인물이며, 우유부단함을 보이기 까지 하는 인물임)

· 아버지 :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희생시키는 인물

· 할아버지 : 아버지와 정반대형의 인물로 철저한 현실주의자

· 조 선생 : 구원의 여인상 (민족보다는 가문을, 가문보다는 가족을, 가족보다는 자신을 우선으 로 삼음)

* 주제 : 한국 근대사의 비극적 갈등을 극복하고 자기 개혁을 실천하는 한 인간의 결의

 불꽃 : 현실 도피 ⇨ 현실참여

 

󰏐 <불꽃>의 심사평

“박력있는 문장으로 긴 세월(시대와 사회)을 치밀하게 제시하면서 그 속에 움직이는 인물들을 뚜렷이 보여준 솜씨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최정희)

 

󰏐 <불꽃>의 주제 구현

이 작품은 1957년 발표되자 대단한 반응이 일어났으며, 곧바로 선우휘는 동인문학상을 받아 일급 작가의 위치에 뛰어 올랐다. 1957년은 6·25전쟁이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이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 의식과 좌절감은 지성인을 비롯한 뜻 있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 반성이 작가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작품의 주제로 부각된 것도 당연한 노릇이었다.

 

<불꽃>은 불꽃처럼 강렬한 좋은 소설이다. 그러나 방법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지금 시각에서 볼 때 거의 기교가 발휘되지 않았다. 시대를 배경으로 고현과 할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평범한 방법으로 펼쳐 나갔을 뿐이다. 작품에는 주제가 강한 것이 있고, 방법이 강한 것이 있다. 즉 사회 참여적인 요소(운동권 소설, 분단 문학, 사회의 도덕성이나 비리를 파헤친 소설 등)와 인생과 세계의 근원적 문제(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 등)를 주로 다룬 것이 있고 예술적 형상화(김승옥의 소설들)를 주로 한 것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에게 권한이 있다. 선우 휘는 이 작품을 구상하면서 주제를 주로 다루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불신시대(不信時代) : 박경리 단편 소설

* 배경 : 1950년대 서울, 9·28 수복 직후 혼란기

* 시점 : 전지적 작가

* 등장인물

· 진영(眞英) : 한국전쟁 중 남편을 잃고 한 점 혈육인 아들(문수)마저 거리에서 넘어져 의사의 무성의(엑스레이도 찍지 않고 약도 준비 않는)로 죽게 되는 비극의 여인. 아들 죽음으로 사회를 불신하게 만든다. 폐결핵이 걸려 찾아가는 병원은 한결같이 엉터리였는데, Y병원은 주사약의 분량을 속이고, S병원은 건 달꾼이 의사 노릇을 하였고, H병원은 빈 외제 약병을 내 다 팔고 있는 모습이었다.

· 여승 : 시주로 받아 온 쌀을 팔려고 하는 인물로 비친다. 문수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찾은 절은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대접을 달리하는 타락한 곳이다.]

· 갈월동 아주머니 : 진영이 신앙으로 의지하려 했던 인물이나 진영의 돈을 갈취한다.

* 주제 : 혼란스럽고 부정한 사회상 고발

* 1975년 [현대문학] 발표

 


●붉은 산 : 김동인 단편 소설

‘동해물과 백두산이......’

고즈너기 부르는 여긔 창가 소리에 뒤에 둘러섰던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도 숭엄한 노래는 울리어나왔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광막한 겨울의 만주 벌판 한편 구석에서는 밥버레 익호의 죽음을 조상하는 숭엄한 노래가 차차 크게 엄숙하게 울리었다. 그 가운데 익호의 몸은 점점 식어갔다. (결말부)

* 감상 : 이 작품은 환경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등장 인물들의 반격에 심각한 의미를 부여한 작품 이다. 일제 강점기 만주로 이민 가서 살던 우리 민족이 이민족에게 격은 수난사를 ‘삵’이라는 한 인물의 특이한 삶을 통해 구체화하면서, 조국 독립의 절실함을 표출하고 있다. 일인칭 관찰 자 시점의 주체인 ‘나’(소설속에서는 ‘여’)는 의사 신분으로 관찰 대상인 ‘정익호(삵)’의 기이 한 행동을 추적하여 마침내 그 행동의 이면에 깃든 민족정신을 밝혀주는, 소설 전개상의 중요 한 계기적 인물이 되고 있다.김동인으로서는 유난히 역사 의식을 내세우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삯‘은 고국을 떠나 유랑하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고 있으며 송 첨지의 죽음은 만 주에 흘러들어가 사는 우리 동포의 비극을 상징한다. ’삯‘은 마음 속으로만 비분강개할 뿐인 백의 민족의 무기력함을 박차고 만주인을 향해 복수를 꾀한다. ’삯‘의 임종시 하는 말에서 ’붉 은 산‘과 ’흰옷 입은‘은 우리 국토와 겨레를 그리는 것으로 조국에 대한 애정과 향수를 나타낸 다.

* 줄거리 : 주인공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서 만주로 들어가 조선인(한국 사람)만이 모여 살면서 소작으로 생계를이어가는 한 마을에 이른다. 그 마을에는 어디에서흘러 들어왔는지 `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교포 청년 ‘정익호’가 있다. 삯은 동리에서 깡패로 소문난 사람으로 동리 사 람들의 미움과 저주를 아랑곳 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1년이나 보낸다. 그는 괴팍하고 간 교할 뿐만아니라 생김새나 행동거지가 모두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미움을 사도록 한다. 그가 하는일은 투전이 일쑤며, 싸움, 트집, 칼부림, 색시에게 덤벼들기 등 온갖 못된 짓 을 다한다. 이런 삵을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실현시키지 못한다. 그러던 중 이 동 네 주민인 송 첨지가 그 해의 소작료를 나귀에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부당하게 폭행을 당하여 죽자, 주민 모두가 원수를 갚자고 흥분하나 막상 지주와 맞서려는 사람은 없다. 이런 이야기를 삵이 듣고는 얼굴에 비장한 기운이 서린다. 다음날 아침, 그는 동구 밖의 밭고 랑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단신으로 못된 만주인 지주의 집에 가서 송 첨지를 죽인 분풀이를 한 것이다. 마을 사람 들이 모여 불러주는 애국가를 들으며 그는 죽어간다.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주제 : 일제 치하 만주에서 고통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상

* 출전 : [삼천리](1932)

 


●비밀의 문 : 김내성 소설

괴도(怪盜) 그림자

‘그림자’ 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던 무서운 도적이 서울 장안에 나타나서 한 개의 커다란 흥분을 시민들에게 던져 준 것은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 -- 그 때도 요즈음처럼 종로 네거리의 아스팔트가 엿 녹듯이 녹아 나가던 팔월 중순, 뜨거운 태양이 바로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불타듯이 이글이글 내려쪼이던 무더운 삼복 허리였다.

* 감상 : 수수께끼가 물음과 그에 대한 상대방의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이야기의 문학 구조 가운데는 어떤 질문의 상황을 전제로 그것을 풀어 나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구조의 이야기를 ‘물음과 풀림 구조의 이야기’라고 한다. 탐정소설이나 추리소설은 가장 전형적인 ‘물음과 풀 림 구조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그림자’라는 괴도가 강세훈 박사가 발명한 살인 광선의 설 계도를 훔치겠다는 경고로부터 이야기의 상황이 벌어진다. 물론 작가는 흥미를 가중시키기 위 해 신출귀몰한 괴도인 ‘그림자’에 대한 진지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 문학사 에 있어서 본격적 추리 소설을 쓰기 시작한 김내성의 초기 작품이다. 시점이나 사건 전개에 지 나친 작위적 요소가 드러나고 있으나 사건의 흥미를 가중시키기 위해 지연과 반전의 표현 기 법, 과장적 표현을 사용한 일정의 추리 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 줄거리 : ‘그림자’라는 괴도(怪盜)로부터 그가 강세훈 박사가 발명한 살인 광선의 설계도를 훔치 겠다고 하는 경고가 날아든다. 그러나 실제로 귀신같이 탈취당한 것은 박사의 딸 영채였으며, 괴도는 설계도와 딸을 바꾸자고 강 박사에게 제의해 온다. 망설이던 강 박사는 진짜 살인 광선 설계도를 괴도에게 내 주려 한다. 그래서 영채를 사랑한다고 하던 세 명의 남자 (윤정호 씨, 김 중식 씨, 백일평 씨)중에서 가난한 작가인 백일평이 거짓 설계도를 가지고 영채를 구하러 간다. 그리고는 한강 인도교 다릿목 아래에서 괴도 그림자와 마주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영채가 아버지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 그리고 그녀의 진정한 애인을 찿기 위해서 저지른 조작극이었 음을 밝혀진다. 이런 사실을 아버지 강 박사에게 편지로 보낸 영채는 백일평과 함께 인천행 열 차에 몸을 싣는다.

* 갈래 : 추리 소설, 단편 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상의 특징

· 작가가 깊숙히 개입하고 있다.

· 지연과 반전의 기법이 사용됨

· ‘물음과 풀림의 이야기 구조’

* 등장인물

· 강세훈 박사 : 살인 광선을 발명함.

· 영채 : 강세훈 박사의 딸.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가짜 납치극을 꾸밈

· 백일평 : 영채를 사랑하는 남자.

· 그림자 : 괴도(怪盜)

* 주제 : 딸에 대한 인간적 사랑의 회복과 진정한 애정

 


●비 오는 날 : 손창섭 소설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면 원구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도록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동욱 남매의 음산한 생활 풍경이 그의 뇌리를 영사막처럼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원구는 으레 동욱과 여동생 동옥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비록 맑은 날일지라도 동욱이 오누이의 생활을 생각하면, 원구의 귀에는 빗소리가 설레이고 그 마음 구석에는 빗물이 스며 흐르는 것 같았다. 원구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동욱과 동옥은 그 모양으로 언제나 비에 젖어 있는 인생들이었다.

* 감상 : 이 작품의 배경은 부산이다. 부산은 한국전쟁 중에 고향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비극적인 장소이다. ‘폐가와 장마’라는 배경 또한 주제 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의 우울한 내면 심리를 다룬 전후문학이다.

 

사건의 직접 제시보다 어떤 사건에 의해 환기된 심경의 변화를 그리는 일이 앞서고, 객관적 인 물 묘사보다 처음부터 작가에 의해 주관화된 냉소적인 관찰로 인물 묘사가 행해지는 특이한 소 설양식을 갖고 있다. 주로 간접 화법에 의해 대화가 처리되며, 부사어 및 ‘것이다’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으로 이를 알 수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은 6.25 라는 전쟁이 개인을 어떻게 황폐화 시킬수 있었던 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이범선의 「오발탄」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 준다.

* 줄거리 : 동욱은 현재 누이동생 동옥과 1.4 후퇴 때 월남해서 살고 있다. 소학교 시절부터 친구 인 원구 역시 월남해서 행상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으나 오히려 친구인 동욱과 동옥의 생활을 걱정한다. 피난지 부산에서 원구는 리어카에 잡화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옥은 어려서 부터 그림을 좋아하는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로 왼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 부자유자이다. 그의 오빠인 동욱 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며 착실한 교인으로 목사 지망생이었다.

 

그러나 6.25 라는 전쟁은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월남 이후 동욱은 미군 부대를 전전하 면서 초상화를 주문 받고 동옥은 집에서 초상화를 그리면서 생계를 간신히 꾸려 나간다. 그들 은 인가에서 외딴 곳, 황폐한 집에 사는데, 그들이 살고 있는 목조 건물조차 그들의 비참한 생 활을 나타내고 있다. 동옥이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곳에 사는 것이다. 장마가 진 어느 날 원구가 동욱의 집을 찾아갔으나 동옥의 얼굴에서는 자조적인 웃음밖에 발견 할수 없었고, 오히려 냉담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구는 돌아오다가 동욱을 만나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지붕은 비가 새어 방안에 양동 이를 받쳐 놓았는데 빗물이 가득한 것을 버리려다 쏟고 말았다. 그때 물을 피하려 일어나는 동 옥을 보고야 동옥이 다리 불구라는 것을 알았다. 그 후 비오는 날이면 자주 그 집을 방문하였 는데, 점차 동옥이 원구를 대하는 태도가 좋아진다.

 

그러던 어느날 이후 동욱은 그의 유일한 생계인 초상화 작업마져 하지못하게 된다. 그래서 동 옥이 너무 불안해 하니 자주 찾아와 위로해 주라는 부탁을 동욱이 원구에게 한다. 다시 비오는 날, 그들을 찾아가니, 동옥이 그동안 모아둔 돈을 빚낸 주인 노파가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그 래서 동옥은 더욱 절망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욱과 동옥이 세들어 살던 집마져 주 인이몰래 팔고 도망가 버려 결국 그집에서 나오게 된다.

 

원구가 한달여 만에 그집을 방문했을때 이미 그들은 떠나고 없어 궁금해 한다. 아마도 동욱은 군대에 끌려가고- 그 당시는 검문해 증명이 없으면 군대에 끌려 가게 되어 있었다. - 동옥은 주인 녀석이 사창가에 팔아 먹은 것같다는 격분과 자책을 안고 돌아온다.

* 배경 : 6.25중 장마철, 피란지 부산의 변두리

* 시점 : 전지적 작가

* 어조 : 소외된 인간상을 피학적(被虐的) 어조로 묘사함

* 특징 : 사회적 배경과 상황적 배경, 시간·공간적 배경이 적절히 배합되어 생존의 비극성을 밀도있게 구현.

* 등장인물

· 원구(元求) : 서술자(동욱의 친구, 동욱 남매에게 온정을 베푸는 인물)

· 동욱(東旭) : 전쟁의 피해자로 무기력한 인물

· 동옥(東玉) : 동욱의 여동생. 소아마비로 신체 불구자. 생계유지를 위해 초상화를 그림.

* 주제 : 전쟁이 가져다 준 인간의 무기력한 삶

· 전쟁의 와중에서 생계의 수단과 삶의 의지를 상실한 인간의 비참한 모습

* 출전 : [문예]

 

 


●빈처(貧妻) : 현진건 단편 소설

예술가의 처 노릇을 하려는 독특한 결심이 있는 그는 좀처럼 이런 소리를 입밖에 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무엇에 상당한 자극만 받으면, 이런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이런 소리를 들을 적마다 ‘그럴만도 하다’는 동정심이 없지 아니 하나, 심사가 어쩐지 좋지 못하였다.

