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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의 사회적 의미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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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의 사회적 의미

이대봉

 

 

1. 한국 프로야구의 시원

한국에서 프로야구는 1982년 출발했다. 바로 5공화국의 이른바 3S 정책'의 산물인 셈이다. 고교야구를 중심으로 한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7개의 야구팀으로 출범했지만, 선수층의 기반이 얇고, 프로 스포츠는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압도적이였으므로 고위층의 압력이 아니라면 가능한 일이 아니였다. 7개구단으로 구성된 프로야구 리그의 창립이 스포츠 외적인 요인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는 사례는 [MBC 청룡]이다. 자체 스포츠 팀도 없을뿐 아니라, 재벌 그룹도 아닌 MBC는 언론 통폐합으로 인해 KBS를 최대주주로 한 반민영방송임에도 재벌그룹 위주의 프로야구 리그에 가담했다. 아마도 방송중계 문제를 고려한 결정이 아닌가 한다.

 

동대문 운동장에서 전두환의 시구로 시작된 프로야구는 외형적으로는 폭발적 인기를 끌었지만, 속으로는 골치아픈 '애물'이였다. 프로야구 리그 자체 운영 수익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적자가 누적되었고, 적자를 이기지 못한 구단은 팀을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삼미 슈퍼스타스-→ 「청보 핀토스」 → 「태평양돌핀스)

 

'3S 정책'은 온당한 용어는 아니지만, 5공화국이 우민화 정책의 도구로서 이벤트 사업을 활용한 것은 사실이다. 80(!) 미스 유니버스대회, 81년의 '국풍 81' 등이 그것이고 프로야구 리그 출범도 이런 맥락에서 추진되었다. 칼라 TV 방송이 시작되었고, 그 지긋지긋한 86/88 올림픽이 대미를 장식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프로야구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이다. 물론 육사골키퍼 출신인 전두환도 여기까지 밖에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전두환에 의해 강제적으로 출발한 프로야구는 62기 김영삼 정권에 와서도 13년째 지속되고 있다. 한탕주의 전시용 행사로만 알았던 전두환과, 우민화의 도구 '3S 정책' 밖에 모르는 좌파를 넘어서는 것, 이것이 오늘의 주제 <문화연구 한국 프로야구의 사회적 의미’> 분석 시론의 목표이다.

 

 

2. 게임의 법칙

프로야구는 경기[Game]이다. 그것은 기원에서부터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게임 규칙을 갖고있다. 더구나 한국의 프로야구는 90년 역사의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노-하우를 수입했기 때문에 대단히 완전하다. 이를테면 '날아가던 홈런성 공이 지나던 새에 맞아 떨어졌을 경우'까지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아웃이냐 세이프이냐, 볼이냐 스트라이크이냐 같은 원초적 문제가 아니면 판정시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더구나 판정시비에 대한 규정까지 마련되어 있고보면 완벽한 '규칙의 게임'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게임의 규칙만이 아니다. 야구장에도 규칙이 있다. 간단하게는 '파울 볼은 주운 사람이 가져간다'는 것에서부터 관습에 의해 형성된 다양한 '하위규범'이 존재한다.

 

홈 플레이트 좌측, 그러니까 1루측 스탠드는 홈팀의 응원석이다. 따라서 LG 홈경기때 1루측 스탠드에서 "해태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규칙위반'이며 상당한 불쾌감을 주는 도발행위아다. 더구나 3루측에서 "LG 만세"를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생명은 보장받기 힘들다. 그러나 정해진 위치에서라면 어떤 행동도 자유로울뿐 아니라 오히려 관중석의 스타가 된다.

 

프로야구 리그와 팀 운영도 규칙(규약)의 적용을 받는다. 지역연고에 묶인 선수들은 자신의 출신 고등학교에 따라 팀을 배정받고, 신인의 연봉상한은 현재(1994, 편집자 주) 1200만원으로 제한되어 있다. 재계약에 있어서도 연봉 인상 상한선은 25% 제한 규정에 묶여있다. 소속된 팀에서 떠나는 방법은 팀간의 계약에 의한 트레이드나, 임의탈퇴 처분으로써 야구생명을 끝내는 길 뿐이다.

