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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기술인가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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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기술인가

에리 프롬(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하나의 기술인가? 사랑이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아니면 사랑은 어쩌다가 우연히 경험하게 되는, 즉 운만 좋으면 '빠져 들게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랑을 즐거운 감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작은 책은 사랑은 기술이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행복한 사랑 이야기나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 수 많은 영화를 구경하고, 사랑을 노래한 수백 가지의 시시한 노래를 듣는다. 그렇지만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특별한 태도는 몇 가지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이 전제들은 단독으로 혹은 서로 결합해서 그 태도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즉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사랑 받는' 문제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들은 몇 가지 경로를 밟는다. 그중 한 가지는, 특히 남자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성공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지위가 지니는 사회적인 한계 내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에 의해 사용되는 또 다른 길은 자신의 몸매를 가꾼다거나 옷치장을 함으로써 자기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길이다. 매력 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남녀 모두 사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유쾌한 태도, 흥미 있는 대화를 몸에 익히고 유능하고 겸손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일이다. 자기를 사랑스럽게 만 드는 여러 가지 방법은 성공하기 위해, '친구를 얻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들과 비슷하다. 사실 우리 문화권 내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랑스럽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기와 성적 매력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에 대해서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태도의 배경에 깔려 있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고, 오히려 사랑하거나 사랑 받을 올바른 대상을 찾는 일이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에는 근대 사회의 발전에 근거를 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사랑의 대상'의 선택이라는 문제에 대해 서 20세기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이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대부분의 전통 문화에서처럼 사랑이란 곧 결혼으로 나아가게 될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은 전혀 아니었다.

 

그와는 반대로 결혼은 관습에 의해서, 즉 양쪽 집안에 의해서, 혹은 중매인에 의해서, 혹은 그러한 중개자의 도움 없이 이루어지는 계약이었다. 결혼은 사회적인 고려를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며, 사랑은 결혼이 성립된 후에 생겨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서구 사회에서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개념이 거의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지난 수세대 동안의 일이었다. 미국의 경우, 전통적인 성격을 지닌 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낭만적인 사랑'을 곧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개인적인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 이렇듯 이 사랑에 있어서의 자유라는 새로운 개념은 '기능'의 중요성과는 반대되는 것으로서 '대상'의 중요성을 매우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문화의 또 다른 특징적 성격이 이러한 요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의 모든 문화는 구매욕, 상호간의 균등한 교환이라는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대인의 행복은 상점 진열장을 들여다보는 드릴과 현찰이든 할부이든 자기가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사 버리는 데 있다. 그는(또는 그녀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남자에게 있어서는 매력적인 여자, 여자에게는 매력적인 남자가 그들이 얻고자 하는 상품이다. '매력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기 있고, 인격의 시장에서 잘 팔리는 품질 좋은 성격 꾸러미를 의미한다.

 

특히 사람을 매력적이게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 시대의 유행에 달려 있다. 1920년대에는 강인하고 성적 매력이 있고, 술 마시고 담배를 필 줄 아는 소녀가 매력적이었다. 오늘날의 유행은 좀더 가정적이고 얌전한 여자를 요구하고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에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남자는 공격적이고 야심만만한 사람이 되어야 했지만, 오늘날에는 사교적이고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쨌든 사랑에 빠졌다는 느낌은, 자신의 교환 가능성의 영역 안에 있는 인간상품들과 관련지어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물건을 사러 나갔다고 하자. 상대는 사회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아 바람직해야 하며 동시에 상대가 나의 드러난 혹은 숨겨진 자산과 가능성을 고려하여 나를 쓸 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두 사람이 자신들의 교환 가치의 한계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하여,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찾아냈다는 느낌을 갖게 될 때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동산을 매매하는 경우처럼 언젠가는 나타나게 될 숨겨진 가능성도 이러한 거래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시장 지향성이 널리 퍼져 있는 문화에서는 그리고 물질적인 성공이 뛰어난 가치로 여겨지는 문화에서는, 사람들간에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상품 시장이나 노동 시장을 지배하는 교환 양식과 똑같은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다지 놀랄 필요가 없다.

 

사랑에 대해서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자아내게 하는 세 번째 잘못은, 사랑에 '빠진다'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다' 는 영속적인 상태, 좀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사랑에 '머물러 있다'는 상태를 혼동하고 있는 데 있다. 우리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서로 전 혀 모르고 지냈던 두 사람이 자기들 사이에 놓여 있던 벽을 허물어 버리고 일정하게 느끼며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때, 이러한 합일의 순간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유쾌하고 흥미 있는 경험 중 하 나일 것이다.

그것은 특히 고립되어 사랑 없이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멋지고 기적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갑자기 친밀해지는 이 기적은 특히 성적매력과 성적 결합에 의해 주도되고 이와 결합될 때 더욱 촉진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유형의 사랑은 그 성격상 지속적이지 못하다. 두 사람이 점차 친숙해지면 그들의 친밀감이 지녔던 기적적인 성격을 그들은 서서히 잃게 되고, 마침내는 서로에 대한 반감과 실망감 그리고 권태감으로 인해서 최초의 흥분은 흔적조차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심취, 즉 서로에게 '미쳐 있다'는 것을 그들의 사랑의 강도를 나타내는 증거로 여기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이 전에 얼마나 고독했었는가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사랑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는 태도는, 그렇지 않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산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이 되어왔다. 사랑처럼 엄청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다가 반드시 실패하고야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없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다른 활동의 경우라면,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를 배우고자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활동을 포기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있어서는 포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실패의 원인을 살펴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일이다.

 

여기서 해야 할 첫 번째 작업은 삶이 하나의 기술인 것처림 사랑도 기술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배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기술, 예를 들자면 음악 이나그림, 건축, 의학이나 공학의 기술을 배우고자 할 때 시작하는 것과동일한 과정을 밟아야만 할 것이다.

 

어떤 기술을 배우는 데 있어서 거쳐야 할 단계는 무엇인가?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편의상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이론의 습득이고, 둘째는 실천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만약 내가 의학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면, 나는 먼저 인체에 대한 지식과 여러 질병에 대한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가 이러한 이론적 지식에 통달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아직 의학 기술에는 능통하지 못한 상태이다. 내가 가진 이론적 지식의 결과와 실천의 결과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 즉 그 두 가지가 모든 기술 습득의 원천인 직관으로 될 때까지 상당한 정도의 실천을 쌓은 후에라야 비로소 나는 의학 에 있어서 대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론과 실천을 익히는 것 외에도, 어떤 기술에 있어서 대가가 되는 데는 또 한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즉 기술의 습득이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사랑뿐만 아니라 음악, 의학, 건축에도 해당된다. 우리 문화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실패하면서도 왜 이러한 기술을 배우려 들지 않는가에 대한 해답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그렇게 갈망하면서도 사랑보다는 성공, 권위, , 권력 등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사랑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러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모든 정력을 사용하고 있다.

 

돈이나 권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만이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면, 오직 영혼에만 유익하고 현대적인 의미에서 볼 때 아무런 이익도 없는 사랑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조차 없는 사치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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