* 감상 : 우리 나라 단편소설의 기교를 확립한 작품이다. 가난한 부부의 행복과 부유한 부부의 불 행을 대조시키면서 당시의 궁핍상과 식민지 사회의 모습을 투시한 작품(현진건의 자서전적 요 소가 강함)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등장인물

· 아내 : 주인공

* 출전 : [개벽](1921)

 


●사랑 : 이광수 1938년 작품

󰏐 작품의 이해

사랑의 주된 골격은 안빈과 순옥, 옥남 그리고 허영과 귀득을 정점으로 하는 애정의 삼각관계의 갈등 구조이다. 그 중에서 안빈을 정점으로 한 순옥과 옥남의 삼각 관계는 사랑의 최초의 갈등으로 구조의 긴장을 가져 온다. 성취 욕망의 대상이요, 중개자를 흠모하여 안빈의 병원에 간호부로 가는 순옥은 안빈의 처인 옥남과 대척적인 관계가 되어 개인적 욕구와 사회적인 관습의 충동을 가져 온다.

 

한편 귀득은 허영이 순옥에게 버림을 받았을 때 만난 여인으로서, 둘 사이에서 낳은 섭을 아버지에게 돌려 주기로 하고 물러난 여자였으나, 순옥이 몰래 허영과의 관계를 지속해 온 터였다. 순옥의 남편으로 장차 이혼하는 허영은 끝까지 대척적인 위치의 인물인 안빈과 뒤에 출현하는 이의사 때문에 순옥을 괴롭히지만 순옥은 그를 구제 하려고 진실한 사랑을 베푼다. 이것은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인 아가페적 사랑의 실천으로 불보살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 사랑이다.

여기서 우리는 안빈을 구세주 예수로, 순옥을 주예수의 사도로, 안빈을 부처님으로 순옥을 보살로 상정할 수 있다. 더구나 극한 상황인 유행성 감기의 창궐(猖獗)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자신을 던지는 순옥의 모습에서 천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안빈의 말대로 ‘인연 있는 모든 중생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지고의 사랑임을 순옥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평범한 범인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 : 주요섭 단편 소설

하루는 밤에 아저씨 방에서 놀다가 졸려서 안방으로 돌아오려고 일어서니까 아저씨가 하이얀 봉투를 서랍에서 꺼내어 주었습니다.

“옥희, 이것 갖다가 엄마 드리고 지나간 달 밥값이라고 해, 응? ”

나는 그 봉투를 갖다가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 봉투를 받아들자 갑자기 얼굴이 파랗게 질리었습니다. 그 저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있을 때보다도 더 새하얗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봉투를 들고 어쩔 줄을 모르는 듯이 초조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거 지나간 달 밥값이래.”

하고 말을 하니까 어머니는 갑자기 잠자다 깨나는 사람처럼 응?하고 놀라더니 또 금시에 백짓장같이 새하얗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습니다. 봉투 속으로 들어갔던 어머니의 파들파들 떨리는 손가락이 지전을 몇 장 끌고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입술에 약간 웃음을 띠면서 후하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 감상 : 동심의 눈을 통해 젊은 과부(寡婦)와 남편의 옛 친구 사이의 미묘한 연정과 심리적 갈등 을 선명하게 부각시킴 작품이다. 어린 소녀(나)를 관찰자 역할로 맡김으로써 자칫 빠지기 쉬운 통속적 사랑을 신선한 각도에서 보게 하였다.

 

* 주요사건

· 옥희네 사랑채에서 하숙하게 되는 아저씨

· 첫날부터 아주 잘 해주는 아저씨가 좋은 옥희

· 삶은 달걀이 좋다고 하는 옥희의 말을 이어 받아 삶은 달걀을 반찬으로 내어 달라고 하는 아저씨(옥희는 더욱 좋아하게 됨)

· 어느 날 어머니를 놀라게 해 준다고 벽장 속에 숨었다가 그만 잠이 들게 되어 화나게 만든 다.

· 기분을 좋게 해 주기 위해 유치원에서 선생님 책상 위에 꽂혀 있는 빨간 꽃을 몰래 빼다가 어머니에게 주면서, 사랑 아저씨가 엄마 갖다 주라고 했다며 거짓말을 한다.

·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런 걸 받아 오면 안 된다고 화를 냈다.

· 어머니는 오히려 버리지 않고 풍금 위에 놓아둔다.

· 옥희가 사랑방에서 놀고 있는 순간, 소복(素服)을 입고 달빛을 받으며 풍금을 타고 있는 어 머니는 눈물을 흘린다.

· 어머니의 말 “옥희야 너 하나문 그 뿐이다.”

어느 날 아저씨가 밥값 봉투를 옥희에게 건네 주라고 하자, 어머니는 봉투를 받고 몹시 당황 하면서 봉투를 연다. (꽃을 받았을 때보다 더욱 당황한다.)

· 그날 밤 어머니는 장농 문을 열고 아버지의 옷을 꺼내 놓고 옥희와 함께 기도한다. “시험에 들지 말게······.”

· 어머니는 어떤 때는 매우 즐거워 하다가 금새 풀이 죽고 우울해지는데 그 이유를 옥희는 궁 금해 한다.

· 그럭저럭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아저씨는 짐을 꾸려 하숙을 나간다.

· 기차가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어머니는 하염없이 그 쪽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 와서 책갈피 속에 끼워 놓은 꽃송이를 옥희 더러 버리라고 한다.

 

* 시점 : 1인칭 관찰자

* 문체 : 경어체, 구어체

* 배경 : 시골의 조그마한 읍

* 특징 : 인간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묘사

 

* 등장인물

· 어머니 : 봉건적 인습의 굴레로 사랑을 버리는 전형적 한국 여인(24세)

· 나(박옥희) :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관찰자. 주인공인 ‘어머니’를 관찰하는 딸(6 세)

· 아저씨 : 또 다른 주인공. 아버지의 옛 친구. 옥희 동네의 교사로 부임, 하숙에 들어와 어머니 를 사랑하고 있음.

· 외삼촌 : 중학교에 다님

* 주제 : 남편의 친구인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은근한 애정과 전통적 인습(因襲) 사이의 갈등


 

●사립정신병원장 : 현진건 단편소설

* 경향 : 사실주의 소설

* 배경 : 1920년대 일제강점기의 어느 시골

* 시점 : 주인공 W의 이야기를 ‘나’가 관찰, 전달함.

· ‘나’ : 주인공을 동정하며 긍정적 입장에서 봄

* 주제 :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의 비참했던 생활상. (주인공 W)

  사립정신병원장이란 칭호는 먹고 살기 위해서 정신병 환자를 돌보게 되었기 때문임.

---  <가난>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 원래 <국문본>, 김춘택의 <한문본>도 있음

“쇼승의 구는 바른 다른 시문이 아니오라 일즉 관음화샹을 어더 두고 높은 시문을 어더 찬양코져 오되 곳 녀자의 몸이시라. 부 녀의 문필을 바다야 가히 합당할 듯오니, 바라건 쇼져는 조곰도 혐의치 마시소 익이 각쇼셔.”

부인 왈

“부의 말이 고이치 아니 네 죄 밋지 못즉 못 려니와 이 글은   다른 무익지문과 다르니, 아므커 글졔를 보고져 노라.”

니 이의 묘희 종를 불너 족를 드려다가 펼쳐 노흐니, (중략)

쇼졔 펴보다가 왈,

“나의 흔 바는 오직 유도의 글이요, 불가셔는 모로니 비록 강작고져  마 부의 놉흔 안목의 지 못가 노라 (중략)

쇼졔 부득이 여 족를 걸고 분향  후, 앏 나아가 필을 혀 관음찬 일이십 를 일필노 족의 쓰고 그 아 모년 모월 모일의 샤시 경옥은 근셔라 엿건, 묘희 약간 글을 아는고로 그 문필을 못 탄복고 부인과 쇼져를 향여 무슈이 례고 도라오니라.

--- 사씨 처녀의 뛰어난 글재주와 인품이 드러난 부분

 

- 관음찬 : 관음보살을 예찬하는 글

- 무익지문 :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글

- 혀 : 빨아

- 근셔: 근배서(謹拜書), 곧 삼가 절하며 쓴다는 뜻으로 편지 끝에 쓰는 말

* 줄거리 : 주인공 ‘사씨’(이름은 사정옥, 謝貞玉)가 한림학사 유연수와 결혼하여 오래도록 아이 를 낳지 못하자 ‘교씨(喬氏)’를 첩으로 맞게 했다. 아들을 낳고 교만해진 교씨의 흉계(凶計)로 집을 쫓겨나 남방을 유랑하다 후에 교씨의 흉계가 드러나자 남편이 회개하여 다시 사씨를 맞 아들여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 처첩의 다툼을 그린 소설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사씨는 조선 사회의 현숙(賢淑)한 부인의 상징이며,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전형(典型)이다. 특히 김만중이 인현왕후를 염두에 두고 썼기에 사씨부인의 생애는 인현왕후와 비슷한 점이 많다.

 

* 감상 : 여주인공 사씨는 인종만을 미덕으로 아는 전형적인 열녀형이다. 질투나 시기는 칠거지악 (七去之惡)이라 하여 교씨를 미워하지 않았고, 무자(無子)가 큰 불행이라 하여 첩을 손수 맞아 들이는 것이 그렇다. 한 마디로 운명적 여인이며 고진감래의 표상이다.

 

* 주제 : 권선징악(勸善懲惡)

* 의의 : 김만중이 <구운몽>을 쓴 뒤에 쓴 작품으로 숙종이 장희빈에게 홀려 인현왕후(仁顯王后)를 쫓아 냄을 풍자하여 마음을 돌이키려고 한 일종의 목적 소설이다.

---  문학이론 <가정소설>

 


●사하촌(寺下村) : 김정한(金廷漢) 단편 소설

타작 마당 돌가루 바닥같이 딱딱하게 말라 붙은 뜰 한가운데, 어디서 기어 들었는지 난데없는 지렁이가 한 마리 만신에 흙고물 칠을 해가지고 바동바동 딩굴고 있다. 새까만 개미떼가 물어뗄 때마다 지렁이는 한층 더 모질게 발버둥질을 한다. 또 어디선지 죽다 남은 듯한 쥐 한 한 마리가 튀어 나오더니 종종걸음으로 마당 복판을 질러서 돌담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 감상 : 수탈당하는 농촌의 피폐한 현실과 농민들의 저항의식을 사실주의적 수법으로 그린 소설 이다. 억압받는 농민들의 끈질긴 삶을 통해 이 땅의 민중에 대한 애 정을 보여 주고 있으 며, 결말 부분에서 모순에 대결하는 민중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주인공이 없고 모순 된 현실 속에서 고통을 겪는 동안 어려운 사람끼리 연대를 형성해 가는 농민 집단 전체가 주인 공이다.

 

󰏐 작품 정리

 

1. 배경과 갈등제시

 

(1) 공간적 배경

보광리(중의 마을)

⇦⇨

성동리(소작민마을)

· 보광사(普光寺) · 쇠다리 주사(이주사):이조 말년에 고을 원님

· 젊은이들 : 농번기에 에게 쇠다리 하나 상납해 ‘주사’자리 얻음

여자들을 데리고 · 이시봉(고자장이)

자동차로 여행이나 함. · 철한.봉구

· 치삼노인과 아들(들깨)-아내,

· 노인의 딸(덕아, 17세), 노인의 손자

 

(2) 시간적 배경 : 가뭄으로 모든 것이 타들어가는 초여름

···· 이런 흉년 아래에서도 소작료를 모두 바쳐야 하는 일제하의 모순된 농 촌 현실 ( 갈등 )

* 특징 : 작품 서두에서부터 곧바로 사건 전개의 현실적 배경이 제시됨

 

2. 두드러진 사건

(1) 가까운 도시의 수돗물을 대기 위해 저수지 공사바람에 조금만 가물어도 농사에 타격이 옴. (수도 출장소에서는 농민의 폭동이 염려될 뿐더러 저수지 청소를 위해 물꼬를 조금 터놓으나 적은 물이기에 모두 논에 다 댈수가 없어 날마다 싸움)

(2) 보광리의 팔자 좋은 젊은이와 논을 매는 농민의 대조적 묘사(자동차를 타고 계집애를 데리 고 나타남)

(3) 비가 오지 않아 보광사에서 기우제를 지냄 (말이 기우제이지 실상은 시주를 걷는 행사)

(4) 농사는 망가져 가는 가운데 추석이 오나 더욱 괴로워하는 성동리 주민들.

(5) 모두 살기 위해 산으로 올라감(남자는 지게 지고 나무하며, 여자는 바구니에 버섯을 땀)

(6) 어느 날 보광사의 산지기에 쫒겨 도망치던 어느 소년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음. 이에 가동 할머니는 미치게 됨 (주재소에서 나온 순사 역시 피해자 편을 들지 않음)

(7) 가뭄으로 농사를 망쳤는데도 보광사에서는 소작료를 책정하기 위해 간평을 나옴 (면서기 진수네 집에서 술과 고기로 포식한 다음 소작농의 형편은 아랑곳 않고 책정함)

(8)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는 농민들은 소작료 면제와 차압 취소라는 요구를 내걸고 궐기.

---  <농촌소설>

 

 1) 이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나타내려는 인간 유형은 ?

① 현실 순응적인 소극적 인간 ② 전통에 얽매인 보수적 인간

③ 세태에 민감한 현실주의 인간 ❹ 현실의 모순과 대결하는 인간

⑤ 현실에 무감각한 이기적 인간

 2) 당시의 <착취당하는 농촌 현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을 배경 묘사 [발단] 부분에서 고르시오.

- 가 뭄

 


●삼국지(三國志)

󰊱 진수(陣壽) [삼국지]

위(220-265), 촉(221-263), 오(222-280) 삼국의 역사를 국가별로 기록한 기전체(紀傳體)의 정사(正史)임. 즉 위지(魏志)(본기·本紀4 열전·列傳26), 촉지(蜀志)(열전15), 오지(吳志)(열전20)의 3부 전 65권. 제호(帝號)를 붙인 것은 위나라 뿐이며 촉의 유비·유선은 선주(先主), 후주(後主)라고만 높여 불렀고, 오는 모두 이름을 그대로 적었다. 삼국이 분립되어 있었지만 천하의 주권은 위에 있다는 체재이다.

 

이것은 진(晋)이 오를 멸하고 중국을 통일한(280) 후 5년 되는 285년에 본서가 성립되었고, 저자인 진수(233-297)가 진의 저작랑(著作郞)이라는 벼슬자리에 있었으므로 당연한 처사였던 것이다. 진은 형식상으로 위(魏)로부터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받은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배송지(裵松之) [삼국지주(三國志注]

송(宋)의 문제(재위 424-452)는 [삼국지]의 기사(記事)가 너무 간략하다 하여 중서시랑인 배송지(372-451)를 시켜 주(注)를 달게 함. 이 주는 양적으로 삼국지본문의 수배가 될 정도이며 단순한 자구 해석이 아니고 140여 종의 사서(史書)를 인용하여 본문의 부족을 보충했으며 풍부한 일화를 수록하여 난세의 인물들을 잘 조감할 수 있도록 했다. [삼국지연의]는 실로 [삼국지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도 본다.