 

리그전도 8개 팀 밖에 안되기 때문에 많은 변화를 겪었다. 현재는 한시즌의 정규리그 결과를 근거로 3,4위 팀이 준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그 승리팀과 2위 팀이 플레이오프를 치르며, 최종 승리팀과 1위팀이 한국 시리즈를 통해서 우승팀을 가린다. 수치상으로는 4위 팀이 우승 가능한 조금 불합리한 편법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리그 운영은 불합리 할지는 몰라도 흥행에는 대단히 효과적이다. 리그 우승제라면 올해와 같이 선두팀이 압도적인 승차로 독주를 했을때 후반기 흥행실적은 극히 부진하게 된다. 더구나 수십억대의 포스트 시즌 수익도 날아간다.

 

이러한 복잡한 규약의 개정 및 집행 권한은 <한국야구 위원회, KBO>에 있고, 실질적인 영향력은 '구단주 회의'에 있다. 이들의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정권' 뿐인데 5공화국 이후 정권의 개입이 줄어들면서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 '선수노조'의 파업으로 메이저 리그가 중단된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프로야구에는 노조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전횡은 더욱 더하다. 몇해전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선수회'가 발기되었으나, 노동조합화를 우려한 구단주 측의 강경대응으로 무산되었다. 결국 주동자였던 '최동원'은 은퇴하고 말았다. 구단주들의 보수적인 입장은 최근의 'OB 파동'에서도 볼 수 있다. 성적부진을 이유로 선수를 폭행한 윤동균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며 팀을 이탈한 선수들에 대해서, 구단측은 '선수요구에 따른 감독퇴진의 선례를 남길 수 없다'며 무조건 합류를 주장했고, 결국 선수들은 감봉 및 임의탈퇴 공시의 징계를 받았다. 팬들의 일반적인 의견이 '감독 퇴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규칙의 경기로서의 프로야구는 엄격한 규칙으로 인해서 더욱 흥미를 증폭시키고, 관중의 기대를 형성하고, 예상된 기대의 충족에 따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프로야구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반대의 극단적인 무관심은 이 '규칙'를 두고 나누어진다. 한쪽은 '규칙' 안에 있고, 다른 한쪽은 '규칙'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주어진 '규칙'을 받아들인다면, 그 안에서 최대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규칙의 경기' 안에서 우리가 얻는 즐거움의 의미와 효과는 무엇인가?

 

 

3. 프로야구의 정치경제학

13년째에 들어선 오늘, 어떤 구단도 프로야구 팀을 '애물' 취급하지 않는다. 90[MBC 청룡]은 공식적으로만 130억을 주고 럭키금성에 팔렸으며, 전라북도를 연고로 제 8구단으로 창단된 [쌍방울 레이더스]의 경우는 이보다 더 고액이 오간 것으로 알고있다. 최근 프로야구 팀 창단이 좌절된 '현대'의 경우 프로야구 제 2 리그라는 카드를 내세우며 KBO를 위협하고 있다. 도대체 프로야구가 구단에게 무엇을 주기 때문인가?

 

작년 [롯데 자이언츠]는 시즌 1백만 관중을 홈구장으로 불러들였다. 올해는 [LG 트윈스]1백만 관중을 달성했다. 잠실구장 만원사례도 12번을 기록했다. 더구나 포스트 시리즈에 진출할 경우 성적순으로 배당되는 수익금은 더욱 커진다.(작년 우승팀 해태가 받은 포스트 시즌 수익배당액이 55천만원이다.) 따라서 몇몇 인기구단의 경우는 흥행수익만으로 최소의 운영 경비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프로스포츠는 경기수익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하나의 이벤트 사업으로써 산업화하게 되는데, 가장 큰 것이 TV 중계권료이다. 내년부터 개시될 CA-TV의 스포츠 채널 역시 프로야구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은 물론이다. 이외에도 미약하기는 하지만 경기장 부대시설들의 이익도 '야구산업'의 한 부분이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스포츠 용품의 상표권, 모자나 티셔츠 등 팬시상품, 경기장의 광고판 등 야구산업의 범위는 상당히 광범위하다.

