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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짝사랑과 하회탈의 고백 - 임재해

by 처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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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짝사랑과 하회탈의 고백

임재해

 

 

내가 하회탈을 처음 본 것은 영남대 대학원에서 꼭두각시 놀음 연구로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던 무렵이니, 1978년 가을로 기억된다. 안동문화회관에서 하회탈춤 복원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논문의 마지막 손질을 미루어 둔 채, 도시락보다 더 큼지막한 구식 내쇼날 녹음기를 메고서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당시에는 탈춤을 모르면 가짜 대학생이라고 할 정도로 대학가에 탈춤판이 한창 드세던 시절인 데다가, 대학원 첫학기에 조동일 교수로부터 희곡론 강의를 듣고서 곧장 민속극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탈춤 소리만 들어도 몸과 마음이 함께 들뜨던 때였다.

 

문화회관으로 들어서니, 이미 탈춤 연행이 시작되어서 회관 안은 요란한 풍물 소리로 떠나가는 듯했다. 녹음기부터 작동을 시켜 놓고 무대 앞을 지켜 보았다. 반주를 담당하는 잡이들이 서서 반주를 하지 않고 무대 좌측에 앉아서 반주를 하고 있었다. 별신굿의 일환으로서 연행된 탈춤이라면 마땅히 풍물잡이들이 서서 반주를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원형 복원에 회의가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정교하게 주고 받는 탈춤 대사도 미덥지 못했다. 뒤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우리 탈춤 가운데 극적 내용이 가장 불확실한 것이 하회탈춤인 동시에, 탈이 가장 확실한 것 또한 하회탈춤이었다. 당시 생각으로 언젠가 하회탈춤을 연구하게 된다면, 불확실한 탈춤의 극적 내용보다 원형이 확실한 하회탈부터 연구하리라 마음먹었다.

두 해 뒤에 안동대학 민속학과 식구가 됨으로써 하회탈춤을 볼 기회가 많았다. 그렇지만 대여섯 해가 지나도록 여전히 구경꾼에 머물러 있었다. 불확실하게 복원한 자료를 스스로 정확하게 복원할 열성도 역량도 없었던 탓도 있지만, 고려탈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하회탈을 먼저 연구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라고 생각한 학창시절의 판단도 알게 모르게 작용하였다. 하회탈의 분석은 조형 예술을 전공한 미학도나 미술사가들의 몫이라 여기고 태평스럽기만 했다.

 

그러다가 85년에 안동문화연구회를 결성하고 안동문화 강좌를 시작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내가 이 강좌의 일정한 몫을 담당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강의 내용에서 또한 하회탈과 탈춤 목록을 빠뜨릴 수 없었다. 그래도 배운 이력이 있는 터라, 탈춤의 극적 내용에 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고 탈의 조형성에 관해서는 구색이나 맞출 정도로 준비하리라 했는데, 웬 걸, 하회탈 사진과 모형을 들여다 보니 오히려 탈에 관해서 할 말이 더 많아졌다. 아니 할 말이 많아진 정도가 아니라 그 동안 아무도 거론하지 않았던 하회탈의 조형적 아름다움이 신비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며 내게 수많은 말들을 걸어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하회탈의 조형성에는 국보답게 아무나 쉽사리 범접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 있다는 선입견 때문에 줄곧 짝사랑만 해왔다. 그러다가 내가 용기를 내어 말을 붙이자, 하회탈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도 짝사랑을 고백해 온 것이다. 그 고백은 우선 얼굴 빛깔을 통해서 나타났다.

 

하회탈의 색깔은 모두 간색(間色)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색을 칠한 다른 탈과 달리 한결같이 중간색을 칠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색깔을 거듭 칠해서 색감의 깊이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르테면 각시탈의 경우에는 주황의 살색을 먼저 칠하고 그 위에 백분 화장을 나타내는 흰색을 거듭 칠했으며, 눈썹의 색깔도 녹색을 칠한 다음에 검은색을 덧칠하여 눈썹의 깊은 맛을 적절하게 나타냈다. 인물의 성격에 따라서 색깔도 다르게 칠했다. 색깔이 가진 상징성을 통해서 인물의 성격을 창조해 내려 한 것이다.