󰊳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원명 삼국지통속연의)

[삼국지연의]는 후한(後漢) 영제(靈帝) 말년(중평 원년 184)에서 진(晋) 무제(武帝)의 태강 원년(280)까지 97년간에 걸친 전쟁과 정치의 이야기임. 최고의 간행본은 홍치본(弘治本-일명 가정본·嘉靖本)이며 전24권. 미국 국회도서관에 완본이 있고, 1929년 상해 상무인서관에서 가정서(序)를 빼고 인행해 낸 것이 있다.

 

본서의 권두에 진평양후진수사전 후학나본관중편차(晋平陽侯陣壽史傳 後學羅本貫中編次)라는 말이있는 것으로 보아 나관중의 작이 틀림없다. 나관중(1328?-1398) 에 대해서는 종래 14세기 말(원말 명초)의 극작가, 통속소설가였다는 점만 언급되고 있을 뿐 연대도 미상이다.

 

그런데 최근 발견된 [속록귀박(續錄鬼簿)]에서 나관중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나관중은 태원(太原) 사람이며 호를 호해산인(湖海散人)이라고 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적고 그의 악부(樂府)와 은어(隱語)는 극히 청신했다. ”

 

나관중의 사회적 신분면을 살펴 보면, 당시 극작가나 소설가는 실의의 지식인이요, 그들의 불평불만을 이러한 문학 활동을 통해 토로한 것 같다. 원나라 때는 서회(書會)라고 불리는 희곡 · 소설가들의 조직이 있었고, 작가를 서회선생, 혹은 재인(才人)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과거 낙방 문인의 일부가 서점(출판사)에 고용되어 전래 화본의 정본화(定本化)와 장편 소설의 편정(編定)에 종사했다. 이들은 작품 편정에 자신의 시사(詩詞)를 삽입하여 자신들의 시사 제작의 능력을 과시하는 한편 불우한 자신들의 시문들에 대한 애착과 열등의식을 표출하기도 했다.

[삼국지연의]의 특색은

① 중국 최초의 본격적 역사소설,

② 언어·문체에 있어 속어와 아어(雅語-고전어)를 적소에 적절히 쓰고 구어체와 문어체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

③ 철저하게 촉(蜀)을 정통으로 내세운 민족주의적 작품(당나라 유지기 [사통], 송나라 구양수 [정통론], 소식의 [정통변론], 사마광 [자치통감], 주희 [통감강목] 등을 거쳐 주희의 역사철학인 ‘명분론’에 의한 촉 정통론 이후 촉 정통성은 일반적으로 주자학의 성행과 더불어 확고해졌다. 그리고 한민족이 중원을 잃고 이민족의 지배하에 있었던 시대에 특히 촉 정통론이 활발했다는 것은 민족주의의 반영인 것이다.

 


●삼대(三代) : 염상섭 장편 가족사 소설

두 친구

 

덕기는 안마루에서, 내일 가지고 갈 새 금침을 아범을 시켜서 꾸리게 하고 축대 위에 섰으려니까, 사랑에서 조부가 뒷짐을 지고 들어오며 덕기를 보고,

“얘, 누가 찾아왔나 보다. 그 누구냐? 대가리꼴 하고······.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거야. 친구라고 찾아온다는 것이 왜 모두 그 따위뿐이냐?”

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못마땅하다는 잔소리를 하다가, 아범이 꾸리는 이불로 시선을 돌리며, 놀란듯이

“얘, 얘, 그게 뭐냐? 그게 무슨 이불이냐?”

하며 가서 만져 보다가,

“당치 않은! 삼동주 이불이 다 뭐냐? 주속이란 내 낫세나 되어야 몸에 걸치는 거야. 가외 저런 것을, 공부하는 애가 외국으로 끌로 나가서 더럽혀 버릴 테란 말이냐? 사람이 지각머리가······.”

하며, 부엌 속에 쪽치고 섰는 손주며느리를 쏘아본다.

덕기는 조부의 꾸지람이 다른 데로 옮아간 틈을 타서 사랑으로 빠져 나왔다. 머리가 덥수룩하고 꼴이 말이 아니라는 조부의 말눈치로 보아서 김병화가 온 것이 짐작되었다.

“야아, 그러지 않아도 저녁 먹고 내가 가려 하였었네.”

덕기는 이틀 만에 만나는 이 친구를, 더욱이 내일이면 작별하고 말 터이니만치 반갑게 맞았다.

“자네 같은 부르주아가 내게까지! 자네가 작별하려 다닐 데는 적어도 조선 은행 총재나······.”

병화는 부옇게 먼지가 앉은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딱 버티고 서서 이렇게 비꼬는 수작을 하고서는 껄껄 웃어 버린다.

“만나는 족족 그렇게도 짓궂게 한 마디씩 비꼬아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겠나? 그 성미를 좀 버리게.”

덕기는 병화의 부르주아, 부르주아 하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먹을 게 있는 것은 다행하다고 속으로 생각지 않은 게 아니나, 시대가 시대이니만치 그런 소리가 󰠏󰠏󰠏더구나 비꼬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들어가세.”

“들어가선 무얼 하나. 출출한데 나가세그려. 수 좋아야 하루에 한 끼 걸리는 눈칫밥 먹으러 하숙에 기어들어가고도 싶지 않은데······. 군자금만 대게. 내 좋은 데 안내를 해 줄게!”

“시원한 소리 한다. 내 안내할게 자네 좀 내 보게.”

하며, 덕기는 임시 제 방으로 쓰는 아랫방으로 들어갔다.

“여보게, 담배부터 하나 내게. 내 턱은 그저 무어나 들어오라는 턱일세.”

하며, 병화는 방 안을 들여다보고 손을 내밀었다.

“나 없을 땐 온통 담배를 굶데그려.”

덕기는 책상 위에 놓인‘피전’갑을 들어 내던지며 웃다가,

“그저 담배 한 개라도 착취를 해야 시원하겠나? 자네와 나와는 착취, 피착취의 계급적 의식을 전도시키세.”

하며 조선옷을 훌훌 벗는다. (제1장 발단부)

* 줄거리 : 대지주인 조부 조의관은 양반 행세를 하기 위해 족보를 사들일 정도로 명분과 형식에 얽매인 구세대의 전형이고, 아버지 상훈은 신문물을 받아 들였으나, 이중 생활에 빠지 고 재산을 탕진하는 과도기적 인간형이다. 아들 덕기는 선량한 인간성의 소유자이나, 조부와 아버지의 부조리 속에서 재산을 지켜 나가는 일에 한정되어 적극성을 잃은 우유부단한 인간형 으로 그려 진다. 덕기의 조부 조의관은 고루한 봉건 의식의 소유자이다. 어렵사리 모은 거액의 재산으로 집안의 크고 작은 제사를 받들고, 가문의 명예를 키워나가는 것을 가장 큰 일로 삼 는다. 칠순 노인이면서 부인과 사별 후 서른을 갓 넘긴 수원댁을 후취(後娶)로 들여 네 살박이 딸까지 두고 있다. 조의관이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은 바로 아들 조상훈이다. 맏아들이 며서도 집안일을 안중에 없고 오로지 교회사업에 골몰해 집안의 돈을 바깥으로 빼돌리는 데만 혈안이 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더구나 조의관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봉제사를 기독교 교 리에 어긋나는 우상 숭배라고 반대하고 전혀 돌보지 않는 것이다.

 

그는 아들보다도 손자인 덕기에서 더 큰 믿음을 가진다. 집안의 모든 일도 손자인 덕기와 의 논해서 결정하고, 자신이 죽고 난 후 재산 관리도 덕기에게 일임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덕기의 부친인 조상훈은 위선자다. 미국 유학까지 마친 인텔리에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요, 교회 장로 인 그는 교회를 통한 사회 운동과 교육 사업에 큰 뜻을 품고 집안의 재산으로 그런 사업에 직접 투자하기도 하고 민족 운동가의 가족을 돌보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의 실생활은 구 린내는 축첩(蓄妾)과 노름, 그리고 술로 얼룩진 만신창이 난봉꾼의 그것이다. 그는 자신이 보 살피던 운동가의 딸인 홍경애와 관계를 맺어 아이까지 낳고도 무책임하게 내동댕이치는가하 면, 당대의 오입쟁이들이 출입하는 매당집이란 곳엘 드나들면서 나이 어린 여자들과 불륜의 관계에 빠진다. 덕기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다른 신세대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친구 김 병화처럼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 병화가 하는 일에 심정적으로 동조를 하기는 해도 그 자 신은 법과를 마쳐 판사나 변호사가 되려는 꿈을 품고 있다. 자신의 그런 꿈이 가끔 운동가인 병화의 조소를 받아도 크게 개의하지 않는다. 병화는 목사인 아버지와 사상 대리으로 가출해 서 이곳저곳 떠돌면서 기식하는 형편이지만 자신의 뜻은 절대 굽히지 않는 반면, 덕기는 할아 버지나 아버지와 정면 충돌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세대를 달리하는 그들 의 사고 방식과 행동을 이해하고 동정하기도 한다.

 

잠재되어 있던 조씨 가문의 불화와 암투가 정면에 드러난 것은 조부의 임종을 앞두고 생긴 재 산 분배 과정에서였다. 조의관의 후취인 수원집과 그를 조의관에게 소개해준 최참봉 등은 재 산을 가로챌 욕심으로 유서 변조를 계획하고 조의관을 독살(毒殺)한다.

 

의사들의 배설물 검사로 비소 중독이 판명되자 상훈은 더 명확한 사이인 규명을 위해 사체 부 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집안 어른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고 범인 찾기도 흐 지부지되고 만다. 그러나 손자 덕기가 나타나 수원집 일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재산 관 리권은 덕기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다. 상훈은 법적 상속자인 자신을 건너뛰고 아들인 덕기에 게 그 권리가 넘어가지 유서와 토지문서가 든 금고를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힌다.

 

한편, 상훈에게 농락당하고 아이까지 낳은 후 버림받았던 홍경애는 비록 표면적으로는 술집 여급으로 나가면서 생계를 꾸러가지만 해외의 독립 운동가인 이우삼과 연계를 가지면서 그를 뒤에서 도우는 역할을 한다. 경애는 과거에 묶이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애쓴다. 그는 병화와 자주 만나는 사이에 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조그마한 잡화상으로 경 영하며 경찰 의 눈을 속이지만 그것이 다른 운동가인 장훈 일파들의 오해를 사게 되어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한편, 이우삼이 국내를 다녀간 뒤 서울에서는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불어닥친 다. 비밀 조직인 장훈일파는 물론, 가게를 운영하며 경찰의 눈을 피해 있던 병화와 경애도 검 거된다.

 

그리고 덕기도 병화에게 자금을 대주었다는 혐으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다.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장훈은 비밀 유지를 위해 코카인으로 음독 자살을 한다. 장훈의 자살로 갑자기 조사 가 미궁에 빠지자 연행되거나 검거되었던 사람들은 다 풀려 나오게 된다. 가짜 형사를 등장시 켜 금고와 문서를 훔쳐냈던 상훈도 결국 훈방 조치로 풀려난다. 덕기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공백을 느끼면서 이제 자신의 어깨 위에 내려얹힌 조씨 가문의 유업을 어떻게 이끌나갈 것인가 망연해한다.

* 종류 : 장편 세태소설(長篇 世態小說)

* 형태 : 회장식(回章式) (전 42 장)

* 배경 : 시간 (일제 1930년대), 공간(서울, 덕기의 집) - 주인공 덕기가 유학을 떠나려는 때로부터 다시 귀국하여 활동한 짧은 6개월 정도의 시간에 그의 집안에서 일어난 사건

 

* 등장인물 ①

조의관 --- (부인) --- 수원집 [후처]

(창훈) ************ 조상훈 --- 부인 --- 홍경애 [첩]

* ▼ 김의경 [첩]

(문기 ) *** (덕희)*** 조덕기 --- 부인

 

* 등장인물 ②

(부) 혁명가 (부) 목사 (부) 애국지사

(모) 전 여교사 (모)

▼ ▼ ▼

필순 ************* 김병화 --- 홍경애

*

*

(사회주의)피혁, 장훈

 

  범례

-------- : 직접적 관계

********* : 간접적 관계

( ) : 주변적 인물

* 구성 : 3단 (덕기의 서울체류 - 부재(不在) - 귀국후), 5단

 

󰏐 구성별 줄거리 요약

 

① 발단

1. 23세의 일본 경도삼(3)고(현, 경도대학 교양부)학생인 덕기가 방학을 이용해 귀국했다가 다시 떠나려 하는데 증조부 제사로 인해 출발을 미룬다. 조의관, 친구인 병화가 등장한다.

2. 덕기의 부친인 조상훈과 그 첩인 홍경애가 소개된다. 조의관 집안의 대가족이 여러 인물들의 군상과 함께 묘사된다.

3. 병화의 하숙집을 중심으로 하여 그려진다. 아버지(목사)와 불화 관계에 놓인 병화는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을 위해 일부러 가난한 하숙집 생활을 감내하고 있다. 하숙집 딸인 필순과 필순의 아버지(왕년의 사회주의자)가 등장한다.

4. 조상훈과 홍경애 사이에 난 딸 이야기가 나오며, 덕기와 홍경애의 소학교 동창 시절이 그려진다.

② 전개

5. 증조부의 제사로 출발을 미룬 덕기는 문중회의를 통해 남자들의 갈등을 체험한다. 이밖에 덕기의 모친과 그의 처, 수원집 사이에 일어나는 여인들의 대립과 갈등, 첩 홍경애로 인한 덕기와 부친(상훈)과의 갈등 등이 드러난다.

6. 덕기가 경도로 간 후 홍경애를 사이에 두고 김병화와 조상훈이 만난다. 상훈은 홍경애를 만나 김병화와의 관계를 따진다.

7. 덕기로부터 온 편지에 대해 병화는 필순에 대한 덕기의 관심이 순진함인지 아닌지 생각해 본다.

8. 조상훈이 병화와 타협하기 위해 새로 사준 외투 때문에 상훈의 새 첩인 김의경이 탄로나고, 이를 알게 된 경애는 질투와 증오심을 일으킨다.

9. 장안의 명물 매당(뚜쟁이)가 등장, 중산층 삶의 타락한 실상이 제시되며, 매당과 김의경, 홍경애 사이의 갈등이 노골화된다.