 

프로야구와 동맹관계에 있는 또하나의 중요한 '공룡'은 스포츠 신문이다. 프로야구와 스포츠 신문의 연관정도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프로야구가 없는 겨울시즌에 신문지면을 감면하고, 신문대금을 인하했던 경우이다. 한국일보사의 <일간 스포츠>뿐이였던 스포츠 신문에 서울신문사와 조선일보사가 뛰어들어 경쟁체제가 된 것도 프로야구 출범 이후이다. 일련의 스포츠 신문 경쟁이 전체 일간 신문의 상업주의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임은 물론이다. KBO라는 관료기구에서는 여전히 낙하산 인사로 물의를 빚는 등 정권과의 유착이 발견되지만, 프로야구를 움직이는 동력은 프로야구 리그 자체 및 부대사업, TV/라디오/CA-TV 등의 방송사, 스포츠 신문을 필두로 한 언론사 3자의 동맹이며, 그들의 공통분모는 이익추구라는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프로야구 산업'이다.

 

프로야구 8개구단이 모두 대표적인 재벌그룹 소속임도 눈여겨 볼 문제이다. 기업 이미지 홍보를 위해 문화행사에 대한 지원도 이루어지지만, 프로야구는 가장 직접적인 이미지 홍보활동이다. 매년 프로야구 구단의 적자는 각 팀당 30억원 이상이다. 하지만... 해태 그룹의 관계자는 말한다. "재계 랭킹 27위에 불과한 기업을 10대 그룹 안에 드는 기업으로 인식하는 소비자가 많다."

 

프로야구팀들이 '트윈스','타이거스' 등등의 닉네임을 갖고 있지만 일상적으로는 LG나 해태로 기업 이름을 사용한다. 초일류 기업을 모토로 하는 [삼성 라이온스]가 우승을 한다면 그 광고효과는 측정은 불가능하지만 상상이외의 것임에 분명하다. 근래 재벌 그룹들의 통합 이미지 작업(CI)이 벌어지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프로야구 팀의 홍보효과는 결코 만만치 않다. [빙그레 이글스]가 그룹명인 한국화약('한화')로 명칭을 바꾼 것도 그룹차원의 이미지 통합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수만명의 계열사 직원들과 가족들의 단합에도 효과가 있다. 스포츠 경기에 노사와 직급은 중요하지 않다.

 

재벌 그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야구장의 '규칙' 안에서 재벌 그룹은 우상화된다. 성과 계층, 나이를 떠나서 수만관중이 "LG""삼성"을 외친다면... 현대가 눈이 뒤집힌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앞서 말한 'OB 파동'96년 창사 100주년을 앞두고 필승전략을 위해 대규모 트레이드 설이 나돈게 원인이라는 애기도 있다. 프로야구 팀의 경기 이면에는 치열한 대기업들의 경쟁이 있다.

 

 

4. 대중문화로서의 프로야구

산업을 축으로해서 수백만의 팬을 가진 프로야구는 하나의 '문화'를 형성한다. 이는 전체 사회로 보면 일종의 '하위문화'인 셈이다. 이 하위 문화는 사회의 보편적인 문화에 의해 규정되면서 동시에 자체의 특수한 문화를 만들어 낸다. 수많은 각각의 하위문화들이 서로 겹쳐지고 충돌하면서 특정 사회의 '문화'는 수면 위로 떠오른다.

 

먼저 프로야구는 '경쟁 심리'에 기반한다. 특정의 팀과 이 팀을 성원하는 팬들은 야구장 안에서 다른 팀 및 팬들을 ''으로 대립하면서 두 팀의 게임을 관전한다. 관중의 개입은 응원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XX 대란', '출격', '초토화' 같이 전쟁과 비유되는 야구경기는 경쟁을 원초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야구에 몰입할 수록 자신의 팀에 대한 동화와 상대 팀에 대한 적대감은 증폭되는데, 승리했을 경우의 성취감은 이루 형언하기 어렵다. 물론 게임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게임의 법칙은 노련하게도,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으로 자신을 위로할 수 있게 한다.