 

초랭이나 중, 선비 등과 같이 적극적인 태도로 자기 세계를 극복해 나가려는 인물의 경우에는 대추빛의 검붉은 색을 칠했다면, 양반과 이매 등 제 구실을 온전히 하지 못하면서 자기 세계를 침범당하는 인물의 경우에는 옅은 미색 계통의 색깔을 칠했다. 같은 계통의 색깔이라도 저마다 그 짙기를 다르게 하여 성격의 정도를 개성적으로도 드러냈다. 이를테면, 암자색 탈 가운데서도 선비, , 초랭이 순서로 색깔의 농도가 점점 짙어진다. 주어진 세계를 극복하려는 적극성의 정도를 색깔의 짙기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하회탈의 다음 고백은 얼굴 표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얼굴 표정이 원만한 탈이 있는가 하면 크게 일그러져 있는 탈이 있다. 이목구비가 가장 반듯한 것이 양반탈이라면, 가장 삐뚤어져 있는 것이 초랭이 탈이다. 이목구비의 균형과 불균형, 조화와 부조화를 통해서 반상의 차별성이 갖는 사회적 억압의 양상을 대립적인 얼굴 모습으로 조형해 둔 것이다. 부네와 각시 등 여성탈은 콧대를 중심으로 세모선이 기울어져 있는 반면에, 초랭이와 이매 등 하인탈은 눈과 입의 가로선이 기울져 잇다. 삐딱한 세로선이 남녀간의 성차별을 나타낸다면, 기울어진 가로선은 반상간의 신분차별을 나타낸 셈이다.

하회탈은 얼굴빛과 표정 뿐만 아니라, 직접 입을 열어 고백의 말을 하기도 했다. 첫마디가 기존 연구에 대한 불만이었다. 입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턱이 떨어져 있는 탈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해석의 잘못부터 지적하면서, 그럼 할미와 부네, 각시 등 여성탈들은 왜 턱이 붙어 있는가 하고 반문하였다. 턱이 떨어지고 붙고 하는 것은 인물 창조의 방법일 뿐 중국탈의 영향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하인인 초랭이는 턱이 붙어 있을 뿐 아니라 언청이에다 입조차 비뚤어져 있다.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비뚠 입을 통해서 사회적 언어장애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지체 높은 남성탈들은 턱이 자유롭지만, 언론의 자유가 제약되어 잇는 여성이나 초랭이처럼 지체 낮은 남성탈은 한결같이 턱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콧구멍은 한결같이 시원하게 뚫려 있되, 여성탈이나 하인탈은 콧구명이 아예 없거나 아주 작게 뚫려 있다. 여성들과 하인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하고 하회탈의 고백은 계속 이어졌다. 하회탈 코는 서양의 조각품들보다 더 크고 우뚝하다. 실제로 코 뿐만 아니라 얼굴의 각 부분이 두루 입체적 조형을 이루고 있다. 이 사실을 두고서, 서역탈의 영향을 받은 중국탈이 하회탈에 다시 영향을 미친 결과로 해석하는 데 불만스럽다는 것이다. 이런한 입체성을 근거로 하회탈을 중국탈의 영향으로 보는 것은 불상 중심의 미술사 연구가 빚어낸 오류라 할 수 있다. 하회탈의 입체성은 인물의 성격을 움직임에 따라 가변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창조적 조형 수법이다. 따라서 양반 선비와 같이 희로애락을 두루 나타낼 필요가 있는 성격의 탈들은 입체적이다. 얼굴을 젖히고 숙이는 데 따라 웃거나 화내는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입체적이지 않을 수 없다. 상대적으로 항상 바보스럽게 웃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 이매탈은 표정의 변화가 없어야 하므로 평면적이다. 그러므로, 하회탈을 두고 볼 때 우리 조각품은 평면적이라는 규정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하회탈의 사회성을 나타내는 변증법적 조형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각시탈은 자기의 짝눈을 가리키고 초랭이탈은 자기의 잘려나간 콧대를 가리켰다. 각시탈의 왼쪽 눈은 아래로 내리깔고 있는데, 오른쪽 눈매는 정면을 응시하며 짝눈을 이루고 있다. 사회적 규범에 의한 제약과 억압이 각시의 내려깐 눈으로 형상화되었다면 인간적인 본성에 의한 주체적 각성이 각시의 바르게 뜬 눈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초랭이의 코도 마찬가지이다. 거의 삼각뿔처럼 곧게 뻗은 초랭이의 코가 콧대 높은 삶을 지향한다면, 잘린 콧날은 신분제도로 틀지워져 있는 사회적인 제약이 그의 긍지 놓은 삶을 꺾어 놓았다는 것을 뜻한다. 신분차별 때문에 부당하게 콧대를 꺾고 살아야 하는 계급 모순을 폭로하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상은 실제로 불가능한 표정이라는 점에서 비현실적이고 기형적인 조형일 수 있으나, 겉으로 드러난 표정과 내심으로 짓고 싶은 표정을 함께 고려한다면, 이러한 부조화스러운 얼굴 표정이야 말로 실제 상황을 가장 조화롭고 그럴듯하게 나타낸 변증법적 리얼리즘이라 할 수 잇다. 불통일된 모습으로 보이는 듯한 것이 사실은 삶의 겉과 속, 또는 생각의 안과 밖을 함게 변증법적으로 통일시켜 형상화한 하회탈의 절묘한 조형성이다.