10. 매당을 통해 조의관의 첩이 된 수원집이 감기로 앓아 누운 조의관을 독점하며 덕기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을 중상 모략하여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켜 나간다.

11. 사회주의 활동가인 피혁이 홍경애의 집으로 숨어 들어 지내며 탈출의 준비를 한다. 한편 자신을 대신해 국내 활동을 할 김병화와 접촉한다.

③ 위기

12. 피혁은 국외로 탈출한다. 조부의 급환(急患)으로 덕기가 서둘러 귀국한다.

13. 덕기는 조부로부터 유학을 포기하고 가문의 상징인 사당과 금고(재산)의 열쇠를 받으라는 명에 의해 처음에는 유학을 마치고 와서 받겠다고 말하나 조부는 엄명으로 금고의 열쇠를 건네 준다.

14. 이 사이 조부는 병이 위독, 대학병원에 입원한다. 덕기가 금고의 재산을 확인하는데 이에 수원집, 최참봉 등 다른 인물들이 감시의 눈으로 본다.

④ 절정

15. 조의관이 수술을 받고 비소(砒素) 중독의 증후를 안고 사망한다. 덕기도 이 사실을 알고 부검을 하여 범인을 잡고자 하나 주위의 만류로 포기한다.

16. 피혁이 주고 간 돈으로 병화는 경애와 반찬 가게를 차려 일경(日警)의 눈초리를 피하고자 하나 다른 사회주의자 운동가인 장훈의 패거리로부터 피습을 당한다.

17. 상훈은 더욱 방탕한 생활에 빠져 본처를 몰아내고 김의경과 매당을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여 노름과 사치로 가산을 탕진한다.

18. 조의관의 사망과 병화를 둘러싼 주의자들의 동향을 하나의 사건으로 엮은 일제 경찰에 의해 거의 모든 인물들이 대대적으로 검거된다.

⑤ 결말

19. 조부 살해 사건이나 사상 관계에 무혐의 처리로 덕기가 풀려 나와 일제와 적절한 타협을 하면서 다른 일물들도 석방되나 병화만은 감옥에 남는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각 장면에서 주요인물을 시점의 주체로 삼음)

* 주제 : 중산층 가문의 현실 대응과 몰락

* 출전 : [조선일보] 연재 (1931. 1.1 - 9.17), 단행본 [삼대](1948)

󰏐 <삼대> 소고

가. 봉건의식의 집념과 붕괴

 

<三代)는 조의관과 그의 아들 상훈 그리고 손자인 덕기의 祖․子․孫의 하향적 가족관계를 종적 축으로 하고, 덕기와 그의 친구 병화 그리고 애인격인 필순 등과의 대등적인 관계를 횡적 축으로하여 전개되는 입체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종축은 조의관의 집과 가족관계를 배경으로하여 전개되고 횡적 축은 술집, 하숙집, 교회, 음식점 등 사회적 확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삼대>는 기본 구조에 있어서도 개인과 사회의 대응을 바탕으로 한 복합 구성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 구성의 첫 모티브는 조의관과 덕기간의 세대적인 시각의 차이점에서부터 시작된다. 덕기의 친구인 병화를 바라보는 조의관의 시선은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다. ‘대가리 꼴하고’라는 직설적인 표현속에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비판과 매도의 부정적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의관은 돈을 지키는 열쇠와 조상을 모시는 사당의 두가지가 인간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철저한 조상 숭배 정신과 배금주의적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교육까지도 인간을 조상숭배와 가문유지, 그리고 재물의 수단으로 보는 조의관의 교육관은 봉건사회에서 유교적 이념에 뿌리박은 인생관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삼대>에서 조의관은 유가의 이념이 지배하는 조선사회에 정신적 태반을 둔 봉건의식의 전형적인 상징이었던 것이다. 아들 상훈을 적극 무시하고 부정한 것도 실상은 새로운 개화의 물결 속에서 스스로의 봉건의식을 수호하려는 인간됨이었던 것이다.

 

나. 근대지식인의 형성

덕기의 인간적 특성은 조의관 - 상훈 - 덕기의 수직적 관계에서보다는 병화 - 필순과의 수편적 관계에서 첨예하게 드러난다. 실상 <삼대>의 발단이 덕기와 병화의 우정관계에서 그 모티브를 잡고 있다는 점을 찾아낼 수 있다.

 

덕기와 병화의 우정은 발단부터 계급적 갈 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도 병화의 야유적 공격성보다는 덕기는 수동적 온건성을 보여주고 있다. 덕기는 병화와의 우정에 있어서 가능한 한, 직접적 충동을 회피하는 온건적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온건적 태도는 덕기의 조부관이나 부관에 있어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즉 덕기는 조의관이 상징하는 철저한 봉건주의를 구태여 부정하려 하지도 않으며, 상훈이 지향하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을 받아들이지만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당시 식민지하 지식인의 현실수용자세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덕기는 두 세계의 대립을 긍정하는 절충적 인생관을 가진 지식인으로서 첫 번째 특징이 된다.

 

또한 덕기는 경도행이 상징하는 끊임없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추구와 갈망은 식민지하 이땅의 지식인들의 공통적인 자아발견과 확대의 노력을 뜻한다. 덕기의 또 하나의 근대적 특징은 그가 냉철한 현실인식과 비판의식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1920년대 - 1930년초의 계급투쟁의 정신적 차원을 말해 주는 신랄한 비판이 있는데, 대부분 프로운동가들이 반일제라는 현실적 명제를 계급투쟁운동으로 이해하여, 여기에 무분별한 의욕만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정신적 응집력이 다분히 감정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덕기의 지적은 당대현실의 성급한 계급 의식에 대한 비판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회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비판을 통하여 덕기는 참다운 사회의식 내지는 역사의식을 주장하는 근대의식적 각성을 보여준다.

 

<삼대>는 하나의 개성과 또 다른 개성의 충돌에 그 근원적 모티브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삼대>의 구성은 조의관, 상훈, 덕기에 이르는 시대적 모랄의 갈등과 모색을 통시축으로 또한 덕기, 병화, 필순에 이르는 사회의식과 개성의 갈등과 이해를 공시축이라는 방법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조의관의 일방적 평면성과 조상훈의 갈등적 모순성, 그리고 덕기의 포용적 입체성은 그 자체로서 한말부터 일제에 이르는 시대풍 속의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세대적 갈등과 사회적 변동에 따른 개인적 갈등 속에서 개성의 발견과 확립이라는 염상섭 문학의 이상이 문학적 형상을 얻기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염상섭의 <삼대>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개인과 역사라는 근본적인 소설의 문제를 날카로운 작가적 통찰력에 의해 재구성함으로써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근대적 발전과정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문학적 의미를 지닌다.

 

󰏐 [횡보문학 100주년] 리얼리즘 소설의 극치 `삼대'

-- 1930년 전후 한국근대화 배경, 토착 부르주아 그려

 

염상섭이 [조선일보]에 [삼대]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1931년, 그의나이 서른 다섯 되던 해였다. 이미 [만세전]을 통해 리얼리즘 소설의 한극치를 보여준 그는 사회 관찰과 묘사의 축적된 역량을 총동원하여 [삼대]를 썼다.

[삼대]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추측컨대 1930년 전후의 어느해 초반, 조덕기 가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울 사회의 일상적, 사회적 삶의 파노라마다. 조덕기가의 삼대로 대표되는 토착 부르주아에서 유흥가 여인과 룸펜 지식인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하며, 대가족제도의 유습, 번성하는 근대적 소비, 기독교 집단의 타락, [마르크스 보이]의 유행 등과 같은 풍속의 세목이 무수히 나온다. 염상섭이 성공한 중인집안 출신이자 서울토박이 작가로서 가지고 있었던 유리함은 [삼대]에서 한껏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대지주, 대가족 부르주아의 생활에 익숙한 감각과 사회적, 문화적 갈등이 집약된 서울 경험이 없었더라면 그 전근대와 근대가 착종된 식민지 사회의 생생한 묘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욱이 [삼대]의 리얼리즘은 삶의 세목들의 평면적인 나열에 머물지않고 식민지 사회의 움직임에 대한 전체적 인식으로 나아간다. 조덕기가를 지배하는 세대 갈등과 가문 존립의 위기라는 사태는 식민지적 근대화속에서 한국 사회가 경험한 변화의 축도이며, 토착 부르주아의 운명이표출된 이야기이다. 전통적 가문의식에 사로잡힌 조부 조의관의 임종과근대적 계몽의 화신인 아버지 조상훈의 타락으로 나타난 조덕기가의 동요는 정치적, 이념적 성숙을 보지 못한 채 몰락할 국면에 처한 부르주아계급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조덕기는 가족과 가산의 보전에 집착하고 사회주의에 동정을 표시함으로써 자기구제의 길을 찾고 있지만, 적어도 신문 연재본에는 부르주아가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사회 발전이 무망하다는 인식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이처럼 근대 한국의 역사적 전체성을 겨냥한 인식은 말할 것도 없이 [삼대]를 근대 리얼리즘 소설의걸작으로 남아 있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삼대]가 여전히 흥미롭다면 그것은 거기에 함축된 역사적 시사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한 시사를 넣은 염상섭 소설의 어떤 근본적인성향이 좀더 관심을 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삼대]의 다양한 사건들이 결국은 돈을 둘러싼 타산, 음모, 암투로 수립된다는 사실이다. 염상섭은 사랑처럼 삶을 고양시킬 법한 계기들을 건조하게 취급한 반면에 재화에서 촉발된 저열한 욕망은 혹독할 만큼 직핍하게 기록한다. 이러한특징이 상기시키는 것은 계몽의 낙관주의와 대척적인 지점에 놓이는 특별한 현실관이다. 그것에 따르면 현실이란 언제나 관념, 이상, 환상의부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어떠한 승화도 허락지 않는 범속함을 본질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삼대]는 리얼리즘의 그 냉혹한 의미에 철저했던 것이다. 그것은 모든 낭만적 영광이 사라진 삶의 조건을 시인하고현실적인 것을 새롭게 발견하려 노력한 결과이다. [삶의 산문성]에 대한이러한 인식은 종종 구차한 세태 묘사에 함몰되는 결함을 유발하긴 해도오래도록 추앙될 덕목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근대의 숙명을 간파한 지혜이며, 근대소설의 정신적 본적이기 때문이다.

<황종현/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

 


●삼포가는 길 : 황석영 단편 소설

백화는 개찰구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백화는 눈이 젖은 채로 웃고 있었다.

“네 이름 백화가 아니에요. 본명은요 ······ 이점례예요.”

여자는 개찰구로 뛰어 나갔다. 잠시 후에 기차가 떠났다.

그들은 나무 의자에 기대어 한 시간 쯤 잤다. 깨어 보니 대합실 바깥에 다시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기차는 연착이었다. 밤차를 타려는 시골 사람들이 의자마다 가득 차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담배를 나눠 피웠다. 먼 길을 걷고 나서 잠깐 눈을 붙였더니 더욱 피로해졌던 것이다. 영달이가 혼잣말로,

“쳇, 며칠이나 견디나 ······.”

“뭐라구?”

“아뇨, 백화란 여자 말요. 저런 애들 ······ 한 사날두 시골 생활 못 배겨나요.”

“사람 나름이지만 하긴 그럴 거요. 요즘 세상에 일이 년 안으루 인정이 휙 변해 가는 판인데······.”

정씨 옆에 앉았던 노인이 두 사람의 행색과 무릎 위의 배낭을 눈여겨 살피더니 말을 걸어 왔다.

“어디 일들 가슈?”

“아뇨, 고향에 갑니다.”

“고향이 어딘데 ······.”

“삼포라고 아십니까?”

“어 알지, 우리 아들 놈이 거기서 도자를 끄는데 ······.”

“삼포에서요? 거 어디 공사 벌일 데나 됩니까? 고작해야 고기잡이나 하구 감자나 매는데요.”

“어허! 몇 년 만에 가는 거요?”

“십 년.”

노인은 그렇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두 말우. 거긴 지금 육지야. 바다에 방둑을 쌓아 놓구, 추럭이 수십 대씩 돌을 실어 나른다구.”

“뭣 땜에요?”

“낸들 아나, 뭐 관광호텔을 여러 채 짓는담서, 복잡하기가 말할 수 없데.”

“동네는 그대루 있을까요?”

“그대루가 뭐요. 맨 천지에 공사판 사람들에다 장까지 들어섰는걸.”

“그럼 나룻배두 없어졌겠네요.”

“바다 위로 신작로가 났는데, 나룻배는 뭐에 쓰오. 허허 사람이 많아지니 변고지. 사람이 많아지만 하늘을 잊는 법이거든.”

작정하고 벼르다가 찾아가는 고향이었으나, 정씨에게는 풍문(風聞)마저 낯설었다. 옆에서 잠자고 듣던 영달이가 말했다.

“잘됐군. 우리 거기서 공사판 일이나 잡읍시다.”

그때에 기차가 도착했다. 정씨는 발걸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는 마음의 정처를 방금 잃어버렸던 때문이었다. 어느 결에 정씨는 영달이와 똑같은 입장이 되어 버렸다.

기차가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갔다. (결말부)

* 감상 : 1970년대 산업 사회는 경제적 발달을 가져다 주었지만, 농어촌의 해체(공동체적 삶의 파 괴)와 그로 인한 떠돌이 생활, 도농간의 심한 격차 등 여러 문제점도 유발되었다. 이 작품은 산 업화로 인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작중에서 일터를 찾아가는 막노 동자 노영달, 감옥에서 갓 나와 귀향하는 정씨, 돈을 훔쳐 달아나는 술집 작부(酌婦) 백화, 이 세 사람은 근대화에 떠밀려 고향을 등진 채 이곳 저곳을 유랑하는 사람들이며, 미래에 대한 희 망이 없다는 점에서 공통점이다. 그 중 정씨만은 아름다운 어촌 고향 마을이 마음 속에 남아 있지만 귀향 기차를 타기 전 관광지 개발로 옛모습을 깡그리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듣 고 나머지 두 사람과 같은 처지가 되고 만다.

작품의 결말부에서 등장 인물들은 순수한 애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처지가 된다. 이것은 산업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민중의 연대 의식이라 할 수 있다.

 

* 성격 : 사실주의

* 시점 : 전지적 작가

* 배경 : 70년대 어느 시골 마을

* 등장인물

· 노영달 : 막노동자. 한때 술집 작부와 동거 생활

· 정씨 : 감옥에서 나와 고향 삼포로 가는 막노동자. 결말부에서 떠돌이 신세가 됨

· 백화 : 군인 부대가 있는 작은 시골 마을 작부.