 

프로야구를 즐기는 심리의 내면을 추적해 본다면 잠재된 폭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투에 가까운 경쟁으로서의 야구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이현세의 두 만화, <머나먼 제국><공포의 외인구단>을 살펴 보자. 다른 배경설명은 생략하고 <머나먼 제국>은 일본의 프로야구를 다루고 있는데,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전통적인 무사정신/군국주의를 재현시키기 위해서 강팀에게 전승게임을 도발하는 일본의 보수파들이 나온다. 그들에게 야구경기는 또다른 전쟁인 셈인데, 만화다운 비약이 있지만 야구에 내재된 '폭력과 경쟁'을 잘 끄집어낸다고 할 수 있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경우에도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들이 지옥훈련을 마치고 전승게임을 벌이는 이야기를 담고있다. 야구 외에는 내세울게 없는 그들에게는 오직 야구의 승자로 서는 것 만이 생존의 길이 된다. (* 만화에 대한 프로야구의 영향력도 지적힐 수 있다. 이현세라는 80년대 대형 만화작가의 등장은 프로야구없이는 불가능했다.)

 

꼴찌에게 박수를 보내는 스포츠 맨쉽과는 다르게 경쟁은 오직 승리만이 가치가 있다. 이러한 배타적인 경쟁, 승리에 대한 집착은 '남근 중심주의' 에 기반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프로야구선수는 '남성'에 국한된다. 사회적 관습에 의해서 여성선수는 키워질 수 없고, 야구라는 경기가 ''에 기반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또한 원천적으로 여성선수는 존재할 수 없다. 2차대전 당시에 메이저 리그 선수들의 군입대로 인해 미국에서는 '여성리그'가 창설되었지만 종전으로 선수들이 복귀하자 해체되었다. (* 페니 마샬 감독의 영화 {그들만의 리그}를 참고할 것)

 

야구장에서 여성의 역할은 장내 아나운서와 치어걸 (응원단장도 남성 이다), 그리고 이른바 '배트 걸'--타자가 던진 배트를 줍는 사람--에 국한된다. 모두 보조적인 역할이다. 더구나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은 성적 노출을 할때 만이다. 분명히 프로야구장에는 엄격한 성의 이분법이 지배한다.

 

관중의 경우에도 상황은 유사하다. 여성 야구팬의 수가 적지않고 이른바 '오빠부대'까지 생기고 있지만, 야구장의 남성문화 속에 동화된다. 그들은 배타적인 경쟁심에 동화되고, 야구장에서의 성 역할 분리에 순응하면서 야구장 문화를 받아들인다.

 

승리=적극성=남성적, 패배=수동성=여성적이라는 이항대립에 기초한 스포츠 경기는 근원적으로 남근 중심주의 문화의 산물이다. 남근 중심주의 는 남성을 기준으로 하고 여성을 남성의 네가티브로서 규정한다. 여성은 결핍으로서 부정적이고, 하찮은 것이지만 자신이 여성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거세 공포) 위협 때문에 또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결국 자신의 팀이 패배함으로써 자신의 '남성'에 상처를 받게 되면 격심한 자기 부정--"난 여성이 아니다!"--을 하게되는데, 공격적 성격이 심한 이른바 다혈질의 사람이 병이나 쓰레기 통을 던지고, 버스를 부수고, 다른 팀 팬들과 싸움을 벌이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5. 프로야구의 이데올로기 재생산

관중 동원능력으로 볼때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는 다른 프로 스포츠와 상당히 차이가 있다. 월드컵으로 인해 축구에 집중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축구 때문이 아니라, 세계적인 대회에서 '한국'이 싸운다는 이유 때문이지 스포츠 종목과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 한국의 프로축구 리그는 대단히 부진하다.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의 하나인 축구가 이 정도인 상황에서 프로야구의 부흥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출범 당시 매스 미디어의 조명을 받은 때문에 초기 붐은 가능했지만 13년이 넘도록 인기를 얻고있는 것은 확고한 지역 연고제 덕분이다. 지역갈등의 산물인가, 지역감정을 촉진했는가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농경문화의 잔재인 지역주의가 프로야구 지역연고제와 정확히 결합했다고 보는게 정확하다. 실제로 지방 팀의 경우는 대부분이 연고지역에 절대다수의 팬을 차지하고 있고, 서울의 경우는 보다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출신 지역에 따라 팀을 성원한다.