 

나는 하회탈과의 사랑으로 행복을 누렸다. 문화강좌가 성공적이었을 뿐 아니라, 그 해 가을 한국문화인류학회 전국 대회에서는 예술인류학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과분한 논평을 받기도 했다. 89년에는 강신표 교수와 함께 쿄오또대학 주최의 일본 천황 장례식에 관한 심포지엄에 참가하면서, 오사카 국립민속발물관과 동경외국어대학 아시아 아프리카 언어문화연구소에서 두 차례 하회탈 특강을 하고 갈채를 받는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지난 해만 하더라도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초청한 외국인 학자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특강을 했는데, 역시 하회탈에 관한 내용이 가장 인기였다. 하회탈과 맺은 사랑을 돌아보면, 아직도 우리를 짝사랑하며 기다리는 문화유산들이 엄청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먼저 문화유산에 다가서서 사랑을 고백하는 용기와 열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랑을 말할 수 잇는 용기 있는 사람이 미인을 차지하듯이 우리 문화유산도 그러한 사람들의 차지가 될 것이 틀림없다.


임재해. 민속학자. 영남대 국문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안동대 민속학과 교수. 저서로 한국민속과 오늘의 문화.설화 작품의 현장론적 분석.민족설화의 논리와 의식.안동 하회마을.임재해의 이바구 세상등이 있다.

<금호문화(錦湖文化), 19972월호 6-9>

 

 

 

개인별 탐구 과제

1. 필자가 전통의 원형 복구에서 회의를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

2. 입의 형탱와 코의 형태에 대한 기존 연구 내용은 무엇이며, 연구 결과에 불만 을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

3. 다음의 글을 알기 쉽게 풀이해 보자.

하회탈과 맺은 사랑을 돌아보면, 아직도 우리를 짝사랑하며 기다리는 문화 유산들이 엄청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먼저 문화 유산에 다가서서 사랑을 고백하는 용기와 열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모둠별 토의 과제

1. 하회탈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다음의 측면에서 파악해 보자.

얼굴 빛깔

얼굴 표정

변증법적 조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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