* 주제 : 산업화로 인한 민중들의 궁핍한 삶, 따뜻한 인정과 연대(連帶) 의식

* 출전 : [신동아] (1973. 9 )

 


●상록수(常綠樹) : 심훈 장편 소설

글을 배우러 오는 아이들은 거의 날마다 늘었다. 양철 지붕에 널빤지로 엉성하게 지은 조그만 예배당은 수리를 못해서 벽이 떨어지고, 비만 오면 천장이 새는데, 선머슴 아이들이 뛰고 구르고 하여서 마루청까지 서너 군데나 빠졌다. 그것을 볼 때마다 늙은 장로는

“경비는 날 곳이 없는데 너희가 예배당을 아주 헐어 내는구나”하고 머리를 내 둘렀다.

더구나, 새로 글을 깨친 아이들이 어느 틈에 분필과 연필로 예배당 안팎에다가 개발새발 글씨도 쓰고, 지저분하게 환도 친다. 그것을 볼 때마다 장로와 전도사는 상을 찌푸린다.

영신은 여간 미안하지 않아서, 하루도 몇 번씩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타일렀다. 그러나 속으로는 제가 피땀을 흘리며 가르친 아이들이 하나둘씩 글눈을 떠가는 것이 여간 대견ㅎ지 않아서,

“장로님, 저희가 따로 집을 짓고 나갈테니, 올 가을까지만 참아 주십시오.” 하고, 몇 번이나 용서를 빌었다. 그러면 장로는

“원, 채선생, 별 말씀을 다하는구료, 다 하느님의 뜻대로 되겠지요. 그게 좀 거룩한 사업이오!”

하고 얼더듬는다. 그럴 수록 영신은 사글세 집에 들어 있는 만큼이나 불안스러워서, 하루바삐 집을 짓고 나가려고 아니 해보는 궁리가 없었다.

그러나, 워낙 가난한 동네인데다가 그나마 돈이 한창 마른 때라, 기부금은 적어 놓은 액수의 십분의 일도 걷히지를 않고, 친목 계원들이 봄누에를 쳐서, 한 장 치에 열 서너 말씩이나 땄건만, 고치 값이 사뭇 떨어져서, 예산한 금액까지 되려면, 모이를 먹인 것과 레그혼 같은 서양 종자의 어미닭 값을 따지고 보면, 달걀 값과 비겨 떨어진다. 그러니, 줄잡아도 오륙백 원이나 들여야 할 학원을 지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별별 생각이 다 나서 영신은 그날 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이튿날 새벽밥을 지어 달래서 먹고는 길을 떠났다, 이십 리는 평탄한 신작로지만 나머지는 가파른 고개를 넘느라고 발이 부르트고 속옷이 땀에 젖었다. 영신과 주재소 주임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나 그 밖의 이야기는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호출한 요령만 따서 말하면,

‘첫째는 예배당이 좁고 후락해서 위험하니 아동을 팔십 명 이외에는 한 사람도 더 받지 말라는 것과, 둘째는 기부금을 내라고 돌아다니며 너무 강제 비슷이 청하면 법률에 저촉이 된다.’

는 것을 단단히 주의시키는 것이었다.

영신은 여러 가지로 변명도 하고, 오는 아이들을 아니 받을 수 없다고 사정사정하였으니,

“상부의 명령이니까, 말을 듣지 아니하면 강습소를 폐쇄하겠다.”

고 을러메어서, 영신은 하는 수 없이 입술을 깨물고 주재소 문 밖을 나왔다. 그는 아픈 다리를 간신히 끌고 돌아와서, 저녁도 아니 먹고 그 날 범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였다.

‘참자! 이보다 더한 것도 참아 왔는데, 이만한 일이야 참지 못하랴.’

하면서도, 좀더 시원하게 들이대지를 못하고 온 것이 종시 분하였다, 그러나, 혈기를 참지 못하고 떠들었다가는, 제한 받은 수효의 아이들마저 가르치지 못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꿀꺽 참았던 것이다. 아무튼 어길 수 없는 명령이매 내일부터 팔십 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쫓아내야 한다. 제 손으로 쫓아내야만 한다.

“난 못하겠다. 차라리 예배당 문에 못질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손으로 차마 그 노릇은 못하겠다.”

하고 영신은 부르짖으며, 방바닥에 가 스러져 버렸다. 한참 동안이나 엎치락뒤치락하며 홀로 고민을 하였다.

그는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그러나 이제까지 갖은 고생과 갖은 곤욕을 당해 오면서, 공들여 쌓은 탑을 그 밑동부터 제 손으로 허물어뜨릴 수는 없었다.

* 감상 : 심훈의 감성적(感性的)인 것을 주조로 한 대중성을 지닌 계몽 소설이다. 전편을 통해 흐 르는 민족주의 사상과 주인공의 희생적 사랑이 감동을 자아낸 작품이다. [동아일보]의 브나로 드(vnarod) 운동의 일환으로 행한 장편 소설 모집에 당선된 작품이다. 이광수의 <흙>과 함께 농촌 계몽형 소설의 대표작이다.

 

* 줄거리 : 박동혁과 채영신은 ●●일보사 주최 계몽 운동에 참가하여 주최측이 베푼 위로석상에 서 각각 보고(報告) 연설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둘은 학교를 졸업하고 동혁은 한곡리로, 영신은 청석골로 내려가 농촌 계몽 운동을 벌인다. 영신은 동혁을 찾아가 두 사람이 농촌을 위해 헌신할 것을 약속하고 장래의 계획도 세운다. 영신은 교회 건 물을 빌어 야학(夜學)을 하는데 주재소(駐在所)에서 80명의 정원을 강요한다.

그러나 150명이나 몰린 아이들은 담 위와 나무에 매달려서까지 공부하려고 한다. ‘청석학원’을 지으려 힘쓰던 영신은 과로와 맹장염으로 쓰러져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죽는다.

한편 동혁은 고리 대금 업자와 농우 회원 및 동생 동화의 잘못으로 투옥(投獄)된다. 풀려 나온 동혁은 죽는 날까지 영신의 유업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 주제 : 농촌 계몽 운동을 하는 남녀의 순결한 애정

* 출전 : [동아일보] 연재(1934)

--- 󰃫 이광수 소설 <흙>, 문학이론 <농촌소설>

 


●서울, 1964년 겨울 : 김승옥 단편 소설

1964년의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 - 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 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만났다. 우리 세 사람이란 나와 돗수 높은 안경을 쓴 안(安)이라는 대학원 학생과,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요컨대 가난뱅이라는 것만은 분명하여 그의 정체를 꼭 알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는 서른대여섯 살짜리 사내를 말한다. (발단부) (중략)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니까요. 씨팔것,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안은 눈을 맞고 있는 어느 앙상한 가로수 밑에서 멈췄다. 나도 그를 따라 멈췄다. 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 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결말부)

* 감상 : 이 소설은 ‘나’와 ‘안’이라는 동갑내기의 선술집에서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지만 결코 자신의 진심은 이야기 하지 않는다. 주관적이고 자의식적인 사소한 대화 만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고 말구요. 시체의 아랫배는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요. 여하튼... 나는 그 아침의 만원 버스칸 속에서 보는 젊은 여자 아랫배의 조용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왜 그렇게 마음이 편안 해지고 맑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움직임을 지독하게 사랑합니다.”

 

이 두 사람에 비해 삼십 대의 외판원 사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서 고뇌와 슬픔을 공 유(共有)하기를 바라나 ‘나’와 ‘안’은 받아 주지 않으며 부담스러워한다. 세 사내가 여관으로 와 서도 각각 다른 방을 쓰게 되고, 또 안씨의 경우 외판원 사내가 자살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 면서도 이를 말리지 않은(못하는) 사실에서 인간적 유대가 없는 소외의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 배경 : 1964년 어느 겨울 밤, 서울 거리

* 시점 : 1인칭 주인공

* 등장인물

· 나(25세) : 육사 시험에 실패, 구청 병사계에 근무.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감

· 안(安, 25세) : 부잣집 장남. 대학원생.

· 외판원(35~6세) : 가난한 외판 사원인 그는 시체를 아내에게 판 죄책감에 빠져 괴로워 하다가 여관에서 자살함.

* 주제 : 현대 사회의 지식인 내면의 고뇌와 인간 소외(익명성)

* 출전 : 1965년 [사상계]에 발표

 

󰏐 나의 독서 체험기

나는 김승옥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비애 속의 희망을 느낀다. 타락한 문명의 장소인 도시와 도시인들 속에서 비만하고 허황한 가치 추구의 제양상을 작가는 드러 낸다. 그것은 분명 우리 사회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야유하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가 약삭빠르게 욕심부리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생명력을 잃고 있음을 개탄한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우리 도시인들 제행태의 자화상인 셈이다.

 

󰏐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김승옥씨 <서울 1964년 겨울>

󰡒중국집에서 거리로 나왔을 때 우리는 모두 취해 있었고, 돈은 천원이 없어졌고 사내는 한쪽 눈으로는 울고 다른 쪽 눈으로는 웃고 있었고, 안은 도망갈 궁리를 하기에도 지쳐버렸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고, 나는 `악센트 찍는 문제를 모두 틀려버렸단 말야, 악센트 말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거리는 영화광고에서 본 식민지의 거리처럼 춥고 한산했고, 그러나 여전히 소주 광고는 부지런히, 약 광고는 게으름을 피우며 반짝이고 있었고, 전봇대의 아가씨는 `그저 그래요'라고 웃고 있었다.󰡓(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중)

 

1964년 겨울 서울의 한 포장마차에서 세 남자가 만난다. 김이라는 성을 가진 `나'는 사관학교를 지원했다가 실패하고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고, 대학원생 `안'은 부잣집 장남으로 두 사람은 모두 스물다섯살이다. 서른대여섯 돼 보이는 또 다른 사내는 서적 외판원. 처음에 말문을 튼 안과 `나'는 학력과 처지의 천양지차에도 불구하고 바깥 세상과는 겉돌고 있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나중에 합류한 제3의 사나이는 사랑하는 아내가 병으로 숨지자 그 시신을 병원에 판 뒤 낙담과 죄책감으로 시체 판 돈을 다 써버리자고 스물다섯살짜리들을 유혹한다. 억지로 돈을 쓰러 돌아다니던 세사람은 불자동차 뒤를 쫓아가 불구경을 하는데, 상처한 사나이는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남은 돈을 던져버린다. 세사람은 그날 밤 같은 여관의 서로 다른 방에 투숙하며, 다음날 이른 아침 상처한 사나이가 밤사이 자살한 것을 알게 된 두 젊은이는 몰래 여관을 빠져나와 기약없이 헤어진다….

 

그러니 어쨌단 말인가. 작가는 왜 이런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쓴 것일까. 젊어서 이미 늙은 것들의 말장난 같은 대화와 상처한 중년의 자살로 채워진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이, 그것도 한국 소설사에 우뚝한 작품이 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제목을 `서울 1964년 겨울'이라 단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1964년 겨울로 돌아가 보자.

 

그해 겨울은 추웠다. 한일기본조약 반대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은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전면전에 나선 군사정부에 의해 패퇴했다. 4․19가 열어젖힌 해방과 자유의 공간을 군홧발로 짓밟은 박정희 소장. 그를 상대로 한 싸움을 별러왔던 학생들의 반격이 6․3사태로 불리는 64년 여름의 용틀임이었다. 그 용틀임이 무위로 돌아가자 이제 학생들에게 남은 것은 개인 차원의 사소한 실천뿐이었다. 그것은 또한 재래적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단자(單子)적 세계관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포장마차에서 만난 세 남자는 사회이면서도 사회가 아닌 독특한 동아리를 이룬다. 그들은 포장마차라는 동일한 공간에 각자 술을 마시러 왔다는 공통점으로 묶이지만, 그것이 어떤 유의미한 공동체의 형성에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세사람은 각자의 고독과 상처로 자은 고치 속에 웅크리고 틀어앉아 있을 뿐 고치 밖의 세계로 나올 염을 내지 못한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는 지문은 그들이 함께 그러나 따로 든 여관방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모두가 몸 부리어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 󰃫 문학이론 <벽(壁)> )

 

그런 점에서 김승옥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는 `개인의 발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50년대까지의 한국 소설은 말의 올바른 의미에서 개인의 존재에 눈뜨지 못했었다. 소설이 개인에 관해 말할 때조차 그 개인은 공동체의 역사와 현실에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사이비 개인이었다.

 

김승옥 소설은 또한 새로운 세대와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감수성으로써 두드러진다. 혁명으로까지 일컬어지는 그 감수성은 사물에 대한 상투적인 인식을 거부하고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봄으로써 결국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게 된다. <무진기행> 중 안개를 묘사한 저 유명한 대목을 읽어보자.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김승옥씨의 소설들이 발아하고 무르익은 곳은 작가가 다니던 서울 문리대가 있던 동숭동 일대였다. 작가에게 서울은 전쟁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폐허 같은 도시였다. 서울 토박이라고는 구렁이 같은 복덕방 영감과 앙칼진 목소리의 셋방 주인 아주머니 정도일 뿐 나머지 서울 주민은 월남 피난민들과 자식들 교육을 위해 상경한 이농민들이었다. 이들이 얽히고 설켜 생존을 위한 악다구니를 펼치는 살풍경이 서울의 모습이었다.

 

"파괴의 폐허 위에서 새로 시작되는 한국, 특히 서울에 대한 관심은 내 소설의 테마가 되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처럼 작가로서 흥미로운 도시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에게 서울이란 평생 그물을 던져도 고갈되지 않는 황금어장과도 같다."

 

60년대의 서울이 그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겨주었고(`서울 1964년 겨울'), 70년대의 서울은 이상문학상을 주었다(`서울의 달빛 0장'). 그렇다면 96년 여름의 서울 하고도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과 대학로는?

 

1996년 여름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늦은 오후의 그곳은 저마다 세상으로 열린 숨구멍이라도 된다는 듯 허리께에 호출기를 찬 젊은이들로 채워진다. 관악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서울대가 있던 마로니에 공원이 그들의 주요 집결지다. 이 거리의 명물인 아마추어 화가들과 가수들, 엔비에이(NBA)의 환상을 사고[買] 또 사는 [生] 아이들, 새 상품 홍보를 위해 목걸이 볼펜을 나누어주는 언니들, 다른 대책이 서지 않아 하릴없이 앉아 있는 연인들, 나름으로는 이곳의 터줏대감인 몇몇 알콜중독자들, 아이스크림 장수, 외국에서 산 장신구와 기념품을 늘어놓고 여행경비를 마련하려는 외국인 배낭여행자…. 이들은 무책임한 구경꾼이자 스스로 남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즐기며 96년 여름 서울의 대학로를 수놓고 있다.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던 작가가 90년대 소설에 관해 말한다.