 

야구가 규칙의 게임이라고 했지만, 그 규칙은 때때로 경기장을 넘어선 영역까지 확장되는데 바로 지역갈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전라남도를 연고로한 [해태 타이거스]가 이런 경향이 가장 강하다. 심지어 876.29선언 이후에 광주구장(전주였을 수도 있음)에서는 경기가 끝나자 관중들이 '김대중'을 연호하고 방송사는 재빨리 중계를 마치는 해프닝도 있었다. 미국의 경우에도 흑인들에게 신분상승의 길이 열려있는 곳이 스포츠이고, 흑인 스포츠 영웅들이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으로 선전되는데, 가장 낙후된 전라도 지역에 연고를 둔 [해태 타이거스]의 선전(7회 우승)은 지역적 결속이라는 한면과 불만의 배설이라는 또 한면을 보이는 경우이다. 심지어 광주구장에서는 '해태 콜라'만 먹는다고 한다.

 

억압된 사회에서 잠재된 욕망은 소비사회의 이데올로기가 호출함에 따라서 구체적인 욕구로서 현상한다. "삐삐를 차시오. 그러면 당신도 신세대!"라는 광고의 호출에 부응하여 욕망은 삐삐를 구입함으로써 신세대가 되겠다는 욕구로 구체화된다. 물론 일시적으로 욕망은 만족한다. 그러나 소비사회의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내고 '인간'은 주체성을 상실한채 소비적 욕구충족이라는 히로뽕을 먹고사는 소비자로 머물게 된다.

 

프로야구는 그것이 가장 인기있는 프로스포츠이므로 강력한 소비사회의 이데올로기, 정확히는 소비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이다. 그 하나로서 정치적 좌절감의 배설을 지적했다. 이러한 정치적 효과가 '전라도/해태'에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야구장에서 가장 과격한 사람들은 억눌린게 많은 사람들이다. 야구장에서는 그들도 '스타'이다.

 

다른 이데올로기 효과에는 '집단의식'이 있다. 학교에서는 어제 야구경기 결과를 이야기하는 '그룹'이 형성되고, 원자화된 기업내의 화이트 칼라들은 야구장 동료가 구성된다. 그 회사에 프로야구 팀이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야구장에는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다. 관중석은 귀빈석/지정석/내야석/외야석 등 크게 4개로 구별된다. 귀빈석은 대통령을 비롯해서 구단주, 외국사절 등을 위한 특별석이니 논외이고, 지정석은 약간의 웃돈을 지불하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내야석은 사실상 지정석과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일반석은 외야석과 내야석으로 구분되며, 요금은 같고 선착순과 각자의 기호에 따라 자리를 잡으면 된다. 내가 외야석에 앉았다고 기죽을 이유는 없다. 단지 늦게 왔을 뿐인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공히 어느 한 팀을 응원하는 '공동체'이다. 경기가 진행될 수록 관중들은 일체감을 이루고, 응원단장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파도타기도 기꺼이 참여한다. 안타가 나면 일제히 환호하고, 투수의 공 하나하나에 박수나 한숨이 터져나온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가장 결속격이 강한 집단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야구장에 집단주의의 선구인 운동권 문화도 야구장에서 볼 수 있다. '빵빠레'와 율동이 이미 익숙하고, 불의의 사고로 라이트가 나가면 잠실구장을 메운 3만 관중은 그 유명한 '라이타 쇼'도 벌인다.

 

분명히 프로야구장의 하위문화는 원자화된 개인들에게 잠재한 집단주의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냉정히 말하면 집단주의적 욕구가 일회적으로 충족되는 것이다. 경기가 끝나면 각자 뿔뿔이 개인화된다.

