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독서창고

백년철도 천년문화

by 처사21
728x90
반응형

백년철도 천년문화

장 수 영(포항공과대학교총장. 조선일보 시론, 95. 09. 13.)

 

 

 

지금부터 70여년전에 한 일본인은 총독부청사 건축으로 헐릴 위기에 놓인 우리의 광화문을 놓고 눈물로 글을 썼다. 침략국의 일원이면서도 동족들에 의해 파괴될 우리의 문화재를 위해 진심으로 울었다. 만약 그가 살아 우리 자신의 결정에 의한 고속전철의 경주 도심통과를 보게 된다면 무어라고 쓸까.

 

물론 고속전철의 도심통과를 계획하고 있는 건설교통부안은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고 또 그대로 결정된다고 해도 당장 경주가 해체되거나 파괴되는 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문화재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충분해 피해를 최소화 할 여러가지 보완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렇지만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는 불과 120여년전에 대원군에 의해 세워진 광화문과 비할 바가 아니다. 경주에는 그 하나가 바로 광화문과 맞먹을 문화재가 땅속 땅위에 수없이 흩어져 있다.

 

고속철도의 도심 통과가 직접적인 훼손이나 파괴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해도 그 부정적인 영향의 집계는 광화문 철거에 못지않은 문화적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고속전철 역세권의 개발을 생각하면 더욱 끔찍하다. 건설교통부는 문화재보호법 같은 것으로 그 개발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하나 그게 가능할지는 실로 의문이다. 수백만의 구매력 풍부한 유동인구가 지나는 목을 어떻게 개발제한지역으로 묶어둘 수 있겠는가. 보나마나 그 해제는 지역주민의 숙원사업이 될 것이고, 선거공약의 단골 메뉴가 될것이고, 그러다가 언제가는 정치력에 의해 풀리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심통과안을 고수하는 건설교통부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국민의 혈세로 전가될 엄청난 추가비용과 재설계에 따른 공기의 지연이다. 거기에 대해서도 역시 이치에 닿는 반론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고속전철을 건천화천노선으로 변경하는데 대략 18천억의 추가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도심통과구간을 지하로 바꾼다고 양보한 이상 그 추가비용도 만만찮을 것이다. 따라서 지하화에 필요한 추가비용을 빼면 노선 변경에 따른 추가비용은 훨씬 떨어질 것인데 그 경우 천년고도를 보호한다는 명분이면 국민들을 설득하기는 어렵지 않다고 본다.

 

또 건설교통부는 고속전철의 노선변경으로 대략 16개월 이상 공기가 지연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2002년 월드컵 개최에 맞추어둔 고속전철 준공계획이 노선변경으로 일그러진다는 점을 힘주어 내세운다. 하지만 월드컵 개최가 확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확정된다 해도 그것은 한번 있는 행사이다. 아무리 중요한 국제행사라 해도 그 한번의 행사와 우리의 영구한 문화유산이 훼손될 위험을 맞바꿀 수는 없다.

 

앞서 말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 광화문이여]라는 명문의 말미에서 이런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주여,저들은 저들이 하고 있는 바를 알지 못하나이다.} 고속전철의 경주도심통과를 고집하고 있는 당국자들이나 그걸 지지하는 소수의 주민들은 자기들이 하려는 일이 무언지를 진실로 알고 있는지, 관료적 경직성이나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이민족 침략자들이 이땅에서 하던 일을 우리 손으로 하려하고 있음을 알고나 있는지.

 

하지만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 계산으로 고속전철의 경주 도심통과가 강행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70년전의 그 의로운 일본인처럼 훼손되어 갈 경주를 눈물로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아아, 경주여,정녕 너를 위해 눈물을 준비해야 하는가


 

728x90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독서창고

처사21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