“언어에 관한 자의식이 강해졌다는 것은 장점이다. 반대로, 싸워야 할 적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는 것은 단점이다. 개조를 위한 욕구와 절규가 보이지 않는다."

 

알다시피 그는 결코 민중문학론자도 실천으로서의 문학의 신봉자도 아니다. 하지만, 역시 그는 4․19와 6․3을― 그 성취와 좌절, 영광과 수치까지를 포함해 ―청춘의 훈장으로 간직한 전투의 세대에 속하는 것이다.

 


●선학동 나그네 : 이청준 단편 소설(연작 소설)

남도 땅 장흥에서도 버스는 다시 비좁은 해안 도로를 한 시간 남짓 달린 끝에, 늦가을 해가 설핏해진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종점지인 회진으로 들어섰다.

차가 정류소에 멎어 서자, 막판까지 넓은 차칸을 지키고 있던 칠팔 명 손님이 서둘어 자리를 일어섰다. 젊은 운전 기사 녀석은 그대 운전석 옆 비상구로 차를 빠져 나가 머리와 옷자락에 뒤집어쓴 흙먼지를 길가에서 훌훌 털어 대고 있었다.

사내는 맨 마지막으로 차를 내려섰다.

차를 내린 다른 손님들은 방근 완도 연락을 대기하고 있는 여객선의 뱃고동 소리에 발걸음들이 갑자기 바빠지고 있었다.

사내는 발길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배를 탈 일이 없었다. 발길을 서두르는 대신 그는 이제 전혀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한동안, 밀물이 차 오르는 선창 쪽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다가, 그는 뒤늦게 무슨 할 일이 떠오른 듯 눈에 들어오는 근처 약방으로 발길을 재촉해 들어갔다.

약방에서 사내는, 이마에 저녁 볕 조각을 받고 있는 젊은 아낙네에게세 바카스 한 병을 샀다. 그리고 거스름돈을 내주는 여자에게 그가 물었다.

“아주머니, 요즘 물때가 저녁 만조(滿潮)겠지요?”

“그러겄지라우. 보름을 지낸 지가 엊그제니께요. 지금도 하마 물이 거의 차 올랐을 텐디요.”

거스름돈을 내주며 묘하게 게으르고 건성스러워 들리는 사투리의 여자에게 사내가 다시 재우쳐 물었다.

“선학동 쪽에 하룻밤 묵어 갈 만한 곳이 있을까요? 옛날엔 그 쪽 길목에 술도 팔고 밥도 먹여 주는 조그만 주막이 하나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여자는 그제서야 쉰 길을 거의 다 들어서고 있는 듯한 사내의 행적을 새삼 눈여겨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딘가 짙은 피곤기 같은 것이 어려 있는 사내의 표정과 허름한 몰골에 금세 흥미가 떨어지는 어조였다.

“손님도 아마 선학동이 첫길은 아니신가 본디, 그야 사람사는 동네에 하룻밤 손 묵어 갈 곳이 없을랍디요? 동네로 건너가는 길목엔 아직 주막도 하나 남아 있고요 ······.”

사내는 바카스병을 열어 안엣것을 마시고 나서 곧 약국을 나왔다. 그러고는 이내 선창거리를 빠져 나와 선학동 쪽으로 늦은 발길을 재촉해 나섰다. (중략)

사내는 억누를 수 없는 기대감 때문에 발걸음마저 차츰 더디어져 가고 있었다.

순간 사내의 얼굴 표정이 커다랗게 흔들렸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이 너무도 의외였다.

돌고개 너머론 또 한줄기 바다가 선학동 앞까지 길게 뻗어 들어가 있어야 하였다.물이 있어야 할 곳에 물이 없었다. 바닷물은 언제부턴가 돌고개 기슭에서부터 출입이 끊겨 있었다. 돌고개 기슭과 관음봉의 오른쪽 산자락 끝을 건너 이은 제방이 포구의 물길을 끊어 버리고 있었다. 포구는 바닷물 대신 추수가 끝난 빈 들판으로 변해 있었다. 들판 건너편으로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앉은 선학동의 모습이 아득히 떠올랐다. 비상학(飛翔鶴)의 모습은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 포구에 물이 없으니 선학(仙鶴)은 처음부터 날아오를 수가 없었다. 둥둥……. 관음봉 지심(地心)에서부터 물을 건너 울려 온다던 그 산령의 북 소리도 들려 올 리 없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다만 장삼자락을 좌우로 길게 펼쳐 앉은 법승(法僧) 형국의 관음봉 뿐이었다. 그 기이한 관음봉의 자태도 표구에 물이 차 올라 있을 때의 얘기였다. 마른 들판을 싸안은 관음봉은 전날과 같이 아늑하고 인자스런 지덕(地德)과 그 풍광을 깡그리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만 들판을 둘러싸고 내려앉은 평범한 산줄기에 불과했다. (발단부)

* 감상 : ‘서편제’ 등 남도창을 제재로 삼고 있는 이청준의 연작 소설인 이 작품은 소리를 다루는 작가의 세계를 잘 보여 준다. 등장인물들은 비정상적 삶을 살아 가는 인물들로서, 오직 소리 하 나에 신명을 바치며 떠돌이로 일생을 살아온 아버지와 소경인 딸, 그리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 고 누이를 찾아 헤매는 오라비 등 한스러운 삶의 모습들을 엮어 놓았다. 이 작품의 주제 의식 은 ‘한(恨)’ 맺힌 삶을 ‘소리’를 통해 승화시키는 데 있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 형식 : 액자소설. 연작소설

· <서편제>, <소리의 빛>과 함께 연작을 이루는 작품

* 배경

· 시간적

- 외부 액자 : 현대

- 내부 액자 : 외부 이야기의 30년 전쯤

· 공간적 : 남도(전라남도) 장흥에 가까운 어느 시골 마을

* 구성 : 역전적 구성(과거와 현재의 역전 교체)

* 등장인물

· 나그네(손) : 눈이 먼 어린 누이를 버리고 도망간 일이 한이 되어 누이를 찾아 헤매는 인물로 서 선학동에 와서 누이의 이야기를 듣고 누이의 마지막 부탁에 따라 누이 찾는 일을 그만두고 화해한다.

· 누이 : 주제를 형상화하는 인물로 아버지를 따라 소리로 연명해 살아가는 기구한 운명의 여 인이다. 오라비를 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다.

· 아버지 : 떠돌이 소리꾼

· 주막집 주인 사내 : 직접 만나지 못하는 나그네와 여자를 간접적으로 연결시켜주는 매개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주막집 심부름꾼으로 자랐는데 여자의 소리에 감화를 받아 비상학을 본다. 그런데 찾아온 나그네의 정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데서 다소 의뭉한 성 격임이 드러나나 이는 나그네의 한스러운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깊은 속마음의 표현이다.

 

* 주제 : 한(恨)의 예술적 승화

* 출전 : [문학과 지성] 여름호(1979) 발표, 그외 [서편제](1993) 수록

 

 


●설공찬전(薛公瓚傳) : 16세기 채수(蔡壽. 1449~1515) 작(作) 한글소설(최초발견)

󰏐 제목 : <한글소설 설공찬傳 발견 의미> 국문학사 다시 쓸 대발견

최초의 한글소설 '설공찬전'의 발견을 학계에서는'해방 이후 최대의 문학사적 사건'으로 평가한다. 이 소설의 등장으로 16세기초에 이미 한글소설이 존재했다는 일각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홍길동전'이 1618년에 나왔다는 것도 추정일 뿐이며, 그나마 현재 전해오는 한글본은 18세기 후반 구전(口傳) 소설을 판각한 것이다.

 

이에 비해 '설공찬전'은 저자와 저작연대, 배경, 저작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명확하게 기록돼 있어 가치가 더욱 크다는 것이 학계의 시각이다. 학자들은 이 소설이 한문본의 번역이라 하더라도 한글소설로 분류하는데 문제가 없으며 구성과 작품성, 사회적 기능 등도 뛰어나다고 설명한다.

 

서울대 박희병교수(국문학)는󰡒이 작품은 조선초기의 소설형식인 전기(傳奇)소설중 하나󰡓라며󰡒귀신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전기소설은 이후 '홍길동전'같은 영웅소설 형태로 계승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소설은 중종때 수거해 불태우고 소장자는 처벌하는 등 조선조에서 필화(筆禍)를 일으켰던 유일한 소설. 이 소설의 유포는 민중들 사이에 신흥 사림파에 대한 반감이 조성되었음을 의미한다.(김창호 학술전문기자)

 

󰏐 최초의 한글소설 '설공찬전' 발견... '홍길동전'보다 1백여년 앞서

최초의 한글소설 허균(許筠)의 '홍길동전'보다 무려 1백여년 앞서는 새로운 한글소설이 발견돼 학계가 흥분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李元淳)는 세종탄신 6백주년을 맞아 지금까지 기록으로만 알려졌던 채수(蔡壽. 1449~1515)의 '설공찬전(薛公瓚傳)'을 찾아냈다고 26일 밝혔다.

 

'중종실록'에 왕명으로 불태워진 것으로 기록돼 있어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만 알려졌던 작품이 5백여년만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 이 소설은 당시 승정원 승지를 지낸 이문건(李文楗.1494~1567)이 1535~67년 쓴 '묵재일기(黙齋日記)'의 낱장 속면에 '셜공찬이'라는 제목으로 필사돼 있다. 총 13쪽 4천여자로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충북괴산 성주이씨 문중문고에서 나왔다.

 

'설공찬전'은 중종실록(1511년)에󰡒한문으로 필사하거나 한글로 번역해 유포되고 있다󰡓고 기록돼 있어 '홍길동전'보다 1백여년 앞선 것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성종때 성균관 대사성, 호조참판을 지낸 채수는 폐비 윤씨를 옹호하다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중종반정 이후 병을 핑계로 경상도 상주에 은거하며 이 소설을 썼다.

 

소설내용은 훈구세력인 정국공신들과 신흥사림간의 갈등이 본격화하는 당시 상황에서'저승'을 다녀온 주인공 설공찬이 정치적 인물들에 대한 염라대왕의 평가를 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김창호 학술전문기자)

 

󰏐 <분수대> 최초의 한글소설

서울 노원구 하계동 한 산기슭의 묘소에 세워져 있는 묘비는 '한글 고비(古碑)'라는 이름의 서울 유형문화제 제27호로 지정돼 있다. 이 묘비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꼭 90년 후인 1536년에 세위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창제 당시와 똑같은 글씨로 새겨 세위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빗돌'로 평가된다.

 

그 내용은 󰡒영한 빗돌이라, 건드린 사람은 재앙을 입으리라. 이는 글 모르는 사람더러 알리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묘소의 주인공은 이윤탁이라는 별로 알려져있지 않은 인물인데 아직 한글이 대중화되지 못했던 시기에 '과감하게' 한글 묘비를 세웠다는 점이 이 묘비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 내용만 봐도 여늬 비문과는 달리 단지 '영(靈)한 빗돌'이니 함부로 다루지 말 것을 당부해 매우 서민적이다. 아닌게 아니라 한글은 창제된지 1세기가 가깝도록 궁중을 비롯한 특수계층만의 문자였다.

 

수양대군과 신미스님이 왕실의 도움으로 상원사를 개축한 뒤 기념으로 주고 받은 글을 엮은 '오대산 상원사 중창 권선문'이나 '금강경''법화경'등 번역된 불경,그리고 부녀자를 가르치는 '내훈(內訓)'과 국악의 집대성인 '악학궤범'같은 것들이 그 당시 한글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기록들일 따름이다. 그런 것들이 대개 시대의 중심 계층에서 이루어졌다고 본다면, 한글이 서민생활 속에 깊숙히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문학의 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6세기 중반 이후 정철(鄭澈), 윤선도(尹善道)등의 시가(詩歌)문학, 그리고 허균(許筠), 김만중(金萬重)등의 소설이 민중 사이에 전파되면서 '깨우치기 쉬운 '한글의 장점이 일상생활 속에 뿌리를 내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의 비문이 보여주는 것처럼 서민사회에서도 '한글문학'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한글이 창제된 이후 오래동안 '언문'이니 '암클'이니 천대를 받았던 탓에 스스로 자취를 감춰온 것은 아닐까.

새로 발견된 중종때 채수(蔡壽)가 썼다는 '설공찬전'도 한글로 쓴데다 내용조차 불건전하다는 사림(士林)의 비난으로 분서(焚書)됐다고 알려져온 한글 소설이다. 발견됐다니 다행이지만 이런 경우는 더 있을는지도 모른다. 학계의 계속적인 노력이 기대된다.

 

󰏐 최고(最古) 한글 소설 「셜공찬傳」5백년만에 햇빛

국내최고(最古)로 알려진 홍길동전(1618년작 추정)보다 1백여년 앞선것으로 추정되는 한글소설이 발견됐다. 국사편찬위는 27일 충북 괴산의 성주이씨 문중문고의 하나인 李文楗(이문건)의 「묵재일기」(黙齋日記․1535~67년 제작)에서 조선 중종때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蔡壽(채수․1449~1515년)의 「셜공찬전(薛公瓚傳)」필사본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소설을 살펴본 李福揆(이복규) 서경대교수는 『13쪽 4천여자분량의 이 소설은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편에 언급된 「셜공찬전」과 동일한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창작시기는 1508~11년 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소설은 저승을 다녀온 주인공 셜공찬이 16세기 당시 정치적 인물들에 대한 염라대왕의 평가를 전하는 형식을 빌어 건국공신과 신흥사대부간의 세력 다툼을 비판한 글로 당시 금서로 지정 되기도 했다.

 


●소설가 구보씨(仇甫氏)의 일일(一日) : 박태원 중편 소설

어머니는 아들이 제 방에서 나와, 마루 끝에 놓인 구두를 신고, 기둥 못에 걸린 단장을 떼어들고, 그리고 문간으로 향하여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 가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중문 앞까지 나간 아들은, 혹은 자기의 한 말을 듣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또는, 아들의 대답 소리가 자기의 귀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그 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이번에는 중문 밖에까지 들릴 목소리를 내었다.

“일쯔거니 들어오너라.”

역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 감상 : 소설가 박태원의 실제 생활이 반영된 자전적인 소설이다.(박태원의 호가 '구보'이기도 하 다.) 목적 없이 집을 나간 구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도중에 목격한 단편적 사실들에 의해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 작품으로 1930년대 지식인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구보이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배회하면서 거리의 여러 풍경이나 군중과 마주칠 때마다 상념에 빠진다. 경성역 대합실에서 군상들을 보며 환멸을 느끼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목 적없는 만남 뒤에 술집에 들러 모든 이를 정신병자로 관찰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도 하고, 밤 이 되자 종로로 나가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하며 늦은 귀가를 걱정하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귀가하는데 그 때 벗에게 좋은 소설을 쓰리라 다짐한다.