 

'스타 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다. 젊은 신인선수 대한 이른바 '오빠부대'가 아니더라도, 스타시스템은 프로야구가 관중을 끄는 중요한 요인이다. 스타 시스템은 매스미디어의 지원이 필수적인데, 이미 스포츠 신문과의 동맹을 지적한 바 있다. 스타는 자신이 동경하는 하나의 우상 이면서 동시에 대리만족을 제공해 준다. 생활 스포츠가 아닌 프로스포츠 --소수의 엘리트가 경기를 하고 일반인은 관전하는--는 일차적으로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전쟁게임'에서 가장 잘치고, 가장 잘 달리고, 잘 던지는 '스타'는 환상 속의 자기 자신인 것이다. 스타는 야구선수에게도 중요한 동력이다. 연봉 하한선에 매달린채 정규시즌에 한번도 나가지 못하는 2군선수들은 '스타'를 목표로 뛴다. 실제로 2군에서 스타로 성장한 '장종훈'같은 선수는 모든 2군 선수들의 꿈이다. 참고로 이번에 개정된 규약에 따르면 신인연봉 상한선이 12백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연봉하한선(최저임금)11천만원, 26백만원으로 '상향'조정 되었다. 또한 외국선수 수입자유화가 실시된다. 그러면, 프로야구 선수 중에도 월급 50만원짜리가 있다는 말인데, 배트같은 소모품은 자비로 부담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 스타시스템이 위력적인 것은 내일 야구팬인 어린이들이다. 어린시절부터 야구를 보고, 야구문화를 먹고 자라는 어린이들은 야구수첩을 갖고있다. 메이저리그의 노-하우인 야구수첩에는 각 팀 선수들의 사진과 프로필, 사인이 든 야구카드가 차곡차곡 꽂혀있다. 당연히 재산목록 1호이다. 물론 별 볼일 없는 선수들의 야구카드는 없다. 각 구단들은 어린이 팬 클럽을 갖고있고,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 어린이 입장료는 500원이고, 청소년 2천원, 일반 4500원이다.) 아버지 세대의 손을 잡고 야구장에 가는 세대들이 그 나이가 되었을때 야구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나로서는 오늘보다 더 우리들의 삶에 의미있는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6. 글을 마치며

 

프로야구는 이상의 것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무궁무진하다. 이미 야구평론가가 생겼고, 게임마다 기록갱신이 관심거리가 된다. 우승의 향방을 점치는 것도 빼놓을 수 없고, 개인 타이틀 경쟁도 치열하다. 야구장에서 금지된 술을 끈질기게 반입하는 팬들은 어떤 이유일까? 텅빈 외야석에서 데이트하는 커플은 왜 야구장에 왔을까?

 

'왜 프로야구를 보러가는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단지 이런 질문은 가능하다. '왜 프로야구를 이야기하는가?' 나의 대답은 이것이다.

 

프로야구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며, 문화이고, 현상이다. 프로야구에는 단지 '3S정책'으로 뭉뚱 그려질 수 없는 우리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 구체로서 발현되고 있다. 하나의 사회는 전체로서 조망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희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풍부함을 놓치는 전체적 조망이란 무능한 도그마일 뿐이다.

 

프로야구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나도 모른다. 이제 막 그에 대한 접근을 시작했을 뿐이다. 재벌 국유화라고? 그렇다면 수백만의 야구팬들이 묻지 않겠는가? "프로야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좋은 야구를 제공하는 정치체제라면 유지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현실보다 더 풍부한 전망이 없다면, 우리는 프로야구만큼도 대중성이 없을 것이다.

 

이글을 끝내면서 운좋게도 나는 움베르토 에코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나의 소심한 제안과 부족한 용기와 다른, 이 거장의 당당한 '선언'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에코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고결한 결벽주의을 비판하면서, 또한 지식인 사회의 눈총을 받으면서 매스커뮤니케이션, 즉 대중문화에 접근했다. 50년대 말의 일이다. 에코는 이 연구를 시작한 동기를 두가지 들고있다. 첫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그 지배 하에 살고있기 때문이며, 둘째로, (비록 창피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동기일 뿐이다. 내가 그렇듯이 에코도 (분명히 70년대까지는)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메시지의 생산문제보다는 수용, 즉 메시지를 다른 방식으로 수용하게 해주는 교육문제를 사고하는 것이다.

 

왜 야구를 이야기 하는가? 나는 다음의 한마디로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I'm a Socialist" & "I like LG TW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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