 

* 갈래 : 심리소설

* 배경 : 시간-1930년대 어느 하루, 공간-서울 거리

* 성격 : 세태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

* 구성 : 외출해서 전차 안 󰠏󰠏󰋼 다방 󰠏󰠏󰋼 경성역 대합실 󰠏󰠏󰋼 다방 󰠏󰠏󰋼 거리 󰠏󰠏󰋼 술집 󰠏󰠏󰋼 귀가함

* 등장인물

· 구보

- 26세 미혼, 무직의 소설가(세태 관찰의 주체)

- 귀도 잘 들리지 않으며, 시력에도 문제가 있어 신체의 불안감을 느낌

· 어머니 : 아들의 늦은 귀가와 결혼을 걱정함

  공간의 의미

· 현실적 공간(서울에서의 하루)

· 의식의 공간(첫사랑을 시작한 어린 소년기-동경 유학시절)

* 주제 : 1930년대 무기력한 문학인의 눈에 비친 일상사

* 의의 : 박태원의 실제 생활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수난이대(受難二代) : 하근찬 단편 소설

“아들이 돌아온다. 아들 진수(鎭守)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어깻바람이 날 일이었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박만도(朴萬道)는 여느 때 같으면 아무래도 한두 군데 앉아 쉬어야 넘어설 수 있는 용머리재를 단숨에 올라채고 만 것이다. 가슴이 펄럭거리고 허벅지가 뻐근했다. 그러나 그는 고갯마루에서도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들 건너 멀리 바라보이는 정거정에서 연기가 몰씬몰씬 피어 오르며, 삐익-하고 기적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들이 타고 내려올 기차는 점심 때가 가까워서야 도착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해가 이제 겨우 산등성이 위로 한 뼘 가량 떠올랐으니, 오정이 되려면 아직 차례 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공연히 마음이 바빴다. (발단부) (중략)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각각 한 손에 쥐고, 아버지의 등어리로 가서 슬거머니 업혔다. 만도는 팔뚝을 뒤로 돌려서 아들의 하나뿐이 다리를 꼭 안았다. 그리고

“팔로 내 목을 감아야 될 끼다.”

하는 것이었다. 진수는 무척 황송한 듯 한쪽 눈을 찍 감으면서 고등어와 지팡이를 든 두 팔로 아버지의 굵은 목줄기를 부둥켜 았았다. 만도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끙!’하고 일어났다. 아랫도리가 약간 후들거렸으나 걸어갈 만은 하였다.

외나무 다리 위로 조심조심 발을 내디디며 만도는 속으로,

‘이제 새파랗게 젊은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을 잘못 만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이런 소리를 주워삼겼고, 아버지의 등에 업힌 진수는 곧장 미안스러운 얼굴을 하며,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 낀데········.”

만도는 아직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결말부)

* 감상 :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이 작품은 부자의 수난사가 가족사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러나 비극적 역사현장에서의 두 부자의 아픔만 그린 것이 아니라, 팔과 다리를 잃은 두 세대 가 서로 협력하여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을 통해 비극을 딛고 재기(再起)하는 이른바 <화 합하는 모습>을 주제로 형상화했다. 이 점이 수작으로 만든 요인이라 하겠다.

 

* 종류 : 단편소설, 전후소설, 짧은 가족사소설

* 문체 : 간결, 명료한 격렬체

* 시점 : 혼합시점(전지적 작가 + 작가 관찰자 + 1인칭 주인공)

* 배경 : 일제시대~6·25직후 / 1950년대 남양 일대의 섬 / 농촌 마을

* 표현상의 특징

· ‘대화’를 통해 인물의 심리적 갈등과 해소의 과정을 보여줌

· 요약적 제시, 장면 보여주기를 적절하게 배합하여 표현

·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연상수법(연상의 매개물-외나무다리, 담뱃불)

· 토착어 사용과 사실적 묘사 ⇨ 사건 및 상황, 인물 성격 제시

 

* 구성

· 발단 : 전장에서 돌아오는 진수를 마중 나감

· 전개 : 박만도의 과거 회상

- 일제징용에 끌려감(중일전쟁 이후), 징용지에서의 고통, 공습 중 한쪽 팔을 잃음

· 위기 : 진수가 불구로 돌아옴

- 만도의 절망감, 내적 갈등

· 절정 : 극도의 갈등을 차차 해소시켜 나감

- 술로 마음을 달램, 만도의 위로

· 결말 : 힘을 합하여 외나무 다리를 건넘(고난의 극복)

- 진수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외나무 다리를 건넘

- 용머리재가 내려다 봄

 

* 작품 구조 : 시간성

󰊱 현재 ① 외나무 다리를 건너 아들을 마중나가는 만도

⇨ 과거 연상 ① 한 번 읍내에서 술을 먹고 오다가 외나무다리에서 떨어졌음

(회상의 매개체 : 외나무다리)

󰊲 현재 ② 정거장 대합실에 도착하여 궐련을 피우기 위해 불을 당김

⇨ 과거회상 ② 자신이 징용에 끌려갈 때의 정거장 마당(십이삼년전)과 징용에 끌려갔을 때의 고역과 다이너마이트 작업을 하던 중 공습으로 한쪽 팔을 잃은 사건을 회상

(회상의 매개체 : 성냥불)

󰊳 현재 ③ 다리를 한쪽 잃은 아들을 만나 외나무다리를 건넘

 

* 등장인물

· 박만도 : 아버지. 일제 징용에 끌려갔다가 왼팔을 잃고 돌아옴.

· 박진수 : 박만도의 아들. 삼대독자. 6·25에 참전, 한쪽 다리를 잃고 귀향함

* 제재 : 어느 부자(父子)의 수난사(제2차대전, 6·25전쟁)

* 주제 : 민족적 수난을 극복하려는 삶

 

 더 알아두기

1. 민족사의 비극을 인식하는 태도 : 외부적 요인에 있음 -- 󰃫 신동엽 시 <봄은>

2. 외나무다리를 두 부자가 걸어가는 모습 : 민족사의 비극을 화합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태도 --- 󰃫 박두진 시 <해>

 

- 이 소설의 전체적 구조와 가장 가까운 것은 ? ❷

① 성장과 찾음 ❷ 상실과 되찾음 ③ 원형과 빗댐 ④ 물음과 풀림

 

󰏐 <수난이대> 감상

<수난이대>의 내용은 우리 나라 근대사의 가장 불행한 두 시대를 부자 이대(二代)의 모습에 집약한 것이다. 두 인물의 개인적 상실과 좌절은 물론 실제의 현실에 숱하게 있었던 사실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의미는 그러한 체험을 한 쌍의 개별적 사실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겨냥한 것은 박만도와 그의 아들이라는 불행한 두 인물의 형상이 우리 민족 전체의 역사적 상처를 드러내는 가족사적 전형성(典型性)을 지닌다는 점이었다.

 

작품의 세부 내용은 이러한 전형성을 생생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소설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아들에게 앞날의 희망을 걸고 마중 나가는 박만도의 기쁨, 고통스런 과거의 기억, 아들을 만난 순간 절망, 돌아오는 길의 비통한 심경과 분노, 그리고 외나무 다리에서의 새로운 화해 --- 이러한 삽화의 세밀한 관찰은 물론 작가의 상상의 산물이며 허구다.

 

그러나 이 허구는 역사적 사실을 더욱 절실한 구체적 형상으로 그려내기 위한 방법임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역사책은 요약된 사건과 숫자, 도표로써 사실의 윤곽을 말해주는 데 비해, 훌륭한 소설은 상상과 허구의 매개를 통해 생생한 체험으로 전형화된 진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수라도(修羅道) : 김정한 단편(중편) 소설

명호 양반은 아버지 오봉 선생을 닮아서 다시 두문불출을 하다시피 구겨지고, 아들 가운데서 제일 똑똑하다고 하던 막내도 결국 반거충이가 되어 어딜 돌아다니기만 했다.

“애닯기도 하제. 즈그 할배나 징조 할배가 그렇기 훌륭하고 독립운동도 많이 했다는데 ······.” /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들 안타까워했다. 양 접장이 살아 있었더람 뭐라고 할는지 사람들은 이렇게 궁금하게 여겼다. 가야 부인의 머리에 흰 털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 막내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야 부인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땐 돌아가신 시어머니처럼 천수(千手)나 치고, 미륵당에 나가면 미륵불 앞에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곧잘 자줏빛 모란꽃잎이 뚝뚝 떨어지곤 하였다.

“석이 안 왔나 ?”

가야부인은 겨우 눈을 또 뜨곤 막내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벌써 몇번째인지 모른다.

멀리서 또 포성이 쿵! 울려왔다. ---- 왜 사람들은 싸우지 않음 안될까 ? 가야부인은 무슨 말을 할 듯이 입을 약간 우물하다 만다. 이마에서 잇달아 솟는 땀이 드디어 그녀의 열반을 알리는 것 같았다. (결말부)

* 감상 : 이 작품은 ‘생애의 폭이 넓고 깊었던’ 가야부인의 괴로운 과거와 의젓한 처신을 중심에 놓고 시댁인 허진사댁의 가족들이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 겪는 수난사를 그리고 있다. 또한 한 국 종교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 작품으로 4대에 걸친 가족의 수난사(受難史)에서 우리 는 우리의 현대사를 읽을 수 있다. 죽음을 당하는 이와모도 구장의 묘사에서 외세에 기생한 친 일세력들의 말로는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작가적 양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도경 형사였 던 이와모도의 장남의 출세에서 비틀거리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 못한 현대사의 파행을 묘사하 고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은 가족의 수난과 이에 대응하는 가야 부인과 오봉 선생의 인고, 지 절, 초월(超越)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 줄거리 : 가야 부인(옛날 가야국 자리인 김해가 안태본이라고 해서 가야부인이라고 부를게 되었 다)의 시조부 허 진사는 한일 합병직후 일제가 강제 수탈의 무마책으로 내 준 ‘합방은사금’을 거부하고 간도로 이주해 간다. 가야부인이 시집온 지 구 년째 되던 해에, 허 진사는 독립 운동 을 하다 서간도에서 유골로 돌아오고(이것은 일년전의 일이다), 손아래 시숙 밀양 양반은 3.1 만세를 부르다가 일제의 총질에 죽음을 당한다.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동안에 다시금 십여년의 세월이 흘러 그녀는 ‘가얏댁’에서 ‘가야 부 인’으로 칭호가 바뀌고, 어느덧 6남매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자부도 몇이나 거느린 버젓한 시 어머니가 되었다. 시어머니와 그녀는 전통적인 유교 집안인 허진사댁에서 불교에 눈이 뜨게 되 고 서간도에서 돌아간 허 진사의 제삿날에 가야 부인은 제사장을 보아 가지고 오는 길에 땅속 에서 돌부처를 발견하게 된다. 이에 가야부인은 봉건적인 이념이 유교와 미륵신앙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시아버지 오봉 선생(오봉산 밑으로 온 다음부터 부른 호라고 한다.)은 태평양 전쟁이 고비에 다 다를 무렵 일제가 조작한 애국 지사 박해 사건, 즉 ‘한산도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다. 이에 가야 부인은 도움을 청하러 이와모도 참봉에게 찾아가게 되나 헛수고로 돌아간다. 오봉선생은 갖은 옥고를 겪다가 출옥 후 타계한다. 한편 일본에 건너가 대학을 다니던 막내 아들은 학병을 피해 숨어 다녀야 했고, 양딸 구실을 하던 옥이마저 전쟁 말기에 정신대로 끌려 갈 뻔한다. 그 러나 죽은 딸의 남편인 박서방이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 여자 정신대원으로 끄려 가게된 종의 딸 옥이와 결혼하자 옥이는 정신대 징용을 면한다.

 

한편, 친일 분자로 정신대 징용에 앞장 섰던 이와모도 구장은 낭떠러지 밑에서 시체로 발견된 다. 이어 해방이 되고 일반인들은 해방덕을 보지 못했다. 징용에 끌려 간 자나 정신대로 끌려 간 이들은 돌아오지 않고 불행하리라고 밑었던 이와모도 참봉의 집은 행운이 일어났다. 고등 계 형사 간부로 있던 맏아들은 그 동안 숨어 다니더니 경찰 간부가 되었고 몇 해 뒤엔 국회 의 원에 당선되었다.

 

6남매의 어머니로 며느리와 손자를 거느리게 된 가야 부인은 광복 후에도 기울어진 가세가 피 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막내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숨을 거둔다.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부분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일제 강점기부터 대한 민국 초기, 낙동강 유역의 어느 농촌

* 문체 : 당당하고 강건한 문체

* 등장인물

· 가야 부인 : 주인공.일제 하에서 수난을 겪음. 인고(忍苦)와 한의 여인.

· 허 진사 : 가야 부인의 시조부

· 오봉 선생 : 가야 부인의 시아버지. 애국적 지조를 가짐

· 이와모도 구장 : 일본의 앞잡이. 주민에게 피살 당함

* 주제 : 선비의 애국 지절 정신과 현모 양처의 인고의 미덕, 혹은 초월 의지

* 출전 : [월간문학](1969), 한국문학상 수상작

 


●수호지(水滸誌) : 명나라 시내암 고전 소설

* 감상 : 중국 [선화유사(宣和遺事)]에 나오는 중국 송강(宋江) 등 36명의 도적들에 대한 기록을 바 탕으로 송대의 몇가지 도둑 설화를 엮어서 만든 명나라대의 고전소설. 시내암(施耐庵)이 쓰고 나관중(羅貫中)이 편찬한 [충의 수호지]를 비롯, 수많은 판본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으며, 특히 국문학사에서 [수호지]는 오래전부터 이른바 의적소설(義賊小說)의 전범으로 영향을 끼쳐 왔다. 멀리로는 허균의 [홍길동전]이 있으며, 현대소설에는 홍명희의 [임꺾정]과 황석영의 [장길 산] 등이 구성과 형식 면에서 여러 가지로 [수호지]에 연결되어 있다.

 

󰏐 이문열 소설 평역(評譯) [수호지] (민음사, 1991) (전6권)

이씨의 [수호지]는 여러 판본 중에서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문호 김성탄이 손을 본 [제오재자서 수호지](第五才子 水滸誌)를 기본적인 텍스트로 삼았다. 그것은 여러 호걸들이 각자의 경로를 통해 양산박에 집결하는 과정까지만을 다루고 있으므로 일반에게 알려진 [충의 수호지]보다는 내용이 짧다. [충의 수호지]는 양산박의 호걸들이 조정에 귀순해서 충성을 바치다가 간신들의 모략에 희생당하는 후일담까지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김성탄의 판본은 108명의 호걸들이 양산박에 모일 때까지의 이야기로, 도둑소설다운 멋과 맛이 가장 잘 살아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면서 “그 뒤의 이야기는 오히려 지루하므로 수호지의 제맛을 살리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자 원고지 7천 6백여장의 분량이 되는 [수호지]를 집필하기 위해 필자는 직접 중국의 양산박을 답사하기도 했는데 ‘작가후기’에서 “저물어 가는 송조(宋朝)의 하늘에 한무리 장려하고도 처절한 노을처럼 비끼었다 사라져 간 108명의 호걸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라고 했다.

 

작가는 평역 [삼국지]를 출간할 때 조조를 위대한 정치가이자 문장가로 그리는가 하면, 제갈 공명을 자연과학의 지식을 일찍 습득한 지식인이자 관우를 죽게한 인물로 그리는 등 독특한 원전해석으로 화제와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순이삼촌 : 현기영 중편 소설(1978)

 

󰏐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13> 현기영의 <순이삼촌> (제주/글 최재봉)

4월의 제주는 화사하다. 그 화사함은 노골적인 아부의 말처럼 나그네의 온몸을 간지럽힌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라 불과 한시간 미만을 공중에 떠 있으면 이를 수 있는 섬 제주를 아득한 거리 너머의 땅으로 파악하는 것은 그닥 자연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한반도의 좁고도 너른 땅에서 오직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광과 물산은 자못 이국정취까지를 풍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때문인지 제주공항에 내려서는 나그네들은 평강공주를 지어미로 맞아들이는 바보 온달처럼 벙글어지는 입을 주체하지 못해 안달이다. 청춘남녀들이 4월을 즐겨 결혼의 철로 삼는 데에는 이 무렵의 제주가 뿜어내는 이런 화사함이 한몫 단단히 거들고 있을 법하다.

 

하지만 제주의 4월을 꽃 피는 화사함만으로 말할 수 있을까. 함덕 해수욕장의 은빛 모래사장, 유채꽃 만발한 북촌 마을의 옴팡밭, 물소리도 시원한 서귀포 정방폭포, 성산 일출봉의 깎아지른 절벽과 그림 같은 해안선, 아니 제주의 관문인 국제공항부터가 겉으로 보이는 화사함의 이면에는 어김없이 피 흘리는 역사의 상처를 감추고 있는 것을.

 

제주의 4월은 화사함을 구가하는 관광객들의 환성과 상처를 다독이는 내지인들의 한숨이 교차하며 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한라산을 훑어내린 바람에 실린 그 기류는 제주 해협을 건너 한반도의 심장부로, 다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불어 불어 간다. 가며 외친다: 내 말 좀 들어줍서; 이 내 원통한 죽음을 제발이지 알아줍서.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에 신고접수된 피해자만도 1만명이 넘으며, 전체적으로 적어도 3만에서 많게는 6만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낳은 제주 4․3사건. 해방의 환희가 분단의 질곡으로 형질변경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 사건은 해방공간의 모순과 지향을 축약해 보여줌으로써 민족사적 전형성을 획득한다. 그것은 또한 사건 발생 후 반세기가 가까워지도록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미루어짐으로써 겨레의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기도 하다.

 

1948년 4월3일 새벽 1시 제주 전역에서 무장 게릴라들이 경찰 지서와 우익 인사들의 집을 습격하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4․3의 봉홧불을 지펴올린 주체세력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48년 5․10 총선거에 대한 반대를 거사의 취지로 내세웠다. 오랜 이민족의 지배에서 풀려난 겨레가 독립국가의 꼴을 갖추기 전에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외세와 그에 빌붙은 분열주의자들은 반분된 땅덩어리나마 제 몫으로 차지하고자 혈안이 돼 있었다. 따라서 단독선거 반대라는 4․3의 취지는 당시의 정세에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민족적 정당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었다.

 

4․3은 또한 해방과 더불어 삼팔선 이남에 진주한 미군정에 대한 이 땅 민중들의 불만과 저항의 표출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여운형 주도의 건국준비위원회와 그 후신인 인민공화국이 독립국가 수립의 채비를 착착 다져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를 싸그리 무시하고 오히려 친일파와 민족분열주의자들을 두둔하고 나선 미군정의 처사는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서의 그들의 본질을 유감없이 발휘했음이다. 게다가 대흉년과 콜레라의 창궐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진 제주에서는 그나마 미곡정책 실패와 관리들의 횡포로 인해 미군정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이 포화지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947년 3월1일 제주 읍내 관덕정 광장에서 열린 3․1절 시위군중에게 경찰이 총을 발사해 6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은 미군정 및 경찰과 민중들 사이의 관계를 화해 불능의 차원으로 몰고 감으로써 사실상 4․3의 도화선 노릇을 했다.

1978년에 발표된 현기영(55)씨의 중편 `순이 삼촌'은 30년 동안 묻혀있던 4․3의 진실을 거의 최초로 공론화한 문제적 소설이다. 비록 이 소설로 인해 작가 자신은 보안사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책도 발매금지되는 고초를 겪었지만, 이 작품이 지닌 문학사적․역사적 의의는 그로 인해 더한층 막중해졌다.

 

음력 섣달 열여드레인 할아버지의 제사에 맞추어 고향인 제주 서촌 마을에 내려간 `나'를 화자로 내세운 소설은 30년 전 향리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을 통해 4․3의 아픈 역사를 고발하고자 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 되기도 한 순이(順伊) 삼촌(제주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부른다)은 30년 전의 학살 현장에서 두 아이를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인물이지만, 평생 그 사건으로 인한 충격을 떨쳐버리지 못하다가 그예 자살을 택하고 만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소설 <순이 삼촌>은 48년 음력 섣달 19일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양민학살 사건을 모델로 삼고 있다. 이날 아침 이 마을 어귀에서 무장대의 습격으로 군인 2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군인 2개 소대 병력이 마을로 들이닥쳐 3백여동의 가옥을 불태우고 수백명의 양민을 학살한 것이다. 마을의 남정네들이 군․경에 학살당하거나 토벌대를 피해 입산함으로써 여자만 남게 되어 한동안 `무남촌(無男村)'으로 불리기도 한 북촌은 함덕 해수욕장과 지척 거리에 있는 전형적인 제주 마을이다.

 

검은 돌담과 샛노란 유채꽃, 기와지붕 가녘의 흰색 테두리와 옥빛 바닷물이 현란한 색채의 잔치를 연출하는 이 마을에서 반세기 전의 비명과 유혈을 떠올리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일주도로변의 북촌 초등학교 운동장은 어김없이 그날 마을사람들을 소집한 군대가 학살 대상자를 정하기 위해 군․경 가족을 가려내던 그 장소요, 웃자란 마늘 줄기들로 시퍼런 학교 뒤 옴팡밭은 시체 위에 시체가 쌓이던 바로 그 학살터임에 분명하다.

 

󰡒적어도 내 상상 속에서 나의 향리는 예나제나 죽은 마을이었다. 말하자면 삼십년 전 군 소개작전에 따라 소각된 잿더미 모습 그대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북촌이 비록 현기영씨의 고향은 아니지만, 소설 속 `나'의 목소리를 작가 현씨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으리라. 바람에 날려오는 유채꽃의 비릿한 향내에서 죽은 자들의 시취(屍臭)를 맡고, 화산암의 거무튀튀한 색깔에서는 완벽하게 불타버린 반세기 전 제주도를 연상하게 된다고 현씨는 말했다.

 

󰡒작가로서 내가 4․3에만 매달리는 것은 편협한 지방주의 때문이 아니라 변죽을 쳐서 복판을 울리는 문학적 전략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3에 응축되어 있는 민족적․민중적 모순을 통해 보편성에의 요구에 응하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신선전(神仙傳) : 연암 박지원의 소설 중 주인공이 잠적함으로써 사건이 종결되는 작품을 총칭.

󰃚 <허생전(許生傳)>, <김신전>, <우상전> 등

 


●심청가(沈淸歌) : 작자연대 미상 판소리 사설

* 근원설화 ⇨ 판소리 사설(沈淸歌) ⇨ 고전소설(沈淸傳) ⇨ 신소설 (이해조, <江上蓮>)

 


●심청전 : --- 󰃫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에서 일절 인용

심청이 부끄럽고 설운 마음 눈물만 흘리다가 진짓상 물린 후에 밥 한 술 먹자 한들 목이 메어 먹겠느냐. 부엌으로 들고 나와 설움질 하노라니 문전이 두선두선 선인들이 들어오며

"심낭자 거 계시오? 물 때가 늦어 가니 어서 나와 가사이다."

심청이 나서 보니 접때 왔던 선인이라 반기며 하는 말이,

"평안히들 오십니까. 거기 잠깐 계옵시면 부친 전에 하직하고 함께 따라 가오리다."

방으로 들어가서 애비의 손을 잡고 온화한 말씀으로 조용히 여쭈오되,

"몽은사에 시주미를 주선할 수 없삽기로 남경 장사 선인에게 인당수 제수(祭需)로 이 몸을 팔았더니 행선이 오늘이라 선인들이 왔사오니 함께 따라 갈 테오니, 불초한 이 자식은 조금도 생각말고, 어서 수이 눈을 떠서

양가에 재취(再娶)하여 아들을 낳으시오. 심청은 여식이라 설령 살아있다 하더라도 여자유행원부모(女子有行遠父母)라. 남의 집 사람 되면 어디다 쓰오리까?"

심봉사가 천만 의외에 이런 눈 빠질 말을 들어 노니, 말을 썩 못하고 이어 졸라 내어,

"아니 그게 다 말이냐? 뉘게서 배웠으나 너 혼자 낸 의사냐. 물에 든들 붓겠느냐, 자식이 죽으면 보던 눈도 먼다는데 멀었던 눈 도로 떠야 천천만만 부당하니 너는 못가리라."

"남의 값을 받았으니 아니 가고 할 수 있소."

"몽은사로 기별하여 쌀 찾아다 도로 주지."

"한 번 시주하온 후에 어찌 도로 찾사오며, 벌써 다 썼을 테니 찾으련들 할 수 있소."

"인당수 용왕님이 인(人)제수 받는다면, 나도 사람이니 그러하면 내가 가제."

 

* 감상 : 인간의 백행의 근본인 효와 불교의 인과 응보 사상을 배경으로 한 고대 소설이다. 현실적으로

처해있는 궁핍한 생활을 효라는 유교 윤리를 통해 극복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전반부는 현실세계를, 후반부는 비현실 세계(죽음과 환생 모티프)를 다루고 있는데, 전반부는

비장미와 숭고미를, 후반부는 효를 통한 극복과 민중의 신분 상승 욕구 표현 등이 나타나 있다.

* 주제 : 부모에 대한 효성

 


●쑈리 킴 : 송병수 단편 전후 소설

 

바로 언덕 위, 하필 길목에 벼락맞은 고목나무(가지는 썩어 없어지고 꺼멓게 그을린 밑둥만 엉성히 버틴 나무)가 서 있어 대낮에도 이 앞을 지나기가 께름하다. 하지만 이 나무 기둥에다 총 쏘기나 칼 던지기를 하기는 십상이다. 양키들은 그런 장난을 곧잘 한다. 쑈리는 매일 양키 부대에 가는 길에 언덕 위에 오면 으레 이 나무에다 돌멩이를 던져 그날 하루 ‘재수 보기’를 해 봐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세 번 던져 한 번도 정통으로 맞지 않았다. 아마 오늘은 재수 옴 붙은 날인가 보다.

재수 더럽다고 침을 퉤-- 뱉고, 쑈리는 언덕 아래로 내려 갔다. 언덕 아래 넓은 골짝에 양키 부대 캠프들이 뜨믄뜨믄 늘어서 있다. 저 맞은쪽 행길 가에 외따로 있는 캠프는 중대장이랑 루테나랑 싸진이랑 높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캡틴 하우스보이인 딱부리놈이 바로 게 있다. 이쪽 바로 언덕 아래에 여러 개 늘어선 캠프엔 맨 쫄뜨기 양키들이 있는 곳이다. (발단부)

이젠 이 곳 양키 부대도 싫다. 아니 무섭다. 생각해 보면 양키들도 무섭다. 부르도크 같은 놈은 왕초보다 더 무섭고 엠피는 교통 순경보다 더 미웁다. 빨리 이곳을 떠나 우선 서울에 가서 따링 누나를 찾아야겠다. 그 마음 착한 따링 누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야 까짓 달러 뭉치 따위, 그리고 야광 시계도 나일론 잠바도 짬방모자도 그 따윈 영 없어도 좋다. 그저 따링 누나를 만나 왈칵 끌어안고 실컷 울어나 보고, 다음에 아무 데고 가서 오래 자리잡고 ‘저 산 너머 햇님’을 부르며 마음놓고 살아 봤으면······. 찔뚝이가 죽지 않고 살아날까 봐 걱정이다. 그 놈이 살아나기만 하면 아무 데를 가도 아무 때고 그 놈의 손에 성해 나진 못할 것이다. 쑈리는 왜 그 놈의 대갈통을 으스러 버리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결말부분)

* 배경 : 미군 부대 주변, 부랑소년과 양공주의 삶을 그림

* 경향 : 휴머니즘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어조 : 작품 분위기 조성을 위해 ‘피엑스, 쑈리 킴, 엠피, 따링 누나’ 등의 어휘를 그대로 사용

* 등장인물

· 쑈리 킴 : 10세 정도 된 전쟁 고아소년. 매춘을 중개한다. 그러나 양공주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 천진성이 상처를 입는다. 또한 금단의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외국 군대의 이상한 성(性) 문화와 전시(戰時), 성(性)의 상품화 또는 생활 수단화를 너무 일찍 깨우친 아이

· 딱부리 : 14세. 양공주인 따링누나가 양키와 관계를 가지는 것을 보고 $5 줄테니 자기와 잠자 리를 갖자고 요구하는, 일찌감치 어른의 세계에 물든 파괴된 동심의 세계를 보여줌

* 주제 : 현실의 암울함 속에 싹트는 인간애

* 의의·감상 : 다른 전후 소설과는 달리 전쟁의 비극 강조에서 나아가 인간 본성이 착함을 강조하고 있다.

* 출전 : 1957년 [문학예술]에 발표

 

  철모르는 아이, 순진한 아이를 서술자로 택한 작품들

 ---  주요섭 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

 ---  윤흥길 소설 <장마>

 ---  하퍼 리 소설 <앵무새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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